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검색결과

'윤희정' 검색결과 (10000건)

“칸의 주인 노리는 K-무비"···박찬욱이 열고 나홍진의 ‘호프’가 응답할까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축제인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12일(현지시간) 오후 7시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에서 개막한다. 지난해 한국 장편 영화가 단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던 아쉬움을 씻어내듯, 올해는 거장들의 신작부터 신예 감독들의 단편, 첨단 기술을 접목한 작품까지 대거 칸의 부름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불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만큼, 프랑스 칸에서 들려올 한국 영화의 낭보는 양국의 오랜 문화적 동반자 관계를 기념하는 뜻깊은 축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4년 만의 경쟁 부문 진출, 나홍진의 ‘호프’에 쏠린 눈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품은 단연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HOPE)’다. 한국 영화가 칸 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다투는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2022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후 4년 만이다.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호프’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포구 마을 호포항에 정체 불명의 외계 존재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SF 액션 대작이다. 약 5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등 국내 톱배우들은 물론,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합류해 글로벌 프로젝트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호프’는 함께 경쟁부문에 진출한 21편의 영화들과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상자 속의 양’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비터 크리스마스’,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피오르’ 등이 주요 수상 후보로 점쳐진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 영화에 대해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장르가 변주되는 놀라운 액션 영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나 감독은 데뷔작 ‘추격자’를 시작으로 ‘황해’, ‘곡성’, 그리고 이번 ‘호프’까지 장편 연출작 4편 모두가 칸에 초청되는 대기록을 세우며 ‘칸이 사랑하는 감독’임을 재확인했다. ‘호프’는 오는 17일 오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세계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심사위원장’ 박찬욱과 한국 영화의 확장성 올해 영화제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더욱 특별하다.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에 위촉됐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장은 영화제의 꽃이라 불리는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역할로, 박 감독의 위촉은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또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배우 박지민도 단편 및 학생 영화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힘을 보탠다. 비경쟁 부문에서의 활약도 눈부시다. 장르 영화의 대가 연상호 감독은 신작 ‘군체’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린 호러 액션물로,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등 화려한 출연진이 레드카펫을 밟는다. 연 감독 역시 ‘돼지의 왕’, ‘부산행’, ‘반도’에 이어 네 번째 칸 입성이다. 정주리 감독의 신작 ‘도라’는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평단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세기 초 프로이트의 상담 사례를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배우 김도연과 일본의 연기파 배우 안도 사쿠라가 호흡을 맞춘 국제 공동제작 프로젝트다. 줄리앙 레지 감독주간 집행위원장은 “여성의 욕망과 혼란을 대담하게 탐구한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미래 거장들과 신기술, K-시네마의 내일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신예들의 활약도 이어졌다. 학생 영화 경쟁 부문인 ‘라 시네프(La Cinef)’에는 홍익대학교 최원정 감독의 ‘새의 랩소디’와 미국 컬럼비아대 나딘 미송 진 감독의 ‘사일런트 보이시스’가 선정됐다. 전 세계 2750편의 출품작 중 단 19편만이 선정된 좁은 문을 뚫은 쾌거다. 또한, 가상현실(VR)과 확장현실(XR)을 다루는 ‘이머시브 경쟁’ 부문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우박 스튜디오의 ‘부우우-피이이’가 한국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는 한국 영화계가 전통적인 서사 방식을 넘어 첨단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는 12일 개막을 시작으로 오는 23일까지 12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호프’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세계적 거장들을 제치고 다시 한번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증명해낼지, 전 세계의 이목이 칸으로 향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12

“전통의 한 수, 활과 바늘이 만나다”···‘궁시장·침선장’ 공개행사

포항의 살아있는 역사인 무형유산 장인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전통의 정수를 시민들 앞에 펼쳐 보인다. 포항시는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포항시립중앙아트홀 전시실에서 ‘포항 궁시장·침선장 경상북도 무형유산 공개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경상북도 지정 무형유산 보유자 공개행사로, 지역 무형유산의 가치를 증명하고 전통 기술의 맥을 잇기 위해 기획됐다. 행사에는 포항 지역 무형유산 보유자인 ‘포항 궁시장’ 김병욱 씨(2018년 지정)와 ‘포항 침선장’ 조정화 씨(2023년 지정)가 오랜 시간 연마해온 전통 기술의 정수와 정교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궁시장(弓矢匠)은 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장인을, 침선장(針線匠)은 바느질로 전통 한복과 복식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김병욱 궁시장은 그동안 다양한 전통 화살 제작으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아 왔으며, 이번 행사에서는 유엽전(柳葉箭)·명적(嚆矢)·화전(火箭) 등 전통 화살과 제작 재료를 소개하고 세부 제작 과정을 직접 시연할 계획이다. 조정화 침선장은 동해안 지역 전통 복식문화를 바탕으로 두루막 도포 등 다양한 전통 의복을 복원·전시해 왔다. 이번 공개 행사에서는 모친으로부터 사사한 동해안 지역 고유의 침선 기술과 전통 복식, 장신구의 미의식과 특징을 소개할 예정이다. 최상수 포항시 문화예술과장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 무형유산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이를 관광 및 문화 콘텐츠와 연계해 포항만의 독창적인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존과 전승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11

나의 이름은 고독

언어의 탄생과 함께 나의 이름도 생겼다. 나의 이름은 고독. 사람들은 나를 힘들어하였다. 내가 태어날 때 ‘외로움’도 함께 태어났다. 외로움과 나는 닮았다. 사람들은 나를 외로움으로 착각했다. 외로움은 사람들이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떼처럼 끈덕지게 사람들 주위에서 배회하였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초대받기 전에는 사람들 주변에서 질척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외로움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멀리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은 나를 초대해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너는 외로움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멋진 친구야!’라고 속삭여 준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는 삶을 살았던 사람 A가 있었다. 그는 건강과 가정 모두 탄탄했고, 사교 모임과 취미로 일상이 바빴다. 그럼에도 그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힘들어하였다. 주변에는 맛난 음식과 사람들이 넘쳐났으나 그의 마음은 공허하였다. 만남이라는 광장에서 위선과 거짓으로 상처받았으며, 바르지 않은 타협과 양보를 강요받는 것이 싫었다. 그러던 A가 갑자기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A는 아내에게 말했다. “음식을 적게 먹으면 건강이 좋아지고, 사람을 적게 만나니 마음이 편해져” A의 아내가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A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A는 좋아하던 몇 가지 습관을 정리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A의 주변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그들의 빈자리를 A는 명상과 독서 그리고 산책으로 채웠다. 아내의 의구심 가득한 곁눈질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A의 고독한 여행은 계속되었다. 고독이라는 연료를 태우는 자동차가 이끄는 자유와 행복으로의 여행을. 나 고독도 처음부터 고독은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시작은 외로움과 함께 ‘혼자 있음’에서였다. 나와 외로움이 길을 가다 갈림길을 만났을 때, 외로움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음의 길을, 나는 침묵의 길을 선택하였다. 외로움은 군중 속에서 사람을, 소음 속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다 지쳐갔다. 하지만 나는 자기 자신에게 모든 걸 간직할 수 있는 사람 속에서 평화를 찾았다. 외로움에 지쳐 사람들이 무너지는 도시를 높은 곳에서 나는 보았다. 나는 ‘혼자 있음’이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외로움은 여기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안다. ‘혼자 있음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나와 함께 친구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는 것을. 나의 친구 A는 어느 날 ‘고독이 외로움에게’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한 통 썼다. 그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다. “외로움아/ 사실 나 고독은 너의 오랜 미래야/ 사람들이 너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 시작할 때, 그때 너는 서서히 나로 변할 거야/ 어느 봄날 저녁 혼자 마시는 차 한잔 속에서/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밤 창밖의 바람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덮고 오래 침묵하는 순간 속에서/ 너는 조금씩 나로 자랄 거야/ 잊지 마/ 혼자는, 결핍이 아니라 그저 공간이라는 것을/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깊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늦게 도착하는 평화라는 것을/ 굿바이! 외로움/” /공봉학 변호사

