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작가

2년 전 이맘때 포항 출신 이대환(66) 작가와 신년 인터뷰를 했다. 그때 그는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유토피아란 인간의 관념과 이념이 그려내는 허구의 세계다. 역사의지의 길은 자유와 평등의 최대공약수를 확보해나가는 험난한 역정이다. 이게 진보다.” 그로부터 꼬박 두 해가 지나 다시 신년 인터뷰에 그를 초대했다. 첫마디는 시니컬 했다.

“인간이 뭐 뾰족한 수가 없잖아? 시리아와 미얀마는 내전 중,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 중, 이스라엘은 하마스 팔레스타인에 수천 배 보복 중, 시진핑의 중국은 제국주의를 흔들어대고, 평양의 젊은 남자도 덩달아 험구를 뽐내고, 트럼프는 철없는 아이처럼 새로 설쳐대고….”

 

 

 

 

인류는 내전 상태, 빨리 욕망서 벗어나야

작가의 책무는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일

‘한흑구 전기’ 최근 완성 5월쯤 출간 예정

흑구·박태준은 포항의 소중한 정신 자산

-그래도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이 있다.

△제일 속 편한 방법은 불가 말씀대로 불생불멸, 제법공상을 체화하는 거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해 “전생에서 와서 내생(來生)으로 간다” 하던 대답을 초월해버리는 거지. “진아(眞我), 즉 ‘참나’는 오고 감이 없다” 하는 대답을 내놓을 만한 인간으로 거듭나야겠지. 허, 이게 쉽나? 인간이 욕망 덩어리인데. 그나마 이성과 양심이 있으니 욕망에도 산소 구멍 같은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거고, 이 능력이 인간의 인간다운 희망이지.

-요즘은 작가의 중요한 책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언제든 희망 찾기지. 작가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다른 문학인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요새도 작가의 펜이 야만의 급소를 찔러야 한다고 믿어. 고구려 장수 양만춘 있었잖아. 어린 시절에 라디오 연속극으로 안시성 전투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는데, 양만춘의 화살이 당 태종의 눈에 정통으로 꽂혔듯이, 그렇게 나의 펜이 야만의 급소에 꽂힐 수만 있다면!

 

포스텍 박태준미래연구소 박태준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이대환 작가.
포스텍 박태준미래연구소 박태준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이대환 작가.

-몇 년 전 장편 ‘총구에 핀 꽃’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동안 신작을 썼는지.

△‘총구에 핀 꽃’뒤로는, 이상한 일이었지. 포항에 촉발 강진이 발발한 다음에는 정부와 업자의 완전 책임을 정리한 ‘누가 어떻게 포항지진을 만들고 불러냈나’라는 책으로 바빴고, 포항시민이 최정우 포스코 회장 세력과 대립하는 기간에는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다’라는 책으로 또 바빴는데, 그러다 보니 오래 계획한 장편에 손을 못 댔지. 개화파로 민비시해사건에 깊이 연루된 우범선, 일본으로 망명한 그가 일본여성과 혼인해 얻은 장남이 세계적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인데, 우범선은 민씨 집안에서 보낸 자객의 칼에 무참히 살해되고, 어린 우장춘은 그 현장을 목격했는데…. 해방 후에 우장춘은 한국정부의 인재영입으로 아버지의 나라에 와서 김장김치 담그는 배추도 개발했지. 김장김치 먹을 때 자주 우장춘 생각이 나서 소설을 써서 갚아드리고 싶은데….

-뜻이 아직 빳빳해 보이는데.

△팔자대로 되겠지. 영 폐업은 아니었어. 아직은 이름을 밝히고 싶진 않은, 훌륭한 생애와 업적을 두고 떠난 한 고인(故人)에 대한 미완의 평전을 엔간히 마쳐뒀고, 한흑구 선생 문학적 전기(傳記)를 최근에 다 썼고, 20년 전에 나온 장편 ‘붉은 고래’도 조금 보완하면서 인터넷 신문 ‘문학뉴스’에 연재 중이인데, 또 여유가 되면 북한방문기 ‘중량초과’같은 단편과 중편을 한 권으로 묶을까 싶기도 하고. 꿩 대신 닭은 아니고.

-한흑구 선생의 문학적 전기, 어떤 책인지.

△92개 작은 얘기들이 모여서 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한 전모와 진면모를 드러내는데, 부제목은 ‘Han’s Aria(한흑구 아리아)’, 제목은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 2월에 출간할까 했는데 총선도 있고 시끄러우니까 5월쯤 출간할 생각이고. 400페이지 넘대.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이강덕 포항시장이 의기를 세워서 포항시가 한흑구문학관을 세우려 하니, 그러자면 일제강점기의 귀중한 문학인이고 해방 후 포항에 정착한 뒤로 시적 수필을 완성해서 한국 수필문학의 전범을 이룩한 선생의 전모와 진면모에 대해 한국사회와 포항시민이 제대로 공부할 계기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책무의 한 부분도 되는 거지.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포항시민부터 선생을 제대로 아는 게 급선무라고 봐.
 

일본 여행 중에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이대환 작가.
일본 여행 중에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이대환 작가.

-요즘 박태준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회자하고 있는데.

△그럴 수밖에. 솔선수범, 선공후사, 천하위공, 세계일류, 일류국가, 이런 정신과 꿈과 그 실행이 그리운 시절이니까. 특히 포스코에서, 포항에서.

-정말 소중한 그런 가치들이 한흑구 선생의 문학정신과 함께 포항문화의 근본으로 정착되기를 바라는 시민이 많은데.

△구상을 해뒀지만, 세상만사는 여건이 조성돼야 이뤄지는 거니까, 때를 기다리는 거지. 뜻이 길을 만드니까, 이 믿음도 소중하고. 그나저나 새해에는 내 고향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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