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달포 전에 이장님이 전화한다.

“김 교수, 집에 땔나무 충분한가?!”

몇 차례 구들방에 불을 넣으면 나무는 바닥이었다. 어차피 겨울도 끝나가는데, 대충 넘어가야겠네, 하던 참에 걸려온 반가운 전화였다. 엔진 톱 가진 이가 산에 널브러진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기로 했다면서 환하게 웃는 목소리로 전화는 끊겼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소식은 없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전화한다. 톱 임자가 과수원 전지(剪枝)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조만간 그이를 만나 일정을 잡아보리라는 언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었다. 마침내 그날은 오고 말았다.

3월 초하루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뚝, 소리 나게 떨어진 날 오전에 구들방에 마지막 나무를 넣고 있는데, 대문이 소란스럽다. 경운기에 나무를 가득 싣고 이장님이 등장한 것이다. 오전 10시도 되기 전인데 어디서 저리 굵은 나무를 가져온 것일까?! 칠순이 넘은 이장님 내외가 이웃 마을에서 우리 집까지 손수 나무 배달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는가?!

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오후 1시에 이장님 경운기 뒤에 타고 뒷산에 오른다. 장발에 붉은 얼굴을 한 풍류남아가 엔진 톱을 들고 우리를 기다린다. 문제의 톱 주인이다. 그가 나무를 잘라낼 때 우리는 복숭아나무 전지로 잘려 나온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집으로 내려온다. 벌써 두 대의 경운기 분량 나무가 마당에 부려진다.

여기 더하여 다시 두 대 분량의 경운기에 소나무와 감나무 둥치가 차례로 실리고, 나의 발길은 한층 더 분주해진다. 전화기가 웅, 소리를 낸다. 옆 마을에서 나를 도와주러 강 농부가 출동한 것이다. 그 역시 엔진 톱을 가지고 왔다. 집 마당에서는 그가 차분하게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사이에 나와 이장님은 뒷산을 오르내린다.

마침내 경운기 네 대 분량의 나무가 마당에 몸을 푸니 마음이 뿌듯하고 온몸에 온기가 도는 듯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장님이 총총히 귀로에 오르고, 강 농부가 바지런하게 손을 놀려 톱질을 계속한다. 읍내 근처에 자리한 횟집에 광어회를 주문하고, 서둘러 장을 봐서 조촐한 상을 마주하고 강 농부와 마주 앉는다.

“촌에서는 절대 혼자 못 삽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농촌에서는 상상할 수 없지요.” 강 농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양(華陽)에 스며든 지 어언 10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나는 실로 여러 사람의 신세를 지고 살아오고 있다. 만약 그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안온한 삶은 정녕 불가능했을 터였다.

요즘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참 많고, 그들은 하나같이 혼자 잘 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우쭐댄다.‘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덕으로, 누군가에 힘입어, 누군가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도리를 상실하고 육축(六畜) 수준으로 전락한다. 그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다. 봄 시샘 바람이 제법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