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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폭포가 식혀준 마음, 사찰이 채워준 평온

울산에는 자연과 전통, 그리고 쉼이 공존하는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시민기자는 가족과 함께 쌍미륵사와 파래소폭포, 통도사를 방문하며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울산의 명소들을 둘러봤다.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쌍미륵사는 이름처럼 특별한 유래를 품고 있다. 사찰 뒤편 자연 암벽에서 두 개의 미륵부처 형상이 보인다고 전해져 ‘쌍미륵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대웅전과 불상 등 사찰 곳곳이 황금빛으로 꾸며져 있어 ‘황금 사찰’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화려한 외관 덕분에 방문 전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소다. 실제로 마주한 쌍미륵사의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사진에서 화려함과 장엄함보다 자연과 어우러진 고즈넉함과 잔잔한 평온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사찰 입구에서 반겨주는 강아지 ‘가지’였다. 이름을 부르자 달려와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사찰을 둘러보다 ‘신비의 돌’ 앞에 멈췄다. 세 번 절한 뒤 소원을 빌고 돌을 들었을 때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조심스럽게 돌을 들어봤다. 결과보다도 가족이 함께 소원을 나누고 웃었던 순간 자체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다음 목적지인 통도사로 가던 중 이정표에 적힌 ‘파래소폭포’가 눈에 띄어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폭포까지 이어진 숲길 등산로는 예상보다 흥미로웠다. 곳곳에 숲 해설 QR코드가 설치돼 있어 주변 생태와 역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연동굴에 얽힌 이야기와 파래소폭포의 유래, 숲속 굴참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생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약간의 등산 끝에 마주한 파래소폭포는 시원한 물줄기와 소리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소리는 복잡했던 생각들을 잠시 멈추게 했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더운 날씨 속에서도 청량함을 느끼게 했다. 폭포에서 얻은 산뜻한 기운과 함께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신라 선덕여왕 시기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대표적인 사찰인 만큼 많은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사찰 앞마당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아 시원한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고, 가족과 함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인생네컷 촬영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어린이들을 위한 나만의 불상 만들기, 페이스페인팅, VR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돼 활기를 더했다. 유독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불교 경전에서 신비의 꽃으로 알려진 ‘우담바라’가 보였다. 작고 가느다란 흰색 형태의 우담바라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통도사 입구에서는 사찰을 지키는 사천왕의 근엄한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동방을 수호하는 지국천왕과 남방의 증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이 각각 위엄 있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또, 다가오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형형색색의 등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사찰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등을 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했다. 각자의 소망과 바람을 담아 기도하는 풍경은 사찰 특유의 평온함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잠시의 여유를 만나고 싶다면 울산의 쌍미륵사와 파래소폭포, 통도사를 찾아보길 추천한다. 익숙한 하루 속에서도 잔잔한 쉼과 특별한 추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20

월요일마다 고전을 읽는 사람들, 양동마을 ‘곤지서당’

월요일 저녁 7시. 경주 양동마을 문화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손에는 묵직한 도덕경이 들려있다. ‘곤지서당’ 회원들이다. 최근 ‘고문진보’를 마치고 ‘노자 도덕경’을 읽고 있다. 잔잔한 훈장님의 목소리가 문화관 안에 천천히 울려 퍼진다. 회원들은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밑줄을 그어 가며 귀를 기울인다. ‘道’에 대한 이해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회원들은 월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문화관으로 향한다. 이덕환 훈장이 이끄는 곤지서당은 2014년 1월부터 시작됐다. 양동마을 출신인 그는 세무공무원으로 재직 당시, 부산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논어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것이 인연이 돼 함께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 경주시 강동면 평생학습원 프로그램에 논어 강의가 개설되며 자연스럽게 강의를 이어갔지만 그곳에는 약간의 수강료 부담이 있었다. 그는 한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양동마을 문화관에서 무료 강의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지금의 곤지서당이다. 오랜 시간 훈장님과 함께 공부해 온 회원들에게 물었다. “쉽지 않은 한학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 어르신은 “조상의 자취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했다”고 말했다. 신문을 보며 혼자 한자를 익히다 훈장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한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회원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공부라기보다 마음을 닦는 공부”라고 했다.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운 어르신은 몇 안 되는 회원들과 훈장님을 묵묵히 챙기며 서당을 지켜오고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고전공부를 아마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것 같다”며 웃는다. 경쟁과 성취 중심의 시대에 한학 공부는 느리지만 묵직한 자기 수양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 회원들은 사서삼경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논어’에서는 인간관계를 배우고, ‘중용’에서는 균형 잡힌 삶을 익히고, ‘맹자’는 도덕적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달라진 세상에도 경전 속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있다.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적 책임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도(道)를 논하는 ‘도덕경’은 쉽지 않은 책이지만, 훈장님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회원들의 손이 책 위를 노닌다. 가까운 곳에 훈장님이 있고 함께 공부할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큰 행운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회원들은 고전의 가치가 오늘날 더욱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회원이 최근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유치원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지인이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섯 살 아이들에게 “효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 아이가 “엄마, 아빠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답해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다. 웃으며 들은 이야기였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효의 의미 또한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밤 9시. 공부를 마치고 문화관을 나서며 곤지서당 회원들은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만큼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월요일 밤마다 양동마을 문화관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그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20

오래된 시간과 살아가다···아파트속의 사월동 지석표군

대구 수성구 사월동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의 흔적인 지석묘군이 남아 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도로, 상가와 지하철역이 들어선 도심이지만, 오래전 이곳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던 생활 공간이었다. 사월동과 욱수동, 신매동 주변에서는 개발 과정에서 여러 기의 고인돌과 석관묘,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사월동 지석묘군은 도시 개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시간의 흔적이다. 우리 아파트 안에도 그 고인돌 4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사 온 뒤 몇 년 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산책할 때면 늘 아파트 뒷문으로 나가 신매지를 돌거나 욱수천 산책길을 걸었다. 직장에 다니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대부분의 이동은 자동차 안에서 이뤄졌고, 단지 안을 천천히 걸어볼 일도 많지 않았다. 매일 지나치는 공간이면서도 나는 그곳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도서관 강좌에서 진행한 도심 유적 답사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답사지 설명 속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을 때 조금 놀랐다. ‘사월동 지석묘군’이라는 그 유적이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답사 날, 사람들과 함께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늘 지나던 길인데도 처음 보는 장소 같았다. 아파트 한편 작은 공간에 거대한 돌 하나와 규모가 작은 돌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보호 울타리와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오래된 조경석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그 돌들이 수천 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무덤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지석묘군 앞을 그저 무심히 지나쳤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걸음을 멈추고 고인돌 앞에 서게 되는데, 그럴 때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택배 차량이 오가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곳에 선사시대의 시간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밤이면 수백 개의 아파트 창문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 곁에서 고인돌은 소리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청동기시대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먹고살 궁리를 하며 계절을 견디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역시 더 편리한 집과 빠른 이동 수단 속에 살 뿐, 하루를 버티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시간의 속도일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돌은 수천 년을 견디며 남아 있는데, 우리는 너무 빠르게 지나치며 산다. 재건축 이야기가 오가고, 새 아파트와 더 높은 건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돌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새 도시를 세우기 위해 땅을 파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오래된 과거라는 사실도 어쩌면 의미심장하다. 사월동 지석묘군은 거창한 유적지가 아니다. 관광객이 몰려오는 유명 문화재도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오래된 시간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가끔 단지 안을 천천히 걷는다. 고인돌 앞을 지날 때면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거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도시가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어떤 시간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돌무덤 곁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장을 보고, 누군가는 퇴근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천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우리는 결국 같은 땅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지도 모른다. 오늘 외출에서 돌아오다 지석묘군 앞에서 한참을 생각에 잠긴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20

대구예술대 패션모델과정 학생 부산 패션쇼 참관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패션모델과정(대표 이원호 교수)의 시니어 학생들은 지난 15일 범일동 부산 패션비즈센터에서 열린 모리텍스 모리모델협회 부산․울산․경남지회 김연수 지회장 취임식을 겸한 드레스 패션쇼에 참가했다. 이날 행사는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이원호 교수가 총감독을 맡았으며 패션쇼는 모리모델협회 강승연 팀장이 연출했다. 부산 패션비즈센터에서 진행된 드레스 패션쇼에는 특별히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패션모델과정 수강생들이 참여하였으며, 부산 지역 시니어 모델 등 80여 명이 참관해 액티브 시니어들의 모델 도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건넸다.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은 2026년부터 모리텍스 모델협회와 함께 패션모델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제한 없이 패션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모델 강좌로 자세 교정, 워킹, 포토 포즈, 패션쇼 콘티, 패션쇼 모델 참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직접 패션쇼 모델로 활동도 가능하다. 이 과정에 참여한 시니어들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늦게나마 할 수 있어 꿈을 이룬 것 같아 너무 즐겁고 십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엔 20~30대가 광고 모델시장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건강기능식품, 금융, 보험, 홈쇼핑, 패션 브랜드까지 시니어 모델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50대 이후 인생 2막을 런웨이 위에서 걸어본 사람은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고 그때의 벅찬 감정은 무어라 표현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자꾸만 늘어가는 노인 인구가 노년을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정부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전국적으로 파크골프 구장이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늘고 있다. 운동을 통한 방법도 그 하나에 속한다. 이들이 노후를 외로움, 질병 등에서 벗어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신체운동 외에도 다양한 취미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니어패션모델도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한 종목이 아닐까 싶다. 이날 모리모델협회 부산․울산․경남 지회장으로 취임한 김연수씨는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모리모델협회가 더욱 발전하고 회원 여러분이 더욱 자존감을 높이며 빛날 수 있도록 단순한 패션쇼를 넘어 인생의 연륜과 열정이 담긴 깊이 있는 무대를 제공하여 모리모델이 최고의 무대예술, 종합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또한, 이번 행사를 연출한 강승연씨는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패션모델과정 수강생들이 대구 패션쇼 무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대 활동을 볼 수 있도록 참관 기회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5-20

