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목요일 이른 아침. 포항 날씨는 태풍의 끝자락을 타듯 드센 바람이 잔뜩 찌푸린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일찍 숙소를 나선 나는 효자동 대중목욕탕으로 걸어갔다. 내가 옷장에 열쇠를 꽂았을 때, 목욕 후 옷을 입고 평상에 걸터앉은 두 노인이 `박태준`을 화제에 올렸다. 키 큰 노인이 보통 체구의 노인을 형님이라 불렀는데, 얼핏 던진 곁눈질에도 팔순을 바라볼 두 노인은 그러니까 `늙은 포철-맨`이었다. “형님, 홋카이도 무로랑제철소 연수 시절이었는데요, 하루는 박태준 사장님이 와서 저녁에 우리 연수생들을 식당에 모았습니다.” 나는 얇은 잠바만 벗어 옷장 속에 걸어두고는 일부러 꾸물대고 있었다. 내놓고 엿듣기가 민망해서 잔꾀를 부린 것이었다. 키 큰 노인이 이야기를 이었다. “포철로
1973년 7월 3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큼직한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포항종합제철준공`을 경축하는 것이었다. 일제식민지 배상금 일부를 들여서 연산 조강 103만t에 불과한 `포철 1기`를 준공했지만, 그날은 온 나라가 들썩인 경축일이었다. 모든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라 했다. 그 41주년을 맞은 2014년 7월 나는 조선일보의 프리미엄조선에 연재를 시작했다. 매주 2회쯤 실어서 70회를 넘었으니 `포철 준공` 42주년 즈음에 연재를 마치면서 책으로 나올 것 같다. 그 글을 왜 쓰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궁금해 한다. 나는 개인적인 소박한 이유와 시대적인 중요한 이유를 품고 있다. 박태준, 철의 사나이는 2011년 12월 13일 흙으
한 남성 작가가 초저녁에 전화를 받는다. “오늘 밤에 커피 한 잔 주실 수 있나요?” 여성이다. 굉장한 여성, 독일 총리 메르켈이다. 이윽고 작가와 총리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총리가 묻고 작가는 답한다. 토의도 이뤄진다.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간다. 작가의 행운인가, 메르켈의 행운인가? 후자다. 풍부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퇴근 후 해당 지식인을 찾아가는 메르켈의 행운은 독일의 기운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포항시장 이강덕의 행운은 선거준비 기간이 아주 짧았던 것이다. 석 달? 두 달? 십여 년을 준비해온 아무개가 감옥 가는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시장이 못 되었다는 뒷말도 남았다. 하기야 그 준비라는 것이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공부하고 미래를 통찰하는 노력이 아니라, 공천권을 거머쥔 국
`진정한 소설`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본 적 없는 인간들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진정한 소설`이 사회체제나 권력동네의 깊숙한 어딘가에 암세포 덩어리처럼 발육하는 `악의 실체`를 어떻게 밝혀내는가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인간들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진정한 소설`이 평범한 시민의 술자리나 수다자리에 올라온 굉장한 화젯거리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피사체처럼 찍어내는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권력동네에는 부지기수로 많다. 물론 그러한 인간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도 많은데,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진정한 소설`에 대하여 전혀 몰라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래서 더 편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들 모두는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신이 모종의 흉계나 음모에
대체로 우리는 어떤 일화를 통해 그 주인공의 사람 됨됨이를 짐작한다. 이때 `사람 됨됨이`란 그의 향기와 고뇌와 신념을 아우르는 말이니 `영혼`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지난 10월초에 발간된 계간 문학지 `ASIA` 제34호에서 나는 중국 주석 시진핑(習近平)의 사람 됨됨이, 곧 그의 영혼을 짐작케 해주는 일화와 만났다. 중국 서남민족대 한국어학과 교수 허련화가 `ASIA`에 보내온 통신 성격의 글부터 옮겨놓는다.
