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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6·3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21일 시작됐지만, 시민들은 과거와는 달리 골목마다 유세차량이 다니거나 대규모 군중 동원 선거전 모습을 보기가 어렵게 됐다. 고물가로 인건비, 유세차량 대여비, 공보물 제작비 등 오르지 않은 게 없어 각 후보 캠프마다 선거비용 지출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구시 선관위가 공고한 이번 지방선거 ‘비용제한액’을 보면, 대구시장과 교육감 후보는 각 12억8270만원, 기초단체장은 평균 1억9600만원, 대구시의원은 평균 5800여만 원, 기초의원은 평균 4900여만 원이다. 선관위는 허위로 선거비용을 청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선거비용 지출 증빙서류(영수증, 계약서) 외에도 실제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사진 등)를 제출하도록 각 후보 측에 요구하고 있다. 본지 취재에 의하면, 광역·기초단체장 후보는 물론 광역·기초의원 후보들까지 선거 비용 제한액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 식대부터 차량 유지비까지 안 오른 게 없어 과거 선거 때보다 비용이 훨씬 더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문자 발송비, 사무실 유지비, 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까지 고려해야 해 각 후보 캠프마다 선거비용 제한액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 LED 화면과 음향 장비를 갖춘 유세차는 대여료가 이전 선거 때보다 크게 올라 아예 유세차 없이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도 많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첨단장비를 갖춘 유세차 대여료(13일간)는 3000여 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사태 여파로 발생한 고물가 파동으로 인해, 이제 선거운동 방식도 크게 달라지게 됐다. 유세차량이나 선거운동원을 대거 동원한 길거리 선거전보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는 SNS 유세가 선거 캠페인의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지역 일부 젊은 후보들은 자전거 유세나 ‘러닝 유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후보들의 ‘구두쇠 선거전’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한일정상 회담의 외교적 성과 중 하나로 경북의 관광 붐 조성을 들 수 있다. 경북도와 안동시 등 해당 지자체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나서 안동을 일본인 관광객 유치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일본 여행사들과 협업해 안동 선유줄불놀이를 포함해 방한 관광특별상품을 이달 말 출시할 예정이라 한다. 또 일본 현지 언론과 방송,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홍보도 확대할 계획이어서 안동의 고유문화와 미식, 한옥 등이 일본 현지에 자세히 소개될 전망이다. 경북도는 작년 경주 APEC 개최에 이어 안동 한일정상회담이 개최됨에 따라 국제적으로 급주목 받는 도시가 됐다. 특히 경주의 신라 천년역사와 안동의 한국 전통 선비문화가 조명되면서 지역의 브랜드 가치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때마침 올해는 경북 방문의 해다. 경주 APEC과 안동 한일정상회담 효과가 경북 방문의 해에 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경북의 이같은 대형 외교호재들이 경북에만 그치지 말고 대구와 연계된다면 금상첨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상회담을 위해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대구국제공항을 통해 입출국하면서 대구는 명실상부한 대구경북 관문도시라는 것이 입증됐다. 관광지 경북을 배후로 한 대도시 대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대구관광도 이번 호재를 적극 활용해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켜나가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일본 관광의 황금노선으로 불리는 오사카-교토-나라의 상생관계가 흡사 경주-대구-안동과 닮았다고 한다. 전통문화와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인 교토와 나라를 찾는 관광객이 오사카를 반드시 거쳐 가듯이 경북의 관문으로서 대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경북의 관광호재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경북을 찾는 관광객이 대구에서도 머물 수 있는 관광콘텐츠 개발에 나서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지역 특성상 관광의 연계 효과가 높아 시너지도 기대된다. 대구시는 이번 기회에 대구국제공항의 노선 확장 등 공항 활성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칼럼

