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가 박근영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책에 대한 갈증이 소설 쓰게 해
운명의 여신이 운영하는 ‘마녀 카페’ 이야기, 민원인들 사연서도 영감 얻어
불가능 없는 판타지 공간 속에서 독자들에게 상상의 즐거움 주고 싶어요

박근영 작가.
박근영 작가.

작가 박근영.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 세계를 마음껏 넘나드는 소설, 판타지 소설 ‘마녀 카페’를 쓴 공무원이다. 사고가 정형화되지 않도록 상상 속에서 쉼 없이 순간을 창조한다는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고전부터 현대소설까지 탐독하다가 독일 작가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마침내 판타지라는 섬에 정박했다.

“상상 속에선 물리법칙을 따지지 않아도 돼요. 제 말이 곧 법칙이거든요.”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조한 세계를 시리즈로 엮어내어 C.S.루이스 같은 대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는 박 작가를 4일 만나 평범한 일반인에서 작가로 변신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문작가가 아닌데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는가.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책에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읽기 외에 책은 쓰거나 만들거나 둘 중 하나다. 만드는 건 분야도 천차만별이고 쉽지 않기 때문에 주로 쓰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데 어릴 때 소소하게 청소년소설 같은 것을 끄적여 본 적이 있던 터라 제 무의식에는 책 출판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출판평론가 한기호는 ‘우리 모두는 저자가 되어야 한다’에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쉼 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매일의 달콤함만을 만끽하며 살다간 특이점이 도래했을 때 추수감사절 아침의 칠면조와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며 급변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책을 쓰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제 마음 한 켠에 월급쟁이들의 근심,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책에 대한 갈증이 공존하고 있던 차에 마침 책을 써보자는 권유가 있어 쓴 것이 장편 소설 ‘마녀 카페’다.

-첫 책을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정한 이유가 있는가.

△제가 가장 쓰고 싶고,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소설이었다. 사람을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힘이 다른 장르와 소설이 차별화된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류는 저자의 말을 직접 독자에게 드러내지만 소설은 읽는 내내 서서히 내용이 스며들어 읽는 이의 생각을 묵직하게 흔들어 놓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간접적으로 주제를 알리고, 읽는 이의 해석이 덧대어져 세상에 나온 소설은 더 이상 작가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이것이 소설의 매력이며 제가 소설을 쓰고자 한 이유다.

-‘마녀 카페’는 어떤 책이며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

△‘마녀 카페’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리스신화 속 운명의 여신이 현신(現身)해서 우연히 가게에 들인 새끼고양이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삶이 힘든 인간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해 주는 에피소드와 고양이가 감추고 있는 비밀 이야기다. 그 카페는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 그곳에서 차(茶)를 마신 사람들은 원초적인 희망을 얻어 다시 삶을 꾸려 나간다. 살다 보면 갑자기 닥친 어려움에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남들 눈엔 사소해 보이는 일도 당사자에겐 시시포스의 천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극한의 감정과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게 되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조차 왜곡되어 들리게 된다. 이럴 때 옆에서 약간만 도와준다면 그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지나고 난 뒤 돌아보면 외부의 도움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이 극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인은 그저 차 한잔의 역할 정도를 하는 거다. 극한의 상황과 해결의 열쇠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 그것을 물질화시켜 표현한 것이 ‘차’다. 이렇듯 사람들은 저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

-현재 직업이 작품 내용에 영향을 미쳤는가.

△당연히 그렇다. 저는 고용노동부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공무원이고 업무를 수행하면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났다. 고용노동부라고 하면 어떤 분은 실업급여를, 어떤 분은 임금 체불 혹은 중대 재해 같은 단어를 떠올리실 텐데 어떤 일이든 우리 부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사는 게 힘겨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찾아오신 분들이 딱한 사연을 단편적으로 풀고 가실 때가 많아 스치듯 만난 경우도 이야기의 테마가 되기도 한다. 가령 약 15년 전쯤 실업급여를 받으러 오신 분은 한때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암으로 퇴사를 하셨고, 형편상 치료를 받으면서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분의 이야기는 제 책엔 써니의 에피소드에, 7년 전에 크레인 사고로 크게 다친 근로자의 사건은 내용의 일부를 각색해서 아들을 잃은 복순의 에피소드에 각각 담아놨다. 저는 그분들이 지금쯤은 씩씩하게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 책이 지친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이 차를 마시고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면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내용이다 보니 민원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참고가 되었다.

-책을 내고 주변 반응은 어땠나.

△다들 신기해했다. 어제는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이었는데 오늘은 소설을 쓴 작가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책을 읽고 난 뒤 지인들의 반응도 다양했는데 엄격한 잣대로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 주기도 했고, 재밌게 잘 읽었는데 에피소드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런 격려와 관심이 제가 계속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글쓰기는 이제 제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써서 책을 낼 생각이다. 작가에게 소설은 또 다른 시공간의 창조물이다. 판타지 소설은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무한 영역의 재확장이다. 그 내용에 경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서 한계가 없다.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시리즈 같이 그 세계 안에서 역사와 전통이 탄탄하게 구축된 경우는 소설 속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을 또 다른 상상으로 메울 수 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저만의 스타일로 창조한 세계를 시리즈로 엮어내어 판타지 장르에 익숙한 독자 세대들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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