음악줄넘기로 세계 제패한 교장 선생님

평생을 2세 교육에 매진하다 퇴임한 교장이 ‘음악줄넘기 지도 100섬 투어’에 나섰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2월 경북 성주중앙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퇴임한 김동섭 교장이다. 김 교장은 초임 시절 구미 모 시골 초등학교에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오지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열의와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음악줄넘기 지도를 시작했다. 독학으로 음악줄넘기에 대해 연구하며 열정을 쏟던 가운데 우연히 음악줄넘기 대가를 만나게 됐다. 그는 김 교장의 교육열에 감동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술을 전수해줬다. 그때부터 김 교장이 가는 학교는 고기가 물을 만나듯 학생들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 뛰어넘는 음악줄넘기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음악 감상을 즐기면서 신체 운동을 하는 가운데 학생들은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됐다. 구미의 시골에서 시작한 음악줄넘기 지도는 김 교장의 평생 동반자가 됐고 성주군, 구미시, 울릉군을 두루 거치면서 크게 성장, 발전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었다. 부임하는 곳마다 학생들을 이끌고 대회에 나갔다. 국내 대회 석권을 비롯하여 아태지역 대회, 세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는 울릉도에서 거둔 실적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육지와 달리 추위와 거센 바람을 안고 자라난 섬 아이들에게 신체적 순발력이 뛰어남을 발견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줄넘기 지도를 하여 전국대회에 나가 2007년 첫 해엔 동메달을 차지했고, 2008년에는 서울서 열린 전국 줄넘기 선수권대회 겸 아시아 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2009년에는 홍콩 아시아 대회에 나가 중국에 이어 종합 준우승을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출전해 미국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 전광판에 ‘KOREA-울릉 줄생줄사팀’ 이라고 가장 위에 떴을 때의 기분은 ‘기적’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외딴 섬 울릉도의 어린이들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학생들과 겨루어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김 교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섬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이룬 쾌거였다. 김 교장의 음악줄넘기 지도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신체적인 건강, 즐거움, 희망, 도전력을 심어 주는 교육적 효과 외에 교육 현장과 지역민의 단합을 이끌어 내는 시너지 효과도 이뤄냈다. 그런 그가 교직 37년 6개월, 음악 줄넘기 지도 32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자마자 소외된 교육환경에 처한 전국 100섬 음악 줄넘기 투어를 선언했다. ‘줄 하나로 섬마을에 건강과 희망을!’이란 기치를 내걸고 야심차게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의 앞으로 10년 간 목표는 100개 섬 완주이며 이를 위해 첫 번째로,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섬마을 초·중·고 학생과 주민을 대상으로 음악줄넘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줄, 교육영상, 워크북 등 줄넘기 키트를 무상으로 기증한다. 두 번째는 각 섬의 특별한 줄넘기 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에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한다. 세 번째는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국민음악줄넘기’를 보급하여 평생 스포츠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이번 도전에 함께할 교육청, 체육회, 공공기관, 기업, 언론사의 후원 및 협력을 기다린다고 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5-19

봄빛 따라 문향(文香)을 걷다

초여름 문턱에 들어선 지난 16일,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회장 정삼일)는 경남 거창으로 봄 문학기행을 떠났다. 문학을 사랑하는 회원 40여 명은 자연과 문학,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어우러진 공간을 함께 걸으며 삶과 예술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첫 여정은 거창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우두산 Y자형 출렁다리였다. 해발 620m 능선 위에 세 갈래로 뻗은 이 다리는 총연장 109m 규모로, 교각 없이 강철 와이어만으로 연결된 첨단 공법의 구조물이다. 세 개의 봉우리를 잇는 세계 최초의 Y자형 출렁다리라는 상징성과 예술적 조형미를 인정받아 국내외 학회에서 우수 구조물 작품상을 받았다. 봄 가뭄으로 계곡의 물길은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발아래 펼쳐진 협곡과 눈앞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산세는 오히려 자연의 깊은 침묵을 더욱 웅숭깊게 드러내고 있었다. 아찔한 높이 위를 걷는 순간마다 산빛과 바람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펼쳐 놓은 듯했고, 우두산 특유의 유장한 능선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소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우두산은 이제 거창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어 회원들이 찾은 곳은 거창 출신의 원로 시인 신달자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문학관이다. 2025년 12월 개관한 문학관은 지상 2층 규모로, 전시실과 강의실, 북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생존 여성작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문학관이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적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신달자 시인은 숙명여대 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 현대 시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우뚝 섰다. 그는 지금까지 시집 17권과 소설집 5권, 50여 권의 산문집을 펴내며 사랑과 그리움, 인간애와 생명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해 왔다. 대표작으로는 ‘나의 어머니’, ‘열애’, ‘북촌’, ‘종이’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시와 소설을 함께 아우르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그의 작품은 섬세한 감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문학관 내부와 벽면에는 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등단 과정, 작품 활동과 발자취가 사진과 연보로 정리되어 있었으며, 육필 원고와 초판본, 인터뷰 자료 등이 함께 전시돼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래 머물게 했다. 올해 여든넷이 된 신달자 시인은 세월이 더해질수록 문학의 깊이와 품격이 더욱 농익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문학은 화려한 수사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는 진정성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마지막 일정으로 회원들은 거창 창포원을 찾았다. 넓은 수변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창포원은 자연과 생태, 관광이 조화를 이룬 거창의 대표적인 친환경 공간이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이곳은 봄이면 꽃창포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여름에는 연꽃과 수련, 수국이 만개해 수변의 정취를 더한다. 가을의 국화와 단풍, 겨울 갈대밭의 고요한 풍광 또한 방문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번 문학기행은 단순한 탐방이 아니었다. 산을 바라보며 시를 떠올리고, 시를 읽으며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일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문학은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이며, 자연은 그 문학의 가장 오래된 스승이기 때문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5-19

(시민기자 단상) 공정한 판결의 중심은 무엇인가?

왜곡(歪曲)을 국어사전에서는 ‘실제와 다르게 거짓되이 바꾸거나 고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근래 판사의 판결에 대해 분분하게 말들이 많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은 법관의 존재 이유를 압축한 문장이다. 판결은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법과 양심,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무엇이 왜곡이고 공정한 판결인가.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세우는가. 공정성의 첫 번째 기준은 법률이다. 법치국가에서 판결은 법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사실에는 같은 법이 적용되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한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 만약 판결이 법이 아닌 개인의 감정이나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흔들린다면, 그것은 이미 공정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법률은 공정성의 최소한이자 출발점이다. 그러나 법률만으로 공정성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절차의 공정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당사자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가 주어졌는지, 증거는 적법하게 수집되고 평가되었는지, 재판이 편파 없이 진행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절차가 무너지면 결과는 신뢰를 잃는다. 정의는 단지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이루어지는 모습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합리성과 상식이 작용한다. 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규범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기준이다. 일반 국민이 납득 할 수 없는 판결은 아무리 법리에 맞다 하더라도 공정하다고 인정받기 어렵다. 공정성은 법조문과 사회적 정의감 사이의 균형 속에서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은 누가 만드는가. 형식적으로는 입법부가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기준을 세운다. 그러나 실제의 공정성은 판사들의 해석과 판례의 축적 속에서 구체화 된다. 같은 법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의의 모습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기준 위에는 헌법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 적법절차라는 헌법적 가치는 공정성의 최종 잣대다. 공정성의 또 다른 축은 시민사회다. 언론의 비판, 학계의 논의, 시민의 평가가 판결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작동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지만, 국민은 그 판결을 평가함으로써 응답한다. 이 긴장과 균형 속에서 공정성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공정한 판결이란 법에 맞고, 절차에 어긋나지 않으며, 사회의 상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판단이어야 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부끄럽지 않은 결론이어야 한다. 판결문은 종이에 남지만, 그 공정성은 역사의 평가 속에 남는다. 오늘의 법정에서 내려진 한 줄의 판단이 훗날 어떤 이름으로 불릴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로 기록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법관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 판결이 법에 맞는가를 넘어, 과연 공정한가를. /석종출 시민기자

