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메타적 글쓰기,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 혁명 이후 세대의 자의식 등으로 2000년대 한국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1970년 김천에서 태어난 김연수는 한국문단의 김천 출신 삼인방(김연수, 김중혁, 문태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김천에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삼인방은 세상이 모두 인정하는 친구 사이로 유명하다. 소설가 김중혁과는 ‘씨네21’에
성석제의 ‘인간의 힘’은 처음 ‘문학과 사회’에 연재(2002)되었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2003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골 양반 채동구(蔡東求)의 출세기이다. 그는 1627년의 정묘호란이나 1636년의 병자호란과 같은 국가의 위기마다 가출함으로써 이름 없는 지방의 유생에서 사후(死後)에 문경공(文景公)이라는 시호를 받는 존귀한 자로 격상된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6년에 태어나 70여 년의 세월을 보낸 채이항이라는 실존인물을 기록한 ‘오봉선생실기’(채광식 역편, 인천 채씨 경헌공파 종문 198
1994년 짧은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성석제는 근대소설의 서사적 틀을 갱신해 온 작가로 이름이 높다. 구술적 특성의 복원과 동양 서사 전통의 활용을 통해 그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왔던 것이다. 또한 그는 ‘소설은 새로운 성격창조’라는 소설원론의 가장 충실한 실천자이기도 하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이전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되기 힘든 술꾼, 노름꾼, 깡패, 바보, 건달, 탐서가 등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광기와 자기 세계에만 집중하는 디오니소스적인 방외인(方外
‘기형도 산문집’(살림, 1990)은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으로 전설의 반열에 오른 시인 기형도가 별세한 1년 후에 출간된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의 첫 번째 글은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1988년 8월 2일부터 8월 5일까지 3박 4일간 ‘서울-대구-전주-광주-순천-부산-서울’로 이어지는 여행을 기록한 것이다. 기형도는 대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장정일에게 전화를 건다. 곧바로 대구백화점으로 달려 나온 장정일과 기형도는 차수를 바꿔 가며 맥주를 마시고, 문학과 영화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
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태어났으며 진보초등학교와 진보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에서 대구농림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공부한 후에는, 오랜 시간 안동에 있는 엽연초생산조합에서 일하였다. 1976년 상경할 때까지 안동 지역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안동문학’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김주영이 창작한 방대한 문학세계는 도시 빈민들을 다룬 소설, 대하역사소설, 유년기 체험을 다룬 소설로 나눠볼 수 있으며, 이러한 문학세계는 “소외된 국외인들인 배고픈 유년, 도시빈민 악동, 과부,
20세기를 양분한 이데올로기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들 수 있다. 두 이데올로기는 대립적인 것으로만 보이지만, 근대의 자식으로서 공유하는 지점도 적지 않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생산력주의이다. 생산력주의란 어마어마한 물질적 진보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성장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생산력주의는 산업적 근대성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대중의 물질적 행복을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믿음이다. 물질적 진보를 향한 인간의 꿈으로 인해, 지난 세기 인간이 말할 수 없는 생활의 편리와 풍요를 이룬
20세기 한국 소설이 가장 많이 그리고 진지하게 다룬 제재는 6.25이다. 6.25가 우리 민족에게 가져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정생은 아동문학의 영역에 6.25라는 민족사적 비극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대표적인 작가이다. ‘몽실언니’(1984)는 ‘초가집이 있던 마을’(1985), ‘점득이네’(1990)와 함께 권정생이 발표한 ‘6.25 전쟁 삼부작’ 중의 한 편이다. ‘몽실언니’는 장편소년소설로서 1981년 처음 연재를 시작해, 198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오랜 동안 사랑
권정생은 우리 시대 위인이다. 그가 위인인 이유는 귀신도 부린다는 돈이 많아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이 있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학벌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위인인 이유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채, 평생 교회 문칸방이나 좁은 흙집에 살며 이 세상의 모든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이들, 나아가 민들레와 흙덩이를 위해 묵묵히 교회종을 치거나 원고지를 채웠을 뿐이다. 그는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가고, 비천한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다른 모습이라는 성경 속의 세계를 이 지상에 실현하기 위해 살다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폭력의 세기’에서 “20세기는 전쟁과 혁명의 세기가 되었으며, 그러므로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모라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폭력의 세기가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렌트의 말은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하여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6.25, 베트남 전쟁 등을 20세기 내내 겪은 한국인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수난이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제목처럼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이다.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시대에 징용에 끌려가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화약으로
