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출근길마다 사무실 입구에서 하는 일이 있다.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지만 벌써 몇 년째다. 명함전단지(名銜傳單紙)를 한쪽 구석으로 모으는 일이다. 보통 네댓 장, 많은 날은 여남은 장이 될 때가 있다.

보기 지저분해 처음엔 투덜대며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일일이 주워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버려진 명함전단지만 줍는 연로한 분들이 생겨났다. 그 후부터 한쪽 구석진 곳으로 모아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손으로 주워 한곳에 모아두거나 어느 날은 발로 툭툭 차 한곳에 모이게 하기도 한다. 점심때 나가면 명함전단지들은 그사이 누가 다 가져가고 없다.

어느 날 광고 내용을 한번 보고 싶었다. 모두가 돈을 급전으로 빌려준다는 광고였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도 여전히 급전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하지만 널브러진 전단지들이 거리를 너저분하게 하여 보기 좋지 않고 쌓여 부패하면 위생 등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다. 또,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이 일하는 현장이란 것 역시 사실이다. 흔히 하는 말로 제작자, 광고주, 뿌리는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약 반 시간 정도 걸어 출근 시간에 명함전단지를 뿌리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위험이 따르는 이 도로 저 도로 가릴 것 없이 내달리며 명함전단지를 뿌렸다. 한 손은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명함전단지를 건물 쪽으로 화살처럼 쏘아대며 달렸다. 꼭 자동기계의 동작 같았다.

어떤 날 걷는 내 얼굴 앞으로 휙 소리를 내며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명함전단지를 만나 움찔 놀라기도 했다. 순간 한 손으로 어떻게 던지기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지나갈까 감탄하는 마음이 들다가 이내 ‘무질서의 현장’이란 생각이 밀려들었다. 또, 작은 마케팅 폭력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 국민은 소위 생존권이란 명분으로 공공질서가 유린 되고 묵인되는 현상을 사회에서 많이 겪으며 살고 있다. 개인의 생존권은 과연 공동체의 질서에 해를 끼쳐도 되는 것일까. 개인이 없으면 공동체도 없다.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없으면 개인도 없다.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까. 이 문제는 유사 이래 줄곧 인류사회가 직면하고 또, 나름대로 해결하며 살아왔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지방자치제도의 꽃이랄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 것일까. 올곧은 국가 사회는 하늘이 내리는 것도, 다른 나라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또, 슬로건이나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닐 터다. 풀뿌리의 주인인 주민들과 그 대표들, 공공기관, 여러 시민모임의 구성원들이 말 그대로 풀뿌리처럼 낮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의 낮고 구석진 곳들을 잘 살펴 고칠 것은 고쳐 나아가고 지속할 것은 이어나가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명함전단지만 하더라도 위험할 뿐 아니라 거리를 지저분하게 하는 오토바이 뿌리기 대신 방문 전달로 바꾸어 가는 지혜를 사업주와 지역 의회 등 지역사회가 협동하여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