2026-05-11

포항시향, 거부할 수 없는 ‘사랑과 운명’의 서사···관현악 성찬으로 차려낸다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 ‘사랑과 운명’이라는 클래식 음악사의 영원한 화두가 포항에서 웅장한 관현악의 성찬으로 펼쳐진다. 포항시립교향악단(상임지휘자 차웅)은 오는 5월 14일 오후 7시 30분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제223회 정기연주회 ‘운명’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음악적 서사의 깊이를 더해,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불멸의 사랑과 그 뒤에 숨겨진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번 무대의 백미는 한국 타악계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최정상의 마림바 연주자로 손꼽히는 퍼커셔니스트 김미연의 협연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20여 년간 활동하며 지적인 해석과 압도적인 테크닉을 선보여온 그는 이번 무대에서 에릭 사뮤의 ‘마림바 협주곡 운명’을 연주한다. 에릭 사뮤는 현대 타악 음악의 거장으로, 그의 협주곡은 타악기 특유의 폭발적인 리드미컬함과 마림바만이 가진 따뜻하고 서정적인 음색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벨기에 유니버설 마림바 콩쿠르 우승자라는 화려한 경력을 증명하듯, 김미연은 나무 건반 위를 유영하는 현란한 손놀림을 통해 타악기가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경지의 끝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차웅 지휘자의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리드 아래 펼쳐질 본 프로그램은 클래식 거장들의 운명적 서사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공연의 포문을 여는 비제 오페라 ‘카르멘’ 서곡은 투우사의 당당한 행진곡풍 리듬으로 시작되지만, 그 이면에는 주인공 카르멘의 비극적 죽음을 암시하는 ‘운명의 동기’가 강렬하게 흐른다. 화려한 외양 속에 감춰진 비극적 복선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은 클래식 음악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인 작품이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불안정한 선율을 통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갈망과 고통을 극대화하며, 마침내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영혼의 구원을 신비롭고도 웅장한 선율로 그려낸다.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 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바탕으로 한 차이콥스키 최초의 결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몬테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의 간의 격렬한 싸움을 묘사한 빠른 템포와 연인들의 애절한 감정을 담은 ‘사랑의 테마’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수 섞인 멜로디와 포항시향의 웅장한 사운드가 관객의 감성을 자극할 예정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11

