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서울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데, 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미셀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있다고 했다. 내 의지로는 지금 갈 수 없는 형편, 사람에 이끌려 외출을 감행했다.

들라크루아라면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낭만주의 화가밖에 알지 못한 나였다.

그 오랜 프랑스혁명의 지지자의 그림을 보러 가야 하나? 그런데 아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 2월 26일 출생해서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화가. 구글에서 이 화가를 검색하면 “the ‘naif’ style”(나이브한 스타일)의 프랑스 화가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naif’는 프랑스말, ‘naive’로도 쓰며, 영어의 ‘naive’와 같은 말이다. ‘naive’는 우리말로도 “저 사람 참 나이브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그 ‘나이브’다.

블로그 ‘형설지공’에 이 프랑스말 ‘naive’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이 말은 라틴어 ‘nativus’, ‘태어난, 타고난, 자연적인’ 등의 뜻을 가진 말에서 나왔다.

이 말은 “태어난 상태 그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단순하고 세련되지 않다”는 뜻이다.

이른 봄, 아직은 추운 오후 네 시 반의 어스름을 뒤로 하고 한가람 미술관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아주 놀라고 만다. 거기에, 화가 자신이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라 부른 유년기의 파리의 풍경이 가득히 흐르고 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풍경화가이고, 파리와 그 인근의 거리 풍경을 평생에 걸쳐 그려온 사람이다.

원래 ‘벨 에포크’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유럽, 평화를 누리며 경제나 문화가 급속히 발전한 유럽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화가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유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파리, 나치가 점령하기도 한 전쟁 중의 파리가 포함된 시기를 ‘벨 에포크’라 불렀다고 한다.

유럽사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려는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를 이른바 ‘30년 전쟁기’라 부른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벌어진 종교전쟁이 본래의 ‘30년 전쟁’(Dreißigjahriger Krieg)이라면, 이 새로운 ‘30년 전쟁’은 유럽 현대사를 보다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용어인 것이다.

화가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이 전쟁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말일까? ‘나이브’한 스타일의 화가라는 설명처럼 그는 사회·역사적인 흐름에는 그토록 둔감했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전쟁의 참상에 주목할 때, 어떤 사람은 전장을 헤치고 흐르는 삶의 온기, 활기 같은 것에 주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 가득히 피어난 파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우리는 삶을 이렇게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관계망에 주목할 때 삶은 힘겹다. 하지만 각각의 개체들의 생명의 온기, 활기에 눈을 맞추면 삶은 아름답고 따뜻한 것이 된다. 이 다르게 보는 각도에 삶의 숨은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