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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초의원에 대한 불합리한 공천시스템이 이번 선거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북지역 상당수 지역에서 국민의힘 기초의원 공천을 둘러싸고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천(私薦)’ 의혹이 제기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서는 기초의원 후보 공천은 당협위원장에게 일임하고 있다. 국민의힘 경북도당의 경우 모든 시·군 당협위원장이 현역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시·군의원 공천 심사를 지역구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다만, 일부 국회의원이 공천 후보 선정에 부담을 느껴 경북도당에 위임하거나 예비후보 모두를 경선에 붙이는 사례가 있지만, 대다수 당협은 지역구 의원 의중이 공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북도내 모 당협의 경우에는 일찌감치 내정된 기초의원 후보들을 중심으로 별도의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시·군 단체장 선거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공천을 둘러싼 금품수수 의혹까지 나오는 곳도 있다. 국민의힘 기초의원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 14일에는 경기도 31개 당협 시·군 원내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당협위원장이 사천에 가까운 기초의원 공천을 하고 있다”며 집단 항의하는 사태도 있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이 이처럼 비합리적으로 진행되니까, ‘지방의회 무용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것이다. 기초의원을 포함한 지방의원들의 비리, 추태 등의 행위는 언론의 주요 메뉴가 된 지 오래됐다. 이러한 자질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재의 당협 중심 공천시스템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공천시스템으로는 후보자의 능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충성심이 공천의 최대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원이 국회의원 심부름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정치환경 때문이다. 기초의원은 ‘생활정치’를 실천하며 조례를 만들고, 시장·군수의 예산집행을 감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권자들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우리 동네 기초의원이 누가 출마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장에 나갈 필요가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대구지역 고용률은 58%다. 전국 평균 62.7%보다 크게 낮다. 실업률은 3.3%로 전국 평균 3.0% 높아 고용의 양과 질 모두 전국 평균에 못 미친다. 문제는 이같은 수치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대구는 지역총생산(GRDP)이 30년 넘게 전국 꼴찌 도시다. 대구의 고용률을 같은 기간 인천(63.1%), 대전(61.4%)과 비교해 보면 대구 고용성적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 지를 짐작케 한다. 대구지역 청년들이 고향인 이곳을 떠나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최근 10년 동안 대구는 청년인구가 20% 이상 줄었다. 저출생 등 인구의 자연 감소 영향도 있으나 전국 청년층 인구 감소율 13%와 비교해 보면 대구에서 유독 많은 청년이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데이터처 고용동향에 의하면 올해 1분기 국내 취업자는 작년보다 18만3000명이 늘었다. 반면에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15만6000명이 줄었다. 청년층 실업률도 7.4%로 1분기 기준으로 2021년 이후 가장 높았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시기의 청년층 고용 저하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 청년층의 실업률은 경제 사정이 취약한 지방도시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대구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대구의 고용부진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제조업과 건설업의 부진을 꼽는다. 전통 제조업인 자동차 부품산업과 섬유업 등의 부진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건설업의 부진 등이 고용률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견해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청년층의 이탈과 고령화로 단시간 위주로 일자리가 재편되는 고용시장 악화도 원인으로 지적한다. 대구지역의 청년이탈과 취업난은 어제 오늘 문제는 아니다. 경제의 모든 것이 서울로 쏠리면서 지방도시가 겪는 공통의 문제다. 물론 대구가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대구시가 나서 각종 경제희망 프로젝트를 추진하나 정치권의 협력이 없으면 추동력이 붙지 않는다. 대구경제를 위해 이제 정치가 나서야 한다.

