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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장으로 비추는 인생이라는 무대

신간 ‘버나드 쇼의 문장들’(마음산책)은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삶과 문학의 정수가 담긴 책이다. 버나드 쇼는 세련된 위트와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명언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책에는 그의 빛나는 명언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 그의 희곡 작품 속 명대사가 원문과 함께 총망라돼 있다.하나의 문장은 그 작가의 삶과 연결될 때 완성된다.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의 삶은 ‘우물쭈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버나드 쇼가 쓴 문장들에는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온 이방인, 젊은 시절 소설가로 실패했으나 뒤늦게 비평가이자 극작가로 인정받은 예술가, 무수한 시대적 풍파를 거치면서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정치 활동가 버나드 쇼의 모습이 담겨 있다. 버나드 쇼는 94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60편이 넘는 희곡을 남겼으며 1925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위대한 극작가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된 작품이 많지 않다. 이 책에서는 버나드 쇼의 희곡 작품에서 인상적인 대사를 다수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허를 찌르는 신랄하고 예리한 풍자와 다크초콜릿처럼 쌉싸름한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명언들로 쓴웃음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는 작가 버나드 쇼를 만나볼 수 있다. /윤희정기자

2024-02-28

분노·냉소의 미국서 도덕의 거처를 묻다

신간 ‘나의 미국 인문 기행’(반비)은 미술사학자이자 디아스포라 학자인 서경식 도쿄 경제대학 명예교수의 유작이다. 서 교수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로 잘 알려진 재일 조선인 작가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다. 이번 미국 편에서는 저자가 전작에서 다뤄온 주제들에 더해 자유와 환대의 가치를 내건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가 마주한 암울한 현재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다. 그렇게 저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재난과 전쟁 범죄, 국가 폭력의 끔찍한 현실 속에서 ‘도덕의 거처’를 묻는다.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더 나아가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 그 자체에는 절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이 책에서 서경식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2016년과 학생운동을 하던 중 수감된 두 형(서승·서준식)의 구명 활동을 위해 미국을 오갔던 1980년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2020년을 반추한다. 그는 세 시간대를 오가며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극심해지며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세계에 대한 깊은 염려를 표한다.옥고를 치르던 형들의 구명운동을 위해 방문한 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은 자기중심주의와 불관용이 극심해지는 곳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로 부상하고, 여러 문화가 뒤섞여 ‘서로 갈등하고 항쟁’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보다 ‘단일’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곳이다. 그런 미국에서 서경식은 자신에게 선의를 가지고 다가와 준 이들과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을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만난다.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서 대중에게 침투하려던 디에고 리베라, 참혹한 현실을 그려내며 자신의 그림을 저항과 연대의 무기로 삼았던 벤 샨,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에 항의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와 미국의 국가 폭력과 감시를 문제 삼아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로라 포이트러스…. 서경식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술관 복도를 거닐며 부정의에 저항하며 해방의 씨앗을 심으려고 했던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암담한 현재를 똑바로 응시하며 ‘쓰고 그리는 일’의 의미를 묻는다.서경식은 1951년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와세다대 재학 중이던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던 두 형이 구속된 뒤 구명 운동을 벌였고, 한국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2

개인의 자유, 물화한 자유에 대한 성찰

신간 ‘상처받은 자유’(에코리브르)는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들이 펴낸 사회학적이고 시대 진단적인 신간이다. 책은 비판 이론에 기대어 개인의 자유와 주권에 대한 요구가 민주주의 사회에 위협이 되는 후기 근대의 항의 유형을 분석한다. ‘상처받은 자유’에 따르면 자유는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진보’라는 말과 손을 잡고 갔다. 그러나 최근 ‘자유’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인류 진보와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독일 문학사회학자인 카롤린 암링거와 바젤대 사회학과 사회구조분석학 교수인 올리버 나흐트바이 두 저자는 이들을 ‘자유 지상주의적 권위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주 사회적 권위를, 무엇보다도 국가와 전문가를 거부한다. 그들이 인정하는 유일한 권위는 자기 자신이다.저자들은 “자유를 오직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기의 유일한 권리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자유를 ‘물화적 자유’라고 규정한다. 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하는 양상을 독일의 현실 정치를 자료로 삼아 분석한다. 저자들은 자료를 분석하는 가운데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테오도어 W. 아도르노·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대니얼 J. 레빈슨·R. 네빗 스탠퍼드의 ‘권위주의적 성격 연구’,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참조하며, 그 과정에서 고전적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다.책에 따르면 자유를 둘러싼 갈등의 전개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했다. 그 갈등은 개인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개입주의적 국가의 복귀를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시위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전통적 우익과 달리 강한 국가가 아니라 약하고 거의 없는 듯한 국가를 원한다.“하지만 그들의 때때로 경박한 전복 행위와 다른 견해에 대한 광적인 거부는 동시에 권위주의적 태도를 증명한다. 그들은 취약한 집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본인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 언어적으로 무례하고 매우 공격적이다. 그들은 우파적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우파라는 비난은 단호히 거부한다. 개인의 무조건적 자율을 고수하는 이러한 권위주의는 기존의 정치적 좌표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저자들은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를 사회적 의존성을 배제하는 개인주의적 자유 이념의 징후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는 공유된 사회 상태가 아니라 개인의 소유물이다.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는 후기 근대 사회에 반기를 들지만, 그 핵심 가치인 자결과 주권의 이름으로 반항한다”. 책은 ‘계몽의 아포리아’, ‘의존성 속의 자유’, ‘무질서의 질서’, ‘사회적 상처’,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 ‘진리 추구자의 몰락’, ‘세계의 재주술화’, ‘파괴적 원리로서 전복’ 등 총 8장으로 구성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2

시와 산문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등단 50년을 넘긴 한국 서정시의 거장 시인 정호승(74·사진)이 직접 가려 뽑은 자신의 시와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쓴 산문을 엮은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비채)를 펴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 시인의 대표 시가 다수 수록됐으며, 시를 창작할 당시의 사연을 풀어낸 산문들이 짝지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모습부터 청년기와 군 복무 시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부모님의 모습 등 시인이 소중히 간직해온 20여 컷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1972년 등단해 50년 넘도록 시를 써온 정호승. 그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는 친근한 시인으로서 모든 세대에 사랑받는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등 현실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심오한 성찰을 빚어낸 시집을 펴내며 명실공히 한국 서정시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등 산문집 역시 출간 후 18년이 넘도록 꾸준히 읽히고 있다.시인은 시와 산문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시든 산문이든 일상에서 길어 올린 한순간에서 출발한다고, 시와 산문이 하나로 엮인 책을 오래도록 소망해왔다고 고백한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은 이러한 시인의 소망으로 탄생했다. 2020년 처음으로 출간한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모든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그 사랑에 힘입어 2024년 두 번째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가 독자들을 만난다.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서 빌려온 책 제목처럼, 정호승 시인은 그동안 겪어온 사랑과 고통에 관해 적으며 그것이 빼어난 시로 피어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청년기 시부터 최근 시까지 망라해 엄선했기에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는 정호승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문학적 형태로 응축돼 있다. 어둠을 두려워하고 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눈길을 걷던 밤을 지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노년까지 ‘인간 정호승’의 사연이 ‘시인 정호승’의 시로 피어남을 보여주면서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먹먹한 위로를 전한다.정 시인은 등단 52년간 사랑의 기쁨과 피할 수 없는 생의 고독, 깨달음을 노래해 왔다.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시인이 등단 52년을 돌아보며 전하는 산문집 ‘고통없는 사랑은 없다’가 새로운 울림을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2

“꿈을 거래합니다”

포항에서 활동 중인 중진 서가숙(62·사진) 작가가 일곱 번째 동화집 ‘꿈을 거래합니다’(고래책빵)를 펴냈다.‘꿈을 거래합니다’는 긴 세월을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서 작가가 살아가면서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주는 동화 선집이다. 이번 동화집은 ‘한탕의 꿈’, ‘고급 아파트의 꿈’, ‘복수의 꿈’, ‘가수의 꿈’, ‘자연인의 꿈’,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꿈’ 등 총 6개의 목차로 이뤄져 눈길을 끈다.서 작가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작은 여운을 남기는 치밀하고 세밀한 구성과 얼개를 가지고 있는 동화들을 통해 무심코 스쳐 지나갈 꿈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한다.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위로를 전한다.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헛된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꿈을 거래하는 선택권을 주기도 한다.“나는 헛된 꿈을 꾸는 사람들의 꿈을 빼앗아 먹고 살아…. 나는 힘들게 일하지 않고 한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헛된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돈으로 그 꿈을 이루라고 유혹해.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일수록 헛된 꿈을 이룬다는 욕심 탓에 자신의 남은 꿈을 파는 거래도 쉽게 하지.”(p.6)이 작품의 주인공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존재 ‘옴’이. 옴이는 허황된 꿈과 욕심을 가진 사람들을 유혹해 거래를 통해 꿈을 빼앗는다.꿈의 소중함과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알려주는 담백하면서도 가슴을 콕콕 찌르는 서가숙 작가 특유의 동화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부분이 많다.작가는 주인공 옴을 통해서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꿈을 거래합니다’ 표지 “어떤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니까 누가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꿈을 부추기면 절대 유혹에 빠지지 마. 절망감에 빠져 추락하는 건 시간 문제니까 불가능한 약속은 하지 마.” (p.7) “꿈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이거늘. 꿈을 포기하지 마. 꿈은 인간만이 가지는 소중한 것이거든. 지금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꿈꾼다면 행복한 날이 올 거야.(p.77)서 작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을 감동과 재미를 주는 대화법을 통해 “하루하루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가숙 작가는 포항에서 36년을 살아오면서 글을 쓰고 있다. 포항 형산문화제에서 시 장원과 우수상을 받았으며, 백산 전국 여성 백일장에서 시 부문 장원과 우수상을 받았다. 수필집 ‘행복해지는 법’, ‘숨은 행복 찾기’, 역사 장편소설 ‘내 사랑 부용 공주’, 성인 동화집 ‘복수의 화신 변학도’, 아동 동화집 ‘내 마음을 공개합니다’, ‘도깨비들의 사람체험학습’, ‘학교를 끊을 거예요,’ ‘우리가 친구 맞니’, ‘오늘 내 기분은 맑음’, ‘염라대왕의 재판’을 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13

