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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 비끼는 사유의 밥상

휴식으로 하루를 채웠다. 늘씬하게 뻗은 소나무 숲을 거닐며 솔향을 음미하다가 ‘알바로 시자’의 스케치와 가구, 저서를 둘러보며 휴식할 수 있는 요요빈빈으로 들어갔다. 탁자와 소파는 모두 창을 향해 열렸다. 클래식이 고요히 흐르고 창밖에 천천히 흔들리는 소나무, 낮게 나는 제비와 산비둘기가 오르막을 오르던 목마름을 씻게 했다. 승효상, 최욱, 박창렬 등 대표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에 올라 한참 물오른 사유원의 봄을 만끽했다. 오후 3시, 제일 높은 곳 카페 가가빈빈 앞에 마련된 곳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10분 전 공연장 앞자리에 가 앉았다. 계절의 여왕답게 걷기에 좋을 만큼의 햇살과 앉으면 볼에 스치는 싱그런 봄바람이 여기에 오길 잘했다고 나를 칭찬하게 만든다. 정각이 되자, 보랏빛 한복을 곱게 입은 공연자가 나와 인사를 한다. 장구를 치며 부르는 노랫가락이 마이크 없이도 골짜기 전체를 채운다. 얼쑤~,좋다~, 이쁘다를 외치다가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손까지 흔들며 같이 공연에 참여했다. 저녁 예약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근처 봉우리가 무슨 산인지 알려주는 첨단에 오르고,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 잠시 기도를 하고, 한옥 대청에 올랐다.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만 보를 걸었기에 다 같이 마루에 등을 대고 누웠다. 뒤꼍에 핀 모란이 시들어가면서도 마지막 남은 향을 풍긴다. 바람결에 실려 온 수수꽃다리, 산사나무의 향까지 맡으며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여기는 그러라고 만든 곳이니까. 느티나무 우거진 한유시경으로 내려갔다. 경치와 낙조가 아름다운 사담 다이닝에서 헤드 셰프가 정성껏 조리한 특선 코스요리를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다.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예약자 이름을 묻기에 거기까지 우리를 태워 가고 예약하는 수고로움을 담당한 순혜언니 이름을 대니 다섯 명 자리라며 창가 명당을 내준다. 연두연두한 느티나무 숲이 연못에 드리운 게 바로 보였다. 코스의 처음은 새우와 아보카도가 어우러진 샐러드였다. 상추 한 송이를 속살이 보이게 조리해서 돌돌 말린 새우를 잘라 함께 먹으니 상큼했다. 작게 썬 사과가 풍미를 더했다. 뒤에 나온 빵으로 아보카도 소스를 발라 먹으니 잘 어울렸다. 두 번째는 브라타치즈와 살사 베르데, 여러 치즈 중에 제일 내가 좋아하는 치즈이다. 동그랗게 입을 앙다문 것을 칼로 살살 달래 열면 부드럽게 스윽 풀어지는 폼새도, 짜지 않은 그 맛도 일품이다. 그러니 꿀과 레몬에 절린 방울토마토를 감싼 하몽 위에 올려 한입 가득 먹으니 간이 딱이었다. 먹으며 보니 저녁 햇살이 능수벚나무 사이로 비낀다. 이제 본식 소고기 안심스테이크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기 굽기를 어떻게 할지와 마지막 코스의 차를 커피와 케모마일 중에 고르라고 했다. 고기는 미듐으로, 커피가 고팠지만 저녁 잠자리를 위해 케모마일로 정했었다. 서빙된 스테이크는 사유원 숲의 풍경을 접시에 분재로 담아 놓은듯하다. 아스파라거스도 얌전하고 감자와 양파는 먹기 전에는 감자와 양파로 보이지 않았다. 후식은 모과 치즈케이크와 말차 젤라토다. 우리가 간 날은 5월 2일이라 분홍빛 모과꽃이 거의 다 지고 한 두 송이만 남아 있어서 아쉬웠다. 다음에 올 때는 모과꽃이 만발할 시기를 잘 골라 와야겠다. 사유원은 아름드리 모과나무가 산 하나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카페엔 모과로 만든 차 종류가 다양했고 다이닝 코스에도 모과로 만든 치즈케이크가 나왔다. 내 입맛에는 약간 텁텁해서 말차 젤라토가 없으면 먹기 힘들었다. 뒤이어 나온 케모마일은 물 양이 부족했다. 하지만 창밖 한창 물오르는 느티나무 풍경이 부족한 맛을 충분히 채웠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길 위에서 마주한 필리핀의 일상