2017년 1200만 관객을 사로잡았던 영화 ‘택시 운전사’. 이 영화는 한 평범한 택시 기사가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총성과 비명이 가득한 1980년 5월 광주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는 목숨을 걸고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남긴 영상은 광주 민주항쟁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증언이 되었고, 그의 업적은 한국 민주화에 큰 이정표가 되었다. 그가 취재한 영상이 전세계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신군부가 조작한 뉴스를 역사의 일부로 착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역사적 진실은 누군가의 용기와 양심 그리고 사명감으로 인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반민주적인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 시민들이 온몸으로 저항한 역사였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다. 신군부가 통제한 언론은 광주의 시민들을 북에서 온 폭도로 몰았고, 국가 폭력의 잔혹함은 철저히 가려졌다. 언론이 오히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대표적인 사건이며 언론의 치욕스러운 역사적 오점으로 남아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했고, 때로는 진실보다 이해관계를 앞세웠다는 비판도 일리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자리를 유튜버나 정치적 선동가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유튜버의 말을 검증 없이 믿고,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작금의 유사 언론 현상은 일종의 주술적 신앙에 가까운 모습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불편한 사실을 취재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검증하며, 권력이 감추려는 것을 끝까지 묻는 일이다. 그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다.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산업이 아니다. 사회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누구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에 이은 네 번째 권력기구라고 한다. 언론이 무너지면 시민들은 사실이 아니라 편향된 주관에 따라 판단하게 되고, 민주주의는 토론이 아니라 선동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소위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미디어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해서 언론의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권력과 여론의 압력 속에서도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명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5·18 민주항쟁 46주년을 맞아 다시 묻는다. 오늘의 언론은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힌츠페터의 기자 정신 앞에 존재론적 질문을 반추해보아야 한다. 권력의 편이 아니라 시민의 편에 서는 것, 침묵이 강요되는 순간에도 진실을 말하는 것,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는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5월의 광주가 오늘의 언론에 요구하는 사명이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안동지방에 오랫동안 전승돼온 민속문화 놀이인 하회 선유줄불놀이가 갑자기 유명해졌다. 한일정상 회담차 안동에 온 다카이치 일본 총리를 환영하기 위해 준비한 선유줄불놀이 공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제적 이목을 모은 것. 선유줄불놀이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양반층 풍류놀이다. 안동탈춤이 양반의 허세를 풍자하며 서민들이 즐겼던 놀이라면 선비들이 나룻배를 타고 강물 위를 오가며 풍류를 즐기며 놀던 문화다. 7월 밝은 달밤에 선비들이 나룻배 타고 서로 술을 권하며 정담을 나누다가 흥이 생기면 시창도 부르고 청풍명월을 즐기는 이때, 배 위 하늘에서는 줄불로부터 불꽃이 꽃가루처럼 떨어진다. 붉은 불빛이 강줄기에 반사되면서 보이는 주변 경관 또한 장관이다. 선비들은 표주박에 기름 적신 솜을 붙여 띄워 보내고 그것이 정자에 도달할 때까지 시 한수를 지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주가 내려진다. 조선시대 공신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한 뒤 형제들과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했다는 유래를 근거로 줄불놀이가 시작됐다고도 전한다. 선유줄불놀이는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오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중단됐고, 1968년 재현됐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시작되면서 안동의 대표 공연으로 다시 알려졌다. 반상계층이 서로 다르지만 공존하며 민속문화로 이어져 온 안동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 놀이문화란 점이 돋보인다. 보존가치 또한 높다. 보존회가 전승을 맡고 있지만 인적·경제적 기반 미비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선유줄불놀이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한일 정상회담 덕분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잘 정착됐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지방선거가 다가오니 뉴스 보기가 괴롭다. 정치적 비전이나 지역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모색돼야 할 자리에서 네거티브와 마타도어, 음해와 흑색선전 만이 판을 치니 피로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본래 자기 콘텐츠가 없는 자들이 남의 흉이나 보며 표를 구(걸)하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전략(?)이 꽤 먹히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선거라는 제도로 표현되는 민의에 일정한 왜곡이 동반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계급배반투표라는 개념이 있다. 자기의 계층적 이해와 맞지 않는 투표 성향을 의미한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든, 반대로 자본가가 노동자의 편에 선 후보를 선택하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전자인 노동자의 사례는 무지의 결과로 파악되고, 후자인 자본가의 경우는 지적 성숙의 지표로 여겨진다. 따라서 배반의 주체는 언제나 노동자를 비롯한 하위 주체들만 지목되곤 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없진 않겠으나, 그조차 계급에 대한 편향적 이해에 기초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가치에 투표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 말이다. 애초 하위 주체가 바로 그 자신의 이해나 욕망을 알고 있거나 혹은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발상이야말로 엘리트적인 사고일 수 있다. 계급적 위치와 계급·사회의식은 투명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 사이(間)에는 적지 않은 물질적·정서적·이념적 매개 장치들이 작동한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하위 주체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언설들이야말로 무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대의제의 역사란 항상 신분, 계급, 재력 등이 우선적으로 대표성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하여 대의제는 공공영역을 담당할 권한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소수가 전체를 대표하는 ‘과두제’에 다름 아니며, 선거는 체제를 민주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선거에 기초한 대의적인 통치 체제로 한정해서 보게 된 것도 역사적으로 최근의 일이다. 그런 만큼 선거의 한계를 직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가령 전통적으로 진보적 의제가 선거제도를 매개로 전체의 의견이라는 외양을 갖추고 재력에 기초한 소수에 의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항시 의문이 있었다. 따라서 그 정치적 불가능성을 마주하며 차라리 셈해지지 않거나 대의되지 못하는 민의의 여분을 포착하는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선거의 간극을 살피는 여전히 유효한 착목 지점이다. 여론만으로 민주주의에 접근하면 셈해지지 못한 민의를 상실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대의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사회적·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대변해 줄 정당이 너무 부족하거나 힘에 부치고 있는 것 아닌가. 차별금지법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거대 양당의 행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당위를 구실로 실은 그런 합의를 이끌어 낼 만한 별다른 대책 없이 언제까지 도망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거를 앞두고 투표할 만한 곳이 없는 사람들의 사정에도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봤으면 좋겠다. /허민 문학연구자

대한불교조계종은 2026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표어를 ‘마음은 평안으로, 세상은 화합으로’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중생구제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을 찬탄하며 상생과 화합의 기운이 넘치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마음의 평안과 세상의 평화와 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고 전한다. 이날을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 ‘초파일(初八日)’이라고 아직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정식 명칭은 ’부처님오신날‘이고 대한민국의 법정 기념일이자 법정 공휴일이다. 명칭은 달라져도 이날의 의미는 하나다. 인류에게 깨달음의 길을 보여준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사찰에서는 탄생하신 부처님을 물로 씻기는 욕불(浴佛), 혹은 관불(灌佛)이라는 의례를 행한다. 이날은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자비와 지혜를 되새기며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다. 불교는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의 종교이고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큰 가르침에 작은 용어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누군가 묻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후에 나오는 말이 ‘일체개고 아당안지(一切皆苦 我當安之)’ 인지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인지 헷갈린단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AI‘에게 물어보았더니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가 모든 의식문에서 발견되고 있어 정론으로 보이고 후대에 ‘일체개고 아당안지(一切皆苦 我當安之· 온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내가 마땅히 평안케 하리라)’가 나왔다고 한다. 요즘은 ’AI‘에게 묻는 것이 대세라 ’AI‘가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믿어야 한다. 이 또한 불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말조차 생소할 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확하게 종단에서 정해주면 어떨까? 부처님오신날에는 등을 단다. 이것을 연등(燃燈)이라고 한다. 등(燈)을 밝힌다(燃)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선 연등을 49재나 천도재에서 사용되는 영가등(靈駕燈)이라고 부르고 있고 심지어 연꽃에 불을 켜서 세상을 밝힌다면서 蓮燈(연등)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 또한 종단에서 명확한 용어를 지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자가 줄어든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절 세 곳을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이날 108배를 하면 업장이 소멸한다. 좋은 날 탑을 특정 횟수 돌면 복을 받는다. 삼재풀이를 해야 집안에 우환이 없다. 이런 말들이 신앙의 동기를 제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교의 핵심은 아니다. 부처님은 복을 거래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 보고, 탐진치를 줄이며,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종교를 떠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관행에서 설득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교가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려운 말을 늘어놓기보다, 삶 속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가르침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고 본다. 젊은이들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노병철 수필가