전광훈 목사 평전, ‘전광훈, 자유 통일의 길’ 출간

자유통일당 고문이자 광화문 집회를 이끄는 전광훈 목사의 평전 ‘전광훈, 자유 통일의 길’이 출간됐다. 전광훈 목사 측은 “23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전 목사가 왜 수십 년 간 애국집회를 열어왔고, 3번의 투옥을 하면서까지 광화문 집회를 이끌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와 배경을 밝혀주는 동시에 전 목사의 면모와 목표까지 말해주는 안내서다. 평전에는 전 목사가 수십 년 전에 기독교 정당 창당을 위한 애국운동에 나서도록 지시한 김준곤(한국 대학생 선교회 CCC 창립자) 목사의 유언, 조용기 목사의 당부 등 기독교계 원로들에 대한 회고가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도 한국 교회와 나라가 동성애, 이슬람 앞에 무너질 것을 염려해 ‘기독당을 만들어서 국회에 진출시켰는지 천국에서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겠다’는 김준곤 목사의 병상 유언이 소개되어 있다. 전 목사는 “본인이 천국에 갔을 때, ‘조용기, 김준곤 목사님 앞에서 제가 순종했습니다’라고 떳떳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용기 목사 또한 말년에 전 목사에게 ‘빨리 기독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임종을 앞두고는 당시 광화문 운동을 벌이는 전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벌여 놓은 일을 네가 결국은 마무리 하는구나’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전 목사는 원로들로부터 기독교 정당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총신대 신학대학원장 출신 신창섭 목사가 전목사에게 제네바 시장 존 칼뱅, 네덜란드 총리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 덴마크 엔리코 달가스 목사, 미국 공화, 민주당 내 담임목사 제도 등의 예를 들며 칼뱅주의는 정치 안 하는 것을 오히려 죄라고 규정한다고 말해주었을 때 비로소 고정관념이 깨졌다고 한다.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을 다룬 대목에서는 대한민국 첫 국회가 열렸을 때 이윤영 의원(목사)의 감사기도로 국회가 시작했고,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의 엘리트층이었던 목회자들을 전국으로 찾아다니며 국회의원에 출마하라고 권유를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 목사가 25, 26대 대표회장을 지낸 한기총의 설립 배경이 대한민국을 좌경화로부터 막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도 소개했다. 이를 위해 미국 보수 기독교와의 연대와 함께 최근에는 미 상원 의원 린지 그레이엄을 만나 자유통일에 대한 필요성과 방법론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린지 의원의 방한약속도 받았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 책은 전 목사가 국민 모두가 ‘자유 통일의 길’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딜 때까지 중단 없이 걸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 박형남 기자 7122love@kbmaeil.com

2024-02-06

“내 영혼의 저 편에 문학의 흔적을 적다”

원로 연출가 김삼일 씨 “그때 그 시절 고래잡이로/ 붐비던 장생포,/ 지금은 바다 건너 용장반도의/ 무서운 공장들, 매연으로 장송곡을 부르네 // 고래 잡았다고 포구에 울려 퍼지던 고동 소리는/ 멎은 지 오래고 폐선된 고랫배는 해초와/ 굴껍질이 덕지로 상여처럼 떠 있네//”(시 ‘장생포’ 중)‘포항 연극계의 대부’라 불리는 원로 연출가 김삼일(83) 씨가 시집 ‘장생포’(대경사)를 펴냈다.이번 시집은 김 씨의 첫 번째 작품으로 총 50여 편의 시가 실려 있다. 김 씨는 종합문예지 ‘영남문학’의 ‘제41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작품 3편이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당선작은 ‘장생포’, ‘당신을 생각합니다’, ‘섬에서 만난 그녀’ 등 3편이다.김 씨는 발간사를 통해 “연극을 한다고 한평생을 보낸 세월, 그래도 시집 한 권은 꼭 내어야 한다고 다짐했다가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이제 방황을 끝내고 내 영혼의 저편에 문학의 흔적을 적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964년 포항수산대학 학보사 창간 1기 기자로 당시 학보사 주간 교수이신 한흑구 교수님의 문학정신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고 영원한 것은 아름답다’는 순백한 정신을 이어받아 올곧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실천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가슴을 누른다. 주변의 도움으로 한 권의 시집을 펴내게 됐다”며 “앞으로는 은은하게 시의 샘에서 시혼을 건져 행복을 찾으며 살고 싶다”고 밝혔다. 울산 장생포 출신인 김삼일 씨는 1963년 KBS 포항방송국 성우로 입사한 이듬해 극단 은하를 창단하며 본격적인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 포항시립연극단 연출자(1983~2012년), 경산시립극단 객원 연출, 대경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대지의 딸들’, ‘별은 밤마다’ 등 지금까지 총 169편의 연극을 연출했고 1983년 한국연극예술상과 2004년 이해랑연극상 등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연극계 원로 거장들의 연극제인 ‘제8회 늘푸른 연극제’ 연출 부문에 선정돼 지난 1월 6∼7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자신의 연출작 ‘언덕을 넘어서 가자’를 공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04

학교 가기 싫은 친구들에게 전하는 재미있는 위로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 포항 출신 동화작가인 최소희 작가가 창작동화 ‘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학교 앞 거북이)를 출간했다.이 책은 최 작가의 세 번째 동화로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3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돼 펴내게 됐다.‘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는 갑자기 새 학교에 가게 돼 갑갑한 마음과 불안함을 극복하는 백오봉을 통해 좌절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준다.저자 최소희 씨는 “어린이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출간의 변을 밝히고 “학교 가기 싫은 친구들, 새로운 환경이 두려운 친구들에게 전하는 백오봉의 기발한 상상력은 재미있는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정든 학교를 떠나 새 학교에 가는 날은 누구에게나 떨리는 순간인데, 어려서부터 낯가리기 대장이었던 백오봉에게는 더할 나위 없다. 낯선 학교, 낯선 선생님,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갑갑하고 온몸이 무겁다. 밥맛도 없고 낮에도 세상이 새까만 밤 같기만 하다. 최소희 작가 마침내 개학 전날, 견디다 못한 백오봉은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제발 내일 학교 가지 못하게 해 주세요! 산에서 동물 떼가 내려와도 좋고, 펑펑 눈이 내려 아무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도 좋아요. 제발 학교만 가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귀엽고도 괘씸한(?) 백오봉의 기도를 듣고 누군가가 찾아오는데….‘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는 모두가 한 번은 겪어봤을 변화의 두려움을 익살스러우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학교에 가지 못할 이유를 백 가지라도 찾을 기세인 백오봉의 기발한 상상력은 그야말로 공감을 백배로 일군다. 백오봉이 학교에 갈 수 있을지 가지 못할지 알 수 없는 궁금증이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최소희 작가는 한양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뒤 2012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저서로 동화책 ‘선우와 나무군’, ‘누가 이무기 신발을 훔쳤을까?’, ‘호미곶 돌문어(공저)’, ‘햇살 가득한 동화 나라’(공저) 등이 있다.‘백오봉 새 학교에 가다’는 문학 웹진 ‘비유’에서 최초로 발표됐고, 이번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책으로 제작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04

날씨 사유 통해 현대인의 삶에 위안

염세주의 사상가 쇼펜하우어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생을 향한 그의 적나라한 응시가 ‘욕망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욕망이 사라진 자리를 그대로 비워놔도 괜찮을까. 시간도 방법도 없다는 이유로 더 나은 삶에 대한 생각을 이대로 멈춰도 될까.신간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김영사)는 국내 최고의 들뢰즈 사상 연구자이자 시인과 평론가로 활동해온 서강대 철학과 서동욱 교수가 7년 만에 출간한 에세이다.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세계, 버틸수록 소진되는 일상에 던지는 철학의 위로를 담았다.“당신은 폭우로부터 가뭄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가?” 날씨를 만든다는 착상이 철학사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던진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에서였다. 성장에 다다르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놓아버리는 현대인의 무기력한 초상을 직시한 철학자 서동욱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서동욱 교수는 철학뿐 아니라 시와 평론 등을 통해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타자(他者)’ 개념을 깊이 탐구해왔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도 ‘차이’다. 전염병과 기후 위기, 타자를 배척하는 극우 정치 등 오늘날 전 지구가 맞닥뜨린 문제들의 돌파구이기도 하다.이 책에 따르면 ‘차이’는 삶을 보호한다. 차이를 통해 우리는 기준 없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이는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다. 이 책이 현대사회의 온갖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차이, 즉 타자와 이질성을 대하는 태도를 끈질기게 들여다보는 이유다.예를 들어 우리는 숙주로서 ‘기생충’을 불편해하지만, 이 책은 기생충이 숙주의 동일성을 흔들어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는 점에 주목한다. 피타고라스의 개, 니체의 말, 데리다의 고양이 등 ‘동물’을 사유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타자의 범위는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타자’ 문제에 깊이 천착해온 서동욱 교수는 이 책에서 ‘날씨를 찾아주는 생각’을 써 내려간다. 철학, 문학, 미술부터 영화, 만화, 게임까지 온갖 영역이 풍성하게 교차되는 마흔 편의 글들이 익숙한 단어의 뒷면을 들추며 흐린 일상을 깨운다.그의 글 속에서 익숙한 개념들은 낯설어진다. 익숙한 것에서는 무거움을, 무거운 것에서는 가벼움을 찾아내는 각각의 글은 평범한 일상에 보석처럼 숨겨진 위안, 우리가 예술에 위로받는 이유 등에 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모든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된다’는 말의 힘을 보여주는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달라진 머릿속 날씨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마음의 날씨, 그리고 세계의 날씨를 바꾸는 방법으로 이 책은 ‘질문’의 힘도 강조한다. 컴퓨터가 750만 년의 연산 끝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답이란 그 해답을 얻어낸 질문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활짝 핀 꽃송이를 꺾어 가지듯 해답만을 똑 따낼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생각도 제대로 된 질문에서 나올 것이다.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이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모두가 주목하는 ‘인공’이라는 단어 대신 ‘지능’에 초점을 맞춰 질문했기에 나올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바보’와 ‘천재’도 비슷한 단어로 묶인다. ‘어떻게 창조하는가’의 관점에서는 둘 다 규칙을 뒤집는다는 공통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01