보이지 않는 손, AI가 짠다···물류·유통의 새 질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전 세계 항만이 멈추고 마트 진열대가 비어가던 풍경을 우리는 아직 또렷이 기억한다. 마스크 한 장, 손 소독제 한 통을 구하려 줄을 서던 그때, 지구촌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공급망(Supply Chain)’에 우리 일상이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고 더 정교하게 다듬는 새로운 동력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물류·유통은 본질적으로 ‘예측 게임’이다. 어떤 상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팔릴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재고도 줄이고 배송도 빨라진다. 문제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날씨, 명절, 환율, 입소문, 심지어 SNS의 짤막한 글 한 줄까지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직관과 엑셀 표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AI는 바로 이 빈틈을 메우는 도구로 떠올랐고,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과 맞물려 그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 종이 장부에서 ‘파운데이션 모델’로 수요 예측은 기업의 오래된 고민 중 하나다. 과거 유통 담당자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판매량에 약간의 보정을 더해 발주 수량을 정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방식은 단순 추세를 연장하는 것이라 사실상 예측이라 부르기 어려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 결과 폐기·결품·인력 낭비라는 세 가지 고질병이 늘 따라붙었다. 너무 많이 들이면 버려지고, 너무 적게 들이면 손님을 놓친다. 그 사이를 가르는 칼날은 늘 흐릿했다. 이마트는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자체 예측 엔진 ‘사이캐스트(Saicast)’를 개발해 7만여 개 상품의 판매 패턴을 AI에 학습시켰다. 요일·가격·날씨·시즌·행사 여부 등 40여 개 변수를 동시에 따져 다음 주 판매량을 추론한다. 신세계그룹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달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와 손잡고 상품 소싱(Sourcing)부터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 고객관리에 이르는 6대 영역 전반에 첨단 AI를 접목하기로 했다. 유통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AI가 흐르게 하겠다는 선언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이 분야의 교과서로 통한다. 아마존은 4억여 개 상품의 일일 수요를 예측하는 자체 시스템 ‘SCOT(Supply Chain Optimization Technology)’을 30년간 다듬어 왔다. 지난 2024년 6월에는 새로운 ‘파운데이션 AI 모델’을 공개했는데, 판매 이력에 더해 날씨와 휴일 데이터까지 통합해 지역별 예측 정확도를 20%, 대형 할인 행사 예측을 10%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해안의 여름철 자외선 차단제와 콜로라도 겨울철 스키 고글을 따로 예측하는 식이다. 같은 미국이라도 지역마다 ‘내일 팔릴 것’이 다르다는 점을 AI가 읽어낸다. 여기에 생성형 AI 매핑 기술 ‘웰스프링(Wellspring)’까지 더해 단 몇 달 만에 280만 개의 아파트 주소를 자동으로 정리해, 라스트마일 배송 효율을 한층 끌어올렸다. ■ 공급망 최적화, AI가 바다와 하늘을 읽다. 수요 예측이 ‘얼마나 팔릴지’를 푸는 문제라면, 공급망 최적화는 ‘어떻게 옮길지’를 푸는 문제다.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전 세계 700여 척의 선박에서 매일 20억 건의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분석한다. 부품 이상이 나타나기 3주 전에 85% 정확도로 고장을 예측해 정비를 미리 끝낸다. 그 결과 선박 가동 중단 시간이 30% 줄고 연간 약 3억 달러를 절감한 것으로 평가된다. 컨테이너 적재 순서, 항만 혼잡, 항로 변경까지 AI가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항해 한 번에 한반도 면적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선박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의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 유니레버는 SNS 트렌드와 기상 데이터를 결합한 ‘디맨드 센싱’ 플랫폼으로 예측 오차를 30% 줄이고 재고 비용 3억 달러를 아꼈다. 월마트 역시 AI 수요 예측으로 결품률을 낮춰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공급망이 ‘일직선 파이프라인’에서 ‘실시간 신경망’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최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Amazon Connect Decisions’라는 에이전틱 AI 솔루션을 공개해, 25개가 넘는 공급망 도구를 ‘AI 동료(Teammate)’로 묶어 인간 실무자와 24시간 함께 일하도록 만들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디지털 동료가 재고를 감시하고, 이상 신호를 추리며, 필요한 결정을 사람에게 추천한다. ■한국 물류, ‘에이전틱 AI’ 시대로 국내 기업들의 행보도 빠르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으로 시장을 연 마켓컬리는 자체 개발한 AI 분석 시스템 ‘데이터 물어다 주는 멍멍이(데멍이)’로 고객 주문을 정교하게 예측한다. 상품 종류, 연령별 수요, 날씨, 시기별 이슈, 고객 반응률, 기획전 등 수십 개 변수를 일·주·월 단위로 따져 발주량을 결정하고, 입고된 상품의 시간대·지역별 판매 추이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해 재고와 인력 운영을 미리 조정한다. 그 결과 일반 대형마트 폐기율이 3% 내외, 슈퍼가 7~8%에 달하는 가운데 마켓컬리는 신선식품 폐기율을 7년 연속 1%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다. AI가 환경 부담과 운영 비용을 동시에 줄이는 좋은 본보기다. CJ대한통운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에이전틱 AI(Agentic AI)’ 전략을 내세웠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 운영 체계다. 미들마일 운송 브랜드 ‘더 운반’은 AI·빅데이터 기반 라우팅으로 운임과 경로를 동시에 최적화한다. 라스트마일 ‘오네’는 2025년 업계 최초로 주 7일 배송 ‘매일오네’를 도입했다. 군포 풀필먼트센터에서는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포장 공정에서 완충재 보충 작업을 실증하며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로봇이 단순한 팔다리가 아니라 ‘판단하는 동료’가 되어가고 있다. ■ 포항·경북, 산업 물류의 새 무대 이 흐름은 포항에도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2월 제철소 철강 제품 물류관리에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미 포항제철소에서는 AI 기반 크레인 자동 운송 시스템이 가동 중인데, 영상 인식과 라이다(LiDAR) 센서로 비정형으로 쌓인 코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한 번에 최대 8톤을 안전하게 옮긴다. 과거 12시간이 걸리던 복잡한 소량 주문 설계가 AI 덕분에 단 1시간으로 단축됐고, 용광로에서 쇳물을 빼는 출강 과정까지 AI가 스스로 최적화하고 있다. 그룹 물류 자회사 포스코플로우는 통합 물류 시스템 ‘플라워(Flower)’로 그룹 전반의 선박·차량·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동하고 있다. 철강뿐 아니라 영일만항을 거쳐 가는 수출 컨테이너, 경북 내륙의 농수산물 산지 출하, 의성·청송 사과의 출고 타이밍 조절까지 AI 공급망 기술이 적용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중소 판매자가 대형 플랫폼의 AI 풀필먼트 인프라를 빌려 쓰는 네이버의 ‘NFA(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 같은 모델은 지역 소상공인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있다. 거대 IT 기업의 전유물이던 AI 물류 역량이 작은 가게의 무기가 되는 시대다. 포스텍과 지역 연구기관이 보유한 데이터 분석 역량이 지역 물류 스타트업과 결합한다면, 동해안에 한국형 ‘AI 물류 허브’가 자리 잡는 그림도 결코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 과제와 전망···사람과 AI의 동행 물론 그늘도 있다. 데이터 품질이 곧 예측 품질을 결정하기에,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관건이다. 전쟁·기후 재난·관세 같은 외부 충격에는 어떤 모델도 완벽히 대응하기 어렵다. 일자리 변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단순 분류·운반 직무는 줄지만, 데이터 분석가, 로봇 운영자, AI 트레이너 같은 새 직무가 생겨난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교육 투자, 그리고 중소 물류·유통기업의 AI 도입을 돕는 공공 인프라가 절실한 이유다. 결국 AI 물류·유통 혁신의 진짜 가치는 ‘빠른 배송’을 넘어선다. 폐기 식품을 줄여 환경 부담을 낮추고, 품절로 인한 헛걸음을 막아 시민의 시간을 아끼며, 영세 판매자에게도 대기업 수준의 예측 도구를 손에 쥐여 준다. AI가 짜는 보이지 않는 연결망은, 결국 우리 일상의 풍경을 조용히 바꾸어 가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5-10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 9년 만에 대구 온다···6월 6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모당서 미사 봉헌

전 세계를 순례하며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온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이하 성모상)’이 오는 6월 대구를 찾는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이번 순례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신자들의 영적 쇄신을 기원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따르면, 성모상은 오는 6월 6일 대구교구의 성지인 성모당을 방문한다. 이날 행사는 오전 9시 30분 성체 현시를 시작으로 쎌기도와 성체 강복으로 이어지며, 오전 11시에는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의 집전으로 장엄 미사가 봉헌된다. 이번 대구 방문은 지난 2017년 이후 약 9년 만에 이뤄지는 한국 순례의 일환이다. 대구 행사를 주관하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대구지부 관계자는 “첫 토요일 신심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모두가 성화의 길을 걷도록 축복해 주시기 위해 성모상이 대구대교구를 찾으신다”며 “이번 순례가 한반도와 전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이의 마음속에 주님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성모상의 한국 방문은 역사적으로 매우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1925년 스페인 폰테베드라 도로테아수녀원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루치아 수녀에게 발현한 사건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기 때문이다. 당시 성모 마리아는 루치아 수녀에게 ‘첫 토요일 다섯 번의 보속’을 요청하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1947년 시작된 국제 순례 성모상과 한국의 인연은 깊다. 우리나라는 1953년 첫 방문을 시작으로 1996, 1997, 2000, 2017년에 이어 올해로 통산 여섯 번째 성모상을 맞이하게 됐다. 성모상의 이번 한국 순례 일정은 지난 4월 26일 의정부교구 파주 파티마 평화의 성당에서 시작됐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 본부장 이한택 주교의 주례로 봉헌된 환영 미사를 기점으로 성모상은 전국적인 순례 길에 올랐다. 성모상은 4월 30일부터 6월 24일까지 약 두 달간의 일정으로 대구를 포함한 전국 15개 교구와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부산교구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 본부 등을 차례로 순회한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성모상은 다시 포르투갈 파티마로 돌아갈 예정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10

