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해양문화
바다 음식 - ①물회·막회·횟밥

포항 송도 위판장 모습.

포항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은 영일만이다. 내륙으로 쑥 들어간 바다가 만(灣)이다. 영일만이 있어 포항이란 항구도시가 생겨났다. 영일만은 포항의 어머니다. 그런데 만이 저 혼자 만이 됐을 리 없다. 바다나 호수에서 돌출되어 3면이 물로 둘러싸인 땅이 곶(串)이다. 곶이 있어 만이 있다. 돌출된 땅이 있으니 들어간 바다도 있는 것이다. 호미곶이 있어 영일만이 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듯이. 호미곶은 포항의 아버지다. 포항은 영일만과 호미곶이 만나 낳은 자식이다. 영일만과 호미곶은 포항의 시원이다.

최근 이재원 포항지역학연구회 회장과 동행하여 찾아간 송도 위판장은 생선 경매를 준비하는 상인과 어부들, 경매사들이 뒤섞여 소란스럽다. 포항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이 회장이 포항에 왔으면 꼭 봐야 한다고 새벽잠을 설쳐가며 데려와 준 곳이다. 경매사들이 종을 들고 딸랑딸랑 경매 시작을 알린다. 경매 시간에 맞추려면 어부들은 새벽 두세 시부터 밤바다로 나가 그물을 걷어와야 한다. 이날 송도 위판장에는 참가자미, 광어, 아귀, 청어들이 주종목이다. 아귀와 청어도 활어로 나왔다. 부두에 막 뱃머리를 댄 청어잡이 어선에서는 자망에 주렁주렁 꽂힌 청어를 따느라 분주하다. 그물에서 따낸 청어는 바로 위판장으로 옮겨진다. 성질 급한 청어를 활어로 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살리기만 하면 가격이 두 배니 정성껏 살려 보려고 노력한다.

30마리 남짓 담긴 청어 선어는 한 광주리에 2만 원, 활청어는 4만 원이다. 3만5천원에 낙찰되는 활청어 광주리도 있다. 활어나 선어나 청어는 값이 헐하다. 마리당 1천원 내외. 아귀는 한 광주리에 1만5천원, 강원도에서는 값비싼 장치도 여기서는 한 광주리에 1만9천원에 낙찰된다. 선호하는 생선이 다르니 같은 생선이라도 지역마다 값은 천차만별이다. 그 귀하고 비싸다는 줄가자미도 몇 마리 나왔다. 1㎏ 조금 넘을 듯한 줄가자미는 얼마쯤 받을까? 어부의 아내가 볼멘소리도 대답한다.

“10만 원 조금 넘어요. 근데 횟집으로 가면 30만 원쯤 받아요. 젤로 많이 고생한 우리가 젤로 적게 받아요.”

밤샘 어로에 지친 어부 아내의 목소리에는 유통 구조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포항 시내에서는 두 군데 위판장에서 생선 경매가 열린다. 송도 위판장에서는 주로 활어 경매가, 죽도시장 위판장에서는 선어 경매가 이루어진다.

 

깜깜한 새벽, 포항 송도 위판장에 ‘딸랑딸랑’ 종 울리면 상인·어부·경매사 뒤섞여 소란 일어

청어·병어·가자미 등 저렴한 생선으로 즐기는 막회, 물회·횟밥으로 변신 전국적 인기 얻어

‘갈물 들인 그물’ 획기적 개발로 포항 어업 기술 발전 이바지한 다산 정약용 선생 잊지 말아야

포항의 물회
포항의 물회

포항,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

포항(浦項), 그 이름처럼 포항은 오랜 세월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살아왔으며 포항 사람들은 바다에 의지해 어로(漁撈)를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포항 사람이 아니면서 조선시대 포항 어업사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다. 인천의 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이 조기잡이의 신으로 숭배된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잡혀간 소현세자를 구하러 가던 임경업이 연평도에 들러 조기잡이 방법을 전수해 주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전설이다. 임경업 이전에도 연평도에서는 조기잡이가 성했고 어전을 둘러싼 다툼도 있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연평도 사람들 가슴에는 임경업이 조기의 신으로 살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포항에서는 다산이 포항 어업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1월 신유박해 사건에 연루되면서 2월 29일 장기현 유배형이 결정되었고, 3월 9일 장기현 마산리(현 마현리)에 도착한 후 황사영 백서 사건이 터지기까지 7개월 동안 유배살이를 했다. 그 기간에 130여 수의 시를 지었다. 정조 시대 다산은 신도시 화성의 축조를 공학적으로 설계했고, 기중기 등 선진적인 문물을 제작해 사용할 정도로 과학과 기술에도 해박했다. 어업에서도 선진적인 기술을 공부해 상당한 식견이 있었다. 다산의 유배 시절 장기의 어부들은 여전히 칡넝쿨로 만든 그물을 사용해 물고기를 잡았다. 원시적인 그물인지라 칡넝쿨 그물은 고기가 많이 들면 쉽게 터져 어부들에게 손실을 안겼다.

유배자 다산은 어부들에게 명주실과 무명실(면사)로 그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적극 권유했다. 명주나 무명실로 만든 그물 또한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코팅을 입히는 기술이 필요했다. 다산이 장기 어부들에게 알려준 것은 소나무 껍질을 다린 물에 그물을 담갔다가 말려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일명 갈물 들이기다.