청춘·예술·사랑이 사라진 자리 무엇이 남았나요?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한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앤드루 포터(52)의 소설집 ‘사라진 것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하고, 포워드 매거진,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등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장편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 단편 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한 앤드루 포터가 내놓은 신작 소설집이다.삶의 분기점에 이르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는 시선, 서정적이고 유려한 문체, 쉽게 잊히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기는 강렬한 엔딩으로 미국 현대 단편소설 미학의 정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앤드루 포터는 국내에 소개된 뒤 문학 팬들은 물론 많은 작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사라진 것들’은 그런 앤드루 포터가 첫 번째 소설집 이후 1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집으로 “무시무시한 작품집”(런던 타임스)이라는 평과 함께 “현재 미국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단편 작가”(인디펜던스)로 꼽힌 그는 15년을 지나오며 삶에 대한 더욱 깊은 통찰이 담긴 열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에게도, 한 사람의 삶에서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사라진 것들’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바로 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사라진 것들’의 인물들은 가까이 있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이후에 남겨진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사라짐은 때로 쓸쓸함을 남기고, 지나간 것들은 유난히 찬연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지금이, 아직 다가올 날들이 있다고 일깨우는 포터의 소설들은 우리의 마음에 깊고 넓은 파동을 만든다.‘사라진 것들’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인생의 중반 단계에 진입한 화자들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소설집의 첫 문을 여는 ‘오스틴’에서 ‘나’는 한 10대 소년의 아이러니한 죽음을 두고 벌어진 윤리 논쟁에 합류하지 못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라고 독백한다. 젊은 시절을 지나며 어떤 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의 목소리는 따뜻한 듯 쓸쓸하다.‘넝쿨식물’에서 ‘나’는 미술가인 여자친구 마야와 작은 차고 아파트에 세 들어 살던 시절을 회고한다. 예술을 통해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해 ‘나’를 뒤로한 채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마야가 예술가로서 활개를 펴는 대신 오래도록 암과 투쟁하는 ‘평범한’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게 아마 인생에 펼쳐지는 보통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사라진 것들’이라는 소설집의 제목 그대로, 이처럼 이 책에는 사라진 많은 것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촉망받던 연주자가 희귀질환으로 한순간에 잃어버린 재능이기도 하고(‘첼로’),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꿈꾸던 미래이기도 하며(‘라인벡’), 한 부부의 사이에 잠시 머물렀을 뿐이지만 둘의 관계를 영영 바꿔버린 한 소녀이기도 하다(‘히메나’). 앤드루 포터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그런 사라짐을 통해 삶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실감한다. /윤희정기자

2024-02-01

인지장애 앓는 딸을 둔 한 철학자가 던지는 화두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장애학과 돌봄 이론 분야의 석학인 에바 페더 키테이의 ‘의존을 배우다’(반비·번역 김준혁)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키테이는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딸 ‘세샤’의 어머니로서 딸을 보살핀 경험이 철학자인 자신에게 제기한 문제들을 사유한다. 책은 딸의 장애와 함께 살아낸 개인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서 기존 철학의 틀을 토대부터 허무는 새로운 철학을 써나가는 데까지 나아간다.전통 철학은 사유할 줄 아는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해왔다. 그렇다면 인지장애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키테이의 딸 세샤를 철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샤는 말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으며, 대화를 할 수 없기에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철학에서 전제하는 인간 조건인 이성을 지니지 못한 세샤를 인간 바깥의 존재로 바라봐야 할까? 자신이 헌신해온 철학이 사랑하는 딸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할 때, 철학자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삶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키테이는 세샤와 함께한 삶이 철학에 일으키는 불화를 성찰하며, 인지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좋은 삶과 정상성, 인격과 존엄성 같은 철학적 개념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세샤는 베토벤과 바흐를 즐겨 듣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는 능력을 지녔다. 키테이는 세샤와의 삶을 통해 사유할 줄 아는 능력과 무관하게 기쁨과 사랑을 나누는 능력, 그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선물임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통 철학이 전제하는 인간의 조건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고 말한다. 이 깨달음은 인간의 조건을 ‘이성’에서 찾아왔기에 이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소수자나 비인간 존재들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전통 철학의 인격과 존엄성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이처럼 장애의 렌즈로 철학을 바라볼 때 ‘삶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가르침을 얻는다.‘의존을 배우다’는 이처럼 우리 모두 의존으로 세계를 엮어나갈 때 그저 생존하는 삶이 아닌 다 함께 피어나는 존엄한 삶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저자가 장애와 함께한 삶의 생생한 경험에서 이끌어낸 귀중한 가르침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01

일제강점기 영문학·수필문학 개척 한흑구 삶과 문학 섬세하게 재조명

시·소설·평론·수필·영미문학 번역을 아우른 일제강점기 작가 한흑구(1909∼1979)의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하는 한흑구문학연구서 ‘한흑구문학연구서 2’(아시아·사진)가 출간됐다. 한흑구는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 60∼70년대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명수필 ‘보리’의 작가, 포항 최초 근대적 지식인으로 기억된다.지난 2022년의 ‘한흑구문학연구서 1-한흑구의 삶과 문학’에 이어 나온 두 번째 연구서다. ‘일제강점기 한국 영문학과 수필 문학의 개척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연구서는 일제강점기 ‘한국 영문학’의 개척자로서 한흑구의 문학적 면모와 한국 수필문학의 개척자로서 한흑구의 선구적인 수필론과 수필문학의 특징, 미국문학의 영향 가운데 세워진 한흑구 문학의 ‘조선적 정체성’을 분석하고 있다.방민호(서울대 교수), 박진임(평택대 교수), 서주희(서울대 강사), 신재기(문학평론가), 김시헌(수필가), 김미영(홍익대 교수), 이희정(대구대 교수) 등 일곱 명의 연구자가 참여해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다각도로 탐구했다.방민호는 논문 ‘일제강점기 한국 영문학의 네 가지 형식’에서 한흑구의 한국 영문학에 대한 개척자 내지 선구자로서 그 수용 방식의 차이와 의의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흑인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한흑구의 번역 및 비평 활동을 통해서 간취되는 한흑구 영문학의 특징은 영문학에 스며들어 있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바탕 위에서 전개된 것임을 설득력 있게 조명하고 있다. 한흑구 작가의 생전 모습. 박진임의 ‘한흑구 창작시와 월트 휘트먼’은 한흑구 스스로 가장 흠모한 미국 시인이라고 표명한 월트 휘트먼이 그의 창작 시편과 문학정신에 끼친 영향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양자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차이점도 찾아내고 있다. 서주희의 ‘번역의 유토피아적 장소: 한흑구의 미국 흑인 번역시를 중심으로’는 그의 문학이 논의되면서 남달리 그의 관심이 깊었던 흑인문학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온 사정을 직시해 흑인문학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고 흑인문학과 한흑구 문학 간의 접점과 미끄러진 지점을 밝혀낼 뿐만 아니라, 한흑구 문학에서 번역이 갖는 의미를 짚어낸다.신재기의 ‘한흑구 수필론 연구’는 한흑구가 남긴 ‘수필론’을 중심으로 그의 수필관을 분석하면서 한국 수필문학의 개척자·선구자로서 한흑구의 문학사적 업적을 통찰한다.‘수필문학소고’(1934)의 김광섭, ‘수필의 문학적 영역’(1939)의 김진섭도 단 한 편의 수필론에 그쳤지만, 한흑구는 1934년 7월 조선중앙일보에 ‘수필문학론-Essay연구’를 처음 발표한 후 1948년, 1967년, 1971년, 1975년의 다섯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심화한 수필론을 제출하고, 또한 자신의 수필론을 실제 명품의 시적 수필 창작으로 실천했다는 것이다.김미영의 ‘한흑구 문학에 나타난 평양, 미국, 포항의 장소감’은 구조주의적으로 공간과 장소를 분석한 캐나다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랠프의 ‘장소와 장소상실’, 현상학적이고 인문학적으로 지리를 탐구한 중국계 미국인 인문사회학자 이 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 이들 저서를 이론적 근거로 삼아 한흑구 문학에 서린 평양, 미국, 포항의 장소감을 분석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이희정의 ‘한흑구 문학에 나타난 미국 인식과 조선적 정체성’은 한흑구의 미국 체험이 담겨 있는 소설과 수필, 평론 등 문학 작품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미국 경험과 그것을 통한 자기 인식에 대해 고찰했다. 한흑구의 미국 유학 체험과 그것을 통해 한흑구가 스스로 인식하게 된 주체성, 생명력, 조선적 태도는 식민지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소유의 한 과정이었다. /윤희정기자