영일대 밤바다에 흐른 ‘치유의 빛’···포항 ‘2026 시민소통문화제’ 성황

포항불교사암연합회(회장 덕화 스님)가 주최한 ‘2026 시민소통문화제’가 지난 9일 포항의 상징인 영일대 해수욕장을 희망의 등불로 가득 채우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는 불교의 자비 정신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역 사회의 화합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낮부터 시작된 ‘불교문화 체험마당’은 가족 단위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연등을 만드는 아이들부터 사찰 음식의 담백한 맛에 매료된 시민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불교 전통의 매력을 즐겼다. 시민 김민주씨(59·포항시 북구)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전통차를 시음하니 마음이 절로 평온해지는 기분”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해 질 녘 시작된 문화 공연은 축제의 열기를 정점으로 이끌었다. 국가무형문화재급 외줄타기 공연의 아슬아슬한 묘미는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고, 설운도 등 인기 가수들의 무대는 세대를 초월한 떼창을 만들어냈다. 영일대 앞바다는 파도 소리 대신 시민들의 웃음소리와 노랫가락으로 가득 찼다. 축제의 백미는 단연 ‘제등행렬’이었다. 봉축법요식을 마친 후, 각 사찰에서 정성껏 꾸민 거대한 장엄등과 시민들이 든 형형색색의 수기등이 행렬을 이뤘다. 영일대 해안로를 따라 이어진 이 ‘빛의 강’은 어두운 밤바다와 대비되며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했다. 시민들은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각자의 소망을 등불에 실어 보냈다. 포항불교사암연합회 회장 덕화 스님은 “오늘 우리가 밝힌 이 등불이 개인의 안녕을 넘어 이웃과 사회를 환히 비추는 지혜의 빛이 되길 희망한다"며 “포항 시민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 아래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새긴 하루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10

“인생은 소풍처럼, 남은 날은 꽃길만” ···포항 어버이주간보호센터 어르신 서예전 열려

“살아보니 세상이 눈 깜짝할 새더라”, “그래도 우리 많이 웃자”, “남은 인생은 소풍처럼 즐겁게.” 삐뚤빼뚤하지만 힘이 들어간 붓끝마다 한 평생 풍파를 견뎌온 어르신들의 진심이 묻어난다. 화려한 기교는 없어도, 먹향 가득 배어 나온 글귀에는 세상 그 어떤 명필보다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포항시 남구 연일읍에 위치한 재가장기요양기관인 어버이노인주간보호센터(센터장 배귀옥) 어르신들이 신록이 짙어가는 5월을 맞아 특별한 나들이에 나섰다. 오는 5월 20일까지 포항시산림조합 숲갤러리 2층에서 열리는 ‘어버이주간보호센터 어르신 서예작품전’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 39명이 정성껏 준비한 서예 작품 45점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시장 벽면을 채운 “아름다운 세상 즐겨요”, “항상 꽃길만”과 같은 문구들은 어르신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가족과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응원이다. 어버이주간보호센터는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과 인지 기능 유지를 위해 꾸준히 서예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2025년까지는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이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줬고, 올해부터는 포항서예가협회 ‘붓사랑봉사단’이 바통을 이어받아 매주 수요일마다 어르신들과 먹을 갈고 화선지를 채우며 교감해 왔다. 지도강사 김일란 서예가 “어르신들의 글씨는 삶 그 자체” 이번 전시를 위해 어르신들을 지도해 온 김일란 서예가(포항서예가협회)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처음 붓을 잡으실 때는 손이 떨려 선 하나 긋기 힘들어하셨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본인의 인생관이 담긴 문장을 당당히 써 내려가시는 모습을 뵈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어르신들의 서예는 단순히 글자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비록 획이 조금 비뚤고 투박할지라도,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순수한 애정과 진솔함이 꽉 차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쓴 예술입니다.” 배귀옥 어버이주간보호센터장은 이번 전시가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 센터장은 “치매나 노인성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이 붓글씨를 통해 집중력을 되찾고, 본인의 이름이 걸린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약과 같다”며 “아름다운 오월, 많은 시민이 오셔서 어르신들이 전하는 따뜻한 인생 메시지를 공유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10

“‘외로움’을 넘어 ‘고독’의 즐거움으로”··· 윤희일 작가 신작 소설 ‘행복한 고독사’ 출간

우리는 오랫동안 ‘고독사’라는 단어를 사회적 고립이 낳은 비참한 종말이자, 준비되지 않은 비극으로만 여겨왔다. 연일 보도되는 방치된 죽음의 소식은 대중에게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심어주곤 한다. 하지만 여기, 고독사라는 서늘한 단어에 전혀 다른 온기를 불어넣으며 죽음을 ‘찬란한 축복’이자 ‘주체적인 마침표’로 정의하는 소설이 등장했다. 34년간 경향신문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한국과 일본 사회의 이면을 추적해온 윤희일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행복한 고독사'(마르코폴로)를 펴냈다. 이번 신작은 한 동네에서 발생한 연쇄 고독사의 비밀을 추적하는 흥미로운 서사 구조 속에 ‘준비된 죽음’이 주는 존엄함과 고독의 진정한 가치를 담아냈다. 소설은 한 동네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고독사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건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독자들은 이들의 죽음이 단순히 외로운 방치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된 ‘행복한 고독사’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한 사람들을 돕는 조력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윤 작가는 일본 특파원 시절 목격했던 ‘슈카쓰(終活·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활동)’ 문화에서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장례 절차를 스스로 정하고 주변을 정리하며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일본의 문화적 현상을 한국 사회의 현실과 접목한 것이다. 작가는 ‘함께’라는 강박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죽음을 타율적으로 만드는지 날카롭게 분석하며, 고독사가 ‘준비된 독립’이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의 핵심은 고독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에 있다. 윤 작가는 타인이 없어 느끼는 결핍인 ‘외로움’과 혼자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고독’을 엄격히 구분한다. 그는 “인생 후반전에서 가장 필요한 근육은 고독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고독을 즐기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소설은 홀로 밥을 먹고, 사색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러한 ‘단정한 고독’을 유지하며 유품 정리, 재산 처분, 연명 치료 거부 등 현실적인 사안들을 스스로 결정하는 행위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후의 권력’이자 존엄임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은 윤희일 작가가 4년에 걸쳐 취재와 자료 정리, 집필에 매달린 결과물이다. 특히 의사와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학적·심리학적 자문을 거쳐 내용의 전문성과 사실성을 높였다. 윤 작가는 “이 책의 집필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의 개입이나 이용은 전혀 없었다”며 “글을 창작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것이 작가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저자 윤희일은 평생을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살피는 데 헌신해온 기자 출신 작가다.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자살, 간병살인, 고독사 등 ‘죽음의 현장’을 치밀하게 취재해왔으며, 한국기자상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보도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이전 작품인 ‘십 년 후에 죽기로 결심한 아빠에게’는 중국과 대만 등 6개국에 번역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치매 가족의 비극을 다룬 ‘코스모스를 죽였다’는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현재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로 있으며, 한국 경부선 명예역장, 일본 하야부사역 명예역장, 일본 와카사철도(주) 관광대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9