칼럼

독서 인구의 감소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독서율은 38.5%인데, 이는 4년 전 같은 조사에 비해 9%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국내 주요 서점의 매출도 전년도 보다 3.1% 하락했단다. 안그래도 독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AI라는 첨단의 지식 보조도 활용 가능해졌으니, 앞으로 이 하락세는 더 가속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20대의 연간독서율은 75.3%로 직전 조사보다 0.8% 증가했다고 한다. 독서율이 상승한 유일한 세대가 20대라는 거다. 대체로 이 기현상(?)의 원인에 대해 ‘텍스트힙(Text-Hip)’ 열풍을 꼽곤 하는 것 같다. 그에 발맞춰 여러 ‘북튜브(Book-Tube)’ 채널도 흥행하고 있다. 가령 ‘민음사TV’는 구독자가 42만 명에 이른다. 책을 읽는 행위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세대의 출현은 분명 반길만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이들 독서의 지속가능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서가 트렌디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에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에는 비약이 있기도 하다. 책과 독서의 관계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발간은 독서 행위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책은 여러 매개를 거쳐 독자에게 읽힌다. 출판사의 광고나 판촉 행사, 도서 할인, 북이벤트 등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독서운동을 비롯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책들은 읽히지 못하고 사장 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읽히지 않은 기록들의 무덤이 아닐까. 대개의 책들은 독서를 배반한다. 비록 현실이 이럴지라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꽂혀 있기만 한 책들을 버려진 퇴물로 취급하기보다는 언제든 읽힐 가능성이 있는 지식의 보고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좋은 책이 나오길 기다리기보다는 아직 읽히지 않은 좋은 책들을 발굴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발굴을 떠맡아줄 기관으로 문학관 같은 곳이 활용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국에 백여 개가 있다고 알려진 문학관의 거의 다수가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사실상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관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다르게 해당 장소에서 기리고자 하는 작품의 정수(精髓)를 실감케 할 수 없다. 문학 관련 전시를 아무리 관람해도 문학작품이란 기본적으로 ‘독물(讀物, 읽을거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관은 책(작품)과 독자를 매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방문객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대형 서점에는 책을 찾는 20대가 많다 보니, 그곳에서 ‘번따’를 시도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단다. 아마 서점에서는 이를 ‘민폐’로 여기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문학관과 같은 공간에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지역에서든 그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국의 문학관이야말로 책과 독서, 작가‧작품과 독자, 독자와 독자를 유익하게 연결해 줄 장소로 거듭나야 할 시기가 당도했다. 문학관은 텍스트힙을 자기 역할을 고양해 줄 기회로 삼아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손목터널증후군이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손이 저릴 수가 있지만 손이 아니라 목에서 생기는 문제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특히 손가락 끝이 찌릿하거나 팔을 따라 내려오는 저림이 특정 자세에서 심해지는 경우라면 단순한 말초 문제가 아니라 경추에서 시작된 문제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손이 불편하니 손을 치료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원인은 전혀 다른 위치에 숨어 있는 것이다. 목뼈 사이에는 디스크와 함께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다. 이 신경은 목에서 시작해 어깨, 팔을 지나 손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출발점은 목이지만 이곳이 눌리면 증상은 손에서 나타날 수 있다. 경추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관절과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신경을 압박하면 그 신경이 담당하는 영역 전체에 이상 신호가 전달된다. 그래서 손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지고 심한 경우 당기면서 힘이 빠지는 증상까지 나타난다. 특히 장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컴퓨터 작업처럼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자세로 일을 하면 경추에 부담이 쌓이면서 이런 문제가 더 쉽게 발생한다. 목에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간단한 검사로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퍼링 테스트다. 목을 한쪽으로 돌린 다음 뒤로 눕혀 기울이면 바로 손이 저리거나 목 어깨 통증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볍게 압박을 가하면 팔과 손으로 저림과 당기는 증상이 더 심해진다. 간단한 검사지만 증상이 발현되면 아주 높은 확률로 경추 디스크임을 보여주는 검사라 임상적으로 의미가 크고 환자 스스로도 손이 아니라 목에서 시작된 문제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진단 자체가 치료의 출발점이자 병에 대한 설득 과정이 되는 셈이다. 경추 신경 눌림의 치료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손이나 팔만 마사지하거나 물리치료를 반복해서는 증상의 개선이 힘들 뿐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염증을 줄여줘야 하는데 추나요법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틀어진 경추의 정렬을 교정하고 어깨 주변 근육을 풀어주면 신경이 지나가는 공간이 넓어지면서 압박이 줄어든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직접적으로 경추 신경에 약침을 쏴 염증 반응을 줄여 주면 좋다. 초음파를 활용해 신경을 직접 확인해 보면 경추 5번, 6번, 7번에서 나오는 신경이 동글동글한 형태로 또렷하게 관찰된다. 환자 손의 저림 경로나 양상을 확인 후 신경이 주변 조직에 눌리거나 염증 반응을 보이는 지점에 직접 약침을 뿌려준다. 환자는 신경이 자극되면서 팔과 어깨로 약침 자극이 내려가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고 이는 단순히 추정에 의존하는 치료와는 정확도와 효과가 다르다. 자극을 받고 있는 신경 주변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유착을 풀어주면 통증 신호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손 저림은 단순한 혈액순환 문제뿐만 아니라 신경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그 시작점이 목인 경우도 적지 않다. 증상이 반복되거나 심해진다면 손만 바라보지 말고 스퍼링 테스트를 검색 후 셀프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평가와 함께 경추 정렬을 바로잡고 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치료까지 이어진다면 오래 지속되던 저림 증상도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일할 때는 물론이고 쉴 때에도 폰은 필수적이다. 누군가는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SNS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잠깐만 봐야지 하고 시작한 숏츠나 릴스를 보다 보면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가 있기도 한다. 세계인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3시간에서 4시간 수준이라고 한다. PC와 TV를 포함한 스크린 타임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6시간 30분을 사용한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휴대폰 사용 시간은 약 5시간으로 전 세계 평균보다 높다. 스마트폰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제 심심한 시간이 없어졌다. 조금만 틈이 난다 싶으면 자동으로 휴대폰에 손이 간다. 아이들에게는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 이것저것 궁리하며 놀던 시간이 사라졌다. 따분함이 결핍된 시대이다. 마이클 이스터의 저서 ‘편안함의 습격’에 따르면 우리 뇌에는 집중 모드와 비집중 모드가 있다. 집중 모드는 뇌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일을 할 때의 상태이다. 비집중 모드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의 따분하고 심심한 상태로, 마음의 방황이자 휴식 상태이다. 이 비집중 모드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떤 일을 더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자원들을 복원하고 구축하게 된다. 따라서 따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인간이 업무를 완수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시간이 집중 모드 상태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휴대폰과 TV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에는 한 가지 운동을 반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결국 우리가 쉰다고 생각하며 폰을 보는 시간에도 우리의 뇌는 일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둘러싸여 심심할 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뇌는 혹사당하고 있다. 결국 따분함의 결핍은 정신적 피로를 위기 수준으로 몰아갔고, 현대인의 우울증과 삶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폰 없이 살 수 없어진 우리는 느긋하게 마음의 방랑을 하면서 화면 밖의 것들을 느끼고 바라볼 때에만 그 존재가 드러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걱정된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기 위해 일정 연령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한다는 외국의 입법 소식들이 들려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휴대폰 없이 따분하게 보내야 하는 시간을 강제로 갖게 하면 어떨까. 따분함 속에서 마음의 유랑을 하는 시간. 무척 심심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신기한 것과 하고 싶은 일 따위를 찾고, 마음의 소리도 들어보는 시간.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2박 3일 동안 폰 없이 자연 속에서 어떤 프로그램도 없이, 공부도 하지 말고 지내야 하는 여행을 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심심해 죽겠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점차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것이며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것이다. 따분함에서 벗어나는 출구를 찾다 보면 창의력이 발동한다. 수학여행과 소풍마저 없어져 가는 요즘, 다들 헛소리라고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휴대폰 없이 따분해져 보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꿈을 꿔 본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한국 늑대는 한반도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에 존재해 온 동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해수구제 정책에 의해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해수구제 정책이란 일본 조선총독부가 사람과 재산에 해를 끼치는 짐승을 제거할 목적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시베리아 호랑이, 아무르 표범 등 한반도 내 대형 포식동물이 멸종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늑대도 마찬가지. 공식적으로 일제 강점기 포획된 늑대만 1300여 마리로 기록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포획 사살된 것으로 짐작된다. 동화 등에 등장하는 늑대는 교활하거나 무섭게 표현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가축을 습격하거나 사람을 해치는 동물로 늑대 기록이 나온다. 늑대는 보통 4~5 마리 정도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멧돼지, 고라니 등 초식동물들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전략적 사냥을 할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다. 일제강점기 멸종의 길로 접어든 늑대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북 영주, 봉화 등지에서 출몰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1965년 영주에서 포획된 늑대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1997년 폐사했다. 한국의 야생늑대 계보는 이날로 공식으로 끊어졌다. 지난 8일 대전 오월드동물원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가 10일째 복귀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동물원 인근 야산에서 잠시 발견되기도 했지만 또다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월드 늑구 탈출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외 누리꾼 사이에서도 관심이 커져 영문판 홈피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늑구의 실시간 소식을 전하면서 사살은 말라는 메시지도 전파하고 있다. 늑구의 안전한 귀환 소식을 모두가 기다린다. /우정구(논설위원)

