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진주에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편도 3시간 45분이 걸린다. 최종 목적지의 위치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진주 집에서부터 목적지까지는 어림잡아 5시간이 소요된다.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당일치기 일정은 피로감을 동반하지만 1박2일 일정은 잘 잡지 않는 편이다. 다음 날까지 허비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5년 전 진주에 처음 내려오고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는 학술대회 발표·토론, 각종 회의 참석을 위해 한 달에 평균 1회는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의 만남은 학교라는 좁은 틀을 벗어난 학계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토론 제안도 감사한 마음으로 수락하고 상경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찾아온 회의감이 서울에 가는 횟수를 줄이게 했다. 서울에서의 몇 시간 일정을 위해 10시간을 왕복하는 내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고는 생각이 바뀐 것이다.

나에게는 2022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북토크 팀이 있다. 격월로 도서를 1권 선정하여 저자를 초청하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혹은 오프라인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야만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서울 가는 것이 버거워졌지만 힘듦을 말하기 어려웠다. 제주도에서 상경하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은 오프라인 북토크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2023년 초에는 우리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이 북토크 도서로 선정되어서 팀원들 일부가 진주에 내려왔다. 제주도에서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진주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여름방학에는 제주도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주도 북토크를 위해 더 많은 선생님이 바다를 건너왔다.

나는 제주도에 거주하시는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선생님께 진주와 제주를 거부감 없이 다니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한 2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 선정된 도서에서 배운 점 이상으로 이 분들과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진주에서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데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과 물리적 시간, 그리고 육체적 힘듦에 대한 어떤 보상을 생각했다. 학술대회 발표를 위해서는 서울에 가고, 단순한 회의를 위해서는 가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기회비용을 따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사고라 할 수도 있겠지만, ‘관계’를 결정짓는 이러한 정상성이 만든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 정상성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행사의 성격을 따져 상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 설 연휴가 지나고 개강이 눈앞에 다가왔다. 새 학기부터는 익숙한 관계 맺기의 방식을 벗어나서 좀 더 많은 사람과 자주 만나야겠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