2026-05-19

iM시니어금융대학 1기 수료식

iM금융은 지난 3월 16일 iM뱅크 제2본점에서 개설한 iM시니어금융대학 교육과정을 지난 13일 마치고 수료식을 가졌다. 대구광역시 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추천한 51명의 시니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iM금융 시니어금융대학에서는 노년층에 꼭 필요한 금융지식과 맞춤형 금융정보를 쉽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모두 8주 차 학제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에서 49명의 시니어 학생들이 전 과정을 수료했다. 시니어 교육생들은 노후 자산관리, 연금과 세금, 상속과 증여, 디지털 금융과 같은 실생활 중심의 교육을 받았으며 금융 골든벨, 금융사기 실전 연습 등도 직접 참여하며 체험 학습활동도 했다. 또 현직 은행원과 세무사 등 전문 강사진과 iM금융 대학생 홍보대사들이 배치돼 어르신들의 불편한 점을 가까이에서 돕고 어르신들이 재미있게 금융 내용들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줬다. 1주차에는 입학식과 금융특강이 있었고, 2주차에는 뇌 건강체조와 금융 골든벨이 개최됐다. 3주차에는 연금과 자산관리에 대한 강의, 4주차는 상속과 증여에 대한 특강이 이어졌다. 5주차는 디지털 금융거래, 6주차는 금융사기 예방 즉 보이스 피싱과 스미싱에 대해 공부를 했다. 7주차에는 금융 특강과 몸마음 건강체조를 배웠다. 8주차인 13일에는 수료식을 가졌다. iM뱅크 제2본점 다목적홀에서 열린 수료식에는 iM시니어금융대학 1기 수료생들이 학사복과 학사모를 입고 등장했다. iM금융그룹 신우현 부장, 대구노인종합복지관 김진홍 회장, 대구시의 노인종합복지관 관장 등 내빈이 참석 이들을 축하했으며 1~7주차 교육 내용과 소감이 담긴 영상을 시청했다. 또 기념품 및 수료증이 전달되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매 회차 수업일 마다 출석을 큐알로 체크하고 마칠 때마다 OK 확인 도장을 받으면 하루가 끝난다. 하교 할 때는 커피, 차, 과일, 일상용품 등의 선물을 꼭 챙겨 준다. 수료증을 받은 시니어 학생들은 똑똑한 금융생활을 준비하는 iM시니어 금융대학을 열어준 iM금융그룹과 iM사회공헌재단에 고마움을 전하며, 2기와 3기가 교육과정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5-19

딤섬이 맛있는 상해교자

이웃에 살던 친구가 딴 동네로 이사 갔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해 전화로 자주 이름을 불러주고 그러다 우리 집에서 가까이 살아 가벼운 차림으로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는지 이사 가는 날도 몰랐고, 심지어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가버렸다. 소문에 효리단길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물리적 거리가 마음의 거리였나보다, 오늘에서야 친구를 만나러 갔다. S가 효자 시장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나를 데리러 왔다. 오늘따라 옷차림이 화사했다. 그의 핑크빛 치마를 보니 벚꽃 피는 봄으로 다시 되돌아 간듯하다. 주말이라 효자 시장에 차가 많았다. 오랜만에 찾은 공영주차장은 주차비를 내야 했다. 볼일을 끝낸 S는 가게를 나와 이 동네 맛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효자 시장 주변에는 오래된 토박이가 많아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서울에 유명한 경리단길을 본뜬 효리단길에 많은 맛집이 있지만, 우리 이웃에 살았던 친구가 떠올라 그리로 향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상해교자’이다. 원래 효리단길에 유명한 튀김집 ‘순이’가 살던 곳인데 더 안쪽으로 떠났고 그 빈자리에 상해교자가 이사 온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만석이다. 종업원이 웨이팅이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5분이면 자리가 날 것 같다며 키오스크에서 주문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함께 간 S는 내가 아는 집이니 나더러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우리 동네에서는 딤섬과 짜장면 탕수육을 파는 중국집이었다면 효리단길에 이사 오며 대만이나 홍콩의 어느 골목길에서나 볼 법한 가게로 모습을 바꿔버렸다. 천장에 달린 등이나 벽에 장식이 그랬고, 들려오는 음악은 중경상림의 주제곡이다가 화양연화의 여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가게 안을 어슬렁거렸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메뉴판에 없고 탄탄면과 우육면과 완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민 끝에 우육면과 딤섬 세트를 골랐다. 딤섬은 우리 동네에 있을 때도 인기 메뉴여서 골랐지만, 우육면은 먹어봐야 알 것 같았다. 염려하는 사이 금방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으니 테이블 위에는 시원한 물과 함께 종이컵, 고추기름, 화자오, 딤섬 간장, 우육장, 갓절임 단무지가 있어 덜어 먹으라고 앞접시까지 있었다. 더는 사이 우육면이 나왔다. ​ 취향에 맞게 음식에 추가해 먹을 수 있어서 우리는 우육장과 갓절임을 추가했다. 우리 입맛에는 간이 세다고 느꼈는데 대부분 손님이 좋아했다. 고수도 말하면 준다고 하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면 양이 넉넉했다. 곧이어 딤섬과 함께 생강채를 주며 간장을 부어 딤섬 위에 조금씩 올려 먹으라고 했다. 6개의 딤섬을 가위로 반 나눠 생강을 한 점씩 올려 모두 다 맛보았다. 여전히 맛있었다. 다음엔 가지 만두와 탄탄면을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 상해교자는 2014년부터 북구보건소 맞은편에서 10년간 영업을 하다가 이곳으로 이전했다. 매장이 협소해서 예약, 배달, 포장을 하지 않는다. 후식으로 홍차가 맛있는 ‘달팽이책방’으로 갔다. 상해교자 바로 코앞에 있어서 서너 걸음이면 닿는다. 독립 출판물을 주로 판매하는 동네서점에서 이렇게 다양한 홍차를 준비해 놓았다니 놀라웠다. 가장 인기 있는 홍차와 밀크티를 주문하고 난 뒤 책장을 살폈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책을 둘러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눈을 들어 보니 사장님이 차를 우리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향긋한 차를 들고 창밖으로 상해교자를 보니 손님이 더 길게 줄을 선다. 이사 와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홍차 향이 깊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8

초고령사회와 부모 돌봄

지금 우리는 초고령사회를 살고 있다. 언제 어디를 가도 60세 이상인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가 되면서 가장 우려되는 건 돌봄에 관한 문제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간판들을 보면 노인돌봄기관이 자주 눈에 띈다. 도로 위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차량보다 노인주간보호센터라고 적힌 노란 차에 타고 내리는 어르신들을 볼 때가 더 많다. 이제는 동네 깊숙한 곳에서도 만난다. 시민기자가 살고 있는 동네도 아파트 단지 안 가정어린이집은 없어진 지 오래고 제법 큰 규모의 어린이집도 어느 날 갑자기 노인돌봄센터로 간판을 바꾸었다. 이런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인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는 부모님 돌봄에 관한 이야기가 요즘 주식 이야기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얼마 전에는 한 독서회 회원이 올해 87세가 된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이야기, 100세가 된 부모님을 일흔이 넘은 딸이 집에서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육아의 어려움을 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부모 돌봄 대화가 많아지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야기 중에는 부모 돌봄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육아의 어려움은 지역 온라인 맘카페에서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부모 돌봄은 어려움을 혼자서 감당해야 해서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로 힘들 때가 많다고 했다. 지인들의 이야기에서 돌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초고령사회를 살면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가까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남편과 형제들은 수년째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올해 아흔두 살인 시어머니의 아침, 저녁 식사를 자식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챙긴다. 낮에는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고 있다. 노인돌봄기관에 다니다 그만하시고 집에서 지내기를 바라셨다. 돌봄은 자식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이 그나마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돌봄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는 아주 가벼운 치매가 있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는 없으시다. 가끔 찾아뵙지만 아직은 큰 힘이 필요하지는 않아서 자주 가는 남편에게 상황을 물어보는 정도다. 아무래도 남편은 시어머니 돌봄이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지난해 한국리서치의 ‘돌봄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돌봄과 간병의 부담은 모든 연령층에서 70% 이상이었다. 자식들은 부모 돌봄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돌봄을 전적으로 담당해야 할 경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부모를 전문시설에 모실 경우는 직접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도 77%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족이 경제와 일상생활을 포기하는 것보다 전문 기관에 모시는 게 옳다는 선택이 2% 더 높았다. 부모 돌봄을 하면서 자신이 노인이 됐을 때 생기는 돌봄 문제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응답자의 84%는 거동이 불편해지는 미래에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될까 걱정했다. 또 조사에서 3명 중 2명이 자식이나 배우자로부터 돌봄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초고령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 돌봄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가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기념일 빽빽한 가정의 달 5월, 부모와 자식,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8

안동여행기

갑작스런 연휴는 급한 여행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다. 바쁘게 일정을 세우자니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없다. ‘안동’이 목적지로 정해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찜닭’과 지난번 방문 때 먹은 크림빵을 다시 먹는 게 목표였다. 출발 당일 이유가 하나 더 덧붙여졌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돌멩이를 하나 주워온 아들은 반려돌이라며 애지중지 중이다. 돌멩이에게 안동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 돌멩이가 여행 내내 복병이 될지 몰랐다. 꼬맹이의 손과 주머니를 오가던 돌멩이는 여행 중간중간 사라졌고 찾는 건 엄마 아빠 몫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봉정사였다.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 들어가자 ‘천등산봉정사’란 현판이 보였다. 봉정사의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 건물이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원래는 대장전으로 불렸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꿨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 가구의 고격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극락전 앞 석탑 주위엔 두 손을 합장한 채 탑돌이 중인 관광객들이 보였다. 아이도 그 모습을 따라 탑을 돌았다. 영국 여왕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경내를 어느 정도 둘러보고 나서 기념으로 연등을 달았다. 가족 건강과 여행이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길 바람으로 담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절을 뒤로 하고 점심 식사 할 곳을 찾았다. 찜닭만큼 간고등어도 빼놓을 수 없다. 가족 만장일치로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을 방문했다. 두툼한 고등어살을 실컷 발라먹고 나니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힘을 잔뜩 채워 하회마을로 이동했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꽤 높을 비율로 전기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부분 도보로 이동 중이다. 주차장에서 하회마을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봄이라 한지 얼마 되지 않은듯한데 벌써 더위가 느껴졌다. 첫 방문은 아니었던 터라 이번엔 조금 설렁설렁 걸어다녔다. 그 사이 오래된 나무에 소원지도 적어 달았다. 나이 많은 부모를 둔 아이의 소원은 언제나 가족 건강이 주를 이룬다. 나무 주변 가득 채운 소원지들이 바람에 가끔씩 날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당일치기 여행이다보니 오래 머무르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안동 구도심에 도착하니 마침 ‘차전장군 노곡공주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예상에 없던 계획이었으나 아이는 여행 일정 중 가장 즐거워했다. 몇 가지 체험을 하고 커다란 까투리 인형 앞에서 사진도 몇 컷 찍었다. 열심히 움직인 덕분인지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축제장을 조금 벗어나면 시장이다. 지난번 방문 때 맛있게 먹었던 찜닭집을 다시 찾았다. 2층 계단에서 내려온 줄은 1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2~30분쯤 기다리자 우리 순서가 되었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갈색 양념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찜닭이 상 가운데 놓였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큰 접시는 금새 비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월영교로 이동했다. 연휴답게 늦은 시간임에도 다리 위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커먼 물 위로 배를 타며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다리는 반쯤 건너다 말다시피하고 빵집으로 향했다. 어딜 가든 줄은 기본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멩이의 무사 여부를 확인한 후 경주로 돌아왔다. 한참을 재잘 되던 아이는 돌멩이를 손에 꼭 쥐고 잠들어 있었다. 돌멩이의 소감은 알 길이 없으나 아이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던 것 같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8

