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식 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

창조도시(creative city)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전문가는 물론이고 정치가와 행정가에게도 여전히 창조도시는 화두(話頭)이다. 그만큼 도시와 지역발전을 논의할 때 주목해야 하는 키워드(key word)이기 때문이다.

창조도시의 개념을 창조계층(creative class)의 개념과 접목시켜 설명한 세계적인 석학이자 도시학자인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창조적 사고를 실천하는 계층을 창조계층이라 명명하고, 이들이 창조도시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창조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3T(talent, technology, tolerance)가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인재(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 혹은 포용력(tolerance)이 함께 있어야 창조적 사고를 하는 창조계층이 도시와 지역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창조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제 산업생산체계를 잠시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값싸고 부지런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산업은 이미 쇠퇴한지 오래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업종들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에 근간을 두고 있는 포드주의(Fordism) 산업생산체계는 쇠퇴한지 오래고,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에 근간을 둔 포스트 포드주의(Post Fordism) 산업생산체계가 많은 업종에서 도입됐다.

이러한 산업생산체계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인재의 덕목은 역시 창조성이다.

리차드 플로리다가 도시와 지역발전을 위한 핵심요소로 본 3T 가운데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관용 혹은 포용력이다.

창조계층의 구성원인 창조적 인재는 도시의 다양한 생활양식과 문화, 쾌적성(amenity)을 중시하며, 그들의 창조성이 편안하고 쾌적한 일상생활과 결합이 가능한 도시나 지역에서 정착하길 원한다.

결국 리차드 플로리다가 얘기하는 3T는 상호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것이고, 그 핵심은 관용 혹은 포용력이라고 볼 수 있다. 관용 혹은 포용력은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종교와 정치적 다양성도 함께 포함하는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생활양식과 공동체가 공존하고, 이들 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세계적인 창조도시의 집합체로 볼 수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어떤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지역적 특성을 가진 캘리포니아 주의 북부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있는 명문 스탠포드대학교와 버클리대학교와의 산학협력에 힘입어 성장했다.

실리콘밸리는 원래 양질의 포도주 생산지였지만, 이들 두 명문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 전자·정보통신·컴퓨터 산업 등을 육성하고 유치해 세계적인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게다가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둥지가 됐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원천적인 경쟁력은 날씨와 주변 환경에 있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사계절이 모두 따뜻한 것은 물론이고, 여름에도 기온은 높지만 습도가 높지 않은 기후적 특성이 큰 장점이다.

이런 기후적 특성과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는 환경적 특성(amenity)으로 인해 고급 인력들이 실리콘밸리와 그 주변지역에 와서 살려고 하는 원초적 욕망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실리콘밸리와 그 주변지역이 갖고 있는 자유분방한 지역적 분위기가 실리콘밸리의 성장에 한몫을 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중반 기존의 물질문명과 가치관, 제도, 사회적 관습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감 등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했던 히피(hippie)가 최초로 출현한 곳이며,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반전(反戰)운동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마약규제 등 각종 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이기도 하다. 리차드 플로리다는 창조도시의 조건으로 관용 혹은 포용력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함으로써 창조적 사고를 하는 창조계층이 정착할 수 있는 필수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는 도시와 지역발전의 핵심전략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인적 환경(people climate)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단선적 사고와 행동, 지나치게 보수적인 지역분위기만으로는 대구·경북이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의 산업구조도 지식산업과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우수한 인재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고 문화적 다양성을 고양하는데 정치가, 행정가, 그리고 시도민들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