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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오늘의 작은 노력이 포스코의 내일을 만드는 자산이 되길”

‘가열로의 무결점 운영’을 책임지는 업무 안정적 가동 위해 매 순간 공정 흐름 관리 - 자기소개를 해달라. 포항제철소 후판부 2후판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7년 차 엔지니어 강재환이다. 2후판공장은 선박, 교량, 대형 건축물 등에 사용되는 핵심 철강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대표적인 공장이다. 나는 이곳에서 생산의 시작점인 ‘가열반’ 엔지니어로 일하며 제품 품질의 첫 단추를 끼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울산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2019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현장을 ‘최고의 배움터’로 삼아왔다. 설비 점검부터 압연 공정의 흐름까지, 현장에서 보고 배우며 몸소 익힌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의 마음가짐은 명확하다. ‘선배들이 쌓아온 값진 노하우를 가장 빠르게 내 것으로 체득하자’는 것이다. 매일 현장에서 땀 흘리며 최고의 후판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가열로의 무결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반제품인 슬래브를 압연하기 가장 좋은 상태로 가열해내는 일은 고품질 후판 생산의 기본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가열로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매 순간 공정 흐름을 면밀히 관리하고 있다.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데이터 기반의 판단’과 ‘현장의 감각’을 결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열로 내부의 정교한 온도 제어는 물론, 수처리를 비롯한 각종 유틸리티 설비까지 빈틈없이 점검하며 1분의 멈춤도 없는 공정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설비 컨디션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곧 공장의 경쟁력이라 확신한다. 현장의 기본기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알기에, 매 순간 최일선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가열로반 업무 외에도 압연, 수처리 등 전 공정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야’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가장 큰 사실은 우리 2후판공장의 모든 설비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입사 초기 설비점검반에서 다졌던 기초가 현재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익힌 유틸리티 설비에 대한 이해는 지금 가열반에서 발생하는 돌발 변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압연반을 거쳐 가열반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뛰어난 선배들을 곁에 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나는 늘 ‘내 작업이 앞뒤 공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했다. 예를 들어 수처리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이 가열로의 온도 조절이나 최종 압연 품질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 즉각적으로 판단하려 했다. 이런 통찰은 단순히 현장 경험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본 데이터를 도면과 매칭하며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나만의 ‘업무 아카이브’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2후판공장의 복잡한 공정과 설비 메커니즘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의 업무를 데이터화해 기록한다. 현장의 변수를 기록으로 남겨 자산화하는 과정이 전체 공정을 조망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자격증 준비··· 설비 이해하기 위한 과정 돌발 상황에도 근본 원인 파고드는 원동력 - 전기기능사, 설비보전기능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입사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현장 실무에서 이러한 전문 지식이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창 시절 전기와 설비보전을 공부하며 자격증을 준비한 시간은 단지 스펙을 쌓는 과정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설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실제 공장에 들어와 보니, 겉으로 보이는 육중한 기계 설비 뒤에는 전기·공압·유압이 정교하게 얽힌 복잡한 동력 체계가 있었다. 기초 지식 덕분에 설비의 외형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신호가 어떻게 흐르고 에너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도면을 펼쳤을 때도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설비 작동 메커니즘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고장의 근본 원인을 파고들 수 있게 됐다. 물론 현장은 책보다 훨씬 복잡하다. 전기 전공자로서 기계적 역학 관계나 공장의 복잡한 제어 시스템을 접할 때면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고민은 짧고 성장은 빠르다. 포스코의 사내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이론적 갈증을 현장 실무로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 내가 현장을 배워가는 방식이다. - 현장에서 기술적인 난관을 해결했거나, 공정 효율을 개선해 보람을 느꼈던 사례가 있다면 말해달라. 2후판공장의 거대한 설비 체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엔지니어로서 반드시 넘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무결점 운영을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힌 유틸리티 설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복잡한 계통도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단순히 보고 듣는 것을 넘어 내가 이해한 내용을 직접 도면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무 시간 틈틈이 현장을 돌며 라인의 시작부터 끝까지 추적했다. “이 밸브가 열리면 기름은 어디로 흐르는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이렇게 나만의 ‘계통도 매뉴얼’을 완성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그 결과, 해당 자료가 ‘길잡이’처럼 동료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참고자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선배들로부터 “덕분에 라인 파악이 한결 수월해졌다”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후배들이 이를 활용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이 기록은 선배들이 쌓아온 노하우를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싶다. 복잡한 공정을 체계적인 지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내가 현장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포스코의 복지제도나 재충전 프로그램을 활용해 ‘워라밸’을 유지하고 있는지. 포스코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촘촘한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다. 나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양한 휴양시설을 자주 이용한다. 교대근무의 특성상 평일 휴일이 생기는데, 이를 활용해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한다. 비교적 한산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또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행 플랫폼 포인트 제도도 활용하고 있다. 숙박과 레저 활동 지원 덕분에 여행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전문자격증 취득 지원 장려금 제도 등을 통해 자기계발도 병행하고 있다. 이런 든든한 제도 덕분에 업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다시 일상 현장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50년 축적된 선배들의 살아있는 노하우 ‘데이터로 체계화’하는 것이 나의 목표 - 철강업계 미래를 이끌 차세대로서 목표가 있다면? 포항제철소에는 50년 넘게 축적된 선배들의 노하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의 목표는 이를 데이터로 체계화하는 것이다. 현장의 경험이 스마트 데이터와 결합하면 효율 향상이라는 생산성뿐 아니라 안정성과 작업환경 개선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사내 뉴칼라(New Collar) 교육을 통해 기초를 다졌고, 앞으로 단계별 학습 과정을 차근차근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포스코 철강대학 진학을 통해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로 성장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선배들의 숙련된 기술과 미래의 스마트 기술을 조화롭게 융합, 결합하는 ‘포스코 맞춤형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내가 쌓아가는 오늘의 작은 노력이 훗날 포스코의 내일을 만드는 자산이 되리라 확신한다. - 미래 철강인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포항제철소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소환원제철 등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속에서 과거의 방식도 존중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개선 가능성을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현장에서 선배들의 노하우를 따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이렇게 운영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기존에 주어진 설비 운영 루틴을 존중하며 따르면서도 늘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고민하면서 공정의 개선점을 찾기 위해 나만의 데이터를 정리해보는 것과 같은 작은 시도들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유연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포함해 그동안 포스코가 쌓아온 단단한 기반 위에, 우리 세대가 새로운 시각으로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면 미래의 포스코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언제나 주어진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한 걸음씩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성장하는 동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지난 4주간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경북 산불 피해 현장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처참했다. 7평 컨테이너에서 청심환으로 버티는 노인, 5년의 소득 공백 앞에 10만 원의 보상금을 쥔 농민, 그리고 70년 송이밭을 잃고 ‘한 달 치 생계비’를 손에 든 농부까지. 화마(火魔)와 맞섰던 현장 대원들의 사투는 우리 방재 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산불 특별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본지는 소방·방재 전문가인 전우현 대구보건대 교수와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를 통해 한국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모순과 대안을 짚어봤다. ◇ “이원화된 지휘권, 국가 재난급 대응의 걸림돌” 전우현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당시 산불이 단시간에 초대형으로 확산한 원인으로 우리나라 지형 특유의 강풍인 ‘양간지풍’과 소나무 및 잡목이 밀집된 산림 특성을 지목했다. 전 교수는 “기후 변화로 산이 극도로 건조해진 상태에서 강풍이 불면 산림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약고가 된다”며 “봄철 지형적 특성인 강풍이 불고 소나무와 잡목이 밀집해 있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우리 산림은 연료 역할을 하는 침엽수 비중이 너무 높고 낙엽과 고사목이 쌓여 ‘불쏘시개’ 층이 두꺼워진 상태”라며 “가파른 산악 지형은 소방차 접근이 어렵고 방수용 자원 확보도 힘들기 때문에 초기 진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원화된 지휘 체계의 개선이다. 산림 관리는 지자체, 대응은 산림청 중심, 지원은 소방청이 맡는 현 시스템은 초기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제 산불은 단순한 산림 화재가 아니라 민가와 도로를 덮치는 ‘국가 재난’이다”라고 강조하며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불 관련 법적 지원에 대해서는 시기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보완을 주문했다. 그는 “송이 농가처럼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 다시 임산물을 채취할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을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 방식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목 제거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긴급 상황은 소유자 동의 없이 가능하나 일상의 예방적 차원에서는 소유자와의 협의와 사후 보상이 전제돼야 재산권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항공 진화 체계의 현대화 역시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전 교수는 “현재의 소·중형 헬기는 담수량이 적고 강풍이나 야간에는 뜨지 못한다”며 “성능이 좋은 대형 진화 헬기로 과감히 교체해야 하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진화 인력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처우 개선을 통한 젊고 유능한 인력이 투입되는 상설 전문 조직을 강화하고 위성·드론·AI를 활용한 첨단 조기 탐지 시스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 “예방 패러다임 전환과 실화자 강력 처벌 절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발생의 핵심 요인을 실화에 의한 작은 불씨가 건조한 날씨, 강풍과 만난 것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불이 잘 붙고 바닥에 마른 솔잎이 쌓여 연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바람이 불면 불씨가 2㎞ 이상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무력화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진화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예방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산불은 발생 후 30~60분 안에 잡아야 하는데 지휘 체계가 분산돼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실정”이라며 “진화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헬기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기상 조건이 나쁘면 헬기는 무용지물이 되는 만큼 지상 진화 역량과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 구조 개선을 위한 수종 전환에 대해서는 ‘어려운 딜레마’를 언급하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침엽수 중심에서 활엽수나 혼효림(섞임숲)으로 정책의 변화가 절실하다”며 “10~20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워 내화성 수종을 심고 주민들의 소득 감소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어 “위험목 제거는 국가적 사업으로서 적절한 조치지만, 정당한 손실 보상을 전제로 풀어가야 한다”며 “특히 송이 농가 지원이 현실적 소득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미국의 ‘연료 관리’와 호주의 ‘주민 참여형 시스템’을 주목했다. 특히 미국의 ‘연료 관리’에 대해 “일부러 작은 불을 태워 대형 산불의 길목이 될 낙엽과 고사목을 미리 없애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IT 강점을 살려 “민가 밀집 지역 등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건조기에 가연물의 수분 함량을 1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과학적 예방 시설 도입이 시급하며 이는 사후 진화 비용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장치로서 강력한 처벌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상당한 경우 실화자라도 15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도록 산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재난 권위자 페탁(Petak)의 말을 빌려 “이제 우리도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지난 22일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산자락.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산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었다. 수십 년 수령의 소나무들은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숯덩이가 된 채 죽은 듯 서 있었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매캐한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 검은 숲 한가운데 백발의 이위복 씨(86)가 서 있었다. 그는 시꺼멓게 변해버린 산등성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 산을 누비며 송이를 땄어요.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려고 70년 넘게 공들여 가꿔온 산인데… 이제는 송이 하나 보이지 않네요. 싹 다 타버렸어요” ◇ 70년 일궈온 ‘연 매출 3억’ 일터, 1시간 만에 잿더미로 영덕은 전국 최대의 송이버섯 생산지다. 이 씨에게 이 산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황금 창고’였다. 산불 이전까지만 해도 10만 평이 넘는 재배지에서 거둬들이는 연 매출은 3억 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이 강풍을 타고 영덕으로 넘어오던 날 70년의 세월은 단 한 시간 만에 무너져 내렸다. “안동에서 불이 넘어온다고 하길래 집에서 짐을 싸고 있었죠. 그런데 연락받고 한 시간도 안 돼서 불길이 옆집 마당까지 들이닥치더라고요” 당시 대피령을 받은 군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영덕 국민체육관 안에는 들어갈 자리조차 없었다. 사투 끝에 돌아온 고향은 검은 재뿐이었다. 소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는 나무가 죽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특히 송이 균사가 다시 형성돼 수확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최소 30년에서 5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상 한 세대의 생업이 통째로 증발한 셈이다. 이 씨는 “송이는 소나무가 있어야 나는데 소나무가 다 죽었으니 제 평생에는 이제 송이 구경 못 한다고 봐야죠. 제 인생에서 송이는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라며 허탈해했다. ◇ 시행된 ‘산불특별법’, 현장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는 지난 1월 29일부터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법안 제1조는 ‘피해지역의 안정과 회복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17조(농·임업 피해복구 지원)와 제31조(산림소득사업 우선 지원)는 임산물을 채취하는 농가에 생계비를 지원하고 산림 경영 기반을 복구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법의 온도는 차갑다 못해 시리다. 특별법 제31조 2항에 따라 송이 채취 농가도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수령액은 고작 1개월 치 241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식 실적 증명이 가능한 농가에 한해 ‘한 달 치’ 생계비 명목으로 나간 돈이다. 개인 거래가 많은 송이 농가의 특성상 실적 확인이 안 돼 이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연간 3억 원의 소득을 올리던 농가에 한 달 치 기초 생계비를 던져주는 것이 과연 국가가 말하는 ‘구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씨는 “특별법이니 뭐니 해서 지원금이 조금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별 볼 일 없습니다. 송이로 벌던 수입을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밤나무, 잣나무, 감나무 등 ‘대체 작물’ 카드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70년간 송이만 바라본 숙련 농민들에게 감나무 재배는 생계 대안이 아닌 ‘전업 포기 권고’나 다름없다. 이 씨는 “나라에서는 산에 감나무나 밤나무를 심으라고 하는데 그 나무들이 자라 수익이 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송이 따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감이나 따라는 건 대책이 안 돼요. 그 소득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 재건이라는 이름의 개발, “기대도 안한다” 특별법은 관광단지 개발(제39조)과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제41조) 등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피해 산지를 민간 투자를 통해 관광·레저 시설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원주민의 삶을 보듬기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땅 갈아엎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 씨의 마음도 복잡하다. 마을 주변에 풍력 발전기나 원자력 관련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산 주인들에게 돌아올 혜택은 안갯속인 탓이다. 이 씨는 “앞으로 산에서 나올 소득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든 넘어 송이밭을 잃은 노인에게 첨단 산업단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상북도청 산불피해재창조 사업단 관계자는 “기존 재난관리기본법 체계에는 송이 농가 지원 기준이 아예 없었으나 경북도의 강력한 건의로 한 달 치 생계비인 241만 원을 우선 지급하며 사각지대를 보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별법은 피해자가 산불과의 인과관계만 증명하면 신체·정신·재산상 피해를 폭넓게 신청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구체성은 다소 떨어져 보일 수 있어도 오히려 포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선도지구 역시 시·도 조례를 통해 난개발 우려를 차단하고 실질적인 지역 재건으로 이어지도록 세부 지침을 마련 중”이라며 “단순한 개발이 아닌 피해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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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산불 1년] 현장이 말하는 ‘방재의 구멍’