엊그제, 오랜만에 남북군사회담이 열렸다. 군사회담은 우리 정부가 이달 30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갖자고 제안한 남북고위급회담의 사전 정지작업일 거라는 시각이 유력하더니 어제는 평양 2인자 황병서의 `긴급 단독 회담` 소식이 알려졌다. 부디 남북고위급회담이 정례화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늘 아침, 문득 나는 평양에서 사귄 그 아우를 그리워한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2004년 여름인가 2005년 여름인가 냉큼 떠오르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 흘러갔다. 그해 여름에 평양, 삼지연, 백두산 천지, 묘향산에서 열린 5박6일 민족문학작가대회. 나는 남측 작가단 3조 심부름꾼(조장)이었다. 그때 3조 버스 뒷자리에는 북한의 깡마른 남성이 앉았다. 성은 김(), 김일성대학 정치경제과 졸업, 삼십대 중반. 아마도
“밤늦게 죄송합니다. 오늘 이병석 의원께서 배포한 보도자료 보셨지요. 내년 남북구 심지어 울릉도 독도 예산까지 혼자 다한 것처럼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기재위에 있는 제가 허수아비입니까.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이런 식의 내년도 예산 보도자료 내면서 남구의 박 의원과 함께했다는 일언반구도 없이 정말 이건 아니네요. 어안이 벙벙합니다. 자료를 받아본 기자들이 오히려 박명재와 같이 했다고 고쳐 보도한다고 들었습니다.(중략) 누구보다 기재부 부총리 차관 예산실장 예산국장 과장 접촉하면서 가장 예산 확보에 애쓰는 사람이 저입니다. 그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색을 내고 싶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어 글 보냅니다. 정말 국회부의장까지 한 4선 의원으로 너무 하네요” 인용한 글은 지난 5일
요즘 한국에는 `적`인 듯 느껴지나 적이 아니어야 하고 적이 아니기도 한 상대가 최소 둘이다. 북한과 일본이다. 한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으며 상황을 두루 살펴볼 때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북한은 우리 겨레로서 평화통일의 파트너이니 궁극에는 사이좋은 형제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어느 면으로 따지든 서로 좋게 지내야하는 이웃나라이니 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 그러나 `박근혜 외교`에게 평양 정권은 현실적으로 적과 다름없어 보이고 도쿄 정권은 정서적으로 적과 다름없어 보인다. `박근혜 외교`는 아마도 `원칙`이 제일 장점일 것이다. 특히 그것은 `개성공단 정상화 힘겨루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발리 APEC정상회의 때 아베를 외면한 것도 국민정서상 괜찮은 효
염천 무더위에 북한 정권은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대는 재미에 빠진 듯하다. 그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평양의 누군가가 `6자회담? 좋아하네`라며 비웃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그럴 만도 하다. 미국과 중국이 마치 먼지를 덮어쓴 게임도구를 가끔 건드려보듯이 `6자회담 재개`를 `편리한 외교적 수사(修辭)`로 써먹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6자회담이 언제부터인가 있으나마나 `국제회담`으로 전락했다고 여긴다. 6자회담은 그 명칭에 명시된 목적부터가 틀려먹은 것이라는 내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다자(多者)회담, 이것이 이른바 6자회담이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의 차관급이 실무대표로 참여한다.
