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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선은 둥근 빛을 흔들고 누군가 동백잎에 물들어 깊은 병을 가질 때 여관집 늦은 가을비는 창가에 온다 밀물 드는 소리에 취객은 마음을 빼앗기고 여자들이 등을 달고 바다처럼 조용히 부풀어 오를 때 한 폭의 정물화를 보는 느낌을 주는 시다. 바다는 늘 예상하지 못할 예감으로 깨어있다. 밀물이 밀려드는 모습과 여관집에서 술에 취해 바라보는 가을비, 동백꽃잎에 물들어 깊이 든 병, 낭만적인 풍경과 마음을 그려내는 시인의 마음에서 참 고요하고 낭만적이며 어떤 슬픔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예인선, 밀물, 부풀어 오르는 여자, 등(燈) 앞에서 취객은 서서히 부풀어 오는데 이런 존재의 확장은 차라리 병적이어서 못내 슬프기 짝이 없다.
시
등록일 2013.07.16
게재일 20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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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사람, 시인은 그를 향해 손과 팔과 마음을 펴서 따뜻하게 포용해주고 있다. 너무 울지 말라고, 그래도 갈 곳이 어딘가에는 있을거라고. 당신의 이해자이고 동반자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에 상처받고 울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합해지고 포개짐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3.07.15
게재일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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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남루 창피까지 벗어버린 나체 지저분한 개밥 찌꺼기에도 새롭게 돋는 맑은 식욕 고통 속으로 느릿느릿 새어나가 돌아오지 않는 마음들 마음이 씻겨나간 자리에 남은 상처들. 헐렁한 가죽들 시냇물이 온몸으로 퍼지며 상처를 간지럽게 더듬는다 고름이 터져나오던 자리마다 새로 어린 살이 붙는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가 무엇인지가 잘 드러난 시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재생의 세계다. 자신을 학대함으로 그것에 의해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해방하는 일 그 고행의 길이 선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는 보통 사람이다. 그의 고행의 길은 수도자들이 걷는 종교적 수행의 길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복판인 현실이고 일상이다. 그런 의미에게 이 시는 각별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시
등록일 2013.07.14
게재일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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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가르쳐준 건데 하루살이는 애벌레 때부터 스무 번도 넘게 허물을 벗는다더라 그러니께 우리가 보는 하루살이는 마지막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거지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는데 알주머니 하나를 온전하게 채우고 비우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누는거여 필사적이란 말이 이렇듯 장한 거다 어미아비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춤사위여 스무 번도 넘게 허물을 벗는다는 하루살이를 통해 이 땅의 어머니들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시이다. 자식을 양육하느라 수없이 자신을 벗는 어머니들. 마지막 주검이 입는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는 데서 눈물겨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땅 어디에서고 언제나 볼 수 있는 어머니들의 저 거룩한 춤사위들이라니.