경북 산불 현장에서 1조 8000억원의 복구 예산보다 간절했던 것은 ‘물 한 바가지’와 ‘일원화된 지휘’였다. 68개 조항의 산불특별법은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및 인허가 의제 등 지역 재건 사업에는 촘촘한 그물망을 짰지만, 정작 화마(火魔)와 맞섰던 대원들의 안전 장비 보강이나 꼬인 통제 체계 개선안은 담아내지 못했다. 본지는 지상·도로·공중에서 법보다 앞서 몸을 던진 베테랑 3인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 방재 시스템의 실상을 정밀하게 짚어본다. ◇ “800ℓ 진화차, 불길 앞에선 도망 나오기 바빴다” 지난 17일 포항남부소방서에서 만난 황병률(52) 현장대응팀장은 당시 의성, 영양, 울진 현장을 7일간 돌며 사투를 벌였다. 황 팀장은 “도착 직후 목격한 연기는 의성 읍내 전체를 덮어 구역 구별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며 “좁은 산길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소방서 산불 진화차의 물 용량은 고작 800ℓ인데 바람을 탄 화염이 사람 주먹처럼 확 덮치면 우리가 가진 수량으론 감당이 안 돼 차를 빼고 대피하기 바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인 ‘지중화(地中火)’를 경고했다. 황 팀장은 “표면은 꺼진 듯해도 삽으로 파보면 낙엽 아래 화기가 살아 움직이는 현상이 심각했다”며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이라는 무력감이 들었다. 기상 조건이 안 맞으면 어떤 장비도 무용지물”이라고 토로했다. 지휘 체계에 대해서도 황 팀장은 “현재 산불 주도권은 산림청이, 인명 구조는 소방으로 분산돼 있어 대응 효율이 떨어진다”며 “누구든 좋으니 재난 현장의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술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팀장은 “산은 타더라도 인명과 민가를 최우선으로 지키는 방향으로 전술이 보완돼야 한다”며 “산림 보호에 치중된 현재의 산불 대응 시스템은 민가 방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 “일반 마스크 한 장의 사투⋯부모 구하겠다는 절규 앞 딜레마” 23일 포항북부경찰서에서 만난 권도정(50) 교통관리계 팀장은 당시 영덕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인 포항시 북구 청하 삼거리에서 24시간 넘게 통제 업무를 수행했다. 권 팀장은 “가만히 서 있어도 강한 돌풍에 사람 몸이 비틀거리고 잿가루가 시야를 가린 암흑천지였다”며 “현장에서 지급 받은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라 연기 한 모금에도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견디며 도로를 지켜야 했다”고 토로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권 팀장은 “차량 타이어에 불이 붙어 도로 위에 차를 버려둔 채 대피하는 상황이 속출했다”며 “그런 와중에 ‘집안에 어머니가 계셔서 꼭 가야 한다’고 울부짖으며 통제 구간으로 차를 밀고 들어오는 자식들 앞에서는 지시 위반을 따질 겨를도 없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통제 구간을 막아서면 일부 주민들은 갓길로 무작정 진입하려 해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다. 그 많은 인원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그렇다고 보내주자니 혹여 발생할 사고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 경찰의 몫이 되는 딜레마가 반복됐다”고 전했다. 겹겹이 차단막을 쳐야 겨우 통제가 됐던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긴급 통제권의 범위나 공무원 면책 조항 같은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이번 특별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 “연기 뚫고 마주한 불의 띠⋯엇박자 공조에 피 말린 상공” 24일 울진산림항공관리소에서 만난 최근홍(56) 운항관제팀장은 당시 강릉에서 의성으로 급파됐다. 최 팀장은 “전날 산청 소집령을 받고 이동 중 의성 상황이 더 시급하다는 지시에 헬기를 돌려 ‘빽도(회군)’를 했다”며 “현장은 안동까지 연기가 밀려와 시정(視程)이 완전히 차단됐고 고도를 6000피트(약 1800m)까지 높여 숨구멍을 찾기 위해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상공에서 목격한 화마의 기세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최 팀장은 “연기가 누워 있으면 나무 사이로 ‘불의 띠’가 선명하게 보인다. 불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길을 내듯 정상을 넘은 뒤 다시 타고 내려간다”며 “이 띠를 조준해 물을 뿌리지만 침엽수는 송진 성분 탓에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면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기관 간 공조의 한계는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최 팀장은 “산림청, 군, 경찰, 임차 헬기가 한꺼번에 몰렸으나 속도와 기동성이 달라 손발이 맞지 않았다”며 “산불 진화가 주 임무가 아닌 기종들이 대열에 섞이다 보니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면 뒤따르던 기체들은 공중에 줄줄이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처우 문제에 대해서도 최 팀장은 “조종사는 전문 임기제라 수당 체계에서 소외감이 크다. 또 헬기 대당 조종사 정원이 모자라 야간 진화 헬기가 도입돼도 운용 인력이 즉각 충원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4

[경북매일 기획시리즈]TK 통합, 25년의 공전⋯험난한 ‘지방자치의 길’

편집자주=“대구·경북(TK)이 하나로 합치면 정말 살기 좋아집니까?” 25년 전 ‘경제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이 질문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유일한 병기(兵器)로 꼽히는 ‘TK 행정통합’은 왜 번번이 멈춰 서는가. 경북매일신문은 4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TK통합 논의의 과거 25년과 행정통합의 걸림돌, 해외의 성공·실패 사례, 행정통합을 위한 마지막 퍼즐 등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1.TK행정통합은 왜 번번이 멈췄나 2.이슈가 된 행정통합 당위성과 걸림돌 3.해외 사례에서 본 성패의 교훈 4.성공적 행정 통합을 위한 ‘마지막 퍼즐’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이 또다시 국회 입법 문턱에서 멈춰 섰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거대 광역경제권 구축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정파적 계산과 실무적 난제라는 파고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들자마자 시작된 TK통합 논의가 결정적 순간마다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배경에는 ‘불분명한 통합 효과’와 ‘관(官) 주도 방식’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추진됐던 TK 행정통합 특별법은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7월 1일 출범계획이었던 대구경북 통합특별시도 사실상 무산됐다. 4월 초가 특별법 처리 마감 시한이라고는 하지만 국회 일정상 본회의에 회부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TK통합 논의의 시작은 2000년대 들어 제기된 ‘경제통합’이었다. 산업과 생활권이 겹치는 두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자는 취지였다. 이후 메가시티 정책이 부상하며 행정구역 통합으로 확대됐고, 2020년 9월에는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로드맵을 제시했다. 당시 공론화위는 대구시를 해체하고 8개 자치구·군만 남기는 ‘특별광역시(오사카 모델)’와 대구시 지위를 유지하되 행정 계층을 조정하는 ‘특별광역도’ 안을 놓고 고심했다. 하지만 2021년 4월 공론화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3년 만에 재점화된 2024년의 추진 과정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제안과 이철우 경북지사의 화답,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가 맞물리며 탄력을 받았다.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과거와는 달랐지만, 시도민의 의사가 아닌 관이 주도한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한계가 반복됐다. 통합 효과에 대한 객관적 근거 미비도 장애요소가 됐다. 통합론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주장하지만 광역시와 경북도의 통합이 가져올 실질적 이득은 불분명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통합 시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 지방의원 수 감소, 공무원 인사체계 변화 등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도 문제였다.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외 가능성과 청사 위치를 둘러싼 이견도 숙제였다. 정치권의 셈법도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주호영(대구 수성갑) 의원은 지난 1월 “행정통합은 TK가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시작했는데 정작 밥상은 남들이 먼저 받게 생겼다”며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윤재옥(대구 달서을) 의원도 “정부가 득표에 유리한 지역을 우선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주도권 확보를 강조했다. 반면 홍석준 전 의원은 정부의 재정 인센티브 제시를 두고 “사실상 포퓰리즘”이라며 “인구와 면적이 압도적인 TK를 다른 지역과 동일 기준으로 취급하는 것은 홀대”라고 비판했다. 의원들마다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상에 따라 행정통합에 대한 견해를 달리한 것이다. 국내 기초자치단체 행정통합 선례들은 TK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8년 출범한 통합 여수시는 전국 최초로 시민단체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이뤄내며 엑스포 개최 등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는 정부의 자율통합 기조에 맞춰 입법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통합 창원시를 탄생시켰다. 반면 TK지역은 이러한 주민 주도의 숙의 과정보다는 관 주도의 속도전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TK통합 특별법 민주당 안을 발의한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임미애(비례) 의원은 “통합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작 단계인 만큼, 필요한 보완은 시행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해 나가면 된다”며 “지금은 지역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23