늦은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불빛이 조금만 덜한 곳으로 가면, 밤하늘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별빛은 고요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시간의 흔적이다. 천문학자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밤하늘은 사실 우주의 역사책이야.’ 얼른 와닿지 않았다. 설명을 듣고는 한동안 멍해졌다. 별빛은 ‘지금’ 모습이 아니라는 것. 빛이 엄청 빠르다지만, 우주 앞에서는 그조차 한없이 느리다. 태양 빛도 지구까지 오는 데에는 8분이 걸린다. 밤하늘의 별들 가운데 어떤 것은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 전에 출발한 빛이다. 더 먼 은하의 빛은 수백만 년, 수억 년을 날아와 우리 눈에 닿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보고 있는 셈이다. 저 별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폭발했거나 사라졌는데, 마지막 빛이 아직 우주를 건너오는 중인 게다. 이제는 없는 별을 올려다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기묘하다. 인간은 늘 현재 속에 산다고 믿지만, 결국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 위에 서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젊은 날의 상처, 누군가의 친절, 오래전 들었던 말 한 마디가 우리 안에서 아직도 빛처럼 살아 도착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났는데도, 남긴 말과 온기가 한참 뒤까지 누군가의 삶 속에 살아남지 않는가. 별빛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남기고 사는가’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돈이나 명함이나 지위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한 인간이 남긴 마음의 흔적은 의외로 오래 간다. 누군가를 위로했던 말, 손을 잡아 주었던 순간, 정직하게 살아내려 했던 태도는 먼 우주의 별빛처럼 오래 남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오래오래 도착한다. 우주를 생각할수록 인간 세상이 조금 우습다. 끝도 없이 넓은 우주 속에서, 지구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작은 지구 위에서 인간들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속이고 전쟁까지 벌인다. 권력을 두고 다투고, 자기 욕심 때문에 남을 짓밟는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네 한평생은 잠깐 번쩍였다 사라지는 찰나가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낸다. 우리는 ‘지방선거’를 건너고 있다. 곧 거리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들은 자신을 외치며, 유권자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과정 가운데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미워한다. 상대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넘치고, 눈앞의 유불리만 계산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면 어떨까. 수억 년 시간을 품은 ‘우주의 역사책’ 앞에서, 인간의 권력과 욕망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자리와 이름이 영원할 것처럼 다투지만, 모두 한순간을 스쳐가는 존재들일 뿐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곁에서 돕는 이들도, 이제 곧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도 조금 더 넓게 또 길게 보고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 진지한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 우주의 역사책 앞에 겸허해야 한다. 밤하늘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그리 거대한 존재가 아니야.’ 오늘 밤도 별들은 소리 없이 빛난다. /장규열 본사 고문

지난 5월 8일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정치인 세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순직 공무원 부모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연설하다가, 정청래 대표는 ‘노상원 수첩’에 기재된 연평도 수용소 현장 검증을 거론하며 분노하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헌법개정안 상정에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대하자 그들을 비난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같은 눈물을 보고도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달랐다. 누군가는 그 눈물에 공감했고, 누군가는 ‘정치적 연출’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뒤에 어떤 판단이나 해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들의 눈물에 공감하기도 하고 비난했을 것이다. 이렇게 감정은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화론적으로 보아도 감정은 생각을 뒷받침한다. 맥스 베넷은 ‘지능의 기원’에서 감정은 생존을 위한 방향 감각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약 6억 년 전 좌우대칭동물이 등장하면서 지능이 발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것은 ‘좋음’으로, 불리한 것은 ‘나쁨’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회피할지를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방향을 정하는 것은 생각이고, 그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정인 셈이다. 문제는 자극에 대한 판단이 내 생존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감정은 모두 진실한 것이라 착각하며 기꺼이 몸을 맡긴다. 그러나 한번 자리잡은 감정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어떤 뉴스를 보고 감정에 압도되어 거칠고 부정적인 댓글을 달았다가 지운 적이 여러 번 있다. 물론 미처 지우지 못하고 남은 흔적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 생각과 다른 오피니언 리더의 견해를 보거나 인플루언서의 행태를 보다가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는 데도 분노에 쉽게 끌려들어갈 때가 많다. 다만, 이런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는 정동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정동이란 어떤 자극에 대해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몸의 동요 상태이다. 화병 같은 예만 보아도 우리는 어떤 강한 부정적인 자극이 오면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리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런 것이 정동이다. 자신의 정동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면, 감정에 휩쓸릴 가능성도 줄어든다. 5월 8일, 세 정치인의 몸에는 어떤 정동이 일어났을까. 이들의 눈물에 공감하는 사람의 몸에는, 그리고 이들의 눈물을 비난하는 사람의 몸에는 어떤 정동이 일어났을까. 남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그때 나의 정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가 자신의 정동을 조금이라도 더 잘 관찰할 수 있다면, 강한 감정에 휩싸일 가능성도 줄고, 반목과 갈등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요즘처럼 감정이 정치가 되는 시대일수록, 자신의 정동을 관찰하는 능력은 정치인은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중요한 교양이 된다. /유영희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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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제무대 오른 安東, 글로벌 문화관광도시로

경북 안동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가 안동시를 주목하고 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안동이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로 소개되면서 또 한 번 세계인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안동으로서는 국제사회에 안동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됨과 동시에 글로벌 문화관광도시로서 도약할 최고의 찬스가 생긴 것이다. 안동은 유교문화의 원형이 잘 보존된 역사문화도시다. 하회마을, 봉정사,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4곳을 보유한 정신문화의 수도다. 경주가 고대 신라문화가 숨 쉬는 곳이라면 안동은 조선시대 선비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본, 중국과 3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문화교류사업인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안동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시 선정했다. 마침 한일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림에 따라 한중일 3국 교류의 대한민국 거점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 안동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많은 역사 유적만으로도 문화관광지로서 훌륭하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알려진 안동 특유의 미식문화는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서 주목을 받을 만했다. 한일정상 만찬상에 오른 안동 찜닭의 원형인 ‘전계아’를 비롯해 안동갈비, 안동소주 등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은 미식문화 콘텐츠로 부족함이 없었다. 또 한일정상이 함께 관람한 전통 불꽃놀이인 선유쥐불놀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함께 상시 즐길 수 있는 고정 콘텐츠로 정착시켜가자는 여론도 좋은 아이디어다. 경북은 관광지로서 뛰어난 잠재력이 있으나 외국인이 머물고 가는 체류형 관광을 이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번 안동에서의 한일정상 회담은 지방도시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명하면서 하회마을을 단숨에 글로벌 관광지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안동시는 이번 정상회담이 안동 도시브랜드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절호의 기회임을 잘 알고 글로벌 문화관광도시로 발전할 전략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라 했다.

2026-05-20

사설

‘테슬라 유치전’ 대구에서 다시 시작될까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가 19일 세계적인 전기차업체인 테슬라 아시아 제2공장 대구 유치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추 후보는 “지금 이대로는 대구 경제의 심장이 힘차게 뛰기 어렵다.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 외에 아시아 제2공장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으니만큼, 당선 즉시 유치전에 뛰어들어 대구를 완성차 20만 대 생산 도시로 도약시키겠다”고 했다. 대구가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인프라와 배터리 순환 경제 기반이 뛰어나고 전문인력도 충분하기 때문에, 추 후보가 가진 국내외 경제인 네트워크와 대구지역 역량을 총동원하면 테슬라 공장 유치는 충분히 가능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만약 테슬라 자동차 공장이 입주하게 되면 대구의 산업지도는 단숨에 바뀐다. 테슬라 유치전이 처음 시작된 건 지난 2022년 연말이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한국을 아시아 제2공장 건설 후보지로 고려 중이라고 우리 정부에 밝힌 후 전국 17개 시·도 모두가 테슬라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대구는 모듈화된 테슬라 자동차를 생산할 공장 입지(제1 국가산단과 테크노폴리스 추가 확장지, 제2국가산단)와 자율주행 인프라, 전문인력이 대구만큼 잘 갖춰진 도시가 없다면서 유치에 총력을 쏟았었다. 유철균 전 대구경북연구원장은 당시 ‘아시아포럼21(대구경북 중견언론인 모임)’ 초청토론회에 참석해, “테슬라 공장을 유치하면 100조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테슬라가 들어오면 ’메이드인 코리아‘ 전체 부가 올라가는 동시에 대구·경북이 단번에 ‘경기도급’으로 잘사는 지역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문제는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다국적기업 CEO들이 가장 꺼리는 한국의 노사분규다. 민노총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노조는 현재 세계 최악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와 관련해 추 후보는 “해외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주요 원인인 노사 분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정책관 신설과 노사 협력 기반 투자유치단을 꾸려 ‘노사분규 제로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추 후보가 공약으로 내놓은 ‘테슬라 유치전’이 대구에서 다시 시작되길 기대한다.