포항문화재단 문화예술팩토리, 전 세대 공감하는 ‘예술 놀이터’로 변신

포항문화재단(대표이사 이상모)이 운영하는 문화예술팩토리가 단순한 관람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삶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창작 거점으로 거듭난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이 단순 교육을 넘어 ‘심리적 치유’와 ‘미래 역량 강화’로 확대되는 가운데, 포항문화재단은 올해 정부 및 광역 단위 주요 공모사업에 연이어 선정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참여형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26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와 경북도·경북문화재단의 ‘2026 경북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운영 기관으로 각각 낙점됐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팩토리를 중심으로 중장년의 정서적 회복부터 아동의 디지털 창의력 향상까지 아우르는 고품격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먼저 중장년층을 위한 ‘음악을 듣고 문장을 잇다: 힐링 음악 도슨트 되기’는 오는 5월 13일부터 6월 24일까지 매주 수요일에 진행된다. 음악 감상과 인문학적 독서를 결합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자신만의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하며 제2의 자아를 발견하는 도슨트 양성 과정에 집중한다. 미래 세대인 아동들을 위한 미래형 교육도 눈길을 끈다. ‘어린이 예술 탐험대: AI 북, 아트, 비트!’는 6월 13일부터 시작되며, 지역 동화작가와 함께하는 업사이클링 팝업북 제작은 물론, 생성형 AI를 활용해 직접 음악을 작곡해보는 예술·기술 융복합 커리큘럼으로 운영된다. 또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레디, 액션! – 우리들의 첫 단편영화’ 프로그램은 시나리오 작성부터 촬영, 편집까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넷플릭스 1위작 ‘윗집 사람들’의 선승연 작가가 강사진으로 합류해 지역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실제 영화 제작의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포항문화재단은 오는 6월부터 아동·청소년 대상 창작 중심 사업인 ‘꿈의 스튜디오 포항’을 통해 지역 기반 문화예술교육의 외연을 더욱 확장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체험을 넘어 지역의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박은숙 포항문화재단 사무국장은 “문화예술교육은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핵심적인 동력”이라며 “문화예술팩토리가 포항 시민 누구나 창작의 즐거움을 누리는 열린 문화 공간이자 지역 특색이 담긴 창의 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각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상세 내용은 포항문화포털을 확인하거나 포항문화재단(054-289-7905)으로 문의하면 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9

“영천 은해사 현 주지가 주지 선거때 ‘지지호소’하며 ‘1000만원 주더라’” 주장 나와 파문

“올 1월 선거가 있었던 은해사 주지 선거에 뜻을 둔 조카상좌인 B스님이 지난해부터 제게 ‘은해사 방사나 말사 주지 자리를 마련해드리겠다’며 지지를 부탁했죠. 선거가 임박한 2025년 12월 말에는 직접 찾아와 1000만 원이 든 돈 봉투까지 건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돈을 받은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선 뒤 하는 일을 지켜보니 은해사가 산중 내분으로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아 은해사 문중을 지키고 앞으로 주지선거에서 돈 선거는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소를 결심했습니다.” 지난 5월 4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에 은해사 주지 선거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징계요청서를 제출한 A스님의 주장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영천 은해사가 주지 선거를 둘러싼 금품 수수 의혹으로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지난 1월 산중총회 과정에서 당선된 B스님이 선거권을 가진 스님에게 거액의 돈 봉투를 건넸다는 구체적인 폭로가 나온 것. 신도들도 층격속에 사태를 주목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 1000만 원 든 ‘백팩’···구체적 폭로와 계좌 내역 공개 은해사 재적승인 A스님이 현직 주지인 B스님을 금품 선거 혐의로 조계종 호법부에 고발한 징계 요청서와 A스님과의 전화 취재에 따르면, A스님은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4시경 경북 경산의 한 사찰 다실에서 B스님으로부터 현금 1000만 원이 든 봉투를 직접 받았다. A스님은 당시 상황을 매우 상세히 진술했다. 그는 “B스님의 승용차를 운전해 온 보살이 백팩에서 봉투를 꺼내 B스님에게 건넸고, B스님이 다시 나에게 전달했다”며 이 과정에서 B스님이 “사숙님, 한 표 부탁드립니다”라는 명확한 지지 호소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A스님은 해당 금품을 받은 직후인 12월 29일,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두 곳의 은행 계좌에 각각 500만 원씩 입금한 내역을 공개했다. 또한 당시 현장에는 자신과 B스님 외에도 해당 사찰의 주지 스님과 운전을 한 보살 등 총 4명이 동석해 있었다며 목격자의 존재도 분명히 명시했다. 특히 그는 “4년 전 은해사 주지 선거 당시에도 B스님이 경기도 안성의 한 사찰로 찾아와 500만 원을 건네며 지지를 부탁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B스님 측 “악의적 보복성 폭로···사실관계 확인 회피” 이러한 의혹에 대해 은해사 주지 B스님은 결백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B스님은 A스님의 폭로를 ‘말사 주지 자리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앙심 섞인 보복’으로 규정했다. B스님 측은 “A스님은 은해사 말사의 여러 사찰을 거론하며 주지 자리를 요구했다. 본인에게 주어도 운영이 안 될 뿐 아니라 해당 사찰들은 2029년까지 주지 임기여서 교구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금품 전달 의혹을 받는 B스님과의 전화 통화에서 “1000만 원 준 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찾아와서 취재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A스님은 ‘주지 운운’은 그쪽에서 먼저 제안했던 것이라며 맞섰다. A스님은 “B스님이 이번 은해사 주지 선거 전에 C스님 통해 은해사에 방(방사) 꾸며 잘 모시거나 아니면 말사라도 살게 해드리겠다. 주지 인수인계하면 바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선 뒤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금품 수수 시 당선 무효 수준 징계”··· 호법부 조사 주목 이번 사태는 조계종의 청정 가풍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다. 조계종 선거법은 당선 목적으로 금품을 제공할 경우 3년 이상 10년 이하의 공권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주지직 박탈과 공직 수행 불가능을 의미한다. 또한 가중처벌 조항에 따라 제공한 금품 가액의 10배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어, 1000만 원 수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1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은해사는 지난 1월 산중총회 이후에도 선거소청 등의 문제로 주지 임명장 수여가 69일이나 지연되는 등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취임 직후 불거진 이번 ‘돈 봉투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B스님의 주지직 수행은 물론 교구 행정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교계 안팎에서는 승가의 위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호법부의 엄정하고 신속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희정·조규남기자

2026-05-08

프랑스 미술계 거장 드바이유 방한···경주 더안미술관서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 논한다