[경북산불 1년] 누구를 위한 ‘재건’인가

지난해 봄철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휩쓴 초대형 산불 지원을 위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올해 1월 29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기존 재난지원법의 한계를 넘는 포괄적 지원과 지역 재건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68개 조항의 법문을 정밀 분석한 결과, 피해 주민을 위한 실질적 지원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반면 피해 지역 산림을 활용한 민간 투자 특례는 파격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구제라는 선의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입법의 비정한 민낯을 해부한다. ◇ 주민 지원은 ‘심의’ 첩첩산중⋯‘보상 갈라치기’에 멍든 민심 특별법 제5조에 따르면, 피해 주민 지원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 소속의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시행령 발효 이후 이달 12일까지 3300여 건의 추가 지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지원 여부와 규모는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줄곧 요구해 온 ‘구체화된 보상 기준’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원의 원칙(제9조)을 천명하면서도 정작 ‘얼마를, 어떻게’ 줄 것인지는 위원회의 재량 뒤로 숨겨버렸다. 법의 사각지대는 평온하던 마을 공동체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 제2조(정의)에서 피해자를 거주자, 사업자, 소유자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복구비 배분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의성군 단촌면에서 만난 김모 씨(70)는 “10년 동안 주소를 두고 터전을 일군 세입자 가족은 소외되고 실거주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보상이 돌아갔다”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린피스 등 3개 단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52%가 산불 이후 보상 기준의 불공정함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재난의 고통은 세입자가 겪고 국가의 시혜는 자산가가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법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별법이 표방한 ‘공동체 회복(제34조)’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 업자 인허가는 ‘완료 간주’⋯45일이면 환경평가 통과 주민 지원 조항들이 위원회의 심의와 조사라는 절차적 문턱을 둔 것과 달리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조항들은 유례없는 행정 편의를 보장하고 있다. 제5장 ‘산림투자선도지구’ 관련 조항들이 그 결정판이다. 제60조(환경영향평가법 특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요청받은 행정기관이 45일 이내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협의가 완료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산림 회복에 최소 30년이 걸리는 생태적 특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 대신 행정 절차를 ‘하이패스’로 통과시키는 간주 조항이다. 또 제55조는 사업시행자가 산림투자선도사업의 실시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익사업법’ 제3조에 따른 토지·물건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제55조 제2항에 따라 실시계획의 승인·고시가 있는 때에는 이를 ‘사업인정 및 그 고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민간 시행자가 산불 피해지를 개발할 때 필요에 따라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6개월치 생계비(제31조)를 지원하며 기다리라던 국가가 업자에게는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한 강력한 권한인 ‘칼자루’를 쥐여준 셈이다. ◇ 산림청 권한 지자체 위임⋯‘개발 프로젝트’의 현실화 법은 환경 보호를 위한 중앙정부의 규제 빗장까지 풀었다. 제32조와 제59조에 따라 산림청장의 고유 권한인 ‘보전산지의 변경·해제’와 ‘산지전용허가’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대폭 위임됐다. 지자체장이 직접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해 자연휴양림, 산림욕장, 치유의 숲, 산림레포츠시설(제56조) 용지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법이 공포된 직후 경북도는 청송·영덕 지역에 리조트 유치를 포함한 ‘산불극복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산불 발생 직후 “산은 돈이 안 된다”, “산을 깎아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특별법은 기후 위기 시대의 산불을 예방과 회복의 관점이 아닌 ‘단기적인 개발 사업의 기회’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사람’이 빠진 재건은 누구를 위한 풍요인가 산불특별법 제1조가 명시한 목적은 피해구제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낙후된 산간 지역에 민간 자원을 유치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개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딛고 지역 경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구축도 분명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후(先後)’에 있다. 68개 조항 속에 박힌 파격적인 투자 특례들이 정작 피해 주민의 일상 회복을 위한 구체적 보상안보다 앞서 나가는 현실은 본말전도(本末顚倒)에 가깝다. 잿더미 위에 시설물을 올리는 토목의 속도보다 묘목 한 그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의 시계(時計)를 먼저 읽어야 한다. 재난을 단순히 복구 사업의 기회로만 접근하는 단기 경제 논리는 자칫 재난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진정한 지역의 재건은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라 피해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되돌려 놓는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산불의 비극을 딛고 선 이 법이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재민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3

“현장을 이해하는 힘으로··· 최고의 품질 만들 것”

제품 품질의 핵심 ‘열간압연’ 업무 16년째 고온의 두꺼운 철 얇게 펴 강판으로 완성 설비 점검·기계운전 중심 공정 균형 책임 티타늄까지 압연, 섬세한 제어 기술 갖춰 - 자기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설명해달라. 포항제철소 열연부 1열연공장 압연반에서 16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두리 주임이다. 2011년 입사 이후 ‘열간압연’ 한 분야를 꾸준히 맡아왔다. 열간압연은 고온으로 가열한 철을 원하는 두께로 펼쳐 강판으로 만드는 공정으로, 제품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단계다. 현재 근무 중인 1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에서 유일하게 티타늄 압연을 수행하는 곳이다. 두꺼운 슬라브를 가열한 뒤 조압연과 마무리 압연을 거쳐 균일한 강판으로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은 마치 찰흙을 빚어 도자기를 빚어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공정의 핵심은 온도와 압력, 속도 이 세 가지다. 이 세개의 변수 가운데 1%의 작은 오차만 발생해도 품질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항상 섬세한 제어가 필요하다. 나는 현장에서 동료들과 같은 호흡을 맞추며 설비 점검과 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장에 있는 기계를 다루는 일상적인 업무라는 것에서 벗어나 언제나 공정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 유지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설비 하나하나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최상의 제품 품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포스코에 입사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어릴 때부터 봐왔던 포항제철소의 모습은 내게 언제나 지역에 있는 하나의 철강 공장이라는 것보다는 그 위용에 감탄하며 늘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2011년 2월, 합격 통보를 받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침 그날은 여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는데,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께서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때 지으셨던 부모님의 표정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자랑스럽다, 정말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며 건네신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임과 동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날의 벅찼던 감정과 가족들의 미소는 지난 16년 동안 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 동료들과 함께하는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 압연반은 5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최근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우리 반에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소통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서로 믿고 맡기는 신뢰와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어 무척이나 든든하다. 나 또한 주임으로서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개개인의 역량이 충분하게 잘 발휘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소통과 유연한 조직 문화를 이룰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팀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압연 공정 생산량 최고 기록’을 달성했을 때다. 최고의 숫자를 달성했다는 그 성과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루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강판 소재의 특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관점에서 도출되는 의견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끊임없이 토론하며 공정의 효율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갔던 그 치열했던 순간, 순간의 과정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함께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실현할 수 있었던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이 닥쳐 주임으로서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 질 때면, 늘 그때의 모두가 함께 하며 나눴던 순간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다시 중심을 잡고 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나를 다시금 현장의 중심에 서게 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최고의 자산이 아닐까 싶다. - 입사 후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은? ‘QSS(Quick Smart Solution, 현장의 낭비를 줄이고 즉시 개선하는 활동) 개선 리더’로서 과제를 수행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설비 구동부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장치였다. 쉽게 말하자면, 요리할 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하는 팬의 표면에 재료가 눌어붙지 않게 하려면 적절한 양의 기름이 필요한데, 기존 설비는 이와 같은 기름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쉼 없이 윤활유가 공급되고 있어 자원 낭비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열로에서부터 최종 제품을 만드는 권취 공정구역까지 현장 구석구석의 전 과정을 직접 점검하고 살폈다. 당시 각 공정을 맡아 책임지고 있는 선배들을 일일이 찾아가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각 설비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했다. 그 끝에 찾아낸 해답이 ‘제어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설비가 멈추는 시간에는 마치 가스레인지의 불을 잠시 끄듯, 펌프 전원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제어 방식을 적용해 불필요한 윤활유 소비를 원천 차단했고 이로 인한 설비 운영 효율도 함께 개선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기존의 고장난 설비를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정 전체를 꿰뚫어 보고 전체를 염두에 두면서 현장 동료들의 전문적인 의견을 듣고 조율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값을 매길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소통’의 가치는 지금도 내가 동료들과 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 주임으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특별히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모든 성과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의 1년의 절반 이상은 선후배들과 함께 보낸다. 오랜 시간을 함께 부대끼며 일하는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주임인 내게 가장 중요하다. 내 역할은 관리자의 방향성을 현장에 전달하고, 반대로 현장의 고충이나 의견을 정리해 조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각자의 역량을 현장 상황에 맞게 녹여내 각자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내가 맡고 있는 반, 1열연공장 전체가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배들이 내 조언을 통해 현장을 더 넓게 이해하고, 업무에 자신감을 얻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동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람, 함께 일하기 든든한 선배로 기억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성취고 목표다. 앞으로도 1열연공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실무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싶다. ‘한팀 5명’구성 ··· 수평적 자율 소통 문화 윤활유 낭비 개선·제어시스템 도입 활동 압연 공정 생산량 최고 기록 달성 등 성과 작은 개선부터 시작, ‘포스코 명장’되고파 -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나? 노하우가 있다면?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압연기능장’을 취득한 것 또한 그 과정 중 하나였다. 철강 공정의 이론적 체계를 다시 정립하고, 현장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자격증 하나를 취득한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실무와의 연결’이다. 자격증 공부로 익힌 이론에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현장 노하우를 더해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고, 습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현장 언어로 쉽게 전달하며 기술을 공유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인 공부보다는 동료들과 설비를 두고 토론하는 시간이다. ‘한 명의 재능보다 협력과 화합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비를 운영하며 발생하는 과제를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이 우리 팀, 우리 제철소, 나아가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기술적 역량을 키우는 자기계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소통과 협업을 통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팀의 성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내가 현장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매일 하는 일들이다. - 앞으로의 목표와 그 목표를 향한 포부가 있다면? 내 목표는 분명하다. 내가 몸담은 열연공장에서 누구보다도 깊이 있는 기술을 쌓아, 언젠가 ‘포스코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배운 게 하나 있다. 화려한 이론보다 중요한 건 결국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결코 혼자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곁에서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현장이 돌아가는 본질을 하나하나 이론과 실무를 통합해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거창한 혁신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내 손을 거치고 있는 이 작업 과정의 작은 개선부터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미미하고 사소한 변화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하나씩 모이고 모인다면 결국 더 큰 혁신과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단단하게 현장을 지키며 실력을 쌓아가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3-22

[경북산불 1년] 잿더미 위 청심환 한 갑⋯23㎡ 컨테이너에 갇힌 봄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은 한반도 관측 사상 전례 없는 상흔을 남겼다. 축구장 수만 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수십 년간 일궈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단 며칠 만에 형체를 잃었다. 화마(火魔)가 떠난 지 1년, 정부는 피해 구제와 지역 재건을 내걸고 ‘산불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현장의 현실은 참담했다. 주민 10명 중 6명은 여전히 23㎡(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기약 없는 ‘시한부 일상’을 견디고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이는 90%에 육박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특별법의 이면이다. 정작 피해 이재민을 위한 실질적 생계 보상은 외면한 채 산림 규제를 완화해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는 ‘개발 특혜’ 조항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본지는 잿더미 위에 멈춰 선 주민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개발 논리에 매몰된 특별법의 실체를 파헤친다. 나아가 진화 중심의 사후 처리를 넘어 ‘예방’과 ‘존엄한 회복’을 위한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됩디다” 2. 재난 복구인가 개발 특례인가, 선(善)의 가면 3. 기후 괴물 앞에 처참히 무너진 ‘K-방재’ 4. 사라진 ‘송이’와 뺏겨버린 ‘안전’ 5. “개발에 매몰된 입법, 재난 대응의 본령은 없었다” ◇ 청심환으로 견디는 ‘23㎡의 삶’⋯2년 뒤엔 이마저 비워줘야 지난 16일 찾아간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 75세 김외선 씨의 하루는 낡은 청심환 갑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 전 산불로 가게와 살림집을 모두 잃은 그는 현재 마을회관 앞 공터, 24㎡(약 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55년 세월을 일궈온 터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남은 것은 시한부 일상의 고단함뿐이다.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지만, 2년 뒤면 이마저도 비워줘야 해” 김 씨가 힘없이 내뱉은 말엔 막막함이 배어 있었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었다지만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은 아파트 하나 겨우 얻을 지원금으로는 내 추억이 깃든 이 땅에 다시 집을 짓기엔 턱없이 역부족이야” 15년 넘게 부녀회장을 맡으며 마을을 누비던 여장부였던 그는 이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아침 산책이 일과의 전부다.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약에 의존한다는 그는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3300㎡ 탔는데 보상은 4000만 원뿐”⋯멈춰버린 산업 현장 18일 방문한 안동 남후농공단지의 재건 시계도 멈춰 있었다. 전소된 12개 공장 중 현재 가동 중인 곳은 5곳뿐이다. 김치공장주 김영일 씨(68)는 정부의 기계적인 보상 체계를 보며 가슴을 쳤다. “3300㎡(1000평)이 타도 최대 지원금은 4000여만 원이 끝입니다. 지금 미친 듯이 오른 건축비에 기곗값, 자재비를 이 돈으로 어떻게 감당합니까?” 금융 지원 역시 생색내기에 그쳤다. 1년 무이자 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이가 끊긴 기업들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김 씨는 “당장 소득이 없는데 1년 지원으로 그 큰돈을 어떻게 갚으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10년 정도 길게 보고 분할 상환할 수 있는 장기 대책이 절실하다”고 일갈했다. ◇ 5년 소득 공백인데 보상금은 ‘나무 1주당 10만 원’ 20일 마주한 영덕군 9900㎡(3000평) 사과 농장의 박현식 씨(71)는 불에 탄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텅 빈 과수원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나무 1주당 1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묘목을 다시 심고 수확하기까지 걸릴 5년 이상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엔 턱도 없다. 수입이 끊겨 생계가 막막한 그에게 특별법은 아무런 희소식이 되지 못했다. 천년고찰 고운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종무실장(53)은 “스님들 생활 공간조차 없다. 1차 복구 시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며 “문화재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도,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도 특별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덤덤히 전했다. ◇ 최저시급 산불 감시원의 한숨⋯주민 87% PTSD 의심 사투의 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헌신도 인색한 처우로 돌아왔다. 영양군 산불 감시원 김기현 씨(65)는 1년 전 그날 산에서 솟구치는 불덩이를 보고 주민 대피부터 시켰던 아찔한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단속과 초동 진화를 수행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최저시급 받고 여기저기 다니면 기름값도 안 나와요. 특별법에 현장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논의가 빠진 게 가장 아쉽습니다” 최근 발표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불 피해 주민의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을 보이고 있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컨테이너를 전전하며 주택 전소 피해자의 42.1%는 재건축을 포기했다. 마을 뒤편 산등성이는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다. 봄바람은 다시 불어오지만, 잿더미 위 주민들에게 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2

