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로 다가오던 봄날이 비의 리듬까지 더해져 생동감을 부추기고 있다. 남도의 매화꽃을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꽃의 샛노란 반김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희끗희끗 조금씩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의 망울을 일제히 일깨우듯 봄비가 내리니, 멀지 않아 촉촉해진 대지에서는 한바탕 자연만물의 춤판이나 소리판이 어지간하게 열릴 것만 같은 모양새다. 흐르는 꽃향기 따라 벌, 나비가 날아들고 수시로 지즐대는 새소리에 산골의 여울물 소리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뭔가 심상찮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지 않을까 싶다.그렇게 오는 봄날은 왈츠풍의 리듬으
봄 마중이 한창이다. 산수유와 매화나무는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남도에선 목련꽃의 하얀 자태가 이른 봄의 전령(傳令)인 듯 서서히 피어나며 멀지 않은 봄날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만물이 다가오는 봄날을 채비하고 있는데, 아직도 겨울잠에서 못 깨어난 듯 동토의 계절엔 하얀 눈이 날리고 수십 차례 내린 눈의 층계가 만년설 마냥 육중하게 버티고 있다면? 남극·북극이면 극지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 그러한 곳이 있다면 의아심과 함께 호기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할 것이다.그렇게 떠난 곳이 일본의
약간 움츠렸던 봄이 다시 기지개를 켜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생동의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 양지 바른 언덕엔 새파란 풀잎들이 바람에 하느작거리고, 남도에선 홍매, 청매의 꽃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히는 듯하다. 산수유 꽃망울이 샛노랗게 피어나며 오는 봄을 반기고, 물오른 가지마다 봉긋한 움과 싹이 도드라져 새봄의 향연에 망울을 터트릴 태세다. 무덤덤하던 무채색의 대지에 노랑이며 빨강, 초록색의 봄빛이 조금씩 아른거리며 이른바 계절의 붓질이 시작되고 있다.산과 들의 채색으로 오는 봄과 함께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됐다.이 맘 때가 되면
이른 봄 마중을 하듯이 새벽같이 남도로 향했다.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이라 이런저런 봄 채비로 바빠도, 통영에서 불어오는 봄빛 바람을 쐬니 부드럽고 여유롭기만 했다. 기온이 살짝 올라가는 틈을 타 미세먼지가 복병처럼 도사려 안경에 서린 김 마냥 시야를 희뿌옇게 하는가 싶었었는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갈수록 해풍의 희석 때문인지 수평선과 섬들의 전망은 대체로 선명한 편이었다.갈매기들의 어설픈 외침이 환호처럼 들리고 바다의 흰 포말이 배웅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달려 접안한 곳은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은 섬, 연화도(蓮花島)였다
봄이 오는 길목에 눈을 맞으며 설경 속을 거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욱이 고향 근처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수십년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을지도 모른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이 어릴 적의 추억을 소환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언어의 몸짓으로, 무언의 함성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근래 봄비가 잦아들어 벌써 봄인가 싶었었는데 마치 겨울을 환송이라도 하듯 춘설이 나부끼니, 마음은 솜털 마냥 포근했었다고나 할까?짧게나마 내린 눈과 잎샘추위가 잰걸음으로 오던 봄걸음을 주춤하게 한다. 벌써 산골짝에서는 복수초가
산골 어디메쯤 매화향기 날리는 마을을 지나 봄맞이 산행에 나섰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올라가서 고지대에 자리잡은 묘각사(妙覺寺)에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14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대사와 동해 용왕의 설화가 서린 묘각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곳으로, 의상은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한다. 그러고 보니 산 아래는 용화동·삼매동·정각동 등 불국정토를 나타내는 마을 이름이 많아선지 산골 전체를 절골이라 부르기도 한다.영천시 자양면과 화북면 경계에 있는 기룡산 중턱의 묘각사를 창건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평범한 일상이다. 모처럼 가족 친지를 만나 새해 인사를 나누고 차례를 지내면서 조상 섬기는 마음을 되새기는가 하면,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의 소망과 덕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정겹기만 하다. 시대적인 상황과 모바일 환경의 변화로 온라인 성묘와 원격 세배, 원격 세뱃돈, 온라인 연하장 등 설날 풍속도가 다소 달라지긴 했어도 설날 아침 떡국을 먹는 풍속은 그대로인 것 같다. 설날에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는 말이 생겨나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한다.새해 첫날이나 설날이면 떡국을 먹