시
등록일 2013.07.11
게재일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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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죽은 매미가 7월의 끝자락을 유감없이 삭제하고 있는 오후, 사방을 흘깃거리던 기분좋은 바람 선홍색 꽃잎 문자 앞세우고 문지방을 요리조리 삭제하네 “올해도 다름없이 당신의 열손가락을 아프지않게 삭제하겠습니다” 꼬리를 삭제해도 목숨을 연명하는 도마뱀처럼 붉은 선혈 심찟한 열 개 손가락을 삭제하고 내 생의 또 하나의 여름을 삭제하고 속절없이 감아온 나이테를 삭제하고 마흔을 훌쩍 넘은 그 아이 초저녁내 뜰 아래서 콕,콕, 꽃, 삭제하네 저무는 마흔이 꽃스러워! 꽃스러워! 꽃 꽃 삭제하네 봉숭아 고운 꽃물을 손톱에 물들이며 시인은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 삭제하고 싶은 아픈 추억들과 기억하고 싶지 않고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에 대한 성찰이
시
등록일 2013.07.10
게재일 201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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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횟감처럼 가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포항 저물 무렵 청봉은 말없이 뿌리까지 젖는다 빗발은 미시령에서 폭설로 차오르고 희뿌연 늦가을 설악이 지워질 듯 어둠이 바다에서 느리게 걸어온다 설악의 자락에 있는 한 포구의 풍경을 그리면서 시인은 청봉 곧 설악의 무덤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포구의 저물녘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저만치 설악의 푸르른 봉우리는 말없이 세상살이의 신산함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봉의 말없음은 무감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감정을 안으로 쌓고 있음을 의미한다. 폭설이 차오르는 광경은 청봉이 지워질 듯한 예감을 주지만 오히려 폭설 안에서 설악은 더욱 완강히 그 자리에 도도하게 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
시
등록일 2013.07.09
게재일 201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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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밤새 원망을 해도 나를 아는 사람 나밖에 없다 아주 간명하고 짧게 압축된 시지만 울림이 큰 작품이다. 잘되면 내가 잘났기 때문이고 잘못되면 남의 탓만 하는 세상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성찰하는 자세를 취하는 시적자아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을 힐링하는 따뜻함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시
등록일 2013.07.08
게재일 20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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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이 다가와 찬물을 끼얹자 팽팽히 귀를 매둔 어둠의 솔기가 터졌다 보랏빛 벨벳으로만 안을 덧댄 어둠이었다 여름밤은 달아나고 어둠의 딸 태어나 넝쿨손 뽑아올리며 혈통을 증거한다 한 뼘씩 허공을 디디며 아침에게로 기어간다 혼곤한 어둠 속에서 웅크린 시간들이 어디 캄캄한 밤을 견디고 건넌 나팔꽃 뿐이겠는가. 참된 아름다움과 가치는 어둠 속에서 기다리며 자신을 더 빛나게, 더 가치롭게 닦고 견디며 빛을 기다리는 건지 모른다. 넝쿨손을 뽑아올리며 한 뼘씩 허공을 디디며 아침으로 기어오르는 나팔꽃에서 견고한 희망을 본다. 그런 것은 어디 저 풀꽃뿐이겠는가.
시
등록일 2013.07.07
게재일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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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린 등은 종이었다 해질녘 구겨진 빛을 펼치는 종소리를 듣는다, 한 가닥 햇빛이 소중해지는 진펄밭 썰물 때면 패인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호밋날로 캐내는, 한 생애 쪼그린 아낙의 등뒤로 끄덕이며 끄덕이며 나귀처럼 고개 숙이는 햇살 어둠이 찾아오면 소리없이 밀물에 잠기는 종소리 밀레가 그린 `만종`을 연상케하는 작품이다. 구부린 등은 갯펄에서 조개를 잡는 아낙네들의 고달픈 모습이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에 나오는 모습들처럼 등을 구부리고 종일 구개를 캐는 아낙네들. 생명과 생활의 진지함이 느껴지는 엄숙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밀레의 그림에서 받는 엄숙함과 신성미를 고찬규 시인이 쓴 `만종(晩鐘)`이라는 시에서 다시 느껴본다.
시
등록일 2013.07.04
게재일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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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덜 마른 목재들이 마르는 소리 …. 그의 무른 몸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아직 덜 마른 그의 몸이 마르는 소리 …. 그의 불행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아직 덜 마른 짐승이 살이 마르는 소리 …. 아직 눅눅한 그이 몸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시인은 `love Adagio`의 생생한 몸과 만난 그의 다양한 내면의 흔적과 현장을 섬세한 소리의 이미지로 표현해내고 있다. 물론 그 소리는 규격화고 분절화된 소리가 아니라, 여태껏 다른 사람들이 들어본 적 없는 최초의 , 사적이며 은밀한 유성성이자 액체성으로서의 소리다. 시인의 섬세한 감관이 소리를 따라 반응하는 아주 예민한 감각의 시이다.
