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복 여

그동안 잘 지냈구나 그동안 배불렀구나 계약기간이 끝나고 빛바랜 그물을 거둔다 외로움의 못으로 걸었던 초생달이며 거기 구름액자를 내리며, 그동안 즐거웠구나 내 공기밥이었던 날개야, 하루살이야 여전히 유리창에 미라를 기댄 여뀌야 그런데 내 신발 못 보았니

나무색 줄무늬, 그동안 까마득히 잊었던 서른살 신발

이제 보니 저기 창밑에 끈 떨어지고 찢어진

나도 몰래 세월이 얼마나 신고 다녔는지

밑창이 너덜너덜 구멍 뚫린 날들,

잔뜩 많아진 나를 꾸려놓았는데

밖은 온통 허공에

바늘바람 압정을 뿌려놓은 듯 낯선 별밭

날개와 하루살이가 천사거미의 공기밥이었다는 표현이 재밌다. 시인은 초생달과 구름액자와 여뀌를 친구삼아 살아온 천사거미에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 내밀한 통로를 걸으며 자기에게 빠져있던 자아를 차가움과 시련과 유혹이 많은 낯선 별밭으로 읽혀지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쓴 작품이라 여겨진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