2026-05-20

한방산책

숨이 차지 않은데도 답답한 이유

폐도 정상이고 심장도 큰 이상이 없고 산소포화도도 정상인데 가슴은 계속 답답하다. 숨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들고 자꾸 한숨을 쉬거나 하품을 하게 된다. 가슴이 꽉 막힌 느낌 때문에 불안하고 심한 경우에는 공황장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폐의 문제라기보다는 몸 전체의 긴장 패턴이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하는데 목은 앞으로 빠지고 어깨는 안으로 말리며 등이 굽는다. 이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갈비뼈 움직임이 줄어들고 흉곽 자체가 굳어버린다. 원래 숨을 들이마실 때는 갈비뼈가 부드럽게 벌어지고 횡격막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안 좋은 자세로 흉추와 늑골이 굳어 있으면 이 움직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결국 숨을 쉬어도 폐 윗부분만 얕게 쓰게 되고 숨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목과 어깨가 굳어 있다. 목 옆에 있는 사각근은 흉추 1, 2번에 붙어 호흡 보조근 역할을 하는데 스트레스와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이 근육이 과도하게 굳어버린다. 그러면 숨을 쉴 때마다 목으로 억지로 호흡하는 패턴이 만들어진다. 숨이 답답한 환자들을 보면 목과 어깨가 돌처럼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자율신경 실조시 이런 증상이 생기는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교감신경이 과하게 항진되고 몸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굳으며 호흡도 얕고 빠르게 변한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몸이 정상적인 호흡 패턴 자체를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숨을 충분히 쉬지 못하니 몸은 더 불안해지고 불안해질수록 호흡은 더 짧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이런 환자들은 단순히 호흡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두통, 어지럼증, 가슴 두근거림, 소화불량, 만성피로, 불면증 등의 화병 증상을 함께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몸 전체의 긴장과 자율신경 균형이 함께 무너져 있는 것이다. 치료는 단순히 가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구조를 같이 봐야 한다. 굽은 흉추와 말린 어깨를 교정하고 경추와 갈비뼈 움직임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추나 치료로 굳어 있는 척추와 흉곽의 움직임을 회복시키고 긴장된 목과 어깨 근육을 풀어주면 호흡이 훨씬 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초음파를 이용해 목 주변의 긴장된 근육과 흉추의 자율신경을 정확하게 자극하면 환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이와 함께 화를 내릴 수 있는 약재들로 구성된 한약을 같이 복용하면 더 빨리 호전 반응이 일어난다. 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자세를 줄이고 중간중간 가슴을 펴주는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좋다. 숨을 억지로 크게 쉬려고 하기보다는 배가 천천히 움직이는 복식호흡을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잠을 잘 자지 못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들은 몸의 긴장을 낮추는 것이 우선이다. 몸이 편안해져야 호흡도 편안해진다. 목, 갈비뼈, 척추, 횡격막, 자율신경이 모두 함께 움직여야 편안한 호흡이 만들어진다. 검사상 큰 이상이 없는데도 계속 숨이 답답하다면 단순한 폐 질환이 아니라 몸 전체의 긴장과 균형 문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5-20

이우근 시인과 박계현 화백의 포항 메타포

길등재에서

남자는 울지 않는 법이다 개똥 밟은 듯 쓱쓱 문대고 힘차게 나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혼자 멀리 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이 완성이 된다 동행은 없다, 둘은 태초부터 귀찮았다 너는 포항으로 가고 나는 감포로 간다 망해산에 올라서는 길등재를 잊고 하산하여 길등재에서는 망해산을 잊는다 바람이 따귀를 때리며 사랑은 그런 것이라 한다 너는 도시로 가고 나는 다시 산으로 간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축복과 저주를 하며, 사랑에 강약(强弱)이 있을 수 없지만 남자는 슬쩍 흐려지는 그런 눈물, 흘리지 않는 법이다. ……. 길등재는 포항 정천리에서 장기면으로 가는 관문 격의 고개로, 정상 부근에서 주차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산행을 시작하면 쉽게 오래 산등성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출발부터 먹고 들어간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대체로 선호한다. 생색도 내고 실리도 챙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살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럴 수 없다. 과정은 생략되지 않는다. 오래 걷고 길게 울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길등재 뿐일까. 삶은 교묘한 장치로 장식되어 있다. 결국, 나의 좌표를 확인하고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오직 사람!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5-20

