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 지성사 펴냄, 허연 지음

지난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시단에 나와 1995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로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한다는 호평을 받았던 시인 허연(47·사진). 그는 13년 후 두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통해 도시 화이트칼라의 자조와 우울을 내비치며 독한 자기규정과 세계 포착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최근 문학과지성 시인선`내가 원하는 천사'로 다시 돌아온 허연은 삶의 허망하고 무기력한 면면을 담담히 응시하며, 완벽한 부정성의 세계를 증언함으로써 온전한 긍정의 가능성을 찾아 나간다. 우울한 도시의 아름답지 않은 천사를 그려내는 그의 거침없고 솔직한 말투가 읽는 이의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 마을에 바람이 심하다는 건, 또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밀밭의 밀대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언덕 위 백 년 넘은 나무 하나가 흔들리는 밀밭을 쳐다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김없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바람의 배경'부분

일상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 건조함 유지

허연의 시는 일상으로부터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 건조함을 유지한다. 마치 폐허를 스치는 바람처럼, 수백만 년에 걸쳐 별일 아닌 듯 있어왔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생의 `지독한 슬픔'. 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밀어내버리고 세계와 동화되지 못한 개인은 더욱더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고립되는 세계. 이 난무하는 폭력을 관통하는 바람은 풍문처럼 허연의 시를 부유하며 세계의 왜곡을 증언하고 고발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주문

겁내지 말라고

내가 다 기록해놨다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고

남자는 외치지만

여자는 죽어간다

신전은 세워지고 있지만 여자는 여전히 죽

어간다

죽어가는 여자보다

사랑을 잊지 않으려는 남자가

진화상으론 하수다”

 

-`신전에 날이 저문다' 부분

시인이 일상의 관찰과 그로 인한 속내를 진솔하게 펼쳐 보이는 이유는 어떤 삶을 반추하거나 기획하기보다는 잊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일이 하나의 삶을 값지게 이어가는 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황량한 사막에서 2천 년 전 흘렀던 강줄기를 더듬듯, 말의 무늬와 바람의 색깔과 차가운 새벽의 냄새를 기억하듯, 그의 시는 이미 없기 때문에 삶의 본질로 남을 수 있었던 것들을 찾아내고 불러온다.

“나의 소혹성에서 그런 날들은 다른 날과 같았다.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소혹성의 부족들은 부재를 통해 자신의 예외적 가치를 보여준다. 살아남은 부족들은 시간을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슬퍼진다. 어머니. 나의 슬픈 마다가스카르”

-`나의 마다가스카르 3' 부분

허연의 공화국은 이번 시집의 `마다가스카르' 연작에서 구체화된다. 아프리카 남동쪽의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는 수십 만 년 동안 대륙과 괴리되어 인간의 간섭 없이 자연스러운 진화를 겪은 공간이다. 훼손되지 않은 날것의 세계이자 영원히 고립된 공간인 마다가스카르. “긍정이나 희망이 우리를 배신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한 개인의 고독한 삶을 표상하는 이름인 것이다.

“그가 남긴 복제품들은 오늘도 이 장례 습관에 익숙해진다. 강력하고 조용한 저녁에 후회란 없다. 초원에서 죽음은 객관적이다. 세상이 몹시 좋았다고 짹짹대는 새들이 북회귀선을 날아간다.”

-`새들이 북회귀선을 날아간다' 부분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일상을 기계적으로 무기력하게 반복하는 현대인의 삶을 비관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듯 허연 시의 화자는 차라리 흠집이라도 새겨진, 세계와 불화하는 기억을 갈구한다. 이처럼 삶을 너무 오래 관찰한 이 화자들은 어느 시대에서든 개인의 생은 보편의 삶이 요구하는 규칙에 매끈하게 적응하기 불가능함을, 모든 생에는 부적응의 흠집이 새겨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풍문으로 실어 전한다. 조금은 서늘하지만 담담하고 조용한 이 바람이 도시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로 다가가기를 기대해본다.

“뭔가를 덮어놓은 두꺼운 비닐을 때리는 빗소리가 총소리처럼 뜨끔하다. 기억을 두들겨대는 소리에 홀려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빗속에 들어가 나무처럼 서 있다.

언제나 어깨가 가장 먼저 젖는다. 남들보다 좁아서 박복한 어깨가 비를 맞는다. 금서의 첫 장을 열듯, 빗방울 하나하나를 본다. 투명 구슬처럼 반짝이며 떨어지는 물방울의 마지막 순간을 본다. 자결하면서 쏟아지는 유리구슬. 핏방울이 튀듯 투명 구슬이 튄다.

마당 하나 가득 깨어진 구슬로 가득하다. 나는 여전히 깨어진 구슬 한가운데 서 있다. 구슬이 나를 때린다. 뼈로 들어서는 통증. 나는 뼈아프게 서 있는 나무다. 자라지 못하는 나무다”

- `자라지 않는 나무' 전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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