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누구에게나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다. 어릴 적 티없는 순박함에 젖어 잔뼈가 굵어지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무한한 꿈을 키워오던 곳, 다름아닌 고향이다. 철이 들어 학업이나 부모님의 생계,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고향을 떠나서 살게 돼도 늘 그립고 돌아가고픈 곳이 고향이 아닐까 싶다. 하긴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물 속의 물고기도 옛 못을 그리워하는데(羈鳥返舊林 池魚思故淵), 하물며 정과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오죽하랴. 그렇듯이 고향은 굳이 귀소본능이 아닐지라도 늘 어머님의 품처럼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그러나 늘 그립고 생각나는 고향이지만 애써 버린듯이 힘겹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있으니, 이른바 북한이탈주민 또는 탈북민이다. 한 때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새터민’라는 표현도 썼으나, ‘새터’라는 단어가 오히려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며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지양하고 2008년부터는 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줄여서 ‘탈북민’이라고 많이 쓰여지고 있다.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고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현상은 지구상에 유일한 슬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따뜻한 남쪽’에 왔건만, 남한에서의 정착과 생계가 녹록찮은 것이 현실이다. 멀리 고향을 등지고 떠나왔기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을 뿐더러, 더욱이 제2의 고향으로 삼아야 할 남한땅에서 새로운 연고나 일감을 찾아 사회에 순조롭게 진입하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기가 결코 만만찮을 것이다. 2023년말 기준 탈북민들은 전국적으로 3만4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까지 배출했지만 사회부적응과 사업실패·소송·채무 등에 시달리다가 월북·이민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으니, 한국사회의 정착과 포용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배려와 지원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계제에 포항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이 만남과 소통을 위한 화합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2023년 2월 공식 출범한 230여 명의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작년 12월부터 약 2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31일 숙원사업이었던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을 오픈한 것이다. 모든 것이 빈약하고 열악한 상태에서 개소식이 있기까지는 각계각층의 관심과 후원, 자원봉사, 물품기부 등의 손길이 시의적절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감동과 찬탄으로 이어졌다. 특히, 포스코의 통큰 지원과 6개 재능봉사단의 9회에 걸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두드러져 ‘탈북민의 싼타-포스코’라는 애칭이 붙어졌을 정도다.

철천지 사선을 넘어온 포항 탈북민들에게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보금자리 마련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일까? 고향을 떠나온 애절한 마음을 서로 달래고 위로하며,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들의 정보교환과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돕는 훈훈한 사랑방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꿈에도 잊지 못할 북쪽을 향한 망운지정(望雲之情)이 삶의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피어나기를 축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