(시민기자 단상) TK에서 DG로, 大邱에서 大丘로

조선시대 고을 이름의 작법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었다. 거창한 브랜딩이나 복잡한 용역 절차 대신, 주요 고을의 앞글자를 따서 도(道)의 이름을 지었다. 경상도 역시 경주(慶州)의 ‘경’과 상주(尙州)의 ‘상’이 만나 탄생한 이름이다.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품격 있는 이름 속에는 그 지역이 지향하는 가치와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예부터 영남 사람들은 기개가 크고 강인하다는 평을 받았다.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상도의 인심을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표현했다. 큰 산과 높은 봉우리처럼 묵직하고 굳센 기질을 지녔다는 뜻이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지탱해 온 정신적 지주였다. 국권이 흔들리던 구한말, 서상돈·김광제 선생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시민들이 스스로 담배를 끊고 패물을 내놓으며 빚을 갚으려 했던 것은 단순한 모금운동이 아니라 민족 자존의 선언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운동의 거점이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마지막 방어선이 되었다. 또한 부당한 권력에 맞서 거리로 뛰쳐나온 대구 학생들의 함성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처럼 대구경북은 역사의 부름 앞에서 늘 가장 먼저 행동으로 응답해 온 지역이었다. 행정구역은 나뉘어 있어도 대구와 경북은 오랜 시간 생활권과 정서를 공유해 온 ‘하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감을 영문 표기의 첫 글자를 따 ‘TK(Taegu-Kyeongsangbuk-do)’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로마자 표기법이 바뀌어 Taegu는 Daegu가 되었고, 이제는 표기상으로도 ‘DG’가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는 단순한 철자 변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오랫동안 사용된 ‘TK’라는 명칭에는 대구경북 특유의 강인함과 자부심이 담겨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칠고 고집스럽다는 보수적 이미지도 함께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힘의 논리를 넘어 소통과 유연함, 공감의 능력을 요구한다. 이제는 TK가 상징하던 견고함을 넘어, 보다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의 ‘DG’로 인식의 전환을 고민해 볼 때다. 지명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구는 본래 신라 경덕왕 시절 ‘大丘’라고 불렸다. 말 그대로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 문화가 강화되면서 성인 공자의 이름(丘)을 피하기 위해, 같은 음의 다른 한자인 ‘邱’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피휘(避諱)라는 명분 아래 도시가 지녔던 본래의 넉넉한 상징성이 다소 희미해진 셈이다. 최근 대구를 다시 ‘大丘’로 부르자는 움직임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도시가 지닌 본래의 포용력과 따뜻한 이미지를 되찾아 미래로 나아가자는 상징적 제안이다. 최근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행정통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두 지역이 다시 하나로 뭉쳐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TK에서 DG로’, ‘大邱에서 大丘로’의 변화는 단순히 글자를 고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대구경북이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태산교악의 강인한 정신은 계승하되, 그 위에 유연함과 포용력을 더하는 것. 강하지만 따뜻하고, 묵직하면서도 세련된 지역으로 거듭나는 것. 이름의 변화가 대구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뜻깊은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17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켜낸 평화 잊지말아야 할 역사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들어서자 걸음이 느려졌다. 줄지어 선 비석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참전국의 국기들이 하늘 아래서 흔들렸다. 낯선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조국도 아닌 이 땅을 위해 생을 멈추고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묘역의 침묵보다 더 깊게 마음을 울렸다. 묘역 앞에 서자 우리가 지나온 역사는 우리만의 힘으로 버텨 낸 시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엔기 게양대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고 묵념을 마친 뒤,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깃발 사이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국기가 하나 있었다. 독일 국기였다. 한국전쟁과 독일은 내 안에서 쉽게 이어지지 않던 두 이름이었기에, 독일 국기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독일은 전쟁의 깊은 상처를 지닌 나라다. 패전과 분단, 그리고 통일의 시간을 지나온 역사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독일이 한국전쟁 뒤 부산에 의료진을 보냈다는 사실은 내게 뜻밖으로 다가왔다. 의료진은 총성이 멎은 뒤 이 땅을 찾아와 피난민과 시민들을 치료했고, 수많은 산모와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 냈다. 총을 든 대신 붕대를 들고, 파괴의 자리에 와서 돌봄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독일 국기가 걸린 것도 이 의료지원의 기억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장에서 싸운 이들뿐 아니라,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삶을 붙들어 준 사람들 또한 기억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바람 속에서 흔들리던 검고 붉고 노란 색의 물결을 바라보며, 한 나라의 국기에는 영광만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참회의 시간까지 함께 스며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은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지닌 나라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이름 앞에서 어떤 말도 쉽게 가벼워질 수 없다. 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오랜 시간 사죄와 반성을 이어 오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온 역사가 더 무겁게 다가왔다. 평화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에서 독일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은 복합적인 의미로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긴 참회의 시간을 지나 겨우 다시 올려다볼 수 있게 된 상징일지도 모른다. 공원을 걷다 묘역 앞에 섰을 때, 미국인 묘역에 관한 이야기도 떠올랐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나라였지만, 많은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지금 이곳에 남은 이들 가운데는 전쟁 뒤에도 한국에서 삶을 이어 가다 생을 마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 아내와 함께 묻힌 미군 병사의 부부 합장묘도 있었다. 그 이야기는 전쟁을 국가와 국가가 부딪친 거대한 사건만으로 볼 수 없게 했다. 한 사람이 낯선 땅에서 사랑을 만나고, 삶을 꾸리고, 끝내 낯선 땅에 마지막 자리를 남기는 일이기도 했다. 공원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깃발들을 돌아보았다. 바람은 쉬지 않고 지나가는데, 깃발 아래 잠든 이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 침묵하는 것들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는 법이다. 그곳을 다녀온 뒤 내게 국기는 단지 한 나라를 표시하는 천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참회, 그리고 어렵게 지켜 낸 평화가 함께 매달린 표지처럼 보인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6-05-17

(이사람) 장례지도사 교육원 원장 강주영 원장

청순한 첫인상은 영락없는 수녀님이나 학자 모습이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부드러운 외모 뒤에 숨겨진 단단한 집념과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강단이 뿜어져 나왔다. 대구 동인동에 새롭게 둥지를 튼 ‘미래 행복 장례지도사 교육원’의 강주영 원장. 영남대학교 교단에서 현대소설을 가르치던 그가 ‘삶의 이야기’를 넘어 ‘죽음의 의례’를 가르치는 장례지도사 양성가로 변신했다. 강 원장은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석·박사 과정을 거쳐 영남대학교에서 3년간 강단에 섰던 교육 전문가다. 국문학도로서 인간의 삶을 깊이 탐구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에 닿았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인생의 완성이라 생각했습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진심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장례지도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죠.” 그는 직접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장을 경험하며 확신을 얻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시선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장수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 있는 직업”이라는 격려를 받으며 스스로 품었던 편견도 깼다. 이제는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후배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장례업계는 여전히 남성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강 원장은 오히려 감성적 힘을 지닌 여성 장례지도사에게 더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강조한다. “유족의 깊은 슬픔을 엄마 같은 마음으로 보듬고, 정중하면서도 따뜻하게 마지막 길을 정리해 드리는 것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감정 이입을 통해 유족의 마음을 치유하는 ‘동반자’ 역할을 하기에 여성은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죠.” 그가 정의하는 장례 지도사는 단순히 고인을 모시는 기술자를 넘어, 유족이 슬픔을 딛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게 하는 ‘사람 살리는 직업’이다. 강 원장은 ‘제대로 된 교육’과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늘 고민하고 연구한다고 한다. 단 한 명의 수강생이라도 떳떳하고 실력 있는 장례지도사로 키워내기 위해 그는 지금도 매일 전공 서적과 법규를 탐독하며 교안을 다듬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제 가장 큰 자산입니다. 두꺼운 국가 교재와 복잡한 법규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도록 저만의 비결로 준비를 마쳤습니다. 저에게 배운 학생들이 현장에서 ‘정말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제 유일한 목표입니다.” 학력과 연령 제한 없이 300시간의 이수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강 원장은 “마음먹기까지가 힘들 뿐, 문을 열고 들어오면 새로운 인생의 도전이 시작될 것”이라며 사업을 망설이거나 새로운 진로를 찾는 이들에게 진솔한 초대장을 건넸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5-17