정미영의 우연한 시선

어떤 사투리, 세 키

휴대폰 카톡방에 문자 하나가 올라왔다. 수필 동인 중 한 분이 ‘키’라는 단어가 포항사투리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식당에 갔을 때 직원이, “몇 명이세요?”라고 물어봐서 “세 키요.”라고 대답했는데 상대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외계인 취급하더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언어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질문한 선생님은 포항 토박이였다. 그는 평소에도 무심코 쓰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순간 카톡방 사람들은 모두 익숙한 듯 낯선 말을 붙들고 각자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단어 하나가 추억 매개체가 되었다. 카톡방 사람들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이었기에 사투리에 얽힌 저마다의 기억을 흔들어 깨웠다. 누군가는 본인도 ‘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처음 듣는다며 웃었다. 나도 궁금해서 얼른 검색을 해보았다. 경상도 특히 경북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말이란다. 예전부터 곡식의 양을 세는 단위를 ‘키’라고 했다. 예를 들어 볏단 한 키, 두 키, 하던 개념이 사람의 묶음 단위로 확장되어 사람 수를 세는 말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있었다. 읽는 순간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구나. 곡식의 단을 묶는 단위가 사람에게 옮겨 붙은 것이었구나.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들판에서 볏단을 세듯 사람도 그렇게 세었던 것이다. 농경문화가 언어와 연결된 대표적인 경우였다. 생각해 보면 참 정겨운 말이었다. ‘세 명’이라 하면 그냥 숫자지만 ‘세 키’라고 하면 왠지 볏단처럼 단단히 묶인 사람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밥을 먹으러 온 세 사람이 마치 하나의 단으로 묶여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논과 밭에서 쓰였던 말들이 하나둘 연상되었다. 내 어린 시절 외갓집 마을 경치도 마음속에 한꺼번에 번져왔다. 논두렁 끝에서 어른들이 새참을 먹으라고 이웃을 불렀던 소리, 담장 너머 옆집 할머니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했던 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두 키요.” “세 키 왔심더.” 그때는 그 말이 특별한 줄 몰랐다. 사람 수를 세는 말 속에 볏짚 냄새와 들판의 바람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도. 도시는 숫자로 사람을 세지만 옛말은 사람을 ‘묶음’으로 기억했던 것 같다. ‘한 키’라는 말 속에는 낱낱이 흩어진 개인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사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세 명’보다 ‘세 키’가 더 따뜻하게 들린다. 한 덩이 볏단처럼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키’라는 사투리 덕분에 나는 오래된 단어 하나를 다시 주워든다. 사라져 가는 사투리 하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오래 묻어 있는 말 한 조각. 언어는 흘러간다. 어떤 말은 남고 어떤 말은 사라진다. “세 키요.”처럼 농경의 냄새를 품은 말은 도시의 문법 속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간다. 어쩌면 우리는 언어 속에 담긴 지역 생활의 풍경과 유대감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때때로 사투리를 붙들고 싶다.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이 가득 담긴 그 말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사투리에는 지역 사람들의 숨결과 공동체적인 삶의 온도가 함께 스며들어 있기에. /정미영 수필가

2026-05-20

유성찬의 환경포커스

산업전환의 시대, 시민이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며칠 전, 5월 16일. 정부는 ‘기후시민회의’ 공식 발대식을 열고 국가 단위 상설 기후 공론장의 출범을 선언했다. 이는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에 근거한 것으로, 시민이 기후정책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정책 형성의 주체로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변화는 단순히 행정기구 하나가 생긴 사건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폭염과 산불, 집중호우와 해수면 상승은 이미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산업과 에너지, 경제와 지역의 구조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누가 그 변화를 결정할 것인가”라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의 기후정책은 정부와 전문가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다. 물론 전문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이 배제된 정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송전망 하나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어느 지역에 둘 것인지, 산업 전환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는 결국 시민의 삶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기후민주주의’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기후시민의회, 덴마크의 시민숙의 모델, 독일과 아일랜드의 시민참여형 기후 거버넌스는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기후시민회의 역시 바로 그 흐름 속에 있다. 특히 이번 기후시민회의의 핵심은 ‘상설화’에 있다. 기존의 공론화위원회나 일회성 숙의조사는 특정 사안을 다룬 뒤 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기후시민회의는 국가 단위의 상설 시민 공론장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시민은 따라가는 시대에서, 시민이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참여하는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한국의 산업과 에너지를 이끌어왔던 포항과 경북에서 더욱 중요하다. 포항은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중심이다. 동시에 앞으로 수소환원제철과 청정수소 산업, 대규모 전력 인프라 구축이 집중될 지역이기도 하다. 경북 동해안 역시 해상풍력과 송전망, 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거대한 전환이 중앙정부와 대기업 중심으로만 추진될 경우, 지역은 ‘희생의 공간’이 될 위험이 크다. 송전망은 지역을 지나가고, 발전 설비는 지역에 들어서며, 산업 구조조정의 충격 역시 지역 주민이 먼저 감당하게 된다. 그런데 결정 과정에서 시민이 배제된다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포항과 경북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바로 기후민주주의다. 그리고 이 기후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 숙의, 신뢰.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첫째는 주민참여형 에너지 구조다. 재생에너지와 수소 인프라는 더 이상 중앙집중형 구조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태양광과 풍력, ESS(에너지저장장치), 그리고 지역 안에서 전기를 직접 생산·저장·공급하는 소규모 전력망인 마이크로그리드는 지역 주민의 삶과 직접 연결된다. 그런데 주민이 부담만 지고 이익에서 배제된다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주민이 사업에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며, 그 결과가 지역 복지와 인프라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에너지 전환은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포항과 경북은 바로 이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지역이다. 영덕과 울진의 풍력, 포항의 수소 산업, 농촌형 태양광과 지역 ESS를 주민참여형 구조로 연결한다면 지역은 단순한 에너지 공급지가 아니라 에너지 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핵심은 분명하다. 에너지는 단순한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의 문제라는 점이다. 둘째는 지역형 기후시민회의의 제도화다. 기후정책은 매우 복잡하다. 전기요금과 탄소가격, 철강산업 전환과 원전, 수소경제와 재생에너지, 지역 개발과 환경 문제가 서로 얽혀 있다. 이런 문제를 단순한 찬반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숙의 민주주의다. 기후시민회의는 시민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서로 토론한 뒤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구조다. 시민은 단순한 여론조사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 형성의 참여자가 된다. 포항과 경북은 발빠르게 ‘지역형 기후시민회의’를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즉, 수소환원제철 전환, 송전망 확대, 해상풍력 입지, 산업단지 전환 문제를 시민들이 직접 토론하고 숙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사회적 합의 없는 전환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정책은 정권 하나로 끝나는 정책이 아니다. 10년, 20년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이 정책의 필요성과 비용을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숙의 없는 전환은 결국 불신을 낳는다. 셋째는 정보 공개와 데이터 투명성이다. 기후정책은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시민이 정부 자료를 믿지 못하고, 기업 설명을 신뢰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지속되기 어렵다. 포항과 경북에서 추진될 전력망 계획, 수소 인프라 구축, 산업단지 전환, 탄소배출 감축 계획 역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단순한 형식적 공청회로는 부족하다.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올바른 방법론을 찾아야 하고 비용과 이익, 위험과 효과가 함께 공개되어야 한다. 정보가 부족하면 불안이 생긴다. 불안은 소문을 만들고, 소문은 갈등을 키운다. 반대로 정보가 공개되고 시민이 충분히 이해하면 정책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포항과 경북은 지금 거대한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 수소환원제철과 재생에너지, 수소경제와 산업 구조 전환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삶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이 전환이 성공하려면 중앙정부와 기업의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 사회의 참여와 동의, 그리고 시민의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기후민주주의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주민이 자신의 삶과 연결된 문제를 이해하고, 토론하고, 결정하며, 그 결과를 함께 책임지는 아주 현실적인 민주주의다. 기후전환은 기술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환을 끝까지 지속시키는 힘은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는 지금, 포항과 경북의 지역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5-20