요즘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건 무엇일까.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를 빌리자면 꽃의 절정 시기를 맞추는 일이다. 워낙 변화무쌍한 날씨가 반복되다 보니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는 열흘이나 빨랐는데, 진달래와 벚꽃은 예전과 비슷하다. 도대체 어느 장단과 계획에 맞춰 축제의 일정을 잡아야 하는 걸까. 지자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 괜한 허풍은 아닌 것도 같다. 해마다 4월이면 경주에는 꽃 잔치가 벌어진다. 벚꽃이 지고 나면 열흘과 보름 사이로 겹벚꽃이 만개한다. 순수 우리나라 꽃으로 일컬어지는 겹벚꽃의 성지인 불국사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선덕여왕길’은 요즘 가장 뜨고 있는 핫플이라고 보면 된다. 두 군데 장소가 풍기는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300여 그루의 겹벚꽃이 밀집된 불국사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선덕여왕길은 조금은 천천히 쉬어가면서 몸과 마을 충전할 수 있는 담백한 힐링의 길이다. 올해 겹벚꽃은 유난히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근래에 자주 내린 비에다 꽃샘추위가 더는 위력을 떨치지 못하는 기후 조건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음이다. 굳이 걱정을 미리 해보자면, 예고 없이 찾아드는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가 푸른 하늘에 흠결을 남길 수도 있다는 우려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진분홍색 겹벚꽃과 하얀 겹벚꽃을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에 더없는 장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선덕여왕 길’은 이름이 다양하다. ‘숲머리 둑방길’ 또는 ‘진평왕릉 가는 길’ 등이다. 보문호 바로 밑 명활성 입구에 위치하며 불국사와의 거리는 차량으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다. 몇 해 전 경주시에서 ‘선덕여왕 둘레길’로 명명하였는데, 보문호에서 흘러내린 실개천이 수로를 따라 명활성에서 진평왕릉까지 약 1.8㎞에 걸쳐 이어지는 산책로다. 그동안 경주의 숨겨진 겹벚꽃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졌었는데, 내게는 아직도 애증의 길로 기억되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롯이 흙길을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었던 이 길은 몇 해 전에 큰 변곡점을 맞았다. 짧은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단번에 대체할 수 있고, 소수(疏水)가 흐르는 작은 수로를 끼고 호젓한 둑방길을 걸으면 저절로 사색이 되던 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찔레꽃과 오동나무 등과 어울린 500여 그루의 겹벚꽃이 자지러져서일까. 누군가는 일본 교토에는 사색을 요구하는 ‘철학의 길’이 있다면 한국에는 경주 ‘숲머리 둑방길’이 있다고도 했었다. 일본 교토의 ‘철학의 길’은 비와코(琵琶湖) 호수에서 끌어온 소수가 길을 따라 흐르는 수로 옆의 산책로다. 봄이면 수령 100년의 500그루 벚나무 꽃이 양측으로 만발하는 벚꽃 구경의 명소인데, 그 길을 일찍이 일본 최고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하면서 거닐었다고 해서 ‘철학의 길’이라고 명명되었다. 선덕여왕 길은 ‘철학의 길’보다 무려 500여 미터나 더 길고 아름다운 산책로다. 거기다 사적지로 지정된 명활성과 진평왕릉이 시작점이자 끝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4년여 전부터 산책로 주변에 크고 작은 공사가 있었다. 오솔길처럼 작고 예쁘게 흐르던 수로가, 작은 임도처럼 너른 수로가 되었고, 산책로도 두 배가량 더 넓혀지고 말았다. 불과 몇 해 전의 운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평범한 길이 되고 보니, 실망했다는 후기 글이 계속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경주는 친환경적으로 조성하는 것에는 빵점이라는 혹평까지 올라왔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오기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어떻게 가꾸는지 끝까지 지켜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그 기대가 어느 정도 적중되는 듯도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무언가 조금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콘셉트를 새롭게 바꾼 것이었다. ‘선덕여왕길 벚꽃 맨발 걷기’ 행사가 개최되었던 걸 보니, 이제는 철학과 사색의 길에서 건강의 길, 힐링 산책로로 거듭나고 있음이다. 선덕여왕길은 어떤 이미지로 계속 기억되었으면 좋을까. 사색의 길일까. 철학의 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맨발 걷기 산책로와 힐링의 길일까. 처음 그 길을 걸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고 좋아서였을까. 지금도 나는 그 진한 향수가 아쉬움으로 남아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좋은 문화재와 자원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길의 시작점은 명활성 또는 진평왕릉이다. 어느 곳을 선택하던 무료 주차장과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최근에는 명활성이 재정비되면서 화장실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졌다. 명활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선덕여왕 때는 비담(毗曇)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해로 쳐들어오는 왜구에 대항하여 경주를 지키는데 큰 몫을 한 성이다. 진평왕릉은 신라 26대 진평왕의 무덤으로, 높이 7.9m, 지름 36.4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분이다. 산이 아닌 평야 가운데 자리한 게 특징이다. 겹벚꽃의 감상과 짧은 트레킹(trekking)이 목적이라면, 천천히 걸으면서 왕복하면 된다. 사진을 찍으며 여유 있게 걸어도 1시간 30분 이내다. 탐방로 주변에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숲머리 음식촌이 생성되어, 편한 복장 외에 아무런 준비 없이 방문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 조금 더 긴 트레킹을 원한다면 명활성 입구 숲머리와 진평왕릉에서 시작해 명활산성과 연계하면 된다. 선덕여왕길과 불국사 겹벚꽃을 연이어 묶어도 된다. 단 주말이라면 아침 일찍 불국사 겹벚꽃을 탐방하고, 선덕여왕길은 나중에 돌아볼 것을 권한다. 선덕여왕길은 아직도 크게 붐비지 않는 호젓한 산책로다.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문화재 관람료가 무료로 전환되는 바람에, 신라 천 년의 문화재 불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더없는 축복이자 은혜다. 국내 여행객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재를 묶어서 돌아볼 수 있다면, 선덕여왕길은 더욱더 우리 가슴에 각인되는 명품 힐링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지홍석 수필가·여행 칼럼니스트

한반도는 평화로운가. 우리는 오랫동안 애매한 답을 반복해 왔다. 겉으로는 총성이 멈춘 지 오래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상태. 1953년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전투를 멈추는 합의였을 뿐, 전쟁을 끝내는 선언이 아니었다.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멈춘 상태에 서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는 독특한 풍경이 즐비하다. 중무장 중인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경계와 감시, 언제라도 긴장이 격발될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 ‘휴전선’이라는 익숙한 표현은 오히려 현실을 희석시킨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군사분계선’이며, 그 선은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미완의 전쟁을 상징한다. ‘정전체제’의 의미는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동에서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 에너지공급망의 위기, 군사적 충돌이 경제와 외교를 동시에 뒤흔드는 양상이 전개된다. 중동 뿐 아니라 지구상 곳곳에서 긴장과 충돌은 오늘도 쉬지않고 벌어진다. 그 점에서, 한반도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정전상태’라는 점을 되살피면 그 취약함이 금방 드러난다. 전쟁이 ‘종결된’ 지역은 외교적·법적 안전장치가 존재하지만, 전쟁이 ‘중단된’ 지역은 언제든 재개될 여지를 품는다. 한반도의 평화는 제도화된 평화가 아니라, 관리되는 긴장 위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첫째, 정전 상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평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도, 전쟁에 대한 과도한 공포도 모두 현실을 왜곡한다. 현재 상태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으며 ‘관리 중인 긴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정확한 인식이 적절한 정책 전개의 출발점이다. 둘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라는 두 단계의 의미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가깝지만, 평화협정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상징적 선언이 아니라, 전쟁상태를 법적으로 종결하는 제도적 장치여야 한다. 이제는 남과 북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억지력과 대화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병행해야 할 전략이다. 강력한 방어태세 없이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공허하며, 대화없는 군사력은 긴장을 증폭시킨다. 한반도의 현실은 이 두 요소의 균형 위에서만 관리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간’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70년도 넘게 버텨온 정전체제는 하나의 구조로 굳어져 간다.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긴 안목과 일관된 전략이 필요하다. 중동의 사례가 보여주듯, 불안정한 지역질서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한반도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멈춤’을 ‘종결’로 전환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을 바로 볼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항구적인 평화는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만드는 선택과 설계의 결과일 터이다. 머나먼 중동의 전쟁 소식은 한반도의 내일을 도모하는 일에 타산지석으로 쓰여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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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안동, 글로벌 바이오산업 거점으로 우뚝서야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 조성 예정인 안동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이번 예타 통과는 단순히 지역에 산단 하나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바이오·백신산단의 거점을 안동지역에 새로 만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그동안 경북도와 안동시가 바이오생명 국가산단 유치를 위해 기업유치나 산단계획 보완 등에 힘을 쏟은 결과가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바이오생명산단은 약 100만㎡ 규모로 사업비 3465억원이 투입된다. 2033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며 사업이 완료되면 생산유발효과 약 8조원, 고용유발효과 2만9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안동시가 희망하는대로 산단이 조성되면 안동은 정신문화 도시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바이오.백신산업의 허브라는 새로운 이름을 추가하게 된다.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넣게 되고 양질의 일자리도 많이 창출돼 젊은이들이 찾는 도시로 바뀌게 된다. 안동에는 이미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앵커기업이 들어서 있고 국가첨단백신기술센터, 국제백신연구 분원 등 관련 인프라가 집적돼 있어 바이어산업을 육성할 여건이 좋다. 또 국립경국대가 백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산업과 연구,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번 바이오생명 산단 예타 통과로 안동은 이제 세계적 바이오산업 거점도시로 도약해야하는 중요 분기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산단의 내실을 채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유치의사를 밝힌 기업들이 실제 투자와 입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 수 있는 정주여건도 다듬어가야 한다. 안동바이오생명 국가산단이 경북 북부권의 신성장 동력으로 등장한다면 지방소멸의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정부가 예타 통과를 결정한 배경엔 지역경제 활성화와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적 효과도 감안한 것이다. 안동시는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바이오산단 육성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6-04-15