2024-01-21

감정은 이성보다 열등한가

서양 철학에서 감정은 오랫동안 이성보다 열등할 뿐 아니라 이성의 질서를 교란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20세기 중·후반에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사유들이 등장하고 나서야 감정 관련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고찰하는 흐름들이 형성됐다.전문 학술 분야에서는 연구의 흐름이 두드러지는 반면에 대중적인 인문 교양 분야에서는 심리 치료나 자기 개발에 초점을 두고 감정을 들여다보는 경향들이 강하다. 이렇다 보니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일반인도 이해 할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저서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감정은 어떻게 내 삶을 의미있게 바꾸는가’(오도스)의 저자 로버트 C. 솔로몬은 영미권에서 감정 관련 주제들이 거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던 1970년대에 이미 감정 철학을 체계화했을 정도로 감정 연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철학자다.미국 텍사스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개별 감정 또는 감정 일반을 탐구하는 다수의 저서들을 남겼는데, 그가 감정 철학의 이론적 틀을 세우고 체계화한 저서가 바로 이 책이다.1976년 더블데이 출판사에서 처음 나왔고, 초판본에서 현상학의 사변적인 내용들을 빼고 감정과 삶의 의미에 관한 논의를 더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수정한 판본이 1993년에 해켓 출판사에서 나왔다.최근 번역 출간된 ‘감정은 어떻게 내 삶을 의미있게 바꾸는가’는 해켓 판본을 완역한 것이다.이 책에서 솔로몬은 감정이란 비이성적이며 삶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문제이고 이 문제를 푸는 해답은 이성이라고 보는 서양의 뿌리 깊은 이성 우위론을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는 오히려 이성이 문제이고 감정이 그 해답이다.이 책의 초판본이 나왔던 1970년대 당시에도 아주 도발적인 감정 옹호론이었으며,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봐도 여전히 도발적인 견해다. 하지만 솔로몬의 감정 옹호론을 이성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견해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감정과 이성은 둘 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구성하는 수단들이며, 궁극적으로는 둘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솔로몬에 따르면 감정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이고 이성은 감정을 통해서 삶의 가치와 접촉한다.따라서 이성과 감정의 불필요한 갈등들을 제거하고 우리 인간을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루는 전체로 봐야 한다.이를 위해서 솔로몬은 이성과 감정에 관한 기존의 철학적 범주들을 뒤엎고, 감정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해명하면서 너무도 오래 부정당해 온 그 역할과 자리를 감정에게 되돌려 주고자 한다.솔로몬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감정을 통해서 그리고 이성을 활용해 어떤 사람이 되는가’다. 이 문제에는 솔로몬의 감정 철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압축돼 있다. 그 목적이란 바로 사람들을 이해하고 변화시켜 각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너,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변화가 사회와 세계의 변화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1-11

‘친구’라는 인간관계서 더불어 삶을 찾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김영사)는 조선 지성사를 깊이 탐구해온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가 16~17세기 동서양 문물 교류의 선구였던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역주한 책이다. 정민 교수는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의 관계를 살피며 조선 후기 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의 지적 여정은 예수회 신부 판토하의 천주교서 ‘칠극’, 조선의 초기 교회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집필 등 서학이라는 큰 학문의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문헌을 펴내는 데 매진하고 있다. 지난 2월, 11년 만에 다시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 초청된 그는 그곳에서 방대한 한역(漢譯) 서학서의 원전과 동서양의 풍부한 연구 성과를 만나게 됐다. 이러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완성된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는 여러 서학서 중에서도 보다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교우론’과 ‘구우편’을 다룸으로써 우정이란 무엇인지 묻고 답한다. ‘교우론’(交友論)과 ‘구우편’(求友篇)은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16세기 말과 17세기 중반 각각 중국에 파견돼 서학과 유학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 동아시아와의 접촉면을 확장하고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는 토대를 마련한 책들이다.책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는 친구라는 인간관계에 대해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는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교우론’과 ‘구우편’의 자료 가치를 상세히 밝힌 해제와 영인 자료, 관련 화보를 풍부하게 수록했다.거기에 키케로,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등 그리스·로마 시대의 격언과 일화부터 성경과 이솝우화까지 옛 성현들의 우정에 대한 금언집에 상세한 해제와 영인본, 화보 등 풍성한 자료를 더했다. 300여 개의 꼼꼼한 주석을 통해 한자식 서양 인명과 원 출전을 면밀하게 정리했다. 해제에서는 두 책의 저술 동기와 간행 경과부터 편집 원리, 중국에서의 평가, 조선에서 읽힌 흔적과 의의까지 추적했다. /윤희정기자

2024-01-11

세상을 바꾼 천재들의 놀이터 ‘숲’

‘숲의 인문학(천재들의 놀이터)’(한길사)은 다빈치, 뉴턴, 아인슈타인, 다윈, 루소, 칸트, 베토벤, 밀, 괴테, 처칠, 세잔, 가우디, 디즈니, 에디슨, 잡스 등 ‘천재 ’15명의 삶을 추적해 천재성이 언제 어떻게 발현하고 폭발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이를테면 천재들이 몇 살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업적으로 천재성을 발현했는지 살펴본다. 생애와 성장환경을 통해 천재가 숲과 맺은 인연을 확인하고, 세상에 없던 개념을 찾아낸 천재와 그렇게 하지 못한 수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아본다.어린 시절을 숲에서 놀면서 보낸 다빈치와 가우디는 젊어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숲을 학교로 삼고 하루 종일 숲에서 놀던 다빈치는 라틴어는커녕 이탈리아어도 겨우 읽고 썼다. 다빈치는 숲을 관찰하며 습득한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뽐내며 14세에 화가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갔고 20세에는 스승을 뛰어넘었다.가우디는 선천적인 류머티즘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숲에서 나뭇가지와 잎으로 집을 지으며 놀았다. 주말마다 등산하며 건강을 되찾은 그는 ‘바보 아니면 천재’라는 평가를 받으며 건축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서로 의지하며 태풍을 이겨내는 침엽수림에서 설계를 따왔다.뉴턴과 아인슈타인은 도시를 떠나 숲에 안긴 뒤에 잠재된 재능을 폭발시켰다. 뉴턴은 흑사병이 런던을 덮친 1665년 외갓집인 시골 울즈소프 농장으로 피신했다. 뉴턴은 그곳 농장에서 만유인력의 법칙뿐 아니라 빛과 색깔 그리고 물체의 운동에 관한 이론을 고안했고 미적분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른바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시기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가 꿈이었던 아인슈타인은 한적한 숲의 도시 베른으로 이주하고 3년 뒤 광전효과 이론, 브라운 운동,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까지 네 편의 논문을 써냈다.숲에서 불후의 역작을 완성한 베토벤과 괴테도 빼놓을 수 없다.저자는 천재들이 천재성을 폭발시킨 곳은 숲이라고 설명한다. 숲은 오감의 자극을 경험하는 최고의 놀이터라고 평가한다. 숲은 인류 문명을 낳았지만, 문명은 숲을 사막화시키고 이를 파괴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미래 세대에 물려줄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해결책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1-11

윤대식 영남대 명예교수, ‘도시의 미래’출간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를 지낸 윤대식(영남대·사진) 명예교수가 미래 도시의 발전을 제안하는 책을 펴냈다.윤 교수가 펴낸 ‘도시의 미래’는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는 기술혁신과 이미 도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다양한 현상을 바탕으로 도시의 미래를 전망하고 새로운 처방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 책은 총 3부, 13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윤 교수가 지난 수십 년간 도시와 교통 현상에 대한 분석과 연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문과 심의, 그리고 수많은 전문가 토론 등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저서라는 평가다.제1부는 도시는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논의하면서 도시를 어떻게 볼 것인지, 도시의 흥망성쇠는 왜 초래됐는지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제2부는 도시 부문별 현상과 전망, 방향을 다루며 도시의 변화와 미래의 가능성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제3부는 도시의 역사적 진화를 살펴보고,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할 것인지 논의한다.이 책은 오늘날 국내외에서 나타나고 다양한 현상과 이슈들이 도시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논의하고 있다.특히 이 책은 도시의 흥망성쇠, 도시재생, 디지털 전환, 초고령사회, 1인 가구 증가, 인구감소, 홈 오피스, 공유경제와 전자상거래의 확대, 젠트리피케이션, 탄소중립 도시, 자율주행차, 도심항공교통(UAM), 공유교통, 공항과 공항 경제권, 메가시티, 15분 도시 등 최근 떠오르는 이슈들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또 분산된 집중형 도시개발, 광역계획기구(한국형 MPO) 설치,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공공투자의 방향 등 정책적 제안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도시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지만, 20세기 도시들이 왜 실패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책의 곳곳에 잘 표현돼 있다.또 이책은 저자가 오랜 연구와 현장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력(insight)을 책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저자 윤대식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당초 이 책의 집필은 ‘도시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를 쓰기 위해 시작됐음을 밝히고 있다.이런 취지에도 이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이나 만화처럼 쉬운 책은 아니지만, ‘도시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그래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책에 속한다.그만큼 대중적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를 사례와 현상 중심으로 풀어쓴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저자인 윤대식 교수는 대한교통학회 학술상(저술부문, 2019), 경상북도 문화상(학술부문, 2020)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교통계획(박영사)’, ‘도시모형론(홍문사)’, ‘지역개발론(공저, 박영사)’ 등 다수의 전문서적을 저술했다.한편, ‘도시의 미래’저서는 박영사가 간행했으며 328쪽, 2만6천 원이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23-12-29