열여덟, 세상에 홀로 선 그들⋯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내일’을 짓고 ‘하늘’을 연다

매년 약 1700명의 보호 대상 아동이 만 18세가 되면 정든 시설을 떠나 사회라는 거친 벌판으로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독립’이 이들에게는 생존을 건 ‘자립’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이들은 초기 자립 과정에서 주거 및 생계 불안, 사회적 고립 등 다중 위기에 직면한다. 특히 비수도권 청년들은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지역 간 지원 격차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주)과 초록우산 경북지역본부는 ‘열여덟 혼자서기’ 지원사업을 통해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다. 총 5억 원의 예산을 투입, 경주·고리·새울·한빛 등 사업소 인근 청년 500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취업-안착’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사업은 단계별로 치밀하다. 1단계 ‘기초 다지기’는 자립 수당(월 30만 원)과 경제교육으로 안전망을 구축하고 스스로 자산을 관리하는 법을 익히게 한다. 2단계 ‘역량 키우기’는 대인관계 향상을 위한 사회 기술훈련(SST)과 맞춤형 기초학습비 지원이 핵심이다. 3단계 ‘혼자서기’는 취업역량 강화비(1인 최대 100만 원)와 방학 중 직장 체험(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실질적인 자생력을 높인다. 취업 후에도 사후 관리는 이어진다. 1개월 및 6개월 근속 시 각각 수당을 지급하고 직무 성장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하며 고용 유지를 돕는다. 촘촘한 ‘기회의 사다리’를 타고 당당히 사회의 주역으로 거듭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 “홍콩의 하늘길을 여는 당당한 발걸음”⋯공항 서비스 전문가 이세인 사원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인 홍콩 국제공항. 타이완 국적 대형 항공사의 유니폼을 입고 유창한 외국어로 승객을 맞이하는 이세인 씨(23)는 자립 2년 차의 당찬 청년이다. 발전설비 전공자였던 그가 전공과는 전혀 다른 항공업이라는 분야에서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수원의 ‘취업역량 강화’ 지원이 있었다. 이세인 씨는 항공기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연하게 공항 지상직의 꿈을 꿨다. 하지만 해외 취업을 위해 필요한 어학 수강료와 전문 자격증 실무 비용은 시설에서 갓 나온 청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벽이었다. 이 씨는 “대학생 시절 관련 자격증을 따려면 수백만 원의 비용이 필요했지만, 재단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비와 실습비를 전액 지원받았다”며 “덕분에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에 매몰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며 스펙을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홍콩에서의 첫 자립은 녹록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 중 하나인 홍콩에서 높은 월세 부담과 싸워야 했고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홀로 들어올 때의 외로움은 그를 흔들었다. 이 씨는 “회사 동료들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시설 선생님의 격려와 현지 동료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오전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와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외국어 인터넷 강의와 씨름하던 강행군을 견뎌낸 끝에 그는 결국 해외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처럼 자신을 지켜준 시설의 선생님이었다. 이 씨는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던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타지 홍콩에서 외로움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가족들을 홍콩으로 초대해 직접 번 돈으로 여행시켜준 경험을 꼽았다. 이세인 씨는 “이전에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세금을 내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뿌듯하다”며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여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제 지상직을 넘어 객실 승무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전문 교육을 수강하고 언어 능력을 보완하는 등 쉼 없이 스스로를 단련 중인 이 씨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비를 견디면 자립은 비로소 완성된다”며 “나 또한 내가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 “집을 짓듯 내 삶을 다시 설계하다”⋯인테리어 현장의 엔진 김영우 실장 울산의 인테리어 업체 ‘집 짓는 남자’에서 현장 관리를 총괄하는 김영우 씨(26)는 오늘도 도면을 손에 쥐고 분주하게 현장을 누빈다. 공사 현장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도면 위의 수치만큼이나 날카롭다. 자재 수급부터 시공팀 조율, 공정 관리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베테랑의 기운이 물씬 풍기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디서 살아야 할지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몰라 밤잠을 설치던 평범한 자립 준비 청년이었다. 김영우 씨는 고등학교 때 건축을 전공했지만, 졸업 직후 곧바로 전공을 살릴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자립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했고 당장의 월세와 식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 끝에 돌아온 단칸방에서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 막막함을 먼저 배웠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바로 한수원의 지원사업이었다. 김 씨는 “매월 지급된 자립 수당은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이고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의 자유’를 선물했다”며 “단순히 돈을 받는 것보다 그 돈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배운 과정이 큰 안정감을 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전공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전기산업기사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고 현장 일을 버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특히 재단에서 제공한 경제교육은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법, 금융 사기 예방 노하우 등을 배우며 자립 이후 마주할 경제적 위험에 대응할 실질적인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취업 후 처음 현장에 나갔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 씨는 “대표님과 작업자분들이 현장 도면을 두고 치열하게 대화하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장면을 보며 비로소 내가 소속감을 가진 ‘일하러 온 사회인’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출근 이튿날 코로나19에 확진돼 잠시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금세 현장의 신뢰를 얻었다. 월급 명세서에서 4대 보험료가 공제된 내역을 보며 당당한 세금 납부자이자 사회의 일원임을 느꼈다는 김 씨. 그는 이제 5년 내 1억 원을 모으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우고 매달 적금액을 늘려가는 재미에 빠져 있다. 김 씨는 자립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자립은 단순히 시설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내며 어른이 되는 ‘성장’의 과정”이라며 “혼자 고민하며 고립되지 말고 사회가 내민 울타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15

가득한 봄의 향기, 당신도 떠나라

봄의 기운이 사방에 가득하다.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사뿐한 발길로 봄의 향기를 맡으러 여행을 떠나보자. 옛 마을의 정취가 가득한 예끼마을과 바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해운대블루라인 파크는 가족여행지로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호수를 품은 예술마을, 안동 예끼마을 경북 안동의 북쪽, 잔잔한 안동호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는 조금 특별한 마을이 있다. 이름부터 정겹다.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은 예끼마을이다. 지금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예술마을이지만, 이곳의 시작은 다소 애잔하다. 1970년대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물에 잠긴 옛 예안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와 만든 이주 마을이기 때문이다. 물에 잠긴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새로운 터를 일군 곳, 그곳에 지금 약 18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세월은 상처를 조금씩 풍경으로 바꿔 놓았다. 빈집은 갤러리가 되었고, 담벼락은 화가들의 캔버스가 되었다. 마을 골목마다 벽화와 조형물이 놓이며 예끼마을은 어느새 ‘예술이 사는 농촌’이라는 독특한 얼굴을 갖게 됐다. 예끼마을이 자리한 곳은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다. 원래 이곳은 예안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예안현, 1895년 이후에는 예안군 관할이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안면이 됐다. 그러나 1970년대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수몰 지역 주민 약 400가구가 이 일대에 새 터전을 조성해 이주했고, 행정구역도 도산면으로 편입됐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옛 지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안향교, 예안교회, 예안이발관, 선성공원 같은 이름들이다. ‘선성’은 예안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한때 번성했던 서부리 역시 다른 농촌처럼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활기를 잃어갔다. 그러다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사업’과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 사업’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낡은 담벼락에 벽화가 그려지고, 관공서 건물과 빈집은 갤러리로 바뀌었다.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면서 여행자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바로 ‘예끼마을’이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다. 천천히 걸어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마을 입구의 조형물을 지나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집과 골목이 이어지고, 그 끝에 안동호의 푸른 수면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선비촌 한식당 2층 전망대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마을과 호수를 함께 바라보는 풍경이 평온하다. 전망대에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소녀상이 서 있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또 하나의 중심 공간은 ‘선성현아문’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 안이다. 이곳에는 갤러리 근민당과 카페 장부당이 자리한다. 원래 이 건물은 수몰 이전 예안면 서부리 출장소로 쓰이던 한옥이었다. 옮겨와 개조한 지금도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살아 있다. 카페에서는 맷돌로 갈아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오래된 목재 향과 커피 향이 어우러진 공간은 한옥 특유의 따뜻함을 전한다. 마을에는 이 외에도 갤러리 예, 갤러리 끼, 레지던시 갤러리 등 작은 전시 공간들이 흩어져 있다. 우체국을 개조한 갤러리도 있다. 특히 ‘예끼마을 전국 물빛사랑 미술대회’ 수상작을 타일처럼 외벽에 장식한 갤러리 예는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예끼마을의 또 다른 재미는 골목을 누비며 발견하는 작은 공간들이다. 예안이발관, 서부제분소, 안도제유소 같은 간판들이 옛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주에 관심 있다면 ‘맹개술도가’도 들러볼 만하다. 이곳에서는 직접 재배한 밀로 소주를 빚는다. 2019년 출시한 ‘안동진맥소주’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밀 소주로 22도, 40도, 53도 제품을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포토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과 바닥을 활용해 산과 냇물, 나무 풍경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트릭아트가 곳곳에 있다. 특히 외나무다리와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그린 벽화는 여행자들이 꼭 사진을 남기는 장소다. 예끼마을 바로 옆에는 선성현문화단지가 있다. 조선시대 선성현 관아를 복원한 공간으로 아문, 동헌, 내아, 객사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언덕 위에 자리해 안동호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선성산성공원이 나온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산성은 7세기 통일신라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걷기 좋은 길이다. 문화단지 입구에서 호수 쪽으로 내려가면 특별한 산책길이 시작된다. ‘선성수상길’이다. 수위에 따라 오르내리는 부교가 약 1km 이어지는 길로, 왕복 약 40분이 걸린다. 물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여행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코스다. 이 길은 안동 선비순례길 9개 코스 중 하나인 ‘선성현길’에 속한다. 부교 중간에는 풍금과 교실 책걸상이 놓여 있다. 이곳은 한때 예안국민학교가 있던 자리다. 1909년 사립학교로 시작해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의 웃음이 이어졌지만, 안동댐 건설로 마을과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 눈부신 바다와 함께 봄기운 가득 해운대블루라인 파크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을 뜻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봄이 일찍 오는 따뜻한 남쪽 나라, 부산을 찾았다. 봄기운 완연한 부산의 바다와 공원에서 봄날의 생동하는 에너지를 만끽한다. 해운대블루라인파크는 옛 동해남부선 철도를 활용한 관광 시설로, 풍광이 아름다운 철길로 유명하던 미포-송정 구간에 들어섰다.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로 2013년 종전 철로를 폐쇄했고, 2020년 10월 해운대블루라인파크가 문을 열었다. 해운대블루라인파크는 해안선을 따라 달리며 바다를 조망하는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을 운영한다. 이색적인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데 해변열차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스카이캡슐은 빨강·파랑·노랑·초록 알록달록한 색감이 특징이다.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이 운행하면서 이 구간 해안 풍경마저 화사해졌다. 밖에서 보는 외관만큼 안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매력적이다. 해변열차는 전 좌석을 바다와 마주하도록 배열하고 통유리창을 설치했다. 스카이캡슐은 사방에 큰 창이 있다. 무엇을 타든 시원한 바다 전망이 보장된다. 언제 이용해도 만족스러운 전망이 펼쳐지는데, 특히 일몰 시간대가 아름답다. 스카이캡슐은 해변열차가 오가는 종전 철로보다 높이 조성한 공중 레일로 운행하기 때문에 시야가 탁 트인다. 이색적인 스카이캡슐 분위기와 환상적인 바다 풍경이 만나 인생 사진 명소로 인기몰이 중이다. 독립된 공간으로 제작됐으며 4인까지 탑승할 수 있다. 해운대블루라인파크는 미포정거장, 청사포정거장, 송정정거장을 운영한다. 미포와 청사포정거장은 신설했고, 송정정거장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송정역(국가등록문화재)을 활용한다. 해변열차는 미포-송정 전 구간(4.8km)을, 스카이캡슐은 미포-청사포 구간(2km)을 오간다. 스카이캡슐은 미포정거장 출발 노선과 해가 질 무렵에 사람들이 몰린다. 해변열차는 세 정거장 외에 달맞이터널, 다릿돌전망대, 구덕포에도 선다. 돌아보고 싶은 곳에서 내려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해변열차가 지나는 전 구간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므로 원하는 구간은 걸어도 좋다. 대연수목전시원은 가볍게 걷기 좋은 공간이다. 침엽수원, 유실수원, 무궁화원, 열대식물원, 죽림원, 허브동산, 장미원 등에 다채로운 수목을 전시해 구간별로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다. 매실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 등이 가득한 유실수원은 봄날 꽃 구경하기에 제격이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6-03-09