입춘에 즈음해 며칠째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메마른 대지에 비나 눈이 내리니 멀지 않아 봄날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듯이, 촉촉하게 적셔진 땅 속에서는 인동의 뿌리가 꿈틀대며 새 생명의 물을 긷고 있을 듯하다. 길게만 여겨졌던 육중한 겨울날이 가녀린 비에 밀려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지만, 결코 만만하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꽃이 피고 잎이 돋는 걸 막으며 막바지 추위로 시샘도 할 것이다. 그래서 2월을 시샘달이라고 했던가.벌써 2월이라 이른 봄의 절기가 시작됐다. 숫자나 시
누구에게나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다. 어릴 적 티없는 순박함에 젖어 잔뼈가 굵어지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무한한 꿈을 키워오던 곳, 다름아닌 고향이다. 철이 들어 학업이나 부모님의 생계,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고향을 떠나서 살게 돼도 늘 그립고 돌아가고픈 곳이 고향이 아닐까 싶다. 하긴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물 속의 물고기도 옛 못을 그리워하는데(羈鳥返舊林 池魚思故淵), 하물며 정과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오죽하랴. 그렇듯이 고향은 굳이 귀소본능이 아닐지라도 늘 어머님의 품처럼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오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 어쩌면 사람의 일생은 전 과정이 배움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며, 학교엘 가서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며 예의범절을 알고 공중도덕을 지키게 된다.직장에서 일을 배우거나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배우면서 사랑을 쌓아 가기도 하고 세상살이의 풍파를 겪으며 지혜를 더해 가기도 한다. 이렇듯이 사람은 태어나서 일생을 마감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기에 평생교육 또는 평생학습이라 하는가 하면, 배움에는 끝이 없고(學無止境) 배움의 바다는 가없다(學海無邊)
새해 들어 첫 산행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월 1회 산행계획을 세웠었지만 점차 바빠지는 일상 속에 번번이 못지켜져서 여간 아쉽지가 않았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말 건강도 챙길 겸 산과의 교감을 통해 좀 더 새롭게 거듭나자는 나와의 약속을 다지며 첫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산은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반기고 품어주는데 무엇에 쫓기고 발목이 잡혀 가까운 산조차 즐겨 찾지 못했던 것일까? 핑계 같은 변명이지만 산행에 대한 나의 의지가 약해졌거나 계획실행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마침 오래 전부터 뜸하게 참여하던 모 산악회에
새해가 되면 으레 목표나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이나 각오를 하게 된다.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선물 같은 나날이니,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신년설계와 희망을 꿈꾸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이러한 새해 소망과 목표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기준, 관점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과 행복, 합격이나 취업, 안전과 무사고, 장사나 사업, 복권이나 재물 등에 대한 행운이나 대박, 이득이나 성취를 간절히 바라며 기원하고 염원하기도 한다.이렇게 새해를 맞아 새롭게 마음먹으며 목표를 정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삶이
용의 신령스러움 때문인지 2024년 갑진년의 첫 해돋이는 베일에 가려졌다. 부산이나 강릉 등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새해의 첫 아침해를 볼 수 있었지만, 영일만과 호미곶 인근 지역에서는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대부분 해맞이를 할 수 없었다. 일출명소에서는 해맞이객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며 부산한 모습들이었으나, 끝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게 되자 서둘러 발길을 돌리거나 아쉬워하는 눈빛이 역력해졌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새해 첫날에 뜨는 해를 맞이하는 건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숱한 희비와 애환의 사연으로 점철된 2023년이 서서히 세월의 바톤을 넘겨주려 하고 있다. 새해가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와있으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여겨짐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일까?개인별로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어쩌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지나간 날들은 한순간처럼 짧게만 여겨지고 다가올 날들은 녹록하지 않으니, 지난 일 탓하지 말고 오는 일을 쫓는 것(往事不諫 來者可追)이 중요할 듯싶다.저물고 마무리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서녘을