사흘간 머물렀던 사가다를 떠나며, 2000여 년의 시간을 품은 바나우에 계단식 논을 다시 떠올린다. 그러나 그 장엄했던 풍경보다 외려 고산족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더 오래 남는다. 바기오로 가는 길,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오르니 하늘과 맞닿은 높은 곳에서도 평지처럼 다랑논과 밭이 이어진다. 작은 마을들과 곳곳에서 열리는 소박한 축제들이 스쳐 지나간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저 멀리에는 다랑 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른다. 고단해 보이기보다 오히려 평화롭다. 딸기밭을 지나다 차를 세우고 딸기를 살 수 있냐고 물으니 익은 것을 직접 따 준다. 크기가 작고 단맛은 덜하지만 신맛이 산뜻하다. 그들에게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끈기와 삶의 무게가 배어 있다. 바기오에 도착하니 공기는 여전히 선선하다. ‘여름수도’라 불리는 이 도시는 산악지대 특유의 여유와 활기가 느껴진다. 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니 야경이 화려한 번햄파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이 공원에서 ‘제4회 국제 식품 및 공예 엑스포’가 한창이다. 형형색색의 먹을거리와 공예품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져 밤공기를 채운다. 한쪽 무대에서는 포크기타 공연이 이어진다. 필리핀 명곡 ‘아낙(Anak)’을 신청하니 흔쾌히 불러주고 이어 노사연의 ‘만남’을 부른다. 이국 낯선 곳에서 목청 높여 따라 부른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마음으로 그 분위기를 즐긴다. 그 순간, 문화는 낯섦의 경계를 조건 없이 허물어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다음날 루손섬 북부 산악지대를 떠나 서부 해안으로 이동한다. 수많은 섬들이 모여 있는 ‘헌드레드 아일랜드’에 들러 잠시 스노클링을 즐긴 뒤, 일몰을 보기 위해 서둘러 볼리나오로 향한다. 이곳은 굳어진 산호 지형 위로 어른 무릎 높이의 얕은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어 파도 없는 평온한 물결이 아름답다. 서쪽바다로 길게 돌출된 지형은 우리 지역 포항 구룡포를 닮아있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이곳, 잔잔한 물결 위로 붉은 빛이 스며든다. 숨을 죽인 채 바라본다. 그 어떤 말로도, 그 잔잔한 바다에 번지던 아름다운 석양의 깊이를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다음날 아침, 뗏목을 타고 동쪽 바다로 더 나아가 맞이한 일출 역시 장관이다. 짧은 순간이 긴 여운을 남긴다. 볼리나오에서 앙헬레스 클락으로 향한다.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서린 ‘사맛산 바탄전투 전쟁기념관’을 들리는 9시간의 긴 여정이다. 이동거리가 길고 도로 사정은 좋지 않지만 그마저 여행의 일부라 여기며 즐긴다. 클락 도착 후 인근 푸닝온천과 ATV 투어 중 마주한 아이따족 사람들. 화산재가 흐르는 계곡물에서 빨래를 하고, 자갈밭 위에 널어 말리는 그들의 낯빛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여행은 결국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마주하는 일이다. 온천에서 만난 아이따족 직원의 말에는 타갈로그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필리핀의 언어는 오랜 시간 스페인과 미국의 영향 속에서 타갈로그어를 기반으로 한 필리핀어와 일상적으로 스며든 영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많은 이가 이곳을 어학연수지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에 내리자 공기부터 다르다. 포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차창 밖으로 사월의 연두 빛이 곱다. 길 위에서 마주했던 순간들이 일상의 틈 사이에 조용히 머문다. 낯선 곳의 긴 여정에 도움 준 이대우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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