황혼이 짙어지는 시간, 새롭게 삶을 보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스토리텔링 작가이자 답사작가, 수필가인 박필우 작가가 산문집 ‘추억의 편린 낱장의 행복’(홍익출판사)을 출간했다.오랜 시간 역사 스토리텔링 작업과 산문 쓰기를 즐겨 했던 저자는 2023년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작품집 발간 지원 수혜를 입어 책을 펴내게 됐다.환갑 진갑 다 지난 저자가 황혼에 물들어가는 삶에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며 쓴 글을 모았다. 이젠 아픈 추억도, 잊고 싶은 기억도, 시린 경험도 보약으로 변환시켜야 할 때이며, 삶을 정리하는 연습의 시간이 찾아온 시점에서 저자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고 역설한다.얼마가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잊힌 이상을 깨우고, 그를 향한 현명한 선택은 운명도 거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남은 생, 발효할 것인가 부패할 것인가는 우리네 선택에 달렸다고 조곤조곤 설득하려고 애쓴다. 박필우 작가 1부 ‘낱장의 행복’에서는 내 삶의 언저리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흔적이 보인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생활철학을 담았다.2부 ‘추억도 약이 될까’에는 지난한 가운데 말썽꾸러기이자, 별빛같이 아련한 저자의 어린 시절을 솔직담백하게 풀어 놓아 독자를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로 이끈다. 3부 ‘이제부터라도 행복해질 거야’에서는 부제처럼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포기하기보다 더 알뜰하게 생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서문 중 ‘우리 모두 세상을 걸어가는 순례자이다. 순례란,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길’이라는 표현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4부 ‘가볍지 않은 산책’은 답사작가가 걸어가며 내려다 놓는 사색의 길에 독자를 초대한 듯하다. 특히 대구 인근 몇 곳을 골라, 훌쩍 길을 나서도록 유혹한다. 노년의 삶은 사색으로 충분히 내면을 살찌울 수 있다며 풀어 놓은 이야기들이다.박필우 작가는 2015년 대구일보 대구문학신인상을 수상했으며 ‘까르페모리’, ‘심행수묵’,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 ‘유배지에서 유배객을 만나다’, ‘해인’,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재) 등의 저서를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2-27

미학적 깊이·넓이 확장된 ‘프네우마 시편’

‘프네우마 시편’ 표지 “눈이 참 어리석다.이 땅에 내린 적설량과 강수량을눈으로 헤아려내지만잠자리 날갯짓에서 번지는파동과 내 폐 속의 얼룩은엑스레이를 거쳐 읽어낸다.지난 시간 내 귀를 애무하던여자의 지워진 잔상을바람의 파동으로는 판독하지 못한다.없는 세계를 보게 할 수 있는활성화된 시제와 공간 속정물화 같은 소나무 녹색 바늘이존재의 눈금이다.”- 이상규 시 ‘프네우마 시편’ 6시인이자 작가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가 아홉 번째 시집 ‘프네우마의 시편(예서)’을 펴냈다.지난 8월 ‘외젠 포티에의 인터내셔널가 변주(예서)’이후 불과 석 달 만에 출간된 ‘프네우마의 시편’에는 장시 ‘프네우마 시편 1~18’을 포함해 ‘서로 다른 길로 가는 이들에게’, ‘동화사 화림당 돌계단에서’, ‘성산포 바다’ 등 작품의 미학적 깊이와 넓이가 한층 확장된 시편 총 96편의 시를 수록했다.이번 시집에는 ‘출렁이는 강물’ 등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시와 함께 ‘양지다방 여주인’처럼 인물에 관해 형상화한 시처럼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문학의 본질을 인간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작품들이 담겨 있다.‘발해사론’과 같이 고전적 발상을 시로 형상화한 시편들은 작가가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의 북방민족사와 불교적 장소 등과 같은 고전에 시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이다.또한 이 시집에는 ‘수성못에 내려앉은 하늘’과 같이 산문 형태의 시도 다수 포함돼 있다. 서술적 심상의 메시지 전달의 양이 많아진 경우에 운율성을 배제한 시적 산문의 결과다. 특히 표제 시이기도 한 장시 ‘프네우마(Pneuma)’ 시편 18편이 게재돼 눈길을 모은다.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 안에 프네우마(pneuma)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어서 이 물질을 매개로 삼아 영혼이 모든 신체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프네우마라는 말은 본디 바람·공기·날숨을 뜻하며 나중에 ‘성령’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파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네우마는 종교적 함의가 없는 단순한 ‘물질적 기운’이다. 신이 에테르를 매개체로 삼아 우주의 천체를 회전시키듯이, 영혼은 프네우마라는 물질을 통해 몸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상규 경북대명예교수 이상규 시인은 시집 말미의 화가 전완식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18편까지 창작한 이 ‘프네우마(Pneuma) 시편’을 100편까지 쓸 것이다. 의미를 부숴내는 백화 작업, 언어의 질서를 깨면서도 상상하는 메시지를 포기하는 작업으로 ‘바람’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천착하고 싶다”고 말한다.“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미학적 존재다. 인간이 가장 보배로운 미적 대상이며, 사랑이 듬뿍 담긴 최고 절정이 미학적 욕망의 대상이다. 인간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서는 예술의 한 영역이 문학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행위인 동시에 책임 또한 적지 않다.”(인터뷰 중에서)이상규 시인은 1978년 현대시학 추천 완료로 문단에 데뷔한 뒤 ‘종이나발’, ‘13월의 시’, ‘외젠 포티에의 인터내셔널가 변주’ 등 시집 여러 권과 연구저술들을 발표했다. 외솔학술대상, 봉운학술상, 대한민국한류전통문화대상, 한국문학예술상(2015), 매천황현문학대상(2017)을 수상했고, ‘13월의 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2-19

“한민족을 부흥·재건의 길로 이끄는 타당한 인식이 필요한 시점”

‘한국인은 누구이고,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역사가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의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대륙과 바다에서 찾은 우리 역사’(수동예림)가 출간됐다.대한해협과 황해 뗏목 탐사, 유라시아 대륙 횡단 등으로 ‘탐험하는 역사학자’라고 평가받는 저자는 “한반도에 갇힌 세계관과 성격, 체제, 문화 등을 벗어나 한민족을 부흥과 재건의 길로 이끄는 타당한 인식과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저자는 한민족을 부흥과 재건의 길로 이끌기 위한 인식과 방법론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한민족의 문화·생물학적 특성과 인간적인 성격 등 정체성을 규명하는 내용을 앞세운다.저자는 한국인의 정체성의 원형을 몇 가지로 유형화시켰다.첫째, 이상향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강한 목적의식이다. 우리 터는 심각한 자연재해가 없고, 기후가 온화하며, 사계절이 분명해서 식물성장과 동물들의 안주에 바람직한 생태 환경이다. 외적이 대규모로 침입하기 힘든 지리와 쉽게 점령할 수 없는 지형을 갖춘 탁월한 지정학적 환경이다. 단 한 번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뿐이다.두 번째는 탐험 정신과 역동성 등이 필요하다. 동쪽 이상향의 정보를 획득한 일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 사막, 대삼림, 강과 바다를 건너 8개 이상의 길을 이용해 수세대 동안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불가능한 도전을 성취한 탐험정신은 ‘흥’, ‘신바람’, ‘풍류’등으로 개회됐고, 극한 상황을 참고 돌파하는 집요함과 용기는 ‘은근과 ‘끈기’로 변형됐다.셋째는 조화를 지향하고 공생을 지향하는 정신이다. 일본인들은 당쟁 등을 침소봉대해 ‘당파성’을 타고난 민족성이란 궤변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실제 민족 내부에 분열과 전쟁이 발생했지만 원형은 통일지향적이었고, 모든 일을 조화와 협력의 관점에서 보는 문화였다. 생활 조건이 좋아 부유한 편이었고,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아담한 자연환경은 너그러운 인성과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아닌 공존과 상생을 하기 적합했다. 단군신화가 표방한 ‘3의 논리’, ‘홍익인간’, ‘풍류’, 원효의 ‘화쟁(和爭)사상’ 등은 조화의 논리이며 공생의 정신이다. 이어 고구려의 해양 활동을 이용한 등거리 외교, 백제의 일본 열도 진출, 신라의 유라시아와의 교류, 발해인들의 모피 무역, 고려의 무역망과 해군력 등을 소개하고 조선 근대 이후 민족성을 재조명한다.신석기 시대 한민족과 혈연, 언어, 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된 유라시아의 모습을 지역별로 살펴보고 미래의 지정·지경학적 가치도 논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30