팔면경

대통령의 노여움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대통령은 SNS를 통해 “역사적인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날에 희생자들과 시민의 피어린 투쟁을 모독하는 이벤트를 벌이다니”라며 스타벅스 코리아를 질타했다. 해당 업체가 어떤 행위를 했기에 대통령이 이처럼 분노한 것일까? 스타벅스 코리아는 15일부터 오는 26일까지 텀블러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하며 ‘탱크 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썼다. 상식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표현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7년 국가기관의 고문에 의해 숨진 대학생 박종철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겼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몰상식한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랬기에 이 대통령은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이 대체 몇이고, 그로 인한 정의와 역사의 훼손이 얼마나 엄혹한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라 물으며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스타벅스 코리아측은 부랴부랴 문제가 된 이벤트를 멈추고 손정현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했다. 하지만, 대통령만이 아닌 국민들의 실망과 지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은 우주 전체보다 귀한 것”이라 노래한 바 있다. 인간의 생명이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사라진 역사적 사건을 상술로 이용했던 스타벅스 코리아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게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20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아카시아 줄넘기

요즘은 어딜 가도 향기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와 어깨 위로 새하얀 꽃잎이 떨어지고 미처 안착하지 못한 꽃잎들은 아스팔트 도로 위를 점점이 수놓는다. 나는 꽃향기는 좋아하지만 꽃의 종류나 이름을 구별하는 일엔 영 재능이 없어서, 누군가 떨어진 꽃잎을 가리키며 “이게 아카시아야.”라고 말한 후에야 이게 아카시아구나, 했다. 요즘처럼 바닥을 가득 채운 아카시아 꽃잎을 볼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2년 전에 지금의 동네로 이사 왔다. 나의 집을 꾸린다는 설렘도 분명 있었지만, 평생을 가족과 함께 살았기에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불안과 공포가 더욱 컸다. “내 인생은 내 거”라는 말을 습관처럼 읊조리고 다녔던 게 조금 후회될 정도로. 집을 보고, 계약금을 넣고, 이삿짐을 싸는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사 온 지역은 본가에서 역 하나 정도 떨어진 곳으로 매우 가까웠지만, 살면서 처음 와 보는 동네이기도 했다. 늘 익숙한 곳에 가서 익숙한 음식만 먹는 나였으므로 이토록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폭풍 같던 이사 당일이 지나고, 나는 반쯤 정리된 짐들 사이를 헤집고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밤새 정리와 청소에 시달렸더니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고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동네도 둘러보고 괜찮은 카페를 발견하면 커피라도 한잔 마실 요량으로 밖으로 나갔다. 동네는 한적했다. 눈에 띄는 음식점은 없었지만, 퍽 분위기 있는 카페가 몇 군데 있었다. 게다가 집 맞은편엔 큰 공원이 있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집 근처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을 배경 삼아, 편의점 의자를 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할머니 서너 명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속닥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자리한 골목은 해가 비치지 않아 시원했다. 나는 괜스레 걸음을 늦추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의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없는 곳, 모두가 자기의 목소리를 소리 높여 내지 않는 곳이구나.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골목을 지나쳤다. 차분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작은 카페에서 산 커피를 손에 든 채 나는 탐색을 이어갔다.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동네라 그런지,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전부 노인이었다. 집에 돌아가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를 때마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무언가를 잃고 배회하는 소설 속 인물처럼, 나는 생각과 계획 없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카페 몇 군데를 더 지났을 때 “이렇게 하라니까?” 하고 외치는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골목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머리를 높이 묶은 여자아이 한 명과, 그보다 한 뼘 정도 작은 남자아이 한 명이 마주 보고 선 채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골목을 지나야만 하는 사람처럼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들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면 슬쩍 만류할 심산이었다. “아이, 답답하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팔목을 꽉 잡았다. 자세히 보니, 여자아이의 한 손에 줄넘기가 들려 있었다. 나는 얼음이 거의 녹아 밍밍해진 커피를 들이켜며 천천히 걸었다. 그때였다. “자, 내가 하는 거 잘 봐.” 남자아이의 팔목을 놓은 여자아이가 줄넘기를 돌리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는 눈 깜빡할 새에 골목 끝까지 다다라 있었다. “쉽지? 이렇게 하면 돼!” 여자아이가 멀찍이서 손을 흔들며 외쳤다. 손에 쥔 줄넘기를 만지작거리던 남자아이가 이내 결심한 듯, 줄넘기를 돌리며 뛰기 시작했다. 남자아이가 줄을 돌릴 때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카시아 꽃잎들이 튀어 오르듯 휘날렸다. 내가 꽃잎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남자아이는 열심히 줄을 돌리며 달려간 모양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덧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곁에 서 있었다. “봐봐, 할 수 있잖아!” 여자아이가 씩씩하게 말하며 남자아이를 끌어안았다. “못할 줄 알았지? 그런데 같이하면 다 돼!” 여자아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쯤, 동거인 Y가 전화를 걸어왔다. Y는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없었다며, 어디 있는 거냐고 잠에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거의 다 왔다고 대답했다. 집에 가서 같이 정리를 하고, 밥을 먹고, 앞으로의 삶을 잘 꾸려가 보자고 이야기하자 Y가 작게 웃었다. “물론이지.” /양수빈 (소설가)

2026-05-20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모두에게

최근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챙겨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있다. 제목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OTT에 보일 때마다 뭐 저런 제목이 다 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감명깊게 봤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본을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워낙 문학적인 작품들을 써 온 작가라는 것을 알기에 그 독특한 제목을 여러 번 곱씹게 되었다. 소리 내어 발음을 해볼수록 절묘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속 인물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로 항상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직업은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일이다. 때때로 나태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직업으로 여기고 산 십 수 년을 돌이켜보면 나름 치열하게 이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편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단지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 해내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뭔가 업적을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피어났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남루하지 않은 옷을 입고 맛집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며 남들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당장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던 때에도 그런 종류의 욕망과 조급함에 머리를 싸매곤 했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조금 힘들다. 자꾸만 스치는 수치심 때문이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인물의 모습이 마냥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이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행패를 부리는 장면 가운데 어느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분노를 품었고, 지금도 가끔 마음속에서나마 그렇게 못나게 굴기도 한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나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가치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나아가 인류를 위해 희생하거나 그 안의 모든 이들의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이들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야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 정도로까지 위대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소박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 방식과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조금씩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정으로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 모두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위대한 인간도, 아무 것도 안 하던 어느 시절의 나 같은 인간도 그냥 지구를 뒤덮은 수많은 생물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른 종의 생물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발명되지 않았지만 만약에 그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을 수 있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고 되물을 것 같다. 모든 생물에게 생존은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목적이다.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는 있어도 무엇을 위해 사는 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최종 목적도 생존인 것이고, 살아있는 모두가 매일매일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더불어 어떤 가치까지 창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목표를 초과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것이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만약에 누군가가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면 어떤 식으로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을 직업이라 부를 수는 없다. 직업이 없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의 대상이 된다면 그 또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딱히 사랑을 주고받는 이가 한 명도 떠오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편의점에서 콜라 한 캔을 사는 행위도,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도 누군가에게 일거리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삶도 크고 작고를 떠나 가치가 있는 삶이다. 그 모든 것에 하나도 해당이 안되고 도저히 그런 가치는 내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우리의 목표는 살아있음 그 자체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울 필요는 없다. /강백수 (시인)

