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2월 2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주최한 ‘무학과 무전공’ 반대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은 전국교수연대회의에 참여한 각 교수 단체 대표들의 발언과 기자회견문 낭독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교수 단체 대표의 발언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시위 진압 차량이 나타나고 경찰의 불법 집회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알았다. 기자회견으로 신고된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구호 제창은 불법이라는 사실과 삼십여 명 규모의 구호 제창은 보통 그냥 넘어가지만, 중간에 울려 퍼진 ‘퇴진하라!’는 구호가 문제가 됐다는 점을 말이다.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외치는 구호에 놀라 시위 진압 차량까지 등장하는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정부의 의대 정원 이천 명 증원 발표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3주가 지났다. 정부와 의사들이 각자의 논리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이에 맞선 의사들의 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서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어느 쪽의 시각이 옳은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기사에서 읽게 된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이번 사태에 대한 시각은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관계자 발언의 요지는 의대 정원 증원의 결정은 지역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만 국가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법적 절차에 따른 합리적 발언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지금의 구조에서 국가란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말한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책을 시행하며 시스템을 만든다. ‘무학과 무전공’, ‘의대 정원 증원’은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만드는 정책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협의와 토의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국가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잔소리 말고 따르라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하려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경호실 직원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쫓겨난 사건이나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장에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던 대학원생이 강제로 쫓겨난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면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는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3월이 되었다. 그리고 설렘과 두려움을 품은 2024학번 새내기가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학생들과 우리 사회의 이슈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다. 토의 과정을 익히지 말고 권력을 손에 넣으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