소외 당한 모든 이의 목소리를 되살리며…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대표작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대표작 ‘멜랑콜리아 I-II(Melanc holia I-II)’가 노르웨이 뉘노르스크어 원전 번역을 통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연되는 현대 희곡 작가이자 실험적이고 정교한 시적 언어(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노랫말을 짓던 추억이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를 구사하는 산문 작가인 욘 포세는 노르웨이와 북유럽을 넘어 이미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서 자리매김했다.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욘 포세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일상적 세월 속에 자리한 이름 없는 존재들, 생과 사의 간극에서 잊히고 스러져 간 이들의 희미한 궤적을 되살리는 데에 매진해 왔다. 그중 ‘멜랑콜리아 I-II’는 욘 포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나 독특한 위상을 지닌 작품이다. 보통 욘 포세가 조형해 낸 인물들은 마땅한 이름도, 유별난 개성도 없이 범상한 상황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삶이라는 부조리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멜랑콜리아 I-II’에서 작가는 19세기 말에 실존한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을 가로지르는 전혀 새로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보인다. 게다가 더욱 과감하게 신경 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라스 헤르테르비그(멜랑콜리아 I)와 (먼 세월을 뛰어넘어) 치매에 걸린 화가의 누이 올리네(멜랑콜리아 II)를 통해 서술되는 하루하루의 사건, 착란, 번민, 고뇌, 기억의 편린들은 소외당한 모든 이들(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여성, 우울증과 치매에 고통받는 두 화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며 인간 조건의 심오한 깊이와 욘 포세의 매혹적인 작품 세계를, 더불어 어둠을 가르는 눈부신 섬광을 유감없이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30

한 권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 해양 전쟁

신간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한경BP)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이자 ‘역사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울프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 저자인 폴 케네디(78)가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써낸 해양 패권 흥망의 세계사다. 책은 바다에서 펼쳐지는 제2차 세계대전사로, 6대 해군 강국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승리를 위해 어떻게 움직였고, 그 균형추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추적하며, 바다에서 벌인 전투와 군사 활동, 수송 선단과 상륙작전 등을 매우 상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제 여러 군함과 해양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남긴, 미국의 대표적인 해양 화가 이언 마셜의 아름다운 삽화 53점이 함께 수록돼있는 것도 매우 기념할 만하다.1939년 이전에 상당한 해군력을 보유한 주요 국가는 영국, 미국, 프랑스(연합군), 일본, 이탈리아, 독일(추축국) 6개국이었다.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지만 미국 해군을 약간 앞섰을 뿐이었고, 일본과 이탈리아와 독일, 이 세 해군은 바다의 현상을 뒤바꾸려는 미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939년 9월에 발발한 유럽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독일 해군을 압도한 까닭에 제한적인 전쟁이었다. 히틀러가 북서 유럽 전역을 정복한 이후로 해군력의 균형이 바뀌었으나, 영국 해군은 고군분투하며 바다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의 합동 공격을 막아냈다. 그 뒤 일본이 태평양에서 미국과 영국 기지를 공격하면서 해군력의 균형에 훨씬 더 극적인 변화가 닥쳤고,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세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연합국에 최종적인 승리를 안겨준 열쇠는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 미국과 대영제국이 전투원과 군수품을 두 대양의 건너편으로 끝없이 실어 나른 덕분에 연합군이 이탈리아와 독일과 일본을 분쇄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해군력과 생산성 혁명이라는 두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경쟁국을 위축시킬 정도로 활황을 맞은 미국 경제 덕분에 연합국의 해군력 우위는 보장된 것이었다.이 책은 해전의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진 단계들을 찾아내고, 그 단계들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이면들을 파헤친다. 저자는 해군의 군사적 작전만이 아니라 교역과 외교, 재정 정책 및 혁신적 과학기술까지 언급하면서 해양패권과 전쟁의 승리로 이어진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결국 1945년 바다에서의 승리가 확정된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명백한 승전국은 미국이었고, 그것이 새로운 세계 질서 개편의 시작이었다.이로써 저자는 1936~1946년까지 10년 사이에 세계무대에서 활약해오던 해군 강대국들의 전략적 풍경이 다음의 4가지 관점에서 완전히 달라졌음을 짚어낸다. 첫째, 이탈리아, 독일, 일본, 프랑스의 해군이 소멸되며 유지돼오던 다국적 균형이 사라졌고, 둘째, 대포를 장착한 군함(수상함)의 시대가 끝났다. 셋째, 원자폭탄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군의 효용성과 역할에 의문이 던져졌고, 넷째, 미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새롭게 개편된 국제 질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폴 케네디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식에서 벗어나 다각도의 관점들을 탁월하게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먼저 1장에서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 당시 세계정세의 흐름에 대해 전체적인 개괄을 훑는다. 2장에서는 1939년 이전의 군함과 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전체 스토리의 관문을 열고, 3장에서는 해군력에서 중요한 지리적 조건과 경제력이라는 두 가지 요건에 대해 다룬다. 4~6장에서는 1939~1942년 전환점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본격적인 해전을 다룬다. 이 부분은 가장 중요한 ‘사건의 역사’에 해당한다. 그리고 7~8장에서 승패가 결정된 1943년의 극적인 해전과 심층적 분석을 이어가고, 그 뒤 9~10장에서 다시 1944~1945년 사이에 벌어진 마지막 해전 이야기와 함께 영미 해군력이 어떻게 변모됐는가를 자세히 분석한다. 끝으로 11장에서는 최종적인 결산을 통해 대해전이 세계사 전개에 어떠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30

지각 벌서기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오거라”

“잠자리가 와서 한 번만 / 나비도 와서 제발 한 번만 / 아무리 싹싹 빌어도 / 못 앉아본다 // 까칠까칠 까불까불 / 바람 꼬리 멈추지 않는다 // 그래도 뭐라 하면 안 된다 / 까칠까칠 까불까불 지킨 씨앗 / 배고픈 겨울새들이 먹는다.”- 이원만 동시 ‘강아지풀’계간 문학나무 2023년 여름호 시 부문 신인상으로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한 이원만 시인 시인이 첫 동시집 ‘오랜만에 나하고 놀았다’(모악출판사)를 출간했다.이원만 시인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포항에서 30여 년간 어린이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고 있기도 한 중진 국악인으로 통한다. 이 시인은 사물놀이 수업 시간에 시원한 그늘을 내주는 학교 운동장 느티나무에게 고맙다고 풍물을 쳐주고 들판에 나가 벼들이 잘 자라라고 풍물을 쳐주다가 벌어진 일들이 재미 나서 메모를 하다가 쓴 52편의 동시를 담았다.‘오랜만에 나하고 놀았다’는 머리로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인이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고, 겪은 경험을 동시로 담아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아이들 눈으로 들여다보고 아이들 마음으로 느끼면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이 시인은 “이 시집에는 지각한 아이에게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오라는 이야기가 있다. 체벌이 없어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묻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무가요 다음 시간부터는 늦지 말래요’ 모범답안을 이야기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진화시킨다. ‘나무가요 선생님이 직접 오시면 말하겠다는데요?’로 바뀐다. 선생님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러 갔다 와야 하는 거다. 이렇게 깔깔거리며 아이들은 성장하게 된다”고 전했다.이원만 시인은 포항의 젊은 예술가들과 사회적 기업 (주)아트플랫폼 한터울을 창립해 사물놀이 공연과 기후 혼란과 공생하는 인간, 생태적 감수성 등을 담은 뮤지컬을 제작하고 문화예술교육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3-11-29

모퉁이로 밀려난약자들의 자화상

김영의 단편소설 ‘아르바이트’에서 주인공 나는 전직 외교관이었던 노인의 간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노인은 나에게 고맙다며 마지막 날 골드 바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날이 다가왔지만, 노인은 심한 복통이 오고 나는 구급대를 부르고 서랍을 뒤진다….또 다른 단편 ‘사과’에서 사과는 문화센터 강사이지만 우유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피곤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소원하던 밤하늘 별들을 보기 위해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남편은 속엣말을 쏟아낸다….소설가 김영의 첫 번째 소설집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도서출판 BMK 간·사진)이 나왔다. 202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수상작인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을 비롯해 동시대인들의 ‘불안과 고독’에 관해 고민하며 쓴 9편의 이야기를 엮었다.작가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청년 세대의 현실, 임박한 죽음 앞에 지나간 시간을 곱씹으며 절대고독을 경험하는 노인 등 우리의 주위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다른 연령대의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실패와 고통 등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갈등의 이야기들은 계급, 지역, 세대, 젠더를 넘나들며 다양한 감상을 부른다.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에는 기러기 아빠의 애환, 간병하러 오는 소녀를 기다리는 노인, 다가구주택에 사는 MZ 세대의 비애 문제 등 현실 속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녹아있다. 소설가 김영 단편집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관하는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소설가 정이현은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가난하고 어리거나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또는 최소한의 사회적 자본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춥고 외진 모퉁이로 밀려난 약자들”이라며 “작가의 시선은 시종 그들 곁에 머문다. 그 진심 어린 목소리에 오랫동안 귀 기울이고 싶다”고 평했다.김영 작가는 “나에게 시와 소설은 삶의 고단한 모습들을 감추어주기도 하고 때로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펼쳐 보이며 희열을 느끼게도 해 주었다”며 “꾸준히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건 긴 습작의 나날 덕분”이라고 했다.김영 작가는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한동안 시를 썼고 평사리문학대상, 천강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22

독자들에 선사하는 ‘희망의 정언명령’