“辛抱해라”··· 아버지의 한마디로 함께해 온 제철 현장

포스코 제철소의 현장은 수많은 기술인의 땀과 경험 위에서 돌아간다. 고장이 나면 고치는 일을 넘어, 설비의 구조 자체를 바꾸며 현장을 개선해 온 기술자들이 있다. 포스코 명장으로 선정된 김차진 씨 역시 그런 현장 기술인 중 한 사람이다. 농촌에서 자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그는 제철소에 입사한 이후 줄곧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辛抱해라.” 입사하던 날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는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좌우명이 됐다. 고장 난 설비를 고치는 기술자에서 설비의 구조를 바꾸는 기술자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현장의 시간을 들어봤다. - 포스코 명장에 이르기까지의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어린 시절은 짧았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농번기에는 부모님을 도와 논밭에서 일했고, 농한기에는 산에 올라 땔감을 해다 나르며 생활했다. 그 시절의 경험은 포스코에 입사한 이후에도 현장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밑바탕이 됐다. 현장 업무는 늘 기본에 충실하려 했다. 그 위에 설비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면 노력한 만큼 성과가 눈에 보였고 그 효과가 수치와 결과로 검증됐다. 그 과정이 늘 설레고 긴장됐으며,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그게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입사를 위해 집을 나설 때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 해방 직전까지 일본에서 17년 동안 도금기술자로 일하셨다. 근대식 제철소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제게 남긴 말씀은 단 하나였다. “辛抱(신보)해라.”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막상 입사하고 동촌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꿈이 아닌가 싶었다. 흰 쌀밥에 고기국이 나오고, 하얀 매트리스 커버가 덮인 독신료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여기서 뼈를 묻겠다.’ 그 각오로 지금까지 현장을 지켜왔고, 그 시간이 쌓여 오늘의 포스코 명장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자주변형돼 반복 교체해야 하는 주선기 단순 복구 넘어 구조의 개선으로 효율화 우수제안 채택··· 도전 정신 갖는 계기로 설비 개선 기본은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 완벽한 도면 이해 위해 색칠해 가며 외워 ‘스페인 구상’은 노력 결실 맺은 아이디어 3고로 보조냉각반 설치 실패 아찔했지만 시련은 오히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발로 뛴 결과 4고로서는 결국 해법 찾아 포스코의 큰 힘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후배들 조급함보다 과정에 충실한다면 수소환원제철도 반드시 결실 돌아올 것 - 회사 생활 중 ‘이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어떤 때였는지? 정비 업무를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고장이 나면 고치고, 다시 고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일도 사람도 모두 버겁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설비가 주선기였다. 주선기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일정한 형태로 굳히는 부대설비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쇳덩이가 작업 중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안전격자가 늘 문제였다. 뜨거운 열과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주 변형됐고, 그때마다 교체 작업이 반복됐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이렇게 자주 고쳐야만 할까?’ 단순히 고장을 복구하는 대신 구조 자체를 바꿔보자는 발상이었다. 부품 형태와 교체 방식을 개선해 반복 작업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직접 시험했고, 석 달간 효과를 검증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 개선안이 처음으로 우수제안에 채택됐고, 그게 내 회사 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전까지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로 현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는 공간이 됐다. - 현장에서 설비 개선이나 문제 해결을 할 때, 자신만의 노하우나 접근 방식이 있다면? 설비 개선의 기본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비를 겉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도면과 현물을 함께 놓고 머릿속에서 구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본다. 나는 항상 설비를 3D 그림처럼 이해하려고 했다. 요즘처럼 좋은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에는 도면을 직접 옮겨 색칠하면서 하나하나 구조를 익혔다. 마침 새로운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그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업무가 끝난 뒤나 휴무일에도 혼자 남아 자료를 정리했고, 그때 쌓은 기록들은 지금도 내 보물이다. ‘스페인 구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결과다. 과거 박태준 회장님이 과감하게 ‘하와이 구상’으로 제철소 건설을 이끄셨던 것처럼, 고로의 핵심 냉각설비인 스테이브 쿨러(Stave Cooler) 교체를 위해 스페인 아르셀로미탈 제철소를 벤치마킹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우리 현장 여건에 맞게 구체화했다. 아이디어는 크기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작은 생각이라도 떠오르면 미루지 않는다. 밤을 새워서라도 바로 정리하고 글과 그림으로 구체화한다. 설비는 기다려주지 않고, 개선의 타이밍도 그렇기 때문이다. - 수많은 도전과 시련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실패의 아픔이 오히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됐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3고로 보조냉각반 설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다. 그때는 경험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고로를 너무 얕잡아봤다. 조업 성적은 좋았지만, 고로 본체 냉각설비인 스테이브 쿨러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마모되면서 냉각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철피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상황이었고,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보조냉각반을 설치하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고로를 잠시 멈추고 철피에 구멍 뚫어 설치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철피를 뚫고 들어간 드릴이 안쪽까지는 도저히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철피에 물을 뿌리며 조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 울음을 삼켰다. 중도에 포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로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자만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하지만 그 실패를 그냥 아픔으로만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도전할 때는 달라져야 했다. 가용 인력을 총동원하는 한편, 작업 전 훈련과 시뮬레이션도 철저히 실시했다. ‘두 번의 실패는 안 된다’는 각오였다. 그 경험은 이후 4고로에서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외 사례까지 직접 찾아 나섰고, 결국 외부에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내부에서 해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시련은 끝이 아니라 다음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이 됐다. 돌아보면 나를 성장시킨 것은 성공보다 실패였다. 실패를 통해 겸손해졌고 더 깊이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그게 내가 다시 현장에 설 수 있었던 이유다. -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와 그것이 현장에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자격증은 많이 따는 것보다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느낀 자격증만 선별적으로 취득해 왔다. 산업안전기사는 작업의 기본이 되는 안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계정비산업기사는 설비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취득했다. 용접기능장은 결국 현장에서 손으로 책임져야 하는 순간을 대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자격증은 기술인의 출발선이지, 목표는 아니라고 본다. 현장에서는 이미 그 다음 단계의 문제들을 다뤄야 했고, 그 과정은 개선 성과와 적용 결과로 검증돼 왔다. 여러 차례의 표창 역시 그런 현장 중심의 선택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방법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지? 후배들을 대할 때는 항상 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의 후배들과 같은 연령대였을 때 내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무엇이 가장 막막했는지를 기준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때의 어려움을 반면교사 삼아, 후배들이 같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겪도록 돕는 게 선배의 역할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포스코의 큰 힘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에 있다. 현장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다루는 곳이고 도전에는 반드시 실패가 따른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실패를 숨기지 말라고 한다. 대신 왜 실패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자고 이야기한다. 특별한 교육 방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후배들에게 무엇을 강요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먼저 고민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태도는 결국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에서 묵묵히 일하는 선배로 남아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후배들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좌우명인 ‘하심’과 ‘겸손’은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내가 말하는 하심(下心)은 나 자신을 일부러 낮추는 태도다. 직급이나 경력, 명장이라는 호칭을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면 상대도 마음의 벽을 낮춘다. 그렇게 되면 후배들은 훨씬 편하게 질문하고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가까워진 후배들로부터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점이다. 현장은 늘 변하고 젊은 후배들은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질문 하나, 관찰 하나가 나에게는 또 다른 배움이 된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심이 곧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겸손은 단순히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배우는 사람이라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나보다 먼저 설비를 만지는 후배도 있고 나보다 더 빠르게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실천하려는 하심과 겸손이다. - 마지막으로, 명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와 다짐, 그리고 앞으로 50년을 이끌어갈 포스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포스코의 지난 50년이 축적과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또 다른 도전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한 지역, 한 회사에서 긴 시간을 함께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술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했으며, 회사를 믿고 함께 버텨온 동료들, 그리고 제철소와 삶을 함께해 온 지역 사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축적된 경험과 협업의 힘은 새로운 산업 환경을 마주한 지금 더욱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특히 수소환원제철로 대표되는 새로운 제철 패러다임은 현장 기술인들에게도 전혀 다른 시각과 준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바라보며 명장으로서의 역할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목표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도 현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본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설비와 공정은 바뀌어도 안전과 품질을 대하는 자세,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새로운 기술과 연결해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처럼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일수록 차근차근 이해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의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그 노력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쌓인 개인의 성장이 다시 현장을 단단하게 만들고, 조직 전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포스코의 다음 시대 역시 이런 현장 기술인들의 꾸준한 도전 위에서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 김차진 명장은···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고로정비섹션 (포스코 명장) △1958년 3월 17일생 △ 경주공업고등학교 졸업 △ 50년 근속 (1976년 3월 5일 입사) △ 2010년 올해의 용선인 △ 2011년 포스코패밀리대상 △ 2014년 정비명인 △ 2015년 철강기능상 △ 2016년 포스코기술대상 △ 2016년 포스코명장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3-08

