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수필가
조현태 수필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뜻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에도 이런 현상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학생 시절에 만원버스를 타면 학생들은 학교생활과 학업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되었다. 막노동하는 사람들은 노동 현장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장사꾼은 물건 사고파는 이야기를, 농부는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도 그 휴대폰에는 그 주인의 최대 관심사가 검색되어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터이다.

한 가지 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 경우를 꼽으라면 2002년 월드컵 경기 때가 아닌가 한다. 그 당시의 축구 응원은 대한민국 전체를 넘어서 온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생각해보면 개의 눈이라서 똥만 보였다기보다 똥만 보였기 때문에 개의 눈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쳤던 대한민국 국민의 결집력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중심으로 말하고 듣는다. 한발 더 나아가보면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확신하고 있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월드컵 게임의 경우 처음에는 자기중심에서 우러나는 응원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국 팀을 응원하니까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덩달아 응원했다. 군중심리가 작동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보니까 어느덧 축구 경기에 몰입하게 되고 저절로 한국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내가 볼 때 남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 나도 슬퍼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은 남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슬프기 때문에 남도 슬퍼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논리에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남이나 사회에 그 탓을 돌리게 된다. 그러므로 남을 탓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우기면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내가 믿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려’도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

정치는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해야 한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맡은 정치에도 연예인과 같은 좋고 싫음의 잣대를 대는 것 역시 잘못된 짓이다.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여 건설한 후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때 이성계가 농담 삼아 무학대사에게 말했다. 오늘 무학대사가 돼지 같아 보인다고 말하자 무학대사는 태연하게 전하께서는 부처님처럼 보인다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예리한 꼬집음을 일컫는다.

비슷한 뜻으로 채근담에도 ‘자신이 성실하기 때문에 남도 성실히 보아서 그 사람을 믿게 되고, 자신이 남을 속이기 때문에 남을 의심하게 되어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작금의 세태에는 차라리 월드컵 군중심리라도 좋으니 국민 전체가 부처님 눈이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