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br>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산에는 메아리가 산다. 골이 깊거나 뫼가 높으면 메아리가 더 많이 울린다. 산림이 울창할수록 메아리가 더욱 짙푸르고 계곡물이 맑을수록 메아리가 한결 청아하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잎새 소리도 어쩌면 산의 울림, 자연의 메아리가 아닐까 싶다. 자연은 시시때때 빛깔과 향기로 무언의 형체를 드러내고 소리와 울림으로 묵언의 수행을 일삼는 듯하다. 메아리를 머금은 산은 천년만년 무덤덤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만물의 변화무쌍함을 품으며 내밀한 울림으로 웅숭깊음을 채워가고 있다.

사람에게는 행복의 메아리가 있다. 감사와 기쁨과 만족에서 비롯되는 행복의 메아리는 늘 가까운 곳에서 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행복의 메아리를 듣거나 울리지 못하고 엄벙덤벙 살아가는 듯하다. 작은 만족이나 배려와 존중, 이해와 공감, 도덕과 윤리, 사유와 교감, 역할과 기여, 노력과 성취 등 행복의 원천은 결코 어렵거나 거창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듣거나 느끼고 만들어가는데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색하기만 한 것 같다. 자연과 멀어져서 부자연스러움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모든 일들은 마음먹기에 달렸듯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생각이 결정되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같은 일이나 현상을 두고도 생각이나 관점에 따라 인지하고 판단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은 각자의 마음자리나 마음씀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一切唯心造)는 말처럼, 행복이나 불행도 결국 자신의 마음자락에서 결정되고 생겨나는 것이다.

즉 마음의 밭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행복을 가꾸고 환희로 키워내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터널이 행복의 메아리를 멎게 한지 2년째, 언제 끝날지도 모를 환난에 여전히 일상을 잠식 당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메말라가는 코로나블루에 단비 같은 백신접종이 시작된지 수개월 째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마음 챙김을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마음 챙김’이란 현실에 처해진 자기연민으로 마음을 다잡아 어렵고 불편하고 힘겨움에도 차분하고 신중하게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여 긍정과 능동의 마음근육을 키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고통과 괴로움을 구분하여 참고 줄일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로 희망을 싹틔워 활로를 모색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평온한 마음과 자기확신의 샘에서 행복의 물방울이 샘솟아 날 수 있다. 조급하고 불안함, 시기나 짜증에서는 살핌의 여유도 챙김의 따스함도 스미기 어렵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밝은 표정과 따뜻한 말 한 마디, 진심 어린 가슴과 다정한 손길로 다독이고 격려하는 마음결에서 행복의 여울이 잔잔하게 흐를 것이다.

산에 옷을 입히듯 나무를 심고 가꾸면 메아리가 살아나듯이, 사람에게도 긍정과 배려의 몸짓, 칭찬과 감사의 표현을 켜켜이 쌓아가면 속속들이 행복의 메아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행복도 결국은 자신이 하기에 달린 미지의 선물꾸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