[최병일의 일본 여행] 금빛과 침묵 사이에서 만난 천년 전 교토

교토는 으레 일본 정신사의 ‘심장’으로 호명된다. 한때 수도였다는 역사적 위상 때문만은 아니다. 천년 세월을 견딘 절과 신사, 인간의 욕망과 금욕이 교차하는 정원, 그리고 게이샤와 가부키 같은 문화 콘텐츠까지 겹겹이 쌓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1600여 개의 사찰과 400여 개의 신사, 그리고 17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자리한다. 서구 여행자들이 이 도시를 두고 ‘21세기에도 살아 있는 전통의 박물관’이라 말하는 이유다 △교토의 상징 금박으로 빛나는 킨카쿠지 교토의 상징을 꼽으라면 단연 킨카쿠지다. 흔히 금각사(金閣寺)로 불리는 이 사찰은 교토의 이미지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경호지라 불리는 연못이 시야를 연다. 그리고 그 수면 위에 금빛 누각이 떠오른다. 3층 구조의 건물은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다르다. 1층은 귀족 주택풍, 2층은 무사풍, 3층은 선종 불전 양식이다. 권력과 종교, 귀족과 무사가 한 몸처럼 얽혀 있던 무로마치 시대의 질서가 건축으로 형상화된 셈이다. 킨카쿠지는 금이나 화려한 것에 매료되는 중국인관광객은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킨카쿠지는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 홀로 빛을 내는 금각을 보는 순간 관광객의 입에서는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온다. 킨카쿠지 앞에 있는 호수는 경호지(鏡湖池)라고 한다. 거울 못이라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킨카쿠지 3층 누각 건물이 마치 호수에 빠진 것처럼 그림자가 되어 일렁거린다. 유홍준 교수는 킨카쿠지가 ‘시각적 관능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우아하고 날렵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모습을 보면 시각적 관능미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로쿠온지다.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조성한 별장 기타야마전이 그 기원이다. 그는 정치적 권위를 미적 권위로 치환하는 데 능했다. 천황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명나라 사신을 맞이한 장소가 바로 이 금각이었다. 외교의 무대이자 권력의 극장이었던 셈이다. 찬란한 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야망을 반사하는 표면이었다. 그러나 영원해 보이던 아름다움도 불길 앞에서는 무력했다. 1950년, 한 승려 지망생의 방화로 금각은 전소됐다. 21살의 학승이었던 범인은 미시마 유키오 소설처럼 금각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신분열 때문에 화재를 저질렀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겼고,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이를 모티프로 소설 ‘금각사’를 집필했다. 그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파괴 충동을 교차시키며, 미와 광기의 경계를 파고들었다. 현실의 화재는 복원을 통해 수습됐지만, 문학 속 금각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복원된 누각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눈부신 금박을 두르고 서 있다. 파괴를 통과한 미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견고해졌다 △독특한 정원의 절제된 모습 료안지 교토의 또 다른 얼굴은 절제다 사찰 순례지로 빼놓을 수 없는 료안지에 가면 절제의 의미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료안지는 절 자체보다 석정(石庭)이라 불리는 돌 정원이 명성을 떨친다. 1450년 건립한 선종사찰로 전라과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어 지금은 현관 겸 본당역할을 하는 방장과 일부건물만 남아 있다. 석정은 일종의 가레산스이 (枯山水)양식이다. 일종의 마른 정원이다. 나무도 꽃도 없다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양식인데 돌과 모래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이다. 중국의 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차경기법이라고도 한다. 료안의 석정은 하얀 모래(白砂)와 돌만으로 구성된 약 250㎡ 넓이인 작은 정원이다. 처음에는 돌과 모래만 남겨두고 정원이라고 하는 것이 의아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앉아 돌 정원을 바라보자니 화려한 정원보다 더 고졸한 맛이 풍겨왔다. 관광객들은 정원 바로 앞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정원을 바라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엄숙하게 돌을 바라보며 지긋이 눈을 맞춘다. 석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씩 무리지어 있는 합쳐서 15개의 크고 작은 돌이 배치되어 있다. 물을 상징하는 자갈이 전체 15개의 돌을 둘러싸고 있는데 돌이 놓은 위치 때문에 한눈에 돌은 14개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한 개는 깨달음을 얻어야 보인다고 하지만 이는 말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은 이야기 같다. 추상적이면서 해석이 어려운 석정이지만 긴장감이 없고 편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것은 석정을 둘러싸고 있는 흙담 때문이다. 낮고 갈색인 아부라도베이(油土塀)라고 불리는 이 흙담은 자체가 유명하다. 유채나 찹쌀을 씻고 생긴 물을 섞어 반죽한 흙으로 만든 이 흙담이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고하게 되고 방수성(防水性)도 높아진다고 한다. 멋지면서도 실용성이 있는 담장이다. 만약 담장이 높고 흰색이었다면 석정 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모른다. 료안지의 석정은 지금까지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15세기 유명화가였던 소아미라는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료안지 주지였던 선승 도쿠호 젠케쓰라는 이도 있다. 료안지는 어느 계절에 와도 색다른 맛을 풍기지만 벚나무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봄에 와야 제 맛을 느낀다고 한다. 료안지 석정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1975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해 크게 칭찬하면서 부터다. 호류지 북문으로 나가면 대숲이 나온다. 한 아름도 넘는 굵은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구쳐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탔고 이후 드라마와 CF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숲이다. 대략 450m 남짓한 길이 깔린 이 대나무 숲은 일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데이트를 하거나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연인과 함께 찾는다면 인연을 맺어준다는 노노미야 신사에 들러 소원을 빌면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 △ 수상가옥 후나야와 아마노 하시다테의 절경 교토의 북쪽 바다는 또 다른 풍경을 펼친다. 교토부 이네만에 자리한 이네는 ‘후나야’라 불리는 선박가옥으로 유명하다. 마치 홍콩의 란타우 섬에 있는 수상 가옥 마을인 타이 오(Tai-O)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다. 후나야라는 말이 ‘배의 집’을 말하는 것이니 선박가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층은 배를 대는 선착장, 2층은 생활공간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5킬로미터 해안선을 따라 200여 채가 줄지어 서 있다. 만조 때면 집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바다와 삶의 경계가 흐릿하다. 마을 중앙의 양조장 무카이주조는 붉은 빛의 사케 ‘이네만카이’로 이름을 알렸다. 흑미로 빚은 이 술은 달콤한 향과 산뜻한 산미를 동시에 지닌다. 작은 어촌의 양조장이 빚어내는 한 잔에는 바다의 기후와 마을의 시간이 스며 있다. 지역의 개성이 곧 브랜드가 되는 순간이다. 이네에서 바닷길을 따라 30분정도 가면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마노 하시다테가 나타난다. ‘하늘에 닿는 다리’라는 별명이 붙은 곳으로 길이 3600m 폭은 40~110m 의 바다 위 소나무 길을 볼 수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8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바다위에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소나무 가로수길 좌우로 바다가 보이는 백사청송의 길은 교토사람들의 자랑이다. 이곳에 가면 머리를 다리 사이로 숙이고 하시다테의 풍경을 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리 사이로 거꾸로 풍경을 보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거나 하늘에 닿는 다리로 보인다고 한다. 인근의 모토이세 고노 신사는 오랜 세월 지역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울창한 숲과 바다, 모래톱과 신사가 어우러진 장면은 교토가 결코 내륙의 고도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산과 바다, 화려함과 절제, 권력과 수행이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한다. 교토는 과거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현재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공간이다. 금빛 누각의 찬란함도, 돌과 모래의 침묵도, 대숲의 수직선도, 바다 위 가옥의 일상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시간은 어떻게 공간이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한 교토의 대답은 단순하다. 허물어지면 다시 세우고, 비워두되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 화려함은 절제와 균형을 이루고, 고요함은 내면의 울림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교토는 천년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도시다. 과거가 현재를 밀어내지 않고, 현재가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여행자는 비로소 시간을 걷는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6-03-02

문경 청대구곡 따라…'나를 닦는 여행' 떠나볼까?

여행을 더 멋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정해진 관광지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시간표에 맞춰 이동하는 여행 말고 말이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자연을 들여보내는 여행.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아직 닿지 못한 삶의 경지에 한 걸음 다가서는 여행. 그런 여행을 원한다면 ‘구곡(九曲)’ 여행을 권한다. 구곡은 단순한 계곡이나 명승지가 아니다. 물길을 따라 아홉 굽이를 정하고, 그곳마다 자연과 학문, 인생의 의미를 담아 이름 붙이고 시를 남긴 선비들의 정신적 지도다. 조선의 선비들은 산수를 유람하며 시를 짓고 마음을 닦았다. 자연을 보는 일이 곧 공부였고, 걷는 일이 곧 수양이었다. 문경에는 이런 구곡이 14개가 있다. 조선시대에 설정된 화지구곡, 선유구곡, 선유칠곡, 병천구곡, 석문구곡, 산양구곡, 청대구곡, 화장구곡, 무호구곡 등 9개가 있고, 근현대에 설정된 쌍용구곡, 관산구곡, 남강구곡, 영강구곡, 조령구곡 등 5개가 있다. 그 가운데 청대 권상일 선생이 설정한 청대구곡은 지금 우리가 다시 걸어볼 만한 특별한 길이다. 청대 권상일(權相一) 선생은 1679(숙종 5)에 태어나 1759(영조 35)에 별세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태중, 호는 청대. 아버지는 증이조판서 심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저작·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1727년(영조 3) 만경현령이 되고, 이듬해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31년 영암군수와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734년 민폐근절책과 관기숙정방안에 대하여 상소했고, 홍문관의 계청으로 경연에 참석했다. 같은 해 울산부사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고, 구강서원을 세웠다. 뒤에 대사간·홍문관부제학·지중추부사·대사헌 등을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황을 사숙하며 이황이 수정하기 전의 사칠설을 이어받아 이(理)와 기(氣)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性)이며 ‘기‘는 기질의 성(性)이라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청대집·청대일기·초학지남(初學指南)·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소대비고(昭代備考)·가범( 家範)·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 등이 있다. 죽림정사·근암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희정이다. ◇구곡 여행의 시작, 주자에서 문경으로 구곡의 전통은 남송의 대학자 주자(朱子)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 은거하며 아홉 굽이 계곡을 정하고 ‘무이구곡도가(武夷九曲櫂歌)’라는 시를 남겼다.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오르며 자연 속에서 도를 깨닫는 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주자는 18세에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보다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공자와 맹자의 도덕 중심 유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해 성리학을 완성했고, 그의 저술 ‘사서집주’는 조선 500년 과거시험의 기본 교재가 됐다. 조선의 선비들이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수많은 유학자들이 전국 명산대천에 자신만의 구곡을 설정했다. 자연 속에서 공부하고 자신을 닦는 길, 그것이 선비의 이상이었다. 문경의 유학자들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구곡을 설정했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물 흐름 따라 내려가는 파격 청대구곡(淸臺九曲)은 다른 구곡과 조금 다르다. 주자가 물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곡을 정했다면, 청대 권상일 선생은 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구곡을 설정했다. 흐름을 거슬러 오르지 않고 흐름을 따라 내려가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방향의 차이가 아니다. 사고의 전환이자 사유의 파격이다. 때로는 흐름을 거슬러야 하지만, 때로는 흐름을 따라가며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 청대구곡은 산북면 근암마을 우암에서 출발해 금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첫 굽이 우암(愚巖)에서는 바위가 물길을 감싸 안아 물이 돌아간다. 시인은 그 곁에서 아이와 함께 노닐며 오가는 한가로운 삶을 노래한다. 여행의 시작은 분주함이 아니라 여유다. 2곡 벽정(碧亭)에 이르면 높은 산과 푸른 물, 옛사람의 자취가 겹쳐진다. 선현의 초가가 층암에 기대어 있고, 작은 배가 물을 가르며 지난다. 자연 속에서 옛사람의 삶을 떠올리는 순간, 여행은 시간의 깊이를 얻는다. 3곡 죽림(竹林)에서는 학문의 전통이 이어진다. 회로당인 산양수계소를 통해 남전의 유학 전통을 떠올리며, 선현의 가르침이 맑은 물처럼 길이 흐르기를 기원한다.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유의 길이 되는 지점이다. 4곡 가암(佳巖)에서는 물고기가 뛰고, 동쪽 들판에 창석이 솟아 있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세계, 만물이 제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조화의 풍경이다. 시인은 노를 젓지 않고 두드리며 천천히 흐른다. 목적지보다 과정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5곡 농청대(弄淸臺)는 청대 선생이 직접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던 곳이다. 작은 서재에서 성현의 글을 펼치고 여생을 보내겠다는 그의 기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을 쉬고 있는가. 6곡 구잔(溝棧)에서는 잔도(棧道)와 시장이 등장한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만나는 지점이다. 장터의 분주함 속에서도 시인은 신농씨(神農氏)의 태평성대를 떠올린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을 그린다. 7곡 관암(觀巖)에서는 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된다.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물길을 보며 천리(天理)를 생각한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 하나의 이치로 돌아간다. 8곡 성암(筬巖)에서는 주돈이를 떠올린다. 태극을 우주의 근원으로 보고, 연꽃처럼 세속 속에서도 맑음을 지키라고 했던 철학자다. 자연 속에서 철학을 만나는 순간이다. 마지막 9곡 소호(蘇湖)에 이르면 물길이 끝나고 마을이 나타난다. 긴 여정을 지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곳은 출발 전과 같지 않다.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를 연마하는 여행 구곡 여행의 본질은 풍경 감상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닦는 데 있다.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는 것. 그 과정에서 마음의 먼지가 씻겨 나간다. 현대인은 빠르게 이동하지만 깊이 머물지 못한다. 많은 곳을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구곡 여행은 그 반대다. 한 굽이를 오래 바라보고, 한 줄기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본다. 문경의 산수는 이미 아름답다. 그러나 그곳에 살았던 선비들의 사유와 정신을 함께 따라가면 여행은 전혀 다른 깊이를 갖는다. 청대구곡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자연과 선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동시에 만난다. 이제 여행의 방식도 달라질 때가 됐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에서 벗어나, 나를 연마하고 마음을 맑히는 여행으로. 문경 청대구곡은 그렇게 우리를 부르고 있다. 청대구곡(淸臺九曲) 일곡이라 우암이 안아서 열지 않으니 바위 앞에 흐르는 물은 절로 돌아가네 내 집은 다만 시내 서쪽 가에 있거늘 아이와 때때로 노닐며 몇 번을 오가나 이곡이라 산이 높고 푸르름 들리려 하는 곳에 고인의 띠집이 층암의 언덕에 기대어 있네 가벼운 돛대 날카로운 노 어느 때 움직일까 서쪽 언덕 바위에 작은 배 가로지르네 삼곡이라 높다랗게 자리한 회로당은 남전의 유법이 해와 별처럼 빛나네 원하노니 영원히 폐해지지 않아서 앞에 있는 맑은 시내처럼 길이길이 흐르기를 사곡이라 양양하니 고기가 연못에서 뛰고 동쪽으로 보니 창석이 평전에 우뚝 솟았네 배를 타고 노를 두드림은 진실로 한가한 일이니 아침저녁으로 바위 앞에 작은 배를 매네 오곡이라 중반에 작은 누대 지으니 서쪽 바위 백척이라 높다랗게 솟았네 움집 안에 백발노인 한가히 일이 없어 성현의 남긴 글을 책상 위에 펼치네 육곡이라 산비탈에 잔도가 위태하고 돌을 안은 긴 봇도랑 천천히 흘러가네 서쪽의 버드나무숲 시장에는 사람들 다투어 모이니 멀리 신농씨가 교역하는 때를 생각하네 칠곡이라 구불구불 두 물이 가로질러 남으로 달리고 서로 돌며 다투는 듯하네 중간에 나뉘고 끝에 합함이 원래 천리거늘 소호에 이르지 않아서 한 길로 흘러가네 팔곡이라 창연히 가파른 벽 기이하니 주옹의 풍영대가 이곳에 존재하네 바위 사이 고적은 두 글자 전서이고 눈 아래 고산은 누에의 한 눈썹이네 구곡이 장차 다하고 산 또한 다하니 무이촌이 언덕 가 동쪽에 자리하네 원두의 물은 들판 가까이에 이어지는데 청원정에 남아 있는 고벽은 비었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6-02-26