갈물 들인 그물은 한결 견고해서 튼튼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어획량을 늘리는 데 획기적인 기술이었던 것이다. 명주실이나 무명 그물을 사용하고 갈 가마에서 갈물을 들이는 어구 사용법은 현대의 나일론 그물이 등장한 1950년대까지도 사용했던 어업 기술이다. 다산이 얼마나 선구적인 어로법을 가르쳤던 것인지 짐작하기 충분하다. 실학자로서 포항 어업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다산은 포항 어업의 소중한 역사다. 그러므로 포항의 어업사에서는 다산을 적극적으로 기릴 필요가 있다.

 

포항의 막회
포항의 막회

물회와 막회, 전국적인 명성 얻어

아침 죽도시장 좌판에는 막회를 썰어주는 여인들이 줄지어 앉아서 부지런히 칼을 놀린다. 새벽 경매를 통해 들어온 막횟감은 청어, 병어, 가자미, 학공치, 성대 등 그때그때 많이 잡히고 저렴한 생선들이 주류다. 이날 죽도시장 좌판의 청어 막회는 5마리에 1만 원이다. 말할 수 없이 싸다. 도시 선술집에서는 비싼 횟감인 청어회가 이토록 헐하다니. 막횟감용 가자미는 주로 물가자미다. 참가자미는 동그랗고 물가자미는 서대처럼 길쭉하다.

포항의 물회와 막회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생선회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논어’에는 2500년 전 공자도 생선회를 즐겼다고 전한다. 논어 ‘향당’ 편에는 “밥은 흰 쌀밥만 좋아하지 않으셨고, 회도 잘게 썬 것만 좋아하지 않으셨다. 쉬어서 냄새가 나는 밥과 상한 생선, 썩은 고기는 드시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 이렇듯 인류가 생선회를 먹어온 역사는 장구하다. 공자뿐일까. 본래 인류의 조상들은 불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날것으로 먹었다. 생선 또한 날것으로 먹었으니 생선회의 역사는 최초의 인류가 나타난 수십, 수백만 년 전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도 옛날부터 생선회를 즐겼다. 조선 영조 시대 의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회를 먹는 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껍질과 뼈를 제거하고 오직 하얀 살만을 얇게 썰어 흰 종이 위에 펴서 햇볕에 잠깐 쬐었다가 날카로운 칼로 실처럼 가늘게 썰어 사기 접시에 얇게 깐다. 이와 별도로 생강과 파를 각각 반치가량을 실처럼 가늘게 썰어 회를 놓은 접시 가운데 놓고, 또 볶은 된장을 대추알 만한 크기로 만들어서 역시 생강과 파 옆에 놓고, 종지에 겨자즙을 담아 상에 올린다. 만약 여름철이면 회 접시를 얼음 소반에 받쳐 올린다.” <증보산림경제 9권>

겨자즙에 생선회를 찍어 먹고 여름에는 얼음 위에 생선회를 올려놓고 즐겼으니 우리 조상들의 회 문화는 고급스럽기 한량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얼음 깔고 겨자에 찍어 먹는 호사를 누구나 누렸겠는가. 바닷가 사람들은 갓 잡은 생선을 막 썰어서 된장에 찍어 먹고 김치에 싸 먹는 막회 문화를 발달시켰다.

 

포항의 횟밥.
포항의 횟밥.

횟밥, 포항의 독특한 막회 문화가 낳은 산물

포항은 막회의 고장. 호미곶 대보항 노포에서 막회와 물회를 앞에 두고 낮술을 마신다. 술이 단 것은 오로지 싱싱한 회 덕분이다. 막회는 안주가 되고 물회는 해장국이 되는 천상의 궁합. 갓 잡은 생선을 막 썰어서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야채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이 막회다. 물회는 막회와 불가분의 관계다. 막회에 야채, 고추장을 넣고 비벼 물이나 육수를 부으면 물회가 된다.

횟밥도 포항의 독특한 막회 문화가 낳은 산물이다. 막회 무침에 밥을 함께 내주는 것이 횟밥이다. 주로 대중적인 꽁치회를 사용하지만, 고급 생선을 사용하기도 한다. 횟밥은 한 끼 식사로도 좋지만 밥을 먹으면서 가볍게 한잔하기에 좋은 안주다. 고된 노동을 마친 어부들이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하기 좋은 음식이다.

막회는 제철에 많이 잡히는 값싸고 흔한 생선을 막 썰어서 먹는 것이라 청어, 고등어, 꽁치, 방어, 가자미, 전어, 횟대, 성대, 숭어 등이 주재료다. 그중 청어, 꽁치, 방어 등 등푸른 생선으로 만드는 물회나 막회는 기름기가 많아 쉽게 상한다. 그래서 등푸른 생선으로 회를 먹는 것은 쉽지 않다. 포항 같은 바닷가라 가능한 요리다.

본디 막회나 물회, 횟밥은 바닷가 어민들의 음식이었다. 일손은 바쁘고 달리 찬거리를 장만할 틈이 없을 때 갓 잡은 생선을 썰어서 밥과 고추장, 흔한 야채나 바다에서 막 건져낸 해초 등을 넣고 비벼 먹었다. 국물을 먹고 싶어도 국 끓일 조건이 여의치 않으니 막회 무침에 그냥 물을 부어 먹던 것이 물회의 시초다. 그래서 막회와 물회뿐만 아니라 횟밥까지도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된다. 그야말로 삼위일체인 음식. 막회와 물회, 횟밥은 성스러운 생명의 음식이다.

글·사진 / 강제윤 시인·(사)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