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관찰·관계… 피사체의 온도를 설정하다
관심·관찰·관계… 피사체의 온도를 설정하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4.28 19:58
  • 게재일 2021.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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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열두번째 개인전 앞둔 사진작가 김훈
사진은 글과 그림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하는 사진작가 김훈.

찰나의 순간을 영원의 기록으로 남기는 게 사진 아닐까? 고교 시절 빠져든 사진의 매력을 잊지 못해 회갑을 맞은 올해까지 사진과 함께 울고 웃어온 사람이 있다. 바로 사진작가 김훈 씨.

그는 사진을 ‘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한다. 소설가가 소설이란 언어로, 화가가 그림이란 언어로 세상을 향해 발언한다면 사진가는 사진이란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김훈은 믿고 있다.

오는 30일 예천군청 갤러리에서 열릴 기획초대전 ‘관찰자의 독백’을 앞두고 있는 김훈을 지난주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날 그는 ‘사진’과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교시절 빠져든 사진의 매력 못잊어
30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공부 시작
동아일보 주최 국제사진살롱 수상 등
풍경·인물·시대상 담은 작품 다수
“제2의 고향 포항에 대한 기록 남겨
훗날 도시의 역사 자료가 됐으면…”

-고향은 어디이고, 사진을 공부한 과정은.

△1961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포항MBC에서 일하는 누나가 있던 포항으로 왔다. 고교 때 사진을 시작하긴 했다.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를 한 것은 30대가 넘어서다. 경주와 대구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다. 사진에 대한 얕은 인식을 공부하는 과정 중에 극복할 수 있었다. 진지하게 사진을 고민하는 내게 조언과 도움을 준 선생님들이 적지 않았다. 20대엔 사진과 무관한 회사에 다녔고, 신문사에서 광고 일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사진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사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입학한 후 특별활동 부서로 방송반을 택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학생들이 겪게 되는 학교 행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걸 내가 맡았다. 흑백사진으로 우리들의 고교 시절을 찍었다. 물리와 화학을 담당하던 방송반 지도교사에게 현상과 인화를 배웠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간 사진 작업을 하며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2005년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국제사진살롱에 작품을 냈다. 23개 나라 사진작가들이 참가했는데, 내 작품이 흑백 부문에서 골드 메달을 받았다. 포항 오천의 돼지우리에 갇힌 개 3마리를 찍어 포항 월포의 빨랫줄에 걸린 물고기 몇 마리를 포착한 사진과 합성했다. 그걸 만들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여러 구도로 나열해보고, 배치해보고 그랬다. 어느 순간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로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잊지 못할 작품이고, 스스로도 좋아하는 사진이다.

-자신이 보기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풍경과 인물 사진을 두루 찍어왔다. 작업을 하다보면 일종의 흐름이 있고 어느 순간 마음과 태도에 변화가 생긴다. 포항에 35년쯤 살다보니까 애정이 없을 수 없다. 포항 풍경에 대한 기록이자, 산업사회의 변천을 담은 ‘풍경주식회사’의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평론가들도 ‘풍경’과 ‘주식회사’라는 이질적인 단어가 결합된 사진들을 무척 흥미로워했다.

-사진이란 대체 뭔가.

△‘또 하나의 언어’가 아닐까.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듯 사진도 인간의 내부 심리를 표현하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강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하다. 다른 언어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 게 사진이다. 사진가들은 그 언어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을 조언한다면.

△‘3관’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위해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어지는 ‘관찰’ 역시 중요하다. 사진이 완성되면 그것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게 3관이다. 유형이건 무형이건 피사체의 온도를 설정하는 건 사진가의 몫이다. 사진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단순한 일상의 기록에서도 사진은 시작될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다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사진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1924~2019)를 좋아한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했다. 원래는 패션 사진 등을 찍었는데, 1950년대 구겐하임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을 주제로 2만8천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난 사진들이다. 사진이라는 도구로 우월성과 선진성을 자랑하던 미국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평론가들이 “악의를 가진 반미주의자”라고 혹평했고, 미국에서는 출판이 거부됐다. 하지만, 냉소적인 산업사회의 그늘과 어두움을 드러낸 그의 작품은 젊은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았고 긍정적 재평가도 이뤄졌다. 통상적 관념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었다는 차원에서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사진이란 ‘또 하나의 언어’가 아닐까.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듯 사진도 인간의 내부 심리를 표현하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진은 강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하다. 다른 언어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 게 사진이다. 사진가들은 그 언어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흑백사진엔 어떤 매력이 있나.

△사진을 시작할 때 처음 접한 게 흑백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먹으로 농담을 표현해 컬러사진 이상의 강렬함을 표현했다. 흑백사진은 은은한 맛이 있다. 또한 두고 볼수록 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전시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5년 포항시설관리공단의 지원으로 개인전 ‘또 하나의 인연’을 열었다. 6년 이상 베트남을 여러 차례 오가며 그곳 사람들과 풍경을 흑백사진으로 남겼다. 베트남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를 담아낸 전시회였기에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국제사진살롱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한 김훈의 사진.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국제사진살롱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한 김훈의 사진.

-당신이 사진의 주요한 소재로 삼는 건 뭔가.

△시작할 땐 주로 자연을 작품에 담았다. 이후 사진을 전공하게 되면서 소재와 주제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방법을 고심했다. 내 경우 풍경으로 시작했고, 인물로 갔다가 이후엔 시대상을 사진 속에 담고자 했다. 표현 기법을 생각하면서는 문화재와 유적에 천착하기도 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2000년은 디지털사진의 역사가 시작된 해다. 이후 촬영 방식이 다양화되고 장르간의 경계도 무너졌다. 아날로그 시대보다 표현 방법이 다채로워졌다. 한지에 사진을 출력하는 최근 내 스타일도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면 된다.

-사진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 한마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을 쉽게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럴 때는 책을 읽고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라. 그게 매너리즘에서 탈출하는 길이다. 사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예전의 사진 수업이 작품을 찍는 실기 위주였다면 지금은 인문학과 예술사, 디자인 공부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항상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게 좋은 사진을 얻는 비결이다.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은지.

△포항에서 오래 살았다. 제2의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생활해온 포항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 50만 인구가 모여 사는 이곳의 변화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려 한다. 이 작업이 훗날 포항이란 도시의 역사 자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인간, 어떤 사진작가로 기억되길 원하나.

△곧 열리는 예천에서의 전시회가 12번째 개인전이다. 인간애를 가지고 사진을 대했던 작가로 남고 싶다. 피사체를 접하다보면 유형이건 무형이건, 생명이 있건 없건 거기에 사진가의 인식이 담기게 된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따뜻한 세상을 보여준 작가, 언제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인간으로 살려고 노력 중이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업이 침체되고 있으며 전시회를 해도 관객들이 적다. 작품 발표의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꾸준히 작업을 이어감으로써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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