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스탠딩’

저스틴 토시·브랜던 웜키 지음
오월의봄 펴냄·인문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5월 18일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팸플릿을 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모습을 두고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성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광주) 내려가는 길에 가사 몇 번 읽어보는 성의만 있었어도 이런 참상은 안 벌어졌겠다. 팸플릿이라니, 대체 무슨 만행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언론 기사, 시사 토론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비롯한 각종 SNS 등에는 특정 사안에 분노하며 자신이 역사의 옳은 편에 있음을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자신이 더 돋보이고자 ‘같은 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진영은 감싸고 상대 진영에는 가혹한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그랜드스탠딩’이라고 한다. 미국 텍사스테크대 철학과 조교수 저스틴 토시와 볼링그린주립대 철학과 조교수 브랜던 웜키는 최근 번역 출간된 책 ‘그랜드 스탠딩’(오월의봄)에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뭐라고 딱히 꼬집기는 어렵고, 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문제적이라고 느끼는 이 현상을 바로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적확히 짚어낸다.

그랜드스탠딩이란 ‘남들의 관심을 얻고, 자기과시를 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철학자인 지은이들은 특히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그랜드스탠딩하는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라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낸다.

저자들은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 도덕적 이야기라는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귀한 도구를 함부로 사용하면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데 주목한다.

특히 많은 경우의 그랜드스탠딩이 자신의 도덕성을 자랑하려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무례를 범하며, 고의든 아니든 다른 사람을 기만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SNS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수천, 수만의 관중들에게 자신의 도덕성을 얼마든지 전시할 수 있는 시절이다.

즉, ‘도덕적 이야기’가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오용되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신간 ‘그랜드스탠딩’은 우리의 공적 담론이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특히 ‘상대편’이 아니라 ‘우리’가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스스로를 좋게만 보이려고 하는지 묻는다.

철학자인 저자들은 이 문제를 포착하는 데 학제 간 연구를 통한 다각적 접근을 활용해 철학적 논증에 더해 여러 풍부한 자료와 근거를 동원한다.

이 책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을 근거로 그랜드스탠딩이 무엇인지, 왜 이런 형태를 띠는지를 설명하고, 도덕철학을 활용해 왜 그것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인지 논증한다. 그리고 그랜드스탠딩이 민주주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료하게 제안한다.

책은 “공적 담론을 자기과시 도구로 접근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며 니체주의의 시각을 인용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탁월한 사람’은 선한 목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도덕적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위상을 얻으려는 일말의 노력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SNS로 인해 도덕적 이야기의 오·남용에 노출되는 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인정한다. 다만 공적 도덕 담론이 개선될 수 있도록 애쓸 필요는 있다며 ‘인정 욕구 재설정’과 ‘믿음 바로잡기’ 등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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