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인물로 남아야 한다는 뜻이다.

묘비명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짧은 문구를 묘비에 새긴 글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덤 앞 묘비에는 죽은 사람의 생전 공덕이 많이 새겨진다. 특히 서양의 경우 묘비명이라 해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미리 써놓거나 준비를 하는 관습이 있다. 촌철살인하는 내용도 많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전하는 인생 철학이나 교훈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소설가인 모파상은 남부럽지 않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으나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글을 남겼다.“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번역된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는 내용이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은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평소 생각을 묘비에 담았다.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는 말로 괴짜스님다운 글을 남겼다. 누구의 말이든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라 생각하면 심오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장례를 마친 정진석 추기경의 무덤 앞에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라는 묘비명이 새겨졌다.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을 사목 목표로 삼았던 정 추기경의 뜻을 기린 글이다. 바지 한 벌로 18년 입을 정도로 검소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장기와 가진 모든 것을 내주고 떠났다. 독선과 분열,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그가 남긴 나눔의 정신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