스승의 날 학교마다 운동회 열고 기념행사 가져

지난 15일 스승의 날에는 대구시내 초중학교 대부분이 체육대회를 가졌다. 예년이면 초등학교는 어린이날을 전후하여 운동회가 열렸으나 올해에는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뜻에서 많은 학교들이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시민기자는 전교생 492명이 오순도순 즐겁게 공부하는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용산중학교(교장 차운식)를 방문해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 행사를 참관했다. 학교 입구에 들어서자 ‘2026 용산중학교 사제존중 체육한마당’이라고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교문 문주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선생님 덕분입니다’라는 글자가 스승의 날임을 알려줬다. ‘사제동행’ 대신 ‘사제존중’이란 낱말이 색다른 느낌을 줬다. 운동장에는 맑은 하늘 아래 높이 만국기가 펄럭이며 학생들의 응원 소리가 교정을 꽉 메웠다. 오늘의 개회식은 국민의례, 개회선언, 대회사, 선수대표 선서, 주의사항 전달, 준비운동 순서로 진행되었다. 차운식 교장은 대회사에서 “올해 체육대회 프로그램은 철저히 협동심을 기르는 단체경기 위주로 짰다”고 말하고 “오늘 쾌청한 날씨 속에서 경기를 재미있게 즐기면서 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늘의 행사는 개인경기보다 단체경기 위주로 진행됐다. 운동회 프로그램을 보니 응원 및 질서상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응원과 질서가 가장 잘 지켜진 학년별 한 반을 선발해 시상하는데 응원 준비 및 협동 70점, 질서 유지 20점, 주변 정리 10점으로 배점이 돼 본교가 질서를 얼마나 강조하는 지 알 수 있게 했다. 체육대회 경기종목으로는 여느 학교에서나 하는 종목인 학반 이어달리기, 단체 줄다리기가 있었다. 특별 종목으로는 동아리 활동의 댄스반 공연과 학생, 교사, 학부모가 참여하는 카드 뒤집기가 있었다. 그 외 학년 경기는 모두 협동심을 기르는 단체경기다. 3학년 협동 줄넘기, 1학년 농구공 나르기, 2학년 파도타기, 2학년 8자 줄넘기, 학년별 제기차기, 투호 경기, 학년별 줄다리기 등이다. 폐회식은 성적발표, 대회결과 시상, 폐회사, 교가 제창, 폐회 선언으로 이뤄졌다. 운동회가 끝나고 각 반별로 입실해 사제존중행사 및 활동을 평가하는 순서를 마련하여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 돋보였다. 함께 참관한 학부모들은 “오늘 체육대회에서 학생들이 단체 경기에 질서있게 참가하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 것을 보니 흐뭇하다”고 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5-17

2026년도 대구시 어르신생활체육 국학기공대회

대구광역시 어르신생활체육 국학기공대회가 지난 12일 오후 대구시 복합스포츠타운 다목적체육관 3층에서 ‘대구시내 7개 구·군 국학기공 150여 명의 동호인이 참가해 나이에 맞지 않는 기백 넘치는 경연을 쳐 주목을 끌었다. 이 대회는 국학기공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고 구·군 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참가자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정적인 부드러움과 동적인 강인함이 조화를 이루는 국학기공의 진수를 선보였다. 대회를 진행 할수록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 수련법인 국학기공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회는 단체전, 개인전 두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단체전은 각 구·군을 대표하는 팀들이 출전하여 절도 있는 동작과 완벽한 호흡을 선보이며 협동심을 과시했다. 종합성적은 1위 동구(대회기). 부별성적 1위 달서구, 2위 동구, 3위 북구가 각각 차지했다. 개인전은 개별 참가자들이 섬세한 기운의 흐름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시연을 펼쳐 관객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1위 남구 안순자, 2위 서구 이문열, 3위 남구 이강예가 차지했다. 대회에 참가한 한 회원은 “다목적체육관의 쾌적한 환경에서 여러 구·군 회원들과 함께 기를 나누니 몸과 마음이 한층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현장 관계자는 “국학기공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대구 시민들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국학기공 보급을 통해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 서겠다”고 밝혔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5-17

중평마을의 활력··· ‘풀솜할머니’가 다시 그리는 희망

경북 청송군 파천면 중평마을에 활기 넘치는 새댁이 나타났다. 그녀는 쓰러져 가던 옛집을 개조해 ‘촌캉스’라는 이름으로 인기 절정의 민박집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비록 지난해 3월, 갑작스러운 산불로 소중한 공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녀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마을에서는 숙소 재건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수년 전, 마을 중심에 있는 허름한 촌집이 외지인에게 팔렸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마을 한복판의 주택이 혹여 동네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컸던 탓이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자 우려는 놀라움으로 변했다. 낡은 집은 세련된 감성 숙소로 변모했고, ‘풀솜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에어비앤비에 등록되자 전국의 도시인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2022년 8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이곳은 SNS와 입소문을 타며 예약이 줄을 잇는 청송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풀솜할머니’는 1970년대에 지어진 옛집의 고즈넉한 정취에 현대적인 편의를 더해 개조한 독채 한옥이다. 하루에 단 한 팀만 머무는 이 공간은 통창 너머로 보이는 개방감 있는 실내, 전통 자개장과 주방의 샹들리에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당의 야외 바비큐 시설과 넓은 공간은 시골 생활의 여유를 선사하며,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어른들을 위한 이벤트 소품까지 갖춘 주인장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청송 IC에서 3분 거리로 접근성이 좋고, 인근의 고택과 돌담길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마을의 창고와 주택 30여 채가 소실된 거대한 재난 앞에 모두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할 때도 새댁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을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삼겠다며 재건에 전념했다. 지난해 11월에 시작한 공사가 지난 3월 마무리됐고, 지금은 그녀가 직접 실내장식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예전의 ‘촌캉스’를 넘어 이제는 ‘엘레강스’를 표방하며 의지를 불태우는 그녀의 에너지는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청송군 소속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며 지역의 아름다움을 꾸준히 포스팅하던 그녀의 글을 보며 청송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곤 했다. 댓글을 주고받으며 이름 정도만 알던 사이였는데, 그녀가 우리 동네 주민이 되고 마을을 대표하는 숙소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한때 300호가 넘고 신생아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마을은 이제 주민 80여 명의 고령화된 마을이 됐다. 이런 마을에 젊고 활기찬 이웃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기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차 한 잔을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가까운 이웃이 됐다. 서로의 차가 보이면 그녀의 공간에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소품의 위치나 커튼의 색감에 대해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비록 나의 감각이 그녀의 풍부한 상상력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나의 의견에 귀 기울여주는 그녀의 마음씨가 고맙다. 주변에서는 5월 개업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완벽한 준비를 마친 뒤에 시작하겠다며 밤낮으로 숙소를 돌보고 있다. 퇴근 후 매일 들러 현장을 체크하는 그녀의 곁에는 마당에 꽃을 심고 무거운 가구를 옮기며 묵묵히 손을 보태는 남편이 있다. 조만간 ‘촌캉스’의 명성을 이어 ‘엘레강스’로 거듭날 ‘풀솜할머니’가 다시 한번 관광객의 발길로 북적이기를 기대한다. 작은 숙소 하나가 일으키는 활기찬 기운이 폭포수처럼 번져,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정취에 반해 정착하는 이들도 생겨나길 바란다. 그녀의 열정이 담긴 이 공간이 청송을 다시 살리는 기적 같은 마중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3

텔레토비 팝업

황리단길 하늘 위로 빨간 풍선이 떠있다. 저곳이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의 걸음을 재촉해 풍선이 있는 쪽으로 서둘러 갔다. 얼마 전부터 SNS에 계속 등장하는 텔레토비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난 4월 30일부터 콘텐츠 종합 솔루션 기업 페퍼앤솔트가 WildBrain CPLG 및 현대 백화점과 협업해 텔레토비(Teletobbies) 공식 팝업 스토어를 선보이고 있다. 장소는 경주시 포석로 1058-26 경주시 황리단길 생활문화센터 1, 2층이다. 주차는 가급적 주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길 권한다. 평소에도 황리단길은 주차난이 심각한데다 연휴로 많은 인파가 몰려 접근조차 쉽지 않다. 텔레토비는 영국에서 제작된 유아 교육 프로그램이다. 2~5세 정도의 유아들의 시각에 맞춰졌다. 그렇다 보니 대사들도 해당 나이의 유아들이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간단한 문장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반복되는 대사 역시 유아의 특성과 교육적 효과에 맞춰졌다. 1998년 한국 첫 방영 당시 17%라는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끌었다. 보라, 연두, 노랑, 빨강으로 각각 네 가지 색의 옷을 입은 보라 돌이, 뚜비, 나나, 뽀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머리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안테나가 있으며 배에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영상을 보여준다. 뒤뚱 뒤뚱 거리는 걸음걸이가 매우 귀엽다. 이들은 오프닝 노래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키가 다르다. 그 중 키가 가장 큰 보라돌이는 키가 300cm에 달하다 보니 배우의 키도 18~192cm 사이에서 캐스팅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잔디로 덮인 야외 언덕이 주 배경인데 얼핏 경주의 고분과 닮은 점이 있다. 그 부분은 이번 팝업에서 사람들의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예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어 금세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층은 포토존 및 뽑기, 사진 촬영 등을 할 수 있다. 포토존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본격적인 팝업 스토어가 펼쳐졌다. 함께 동행한 아이와 몇 가지 상품을 고심 끝에 구매 후 계산대로 갔다. 직원이 영수증을 발급하며 혹시 텔레토비들과 사진을 찍을 예정이냐 묻는다. 그렇다 하자 영수증 뒷면에 사진 촬영이 가능한 스티커를 붙여줬다. 사진 촬영권은 구매 금액 상관없이 구매 순서에 따라 선착순으로 배부된다. 팝업 스토에서 촬영은 시간당 선착순 50팀만 가능하다고 했다. 50팀의 사진 촬영은 20여분 정도 진행되고 종료됐다. 이날은 비가 와서 실내에서만 행사가 이뤄졌다. 텔레토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요일은 총 4일이다. 황리단길 문화센터는 5월, 3, 5, 9일에 이어 16일이며 오전 11시, 낮 12시에 각각 20분씩 이뤄진다. 첨성대는 5월 1, 3, 9일이었으며, 대릉원은 5월 5일과 16일로 오후 2시·3시·4시·5시에 각각 20분씩이다. 이 외에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운영중이다. 경주의 주요 관광명소(대릉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 교촌마을)를 방문해 비치된 스탬프를 찍고 완료한 미션용지를 들고 팝업 스토어에 방문하면 경주 에디션 굿즈를 받을 수 있다. 선물은 텔레토비 금관 핀 배지로, 1일 150팀에게 선착순 증정하며, 소진 시에는 방문 사은품으로 대체된다. 추억 속 귀여운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는 오는 17일까지 진행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3

