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의료원 음성인식 EMR 도입…소견서 작성 15분→10초 단축 경북대병원, 자체 ‘소버린 AI’ 구축 나서…응급환자 배치 예측 연구 대구시도 AI 메디시티 드라이브…의료인력 부족 해법으로 주목
진료실에서 의사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모니터를 바라보는 풍경이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환자와 나눈 대화를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응급실에 도착한 중증 환자의 이송·배치까지 AI가 분석하는 시대가 대구 의료현장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전공의 이탈 장기화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으로 의료현장의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대구권 상급종합병원들이 AI 기반 디지털 전환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한 업무 자동화를 넘어 진료 효율성 향상과 의료 공백 해소, 미래 의료산업 주도권 확보까지 노린 행보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추진하는 ‘2026년 AI 바우처 지원사업’ 수요기관으로 선정되며 의료 AI 도입에 한발 앞서 나갔다.
동산의료원이 추진하는 핵심 사업은 음성인식 기반 전자의무기록(VOICE EMR) 시스템이다. 의료진이 환자와 상담하는 내용을 AI가 실시간으로 인식·정리하고 입·퇴원 요약지, 회송 소견서 등 각종 의무기록 서식까지 자동으로 작성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교수와 전임의들은 진료를 마친 뒤 별도의 의무기록 작성 업무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했다. 의료원 측은 건당 5~15분쯤 소요되던 소견서 작성 시간이 AI 도입 후 10초 안팎으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진이 컴퓨터 화면보다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로 꼽힌다. 기록 업무에 쓰이던 시간을 진료와 설명, 상담에 활용할 수 있어 환자 만족도 향상 효과도 기대된다.
동산의료원은 앞서 지난 1월 의료 특화 AI 전문기업 퍼즐에이아이와 협약을 맺고 진료 음성 데이터와 의학 용어, 약물 정보 등을 거대언어모델(LLM)에 학습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배재훈 계명대 동산의료원장은 “AI를 활용해 의료진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환자 중심 진료 환경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도 맞불을 놓고 있다.
경북대병원은 최근 지역 최초로 ‘인공지능 기반 의료혁신센터’를 출범시키고 독자적인 의료 AI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플랫폼에 의존하기보다 병원이 보유한 데이터와 기술력으로 독립적인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른바 ‘소버린(Sovereign) AI’ 전략이다.
이는 의료정보의 해외 유출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병원 특성에 맞는 맞춤형 AI를 개발하기 위한 시도다.
경북대병원은 현재 중증 응급환자의 상태를 AI가 분석해 적합한 의료기관과 치료 자원을 예측하는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 중이다. 응급실 수용 병상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줄이기 위한 연구다.
칠곡경북대병원 역시 AI 기능이 탑재된 최신 로봇수술 장비를 도입하며 수술 분야 첨단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 의료계에서는 동산의료원이 의료진 업무 경감과 진료 현장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경북대병원은 자체 AI 플랫폼 구축과 의료데이터 주권 확보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현장 활용성을 앞세운 전략과 독립형 의료 AI 생태계 구축 전략이 맞서며 대구 의료계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다.
대구시도 의료 AI 산업 육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구시는 지역 대학병원과 의료기관, 기업들이 참여하는 ‘AI바이오·메디시티대구협의회’를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사업비 1억9000만 원을 투입해 환자 안전관리와 필수의료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의료데이터 중개 사업도 4차년도에 접어들었다.
지역 병원들이 축적한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AI 의료기기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의료서비스 혁신과 바이오산업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의료 AI가 의사를 대체하기보다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보조 도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필수의료 분야의 효율성을 높이고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AI가 생성한 의무기록이나 진단 보조 결과를 의료진이 충분히 검증하지 않을 경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문제, 병원 간 디지털 인프라 격차 해소 역시 의료 AI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 AI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며 “환자 안전을 담보하면서도 의료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활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