한 나라의 문화는 전통 지향성과 새것 지향성이 서로 힘겨룸을 하면서 발전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옛 것에만 집착할 경우 그 문화는 고루해져서 결국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며, 새 것만 지향할 경우에는 그 문화가 정체성을 잃고 독자적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문학 역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전통 지향성과 새것 지향성의 힘겨룸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한국의 현대사는 새것 지향성이 문학을 비롯한 문화 전반을 압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광풍 속에서도 우리 고유의 것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한국근대시사에서 방언(方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백석(1912-1996)을 들 수 있다. ‘여우난골族’(1935)과 같은 작품은 “명절만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엄매’, ‘아배’, ‘진할머니’, ‘진할아버지’는 모두 백석이 나고 자란 평안북도 정주 지방의 방언이다. 백석은 방언의 전면적인 사용을 통하여 개체 차원은 물론이고 민족 차원의 시원(始原)을 끊임없이 환기시켰던 독특한 개성의 시인이다. 백석과 더불어 방언을 자유자재로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에 당시 조선문단을 대표하던 김남천, 이원조, 이태준, 한효, 한설야, 임화, 이기영, 김사량이 봉황각이란 중국요리집에 모인다. 친일에 대한 문인의 자기 비판이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이 자리에서는 지금도 음미할 만한 여러 논점들이 제시된다.이태준은 8.15 이전에 가장 위협을 느낀 것은 “문학보다 문화요 문화보다 다시 언어”였다면서, 조선어가 말살되는 상황에서 일본어로 글을 쓴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논지를 펼친다. 이태준의 이 발언은 이 자리에 모인 문인 중에서 일본어 소설 ‘빛 속으로(
김동리는 가장 한국적인 작가이다. 한국적인 특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가 ‘무녀도’ 등에서 보여준 우리 민족 고유의 무(巫)였다면, 다른 한 기둥은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문학적 형상화와 관련해서도 그가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경주는 불교 왕국이었던 신라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흔히 경주를 ‘담장 없는 역사박물관’이라고 일컫는데, 그 박물관을 채우는 구체적인 세목은 대부분 불교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등신불’은김동리의 사상이 응축된 ‘한국 인간주의’의 상징이다.이러한
김동리(1913-1995)의 묘비에는 “무슨 일에서건 지고는 못 견디던 한국문인 중의 가장 큰 욕심꾸러기. 어여쁜 것 앞에서는 매양 몸살을 앓던 탐미파 중의 탐미파. 신라 망한 뒤의 폐도(廢都)에 떠오른 기묘하게도 아름다운 무지개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글을 쓴 이는 거인 김동리와 평생을 교유하며 한국문학을 이끌었던 또 한 명의 거인 미당 서정주(1915-2000)이다. 함께 한 시간의 깊이와 최고 시인의 안목이 만난 결과인지는 몰라도, 이 묘비명만큼 김동리라는 인간과 문학을 요령 있게 압축해 놓은 글도 드물다. …김동리는
장지연(1864-1920)은 한말의 유학자요 역사가이자 또한 언론인이며 문필가이고 애국독립사상가이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에 발표한 명문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민족의 울분과 기개를 온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구한말을 대표하는 우국지사인 장지연은 경북 상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조선 중기의 문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경북 상주군 동곽리에서 태어나 한학을 깊이 있게 배우며 성장하였다. 장지연은 이 작품을 읽은 여성들이 적극적인 애국활동에나서기를진심으로 원했던 것이다.‘애국부인전’이 여타의역사전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세네카(BC 4년 추정-65년)는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년-1890년)도 “자연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라. 그렇게 하는 게 예술을 더 깊게 이해하는 진정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두 선인의 말은 해방 이후 한흑구 수필을 해명하는 나침반과도 같은 명언이다. …일제시대 ‘흑구’가죽어도 변치 않는 애국심을 지닌청년을 형상화한 것이었다면,해방 이후포항에 정착한 이후의‘흑구’는 한가롭게동해 바다를 떠다니는지족의 현인을 떠올리게 한다.…해방 이후
수필은 물론이고 시와 소설, 평론, 논문, 번역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한흑구(본명 한세광韓世光, 1909-1979)는 포항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태어난 곳은 평양이지만 1948년 포항으로 이주한 이후 1979년 별세할 때까지 포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포항에서 흐름회(1967), 포항문인협회(1970), 한국문인협회 포항지부(1979)를 창립하며 포항문학의 토대를 닦았다. 이를 기리는 많은 기념물이 포항에는 남아 있다. 청하 보경사 숲에는 한흑구 문학비가 1983년에 건립되었고, 2012년에는 호미곶 구만리에 한흑구 문학관이 조성
서발턴(하위주체, subaltern)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민족, 계급, 연령, 젠더(성), 직위 등 모든 측면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계층을 가리킨다. 그들은 민족적으로도 온갖 핍박을 받아야 하는 식민지인이고, 계급적으로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이며, 젠더적으로도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가부장제의 타자들이다. 백신애가 자신의 작품에서 즐겨 그리는 여성들이야말로 이러한 서발턴의 개념에 부합하는 존재들이다. …‘호도’의 마지막에 표현된 옥남의 “영원한 침묵”은 그 어떤
백신애는 영천의 작가이다. 문학평론가 서영인은 “백신애는 영천에서 태어나 영천에 묻혔고, 그녀의 문학 역시 영천에서 태어나고 발견되었으며 더 깊이, 새롭게 읽혔으니 백신애는 과연 영천의 작가이다.”(‘백신애 문학의 안과 밖’, 전망, 2018, 10면)라고 명쾌하게 규정하였다.이러한 백신애는 두 개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경북 최초의 여성 교사이자 최초의 여성 신춘문예 당선자인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범인이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
지난번 연재에서 필자는 육사의 시 중에서 고향을 연상시키는 ‘청포도(靑葡萄)’(문장, 1939.8), ‘자야곡(子夜曲)’(문장, 1941.4), ‘광야(曠野)’(자유신문, 1945.12.17)를 ‘육사의 고향 3부작’으로 규정하였다. 이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자야곡’은 ‘청포도’와 거의 반대되는 이미지와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청포도가 흰색과 푸른색의 청신한 대비를 통하여 아름다운 고향과 자연의 법칙처럼 반드시 오고야 말 광복의 희망을 감미롭게 노래했다면, ‘자야곡’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희망의 밝은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