시민과 함께 나누는 문화의 울림, ‘포항영상문화포럼’

지난 4월 30일, 형산새마을금고 부속 형산아트홀에서 제65회 ‘포항영상문화포럼’이 열렸다. 200석 규모의 최신 음향 시스템과 360인치 고화질 대형 스크린을 갖춘 이곳에서 약 50여 명의 포항시민이 모여 뮤지컬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공연 영상을 이상빈 교수의 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2010년 제작된 대형 뮤지컬 공연 영상으로, 1985년 영국 런던 초연 배역들과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진, 세계 순회공연 멤버 등 약 300여 명의 배우와 연주자가 함께한 기념비적 무대를 담아낸 영상이다. 특히 초연 당시 주요 배역을 맡았던 대부분의 배우가 참여해 공연의 의미를 더한다. 비록 영상으로 접하는 공연이지만, 관객들은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며 현장 못지않은 몰입과 감동을 나눴다. 상영 후에는 이상빈 교수와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작품 속 배역들의 진정한 역할과 서사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교수의 명쾌하고 깊이 있는 해설이 더해지며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이 작품이 1862년 발표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세기 당시 프랑스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냈다는 설명은 작품 감상의 밀도를 한층 높여줬다. 다만 3시간이 넘는 대작인 만큼 이날은 시간 관계상 주요 장면 위주로 축약 상영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언젠가는 전편을 모두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행사가 형산아트홀에서 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형산새마을금고의 협력이 있었다. 지난 1월 개관한 이곳은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번 포럼 역시 장소 협찬을 통해 진행됐다. 지난해에는 포항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YMCA를 통해 재정 지원도 이뤄졌지만, 행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꾸준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포항영상문화포럼’은 이상빈 교수가 평생에 걸쳐 수집해 온 세계 각국의 뮤지컬과 음악 공연 자료를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시작된 문화 나눔 활동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2017년 ‘포스텍 영상포럼’으로 시작해 이후 지역 시민들까지 참여 범위를 넓히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상빈 교수는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불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다. 포스텍 퇴직과 함께 포럼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이를 아끼는 시민들의 요청으로 매월 마지막 주 서울과 포항을 오가며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역 시민들의 문화적 열정에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서울에서도 가지기 힘든 행사를 통해 포항 시민들의 교양 수준을 국내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번 행사는 형산아트홀 개관 이후 진행된 프로그램 공모를 통해 시범 상영 형태로 마련됐으며, 새마을금고와 YMCA의 협력 홍보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참석자들의 높은 만족도 속에 행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수도권에 비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 현실 속에서, 수준 높은 공연 영상을 전문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포항영상문화포럼’은 시민들에게 드물고도 소중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문화는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안정적인 지원과 공간 확보를 통해 이러한 문화 나눔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3

(노당익장 문인을 찾아서) 황인동 시인을 만나다

“나이야 가라, 나는 아직 현역이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기개를 넘어, 한 인간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응축한 선언에 가깝다. 황인동 시인은 지금도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말 그대로 ‘현재 진행형’의 시인이다.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한 그는 교단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이들과 마주하던 그 시간은 그의 삶에 따뜻한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갈림길을 마련해 둔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접한 공무원 시험 공고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제대를 앞두고 진로를 두고 깊이 고심하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다시 교단에 서기도 했으나 그의 삶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한 어르신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대학까지 나왔으니 더 큰일을 해야지.” 이 짧은 한마디는 그의 내면에 오래 남아 있던 불씨를 일깨웠다. 결국 그는 공직의 길을 선택했고, 대구시를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진출했다. 이후 문화예술과장을 역임하며 지역 문화행정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고, 청도 부군수로 재직하며 때로는 군수대행의 중책까지 맡아 지방 행정의 중심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했다. 퇴임 이후에도 지역 사회와의 인연을 이어가며 기업 경영을 맡는 등 그의 행보는 쉼 없이 이어졌다. 그의 삶을 지탱해온 또 하나의 축은 가정이었다. 초임 공무원 시절, 장래를 둘러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는 “그는 결코 평범한 인물로 머물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그 믿음은 긴 세월 동안 그의 곁에서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되었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행정가로서의 길과 더불어, 그는 문학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대구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고, 수많은 예술인들이 선망하는 대구예술대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공고히 했다. 그의 시는 삶의 굴곡을 통과하며 얻은 깊이와 온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 선택들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교사에서 공무원으로, 문화행정의 중심에서 지역을 이끄는 지도자로, 그리고 끝내 시의 길 위에 선 문인으로 이어진 여정. 그 모든 궤적은 ‘노당익장’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지금도 그는 변함없이 말한다. “나이야 가라, 나는 아직 현역이다.” 그의 삶은 아직도 쓰이는 중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우리 모두의 내일을 향해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의 ‘소싸움’ 시 한편을 소개한다. "자 봐라! 수놈이면 뭐니뭐니 해도 힘인기라/돈이니 명예이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봐라, 저 싸움에 도취되어 출렁이는 파도를!/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12

(시민기자 단상) 좋은 나라에 대한 자부심

불과 반세기 전, 보릿고개의 허기를 검정 고무신으로 버티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성장이 아니다. “잘살아 보세”라는 일념으로 피땀 흘린 세대가 빚어낸 기적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사회시스템과 시민의식 전반에서 ‘격(格)’을 갖춘 국가로 진화했다. 국가적 위상을 가장 견고하게 뒷받침한 분야는 세계를 호령하는 우리 기업들이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로 대표되는 초격차 기술력은 대한민국을 글로벌 경제의 핵심 축으로 올려놓았다. 황무지에서 꽃피운 첨단 산업의 승전보는 우리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오늘날 전 세계가 한국의 기술과 제품에 의존하는 ‘기술 강국’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러한 대기업들의 활약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일등 공신이다. 사회 내부의 온기 또한 눈부시다. 과거 병원비가 무서워 병을 숨기던 시절은 먼 옛날 이야기다. 이제 의료보험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됐고, 노인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촘촘하게 엮인 사회안전망은 복지를 ‘시혜’가 아닌 국민의 당당한 ‘권리’로 격상시켰다. 국가가 국민을 살피고, 공동체가 약자를 보듬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삶의 질과 환경 문화의 변화 또한 경이롭다. 세계가 감탄하는 청결한 공공시설과 성숙한 분리수거 문화는 단순한 미화(美化)를 넘어선다. 삶의 현장 곳곳에서 시민들이 취미와 봉사로 삶을 가꾸는 풍경은 대한민국이 ‘힐링’을 누리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행보는 국가적 품격의 완성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제 정착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성취다. 국민은 이제 단순한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감시자이자 주체로 성장했다. 주민참여예산제 등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졌고, 이는 중앙집권적 국가에서 시민 중심의 국가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런 성취 뒤에 깔린 짙은 그림자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최근의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이념과 진영의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이 진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외교와 안보, 치안과 인권이라는 국가의 기본 틀이 정치적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흔들리는 모습이다. 경제의 숨 고르기는 길어지고, 사회적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좋은 나라’는 국민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우리 부모 세대가 땀방울로 길을 닦았다면, 이제 우리는 그 길 위에 신뢰와 화합의 꽃을 피워야 할 책무가 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고백은 지난 고통을 이겨낸 자부심이자, 동시에 미래를 향한 준엄한 약속이어야 한다. 좋은 나라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믿고 연대하며 끊임없이 가꾸어야 할 현재 진행형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을 모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자부심은 비로소 지속 가능할 것이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5-12

학생자치회 주관으로 학교폭력 예방 활동 벌인 경산 사동고

경북 경산 사동고등학교(교장 권오수)는 학생 자치회 주관으로 다양한 학교폭력 예방 및 소통 활성화 프로그램을 실시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학생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행사 기획부터 운영까지 직접 맡아 진행하게 함으로써 학교폭력 예방 효과 뿐아니라 소통채널이 넓어지면서 건전한 교내 분위기 조성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평가다. 학교는 지난 3월 23일부터 4월 17일까지 약 한 달 가까이 1· 2학년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교내 스포츠 리그를 벌였다. 학생들이 직접 운영토록 하고 반별로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종목은 피구와 발야구로 했다. 운동을 겸한 반별 대결을 벌이자 학생들 간 소통이 자연스러워지고 친밀감마저 커져 학교폭력은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또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및 학교 흡연 예방 캠페인도 전개했다. 아침 등굣길과 점심시간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자치 순찰을 돌게 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 학생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예방활동을 주도할 수 있어서 뜻 깊었다”며 “학교에 대한 책임감과 자긍심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어 교내 시청각실에서는 학교장과 함께하는 학생 소통간담회도 개최했다. 이를 통해 전교생의 다양한 의견을 교장선생님이 직접 듣고 이를 개선해 학생들이 크게 만족해 했다. 권 교장은 “학생회가 주관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주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보임에 따라 건전한 학교문화를 만드는데 큰 성과를 냈다”며 “학생들의 자치역량을 키울 수 있게 앞으로 자치회를 통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5-12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얼마나 알고 있나요