시
등록일 2013.07.03
게재일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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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가마처럼 생긴 찜질방에 해면체로 누워 있었지 그만 잠들었었지 어디선가 물속 같은 꿈이 왔었지 저쪽에 해사한 해파리 하나 올 듯 말 듯 너울대고 있었지 자세히 보면 양면 코팅된 당신의 얼굴이었지 질척대는 건 싫어 뽀송뽀송하게 살 거야 당신의 미소가 종이꽃으로 부서졌지 눈을 떴을 땐 내 혀가 없었지 마른 꽃향기만 입 안에 그득했지 말은 일종의 `립싱크`이다. 사물과 본질로부터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것이야말로 언어의 숙명이자 한계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폭력과 언어의 한계 속에서 생물로서의 꽃은 종이꽃으로 옷을 바꿔 입을 수 밖에 없다.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일종의 단절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만유가 소통의 길을 획득해야한다는 논리가 이 시의 근본에 깔려있다.
시
등록일 2013.07.02
게재일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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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흔히들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은 그 나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배려이고 은총의 일부라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그런데 시인은 우리의 삶이 워낙 팍팍하고 메말라서 타인을 위한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은근히 빗대어 말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타인을 위한 배려에 인색하고 그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무엇에 대해 생각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시
등록일 2013.07.01
게재일 2013-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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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들어 가는 연기 위로 검은 쇳가루 비가 내린다 새들은 진폐증에 걸려 헐거운 가속으로 땅에 곤두박질친다 4월의 사막과 4월의 묘지로 어지럽게 오가는 바그다드의 구름들 미국이 손을 떼고 떠난 이라크는 아직도 매우 불안정하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라크의 분쟁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은 우려와 안타까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종족간의 충돌, 혹은 종교 간의 분쟁, 아니 문명의 충돌이라 보는 편이 나을 지 모른다. 황폐한 사막에서 어지럽게 오가는 바그다드의 구름이 그렇거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슬아슬 살아가는 민중들의 핍진한 삶은 어떻겠는가. 암담하고 걱정스러움이 쉬 걷히지 않는다.
시
등록일 2013.06.30
게재일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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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해는 생각을 멈춘 듯 주춤거린다 녹안리의 하늘 불타고 붉은 적막이 가파른 해안을 들불처럼 번져간다 한 세기가 끝나기 전 도비도의 일몰을 보아야 한다는 듯 오랜 시간 바닷바람에 마을 내던진다 ........( 중략 )....... 검붉게 타오르는 물비늘에 얹혀 온갖 욕망들 거대한 구렁이처럼 꿈틀대는 일몰의 바다는 참회조차 오욕으로 바꾸어놓는다 서해의 물빛이 부드러워지는 시간을 헤아려 이곳 도비도를 떠난다 해도 가슴 아래 숨어 흐르는 먹먹한 시간들을 언젠가 환하게 아플 것을 안다 도비도에서의 참회는 짧고 깊다 일몰의 바닷가에 서서 번지는 노을에 젖어들어 보라. 마치 엄숙한 정화(淨化)의 성사(聖事)를 치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한 세기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의 해를 보고 싶어서 도비도라는 섬
시
등록일 2013.06.26
게재일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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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엔 늘 상도동 봉천동 신림동의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논다. 어른들도 달려와 역기를 들고 평행봉에 오른다. 사자암 약수터를 찾는 노인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자못 부지런한 한 시민의 일생이 여기저기 눈부시게 펼쳐지는 것이다. 오리나무 아카시아 백야 도토리나무 등속이 무리를 이루거나 혹은 섞여서 적자생존이요 인공도태다. 어깨를 부딪히며 들어앉은 집 사이로 수많은 교회들이 십자가를 높이 달려고 안달이다. 가까이 공사 연병장이 보이고 청소년들은 사관학교에 진학해서 정치를 하겠다고 벼른다. 그러나 열 살 아이 박근중의 죽음은 너무 사소해 모른다. 전쟁놀이하다 포로로 잡혀 구두끈으로 목 졸린 사고의 의미에 대하여는 잊어버린다. 전쟁이 어떻게 놀이가 되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왜 하는지에 관하여는. 역사는 냉정하고
시
등록일 2013.06.25
게재일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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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훔치는 뱀과 싸웠나? 벼랑에 날개 접고 살던 새들 급한 소리 요란하게 돌과 함께 떨어져 내린다 절벽 절벽 절벽, 끊임없는…. 그 아래 텀벙대는 삶이 노을에 잦아진다 황새여울 끝자락쯤에서 나룻배 암초에 걸려 물살에 식은 맘 깎이며 뱅뱅 돈다 필자도 지난 가을 정선의 동강, 연포라는 곳을 기행한 적이 있다. 이 시는 그런 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지는 시이다. 우리나라 어딘들 이런 평화경이 없을까마는 동강의 절벽과 그 아래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와 급하게 떨어져 내리는 새들의 비행은 참으로 맑고 깨끗한 평화경이 아닐 수 없다. 물여울 어디쯤 뱅뱅 돌고 있는 나룻배의 풍경도 정겨운 모습이다. 요란하고 분답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만히 눈 감고 시인이 그리는 풍경 속으로 따라가 봄직하지 않는가.