경주 더안미술관이 세계적인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인 앙리-프랑수아 드바이유를 초청해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다. 더안미술관은 오는 5월 13일, 프랑스 미술계의 거물급 인사인 드바이유와 국내 중견 작가 및 평론가들이 참여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5월 4일 개막한 박동수 작가의 개인전과 연계해 한국 미술을 세계 무대에 알리고 차세대 작가들의 국제적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의 진행으로 열리는 이번 간담회에는 초청 인사인 드바이유를 비롯해 세계적인 사진가 배병우 작가, 더안미술관 백진호 관장, 그리고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박동수 작가가 패널로 참여한다. 드바이유는 그동안 유럽 미술계에 한국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 온 인물로, 5월 12일부터 17일까지의 방한 기간 중 더안미술관에서의 일정을 핵심 프로그램으로 소화할 예정이다. 그는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빛을 발할 차세대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보에 나선다. 백진호 더안미술관장은 “이번 간담회는 단순한 전시 연계 행사를 넘어 한국 미술의 향후 방향성과 국제적 확장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라며 “전통 한옥 구조의 미술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동시대 미술과 국제적 담론이 만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간담회의 배경이 되는 박동수 작가의 개인전은 그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정사각형 회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은 200개의 큐빅 회화가 공간 전체를 메우고 있다. 개별 작품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회화로 작동하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다. 지하 전시장은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보다 밀도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주요 작품 20점이 선별 전시됐다. 박동수 작가는 베르사이유 미술학교와 파리8대학 교를 거치며 프랑스에서 활동해 온 작가로, 2023년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반복과 축적, 그리고 깊이 있는 검은색 화면을 통해 ‘세계가 생성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며 도교적 철학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국립 기메박물관, 서울대 분당병원, 더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전통 목조 구조와 자연광이 어우러진 더안미술관의 한옥 공간에서 열려, 동시대 회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깊은 울림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7

경주·포항, 아태 관광의 심장으로··· ‘2026 PATA 연차총회’ 막 오른다

지난해 ‘2025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국제적 위상을 높인 경북 경주와 포항이 다시 한번 아시아·태평양 지역 관광 산업의 거점으로 주목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경북도, 경주시, 포항시와 공동으로 오는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와 포항 라한호텔 일대에서 ‘2026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연차총회’를 개최한다. 1951년 설립된 PATA는 전 세계 정부 기관, 관광공사, 항공사, 학계 등 800여 개 회원을 보유한 아태 지역 최대 규모의 관광 협력 기구다. 특히 올해는 협회 설립 75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총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회복력 있는 미래를 향한 여정’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필리핀 관광부, 태국 관광청 등 주요국 정부 인사와 세계관광기구(UN Tourism),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 관계자, 그리고 트립어드바이저, 부킹닷컴과 같은 글로벌 관광 기업 전문가 500여 명이 참석해 관광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이번 총회는 장소 선정부터 전략적이다. 5월 11일에는 미래 산업과 해양 관광의 중심지인 포항 라한호텔에서 개회식과 청소년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다. 차세대 관광 인재들이 산업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식을 교류하는 장이 펼쳐질 예정이다. 5월 12~13일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로 자리를 옮겨 본회의를 진행한다. ‘AI와 관광의 미래’, ‘에이펙 이후의 민관협력’ 등 최신 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정책 토론이 이어진다. 문체부는 이번 총회를 통해 그간 서울 등 수도권에 편중되었던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지역으로 유도하는 ‘지역관광시대’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복안이다. 참가자들을 위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12일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는 한복 명장 5인의 시대별 한복 패션쇼와 이희문컴퍼니의 독창적인 국악 공연이 포함된 환영 만찬이 진행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과 불국사 탐방은 물론 꽃 다식 만들기, 자개 손거울 제작 등 한국의 전통 미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김대현 문체부 제2차관은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주에서 아태 관광 전문가들을 맞이해 뜻깊다”며 “이번 총회가 지역 관광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국내 관광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7

"수천 개 자개로 길어 올린 빛의 숨결”··· 권유미, 달항아리에 수행의 시간을 담다

자개 빛으로 빚어낸 달항아리의 깊은 울림. 중진 권유미(53) 작가가 신작들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기획으로 마련된 권유미 제44회 개인전 ‘빛을 담다(The Moon Jar of Light)’가 오는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100호 대작을 포함한 3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오랜 시간 탐구해온 ‘빛의 회화’와 달항아리 연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권유미는 꽃을 매개로 인간 내면의 감성과 존재의 시간을 탐색해온 작가다. 초기에는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 조형성이 두드러졌다면, 2016년 이후부터는 자개와 금박 등 재료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왔다. 최근에는 조선 백자의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작업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빛’으로 완성된 달항아리가 놓여 있다. 화면 속 항아리는 단순한 백자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수천 개의 자개 조각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반사와 결은 보는 위치와 조명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며 화면 전체에 살아 있는 호흡처럼 번져간다. 평면 회화이면서도 공간감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권유미의 달항아리는 독특한 감각을 드러낸다. 작가는 손톱보다 작은 자개 조각들을 화면 위에 하나씩 붙이며 긴 시간 반복의 과정을 이어간다. 단순한 장식 효과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비우고 채우는 시간을 견디며 화면 안에 고요한 밀도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화려한 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차분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함께 지닌다. 달항아리가 상징하는 비움과 충만의 의미 역시 이러한 작업 방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전시에 출품되는 ‘상원(上元)’ 연작은 정월대보름 달빛에서 출발했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번지는 달빛처럼, 작가는 작품 안에 위로와 회복의 감정을 담아낸다. 무수한 자개의 빛이 하나의 둥근 형상으로 응집되는 순간, 달항아리는 단순한 사물을 넘어 생명과 재생의 상징으로 확장된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권유미는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청년작가상, 한국현대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울화랑미술제, 아트부산, 대구아트페어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대구시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권유미 작가는 “달항아리는 오래전부터 온기와 포용, 비움과 충만을 상징해온 존재”라며 “무수한 자개의 빛이 하나의 달항아리로 완성되는 순간, 생명과 희망, 재탄생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에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오히려 작품으로부터 다시 힘을 돌려받는 느낌이 있다”며 “그 순환의 감각이 지금까지 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7

