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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화분 받침대가 될 뻔한 국보···금석문으로 읽는 천년 신라”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5-24 10:11 게재일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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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영남 고대사 학자들의 42년 강독 결실···‘금석문으로 읽는 신라 이야기’ 발간
전공과 세대 초월한 ‘목요윤독회’의 첫 공동 단행본···故 배현숙 교수 유고 수록
딱딱한 새김글을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로 풀어낸 대중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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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동 단행본 ‘금석문으로 읽는 신라 이야기’를 발간한 대구·영남지역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의 학술 모임 ‘목요윤독회’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목요윤독회 제공

대구·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고대사 연구의 한 우물을 파온 학술 모임 ‘목요윤독회(회장 강종훈)’가 그간의 치열한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첫 단행본 ‘금석문으로 읽는 신라 이야기’(지식산업사)를 출간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일 학술 강독 모임이 반세기에 가깝게 유지되며 공동의 결실을 낸 사례는 학계에서도 극히 드문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목요윤독회의 역사는 198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중국(계명대 명예교수), 주보돈(경북대 명예교수), 이명식(대구대 명예교수), 최광식(고려대 명예교수) 등 대구·경북 지역의 한국고대사 전공자들이 주축이 돼 첫 모임을 가졌다. 이들의 시작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 강독이었다.

이후 대구 성천아카데미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포함한 국내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섭렵했다. 오랜 시간 강독 공간은 바뀌었지만 학문적 열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현재는 16명의 중견 및 원로 교수들이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경북대학교 인문한국진흥관 세미나실에 모여 사료의 한 글자, 한 문장을 두고 밤샘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강독과 직접 관련이 있는 국내 역사의 현장에도 1년에 두 차례씩 답사하고 있으며, 2000년 멕시코 유적 답사를 비롯해 해외 답사도 꾸준히 다녀왔다.

70~80대 원로 명예교수들로부터 30~40대 중견 교수들까지 망라된 이 모임은 한국고대사를 비롯해 고고학, 미술사, 문화인류학 등 전공과 소속 대학의 벽을 초월하고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영상으로 참여하거나 매주 거제도에서 올라와 참석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강종훈 회장(대구가톨릭대 교수)은 “40년 이상 활동해 왔으나 모임의 이름으로 결과물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감회를 밝혔다.

이 책은 목요윤독회가 수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해 온 수많은 고대 금석문 자료 중 신라사의 정수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자료들을 엄선해 구성했다. 딱딱하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돌과 쇠에 새겨진 새김글(금석문)’을 전문가들의 친절한 해설을 통해 일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서로 풀어낸 것이 큰 특징이다. 모여서 공부하고 있는 지역 자체가 옛 신라와 연고가 깊고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금석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 신라 이야기를 먼저 묶은 배경이 됐다.

특히 이번 단행본의 발간 뒤에는 목요윤독회 회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다. 한창 책을 집필 중이던 2025년 2월, 오랜 시간 모임의 주축으로 활동해 온 고(故) 배현숙 교수(계명문화대 명예교수)가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했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유명으로 책에 원고를 싣지 못할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나, 유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던 중 기적처럼 거의 완성된 상태의 친필 원고를 발견했다. 회원들은 고인의 학문적 열정을 기리기 위해 이 유고를 책에 정성스럽게 수록했다. 제2부에 실린 ‘철원 도피안사 철불: 우리를 피안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은 고인이 평생을 바쳐 탐구해 온 한국 미술사와 불교 고대사의 정수가 담긴 마지막 학술적 유산이 됐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삼국시대: 덕업일신의 나라, 신라’에서는 정치, 경제, 사법 등 국가 운영의 기틀을 다져가던 삼국시대 신라의 역동적인 모습을 유물의 명문을 통해 들려준다. 학계에 널리 알려진 울진 봉평리 신라비나 포항 중성리 신라비같은 국보급 자료들을 통해 사로국 시기부터 체계적인 중앙집권국가로 이행해가는 신라 왕호의 변천사와 지방 통치 체제를 밀도 있게 분석한다.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자칫하면 화분 받침대가 될 뻔한 사실, 모 마을 이장이 울진 봉평리 신라비를 대문 기둥으로 쓰려고 가져갔다가 글자를 발견한 일화, 밭에 묻어뒀다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어 밭주인이 몰래 찾아내 세상에 알려진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의 이력 등 흥미진진한 뒷이야기가 담겨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제2부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나라, 신라’에서는 불교가 국가와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력을 다각도로 살핀다. 왕실 불교의 화려함부터 귀족과 민초들의 삶에 스며든 불교적 이상향까지, ‘갈항사 석탑기’나 ‘성덕대왕 신종 명문’ 등의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기존 신라사 해석의 틀을 깨는 날카로운 문제 제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통설을 알기 쉬운 ‘이야기’의 형태로 직조해 내어 연구자와 일반 대중의 시선을 모두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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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윤독회가 42년만에 첫선을 보인 대중교양서 ‘금석문으로 읽는 신라 이야기’ 책 표지. /목요윤독회 제공

이 책은 목요윤독회의 산증인인 노중국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첫걸음을 뗐으며, 강종훈 회장을 비롯한 17명의 회원이 저마다의 전공 분야를 살려 각 장을 나눠 집필했다. 대구·영남 지역에 깊은 뿌리를 두고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직접 발로 뛰며 연구해 온 학자들이기에, 행간마다 신라인들의 생생한 숨결과 현장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표집필자인 노중국 명예교수는 “17명의 필진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지만 통일된 체계를 잡기 위해 문장도 손을 좀 대고 했는데 다 흔쾌하게 수용해주었다”며 40년 만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에 감사를 전했다.

강종훈 목요윤독회 회장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학문적 성과를 이제야 세상에 내놓게 되어 뜻깊다”면서 “이제 스타트를 했으니 다른 성과물도 준비할 것이며, 이번 첫 단행본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은 향후 지속적인 연구와 새로운 저술 작업을 통해 꾸준히 채워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출판사 지식산업사 측은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새겨진 금석문을 통해 천년 왕국 신라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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