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입춘에 즈음해 며칠째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메마른 대지에 비나 눈이 내리니 멀지 않아 봄날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듯이, 촉촉하게 적셔진 땅 속에서는 인동의 뿌리가 꿈틀대며 새 생명의 물을 긷고 있을 듯하다. 길게만 여겨졌던 육중한 겨울날이 가녀린 비에 밀려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지만, 결코 만만하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꽃이 피고 잎이 돋는 걸 막으며 막바지 추위로 시샘도 할 것이다. 그래서 2월을 시샘달이라고 했던가.

벌써 2월이라 이른 봄의 절기가 시작됐다. 숫자나 시간의 단위로 년·월·일 등을 구분해 열 두 달을 나타내는 달력의 표기와는 달리,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절기(節氣)는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른 기온의 고저와 계절의 변화 등 자연현상을 근거로 삼고있다. 따라서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절기로는 계절의 끝이 될 수 있고, 위도와 경도의 차이로 인해 나라별·지역별 계절의 처음과 마지막이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다. 한 해 24절기의 시작인 입춘이 지나니 기온의 변화가 감지되는 듯 비가 잦아지고 바람의 결이 달라지며 그야말로 봄날이 가까이에 온 듯하다.

산골짝 응달의 잔설이 녹고 얼었던 강물이 풀리며 서서히 다가오는 봄날을 서둘러 마중함은 그만큼 봄날을 기다렸기 때문일까? 무채색의 겨울날 끝자락에 기웃대며 조심스럽게 들어서는 봄을 묵향(墨香)으로 피워 반갑게 맞이함은 봄날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봄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따뜻한 햇살이 비치니 경사로움 많으리라(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입춘서 또는 춘련(春聯)을 붓글씨로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것은, 새로운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정성을 다해 봄을 송축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주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 봄맞이 입춘방과 새해 소망을 담은 글귀를 두 차례에 걸쳐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는 재능봉사활동을 펼친 것은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 즉 1차적으로는 사내 직원들이나 협력사·공급사 등 포스코 본사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신청한 희망 글귀 또는 부서 목표 등을 붓글씨로 써준데 이어, 입춘일 당일에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입춘첩과 신년 덕담을 묵향 생생한 서예작품으로 써줘서 눈길을 끌었다. 휴일도 반납한 채 이틀 간 봉사단에서 써준 입춘서와 새해 글귀는 200여 점으로 대구, 울산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은 입춘일에 뜻밖의 멋진 글귀까지 받게 돼 올해는 행운이 따르고 신수가 좋아질 것이라며 함박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새해 절기의 시작에 맞춰 귀한 손님 마중하듯이 그윽한 먹 내음과 멋진 붓글씨로 맞이하는 풋풋한 봄날은, 차츰 잊혀져 가는 세시풍속의 계승 그 이상의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날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의미부여로 다시 새출발을 하며, 부풀고 설레는 가슴으로 더욱 밝고 희망찬 봄날을 열어가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