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젠 달랑 한 달만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조마조마 위태위태 살얼음판 걷듯이 지내온 날들이 어느새 이다지 빨리 지나고 말았는지, 바람결 같은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진다. 들녘 길섶의 노란 야국(野菊)이 늦가을의 자락을 애써 잡는 듯해도, 서걱이는 몸짓으로 잔추(殘秋)를 배웅한 억새는 희디흰 손을 자꾸만 흔들어대고 있다. 늦은 가을이지만 늦지 않고, 또한 무엇이 거리낌이 있겠는가(晩秋不晩 又何妨)? 늦으면 늦은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그냥저냥 굴러가고 흘러가는 것이 세상의 시류가 아닐까 싶다.변화하는 일상들에 조금씩 익
바다와 인접한 공원 등성이에 특이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멀리서 보면 야트막한 산 위의 무슨 롤러코스트 같기도 한데,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계단으로 이뤄진 공중의 길 같은 철구조물이 지난 주 후반에 공개됐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에 걸리게 한다는 이른바 ‘Space Walk’가 포항시 환호공원 산마루에 은빛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포스코가 ‘환호공원 명소화’ 계획에 따라 3여년 전부터 다각적인 검토와 설계, 제작, 시공을 거쳐 지난 주에 완공하고 제막과 함께 시민들에게 오픈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라는 작품명은 마치
늦가을의 언저리에 시의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났다. 툇마루 위에 달아 놓은 주홍빛 곶감이 대롱거리고, 기와 담장을 넘어선 담쟁이 넝쿨이 앙증맞게 반기는 작은 뜰에서 시와 가락의 향연이 소담스럽게 펼쳐졌다. 낭랑한 시낭송의 음색이 오후의 햇살 마냥 정갈하게 스며들고 구성진 민요와 시조창이 대금과 어우러져 흥겹게 흐르는가 하면, 피아노의 선율에 가곡이 더해지고 가녀린 듯 신명나는 춤사위까지 곁들여지니, 날아가던 새들도 감나무 가지에 다투어 내려앉고 기웃대던 오죽(烏竹) 잎새마저 서걱거리는 박수로 환호하는 듯했다.최근 포항시 남구 효자동의
모든 것들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산자락 어딘가엔 열매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고 땀이 서린 들판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풀잎이나 잎새는 마르거나 물들어가며 조락(凋落)을 기다리고, 벌레나 짐승들은 제 나름의 몸짓으로 먹이를 모으거나 땅을 파며 동장(冬藏)을 채비하고 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나선지 쌀쌀해진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의 미틈달은 결실과 수확, 정리와 준비로 제자리를 채워가는 시간이다.세상만물은 모두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다가 비를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 가고 있다. 산천의 초목이나 들판의 곡식들이 제 나름의 빛과 색으로 형형색색 물들어가며 가을날이 깊어 가고 있다.청록의 잎새들이 누르스름하게 변조되거나 발그스레하게 물들어가는 풍엽(楓葉)은, 어쩌면 내면의 소리와 울림을 조곤조곤 색조와 빛깔로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빨갛게 타는 듯 일어나는 가을산의 단풍물결은 그리움의 밀어가 꽃불처럼 온 산에 울부짖듯이 활활 번져가는 것이 아닐까?정갈한 햇살이 부서지는 알록달록한 단풍숲에 들면 정말이지 어디선가 꼭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빠질 때
지난 21일, 누리호 발사를 앞둔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긴장을 하며 발사준비에 신중을 기하고 있던 통제실에 난데없이 이벤트기획사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방송 중계를 위한 무대를 설치하느라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다. 김정숙 여사를 대동한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나 누리호 발사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발표를 하기 위해 생긴 일이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성명 발표 뒷배경이 허전하자 기획 책임자가 누리호 발사를 담당해 온 과학기술자들을 뒤에 ‘병풍’으로 동원하기까지 했다”고 볼멘소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날이 정갈하게 여물어간다. 억새가 손짓하는 산과 들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고, 도시의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기에도 좋으며, 풍성한 축제마당에 빠져 코로나 블루의 갑갑증을 떨쳐버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풍요로운 계절에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때가 되면 유난히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감미로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가지마다 주황색의 등을 켜는 감에 대한 얘기다.유년시절의 가을, 고향집 뒷밭과 언덕에는 온통 주홍빛 감이 오지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