매서운 기세로 동장군이 엄습한다. 주춤하던 추위가 동지(冬至)에 즈음해 본때를 보이기라도 하듯 바짝 수은주를 내리고 있다. 옷깃을 파고드는 강추위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온몸을 두텁게 감싸게 하고, 표연히 잎새를 떨군 겨울나무들은 간간이 바람피리 소리를 내며 파리해는 듯하다. 연말이 다가오고 날씨마저 추워지니 움츠러드는 건 나무들뿐만 아니다. 홀몸 어르신들이나 저소득 취약계층, 불우한 이웃 등이 맞이하는 세모의 한파는 해마다 을씨년스럽고 가슴저리기만 할 것이다.그러나 12월이 시작되면서 이웃사랑의 자선냄비가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취약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송년모임도 많아지고 소소한 만남도 잦아들게 된다. 대설 지난 겨울날씨답잖게 며칠간 봄날같이 포근하다가 하룻밤새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흔들어댄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분위기에 가뜩이나 뒤숭숭해지는 마음인데, 날씨마저 어설프고 변덕을 부리니 거리엔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이 다급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씨를 핑계삼아(?) 일찌감치 식당이나 주점에 눌러앉아 차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며 더 오래 송년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회인,
벌써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이다.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이제 마지막 달력 한 장만 남긴 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숱한 사연과 애환의 편린이 아스라히 부침하며 또 한 세월의 매듭을 짓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연초에 계획하고 목표로 했던 일들의 성취 여부와 공과를 가늠하며 안도하거나 착잡함에 젖어 들게 된다. 또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을 준비와 새로운 희망, 기대 따위로 다소 설레여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연말은 이래저래 분주하면서도 차분한 나날
계절의 끝자락에 감동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제법 쌀쌀해진 날씨 속에, 지난 주 포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린 이색적인 뮤지컬 공연을 보고 극히 일부겠지만 가슴 훈훈한 예술적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구룡포지역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숨겨진 얘기가 대사와 노래, 율동과 몸동작 등으로 어우러져 파도의 여울로 굽이치고 고래의 울음으로 퍼지는 듯했다. 포구(浦口)의 아늑함과 일제의 잔재인 적산가옥이 있는 구룡포지역을 재조명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투영한 역
며칠 간 바싹 추워진 날씨 탓에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눈이 귀한 부산에선 11월에 첫눈이 내리고 전국 곳곳에 얼음이 얼면서 절기의 명분(?)을 찾기라도 하듯 세찬 강풍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있다. 단풍이 채 들지 못해 푸르뎅뎅한 잎새들은 화들짝 놀라며 돌풍에 시달리다가 떨어져 포도 위를 뒹굴고, 사람들은 두꺼운 옷차림에 종종걸음으로 흩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하나씩 정리하고 점검하며 겨울채비를 하는 미틈달의 오후 햇살이 갈수록 짧아지고만 있다.긴 목을 뽑아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는 가을을
바다는 늘 출렁이며 깨어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거칠게 철썪이고,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바다는 뭍을 향해 조근조근 속삭이듯이 찰랑대고 있다. 때로는 거센 너울로 짙푸른 근육을 보이며 포효하듯 흰 포말로 부서지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호수마냥 흰돛단배가 평온하게 떠가는 여울로 살랑거리기도 한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는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여 뭍에서 버려지는 온갖 쓰레기와 혼재물을 받아들이면서 삭힐 것은 삭히고 지울 것은 지우며 밀어낼 것은 밀어내고 있다. 자신을 낮추어 모든 강줄기와 하천을 받아들이기에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