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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 발칸반도···괴뢰정권과 폭력의 연결고리

등록일 2026-06-09 18:45 게재일 2026-06-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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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고왕국 각국은 처절한 민족주의자 간 난투극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발칸반도를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하루해가 뜨고 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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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독일연방기록보관소=퍼블릭 제공

1941년 2월 그리스에 영국군이 주둔하자, 긴장한 히틀러는 유고슬라비아 섭정 파블레 왕자를 앞에 앉혀놓고 중립을 풀고 3국동맹에 가입하라며 다섯 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 히틀러로선 후방을 정리한 후 소련으로 진격할 복안이었다. 섭정 파블레 왕자에게 주축국에 합류하면 그 뒤를 감당해 줄 것이라며 슬그머니 옆구리에 찬 장전된 권총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당근도 들이밀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고향 테살로니키 땅을 주겠다며 꼬드겼다.


유고왕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구식 무기가 대부분 독일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국이 독일에게 공격당했을 때 자신들을 도와줄 아군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독일-유고왕국 간의 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역으로 제의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뜻을 모으기 위해 내각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뻔했다. 16대 3으로 독일팀 승리였다.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1941년 3월 협정 조인식이 있었다. 히틀러는 유고 대표단을 보고 이렇게 비웃었다. 
“슬라브 놈들, 장례식에 온 꼴이네!” 전통적으로 독일에 반감이 컸던 세르비아인은 좋아할 리 없었다. 히틀러로부터 받은 것은 테살로니키를 유고왕국에 양도한다는 공수표뿐이었다. 그러자 총리가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흥분했고, 독일의 유고침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때 또다시 군부가 나섰다. 전쟁의 긴박함 속에 쿠데타라니? 툭 하면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인들이 권력의 단맛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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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똥별 두산 시모비치 장군. /퍼블릭 제공
 

쿠데타 주역들에게 대의명분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었다. 그 중심에는 똥별 두산 시모비치 장군이 있었다. 그는 막상 판을 뒤집어 엎었으나, 적절한 대안이 없었다. 

대안의 부재는 결국 대부분의 정치 각료들을 그 자리에 앉혀놓았다. 다만 섭정 왕자 파블레에서 어린 왕 페타르 2세에게 이양된 것뿐이었다. 이때 군부 쿠데타와 하등에 상관이 없다는 듯 베오그라드 시민은 연일 독일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일으켰다. 

이를 잘 간파하고 있었던 베를린에서는 양동작전을 펼쳤다. 유고왕국을 갈가리 찢어놓아야 각개전투로 격파하기 좋았다. 일단 크로아티아에 마수를 뻗쳐 자그레브에는 포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슬로베니아를 다독여 베오그라드에 협조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약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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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 /퍼블릭 제공
 

그러나 미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민족을 위한 행동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1941년 4월 초, 밀실에서 독일 밀명과 만난 크로아티아 농민당 대표 마체크가 크로아티아를 독립국가로 만들어 준다는 약속에도 돌부처처럼 끄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던지, 아니면 침략자의 괴뢰정부 수반에 오를 수 없다는 정치적 철학인지는 끝끝내 알 수 없었지만, 결과는 엄청났다. 그렇다면 독일로서 답은 하나였다. 무솔리니가 자금을 대고 오랫동안 키워온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의 폭력의 선봉이자 망명조직인 ‘우스타샤’를 전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세르비아를 무력으로 장악한 시모비치 장군은 독일의 침략에 대비해 전략을 기가 막히게 짰다. 권위만 있고, 책임은 없는, 품위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이 겉만 반짝거려 일명 똥별이라고 부른다. 온통 국경 주위에 친 나치국 뿐이건만 북부 크로아티아지방으로 독일이 침공할 것이라 판단하고 병력은 그곳으로만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웬걸? 헝가리군이 보이보디나로, 불가리아군이 마케도니아로, 이탈리아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한 후 남쪽에서 물밀 듯 밀려오자 총 한 번 쏘아보지 못한 채 베오그라드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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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극우폭력단체 우스타샤 로고. /퍼블릭 제공

1941년 4월 6일 이후 유고왕국 침략 4일 만인 4월 10일에 크로아티아에 무솔리니가 점령하면서 우스탸사 괴뢰정권이 ‘크로아티아자치국’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우스타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르세이유에서 살해당한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의 악정을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한 크로아티아 극우보수정당 파벨리치가 이탈리아의 협조를 얻어 조직한 폭력단체라고 밝힌 바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무솔리니가 12년 간 돈과 정성을 들여 크로아티아 민권당의 당수 출신 파벨리치를 중심으로 가꾸어온 지하폭력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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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의 상징 승리의 동상. /박필우 제공

유고왕국이 주축국으로부터 침략당한 지 일주일, 유고 왕과 정부는 고국을 떠나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인근 그리스로 달아났다. 베오그라드에 무혈입성한 주축국의 일방적인 평화협정으로 일단락을 맺는다. 전쟁 시작과 함께 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 지배에 쏙 들어가 버렸고, 보이보디나는 1919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겹도록 헝가리의 지배를 또 받아야 했다. 어쩌면 헝가리 지배의 운명을 타고난 땅이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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