사설

국힘, ‘TK 선대위’ 구성이 돌파구 될 수 있다

국민의힘 경북도지사 공천을 받은 이철우 후보가 14일 대구·경북(TK) 공동선대위 구성을 당 지도부에 공식 요청했다. 그는 이날 공천 확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경북의 민심과 조직, 메시지, 전략을 하나로 묶는 대응 체계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면서, 공동선대위 구성의 당위성을 제기했다. 현재 경북지사 선거를 제외하고는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 모두 열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TK지역이라도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면 기세는 반드시 전국으로 번져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현재 민주당의 대세론에 맞서 판세를 뒤집을 만한 정책 대안이나 강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장동혁 대표마저 선거를 코앞에 두고 미국을 방문한다며 자리를 비워버린 상태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경북을 제외하고 ‘전패 경고등’이 켜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여야 후보 간 지지도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은 수도권은 물론 대구·부산에서도 민주당 후보에 뒤지고 있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 과정에서의 ‘컷오프 후폭풍’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오히려 전국 보수표 분열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분위기다. 컷오프에 반발하고 있는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선에 참여시켜 주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 리더십 부재로 이에대한 수습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심각한 내홍을 겪는 사이 민주당 정청래 지도부는 전국을 돌며 외연 확장을 위해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이 공천파동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대구시장 자리마저 민주당에 내 줄 경우, 보수정치 전체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은 분열된 보수민심을 수습하는 게 국민의힘의 최대 현안인 만큼, 이철우 후보가 제안한 TK공동선대위 구성으로 돌파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2026-04-15

서득수의 지속가능論

쇠를 만드는 방식의 대전환··· 포스코의‘ESG 전환’이 지역경제의 미래다

포스코가 최근 보여준 행보들이 심상치 않다. 수조 원의 비용이 예상되는 협력사 직원 7000여 명의 직접 고용 발표에 이어, 2050 탄소중립의 핵심 병기인 ‘수소환원제철(HyREX)’부지 조성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 승인까지 받아냈다. 누군가는 이를 과도한 비용 지출이라 비판하고, 누군가는 실현 불가능한 기술에 대한 집착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ESG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ESG 전환’이자,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을 지키기 위한 지속가능한 설계다. 먼저 포스코의 이번 ‘협력사 직원 7000명 직접 고용’ 발표는 국내 산업계의 고질적인 과제였던 ‘위험의 외주화’와 ‘불법 파견’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강력한 결단이다. ESG의 S(Social) 측면에서 이번 결정은 가장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제철소는 고온·고압의 위험 공정이 상존하여 그동안 사고가 하청 업체에 집중된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직접 고용을 통해 포스코가 안전 보건 관리 책임을 완전히 짊어지겠다는 결단이다. 그동안 제철소 현장에서 동일한 가치를 창출하면서도 신분에 따라 처우가 달랐던 관행을 끊어내고자 하는 결정은,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신분과 처우가 달랐던‘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완화하는 상징적 조치이다. 단순히 법적 리스크(불법 파견 소송)를 해소한 것을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내부 결속력’을 확보한 조치이다. 이번 직고용을 통해 포스코는 현장의 안전 보건 책임을 온전히 짊어짐으로써 국제적인 인권 경영 표준을 충족하게 되었다. 이는 향후 글로벌 공급망 실사법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포스코가 글로벌 시장에서 누릴‘무형의 프리미엄’으로 엄청난‘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다. 또한, G(Governance) 관점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온 경영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5년 가까이 이어 온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불법 파견 소송)에서 법원이 연이어 하청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현실 속에 더 이상의 소송 비용과 갈등의 소모보다 선제적 수용을 통해 거버넌스의 안정성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공급망 실사법(CSDDD) 등 강화되는 국제기준은 협력사 근로자의 인권까지 원청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는 추세이다. 이번 조치는 이 같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 속에서 포스코의 공급망 관리 투명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포스코가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HyREX)’은 단순히 공정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철강산업의 존재 이유와 방식을 통째로 재정의하는 ‘대전환‘이 될 것이다. 환경(E) 측면에서 수소환원제철(HyREX)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철강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8%를 차지하는 기후 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거대한 ‘탄소감옥’이다. 수소환원제철은 이 오명을 벗기 위한 핵심 열쇠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규제는 ‘탄소를 배출하며 만든 철’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포스코 고유의 파이넥스(FINEX) 기술을 계승한 HyREX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원료 가공단계(소결 등)를 생략함으로써 추가적인 에너지 소비와 환경 오염 물질 발생을 최소화한다. 이는 자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여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을 내뿜는 혁명을 가능케 한다. 포항 제철소 앞바다를 메워 이 거대한 실증 플랜트를 짓겠다는 것은, 포항을 비롯한 지역사회에 단순 건설업 부양을 넘어, 수소 인프라와 관련된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일자리를 창출하는‘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S(Social) 측면의 성과를 동반하게 된다. 포스코가 세계 철강업계의‘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재도약하겠다는 강력한 거버넌스(G)적 의지다. 이 거대한 청사진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은 ‘에너지’다. 수소환원제철은 탄소를 뿜어내던 고로(용광로)가 사라지는 대신, 거대한 전기로와 수전해 설비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하지만 필요한 전력을 화력발전소에서 끌어온다면 수소환원제철의 환경적 가치는 퇴색될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이 진정한 ESG 성과를 내려면 탄소 배출 없이 생산된 ‘그린 수소’가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ESG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전력 조달 방향은‘무탄소 에너지(CFE) 믹스’의 구축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철강 공정의 거대한 기저부하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대규모 전기로 운영을 위한 무탄소 전력(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공급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무탄소 전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를 산업단지와 직접 연결하는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을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나아가 해외 재생에너지 강국에서 생산된 그린 수소를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글로벌 수소 공급망’확보를 포스코를 넘어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포스코의 이번 변화는 포항 지역사회에도 거대한 기회다. 7000명의 정규직화와 대규모 HyREX 부지 조성은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 것이다. 포스코가 1970년대 ‘제철보국’의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면, 이제는 ‘그린보국’의 정신으로 탄소중립 시대의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쇠를 만드는 방식의 대전환. 이 험난한 여정이 성공할 때, 대한민국은 전 세계 ESG 경영을 주도하는 선진국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서득수 지속가능ESG연구소장

2026-04-15

유영희의 마주침

‘라키비움’을 뭐라고 할까요?

며칠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라키비움’이라는 단어가 우리말 다듬기 예시로 나왔다. “책을 읽고 기록을 살펴보고 전시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라키비움(larchiveum)’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 표현은 우리말로 다듬으면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합니다. 도서관·기록관·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갖춘 공간이나 시설을 뜻하는 말이에요.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 이제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전해 보세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우리말, 오늘도 하나 더 알아갑니다.” 라키비움(larchiveum)이라니, 도서관학, 기록학, 박물관학 분야의 전문용어라는데 2008년 미국의 기록전문가가 만든 이후 꽤나 널리 퍼져있는 단어인 것 같았다.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도서관(library)의 첫 글자 엘과 기록보관소(archive)의 아카이브, 박물관(museum)의 뒷글자 움을합성해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바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라키비움을 쓸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뮤지엄 등 외국어 자체도 부담인 데다가 각 단어의 알파벳 몇 개를 뽑아서 만들었으니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오래전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도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라키비움이라니 나도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3년 전쯤 국립국어원에서 라키비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다듬자고 제안했다는데 잠잠하다가 우리말 다듬기 예시 단어로 나오면서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인데 굳이 한글로 번역해서 써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라키비움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거의 한국에서만 쓴다면서 우리말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 내가 맞닥뜨리는 어려움도 번역 또는 말 만들기와 관련이 있어서 이 논쟁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중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자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요즘 노자의 ‘도덕경’을 강의하면서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혼자 공부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난관을 자주 만난다. 한문을 한글 단어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27장에 나오는 ‘要妙’라는 단어를 그냥 요묘라면 무책임해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비로운 요체’라 하고, 어떤 이는 ‘본질적인 요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느 수강생의 제안대로 우리말 단어로 만들고 싶지만 어렵다. 이런 단어를 우리말 단어로 만드는 것은 전문가들의 중요한 과제이다. ‘라키비움’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다듬어야 할 말로 예시했다는 것은, 그것도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대중적인 단어로 다듬었다는 것은, 이 단어가 우리 곁에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는 ‘라키비움’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외국어를 한국어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키비움은 아무래도 과한 것 같다. 이참에 제안해 보자면, ‘기록문화관’은 어떨까? /유영희 인문학자