국가미래전략에서 남북관계의 최고 전략은 무엇인가?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통일대박론`에 담겼을 것이다. 통일은 대박이다. 그러나 `전쟁통일`은 쪽박이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시장경제의 평화통일`이 대박이다. 그 대박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 `남북관계의 최고 전략`이 나온다. 올해 5월에 포항공과대학교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가 저명한 교수들을 대상으로 `미래전략연구 주제선정의 우선순위`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미래사회의 윤리, 21세기 동북아 공존공영의 리더십 등 20개 주제가 넘었는데 최우선에 뽑힌 것이 `북한의 개방체제 연착륙 방안 연구`였다. 제안자로서 나는 지식사회의 폭넓은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남북관계는 세계사에 유례없이 특수하고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포항시는 세금 3천만원의 포항소재문학상을 폐지해야 옳다. 공모를 주관해본 나는 벌써 3년 전 `폐지와 대안`을 포항시에 제의했다. 대안은 그 예산으로 한흑구문학상을 제정하자는 것. 포항시의 반응이 좋았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새 시장이 취임하고 새 의회가 구성될 지금이 다시 공론할 적기다. 왜 `폐지`해야 하는가? 포항사랑 선양과 포항스토리텔링 찾기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뛰어난 작품이 응모되지 않았다. 특히 단편소설에는 여태껏 하나도 없었다. 수준 낮은 응모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나마 수준을 좀 갖춘 것들은 대체로 `상금 사냥꾼` 냄새를 물씬 풍겼다. 상금도 터무니없이 많아졌다. 어떤 문학인의 한심한 아이디어였을까? 지난해 제5회에는 갑자기 `대상 1천만원`이 생겼다. 시, 단편소설
다시 지방선거를 잘 마친 대한민국은 세계선거관리협의회(A-WEB, 2013년 창립) 초대 의장국이다. 투표마감 직후부터 거의 완벽하게 집계하는 전자개표기, 이것이 그 영광의 힘이다.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도 대한민국은 167개국 중 20위를 차지해 `완전민주주의`에 들었다. 일본(23위), 대만(35위)보다 앞섰다.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때는 1995년이었다. 박정희 통치 18년 동안에 마치 역사의 동일한 무대에서 공존할 수 없는 모순관계처럼 극렬히 상충했던 산업화와 민주화가 실상은 상보(相補)관계였다는 사실이 그때 드디어 세계적 안목에서 인정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인정`이 아니었다는
1933년 독일 총선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은 제1당으로 등극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수상에 임명했다. 많은 유럽인이 문제의 콧수염 남자를 주목했다. “히틀러가 독일 지도자가 됐으니 머잖아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평화를 역설했다. “평화 없이는 독일이 살아갈 수 없다” 프랑스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평화를 원하는 유럽에서 베르사유조약이 독일의 목을 죄고 있으니 평화를 지켜야 하는 거지” 베르사유조약이 독일의 목을 죄고 있다는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난 뒤 1919년 베르사유궁전에서 태어난 그것은 `평화조약`이면서 독일을 꽁꽁 조여 매는 사슬이었다. 전쟁배상, 군대제한, 영토축소, 해외식민지 포기 등을 담고 있었다. `전쟁 배상금`은
생존의 기본조건은 폭력이다. 동물의 세계가 그렇다. `먹이`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먹이를 구하는 일, 이것은 반드시 타자(他者)에 대한 폭력을 수반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다. 호랑이는 토끼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독수리는 들쥐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토끼는 하다못해 토끼풀이라도 뜯어먹어야 한다. 들쥐는 감자라도 갉아먹어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존하기 위해 짐승이라는 타자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해야만 한다. 제아무리 채식주의자라도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책이 없다. 식물의 목숨이라도 앗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짐승과 인간은 다르다. 생존을 위한 폭력 행사에 있어서 짐승이 인간보다 훨씬 더 윤리적이라는
2010년 1월27일 저녁, 베트남 하노이의 하노이대우호텔. 내가 쓴 평전 `박태준`의 베트남어판 `철의 사나이 박태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베트남 정관계, 재계, 학계의 실력자들과 주베트남 한국대사를 비롯한 현지 한국인들이 대거 가득 모였다. 나는 순차통역의 `저자 인사`를 이렇게 했다. “한국에서는 제법 유명한 말인데, 저는`58개띠`입니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지요. 고향 마을은 바로 포스코의 포항제철소가 들어선 곳입니다. 그 마을을 열 살 때 떠나야 했습니다. 포스코 때문이었지요. 그때 어른들은 스스로를 `철거민`이라 불렀습니다. 그 말은 고향을 상실하는 쓸쓸함과 뿔뿔이 흩어지는 서러움을 담았습니다. 원망과 저항의 감정도 묻었을 겁니다. 마을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였을 고아원이 있었습