2026-05-20

사설

경북 청년 50만 붕괴···지방소멸 코앞에 왔다

경북연구원이 최근 ‘GDI 이슈 리포트’에 게재한 자료에 의하면 경북의 청년(15-39세)인구는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48만7000여 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68만여 명이던 경북의 청년 인구가 2025년 50여만 명으로 10년 사이 약 19만여 명이 줄어들더니 올들어서는 50만 명 선도 붕괴되고 말았다. 도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청년인구의 비중도 2016년 25.5%에서 지난해는 19.4%까지 추락했다. 전국 평균 25.3%와는 큰 격차를 보이는 수치다.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을 반영하듯 경북의 청년인구는 포항, 구미 등 도시지역에 집중돼 있는 반면, 농촌지역은 전체인구의 11-13%에 불과하다. 실제로 농촌에서 청년을 만나기란 극히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학 진학과 취업 시점인 20-24세 청년층의 유출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여성청년의 순유출이 남성의 1.6배에 달하는 것도 관심 갖고 지켜볼 대목이다. 농촌의 성비 불균형이 이미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허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의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지방소멸을 걱정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당국의 수많은 대책과 천문학적 예산 투입이 있었음에도 지방청년 이탈이 조금의 변화도 없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성청년의 이탈은 곧 결혼과 출산 기반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말로만 하던 지방소멸의 위기가 이제는 우리들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뜻이다. 한해 1만명의 청년이 고향을 떠나는 경북지역의 현실을 통해 지금 전국의 지방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내놓은 정책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 원인을 찾아 지방소멸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접근하는 대책을 찾아야 한다.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직도 단편적이고 일회성 지원금으로 청년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방소멸이란 재앙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2026-05-19

사설

경북도지사 선거 과연 싱겁게 끝날까

초박빙 판세를 보이는 대구시장 선거에 가려 경북지사 선거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북지사 선거는 3선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이철우 후보와 민주당 오중기(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후보 간 2파전으로 치러지고 있다. 8년 전인 2018년 두 후보가 처음으로 맞붙은 경북지사 선거에서는 이 후보가 52.11%, 오 후보가 34.3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후보는 현재 도내 국민의힘 시·군 후보 선거사무소를 순회하면서 공약을 발표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8일에는 박용선 포항시장 후보 선거사무소를 찾아 ‘포항 대도약 공동 비전발표회’를 가졌다. 발표회에는 김정재(포항북)·이상휘(포항남울릉)·이달희(비례) 의원과 지방의원 출마자들이 함께했다. 이 후보는 최종후보로 확정된 후 ‘보수결집’에 총력을 쏟고 있다. 추경호 후보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되자 같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등을 방문하며 원팀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 6일에는 국민의힘 영남권(대구·경북·부산·경남·울산) 5개 시·도지사 후보들과 함께 울산시청에서 ‘공소 취소 특검법’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기도 했다. 오 후보는 대구에서 불고 있는 ‘김부겸 바람’을 활용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김부겸 후보와 같이 ‘대구·경북 상생을 위한 8대 공동정책’ 협약식을 갖기도 했다. 지난 2일 포항에서 열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해 오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정 대표는 이날 축사를 통해 “오중기가 요청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 후보는 최근 경북 도내 전역을 누비는 강행군을 하며 외연확장에 올인하고 있다. 현재 경북지사 선거 판세는 이 후보가 강세 흐름을 타고 있지만, 경북지사 선거 6전 7기에 도전하는 오 후보의 추격전도 만만찮다. 이전 선거와는 달리 ‘집권당 프리미엄’이 강한데다 이재명 대통령의 잇따른 경북 방문, ‘김부겸 효과’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05-19

칼럼

‘살얼음판 승부’ 펼쳐지는 대구시장 선거

6·3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대구시장 선거 열기가 더해가고 있다. 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는 사전선거일(29~30일)이 다가오자 각각 ‘여당 프리미엄’과 ‘보수결집’에 화력을 집중시키면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민주당 정부에서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한 김 후보는 ‘중앙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현 시점에서 대구에 필요한 시장은 중앙정부와 싸우는 시장이 아니라, 중앙정부를 움직여 돈과 권한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전략에 가장 부합하는 공약이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을 위한 국비 지원이다. K2 군공항 이전에 대한 국비지원은 국회의 특별법 개정과 정부의 예산편성이 전제돼야 하므로 김 후보로서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신공항 건설은 TK지역 최대현안이기 때문에 지역 민심을 흔들 수 있는 카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TK신공항 예정부지가 있는 군위군을 직접 방문한 것도 야당에선 김 후보의 선거전략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경제관료 출신인 국민의힘 추 후보는 쇠퇴해가는 대구경제를 완전히 개조하겠다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고, 대구 달성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예결특위 위원도 역임한 경험이 있어 경제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누구보다 뛰어나다. 추 후보는 특히 보수 정서를 대변하는 대구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총결집해 ‘줄 투표’를 할 경우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줄 투표는 유권자가 시장, 구청장·군수, 광역·기초의원 선거 모두 같은 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현상을 말한다. 추 후보도 최근 “대구시장 선거는 후보 혼자 하는 선거가 아니라 국회의원과 구청장·군수 후보, 광역·기초의원 후보까지 하나로 뭉쳐서 치르기 때문에 경쟁력이 무궁무진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19일 발표한 대구시장 지지도 조사(16~17일 대구시민 800명 전화 면접,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김부겸 후보 40%, 추경호 후보 38%였다. 오차범위(±3.5%p)내 초접전 양상이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추 후보(42%)가 김 후보(38%)를 앞섰다. 향후 주목되는 것은 후보 지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우선 19·20일 양일간 안동에서 열리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이 TK지역 민심에 얼마만큼의 변수로 작용할지가 관심사다. 민주당에서는 국가 외교행사를 선거와 연결해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전형적인 선거용”이라고 비판했다. 이제 13일 남은 선거운동 기간 후보 간 TV토론회(22일 오후 6시 TBC대구방송, 26일 밤 11시 대구MBC)나 캠페인을 통해 누가 유권자에게 신뢰감을 더 얻느냐도 승부를 가를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5-19