2026-04-15

정상철의 혁신경영

기업 혁신과 시간관리

기업의 혁신은 시간이 만들고, 시간은 자사의 여러 여건을 감안하여 제대로 된 설계에서 출발한다. 보통 기업 혁신은 거창한 비전이나 전락과 기술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현실은 다르다. 혁신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비용보다 더 희소하고, 설계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자원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관리할 수 없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 관리란 단순한 일정 관리가 아니다. 기업 혁신 관점에서의 시간 관리는 ‘현재 운영에 소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미래 경쟁력을 만드는 활동에 의도적으로 배분하는 경영 행위’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역량 부족이 아니라 시간 배분의 실패다. 긴급한 일에 밀려 중요한 일이 항상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관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최고 경영자의 강한 의지다. 혁신 시간은 ‘남으면 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시간’이다. 둘째, 운영과 개선 업무의 구조적 분리다. 생산과 납기 중심의 일상 업무와 개선, 혁신 활동이 뒤섞이면 혁신은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셋째, 낭비 제거다. Lean Manufacturing이 강조하듯, 불필요한 보고, 회의, 대기 시간은 혁신의 가장 큰 적이다. 넷째, 측정과 피드백이다. 혁신 활동 시간 자체를 관리 지표로 삼지 않으면 실행은 흐지부지되기 쉽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예외 없이 시간을 재설계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생산 중에도 개선 활동을 멈추지 않는 ‘지속적 개선(카이젠)’ 문화를 구축했다. 작업자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문제 해결과 개선에 투입하며,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큰 경쟁력을 만든다. 3M은 연구개발 인력에게 업무 시간의 일부를 자율 연구에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해 혁신 제품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왔다. 구글(Google) 역시 ‘20% 시간’ 정책을 통해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도록 장려하며 미래 사업의 씨앗을 키웠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하나다. 혁신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혁신할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시간 설계가 더욱 중요하다. 설비는 쉬지 않고 돌아가고, 현장은 늘 바쁘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짧고 반복적인 개선 시간’과 ‘정기적인 집중 혁신 시간’의 병행이다. 예를 들어 교대근무 환경에서는 매일 10~20분의 개선 활동을 인수인계 시간에 포함시키고, 월 1회는 학습과 개선을 결합한 ‘개선 데이’ 등 집중 시간을 운영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지속성과 강제성’이다. 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의 핵심에는 시간이 있다. 시간을 확보하지 않는 혁신은 구호에 그치고, 시간을 설계한 혁신은 성과로 이어진다. 기업이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는 혁신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가’가 아니라, ‘혁신을 위해 시간을 강제로 확보하고 있는가’라고. 시간을 지배하는 기업만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4-15

팔면경

100만원에 육박한 제주 항공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레바논에 폭격을 했거나 하고 있는 상황이 2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지난주 열린 이란과 미국의 종전 협상은 성과 없이 결렬됐고 중동의 긴장은 여전하다. 고위 관리들의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이 또한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상태. 폭격과 보복 공격이 이어진 공간은 ‘지구의 원유 창고’로 불리는 중동이다. 석유와 석유화학물 없인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수많은 나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원유 수급의 어려움은 비행기를 움직이는 항공유 가격도 천정부지로 상승시키는 중이다. 항공업계의 비명 소리가 들릴 정도. 유가가 오르면 이에 대한 추가적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부과하는 유가할증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관련 업계의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내달 국내선 항공 유류할증료를 7700원에서 3만4100원으로 인상한다. 4배 이상 올리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 때문이다. 비교적 값싼 가격으로 이용이 가능했던 저비용 항공사의 유류할증료도 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 대형 항공사와 같은 수준의 인상이 이미 예고됐다. 이는 2016년 유류할증료 제도가 시작된 후 사상 최고 금액이다. 벌써부터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항공기 탑승 비용이 90만원을 넘어 100만원에 육박할 것이란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서민들에겐 부담스런 금액이 분명하다. 제주행 비행기는 관광객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직장과 사업 탓에 어쩔 수 없이 타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동에서의 전쟁이 여러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큰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15

이우근 시인과 박계현 화백의 포항 메타포

죽장휴게소

만약에, 내가 충신이 아니어서 직언 잘못 씨부려 유배를 가는 길에 벚꽃백리길을 지난다면 좀 서러우면서도 기꺼이 즐거울 것이다 집착하지 않으면 더 큰 것이 온다 죽장휴게소 들러 김밥과 컵라면을 먹는다 꾸덕꾸덕하고 쫀득하다 이만한 봄소풍도 없을 듯 문득 두바이쫀득쿠키라는 말이 생각났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다만 그것에 열광하는 잡종들의 혼미한 취미에 똥물을 퍼부어버리라는 결기를 세운다 그 인생이 한때 불리워질 뿐인 유행가 같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할까 몰라 그 가벼운 잡것들에게 저 날리는 꽃잎보다 가볍다는 충고를 할 순 없지만 어쩌면 벚꽃백리길이 지옥의 문이 될 수 있다고 이빨을 쑤시며 생각했다. 나는 내 삶이 관광이 아니라 사람의 길을 찾는 여행이길 바란다 .................... 눈부신 것이 다 황금과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실생활에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 가치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나는 나의 가치를 고양하기 위해 더욱 엎드린다. 수요도 없기에 누리는 그 무한의 가치가 좋다. 가난이 풍요롭다. 비난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누가 나를 구원해줄 건가? 없다. 나만이 나를 구원한다. 비굴(卑屈)은 굴기(崛起)를 지향한다. 경계하지 마시길, 나의 세계에서만 작동하는 정신승리이므로!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4-15

정미영의 우연한 시선

꽃피는 봄날에 블루로드를 걷다

영덕에 강의하러 갈 때면 해안가를 걷는 이들을 자주 보았다. 바쁘게 일하러 가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여유가 있었다. 윤슬에 반짝이는 푸른 물결을 곁에 둔 채 느리게 걷는 모습에서는 삶의 또 다른 리듬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나는 차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 길을 걸어야겠다고 한 번씩 다짐했다. 봄이 되었다. 겨우내 접어두었던 다짐이 어느 날 문득 스스로를 두드렸다. 드디어 지난 주말에 블루로드 출발점을 알려 주는 조형물 앞에 섰다. 햇살은 글자 위로 쏟아져 눈부신 파편처럼 흩어졌고 바닷바람은 겨울의 거친 숨결을 지우고 한층 부드러운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봄날의 길은 쪽빛으로 열려 있었다.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이며 오늘만큼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러고는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규칙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꽃잎 하나하나가 바람의 숨결에 흔들릴 때마다 내 안의 문장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배경을 묘사할 단어가 미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못한 언어가 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흩어지는 듯했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그 풍경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쫓기듯 살아왔던 일상이 풀어지며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가슴에 얹어 놓았던 묵직한 근심과 오래 묵은 생각들도 바다 빛깔에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드넓은 바다는 잔잔했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는 크지 않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해안을 두드리며 세월의 퇴적층을 쌓고 있었다. 나는 바다의 시간에 맞추어 느슨하게 걸어 들어갔다. 급할 이유가 없었고 서둘러 도착해야 할 목적지도 없었다. 오히려 걸음이 늦어질수록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걸을 때라야 비로소 시야가 넓어졌다. 나를 되돌아보았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여전히 허둥거리며 바삐 달려가고 있는 내가 눈에 밟혔다. 해야 할 일과 책임이라는 이름의 짐을 등에 업고 조금이라도 늦을까봐 매번 두려워하며 앞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과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추억 하나 제대로 쌓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급히 봉합하듯 살아온 날들이었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다고 어쩌면 간단없이 자기최면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목 주변이 쉽게 뭉치고 어깨가 결렸다. 통증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멈추라는 신호처럼 들렸다. 가족들은 운동을 해야 한다며 수시로 닦달했다. 허약해진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산책을 권유하며 체력을 키우란다. 그 말이 나의 곁을 맴돌다가 마침내 나를 블루로드로 이끌었다. 꽃피는 봄날에 블루로드를 걸었다. 바닷가로 내려갔더니 조약돌이 눈에 들어왔다. 뾰족한 모서리가 파도에 닳아 사라진 채 매끈한 곡선만 남아 있었다. 햇볕에 데워진 동글동글한 돌멩이를 손바닥에 올려보았더니 따뜻함이 전해졌다. 앞으로의 내 삶은 푸른 바다를 제 안에 품고 있는 조약돌처럼 모나지 않게 둥그러지기를 바랐다. /정미영 수필가