대학 3년(1979), 나는 혼자서 한강으로 나가곤 했다. 술을 마시거나 강가를 따라 걸으며 시를 쓰는 청춘의 한 절기가 비틀비틀 지나가고 있었다. 한번은 오지게 오줌을 갈기고 `방뇨`란 시를 썼다. “해맑은 가을 한낮/한강에 오줌을 갈기노니/일 주일 뒤 내 생일 아침/하숙집 식탁에 오를 숭늉이어/제발 내 오줌이길 비노라/아니면 오줌이어/목쉬고 캄캄한 강물의 노래에 스몄다가/저 노래들이 먼 바다에 모여/기어이/검은 바위로 솟아오를 때/새똥에 섞여온/풀씨 한 톨 뿌리 내릴/옥토 한 줌을 일구어다오” 며칠 뒤에는 광화문에서 엉망으로 취했다. 길거리 고성방가와 방뇨…. 파출소에 끌려갔다. 취중기세는 더 부풀었다. 유신독재를 비방했다. “오, 묘한 액체여, 기고만장한 허세여, 비겁하고 남루한 용기여, 그러나
“일본은 현재 황혼이 아니라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개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득권으로 단단하게 굳은 바위를 뚫는 강력한 드릴 역할을 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이 당당한 목소리는 올해 1월23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행한 기조연설에 포함돼 있었다. 아베는 일본의 새로운 새벽을 열고 있는가, 일본의 더 어두운 황혼을 불러들이고 있는가? 아베가 `기득권의 바위를 뚫는 강력한 드릴`이 되겠다는 것은 일본 경제시스템을 확실히 개혁하겠으니 세계 자본가들은 주저 없이 일본에 투자하라는 유혹이었다. 실제로 전력시장 자유화, 지주회사 체제의 대규모 의료기관 설립, 민간 연구기관의 줄기세포 연구 지원, 농작물(쌀) 정책의 시장화, 환
설밑에 다보스 포럼이 열렸다. `1% 세계인 2천500명`이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 아베 총리가 연설을 했다. 누가 더 잘했을까 따위는 부질없는 궁금증이다. 자국(自國)의 경제정책 홍보에 열중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원초적 문제를 그 화려한 무대에 올려놓은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인간은 부를 창조해야 하지만 부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 된다.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 평등에 대한 요구는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하며, 인류 최상의 비전이다. 더 평등한 분배, 더 나은 고용과 복지를 위한 결의, 체제와 과정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어디서 왔는가? 교황의 메시지에 답이 있다. `부(富)의 창조`에서 왔다. 인간사회에서 부를 창조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과 제도가
박근혜 정부의 특별 심벌은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정상이란 잘못된 관행과 잘못된 시스템이다. 잘못된 관행의 첫 자리를 부정부패가 차지한다. 잘못된 시스템이 그것을 감추고 부추긴다. 부패척결 없이 정상화는 없다. 부패척결은 정상화의 강력한 동력이다. 세계의 모든 정상인을 경악시킨 `한국의 원전 비리`가 웅변한 사실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면서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정치적 행위를 흔히 `개혁`이라 부른다. 이 간편한 말을 왜 버렸을까. 말이 주는 피로감을 줄여 보려는 아이디어가 조금 시적(詩的)인 작명을 낳았을 것이다. 1987년 이래 모든 정권이 한국인의 귀에 대못처럼 박아준 말이 개혁이다. 하지만 실망감이나 배반감이 귓병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도 부패척결을 개혁의 강력한 동력으로 활용한다
라틴 다리(Latin Bridge)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두 이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리적 거리도 아주 멀다. 라틴 다리는 발칸반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있고, 중국명이 괄호 속에 따라붙는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에 있다. 그러나 2014년은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라는 사실이 두 이름에게 새해의 짝짓기를 시키고 있다. 물론 그것은 동북아의 위험한 전선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 100년 전 라틴 다리에서 일어났던 `필연을 위한 우연`이 올해 동중국해의 바위덩어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이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가? 20세기 벽두,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를 먹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1908년 중부유럽 절대강자 오스트리아 제국이 보스니아를 무력으로 합병해 버렸다. 세르비아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