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비록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신록의 오월이면 떠올리게 되는 이양하의 ‘신록예찬’ 한 대목이다. 민태원의 ‘청춘예찬’과 함께 교과서에 실리는 바람에 널리 알려진 수필이다. 그렇다. 오월은 온 땅에 신록의 광휘와 함성이 가득한 계절이다. 눈을 돌려 어디를 봐도 길이나 건물 따위 인공구조물을 빼 놓고는 모두가 신록이다. 신생의 신록이 산과 들을 뒤덮고 생기를 뿜어내고 있다. 절망도 좌절도 회한도 비애도 모두 신생의 기운에 묻혀버렸다. 이따금 내리는 빗물과 눈부신 햇빛, 방향을 바꾸어 부는 바람이 신록과 더불어 천지에 가득 생기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다.

높은 산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초록 피부에 돋아난 부스럼딱지에 불과하다. 큰 도시라 한들 조금 더 큰 종양일 뿐이다. 그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란 대부분이 자연이다. 자연생태계야말로 우리 삶의 절대적 조건이고 부와 권세, 명예 따위 인위적인 조건이란 사소한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인위적 조건을 마치 인생의 전부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경제사정이 좋아졌는데도 행복지수는 오히려 낮고 자살률은 높아졌다는 통계다. 하루 세 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던 시절과는 생각이 너무 달라진 것이다. 아마도 자신보다 형편이 더 나은 남들과 비교를 해서 생긴 상대적인 결핍감이나 열등의식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행불행이란 대부분 그런 것이다. 목숨이 걸린 절대적인 조건이기보다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들이 훨씬 많다는 말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현상도 도처에 불거지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는 물론 사람의 목숨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행태가 자행된다. 부모형제나 제 자식까지 해치는 일도 적지 않으며 제 목숨을 쉽사리 내던지기도 한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너무 인간중심적이고 문명 예속적이다. 인류가 만든 문명에 인류가 갇혀버린 형국이다. 루소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과 우주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오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생명의 에너지로 충만한 오월의 신록 앞에서는 좌절이나 비관 따위가 침입할 여지가 없다. 우리 생명의 조건 대부분이 자연일진대,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되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오월이다. 천지 가득 폭죽처럼 터지는 생명의 예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