2026-04-15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요즘 한 생각들

언젠가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애썼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혹시라도 불편해하지 않을까 신경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내 쪽을 조금 희생하는 것도 배려라고 믿었고, 그렇게 해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순간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배려를 했는데 돌아오는 상황은 오히려 내가 기분이 상하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지만,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결국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정작 나 자신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조차 나를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더 배려하려 했던 건 모순에 가까웠다. 그 이후로는 대화에서도, 관계에서도 한 발짝 물러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지키려 했다. 그러자 오히려 대화가 더 편해졌고 관계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나를 먼저 소모하는 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생각과 연달아 두 번째로는, 나를 좀 더 아끼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배가 고플때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간편한 음식들을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직접 만들어 먹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더라도 내가 식재료를 고르고, 어떤 재료들이 들어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며 먹을거리를 만든다. 직접 요리를 한다는건 단순히 식사를 한다기보다 나를 위해 한 끼를 공들여 준비하는 감각에 가깝다.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도 더 들지만 그만큼 나를 대하는 태도는 훨씬 정성스러워졌다. 몸은 여전히 피로할 때가 많지만,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대하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세 번째는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에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피티를 받으며 배웠던 동작들을 떠올리고, 어느 부위에 힘을 줘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짚어가며 반복한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만 바라보며 같은 동작을 이어가는 순간, 흐릿했던 내가 다시 또렷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루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아닌 시간이나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지나가는데, 운동하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난다. 몸의 변화는 크게 눈에 띄지 않더라도, 기력이나 컨디션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는 감각이 가장 크게 남는다. 결국 운동은 단순히 몸을 위해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흐트러진 나를 다시 붙잡아주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자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기분이 좋거나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도 그렇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좋은 감정을 말로 꺼내는 순간 그 기억은 훨씬 선명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나를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면 괜히 들뜬 마음을 눌렀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일부러 들뜨지 않으려 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현재의 감정을 줄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젠 좋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걸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것들에도 더 자주 반응하게 된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 지나가는 풍경, 계절의 흐름 같은 것들이 예전보다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말로 꺼내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 마치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개의 렌즈로 바라보는 것처럼, 이전보다 더 다양한 감정과 순간들이 쌓이고 있다. 요즘 내가 자주 하게 되는 생각들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그 생각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더 잘 돌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고, 그 변화가 크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윤여진(시인)

2026-04-15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전자기기 브레이커

유독 물건을 잘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다. 잉크가 반 이상이나 남은 볼펜을 못 쓰게 만드는 사람. 신발 한쪽 밑창만 빨리 닳게 만드는 사람. 스마트폰, 컴퓨터 장비, 라디오와 같은 전자기기를 손만 대면 고장 내는 사람. 그 모든 게 나지만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일에 있어선 특히 권위자에 가깝다. 마감을 위해 타자를 치다가 키보드 자판이 하나씩 안 눌리기 시작하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내가 너무 우악스럽게 누르는 걸까. 어떻게 조금 전까지 잘만 작동하던 ‘ㅇ’이 나의 신호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단 말인가. 한숨을 쉬며 다른 키보드를 가져온다. 새로 가져온 키보드는 곧, ‘ㅏ’와 ‘ㅜ’가 입력되지 않는다. 저주받은 손가락이 따로 없다. 온갖 기기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 고장 내는 건 이어폰이다. 나는 나의 특성을 알았기에 비교적 싼 이어폰을 사서 쓰다 한쪽이 안 들리면 바로 똑같은 제품의 새것을 사서 쓰곤 했다. 짧게 쓰면 한 달. 오래 쓰면 석 달이었다. 혹시 자연히 고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버리지는 못해 내 책상 서랍에는 한쪽이 묵묵부답인 이어폰으로 가득했다. 이것의 왼쪽과 저것의 오른쪽을 결합하면 완벽한 이어폰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은데. 그들이 스스로 움직여 합체할 리가 없었고, 내게 그들을 매만질 기술도 없었다. 고장 난 이어폰의 개수가 10개를 넘어갈 무렵 나는 자기합리화를 했다. 나의 손길에 따라 망가진 게 아니라 이어폰의 수명이 짧을 운명이었을 뿐이라고. 그런 내가 크게 마음을 먹고 값비싼 이어폰을 지른 적이 있다. 무려 80만원이나 하는 슈어 사의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슈어 사의 제품 중에서는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지만 내게 이어폰 하나의 가격으로는 너무 과했다. 원래 쓰던 게 5만원 내외였으니 80만원이면 그걸 적어도 15개는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계속 좋지 않은 이어폰을 쓰는 것도 아니다 싶었고, 비싼 거니까 튼튼할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AS도 가능하다고 해서 오래 쓸 마음으로 구매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순간부터 정말 값어치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사용한 첫날부터 완전 극락이었다. 내 영혼의 뮤지션인 다프트 펑크, 자미로콰이,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음악과 그제야 제대로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내가 들었던 건 음악의 외연에 불과했다. 여기에 이런 소리가 있었단 말야? 역시 좋은 게 좋았다. 그러나 모든 행복에는 끝이 있었다. 일 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한쪽이 먹통이 된 것이다. 매번 케이스에 고이 넣어서 보관했건만. 줄도 꼬이지 않게 열심히 풀어주었는데. 정말 내 손에서 마이너스 전파라도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슈어사의 이어폰만은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이어폰 수리를 위해 인터넷에 알아보니 해당 파츠가 한국에 없어 미국 본사로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여기서 1차 좌절. 영어로 내 이어폰 상태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찾아보는 도중 마우스 왼쪽이 눌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예비 마우스도 없을 때였다. 여기서 아주 큰 2차 좌절. 나는 실소를 머금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기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슈어사 이어폰은 여전히 고장 난 상태로 서랍에서 한쪽만 기능하는 수많은 이어폰과 함께 뒹굴고 있다. 검색해보니 이제는 한국에서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인지 의욕이 꺾였다. 내 손에 쥐어진다면 또 얼마 못 가서 망가질 거란 예감이 든다. 불행하게도 슬픈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어제부터는 소니사의 헤드폰과 KRK사의 스피커가 동시에 노이즈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더는 그들의 수명이 거기까지란 말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잘못이다. 기계에게는 잘못이 없다. 내 손이 닿지 않았다면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주 오래오래 잘 살았을 거다. 정성을 다해 관리하지도 않았으니 내 손을 탓할 필요도 없다. 내 손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기계 세계의 내부 커뮤니티가 있다면 나는 아마 엄청난 악명을 떨치고 있을 터다. 쟤 손에 들어가면 죽는대- 같은. 다가가면 안 되는 위험하고 불결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오해가 아닌 진실이므로 나로서는 딱히 여론을 뒤집을 만한 변명거리가 없다. 맞아. 내가 죽였어. 이런 드라마나 영화 속 악역의 대사나 다름없는 말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칼럼을 쓰는 와중에 백스페이스가 고장난 키보드 대신 쓸 만한 키보드를 인터넷에 알아보고 있다. 미안해. 또 죽이고 말았어. 나의 기계였던 아이들은 저승에서 철퇴를 들고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4-15

사공정규의 공황장애를 넘어 회복으로

정신과 약은 중독이 되는가?

