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국

뒷산에서 내려온 커다란 땅거미가

조금씩조금씩 잡아먹던 마당에서

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울던 집

할아버지가 장죽을 두드릴 때마다

아직 식민지의 먼지로 가득하던 집

그 반짝이던 155밀리 박격포 놋쇠 재떨이

전쟁이 뒷산 넘어간 뒤에도

형님은 빤스 고무줄에 돈을 꿰매 입고

논산훈련소로 가고

그래도 어머니는 땅을 장만해야 한다며

비 오는 날 죽을 쒀 먹으며

장독대나 자리 밑 어딘가에 돈을 감추었다

조선의 경제여

장으로 나가는 소를 보며

마주 보고 울던 성가족(聖家族)들

세월이 많은 나라를 허물고

또 새집을 짓는 동안

다시는 불 켜지지 않는 집 마당에서

긴 울음소리 하나

무너지는 집 한 채 오래 떠받치고 있다

시인은 집에 얽힌 서럽고 가슴 아픈 가족사 속에 따스하게 흐르는 사람의 정과 사랑을 들려주고 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기구한 생의 질곡이 담겨 있는 집, 지금은 낡아서 허물어지고 있는 집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무너지지 않고 오롯이 서 있는 집, 사람의 정이 따스하게 스민 집 한 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