화려한 봄과 시작, ‘2026 고령대가야축제’ 열린다

꿈과 희망으로 맞이할 2026년 새 봄을 기대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온갖 꽃 화려하게 피어날 계절에 어울리는 흥미로운 축제가 곧 고령에서 펼쳐지는 것. 고령군은 오는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2026 고령대가야축제’를 연다. ‘다시 시작되는 대가야: RE-BORN’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고도(古都) 지정 이후 새로이 주목받는 고령군의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을 조명하고, 낮과 밤 모두 즐길 수 있는 체류형·참여형 축제로 진행된다는 것이 고령군청의 설명이다. 축제는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박물관, 대가야문화누리 일원에서 진행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지산동 고분군과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실속 있게 운영된다. 올해는 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3주년과 ‘대가야 고도 지정 스토리’를 결합해 방문객들에게 역사와 문화, 체험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100대 가야금 콘서트, 대가야 별빛쇼, 군민 퍼레이드, 대가야 역사 토크콘서트, 군민화합한마당, 가야문화권 합창 페스티벌 등이 준비됐다. 특히 100대 가야금 콘서트는 대가야의 상징인 가야금을 해설이 있는 콘서트 형식으로 구현해 축제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체험 프로그램도 보다 풍성해졌다. ‘대가야 그릴 존’과 ‘고령 Berry Good 딸기 한 상’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미식 체험 코너 등이 새롭게 방문객들을 만난다. 행사장을 찾는 사람들은 고령 돼지고기를 활용한 꼬치 요리를 직접 조리해 시식하고, 고령 딸기를 활용해 딸기 샌드위치와 딸기 우유 등 DIY 딸기 요리를 만들어 보는 색다른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대가야 유물 발굴체험, 대가야 엽서 스탬프 투어, 딸기 꽃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또한 준비됐다. 더불어, 소규모 버스킹과 데이비드 리의 대가야 쿠킹쇼, 지산동 고분군 야간 트래킹 등 낮과 밤 모두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여러 개 선보이게 된다. 매년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60대 한 고령군민은 “해마다 봄이 오면 대가야축제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꽃도 만개하는 걸 지켜본 경험은 언제나 소중했다”는 말로 ‘2026 고령대가야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올해도 군민은 물론 축제 기간에 고령군을 찾아줄 관광객들이 만족할 만한 알차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가득할 것이라 믿는다”며 웃었다. 이번 축제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야간관광 콘텐츠 강화와 인근 관광지 연계성을 높인 점이다. 대가야 수목원과 음악분수 등 주요 야간 관광지와 연계해 셔틀버스 노선을 확대 운영하며, 방문객들이 축제장과 주변 관광지를 편리하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밤의 대가야’라는 테마로 체류형 관광을 본격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 주최 측의 복안이다. 이와 관런해 고령군 관계자는 “2026 고령대가야축제는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에 2회 연속 선정되며 대가야의 역사적 가치를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됐다”며 “여러분들이 함께 할 이번 축제를 통해 대한민국 다섯 번째 고도(古都)로 지정된 고령군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역사문화 브랜드 가치를 보다 높여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고령대가야축제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의 발걸음과 손길이 오늘도 분주하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전병휴 기자 kr5835@kbmaeil.com

2026-02-25

산사에서 먼저 전해주는 봄소식…"가슴 설렌다"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봄의 전령은 남도의 끝에서 시작해 서서히 북상할 것이다. 꽃의 미소를 품고 봄바람에 타고 살랑거리며 우리 곁으로 스며들 것이다.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 금둔사, 송광사에는 어느새 매화가 피었다. 경북 청도의 운문사는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봄의 향기 만큼은 물씬 풍긴다. 봄의 기운을 찾아 싱그러운 보 여행을 떠나보자 △ 수줍은 홍매화가 눈부신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정호승의 ‘선암사’ 중) 봄의 한복판에 선 선암사는 시인의 말보다 황홀하다. 선암사로 가는 길목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가슴 속에 떨어졌다. 선암사의 아름다움은 역시 꽃이다. 사시사철 철 따라 피고 지는 매화·동백·철쭉·산수유·영산홍·수국·물푸레나무 등 수많은 꽃나무들을 바라보면 과연 이곳이 사찰인지 수목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선암사 입구에 들어서니 여기부터는 탈속(脫俗)의 땅임을 알리듯이 승선교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계곡의 바위와 조화를 이루는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는 역사가 300년이 넘는 건축물이다. 승선교 다리 밑으로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선암사가 대웅전을 비롯해 무려 40여곳의 전각이 있을 만큼 웅장한 사찰임에도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은 계곡 속에 터를 잡은 절묘한 모양새 때문일 것이다. 경내에는 대낮인데도 홍매화와 벚꽃이 피어 마치 등을 단 것처럼 빛이 난다. 어떤 이는 황홀한 꽃향기에 취해 홍매화 밑을 떠날 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사진기로 열심히 선암사의 꽃들을 담아낸다. 꽃들 사이로 스님들이 걸어가는 순간 독경소리가 청아하게 경내를 울린다. 선암사의 대웅전은 절 규모에 비해 그리 크지 않지만 단아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세월의 흔적처럼 단청은 빛이 바랬지만 그 때문에 더 정겹다. 꽃이 이르기로는 순천 금전산의 금둔사다. 금둔사에는 매화가 지천인데, 그중에서도 낙안읍성에서 지금은 죽은 노거수 매화나무에서 씨앗을 받아다 심었다는 여섯 그루 나무에 매화가 워낙 이르게 피어서 ‘납월매(臘月梅)’라 부른다. 그런데 왜 그런지, 올해는 꽃이 늦다. 이제 겨우 한 그루에 서너 송이씩 꽃망울을 터뜨린 정도다. 그것도 얼어 터진 것이 대부분이다. 주지 지허스님 대신 절집을 지키고 있던 스님은 “올겨울에는 이쪽 골짜기가 유독 추웠다”고 했다. 시작부터 이러니 금둔사의 매화 구경은 권하기가 마뜩잖다. △ 송광사 매화는 스님 마음마저 빼앗고 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줄기에 둥지를 튼 절이다. 조계산의 서쪽에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절이 있다. 송광사다. 선암사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실상 선암사와 송광사는 한 뿌리로 연결돼 있다. 두 사찰을 잇는 고갯길이 바로 골목이재다. 굽이굽이 계곡과 울을 넘는 이 코스는 트레킹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대략 6.8㎞로 재게 걸으면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길섶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고, 하늘로 솟구친 늘씬한 편백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숲을 지나 계곡에 다다르면 물소리와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땀이 소슬하게 맺힐 무렵 송광사에 도착했다.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인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수없이 많은 고승과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이다. 뛰어난 인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절집이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그러하다. 절 입구에 놓여진 징검다리 하나에도 서정이 묻어 있고, 매화와 어우러진 고졸한 절의 모습에도 정감이 간다. 흐트러짐 없이 독경하던 스님들조차 매화에 눈을 두고 거둘 줄 모른다. 바야흐로 봄은 왔고 스님의 수행조차 방해하는 매화의 웃음소리가 사찰 안을 온통 어지럽힌다. △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 ㅈ 순천에서 만나는 또하나의 절경은 순천만이다. 소설가 김승옥의 대표작 ‘무진기행’은 순천만이 배경이다. “무진교를 걷다 보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어진다”는 작가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한다. 순천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10리 갈대밭엔 탐방로가 조성돼 있어 가족과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강 하구를 비롯해 갈대밭과 염습지 갯벌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주변에는 광활한 논과 수로, 낮은 구릉이 어우러져 있다. 순천만의 전경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으면 용산(龍山)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공원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왕복 6㎞는 되지만 갈대가 빚어낸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걸으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다다른다. 용산은 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범한 야산 정도 높이의 산인데도 용산에 올라서면 순천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만의 중심에는 S자 모양의 갯골이 모양을 드러낸다. 일명 S라인으로 불리는 만의 풍경은 특히 해질 무렵이 압권이다. 햇살이 서서히 떨어지면 갯벌이 조금씩 검게 변하고 주변은 금색으로 물든다. 떨구어낸 금분은 사람들의 얼굴을 물들이고 드넓은 순천만에 골고루 뿌려진다. △ 바람이 머무는 자리, 운문사의 봄 경북 청도 깊은 산자락, 운문산 자락에 기대 선 절집 하나가 봄을 맞는다. 천년을 버텨온 은행나무가 먼저 연둣빛 숨을 고르고, 그 곁을 스치는 바람이 겨우내 굳었던 마음을 풀어낸다. 봄의 절은 소란하지 않다. 대신 낮은 종소리처럼 은은하다. 그곳이 바로 운문사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고찰로 전해진다.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고, 전란의 불길 속에서 소실과 중창을 거듭했다. 그러나 절은 늘 제 자리를 지켰다. 산이 그랬듯, 계곡이 그랬듯, 시간 또한 이곳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금의 운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교육의 중심도량으로, 한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 강원(승가대학)이 자리한다. 봄날 경내를 걷다 보면 염불 소리 대신 책장을 넘기는 사각임이 들릴 것만 같다. 수행과 배움이 함께 숨 쉬는 절, 그래서 운문사의 봄은 더욱 단정하다. 절집 여행은 문을 통과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속세와 불계(佛界)를 가르는 경계, 일주문을 지나면 풍경의 결이 달라진다. 운문사의 진입로는 길게 뻗은 소나무 숲길이다. 봄이면 그 사이로 연둣빛이 번지고, 계곡물은 한층 가벼운 소리를 낸다. 매표소를 지나 천왕문, 그리고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축은 단정하고 절제돼 있다. 화려함 대신 균형과 여백이 돋보인다. 경내 중심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단청은 세월의 빛을 머금어 오히려 은은하다. 봄 햇살이 기와 위에 내려앉으면 검푸른 지붕은 따뜻한 빛으로 반짝인다. 처마 끝 풍경(風磬)은 바람을 받아 가늘게 운다. 그 소리는 크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봄날의 절이 그렇다. 한 번 스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운문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경내에 우뚝 선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다. 수령 1300년 안팎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절의 역사 그 자체다. 봄이면 가지 끝마다 연둣빛 잎이 솜털처럼 돋는다. 겨울의 앙상함은 사라지고, 생명의 기척이 나무를 타고 오른다. 이 은행나무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절이 불타고 다시 세워지는 시간을 묵묵히 지켜본 생존의 상징이다. 여행자는 그 아래에 서면 자연스레 고개를 들게 된다. 인간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이 얼마나 다른지, 그 간극을 실감한다. 봄은 매년 오지만, 천년의 봄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운문사의 봄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벚꽃이 만개해도 절집은 조용하고, 연둣빛이 산을 덮어도 경내는 단정하다. 그래서 더 깊다. 이곳의 봄은 보여주기 위한 계절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들던 순간, 대웅보전 처마 끝 풍경이 울리던 소리, 운문산 계곡의 맑은 물빛. 그 장면들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마음 한편에 남는다. 봄은 결국 풍경이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이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6-02-23

“소통·협업만이 안전 지킨다”