“정신과 약, 중독되지 않나요.” 진료실에서 공황장애 환자들이 많이 묻는 질문이다. 동시에 치료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걱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중독’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다.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통제가 무너지고 삶이 흔들리는 장면이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치료에도 그대로 덧씌워진다는 데 있다. “정신과 약은 중독된다.” 이 말은 공황장애 환자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공황장애의 핵심 고리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치료를 막으면 병은 더 길어지고 더 깊어진다. 한 환자가 말했다. “약이 무서워서 미뤘습니다.” 두 달 뒤 그는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발작은 더 잦아졌고 예기불안은 일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치료를 미룬 대가는 병의 악화였다. 생각을 바꿔보자. 고혈압 약으로 혈압이 안정되면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치료’라고 말한다. 당뇨 약도 마찬가지다.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수치가 다시 올라갈 수 있지만, 그것을 약의 문제가 아니라 질환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공황장애도 다르지 않다. 약을 통해 발작이 줄고 불안이 낮아져 일상이 회복된다면 그것은 중독이 아니라 치료다. 약은 삶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민해진 불안 체계를 안정시키는 도구다. 물론 주의가 필요한 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신중한 처방과 단계적 감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약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전문의의 관리 아래 최소 용량과 적절한 기간을 지키면 위험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치료는 과정이며, 시작과 조절, 정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공황장애는 조기에 치료하면 회복 가능성이 높은 병이다. 그러나 치료가 늦어지면 발작이 반복되고 삶이 점점 좁아진다. 만성화되면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다른 어려움이 함께 나타날 수 있고, 삶 전체의 기능이 흔들릴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주위의 말이다. “그 약 먹으면 평생 못 끊어.” 이런 말 한마디가 치료를 미루게 하고, 약을 임의로 중단하게 만들며 결국 재발을 부르기도 한다. 그때 공황장애 환자들은 스스로를 탓한다. “나는 약한 사람인가 보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과민해진 뇌의 불안 체계가 만들어낸 반응이다. 치료는 그 체계를 다시 안정시키는 과정이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내 스스로 증상을 통제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치료는 의지가 만들어내는 선택이다. 회복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중독이 두려워 치료를 피하는 선택이야말로 병을 키울 수 있다. 공황장애는 두려움이 키운 병이다. 치료는 이해에서 시작된다. 약을 편견으로 보면 공포가 된다. 정확히 이해하면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 공황장애 앞에서 필요한 것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치료를 선택하는 용기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의학박사 …………………… 사공정규 33년 차 공황·불안 전문의이자 ‘힐링닥터’로 알려진 그는 증상 호전을 넘어 삶의 근본적 회복을 위한 치료에 주력한다. 동국대 의대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연구·교육에 힘썼고,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방문교수와 임상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26-04-15

박필우의 맛보기 세계사

조각보의 나라 유고슬라비아 탄생 ①순진한 유고슬라비즘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그렇지 못하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한 말이다. ‘민족주의!’ 앞서 참 많이도 다룬 말이다. 민족주의는 미국 독립에 이어 프랑스 혁명, 영국 시민혁명,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 발달과 제국의 확산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절대주의 왕정과 귀족관료들에 의한 민족주의 노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자민족 중심주의가 당연시되면서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국가주의로 변화되어 갔다. 19세기 말에 와서 편협하고 초월적이며,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가 맹렬한 기세로 드러났다. 이는 전쟁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제국주의가 무한경쟁 상태로 돌입하게 했다. 기실 민족자결주의는 프랑스혁명 당시 사상가 루소에 의해 등장했지만, 그것이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성명한 14개 평화조항이 세계질서에 주요 목표로 설정되면서 곳곳에 분규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원칙은 발칸반도나 동유럽 등 패전국 영토에 속해있던 소수민족이 대상이었고, 극동 조선을 위시해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약소민족은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속내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패전국 식민지의 넓은 땅을 갈라놓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결국 국가주의적 민족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면서 세기의 전쟁을 불러왔다. 개인의 자유는 물론, 인간성의 가치까지 부정되는 폭력에 정당성이 부여되면서 인류 폭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즉 민족주의의 어두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자기 정체성 확립이 포장되고, 민족이나 국가의식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양산하고 주변국에 대한 억압이나 왜곡은 정당화되기에 이른다. 마침 내 폭력의 서막이 열렸고, 제국주의의 무한 경쟁의 구도 속에 필연적으로 폭력을 불러왔다. 그리고 세계 제1차 대전은 상처만 남긴 채 전쟁이 끝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유고슬라브 민족 간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발칸반도 망명정부가 속속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가 바쁘게 움직였다. 발칸반도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먹이사슬에서 여차하면 약자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는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블랙핸드를 몰락시킨 세르비아의 걸출한(?) 왕 알렉산다르를 중심으로 정치적 역량이 결집되면서 야심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즉 왕정을 중심으로 유고슬라비아 단일국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 크로아티아 내 유고위원회의 자중지란을 위해 모종의 프로젝트를 꾸민다. 왕의 밀명을 받은 시모비치 중령은 크로아티아로 급파되어 자그레브에 사는 세르비아인의 대표자 스베토자르 프리비세비치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알렉산다르의 뜻을 받들어 크로아티아가 자국 내 세르비아인 분열을 노린다고 부추겼다. 프리비세비치는 시모비치 중령에 의해 고국에 대해 애국심을 전달받았던 것이다. 때마침 프리비세비치가 크로아티아 내 국민회의 의장권한대행의 직책에 있었던 터라 알렉산다르의 밀명을 충실하게 받들어 스스로 크로아티아의 국민회의를 속으로부터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프리비세비치는 자그레브뿐만 아니라 서쪽 해안지방 달마티아까지 달려가 들쑤셨다. 역사적으로 아드리아해에 대해 야욕을 감추지 않았던 이탈리아에 대한 경계심을 들먹이며 국민회의 달마티아지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1918년 11월 달마티아 국민회의 지부는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인만의 통일 국가건설을 위해 세르비아 정부와 빠른 시일 내에 접촉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버렸다. 여론이 이렇게 돌아가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민회의는 떠밀리듯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이처럼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가 기획한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얼떨결에 28명으로 구성된 자그레브 대표단이 세르비아에 파견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세르비아 알렉산다르 왕은 제헌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섭정통치를 맡는다며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합헌적 통치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자신에게 법률제정권과 거부권을 명문화해버렸다. 웃기게도 합헌이냐 불법이냐 판단은 자신의 몫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즘의 희망과는 달리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연방제가 아니라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을 노렸던 것이다. 살얼음 판 위에서 동상이몽을 꾸고 있던 중에 세르비아 보이보디나 지역 노비사드에서 대의원들이 모여 세르비아와 통합을 논의하면서 먼저 유고슬라비아 국가 구성을 찬성한다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버렸다. 대의원이 대부분 세르비아인이라 결과는 하나마나였다. 또 몬테네그로도 유고슬라브족 통합을 결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몬테네그로는 이상하리만치 세르비아를 형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4-15