5월 10일은 유권자의 날이며, 6월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선거일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선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선거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을 대신해 지역이나 나랏일을 맡을 사람을 뽑는 과정이다. 시민이 직접 주권 행사를 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이번 선거는 우리의 생활과 직결된 정책을 수립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우리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인 시도지사와 구시군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인 시도의원, 구시군의원과 지방교육자치단체의 교육감을 뽑는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동시에 실시된다. 18세 이상(2008년 6월 4일에 태어난 사람)으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사람과 재외국민으로서 주민등록표에 3개월 이상 계속해 올라있는 사람, 또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사람과 외국인은 영주 체류자격 취득일 후 3년이 경과한 외국인으로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 등록 대장에 올라있는 사람은 투표를 할 수 있다. 외국인은 국회의원 재 보궐선거에는 선거권이 없다. 투표자가 꼭 지켜야하는 것은 투표용지 한 장당 한 명의 후보자에게만 기표해야 한다. 시군의원 선거에서 정당이 같은 선거구에 두 명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한 경우에도 한 명의 후보자에게만 기표해야 하며, 두 명 이상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우 무효가 된다. 사전투표와 선거일 투표장에 갈 때는 신분증을 챙겨야 하는데,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공무원증, 국가보훈등록증, 장애인복지카드, 청소년증, 국가기술자격증, 각급 학교의 학생증 등도 가능하며 이 신분증 중 모바일 신분증도 가능한데, 화면 캡처 등 저장한 이미지는 불가능하다. 유권자는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하면 안 되고, 투표할 때는 기표소의 기표 용구만 사용해야 하며, 투표지를 훼손하면 처벌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이제 곧 후보자를 알리는 선거 벽보가 게시된다. 이 선거 벽보를 정당한 사유 없이 훼손하거나 철거한 사람은 공직선거법 제240조 규정에 의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유권자는 벽보를 보고 혹은 가정에 배달된 선거공보물을 보고 또 선거 방송을 보거나 듣고 공약을 확인 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한 명을 선택해 투표한다. 선거일에 투표가 어려운 유권자는 사전투표를 할 수 있다. 사전 투표일은 29일과 30일이며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주민등록지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투표소는 주로 주민센터이지만 아닌 곳도 있으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나의 권리를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는 한 표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대구지상철 3호선 황금역에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와 대구도시철도가 ‘선거 테마역사’로 꾸며 놓았는데 2020년도 국회의원선거에서 한 표는 대략 4700만 원의 소요 경비가 들었다고 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가짜 뉴스와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밝은 미래를 위해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도록 하자. /안영선 시민기자

2026-05-12

추억의 맛과 곁들인 마음을 울린 그림책으로 호사 누리기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내게서 출발한 책들이 지인과 친구들 손에 들렸다가 그들의 책꽂이에 잠시 머문다. 그 후의 시간은 분리수거장이거나 냄비 받침으로 쓰이다 헌책방 구석으로 숨을지 모른다. 내 책의 독자인 친구들과 부산 국제시장으로 쇼핑을 갔다. 쇼핑이 목적이지만 찬란한 봄날을 제대로 즐기려고 나선 소풍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오늘 일정은 맛집에서 점심, 쇼핑, 흑백 사진 찍기, 보수동 헌책방 둘러보기, 맛집에서 저녁 먹고 돌아오는 걸로 짰다. 오후 2시 사진관 예약만 확실한 약속일 뿐 다른 건 발에 닿는 대로 갈 예정이다. 포항 제일교회에서 만나 한 차로 출발했다. 일없이 외동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참새가 방앗간 들어가듯 들러 카푸치노 한 잔과 땅콩빵 한 봉지를 샀다. 차 안에서 나눠 먹으며 별 이야기 아닌데도 깔깔거렸다.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집을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즐거웠다. 국제시장은 이름답게 평일인데도 전 세계 사람으로 넘쳤다. 시장에 우뚝 솟은 주차타워에 차를 맡기고 곱낙전골로 유명한 ‘개미집’으로 향했다. 자주 가도 갈 때마다 헷갈리는 골목이다. 그래도 한 번에 찾아냈다. 친구들 입맛에 맞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맛있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화장실은 찾기 힘드니 개미집에서 해결하고 옷 가게로 향했다. 평생 얌전한 옷만 입은 친구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추천했다. S는 주저주저하다 내가 추천하는 원피스, 셔츠를 계산대에 올렸다. 하지만 색이 찐한 파란 치마는 용기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바지만 입는 G를 원피스 맛집으로 데려가서 하나를 골라 일단 입어보라고 떠밀었다. 갈아입고 나온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잘 어울렸다. 입은 그대로 사진관으로 향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자리한 흑백 사진을 찍어주는 곳이다. 오후 2시 예약인데 30분 전이라 헌책방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그림책을 가게 앞에 많이 내놓은 곳에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림책 큐레이션-학문서점 앞이다. 우리는 그림책 공부하며 만난 사이니까 자석처럼 끌렸던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주인장이 나오더니 자신의 그림책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하며 안으로 데려갔다. 15년 헌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그림책을 많이 읽었고, 읽다 보니 아이들 책이라 생각했던 그림책이 어른을 위한 책이더라고 이야기보따리를 펼치려 했다. 잠시만요, 우리 사진 찍고 다시 올게요. 흑백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새로 산 원피스에 셔츠랑 청재킷을 걸치고 우정 사진을 찍었다. 백 장 가까운 사진 중에 고르고 골라 인화를 맡기고 다시 학문서점으로 갔다. 차나 팥빙수 중에 하나를 주문하면 주인장이 손님에게 어울리는, 좋아할 만한 책을 7권 골라 준다고 했다. 우린 빙수와 차를 다 골랐다. 세 사람을 자세히 보더니 빙수의 얼음이 갈리고 차가 우려질 동안 고르고 고르더니 우리 테이블 가득 차렸다. 빙수가 녹는 줄도 모르고 각자 앞 그림책에 정신이 팔렸다. 녹기 전에 먹으라는 주인장의 재촉에 맛을 보았다. 옛날 빙수 맛이었다. 너무 달지도 싱겁지도 않은 추억의 맛이었다. 꽃차도 순하게 몸에 스몄다. 쇼핑하며 뜨거워진 몸이 릴렉스 되며 차분하게 그림책 안으로 들어갔다. 첫 책은 박준 시인의 시에 그림을 입힌 ‘우리는 안녕’이다. 내가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라 주인장에게 들킨 것 같아 놀랐다. 또 한 권 내 마음을 울린 책은 ‘자린고비’, 영화 ‘만약에 우리’를 떠올리게 했다. 올 한 해 책을 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무너뜨리게 했다. 여기 맛집이구나, 마음이 환해져서 돌아왔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1

보부상의 발자취와 ‘내성행상불망비’

십이령을 통해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며 상거래는 물론 문화와 정보 교류의 중추 역할을 했던 십이령 보부상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보다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봉화와 울진을 잇는 ‘십이령’은 열두 개의 고갯길을 뜻하며 ‘보부상길’이라고도 불린다. 봉화·영주 방향에서 동해안 울진으로 가는 핵심 통로였으며, 험준한 산세 탓에 당시 울진 사람들이 내륙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이동이 매우 불편했기에, 한 번 길을 나서면 3일에서 길게는 7일 밤낮을 걸어야만 했다. 이처럼 멀고 험한 여정 탓에 고갯길 곳곳에는 주막이 번성했고,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보부상의 애환과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19세기 초 한양에서 봉화까지가 중심도로로 지정되면서 십이령은 봉화와 울진을 잇는 동서 연결의 주 통로가 됐다. 이때부터 보부상뿐만 아니라 원님과 관원, 일반인들까지 오가는 대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봉화 춘양장을 지나 모래재, 살피재, 막지고개, 곧은재, 꼬치비재를 넘으면 비로소 울진 땅에 접어든다. 이후 큰넓재, 한나무재, 저진터재, 너삼밭재, 새재, 바릿재, 쇠치재를 거쳐 흥부장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1880년 이전부터 이미 ‘십이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봉화 보부상 조직인 ‘내성행상단(봉화상무사)’은 기록에 따르면 1860년대부터 체계화된 활동을 시작했다. 1904년 일제강점기 보부상단 말살 정책으로 조직이 와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임의단체 형식으로 상행위를 지속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60년대 초 도로가 개통되고 자동차 중심의 물류 체계가 잡히면서 십이령을 오가던 보부상들은 자연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울진 두천리 바릿재 입구에는 경북문화재자료 제310호로 지정된 ‘내성행상불망비’가 있다. 내성행상단의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보부상들이 세운 철비로, 1880~189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장시를 엄격히 관리해 문란한 상행위를 바로잡고, 특히 산적이 득실거렸던 험난한 십이령을 안전하게 관리해 보부상들의 존경을 받았다. 반수 권재만은 1878년 최고 직책에 오른 인물로, 이후 봉화상무사의 공사원을 역임하며 조령 성황사에 현판 기록을 남기는 등 상단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두천리 주막촌은 한창 번창할 때 20여 개의 주막과 마방이 들어섰던 보부상들의 거점이었다. 십이령의 본격적인 시작점인 바릿재부터는 산세가 험해 산짐승의 공격이나 산적의 위협이 컸다. 이에 보부상들은 혼자 고개를 넘는 대신 두천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동료를 기다렸고, 이튿날 새벽 30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씩 집단을 이루어 고개를 넘었다. 이들은 울진 흥부장과 읍내장에서 소금과 어물을 구입하고, 봉화에서는 곡물, 인삼, 담배, 대마 등을 구입해 넘나들며 내륙과 해안을 잇는 정보 교류의 유일한 창구 역할을 했다. 객지를 떠돌던 보부상들에게 상단 조직은 곧 가족이었기에 엄격한 규율과 위계질서, 그리고 상부상조하는 직업윤리가 필수적이었다. 전국적으로 보부상 관련 유물과 문헌이 드문 상황에서, 십이령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비석과 문서들은 우리 상인 문화를 보여주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다. 보부상의 정체성이 서린 이 길과 전통문화에 대해 이제는 사회적인 보존 노력이 수반돼야 할 때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1