포항 출판사 도서출판 득수는 최근 이은정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비대칭 인간’사진을 출간했다.이은정 작가는 지난 2018년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등단했으며 첫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을 비롯 장편소설 ‘지니-너 없는 동안’과 ‘눈물이 마르는 시간’ 등의 산문집을 발표한 바 있다.이경재 문학평론가는 ‘비대칭 인간’에 대해 “밀실과 광장이라는 소설적 배경에 대한 시대적·문학사적 흐름 속에서 전망이 아닌 희망의 방식으로 삶의 가능성을 질문하는 독특한 작품집” 이라며 “이는 한국소설 독자들이 거의 받아본 적 없는 ‘희망의 정언명령’이라는 근사한 선물을 가득 안겨주고 있다. 이 때의 희망은 밀실과 광장의 변증법을 거쳐, 우리에게 다가온 선물이라는 점에서 한층 뜻깊게 다가온다”라고 평했다.소설집 ‘비대칭 인간’은 △‘눈이 와요’ △‘침대는 잘못이 없었다’ △‘비대칭 인간’ △‘유령 가족’ △‘입금하는 사람’ △‘소란’ △‘엄마 같은 말’ 등 7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볼 수 있다.도서출판 득수 김강 대표는 “앞으로도 보다 작품성 높은 글들을 발굴하여 주류와 비주류 문학을 연계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2023-11-19

에세이스트 정미영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 표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공존의 이유가 있을 터이다. 자연의 윤회 속에서 나무와 사람이 서로 이웃하여 안부를 묻고 있는 곳이 원골숲이다. 노거수의 몸피가 야위면 사람이 막걸리 몇 사발을 부어주며 원기를 북돋우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허기지면 나무가 치유의 기운을 내뿜어 주는 곳이 여기다. 가끔은 나무가 사람에게, 가끔은 사람이 나무에게, 서로 의지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정미영 산문집 ‘사계’ 중 ‘노거수 그늘 아래’에서)포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정미영(51·사진) 수필가가 최근 첫 산문집‘사계’(도서출판 득수)를 펴냈다.‘사계’는 지난 2005년 ‘에세이스트’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이후 첫 수필집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사색의 결과물을 따뜻하고 담백한 문장에 담아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이야기, 오며 가며 겪어온 따뜻한 만남에서 느낀 사유의 흔적을 사계절로 구분해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수필 48편이 담겼다.정 수필가는 작가의 말에서 “제 삶의 궤적을 더듬어 봅니다. 시간과 노력을 일관되게 쏟은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수필가로서 살아온 정체성이, 비발디의 ‘사계’처럼 독자인 당신에게 감동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반짝이는 언저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저의 카이로스는 축복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당신에게만은, 의미 있는 책이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계’는 △봄-삶, 빗장을 열고 거닐다 △여름ㅡ사랑, 흘러서 깃들다 △가을ㅡ추억, 느낌표로 머물다 △겨울ㅡ존재, 닿아서 스며들다 등 네 개의 테마를 중심으로 그 계절과 어울리는 산문들로 꾸려져 있다.‘사계’는 에세이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문장 속에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건과 존재들을 응시하며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숨 가쁜 도시의 중심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향기로운 곳을 찾아 여유를 즐기는 저자의 모습이 담긴 글에는 포근한 햇살이 머문다. 삶을 관조하고 성찰하면서 은은하고도 진솔하게 살아온 저자의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감수성이 담긴 편편의 글들은 더욱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 ‘사계’엔 ‘당신에게 말 걸기’라 이름 붙인 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 수록된 수필을 읽은 느낌을 적어본다면 나중에 다시 펼칠 때 반가운 ‘독서일기’와 재회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윤희정기자

2023-11-16

김만수 시인 시선집 ‘나의 수많은 근처들’ 출간

김만수 시인포항의 김만수(69) 시인은 등단한 지 36년 된 한국 시단의 중견 시인이다. 지금까지 첫 시집 ‘소리내기’를 비롯해 모두 10권의 시집을 냈다. 대략 3년 만에 한 권씩의 시집을 낸 것으로, 창작에 매우 열성적인 시인이랄 수 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결코 적지 않은 시집을 낸 것은 그의 문학정신의 충일성뿐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에도 치열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표시다. 최근 김 시인이 그동안 출간했던 10권의 시집에서 100여 편을 골라 엮은 시선집 ‘나의 수많은 근처들’(문학의전당·사진)을 펴냈다. 이 시선집에서 보여주는 시의 형식적 특성은 대부분 시편이 20행을 넘지 않는 전통적인 단아함이다. 언어의 절제와 축약을 통해 지나친 상상력의 비약을 통제하면서 아름다운 서정성으로 독자들의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고 있다.요즘 우리 시단의 일부에서 보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함이나 참기 힘든 장광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런 시적 태도 역시 ‘시는 곧 도(道)와 같다’는 도학자들의 수행 정신과 같은 점도 김 시인이 교육자와 개신교회 장로 직분의 종교인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전체적으로 서정시가 중심을 이루는 이번 시선집은 민중의 애환과 약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김 시인의 삶과 그의 시력(詩歷)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추천사를 쓴 고재종 시인은 “김만수 시백(詩伯)의 시는 고금동서는 물론이요, 우주에까지 보폭이 걸쳐 있다. 그 발걸음은 울울총총한 땅의 역사와 민중의 애환, 그리고 그들 삶의 장소들을 누비고 톺아본다. 그렇게 시인은, 의연한 발걸음의 내력들을 적어가면서도 관념의 아상에 빠지지 않고, 어쩌면 단아하다고 할 정도로 정제된 형식에 나무처럼 울울하고 별처럼 총총한 이미지들을 찬란하게 생성해놓는다. 아울러 그 이미지들의 사유화(思惟化)를 통해 시적 진정성에 도달하는 품이 가히 일품”이라고 적었다.“이슬처럼 머물다/먼 강물 소리에 묻어가는/그대를 따라갑니다/사랑은/아슬한 굽이마다 내걸린/희미한 등롱이었지요/그대 사랑하는 저녁을/여기/마디마디 새겨 보냅니다/청댓잎 새순으로/다시 피어오르시어/푸른 마디마다 매단/눈물방울/보십시오”- 김만수 시 ‘목간(木簡)’ 전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08

세월이 주는 단단함… 건축가 부부가 사랑한 옛집

“김명관 고택, 선교장, 임리정, 설선당, 남간정사, 소쇄원, 운현궁, 도산서당…. 우리가 사랑한 옛집을 순례하다.”건축가 부부인 임형남·노은주 씨가 최근 펴낸 ‘집의 미래’(인물과사상사)에는 우리가 사랑한 오래된 집들을 순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삶이 담긴 살림집과 자연에 스며들어 또 다른 자연이 된 사찰 등 한국의 대표적인 옛집 32군데를 순례하면서 미래의 집을 생각한다. 그 오래된 집들은 정지해 있어도 무척 강한 움직임이 있고,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경지를 이룬 우리의 문화를 상징하기도 한다.제1부는 한국의 옛집을 순례한다. 산천재, 선교장, 임리정, 소수서원, 남간정사, 경복궁 등 우리의 옛집 15군데를 둘러본다. 제2부는 한국의 사찰을 순례한다. 화엄사, 통도사, 선운사, 실상사, 황룡사지, 미륵사지 등 우리의 사찰 17군데를 둘러본다.‘산속에 하늘이 담긴 집’이라는 뜻인 산천재는 남명 조식(曺植)이 61세에 짓고 인생의 말년을 보낸 집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리하고 있다.평생 벼슬을 하지 않은 처사로 살았던 조식은 학문적인 깊이와 높이를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대학자였다. 그는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고 밤에도 정신을 흐트러뜨린 적이 없었다. 명종이 그를 단성 현감에 임명하자, 사직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산천재는 그런 조식을 무척 닮았다. 절묘한 공간의 구성도 없고 아름다운 건물의 집합도 없고 우리의 옛집이 보여주는 다양한 마당조차 없다. 고수의 한 획처럼 지리산과 덕천강 사이에 한 점을 찍어놓은 것 같다.김명관 고택은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라는 곳에 있는 집이다. 이 집은 따로 전해지는 당호는 없고, 김명관(金命寬)이 지은 집이라는 사실과 지은 지 약 240년이 됐다는 사실만이 전해진다. 김명관 고택은 칸수로 100여 칸으로서 보통 큰 집이 아니었다. 김명관 고택은 전형적인 호남 부잣집의 모양대로 여러 개의 건물이 자유롭게 분산되어 있는데, 그 공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특히 안채의 시어머니 영역과 며느리 영역은 부엌과 방의 모양, 그 상부의 다락 등이 그림을 그리고 반을 접어 똑같이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 고부간에 서로 일정한 거리와 영역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임리정은 우리나라 예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김장생(金長生)이 추구하는 삶과 닮은 집이다.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는 김장생이 평생 가슴에 품고 행동에 드리어 놓았던 인생의 지침이었던 ‘경(敬)’을 의미한다. 더욱이 임리정은 두드러지게 불끈 솟지도 않고 남들이 쉽게 내려다보지도 못하는 위치에 있다. 3칸 집, 가장 평범하지만 모든 선비가 마지막에 돌아간다는 ‘삼간지제(三間之制)’에 따른 집이다.팔괘정은 김장생의 제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자신의 집을 우주 만물이 함축된 중심으로 보고 지은 집이다. 팔괘정이 임리정과 불과 15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 가까이에 있고자 한 마음을 담은 것이다.식영정은 김성원(金成遠)이 그의 장인이며 스승인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집이다. ‘그림자가 쉬는 정자’라는 뜻이다. 임억령은 그림자를 ‘사람을 얽어매는 욕망이며 현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식영정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그림자를 끊겠다는 의미의 집이다.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아주 작은 집이다. 높은 언덕에 있지만,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도산서원은 이황(李滉)이 57세 되던 해에 짓기 시작해 60세에 완성했다는 도산서당 일원에서 시작한다. 도산서당은 이황이 공부하는 공간과 제자를 가르치는 공간, 그사이에 수많은 책을 쌓아놓은 서가 공간과 부엌 공간으로 이루어진 4.5칸이라는 모호한 크기의 집이다. 이황은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며 바르게 하고,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바른 지식을 얻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도산서당은 작지만 겸손하고 조용하며 경건하다. 여느 서원 건축과는 다른 자유로운 공간적 융통성이 드러나는 도산서원은 당시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황의 학문에 대한 자세와 제자를 대하는 방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02