김경아의 푸른 돋보기

확증편향

부활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한 봄날이었다. 연합 예배 현장에서 나눠준 달걀 한 알은 그 자체로 풍성함을 주었다. 매끄러운 껍데기 속에 응축된 온기, 그리고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주는 당연한 관습은 내 의식 속에 이미 하나의 견고한 확신을 심어놓았다. 이 작고 둥근 물체는 의당 단단하게 응고된 단백질의 결정체, 즉 삶은 달걀이어야만 했다. 점심을 먹고 한참이 지난 시간, 허기가 몰려왔다. 차량의 시동을 걸자마자 나와 남편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달걀을 집어 들었다. 단단한 매질을 찾아 고개를 돌린 곳은 차창의 모서리였다. 경쾌한 파열음을 기대하며 ‘탁’ 하고 달걀을 내리치던 그 찰나, 나의 확신은 비참하게 붕괴되었다. 파편이 튀는 소리는 결코 경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둔탁하고 축축했다. 껍데기의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견고한 흰자가 아니라 생경하고 점성 강한 액체였다. 날달걀의 투명한 점액질과 노란 눈동자가 순식간에 내 옷과 시트를 점령했다. 동승했던 남편 역시 같은 확신에 차 있었던 터라, 차 안은 순식간에 비린내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양쪽에서 터져 나온 생(生)의 파편들이 옷을 적시고 차 안을 뒤덮는 것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그것이 삶은 달걀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었는가. 부활절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수많은 정황들은 나를 눈멀게 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성벽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인지적 맹목은 비단 차 안의 소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생의 도처에서 ‘삶은 달걀’이라는 허상을 쥐고 살아간다. 내가 쌓아온 경험치가 정답이라는 오만,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가 보편적 진리라는 착각은 우리를 성급한 심판자로 만든다. 타인의 침묵을 동의로 확신하거나 누군가의 실수를 고의로 단정 짓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확인하지 않은 달걀을 생의 창문에 내리치고 있는 셈이다. 내면의 필터를 거쳐 여과된 정보만을 진실로 수용하는 사이, 정작 삶의 본질인 ‘날것의 실체’는 외면당하고 만다. 확증의 덫에 걸린 마음은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할 틈을 잃어버린 채, 익숙한 오류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러한 편향은 현대 사회의 거대한 알고리즘 속에서 더욱 교묘하게 우리를 통제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의 확신은 날카로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껍데기 속의 액체성을 잊은 채 단단한 고체성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결국 타자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만의 폐쇄적인 세계관 속에 안주하게 만든다. 손에 쥔 무게감을 다시 느껴보거나, 살짝 흔들어 내부의 유동성을 확인해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선입견은 그 짧은 검증의 시간조차 사치로 치부하며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 비린내 나는 사고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생의 전반을 관통하는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날달걀’을 ‘삶은 달걀’이라 오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의 미소를 선의로 확증했다가 그 뒤에 숨은 날것의 욕망에 데이기도 하고, 나의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인 완성형이라 믿고 세상을 향해 거칠게 신념을 내리칠 때, 예상치 못한 진실의 파편들이 내 삶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확증편향의 대가는 늘 비린 법이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은 반드시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와 우리의 일상을 눅눅하게 적신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인지적 겸손에서 시작된다. 내 손바닥 위의 달걀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믿는 진리가 실상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혼돈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부활절 계란 소동은 내게 묻는다. 혹시 내가 아직도 확인하지 않은 믿음으로 생의 창문에 거칠게 자아를 내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옷에 배어든 비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겠지만, 이 냄새는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당연함 앞에서 나를 멈춰 세울 소중한 경고등이 될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결여된 확신은 때로 스스로를 옥죄는 칼날이 된다. 나는 이제 달걀 한 알을 쥘 때도 그 속의 유동성을 가만히 음미해본다. 껍데기를 깨뜨리기 전, 잠시 멈추어 그 무게를 가늠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확증편향이라는 거대한 늪에서 벗어나 삶의 실체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임을, 나는 오늘 이 비린내 나는 교훈 속에서 뼈저리게 배운다. /김경아 작가

2026-04-15

심충택 시평

국힘 ‘백만명 책임당원’, 순기능을 한다고 보나

국민의힘이 지난주 국회에서 ‘100만 책임당원 돌파 기념식’을 가졌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제가 당 대표에 취임한 후 책임당원이 40% 이상 늘었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75만 명 수준이던 책임당원이 장 대표 취임 이후 108만 명까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책임당원은 매월 정기적으로 당비(1000 원)를 내는 사람들이며, 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투표권도 가지고 있어 지방선거 후보 공천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책임당원 대부분이 ‘윤 어게인 세력’ 중심의 강성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진보 진영에선 ‘아스팔트 우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주당의 극성 지지층인 ‘개딸’과 비슷한 개념이다. 정치적 성향이 강경하고 선명한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조직화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을 지역별로 분류하면 수도권이 34%, 대구·경북 23%, 부산·경남 20%, 충청 15.5%다. 수치로는 수도권이 많지만, 인구 비율로 따져보면 영남권이 주류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장 대표 취임 이후 이들이 똘똘 뭉친 형태로 당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면서 중도 보수 세력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 수는 4400만 유권자 중 2%가 조금 넘는 수치다. 이와 관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책임당원 100만 명만 가지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윤 어게인 세력 중심으로는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체제가 ‘강성 스피커’ 중심으로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당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야의 우열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 경우는 드물다. 특히 ‘국민의힘이 공천하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대구시장 선거조차 민주당에 위협받고 있으니 충격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장 대표가 ‘100만 명 책임당원’을 자랑하지만, 전혀 순기능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은 47%, 국민의힘은 18%로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에서는 민주당이 49%, 국민의힘이 14%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으로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처참한 성적표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장 대표가 지난 주말 미국 출장을 떠난 것을 두고 ‘지방선거를 포기했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중동 전쟁 여파로 어려움이 있는데, 보수 야당으로서 역할이 있지 않겠나”라고 했지만,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당 대표가 일주일간이나 해외로 나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선봉에 서서 영남권 공략에 나서는 모습과 너무 비교된다.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당 지도부 재편으로 리더십을 확보해 ‘선거 참패’를 피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50일 채 안 남은 지방선거 판세가 지금처럼 대책 없이 흘러가면 국민의힘은 설 땅이 없어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4-15

사설

필수 의료품 수급 비상···수급 대책 서둘러야

중동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석유화학 기반의 의료소모품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일부 품목은 원자재 값 상승을 이유로 가격까지 치솟고 있다. 이들 의료소모품은 석유화학 핵심원료인 나프타 공급이 중동사태로 인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플라스틱 기반 의료소모품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북도의사회가 최근 밝힌 의료소모품 수급불안 실태에 의하면 주사기와 주사바늘 공급 차질이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수액백과 폴리글로브, 생리식염수 등 기본 진료에 필수적인 품목 전반에서도 수급 불안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품목은 2주 단위로 제한 공급되기도 하고 품목에 따라 가격도 10~30%가 인상됐다 하니 중동사태에 따라 의료대란이 일어날까 두렵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대형병원보다 구매력이 약한 동네병원, 서울보다 지방중소의료기관이 받을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어 지방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경북도의사회는 “주사기와 주사바늘은 모든 진료의 기본이자 필수”라며 현재 상황은 단순한 유통문제를 넘어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심각한 경고라며 당국의 대책을 호소했다. 석유화학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정으로 비닐 등 용기 생산업체의 공급 차질은 이미 사회 문제가 된 바 있다. 중동산 나프타 공급에 주로 의존하는 석유화학업체들도 가동률 조정 등을 통해 겨우 생산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다음달부터는 생산 차질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특히 의료 소모품의 공급 차질은 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엄중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보건당국도 수급 불안을 악용한 선점이나 사재기 행위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벌이면서 보건의료단체와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근본적 해결책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지역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기동력 있는 대응이 필수다. 지역 내 수급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특정기관의 독점을 차단하고 의료관련단체 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 문제를 보완해가는 비상체제를 가동시켜야 할 것이다.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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