들판의 황금물결이 형형색색 조각보 마냥 곱기만 하다. 시월의 어느 때라도 축제가 아닐 수 없을 만큼 멋진 나날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갈한 햇살에 적당히 서늘한 기온, 오곡백과 풍성한 들녘과 초목의 빛 어림이 짙어 가는 모양새는 매양 가을축제를 벌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청순가련한 구절초는 수수하게 피어나고 억새가 긴 목을 뽑아 흔드는가 하면, 핑크뮬리는 양탄자 같은 핑크 카펫을 부드럽게 깔면서 넘실넘실 축제마당을 펼치는 듯하다.문화의 달 시월은 전국 단위로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그만큼 천
시월 초순 저녁답, 고즈넉한 고택마당이 부산해졌다. 한쪽에서는 전(煎)을 부치거나 어묵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하고, 다른 편에서는 야외무대에 현수막을 설치하며 음향시설을 준비하는 등 무슨 잔치라도 벌이려는 듯 하나씩 구색을 갖춰가는 모양새가 바쁘기만 하다.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며 일손을 돕던 몇몇 사람들은 막걸리를 몇 잔씩 들이켜고는 김이 설설 나는 정구지전을 손으로 쭉쭉 찢어 안주삼아 먹기도 하는 등 벌써부터 분위기에 들뜨는 듯했다.이윽고 어둠이 내리고 풀벌레 합창의 선율 속에 설장고 가락의 들썩임으로 오프닝 되면서 본격적인
한창 가을날이 익어가는 시월은 밝달뫼에 아침의 나라가 열린 달이라 해서 하늘연달이라 하기도 한다. 양떼구름, 새털구름을 띄우는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들판엔 황금물결이 일렁이는가 하면, 산에는 조금씩 초록에 지쳐가는 잎새들이 슬며시 물들어가는 듯하다. 멀지 않아 천자만홍, 만산홍엽으로 결실과 단풍을 부를 계절은 저마다의 색과 빛과 몸짓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라도 펼칠 참이다. 이 같은 자연의 변조에 어우러져 유난히 축제가 많은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미증유의 코로나19가 축제의 발목을 잡아온지 벌써 2년째, 그러나 언제
바람의 구름밭 쟁기질로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있다. 간혹 때아닌 먹장구름이 몇 차례 소나기를 흩뿌리기도 하지만, 이내 뭉실뭉실 피어나는 구름이 한가로이 가없는 하늘을 유영하며 추분(秋分) 지난 가을날을 열어가고 있다. 모처럼 맞이한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가을의 본령에 접어드는 9월이 마무리돼 가는데, 코로나19의 급증세가 여전히 불안과 음울의 사슬을 시퍼렇게 하고 있으니 초조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초조와 불안에 직면에서는 차분함과 평온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급급한 현실에 동동거리며 날뛰는 경박함 보다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상
한, 두 차례 비가 오고 나니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푸르름을 더해간다. 정갈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결에 들판의 알곡이 여물어 가듯이, 도처에서는 이러저러한 선행과 희소식이 들려온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죽장면의 수해현장을 근 4주째 빠짐없이 찾아 복구와 지원의 일손을 보태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기술인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명장’ 선정 등의 기쁜 일들이 잠시나마 코로나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대한민국명장이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근 20일째 가을장마가 계속되다 보니 우려와 이변도 뒤따르고 있다. 집중호우가 수시로 내리고 태풍이 쏟아낸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부분적으로 유례없이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또한 일조량이 부족해 곡식과 과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예찰과 더욱이 장기적인 우천과 흐릿한 날씨가 주는 우중충함으로 코로나 블루의 침울함이 더욱 깊어질지도 모를 가을의 길목이다.사람이 보고 듣고 맡고 맛보며 느끼는 등의 감각은 순전히 외부적인 현상과 사물에 대한 반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
