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감상에 전통정원·저수지 주변 산책은 덤
손자 돌봄을 위해 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수도권에 머무는 동안 잠시 틈을 내 도시 근교인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을 찾았다.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미술관의 명칭인 ‘호암(湖巖)’ 역시 이 선대회장의 아호에서 따왔다. 고(故) 이건희 회장에게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한국 1세대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이 오는 6월 말까지 열린다. 사전 예약이 필수인 미술관 관람권 한 장으로 미술관 내부뿐만 아니라 전통정원 희원, 호암저수지 일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잔잔한 저수지 주변으로 다양한 석상들이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야외 전시장 같은 분위기다. 석상 사이사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전시의 일부인 양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전통 한국식 정원인 희원은 걸음을 자연스레 느리게 만든다. 기품 있는 돌담과 나무, 고즈넉한 연못과 정자가 조화롭게 이어진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바쁜 도시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은 듯 가만가만 정원을 거닌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표작 ‘마망(Maman)’이다. ‘엄마’를 뜻하는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상징한다. 작가는 평생 직조 수선공으로 일하며 가정을 지켜낸 자신의 어머니를 거미에 빗대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위압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길고 가느다란 다리에서 연약함이 느껴진다. 강인함과 연약함이 공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극히 일부 미술관에서만 설치될 정도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서양 현대미술인 ‘마망’이 희원 입구에 자리 잡아 한국 전통미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불국사를 떠올리게 하는 단정한 분위기의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김윤신 작가의 일생이 담긴 작품들이 1, 2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 제목인 ‘합이합일 분이분일’처럼 작가는 재료와 자신이 하나 되는 과정을 작품에 담아낸다. 나무와 돌, 캔버스와 조형물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펼쳐 보인다.
아흔이 넘어서까지 전기톱을 들고 거대한 나무와 돌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작품들이다. 솔직히 작품이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는다. 예술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느끼며 한편에 마련된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을 본다. 재료와 교감하며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를 탄생시킨다는 그녀는 어린 시절 광복군으로 간 오빠의 무사귀환을 비는 어머니를 따라 간절한 마음으로 차곡차곡 돌탑을 쌓던 기억을 작품 속에 녹여 냈다고 한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가 삶과 예술을 하나로 연결해 온 70여 년의 작품을 폭넓게 만날 수 있다.
전시를 보고 나서 다시 희원을 거닌다. 오래된 문화유산들이 과하지 않게 정원의 풍경 속에 스며 있다. 찬찬히 거닐다 보니 마음도 어느새 고요해진다. 법연지가 내려다보이는 호암정에 잠시 머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싸르락 싸르락 고요를 깬다. 미술관 관람과 정원 산책이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이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호암카페에 들르니 메뉴판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음식 값만큼이나 별도 정산되는 주차비는 다소 부담스럽다. 대중교통 접근도 좋은 편은 아니다. 접근성과 비용은 다소 아쉽지만, 정원과 미술관을 천천히 걷고 나니 잠시 일상 밖을 다녀온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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