발라드의 황제 변진섭, 구미서 ‘시간여행’ 떠난다

'발라드 황제’ 변진섭이 오는 5월 31일 구미를 찾는다. 198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에 발라드 전성시대를 열었던 그는 이번 무대에서 30여 년 음악 여정을 집대성한 히트곡들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추억 속으로 안내할 예정이다. 공연 기획사 (주)좋은콘서트에 따르면, ‘2026 변진섭 전국투어 콘서트 변천사 시즌 2.5 : 시간여행 - 구미’ 공연이 오는 5월 31일 오후 5시 구미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개최된다. 이번 공연은 변진섭의 음악 인생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한 ‘감성형 콘서트’를 표방한다. 단순히 히트곡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곡과 곡 사이의 연결을 자연스러운 이야기 구조로 연출한 것이 핵심이다. 198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해 발라드 전성시대를 열었던 그의 37년 음악 여정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공연은 ‘시간여행’이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무대로 꾸며진다. ‘홀로 된다는 것’, ‘너에게로 또다시’, ‘희망사항’, ‘새들처럼’ 등 한국 가요사의 이정표가 된 명곡들이 변진섭 특유의 담백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로 재해석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시즌 2.5 공연은 세대 간의 공감을 유도하는 무대 연출을 강화해, 부모 세대에게는 향수를, 자녀 세대에게는 명곡의 감동을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변진섭은 1988년 데뷔 이후 한국 가요사 최초의 공식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발라드의 시대를 개척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최근에는 화려한 퍼포먼스보다는 음악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공감형 콘텐츠’가 공연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그의 진정성 있는 무대가 다시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앞서 진행된 타 지역 투어에서도 관객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목소리”, “전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동적인 공연”이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이번 구미 공연 역시 자극적인 연출보다는 음악 자체와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는 관객들에게 최적의 선택지가 될 전망이다. 예매 및 공연 관련 상세 문의는 전용 콜센터(1833-4581)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7

포항의 밤, 연등으로 물들다···포항불교사암연합회 ‘2026 시민소통문화제’ 개최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포항 지역 불교계가 자비와 화합의 불을 밝힌다. 포항불교사암연합회(회장 덕화스님)는 오는 5월 9일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누각 앞 광장에서 지역민과 함께하는 ‘2026 시민소통문화제’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문화제는 지난 4월 포항시청과 경찰서, 해양경찰서 등 주요 공공기관에서 진행된 연등 점등식의 연장선으로,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의 정점이 될 전망이다. 연합회는 이번 행사를 통해 종교적 경계를 넘어 시민 모두가 소통하고 치유하는 축제의 장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영일대 해수욕장 일대에서 펼쳐지는 ‘불교문화 체험마당’으로 막을 올린다. 시민들은 연등 만들기, 전통차 시음, 사찰 음식 체험 등 불교의 전통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식전 공연은 축제의 열기를 더한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는 외줄타기 공연을 비롯해, 대중가수 설운도, 오재미, 그리고 국악인들이 출연해 흥겨운 무대를 선보인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번 공연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화합의 무대로 꾸며질 예정이다. 본 행사인 ‘봉축법요식’은 오후 6시에 봉행된다. 법요식에는 포항불교사암연합회 회원 사찰의 대덕 스님들과 장상길 포항시장 권한대행, 지역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해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포항시의 발전과 시민의 안녕을 기원할 예정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제등행렬’은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된다. 각 사찰에서 정성껏 준비한 장엄등과 시민들이 손에 든 형형색색의 연등 물결이 영일대 해안로를 따라 장관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등불의 행진은 포항 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포항불교사암연합회 회장 덕화 스님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고통받는 중생에게 지혜와 자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라며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등불 하나씩을 밝혀 이웃을 살피고 사회적 화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시민소통문화제는 이제 포항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며 “시민들께서 잠시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가피 아래 평안한 시간을 보내시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포항불교사암연합회는 이번 문화제 이후에도 5월 30일 해병대 수계법회를 통해 군 장병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등 지역 사회와의 소통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매년 이어지는 연등문화제와 시민소통 행사는 불교가 지역 공동체와 긴밀히 호흡하며 상생하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7

“꽃과 함께 피어나는 황혼의 미소”

어버이날을 앞두고 포항 지역 어르신들의 손끝에서 화사한 희망의 꽃이 피어났다. (사)포항YWCA(회장 이화조)는 5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참여자 470명을 대상으로 ‘감사와 행복을 담은 양란 화분 심기’ 문화활동을 진행하며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 이번 행사는 초등학교와 공공시설 현장에서 환경미화 및 시설 관리에 힘쓰며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어르신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기획됐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일상에서 벗어난 정서적 위안과 깊은 힐링의 시간을 선물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활동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김명화 플로리스트의 세심한 지도 아래, 일반적인 흙 대신 친환경 식재인 ‘바크(나무껍질)’를 사용하는 이색적인 기법을 배웠다. 서툰 손길이지만 정성을 다해 양란을 심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반려 식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 성취감과 즐거움을 만끽했다. 현장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평생 흙만 만지며 살아왔는데, 바크라는 생소한 재료로 꽃을 심어보니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기하고 즐거웠다”며 “가정의 달에 동료들과 활짝 웃으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포항YWCA는 매년 노인일자리 참여자를 위한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관 측은 앞으로도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를 통해 참여 어르신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속적인 사회 참여 동기를 부여할 방침이다. 이화조 포항YWCA 회장은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서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영위하실 수 있도록, 맞춤형 일자리 지원과 노인 복지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7

울타리 안을 살피는 달, 5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이 차례로 이어지며 우리를 멈춰 세운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익숙함에 기대어 미루었던 마음들을 꺼내 본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시선을 돌리라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계절은 더없이 온화하고 햇살은 부드러운데, 마음은 그 온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올해 5월도 평온하지만은 않다. 나라 안은 선거의 열기로 들끓고, 나라 밖은 전쟁과 갈등의 소식으로 가득하다.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긴장과 분열의 장면들을 쏟아낸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 끊임없이 따져 묻는다. 그런 북새통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분명하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내 울타리 안을 들여다 보는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본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나이가 들면서 부모는 점점 더 말이 적어지고 자식은 점점 더 바빠진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줄지 않았는데 표현이 줄어든다. 그런 사이 침묵이 쌓이면서 오해가 늘어난다. 부모가 진정 바라는 것은 거창한 효도가 아니라 짧은 안부 전화 한 통이 아니었을까. 함께하는 식사 한 끼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은 또 어떤가. 아이들이 어떤 성적을 받는지에는 민감하지만, 그들이 일상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는 무심하지 않았는가. 아이들도 생각보다 깊고 복잡한 세계를 살아간다. 어른들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 사이에서 스스로를 견주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작은 어깨 위에 얹힌 무게를 덜어주는 일은 결국 부모의 몫이 아니었을까. 묻고 들으며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된다. 부부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더 쉽게 지나치는 관계. 익숙함은 편안함이 되어 무심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짐작은 오해를 낳는다. 말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른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생각을 나누며 작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관계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다. 세상은 늘 크고 중요한 일들로 우리를 당긴다. 정치, 경제, 국제, 기술의 변화까지. 알아야 할 것들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것은 가족이었고, 우리가 가장 오래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가족이다. 가까와야 할 관계가 흔들리면, 제 아무리 큰 성취도 공허해진다. 5월은 기념일의 행진이 아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렬하는 시간이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시선을 내 울타리 안으로 돌려야 한다. 밖의 소음이 아무리 요란해도 나의 삶을 지탱하는 영역은 집 안에 있다. 울타리가 튼튼해야 거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다. 포근한 날씨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와 시선 한 줄도 따뜻해야 한다. 한 번 더 웃어주고 한 번 더 물어보며,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보는 것. 그것이 가족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5월은 그렇게, 가장 가까운 곳을 다시 발견하는 달이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5-06