동동거리면서 시작된 팔월이 건들바람결에 마무리되고 있다. 설마하던 코로나19 감염 4차 유행이 수도권과 지방 전역에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위중증자와 사망자가 갈수록 늘어나니 초조와 불안이 가중된다. 거기에 지난주 12호 태풍이 몰고온 엄청난 폭우로 포항 죽장면 일대의 도로와 주택, 농경지에 많은 피해를 가져와 시름을 더하고 있다. 코로나의 난맥상에 자연재난까지 겹쳐서 여전히 안절부절 동동거리고 있다.다른 지역이나 어디 먼 곳의 일처럼 여길 때가 많았었는데, 막상 우리 지역, 그것도 자주 드나들던 곳이 하루 아침에 수마에 할퀴고
풀벌레 울음소리가 한결 맑고 또렷해졌다. 처서 지난 하늘은 조금씩 높아져가고 아침저녁의 공기가 서늘해지니, 새벽녘이나 해거름에 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온갖 벌레들의 합창이 청아하기만 하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나 습도가 높은 날에 많이 울어대는 지렁이 소리는 어찌나 크고 선명한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요란하지만 결코 시끄럽거나 어수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여름날의 문서를 벽장 속에 넣어둔다고 하는 처서(處暑)는 더위를 마감하고 선선해지는 때라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수일째 가을장마가 계속되기도 하지만, 맑은 날에는 노염(老炎)이 만
새벽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서늘한 냉기와 함께 이슬 같은 물기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어 얼핏 눈을 뜬 것이다. 무더운 탓에 여름 내내 거의 거실에서 서쪽과 남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게 되면서 새벽이면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를 자명종 삼아 깨어나곤 했었는데, 오늘은 빗소리가 대신한 것이다. 후드득 새벽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더위에 지치고 코로나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듯 아침나절까지 시원하게 내렸다.그러한 빗줄기가 필자에게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하염없이 쏟아내는 슬픔의 눈물
더위의 막바지인 말복(末伏)이지만, 좀체 꺾일줄 모르는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세 만큼이나 끈질긴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복날을 나타내는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으로, 가을의 서늘한 금기(金氣)가 여름의 무더운 화기(火氣)를 두려워하여 세번(초복·중복·말복) 엎드리고 나면 무더위가 거의 지나가게 되는 셈이라 한다. 이른바 삼복 중에는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거나 기운이 허약해져서 건강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해진 심신을 안정시키고 더위를 잊기 위해 청유(淸遊)하거나 탁족(濯足)을 하고, 보신(補身)음식을
동동팔월, 여름날의 절정이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이 느슨해진 어정칠월의 틈을 타고 들이닥친 4차 대유행에 수도권과 지역별 감염세가 좀처럼 꺾이질 않다 보니, 동동거릴 수밖에 없는 8월이 되고 말았다. 연일 폭염지수 경신 예보와 무관중 올림픽 경기의 열기 못지않게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린 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세에 여전히 불안하고 동동거리듯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화살 같은 땡볕과 난마 같은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어도 여름꽃은 쉬엄쉬엄 하나씩 피어나고 있다. 개망초와 쑥부쟁이가 청록의 캔버스를 군데
여름의 한복판, 삼복더위가 본때를 보이고 있다. 짧은 늦장마가 물러나기 무섭게 염천(炎天)은 대지를 달궈 대고 폭서는 염소뿔이라도 녹일 듯 사정없이 작렬하고 있다. 열돔 현상 탓인지 한반도를 에워싼 열(熱)공기층이 고기압에 지붕처럼 갇혀서 코로나19 감염증의 4차 대유행의 기세 못지않게 사람들의 머리 위로 화살 같은 폭염을 내리꽂고 있다.여름은 덥기 마련이지만 출구 없는 터널 같은 코로나 감염증의 재확산에 가뜩이나 지쳐가는데 더위마저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지역감염의 점차적인 확산세를 꺾기 위해 전국 피서지나 야영
새소리에 깨어나고 눈을 뜨는 아침이 싱그럽다. 도심 속이지만 뒤뜰로 이어지는 작은 언덕과 간간이 차들이 오가는 도로 건너 야트막한 산에는 다양한 수목 속에 수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벽부터 아침, 낮과 저녁을 지나 밤이 깊을 때까지 우거(寓居) 주변에는 온갖 새소리가 끊이질 않고 수시로 포르릉 대며 날아가는 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더욱이 주택가와 인접한 아파트 너머 솔숲에 집단서식하고 있는 왜가리떼의 유유한 날갯짓이 눈길만 돌려도 보이고, 끼루룩대거나 색색거리는 소리가 지척의 남창까지 들려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