각 공정에 필요한 물 끊김 없이 공급되도록 관리 문제없이 흐르고 있는 물 확인 때마다 보람 느껴 산업안전·위험물·가스산업기사 등 자격증 다양 팀워크로 ‘안전시설물 개선’ 우수 포상 값진 성과 명장 꿈 실현 위해 늘 배우는 자세로 경험 쌓을 것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 설명해달라. △제철소에서 물은 설비를 식히고 공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이다. 나는 포항제철소 에너지부 동력섹션 수질점검반에서 근무하며, 제철소 각 공정에 필요한 물이 끊김 없이 공급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포항제철소 에너지부 동력섹션은 제철소 설비가 안정적으로 가동되도록 가스, 스팀, 용수 등 주요 에너지원 공급을 맡고 있다. 수질점검반은 그중 용수 분야를 전담하며, 원수 취수부터 정수·냉각·순환·폐수 처리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입사 후 4년 동안 현장에서 내 업무는 용수배관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압력·유량·수질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에 출동해 누수 차단, 배관 교체, 수질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제철소 구석구석을 가득 메운 파란색 용수배관이 눈에 들어왔다. 설비 사이를 촘촘히 이어 흐르는 그 배관들을 보며, 현장의 규모와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때부터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책임감과 보람도 커졌다. 이제는 중간 위치의 반원으로서 후배들을 지도하며, 안정적 용수 공급을 위해 팀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설비 점검을 마친 뒤, 물이 문제없이 흐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다. 그 물이 제철소 곳곳을 돌며 생산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현장으로 향하게 만든다. -많은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쌓은 역량의 실제 업무 적용은?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무 역량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예를 들어, ‘기계정비 산업기사’ 준비 과정에서 설비의 작동 원리와 구조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트러블 발생 시 원인을 신속 진단하고 적절히 조치하는 체계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산업안전·위험물·가스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안전에 대한 시야를 한층 넓혔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긴급 복구 작업이 동시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작업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신속 판단, 조율하여 복구를 원활히 마무리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수질환경기사, 인간공학기사 등 추가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성을 더욱 심화시켜 현장을 주도하는 핵심 인재로 성장하고 싶다. -일하면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지? 팀원들과 협업할 때 본인만의 소통 방식 등이 있는지? △내가 일하면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용수배관 관리 담당자로서 첫 배관 누수 정비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마쳤을 때이다. 누수 지점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밸브 위치를 직접 찾고, 여러 차례 테스트와 사전 준비를 거쳤다. 정확히 고장난 밸브를 차단하고 누수 정비를 완료한 후, 설비가 다시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꼈다. 이때서 느낀 점은, 용수배관 관리 업무가 혼자 힘으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정비 일정이 확정되면 다른 팀원들의 예정된 작업을 먼저 파악하고, 일정이 겹칠 경우 미리 조율해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소통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소통과 협업 덕분에 팀원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안전시설물 개선 우수 포상 등 값진 성과를 함께 이뤄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팀원들과 원활한 협업을 통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현장을 만들어가고 싶다. -포스코에서 가장 만족하는 점은? △포스코에서 근무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자부심은, 직원과 가족 모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복지제도다. 가족을 위한 복지로는 휴양시설 지원, 가족 건강검진, 자녀 교육비 지원 등 다양한 제도가 있어, 가족의 삶의 질까지 함께 높여준다. 직원 개인의 삶과 건강을 위한 제도도 매우 탄탄하다. 격주 4일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시키고, 사내 산업보건센터에서는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과 함께 필요 시 전문 진료를 상시 받을 수 있다. 또한 회사에서는 콘서트, 강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자주 개최해, 지방에서 접하기 어려운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도 제공한다. 자기개발과 교육 지원도 높은 만족도를 느끼고 있다. 포스코는 직원과 가족의 행복을 함께 만들어가는 든든한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예비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자랑하고 싶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가장 큰 목표는 언젠가 포스코 명장이 되는 것이다. 명장은 그저 기술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선후배들에게 인정받으며 현장에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관리와 유지보수는 경험과 노하우가 정말 중요한 분야라서, 매일 현장에서 쌓는 경험이 내 역량을 한층 더 키워주고 있다. 개인의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선후배들과 함께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며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포스코 명장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면, 그 기쁨을 지금의 동료들과 꼭 나누고 싶다. 늘 배우는 자세로 작은 변화와 노력이 큰 성과로 이어지도록 매 순간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 앞으로 포항제철소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2-22

“LNG 공급시설은 ‘혈관’ 역할”

설비 특성상 주기적 점검·세심한 관리는 필수적 기본·원칙 바탕으로 끊김없는 에너지 공급 심혈 땅속 배관 파손 위치 정확히 찾는 아이디어 고안 비용절감 등 성과 포스코 고유 노하우 등록 결실 안전·효율성 높이는 핵심 전문가로 성장하고파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설명해달라. △포스코 에너지부 동력섹션에서 근무하며, LNG 공급시설의 관리와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2021년 입사 이후 4년째, 포항제철소에 에너지가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운영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제철소의 에너지 설비는 전체 공정의 원활한 운영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큰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특히 LNG는 제강, 압연, 수소플랜트, 발전 등 주요 공정에서 열원과 원료로 사용되는 자원이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LNG공급시설과 배관망은 제철소 전체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혈관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모든 공정이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과 꼼꼼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LNG는 설비의 특성상 주기적인 점검과 세심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나는 ‘끊김 없는 에너지 공급’과 ‘안전한 운영’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항상 염두에 두고, 기본과 원칙을 바탕으로 매일 현장에서 설비를 점검해 오고 있다. - 포스코 신입사원 교육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어떤 계기로 포상을 받았는지, 그 경험이 현재 회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해달라. △포스코 신입사원 직무훈련 과정에서 최우수상(회장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다. 당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했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직무 성적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태도와 몰입도도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협업한 경험은 함께 목표를 이루는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 경험을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지금도 그때의 초심을 잊지 않고,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작은 개선사항이라도 최선을 다해 실천하고 있다. - LNG공급이나 동력운영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도입한 아이디어나 시스템이 있다면 자랑해달라. △동력운영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 다양한 개선활동을 해왔다. 특히, 땅속 배관의 파손 위치를 더 쉽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존에는 배관 손상 여부 확인을 위해 물을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이 방법은 탐사 정확도가 낮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주변 구조물에 영향을 주는 등 여러 한계가 있었다. 이에 스팀을 주입한 뒤, 지면의 온도 변화를 열화상카메라로 관찰하는 새로운 탐사 방식을 도입했다. 이 방법을 통해 파손된 배관 위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었고, 업무 효율과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번 개선은 실제 현장에서 높은 효과를 보이며 연간 상당한 비용 절감과 재무성과로 이어졌으며,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포스코 고유 노하우(A급)로 등록됐다. 이 경험을 통해 현장의 작은 불편함도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배움을 얻었다. 앞으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현장을 계속해서 혁신해 나가고 싶다. - 포스코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이 회사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포스코에서 일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 속에서 여러 부서가 한마음으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다. 특히, 긴급복구 공사에 참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복구 난이도가 예상보다 훨씬 높았지만, 운전·정비·안전·지원 등 각 부서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신속하게 대응한 덕분에, 예정된 기간보다 훨씬 빠르게 복구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작업이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됐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모습에서 포스코만의 ‘협업 문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필요한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유기적인 조직문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더욱 키우고, 부서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일하고 싶은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싶다. - 포스코에서나 혹은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다면 말해달라. △에너지 설비 전문가로서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최근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LNG는 미래 에너지 믹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급시설의 안정적 운영과 고도화된 관리 체계 구축은 제철소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필수적인 부분이다.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방 중심 설비 관리, 디지털 진단 기술 도입을 통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노하우를 통해 포스코의 에너지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전’과 ‘신뢰’의 가치를 실천하는 에너지 설비 분야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2-22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신라 고도의 겨울

APEC 이후의 불국사·석굴암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 등극 야경 대표 첨성대·동궁과 월지 조명·별빛 겹쳐진 또다른 얼굴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천년 고도 경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겨울의 고요 속에서 역사와 문화, 휴식과 체험이 어우러진 경주는 세대가 함께 시간을 걷는 특별한 여행지가 된다. ‘설 연휴 경주로 떠나는 가족여행 코스’를 8개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겨울의 경주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천년의 시간이 또렷이 살아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유적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건너온 기억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문화유산은 ‘보존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존재한다. 특히 겨울밤, 조명 아래 드러나는 고도의 풍경은 낮보다 더 깊은 사유를 불러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나는 유산은 천년 전 신라인의 정신과 오늘의 도시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유산의 풍경에 스민 젊은 감각 황리단길서 맛과 멋 즐겨 볼 만 □ 세계가 다시 바라본 유산, 경주의 시간성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이 도시의 위상을 새롭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국제회의라는 현대 정치의 무대가 천년 고도의 공간 위에 놓이면서, 경주는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품은 역사 도시임을 증명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 상징이다. 불국사는 불국토를 현실 공간에 구현한 신라 불교 미학의 정점이며, 석굴암은 우주 질서를 하나의 조형물 안에 담아낸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본존불의 미소는 특정 시대의 종교를 넘어 인간 보편의 사유를 담고 있다.   APEC 이후 불국사와 석굴암은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라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문화유산은 더 이상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가 됐다.   □ 별빛 아래 드러나는 왕도의 기억 대릉원과 첨성대, 월성 일대는 신라 왕도의 정치와 과학, 생활이 응축된 공간이다. 거대한 고분은 권력의 흔적이자 죽음을 넘어 영원을 향한 신라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 관측소가 아니라, 자연 질서를 국가 운영과 연결했던 고대 과학의 상징이다.   밤이 되면 이 일대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과 별빛이 겹쳐진 풍경 속에서 유적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별빛의 도시 경주’라는 이름은 단순한 관광 브랜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문화적 은유에 가깝다.   □ 황리단길, 현재의 경주가 숨 쉬는 공간   경주의 변화는 유적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릉원과 첨성대를 지나 이어지는 황리단길은 고도(古都)와 일상(現在)이 만나는 접점이다. 한옥과 근대 건축 사이로 들어선 카페와 공방, 작은 상점들은 경주가 더 이상 ‘과거만 있는 도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거리는 젊은 세대의 감각이 유산의 풍경과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실험 공간이다. 황리단길은 경주가 ‘보는 도시’에서 ‘머무는 문화도시’로 전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빛과 물, 그리고 신라의 낭만   동궁과 월지와 월정교는 경주의 야경을 대표하는 문화 경관이다. 연못 위에 비친 누각과 조명은 신라 왕실의 연회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현한다. 월정교의 목조 구조는 단절된 역사를 복원한 현대 건축의 결과물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다.   교촌마을은 전통 생활문화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전통혼례 재현과 풍물 공연은 ‘보여주는 전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에 가깝다. 이 일대는 유산·생활·관광이 하나의 문화 지형으로 결합된 사례다.   □ 사라진 탑, 남은 정신 : 황룡사와 분황사   황룡사터는 신라 최대 사찰이자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그 빈 공간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 기억 속에서 더 크게 살아난다.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신라인들이 돌로 벽돌을 만들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던 흔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종교와 기술, 예술이 하나로 결합된 신라 정신의 증거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특별히 준비한 어린이 체험관·해설프로그램 등 신라문화 정수 느껴볼 좋은 기회   □ 박물관, 시간을 보관하는 또 하나의 도시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전체를 압축한 공간이다. 금관과 불상, 토기와 장신구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신라 사회의 구조와 미감을 말해주는 언어다. 이곳은 유물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해석하는 공간이다.   어린이 체험관과 해설 프로그램은 과거를 다음 세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문화 장치다. 박물관은 경주 문화의 현재형이다.   □ 겨울 경주가 문화도시인 이유   보문호와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는 휴식과 체험을 통해 경주의 문화 지형을 확장한다. 역사유산 중심의 도시가 자연과 놀이, 체류형 관광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이다.   경주는 이제 ‘유적의 도시’를 넘어 ‘문화가 축적되는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유산, 청년문화, 야경, 박물관, 체험 공간이 하나의 서사로 엮이면서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문화 텍스트가 된다.   □ 겨울, 경주는 시간을 걷는 도시다   겨울의 경주는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걷는다. 불국사와 석굴암에서는 정신을 만나고, 대릉원과 첨성대에서는 권력을 보고, 황리단길에서는 현재를 읽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과거를 빛으로 번역한다. 경주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을 현재로 살아내는 도시다. 이번 겨울, 여행이 아닌 문화로서의 경주를 만나는 일은 곧 시간과 대화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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