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참 어이가 없다. 공천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지난달 29일에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4·10 총선을 겨우 41일 앞둔 시점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①항에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바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다.

워낙 선거법 개정이 늦어 문제가 생기자 2015년 이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18대 총선(2008년) 때는 선거 47일 전, 19대 총선(2012년) 때는 선거 44일 전에 선거구가 정해졌다. 이 조항을 만든 뒤, 20대 총선(2016년)에는 42일 전, 21대 총선(2020년)에는 39일 전으로 더 늦어졌다.

선거구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중대선거구제로 갈지, 소선거구제로 갈지, 비례대표 선출을 준연동형으로 할지, 병립형으로 할지, 선거법의 근본 틀부터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현역 의원들은 어떻게 되든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준비하면 된다. 지역구를 옮기든지, 없어져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

정치 신인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연고를 끌어대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지역구가 바뀌면 의도하지 않게 ‘철새’ 꼴이 된다. 처음부터 지역 유권자에게 점수를 잃는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선거구로 바뀌면, 돈만 들여 헛고생한 게 된다. 그렇다고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 가만히 기다릴 수도 없다. 현역 의원들만 유리하다.

가장 비겁한 것이 위성정당이다. 4년 전에는 촉박한 시간에, 처음 도입한 제도를 놓고 당황해 잘못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흉악한 짓인지 잘 알면서 저질렀다. 시간도 충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을 막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어떤 선거제도로 갈지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위성정당보다 더 위험한 선택을 했다.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할 때는 봉쇄조항이라는 게 있다. 이해하기 쉽게 ‘문턱조항’이라고도 한다. 일정 정도의 표를 얻지 못하면 의석을 주지 않는다. 극단주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는 독일은 문턱이 5%로 높다. 나치를 경험해 극우정당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3%, 혹은 지역구 의석 5석이다. 2%를 넘으면 한 석 줘야 하지만 3%로 막아놓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책보다 훨씬 강경 좌파들을 끌어모아 위성정당을 만들고, 비례 의석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구도 단일화로 밀어준다. 민주당이 보증은 섰지만 어떤 후보가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책임도 안 진다. 애플에서 조악한 휴대폰에 아이폰이란 이름을 붙여 아이폰과 함께 팔아놓고, 성능도, 에프터서비스도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과 같다.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그런데 이건 무책임정치 아닌가.

선거구 획정 과정도 기가 막힌다. 중앙선관위에 설치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은 서울·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각 1석씩 늘리게 돼 있었다. 나머지는 해당 시·도 안에서 조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전북 대신 부산에서 1석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버텼다. 결국 만만한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 떼 전북에 붙여주는 것으로 끝났다.

지역구 국회의원 254명을 시·도별 인구 비율로 나눠보면 경기(-7석)·인천(-1)에서 8석을 빼 서울(+2석)·부산(+2석)·울산(+1석)·광주(+1)·전남(+1)·전북(+1석)에 나눠준 모양새다. 서울이 인구 19만5507명 당 의원 1명이다. 이것을 지수 100이라고 할 때, 경기는 116.2, 대구·경북은 100.8(19만7009명), 광주·전남·북은 90.9(17만7637명)이다. 서울이나 대구·경북보다 의원 10%를 더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줄이면서까지 지역구를 지킨 전북은 89.7(17만5292명)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적은 인구로 의원을 만든다. 서울보다 지수가 높은 건 경기(116.2)·인천(109.6)·제주(115.0)와 충청(101.4), 대구·경북(100.8)이다. 선거법을 의원들이 주무르게 하는 건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