“해와 달의 설화 속으로” ···포항 귀비고, 어린이날 연휴 8000명 찾았다

포항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외곽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 이번 어린이날 연휴 기간 포항을 대표하는 ‘가족 체험 중심지로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 포항문화재단(대표이사 이상모)은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내 전시관 ‘귀비고’와 ‘신라마을’ 일원에서 진행한 특별 프로그램이 시민과 관광객들의 열띤 호응 속에 성황리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재단 측에 따르면 이번 연휴 기간 귀비고를 찾은 방문객은 8000명을 돌파했다. 이번 행사의 백미는 포항의 고대 설화인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를 체험형 콘텐츠로 풀어낸 점이다. 5일 진행된 ‘신라마을 어린이 놀이터’는 신라마을 곳곳에 숨겨진 해와 달의 빛을 찾는 미션으로 꾸며져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미션을 완수한 어린이들은 신라복과 금관을 직접 착용하며 설화 속 주인공이 돼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으며, 포토존은 추억을 남기려는 가족들로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 밖에도 초정(草亭)에서 즐기는 보드게임과 서예 가훈 쓰기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프로그램들이 활기를 더했다. 4일부터 이틀간 귀비고 전시관 내부에서 열린 ‘오늘은 내가 낙서왕’은 공간의 고정관념을 깬 시도로 주목받았다. 평소 손대기 어려운 전시관의 대형 유리창을 아이들의 도화지로 개방하자, 아이들은 각자의 꿈과 상상력을 담은 그림들로 창을 가득 채웠다. 딱딱한 관람 위주의 전시관이 아이들의 손길에 의해 하나의 거대한 현대미술 작품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또한 2일부터 이어진 활동지 풀이와 컬러링 체험, 그리고 달의 다양한 모습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기획전시 ‘달을 그리다’(정다운, 사공숙 작가 참여) 역시 단순한 휴식을 넘어 교육적 가치와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했다는 평이다. 가족과 함께 방문한 이모씨(40·포항시 북구)는 “도심과 거리는 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알찬 프로그램 덕분에 멀리서 온 보람이 있다”며 만족해했다. 미션에 참여한 어린이는 “신라 옷을 입어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다음에 또 오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박은숙 포항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어린이들이 연오랑세오녀의 역사를 즐겁게 체험하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귀비고와 신라마을만의 특색을 살린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6

유물 옆에 빗자루가? ‘박물관 주간’에도 무색한 포항 영일민속박물관의 민낯

“박물관 안에 유물과 청소도구가 나란히 놓여 있다니 믿기지 않네요. 개관 43년이나 된 영일민속박물관은 군 단위 민속박물관 중 국내 최초로 ‘준박물관’ 지정을 받은 곳 아닙니까? 지역 향토사의 상징 같은 곳이 이렇게 관리되고 있다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의 막이 오른 지난 5월 1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민속박물관을 찾은 한 시민은 현장을 둘러보며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지역의 소중한 민속 유산을 보존·전시하는 박물관이지만, 입구 한쪽에는 버려진 종이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전시관 내부 한편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 청소 도구들이 놓여 있어 관람객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됐다. 비록 도구들이 한데 정리된 상태였으나, 유물과 같은 공간에 비치된 모습은 지역 문화자산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의 관리 전문성에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 국내 최초 군 단위 ‘준박물관’의 명성과 초라한 현실 영일민속박물관은 1983년 조선 시대 흥해군의 동헌 건물이었던 제남헌(濟南軒)을 개보수해 개관한 유서 깊은 곳이다. 1987년에는 군 단위 민속박물관으로는 국내 최초로 문화부로부터 ‘준박물관’ 지정을 받기도 했다. 현재 약 4600여 점의 민속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600년 수령의 회화나무와 함께 포항의 향토 문화를 상징하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역사와 달리 현재의 운영 체계는 ‘박물관’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열악하다. 현재 이곳에는 상근직 공무원이나 전문 학예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포항시 문화예술과 소속 학예연구사가 일주일에 세, 네 번 방문해 관리하는 형편이며, 실질적인 현장 관리는 기간제 근로자와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배치된 공공 근로자들이 맡고 있다. 전문적인 유물 관리나 관람객을 위한 해설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 2029년 시립박물관 개관··· ‘분관’ 전환 준비는 ‘낙제점’ 포항시는 현재 남구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내 부지에 포항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며, 2029년 개관 이후 영일민속박물관을 그 분관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분관 전환까지 남은 기간 동안 박물관이 방치될 우려가 크다. 실제로 전시 콘텐츠의 노후화와 프로그램 부재로 인해 관람객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유물들은 수십 년 전 방식 그대로 전시돼 있으며, 습기나 온도 조절을 위한 항온항습 장치 등 현대적인 보존 시스템도 미비한 상태다. “볼거리가 없다”는 시민들의 냉소 섞인 반응은 지역 문화 정책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타 지자체 선진 사례: ‘스토리텔링’과 ‘주민 참여’로 활로 찾다 영일민속박물관의 위기는 단순히 포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한 타 지자체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구 수성구 박물관 ‘수’는 전통 자수와 민화라는 특정 테마를 현대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결합해 ‘에듀케이터 부문 우수기관상’을 받는 등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유물을 단순히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화 자수 프로젝트’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콘텐츠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울산 해양박물관은 ‘찾아가는 박물관’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아동들과 접점을 넓히고, 지역 기업 및 축제와 협업해 박물관을 경제 활성화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박물관을 유물의 ‘저장고’가 아닌 지역민의 ‘놀이터’이자 ‘교육 공간’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 리뉴얼 및 운영 주체 역할 재정립 시급 전문가들은 영일민속박물관이 시립박물관의 분관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리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운영 주체의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 공공 근로 중심의 관리 체계를 벗어나, 최소한 1명 이상의 전문 도슨트나 관리 인력을 배치해 기본적인 환경 미화와 유물 보존 업무를 체계화해야 한다. 또한, 흥해 지역의 역사성과 제남헌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이 도입돼야 한다. 황인 포항향토사학자는 “2029년 시립박물관 분관 전환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며 “축제 기간임에도 유물 옆에 청소 도구가 버젓이 놓여 있는 현 실태는 포항시 문화 행정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자산은 관리가 소홀해지는 순간 그 가치를 상실한다”며 “충비 갑연 비석과 대원군 척화비 등 소중한 유산을 품은 영일민속박물관이 지역의 정신을 담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시의 즉각적인 개선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시립박물관 건립 과정에서 지역 내 산재한 유물을 전수 조사하고 체계적인 수집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영일민속박물관 역시 시립박물관 체제 안에서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2026 박물관·미술관 주간은 ‘세계 박물관의 날(5월 18일)’을 기념해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주최하는 축제다. 5월 한 달간 전국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관람료 할인 및 야간 개장 등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혜택이 제공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