칼럼

선출되지 않은 선출직

선거구에 등록한 후보자의 수가 선출할 의원의 정수와 같거나 적어서 투표하지 않고, 투표 당일 후보자가 자동 당선되는 것을 무투표 당선자라 한다. 유권자의 투표 없이 당선되는 선출직이라는 뜻에서 “선출되지 않은 선출직”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6·3 지방선거 후보자 가운데 513명이 무투표 당선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초단체장 3명과 광역·기초단체 의회의원 510명 등이다. 대구 6명, 경북 37명이다. 직전 선거인 2022년 지방선거 당시 509명보다 숫적으로 많고 역대 최다 인원이라 한다. 평균 경쟁률은 1.8대 1로 2022년과 같다. 무투표 당선은 경쟁을 통해 민의의 대변자를 뽑는 민주주의 본질과 상충되기에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다.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견과 자질을 비교해 선택해야 하나 선택 기회가 상실된다는 점에서 ‘주권재민’이라는 원칙이 훼손된다. 또 무투표 당선자는 선거공보물 발송이나 합동토론회 등의 공식적인 선거운동 절차가 생략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결격사유가 있거나 자질이 부족한 후보가 아무런 검증 없이 공직에 입문하는 문제도 있다. 대체적으로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높은 지역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영남이나 호남이 그렇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대구와 전북, 광주 등이었다.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많이 나오면 견제와 감시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도 커진다. 6·3 지방선거 후보자의 30%가 넘는 사람이 전과자라고 한다. 우리의 지방선거제도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9

심학봉의 내일을 묻다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 조성을 제안하다(상)

대한민국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경북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통계 자료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제조업 비중, 즉 전국 제조업에서 경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12.5%를 정점으로 2010년 11.1%, 2016년 9.8%, 2022년 7.79%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주력산업의 국내외 이전, 판교·용인 등 수도권으로의 신산업 집중화가 주요 원인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경북 제조업이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 구조적·추세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의 산업정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해법으로 나는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 조성을 제안한다. 기존의 산업벨트가 산업단지와 도로망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머물렀다면,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는 산업단지, 비즈니스 기능, 교통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광역 산업혁신 전략이다. 이를 통해 기존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는 도시별 생산 기능과 연구개발 기능을 연계하고, 사업화·금융·데이터 플랫폼 등 비즈니스 기능을 융합하며, 도시 간 물류와 인적 교류를 순환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전국 최초의 경북형 광역 산업혁신 생태계다.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산업 이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산업은 속성상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마치 철새가 먹이를 찾아 이동하듯, 산업도 기술, 시장, 인재, 비용, 이윤을 따라 이동한다. 제조업과 함께 성장했던 도시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미국 피츠버그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피츠버그는 미국 산업화의 심장이었고, 철강은 도시 번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철강산업의 중심은 일본으로, 다시 한국과 중국으로 이동했다. 제조 기반이 흔들리면서 피츠버그는 한때 미국에서 쇠락한 공업도시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다. 과감한 산업 전환에 나섰다. 카네기멜론대학과 지역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컴퓨터, 로봇, 바이오, 첨단 의료산업을 육성했고, 연구개발과 창업 중심 도시로 체질을 바꾸었다. 특히 중요한 점은 피츠버그의 전환이 도시 하나의 노력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는 피츠버그를 제조업 부활과 신산업 전환의 핵심 거점으로 설정하고, 주변 도시와 생산, 물류, 소재, 에너지 기능을 연계하는 분업형 광역경제권 전략을 추진했다. 산업 르네상스를 위해 도시 하나가 아니라 주 전체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 결과 피츠버그는 연구개발, 로봇, 의료, 교육, 창업이 결합된 혁신도시로 바뀌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피츠버그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도시 전환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새로운 전략과 이를 실행하는 정치적 능력이 도시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심학봉 전 국회의원

2026-05-19

정상철의 혁신경영

기업과 인권경영

‘인권경영은 기업복지가 아니라 경쟁력이다.’ 과거 기업의 경쟁력은 생산량이었다. 얼마나 많이, 빨리, 싸게 만드는지가 기업의 핵심이었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고 시장은 기업에게 묻는다. “당신의 회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최근 글로벌 투자자와 고객들은 제품만 보지 않는다. 그 제품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 노동자는 존중받고 있는지, 협력사는 안전한지까지 본다. 인권경영은 기업이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경영 전반에 보호하고 존중하는 경영방식이다. MZ세대의 조직 변화와 ESG 경영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협력사·노동환경까지 인권의 중요한 경영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권경영(Human Right Management)이란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인간다운 권리를 존중하며 경영하는 체계이다. 인권경영의 핵심 요건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 존중 경영철학이다. 회사의 모든 의사 결정 기준에 사람의 존엄이 포함되어야 한다. 직원이 존중받는 조직일수록 생산성이 높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안전할 때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를 공유하며, 개선활동에 참여와 위험을 먼저 알린다. 두려운 조직에서는 침묵하고 숨기고 방어하며, 시키는 일만 한다. 폭언·갑질·차별·강제노동 금지와 안전한 작업환경이 기본이다. 둘째, 산업 안전과 건강 보호이다.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중대재해 예방, 위험 작업관리, 안전교육, 작업중지권 보장 등이 핵심이다. 셋째, 공정한 노동환경이다. 적정 임금, 적정 근로시간, 휴식권 보장,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성희롱 예방 등이 포함된다. 넷째, 공급망 안전관리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은 협력업체 인권 문제까지 관리한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 보호, 하청업체 안전관리 등이다. 다섯째, 고충처리 및 신고체계이다. 익명 신고 시스템과 내부 보호 체계가 중요하다. 인권을 존중하는 기업이 지속 성장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리더가 바뀌지 않으면 문화는 변하지 않는다. 관리자의 한마디가 근로자의 자존감을 만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특히, 제조기업 리더는 지시하는 관리자보다 듣는 리더가 되어야 하며, 현장은 통제보다 참여의 시대다. 안전과 존중문화, 참여와 공정문화가 시스템이 되어 문화로 가야한다. 현대 기업문화 수준은 생산 경쟁력보다 사람을 대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인권경영은 기업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며, 품격이고 필수 경영이다. 현장을 존중하는 기업은 사고와 이직이 줄고, 참여가 늘고 개선이 빨라진다. 인권경영은 강력한 미래 투자다. 산업재해, 조직 갈등, 갑질 문화, 이직 증가, 생산성 저하, ESG 리스크, 브랜드 신뢰 하락 등을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기계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사람의 신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의 작은 존중, 안전을 우선하는 결정,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미래 선진 기업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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