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외동의 괘릉초등학교 운동장 양지바른 곳에 빗돌 하나가 서있다. 우뚝 선 돌엔 ‘아산 장씨 홍모여사 시혜 불망비’라는 비명이 선명하다. 정문 노거수 아래 잡초와 덤불에 묻혀 있던 것을 단장해 현재 장소로 옮겼다. 뒷면 비석문 내용의 일부를 옮겨본다. ‘…. 어린이가 멀고 위험한 곳을 눈비와 추위에도 지칠 줄 모르고 오늘도 늦을세라 종종 걸음 치면서 학교에 다니던 그 딱한 실정을 뼈저리게 느끼시고 교사 일동과 부지를 기꺼이 희사하시어….’ 학교 부지와 본관동을 희사한 장홍모 여사의 덕을 기려 1965년에 주민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염농산(廉嚨山·1859~1946) 여사는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애국 사회운동가이다.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인 농산은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한학과 시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이태백의 시에 등장하는 앵무와 농산을 이름으로 삼은 것만 봐도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앵무 여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191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의연 활동을 한 여성이 앵무였다. 기생은 돈을 좇을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먼저 돌
여성의 삶이 점점 주목받는 사회이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나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며 제 몫을 다해온 여성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우리 지역을 살다간 유·무명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 소회를 풀어가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연구자들이 닦아놓은 연대기식 여성사가 아니라 그 숨결을 찾아나서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김살로메 작가가 들려줄 예정이다. 여성들이 걸어간 길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주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완벽한 객관성이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