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노쿠치 바쿠 (김명주 옮김)

12월 어느 날 밤 돈 때문에

호텔 마담을 시인이 찾아갔다

마담은 눈길도 안 주고 말했다

돈이라뇨

시인답지도 않은 말씀을 하시네요

속인들이나 하는 말 따위를

시인이 입에 올리시는 건 아니라고 봐요

돈하고는 거리가 먼 게 시인이니

시인은 가난하니까 그야말로

대단한 존경도 받는 거죠

시인은 그 말에 울컥하여

빌리러 온 일도 잊어버린 채

자못 점잔 빼고 있었다

야마노쿠치 바쿠는 오키나와 출신의 시인. 위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시에서 진정한 구어체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고. 시인도 돈이 있어야 먹고 사는 법, 하나 그는 돈이 없다. 돈 빌리러 찾아간 지인은 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가난하니까 시인은 존경받는 거라고. 이 말에 시인이 울컥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는 다시 시인의 자세를 갖추며 점잔 빼고, 돈 빌리는 걸 잊고 만다는 것….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