시
등록일 2013.06.24
게재일 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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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넣는다 포항이 고향인 시인의 아주 재치가 넘치는 짧은 시다. 비록 짧은 시지만 울림이 크다. 한 인간의 행복은 무엇이 좌우할까. 행복에 대한 철학적이고 정서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봐야할 작품이다. 한 인간의 행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치, 시대 등의 문제와 깊이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는 시인의 인식이 깊이 박혀있는 시이다.
시
등록일 2013.06.23
게재일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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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다고, 다 나았다고 힘을 쓰다 그만 할머니는 또 똥을 싼다 지금 내 가슴 가득 흘러넘치더니 구석구석 번지더니 몸 바깥으로 터져나오는 추억, 향기로운 나무껍질처럼 내 몸을 감싸고 따뜻하다 사람의 일들이란 지난날의 추억 덕택에 아름답고 엄격한 현실 때문에 누추하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으나 시인의 추억 중심에 놓여 현재를 살고 있다. 그래서 추억은 일종의 시원(始原)이다. 추억은 시원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추억은 상처를 상당히 내포하고 있지만 사랑의 질료이기도 해서 누구나 오래오래 보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3.06.20
게재일 201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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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갈대밭에 와 있는 거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윽한 잎들 속삭임 같은 인사말도 웅덩이 물을 선점한 이끼의 탐욕과 날벌레들 앙큼한 탐색 따위는 여기에 없다 나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갖지 못하였지만 초록 줄기들의 질긴 꿈은 알아보았다 세상의 길들은 다 사연이 있다니까 나도 갈대 밭에 길 하나쯤 내면 아니 될까 푸르른 갈대밭에서 시인의 자신이 걸어가야 할 한 생의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갈대가 서있는 젖은 땅의 이끼의 탐욕이나 날벌레들의 앙큼함 따위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푸르게 무리지어 흔들리면서도 그 초록 줄기들이 바라보고 나아가는 질긴 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길들에 다 사연이 있듯이 그 푸른 갈대들의 길에도 그런 푸른 꿈과 사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
등록일 2013.06.19
게재일 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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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 버려진 캔맥주 깡통, 비 오는 날이면 밤새 목탁 소리로 울었다. 비워지고 버려져서 그렇게 맑게 울고 있다니 버려진 감자 한 알 감나무 아래에서 반쯤 썩어 곰팡이 피우다가 흙의 내부에 쓸쓸한 마음 전하더니 어느날 그 자리에서 흰 꽃을 피웠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이 한 세상을 끌어가고 있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자연이던 시물이던 버려지고 소외돼가는, 불구와 불량의 사물들이 쓸쓸하게 놓여있다. 그러나 그렇게 쓸데없이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이 한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감나무 아래 버려져서 썩은 냄새를 풍기는 감자에서 새싹, 새 생명의 꼭지가 나오고, 그것이 풍성한 한 뙈기의 감자밭을 이뤄 가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출발점이 거기서부터인 것이다.
시
등록일 2013.06.18
게재일 201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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