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수필가
조현태
수필가

필자에게는 유휴지를 이용한 칠십 평가량의 밭이 있다. 옛날에는 논이었다는데 경작하지 않고 너무 오래 방치해 둔 땅이라 잡목과 풀만 가득했다. 어느 날 트랙터를 빌려서 나무는 뽑아내고 밭으로 일구었다. 비록 내 소유의 땅은 아니지만 누군지도 모를 주인이 나타나면 그냥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하여, 유실수나 약초처럼 재배기간이 긴 작물은 심지 않고 당년에 수확하는 콩이나 들깨, 고추 정도만 재배했다. 그 땅을 경작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올해는 검정콩(서리태)을 심었다. 11월 중순에야 콩대를 잘라놨다가 그저께 마당으로 옮겨 털었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지라 땅 면적 대비 수확량은 많이 떨어지지만 몇몇 지인들과 나눠먹는 결실은 충분히 된다. 흐뭇한 기분으로 항아리에 쏟아 부으면서 잠시 생각이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마른콩대를 차에 싣고 나니 땅에 떨어진 콩이 눈에 들어온다. 검정색이라 유난히 눈에 띄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꼬투리에서 터져 나온 콩알이라 더욱 굵게 보인다. 그거 다 주워 모아도 일 리터가 될까 말까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가 없다. 거의 한 시간을 소비하고 ‘끙’하며 일어서야 할 판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당에서 막대기로 두드려 털고 바람에 날려서 알곡을 가릴 때였다. 빈껍데기야 당연히 선풍기 바람에 날려 나가지만 아직 덜 영근 콩알이나 그것이 들어있는 꼬투리는 반쯤 날아가다 어정쩡하게 떨어진다. 그러니 곡식도 아니요 죽정이도 아니다. 버리기는 미안하고 거두기는 찜찜하다. 그러다 결국은 어중간한 놈들을 따로 쓸어 담는다. 저녁에 심심풀이로 손질해 볼 요량으로.

이틀 저녁 동안 그 콩을 마무리하고 보니 제법 한 되는 되어 보인다. 품질이 떨어지는 곡식이라 남에게 주지는 못해도 내가 먹을 수는 있다. 밥 지을 때 섞어보니 그다지 나쁜 콩이라 여겨지지도 않는다. 평소에도 땅콩이랑 밤이랑 은행 따위를 섞어 밥을 짓는데 검정콩이 보태지니 훨씬 더 잡곡밥으로 보인다. 그래서 했던 말이 ‘그래 너도 콩이다’했다. 충실하게 영글어 저절로 터지는 콩만 콩인가 생각하니 관자놀이가 뜨듯해진다. 사람으로 치면 꼴찌도 사람이니까 말이다.

재건중학교와 고등기술학교는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초등학교졸업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청년 시절. ○○대학교 정문 앞에서 장사하며 대학생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대학생들이 가게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종일 바둑 두며 떠들어대도 좋게만 보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생이 될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 육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이라도 공부하려고 등록했다가 한 달 만에 등록취소 당했다. 그때야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만 사 년 만에 나도 대학교 졸업생이 될 수 있었다.

반세기 동안 묵었던 땅도 갈아엎으면 밭이 될 수 있었다. 그냥 두었다면 묵지일 뿐이요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인데 일구어 밭을 만들면 농지다. 깨를 심으면 깨밭이요 콩을 심으면 콩밭으로 일컬어진다. 비록 잡초에 부대껴 자라면서 반쯤 영글다가 뽑히고 마는 어설픈 콩이더라도 콩은 콩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