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트럼프 “호르무즈 아주 빨리 열릴 것...협상 성공 여부 24시간 안에 알게 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통행을 막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아주 빨리 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및 통행료 징수 방침에 대해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그건 공해(公海·international water)이다. 그들이 그렇게 (통제)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은 자동으로 열릴 것이다. 우리가 그냥 떠나버리면 해협은 열릴 수밖에 없다. 해협이 열리지 않으면 그들은 돈을 벌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키스탄에서 이란 협상단과 마주할 JD 밴스 부통령에게 “행운을 빈다. 그는 커다란 임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이번 협상 목표에 대해 “핵무기 금지가 첫째이다. 이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걸 기준으로 삼은 적이 없다“며 “핵무기 금지가 우리(목표)의 99%“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뉴욕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협상이 성공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엔 “약 24시간 안에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암기자 am4890@kbmaeil.com

박형준 시장, 국힘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민주당 전재수 후보와 일전

3선에 도전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치열했던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주진우 의원(해운대갑)을 꺾고 6·3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강력한 경쟁 상대인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과 차기 시장 자리를 놓고 혈전을 벌이게 됐다. 국민의힘 박덕흠 공천관리위원장은 11일 오후 당사에서 진행된 광역단체장 경선 결과 발표에서 “부산시장 본경선 여론조사 개표 결과 박 시장이 부산시장 후보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번 선거는 부산의 미래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전선”이라며 “부산에서부터 나라를 구하자”고 보수 결집을 호소했다. 박 시장은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니다”며 “부산이 글로벌 도시로 힘차게 도약할 것인지, 여기서 주저앉을 것인지를 가르는 운명의 분기점”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부터는 승리의 시간이다. 시의원·구청장·구·군의원까지 200명이 넘는 모든 국민의힘 후보의 야전사령관이자 선봉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입법부·행정부·사법부에 이어 지방정부까지 특정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 순간, 이 나라는 견제 없는 일당 지배 국가가 될 것“이라며 “사즉생의 각오로 부산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가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기획·특집

더보기

시민기자

더보기

작은 나눔이 이어준 치료의 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170여 명이 함께하는 한봉우리봉사단 단체 채팅 방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온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나눔이 이어지는 공간이지만 이날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짧은 문장 뒤로 무연고 독거 어르신의 긴급한 사연과 함께 ‘앰뷸런스 이송비 지원 요청 공문’이 첨부된다. 메시지는 길지 않았지만 상황의 절박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채팅창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진다. 글을 올린 이는 더휴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하시현 센터장이다. 그는 포항시 해도동에서 홀로 사는 한 어르신의 위급한 상황을 조심스레 전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르신은 위암 판정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항암치료를 이어오고 있었다. 쉽지 않은 치료과정 속에서 4차 치료를 앞두고 저혈압 쇼크로 포항 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시 임상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동해야 하지만 장거리 대중교통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의료진 역시 안전한 이송을 위해 앰뷸런스 이용을 권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50만원의 이송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임상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동이지만 앰뷸런스 비용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센터장은 먼저 행정적인 지원 방법을 알아본다. 긴급복지 제도를 포함해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하나씩 검토해 보지만 기준과 절차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결국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봉사단체 채팅 방에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채팅창에 알림이 하나둘 울리며 3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각자의 형편에서 보탠 작은 정성이 모이기 시작했다. 금액은 다르지만 마음의 무게는 같다. 순식간에 목표 금액을 훌쩍 넘긴 170여만 원이 모이며 채팅창을 따뜻한 온기로 채운다. 누군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모금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된다. 모금된 후원금으로 어르신은 무사히 앰뷸런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혼자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지만 많은 사람의 온정으로 다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마침 사설 앰뷸런스의 구급대장도 봉사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어 이송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어르신은 도시락 봉사 대상 명단에도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나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하시현 센터장은 “정말 감사하다”면서도 “마음 한 편은 큰 빚을 진 것처럼 무겁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사각지대의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재가센터의 역할 중 하나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과 지원 가능한 자원을 연결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도움이 꼭 필요한 분들이 제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이 일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냈고, 또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손길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다. 채팅방에 올라온 짧은 문장 하나가 만들어 낸 작은 온정. 그 과정을 지켜보는 봉사단원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번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쟁 같던 이틀 고마운 손길들

지난 수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보러 오기로 했다. 농사일로 바쁜 가족들과 시골에 상주할 수 없는 내 형편을 생각하면 더는 집에서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날은 미리 알아본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면담한 뒤 필요한 검사를 마치면 바로 입소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고비였다. 요양원 직원이 어머님의 손목을 보더니 수술 부위에 금속이 튀어나와 있고 곪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여다보았다. 붕대가 풀어진 사이로 쇠가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직원은 이 상태로는 입소가 어렵다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119에 신고해 응급차를 불렀다.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어머님의 상태를 꼼꼼히 묻고 안전하게 모신 뒤 먼저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구급대원이 이미 접수까지 마쳐두었다.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의사는 소독과 깁스만으로 충분하다고 안심시켰다. 다시 사설 응급차를 타고 청송군보건의료원으로 향했다. 검사 후 입소 전까지 하룻밤을 머물게 된 청송군보건의료원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님은 기력이 없었고, 설사까지 계속하셨다. 의료원의 간호사들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소독하고, 상태를 살폈다. 특히 인심 좋게 생긴 야간 근무 간호사는 두 시간마다 와서 필요한 처치를 해주었다. 어머님이 거친 말씀을 하셔도 “미안해요, 할머니”라며 웃어넘기는 그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한 마음에 혼자 애쓰는 내게 “꼭 자기를 불러달라”던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다음 날 검사 결과가 좋아 요양원 입소가 가능했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며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요양원 측이 어머님의 자궁하수를 문제 삼았다. 또다시 119구급차를 불러 안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두 번째 구급차였다.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며 친절하게 소견서를 써주었다. 요양원은 염증 수치 등을 이유로 입소가 어렵다고 했다. 늦은 밤, 다시 집으로 모셔야 했다. 사설 응급차를 기다리며 몇 군데 요양원에 급히 전화를 돌렸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존 요양원에도 다시 연락했다. 결국 소견서를 확인한 원장이 다음 날 아침 다시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요양원 직원들이 집으로 왔다. 어머님을 차에 모시고 가며 나는 밥 잘 드시고 직원들 말씀 잘 들으시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말씀드렸다. 마침내 입소 절차를 마쳤다. 오후에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님이 점심 죽 한 그릇과 반찬까지 잘 드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이틀 동안 두 번의 119구급차, 두 번의 응급실, 여러 번의 검사와 이동. 몸도 마음도 바닥이었지만, 그 시간마다 누군가의 친절한 손길이 있었다. 신속하고 차분했던 구급대원들, 환자와 보호자를 끝까지 배려해 준 청송의료원 간호사들, 마지막까지 방법을 찾아준 의료진과 요양원 관계자들. 그분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전쟁 같던 이틀을 건널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가족의 힘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제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손길이다. 그 다정한 손길들이 있었기에, 지치고 두려웠던 시간 끝에서 나는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정치

더보기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교육

더보기

건강

더보기
신문협회 타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