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알고 싶다면 어디부터 가야 할까?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죽도시장은 단연 앞 순위에 놓인다. 그렇다. 죽도시장을 모르고서야 포항을 안다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어물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문어와 날랜 칼 솜씨로 생선을 손질하는 아낙, “잘 오소, 어서 사이소, 싱싱한 오징어가 좋니더” 외치는 상인의 구성진 목소리를 접해 보고, 건어물상, 청과상, 약재상, 떡집 등을 느긋한 걸음으로 슬렁슬렁 둘러본 후에 수제비 골목 좌판에 앉아 낯선 사람과 어깨를 부대끼며 뜨거운 국물 후후 불어가며 4천원짜리 수제비나 칼수제비 한 그
“복술은 보잘 것 없는 무리이면서 감히 황당한 잡술을 품어 주문을 지어내고 요망한 말로 선동을 했다. 하늘을 위한다는 설로 비록 저 양학을 배척한다 하지마는 도리어 사학(邪學)을 본떴으며, 이른바 포덕문이라는 것은 겉으로 거짓을 꾸미고, 몰래 화를 일으킬 하는 마음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다. 주문과 약, 그리고 칼춤은 평화시 난을 꾸미려 하고 은밀하게 당을 모으고자 하는 짓이다.”이 글은 ‘일성록’에 실려 있는 경상감사 서헌순이 올린 장계(狀啓)의 일부이다. 장계
움베르트 에코는 문학 강의에서 상징은 텍스트에 의해 창출되는 의미 효과가 크며, 그렇다면 어떤 이미지나 단어, 대상이라도 상징 가치를 띨 수 있다고 했다. 호미곶은 원래 모양새가 말갈기를 닮았다고 해서 장기곶(長串)으로 불리다가 2001년 12월 이름을 바꾸었다. 한반도 최동단의 이곳 지명이 호미곶으로 바뀌면서 한반도의 상징은 완성되었다. 조선 시대 풍수지리학의 대가였던 격암(格庵) 남사고는 한반도 모양새를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이라 했다.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 호미곶은 호랑이의 꼬리에 비유하며 이곳을 천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구룡포는 장기반도의 동쪽에 해당하는 동해안 최대 어항이다. 어선들이 러시아 수역까지 조업에 나서는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청어·방어·오징어·대게 등 어자원이 풍부하고 성게·미역·전복 등 신선하고 질 좋은 해산물이 모이는 곳이다. 밤이면 오징어배의 집어등 불빛이 밤바다를 수놓은 곳, 새벽이면 어판장에 대게, 홍게가 희망을 쏟아내는 곳, 겨울철 포항의 대표 특산물 과메기로 유명한 곳, 해안 절경을 따라 바다와 바람의 이야기가 익어가는 곳, 청보리와 해국, 유채와 억새가 피어 절경이 펼쳐지는 곳, 많은 해녀들이 물
장기읍성 동문까지 승용차의 왕래는 비교적 자유롭다. 동문에 올라서면 저 위로 산 능선에서 흘러내린 성곽이 마치 꾸물거리는 뱀의 몸통처럼 아래쪽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 같다. 이곳에 유배자들을 관리하는 현청이 있었다. 현청의 동문에는 조해루(朝海樓)란 누각이 있었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조선 십경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성곽 위에 배일대(拜日臺)라 적힌 바위가 동쪽 바다를 보고 앉아 있다. 장기 현감이 매년 정월 초하룻날 조정의 임금을 대신해서 해맞이했다고 전해오는 유물이다. 다산 정약용도 이곳에서 ‘동
청림(靑林)은 도구, 구룡포로 가는 바닷길의 초입이자 포항공항으로 가는 하늘 길의 관문이다. 해병대 북문을 지나 조금만 속도를 내면 도구와 임곡을 가르는 갈림길에 이르고, 용무가 없다면 굳이 멈춰야 할 이유 없이 통과하게 되는 마을이다. 이곳에 소박한 변화를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내어 찾아오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푸른 숲(靑林) 사이로 해와 달(日月)이 뜨는 아름다운 고장. 지명 유래를 통해 청림동을 정의하자면 이런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포은 정몽주의 시 ‘북유몰월(北有沒月) 형산(形山) 동망개월(東望開月) 형
도시는 성장하는 반면 쇠락한다. 생성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소멸되기도 하는 것. 도시화 과정에서 공간의 권력 변화는 중심에서 교외로 급속히 이동되고 재편되었다.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는 그 과정을 답습한 곳이다. 2006년 포항시청사가 대잠동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의 상권이 동시에 이전되었고, 남은 상권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도심 기능이 사라지면서 원도심은 구도심이 되었다. 사람이 떠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의 가치를 묵혀둔 공간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공간의 소멸은 존재의 부재 그 이상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잊을 수
살다보면 나침반이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아닐 때가 있고 잘못 간다고 여겼던 이들이 뒤늦게 보면 제대로 가고 있다. 갈팡질팡할 것 없이 나침반만 보고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평온할까. 문득 삶이 흔들린다 싶을 때 바다로 방향키를 잡아보는 건 어떨까. 오랫동안 천천히 걸어보면 더 좋겠다. 바다라는 푸른 나침반과 동행하는 해파랑길이라면 더더욱 좋겠다.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770㎞ 길이다. 국내 최장의 트레킹 코스로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슷한 거리다. 모두 50개 코스며 영남과