도서출판 득수, 엔솔로지 소설집 ‘쓰는 사람’ 출간

포항 출판사 도서출판 득수는 최근 강이라, 김도일, 조영한, 박지음, 유희란, 조미해 작가가 참여한 엔솔로지 소설집 ‘쓰는 사람’사진을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은 문학 거장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오마주(hommage)’를 소재로 삼아 쓰였다.여섯 명의 작가들은 △레이먼드 첸들러 △레이먼드 카버 △현진건 △손창섭 △모옌 △기드 모파상 △오헨리 등 문학 거장을 롤모델로 삼아 오마주 작품을 써냈다.문학평론가 황유지는 “오마주의 시도는 창작자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원작자의 ‘영향’에 대한 당당한 맞부딪힘 그 긍정적 작법과 다양한 변이의 발생을 부추기는 실험이면서도 결코 기껍지만은 않을 도전이었을 것”이라며 “이번 ‘쓰는 사람’과 같은 아름다운 기획과 도전으로 인해 우리는 이렇게나 즐거운 변이를 읽을 수 있다. 고단하고 멀리 가는 이 길 위에서 언젠가 우리는 고사리의 숲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소설집 ‘쓰는 사람’에 대해 총평했다.이어 그는 “강이라의 ‘레이먼드 레이먼드’는 강이라는 대가의 강점을 적절하게 솎아 쓴다. 레이먼드, 즉 챈들러에서 카버로 능숙하게 옮겨간다”라며 “김도일의 ‘사방’은 역사를 뒤밟으며 소란이 쓸고 간 자리를 챙겨 줍는 일 그것이야말로 소설이 역사와 구별되는 점임을 밝히며 소설의 사회적 기능을 표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고 했다.또한 “조영한의 ‘나와 당신의 머나먼 이야기’는 생은 ‘쓰는 자’인지도 모른다.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문학적 패배’라는 인식 역시 어쩌면 원인으로 지목한 함구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해야 하는 자들의 숙명”이라고 봤으며 “박지음의 ‘걸음’의 따뜻함은 종종 위태로운 경계들을 향해 있곤 했다. 한 번 제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원 자리란 영영 존재하지 않음을 숱한 전쟁과 분쟁으로 또 가난과 삶을 위해 떠나고 쫓겨가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 현실의 증명”이라고 밝혔다.문학평론가 황유지는 “유희란의 ‘사소한 일’은 각 인물들의 심리를 대단히 치밀하게 쫓으며 여성 인물의 자아 감각을 지배하는 가난의 흔적과 그래서 더 가장하는 여유에 대해 기 드 모파상의 원작을 충실히 오마주하고 있다”고 했으며 “조미해의 ‘선을 지키는 일’에서는 모든 이가 ‘선’을 넘는데, 그래서 소설은 줄곧 팽팽한 긴장으로 이어진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랑을 확인’하길 요청하고 있다”고 각각의 작품에 대해 평했다.한편, 도서출판 득수는 이번에 출간한 엔솔로지 ‘쓰는 사람’을 비롯해 5종의 소설집을 출간했으며 향후에도 앤솔로지와 개인 소설집 등의 문학 서적을 계속해서 출간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02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유년의 기억과 역사에 대한 성찰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리르’ 선정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신작으로 찾아왔다. 올해 등단 60주년을 맞은 르 클레지오의 작품세계는 다채롭다. 23세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그는 현대 사회의 개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와 소통의 단절을 다뤘다.이번 르 클레지오의 작품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책세상·사진)은 ‘레시(récit·이야기)’로 분류된다. 소설(roman)보다는 가볍고, 수필(essai)보다는 무거운 장르를 일컫는데, 르 클레지오의 레시는 보통 서사의 차원에서 소설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듯 서술하는 점에서 기존 ‘르 클레지오의 레시’와는 거리가 있다.‘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은 ‘브르타뉴의 노래’와 ‘아이와 전쟁’, 두 이야기(récit·레시)로 구성됐다.첫 번째 이야기 ‘브르타뉴의 노래’에서는 유년 시절을 보냈던 브르타뉴에서의 일화를, 두 번째 이야기 ‘아이와 전쟁’에서는 “인생의 첫 다섯 해를 전쟁 속에서 살았던” 르 클레지오 자신의 제2차세계대전 시기를 그린다. 두 편의 글은 분명 작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지만, 작가는 이것이 연대기도 추억담도 회고록도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기억의 변질성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회고가 아닌 ‘인간’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섬세한 성찰로 이어진다.왜 르 클레지오는 ‘브르타뉴’와 ‘전쟁’이라는 두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을까? ‘브르타뉴의 노래’에서 작가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 그저 매해 여름 몇 달 정도만 보냈을 뿐”인 브르타뉴에 깊은 향수를 갖는다. 이는 ‘클레지오’라는 그의 성이 브르타뉴어 ‘클뢰지우(kleuziou)’에서 유래해서 뿐만이 아니라, 브르타뉴의 역사에서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린 고유의 문화와 생명력의 영향이 크다.한편 ‘아이와 전쟁’에서는 “내 삶의 첫 번째 기억은 폭력에 대한 기억”이라며 전쟁의 파괴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특히 전쟁 과정에서 그저 ‘부수적 피해’로 분류되는 여성과 아이에 대해,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피해다”라며 소외된 자에 대한 연대 의식을 표명한다. 만인의 기억 속에서 흐려지는 “대문자 역사의 주변인”을 이야기하는 과정으로부터 브르타뉴와 전쟁이 만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1-02

‘위기 한국’ 탈출 해법, 다산사상에 있다

포항지역에서 ‘정치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치학박사 김만수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이 최근 오늘날 한국이 직면해 있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풀어갈 해법을 모색한 책 ‘위기의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도서출판 자치시대)를 펴냈다.김 소장은 지난 2017년 영남대 대학원에서 ‘다산 정약용의 위민 변통사상’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정약용의 경세론의 이론적 근거를 ‘주역(周易)’의 핵심논리인 ‘변통(變通)’의 관점에서 분석한 최초의 논문이란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위기의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는 지역 인터넷신문 ‘다경뉴스’와 ‘주간영덕’에 연재했던 기획특집을 모아 엮은 것이다.저자는 서문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도를 넘는 극단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도덕 불감증,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정직하게 양심껏 순리대로 살아가면 손해 본다’는 식의 오도된 가치관이 정치·사회·문화·종교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현상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이는 마치 200년 전 다산 선생께서 ‘이대로 가면 조선은 반드시 망한다’며 개혁이나 경장보다 더 강력한 ‘대변통(大變通)’을 강조했던 시대 상황과 너무나 흡사해 그 해법을 찾고자 대장정을 시작했다”고 출간의 배경을 밝혔다.흔히 다산을 가리켜 ‘실학의 집대성자’라고 한다. 실학이란 술어는 실사구시지학(實事求是之學)의 줄임말로서, 진정한 학문은 공리공담(空理空談)이 아닌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李用厚生)을 통해 민(民)의 생활에 실질적인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저자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75년 생애를 파란만장한 삶을 치열하게 살다 간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산의 거대한 ‘학문의 산맥과 사상의 바다’는 참으로 높고도 깊고도 넓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강력 비판하며 중국 역사서를 역 추적해 ‘아방강역고(我邦彊域考)’란 제하에 한국고대사를 재정립한 역사지리학자, 동학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혁명론자,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 호치민의 정신적 스승, 서학 사상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세계 지성사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고, 로크·루소 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고,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선의 엔지니어, 혁명을 꿈꾼 시인, 그리고 뛰어난 법학자이자 의학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식어로 다산을 극찬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김만수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 저자는 철저하게 실사구시를 추구했던 다산의 내공을 독자들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분야별로 나눠 1장 다산의 생애를 시작으로 2장부터는 다산의 초진보적 변통 사상인 민주체론과 상향식 대의민주제, 신목민론, 패정군주방벌론, 이용후생론, 토지개혁을 위한 여전론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다. 또 9장부터는 다산의 위민사상인 민을 위한 형전과 병전, 다산의 교육관과 역사관, 민을 위한 세법, 의료와 복지에 관한 다산의 해안을 정리한다. 14장에는 왕에게 바치는 유서 ‘경세유표’ 저작 배경과 내용을, 15장과 16장에는 다산이 고달픈 유배생활 중에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남긴 3천여 편의 시와 편지글을 농축해 소개하고 있다. 17장에는 다산이 꿈꾼 이상세계와 아쉬움을,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지막 장에는 다산에 심취하게 된 경위를 사진과 함께 소상히 밝히고 있다. 매 장 말미에 저자의 생각과 견해를 단상으로 남기고 있다.저자는 “이 책이 다산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고, 더 나아가 시공을 초월한 심오한 다산사상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 땅의 위정자들과 공직자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책은 대한민국 서예계의 거장 초당 이무호 선생이 표제를 써 무게감을 더했으며, 표지는 산업디자이너인 저자의 아들 시완씨가 고서 풍으로 디자인했다.김만수 소장은 영덕 출신으로 포항대 사회복지과 겸임교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국가지도자과정 경북 주임교수 등을 지냈으며 현재 경상북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 경북학숙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