오래전 기차가 달리던 철길이 이제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가 되었다. 열차를 타고 이동했던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 우현동에서 효자동까지 꽃, 나무, 숲, 물, 조형물이 어우러진 ‘철길숲(Forail)’은 포항의 새로운 명소다.침체 된 원도심에 녹색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들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고 있는 철길숲(Forail)은 숲(Forest)과 철길(Rail)의 합성어다. 약 100년간 동해남부선을 달리던 기차가 멈추고 소임을 다한 철로가 숲과 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우현동에서 옛 포항역(서산터널)까지 1차 구간
산과 강, 바다를 두루 품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태백 구봉산에서 솟구친 낙동정맥이 청송 주왕산을 거쳐 남하하다가 동해안 쪽으로 뻗은 산의 흐름이 은은히 이어지고,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형산강이 녹두빛 강물을 뒤척이고 있으며, 밋밋하게 전개되던 동쪽 해안선이 크게 요동쳐 호랑이 꼬리의 지세를 형성하면서 영일만을 안고 있는 곳이 포항이다.산을 두고 얘기하자면, 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내연산과 학이 금세라도 큰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갈 듯한 비학산이 북쪽에 솟아 있고, 원효와 자장, 혜공 등 신라
포항을 포항답게 하는 특징적인 환경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영일만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일만의 물줄기가 지나가며 만들어진 동빈내항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영일만과 동빈내항은 지역을 이루는 한 부분임을 넘어 지역의 본질을 규정하는 어떤 ‘틀’과 같다. 그리고 이 틀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이 독특함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영일만 일대는 맑고 깊고도 차가운 바닷물을 육지 깊숙이 머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와 육지의 정수가 가장 긴밀하게 만나는 곳으로, 그로부터 모든 신비와 독특함이 나타나고
長郊細雨草離離(장교세우초리리) 가는 빗속 너른 들의 풀은 무성한데白裌黃冠次第隨(백겹황관차제수) 흰 소매, 황관으로 차례로 걸어가네節屆曾翁言志日(절계증옹언지일) 찾아온 절기는 증옹이 뜻을 말한 날이고風輕程氏過川時(풍경정씨과천시) 가벼운 바람은 정씨가 시내 지나던 때네要看大海千流會(요간대해천류회) 큰 바다로 여러 물길 모이는 걸 보면서兼取兄山萬景奇(겸취형산만경기) 형산의 온갖 절경을 함께 찾아보네意思超然塵累外(의사초연진루외) 초연해진 생각으로 속세를 벗어나三春行樂互題詩(삼춘행악호제시) 무르익은 봄을 즐기며 서로 시를 짓네 묵암(默庵)
도시의 미래를 준비하며 발전의 동력을 문화예술에서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 산업 생산에서 인문학과 문화예술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가 정착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만들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지자체 간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이를 문화예술로 녹여내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포항도 새 활로를 열기 위해 시 차원에서 다양
영일만을 특징짓는 문화의 시원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장기면 산서 새터마을 같은 구석기 유적이나 신석기시대 유물이 나온 곳도 있지만, 그것을 지역의 특성으로 볼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墓制)의 하나이다. 유럽에서부터 인도, 인도차이나반도와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6만 기 정도가 있고, 그중 약 4만 기가 한반도에 분포한다. 그런 까닭에 고인돌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 대부분은 서해안을 따라 분포하고 있
지구는 무수한 별 중에 가장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다. 식물이 태초의 불모지에 산소를 공급한 것은 물론,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것의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식물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은 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류의 정신문화도 식물과 연관된 것이 너무도 많다. 1천년 이상을 살아가는 나무의 생명력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온갖 풍파를 겪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낸 노거수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노거수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큰 나무가 아니라 마을의 상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