용담정에서 만난 동학(東學)

경주는 꽃의 도시다. 불국사의 겹벚꽃이 떠나고 다시 흰 꽃이 찾아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릉원 돌담길과 계림로 가로수길에 소복이 내린 이팝나무꽃이 눈처럼 환하다. 오늘은 눈부신 꽃길이 아니라 인문학 회원들과 초록이 물든 용담정(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산 63-1)으로 향한다. 경주가 고향이다 보니 늘 역사와 가까이하고 있지만 잊어버리고 사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중 하나가 동학이다. 처음 듣는 말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기억에서 멀어졌다. 완연한 봄 햇살이 퍼지는 구미산에서 다시 동학을 만난다. 용담정은 구미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토함산이나 단석산처럼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산의 모양은 거북이 꼬리 모양을 닮았다. 하지만 구미산 기슭 아래서 모두가 평등하기를 이야기했던 ‘동학’의 발상지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더했다. 회원들은 먼저 용담정의 정문 ‘포덕문’을 지나 먼저 수운 최제우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포덕문은 수운 최제우가 한울님과 만나는 과정을 기록한 글인데 그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지었다. 그 앞에서 경주 최씨 성을 가진 회원분은 자신의 조상인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준비한 꽃다발을 놓았다. 용담정으로 오르는 길은 곧게 뻗은 나무와 물소리를 듣고 걷는 숲길이라 가을 단풍의 숨은 명소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기분이 좋다. 그 길 끝에서 부드러운 햇살이 비추고 있는 용담정을 만났다. 앉아서 둘러보니 주변 경치에 머리가 맑아졌다. 수운 최제우는 이곳에서 한울님을 만나고 ‘포덕문’을 썼다. 그리고 민족 종교인 동학이 태어났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동학은 단순히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로 이어지는 천도교였다. 동학은 천주교라는 서학에 맞선 인내천과 후천개벽 사상이 동학이라 알고 있었지만, 인문학 여행에서 다시 알게 된 인내천은 천도교의 교리였다. 수운 최제우가 내세운 동학의 기본 이념은 시천주(侍天主)이다. 세상 만물이 하늘을 모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천주는 상제를 말하는 것이고 유교나 불교, 도교에서 미륵불, 옥황상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천주는 서학(천주교)에서 말하는 천주라 여겨 감시 대상이 된다. 서학을 경계하고 있던 나라에서 최제우의 동학을 서학의 변형이라 여겼다. 서양의 세력이 동양으로 향하던 어지러운 시기, 나라 안에서는 삼정 문란과 세도정치로 백성들은 먹을 것조차 없었다. 안에서 썩어가던 조선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니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이 떠올랐다. 동학은 시나브로 민중 속으로 퍼져나갔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게 했다. 역사를 대할 때면 핍박당한 백성들의 삶이 늘 먼저 떠오르는데 동학이 이들에게 하나의 희망이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최제우는 이름도 바꿨다. 원래 세상을 건져 베푼다는 제선에서 어리석은 세상을 건진다는 뜻의 제우가 되었다. 동학은 종교가 아니라 도(道)라고 한다. 어떤 정신으로서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용담정을 내려가기 전 안으로 들어가 회원들과 간단한 인사도 올렸다. 마지막으로 수운이 태어난 집 앞에서 구미산을 올려다본다. 회원들과 함께한 용담정에서 첨성대, 동궁과 월지를 넘어 조금 더 깊숙한 경주의 역사를 느낀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 동학을 다시 생각해 본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11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접고 사는 남자

우리 때는 할아버지께서 사랑채에 앉아 헛기침 한 번만 해도 집안의 대소사가 큰 마찰 없이 잘 돌아갔다. 그저 “거기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이 곧 통제력이요, 침묵이 곧 명령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오늘에 와서는 그 가부장의 권위라는 것이 왜 이리도 작아졌을까. 오호통재라. 다시 생각해도 서글픈 노릇이다. 헛기침은커녕 숨소리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분들은 고개부터 가로저을지 모른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우리 남자들 역시 할 말은 있다.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 시대에는 여자가 결혼을 하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돈 벌어 오는 일은 남자의 몫, 여자는 집안 살림이 본분이라는 생각이었다. 살림이 편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돈 버는 일’에 비하면 그래도 덜 고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돈벌이는 죽을 모퉁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시장바닥에서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가족들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낸 세월이었다.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직장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사의 눈치는 기본이고, 젊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올 때마다 의자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말없이 가장 노릇을 해냈다. 자기는 고생을 해도 여자는 집에서 편히 살림만 하게 했다. 그것이 최선의 배려라고 믿었다. 배려가 어디 그것뿐이었겠는가. 미국 같은 선진국도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자의 성을 따르지만, 우리는 끝까지 자기 성을 지키게 했다. 자라온 동네 이름으로 택호까지 불러 주지 않았던가. 투박해 보여도 나름의 예우였다.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다 보내고 정년퇴직을 맞은 실버 세대. 이제는 좀 편히 쉬며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말 한마디쯤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요즘은 이분들을 두고 ‘간 큰 남자’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희화화한다. 한 끼도 집에서 안 먹으면 영식님(零食任)이라 높여 부르고, 한 끼 먹으면 일식 씨(一食氏), 두 끼 먹으면 두 식군(二食君)으로 슬슬 낮아지더니, 세 끼 다 먹으면 그냥 ‘삼식이’란다.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무슨 대역죄라도 되는 양 취급을 받는다. 그뿐인가. 부인이 드라마를 보는데 스포츠 중계를 보자고 하면 간 큰 남자란다. 종이 돈도 반쯤 접어야 지갑에 들어가니, 그 정도는 지폐 접듯 접어 줄 수도 있다.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간 큰 남자란다. 그것도 이재에 어두워 재산을 못 늘렸으니 손수건 접듯 접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침에 밥 달라고 밥상머리에 앉는 간 큰 남자”라는 말만큼은 도저히 접어 줄 수가 없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아침밥 달라는 게 그렇게 큰 배짱일 일인가. 자꾸 접고 또 접다 보면, 나중에는 접을 자존심조차 남지 않는다. 웃자고 하는 말도 반복되면 학습 효과가 생긴다. 처음엔 농담이었는데 어느새 머릿속에 각인되고, 그렇게 규정이 되어 버린다. 말이 현실을 만들고, 현실은 다시 사람을 옭아맨다. 사용자 원칙으로 보자면, 이 말은 아마도 여자들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여자들이여, 한평생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가족을 부양해 온 실버 세대에게 이쯤이면 예우를 해 주자. 믿는 분들은 알겠지만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요즘 기준으로 읽으면 불편할 수 있으나, 그 속뜻은 가정을 이루는 두 기둥이 서로를 존중하라는 말일 것이다. 사랑채에 앉아 있기만 해도 집안이 조용히 돌아가던 할아버지 시절이 문득 그립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감만으로도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 과연 만용일까. 아니면 아직 접히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일까.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10

꿀벌, 올해만 100억마리 이상 죽거나 사라져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올해만 100억 마리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졌다고 한다. 매년 반복되는 꿀벌의 실종사태에 양봉농가의 피해는 갈수록 태산이다. 매년 5월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이다. 국제연합(UN)이 전 세계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산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된다. 꿀벌이 우리에게 꿀을 주는 것보다 식량을 생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꿀벌의 보호가 더 절실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꿀벌이 사라지면서 양봉 농가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급격한 기후 변화, 농약과 화학비료의 무분별한 사용, 살충제 과다한 사용 등 복합적이다.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만 벌통 50만 개 이상, 100억 마리 이상이 죽거나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는 저온 현상이 발생해 꿀벌의 활동이 원활하지 못했고, 12월에는 겨울잠에 들어간 일벌들이 고온 현상으로 인해 일찍 외부활동을 시작하면서 체력이 소진되어 돌아오지 못한 때문이다. 벌집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죽어 군집 붕괴 현상까지 나타났다. 응애류의 피해로 꿀벌의 생태계가 붕괴 직전이라 한다. 꿀벌은 벌목과 곤충으로 누에와 함께 인류에게 사육된 가장 오래된 곤충이다. 꿀벌의 몸 표면에는 잔털이 나 있는데, 점성이 큰 꿀이 달라붙지 않고, 꽃가루를 잘 모을 수 있도록 한 구조다. 이들 꿀벌은 자기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꿀과 꽃가루를 모으기도 하지만, 식물의 꽃을 찾아다니며 곡식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수분(受粉) 작용도 해준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꿀벌이 식량 재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473조원에 이른다고 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2일 기준 전국 227만6593개의 벌통 중 39만517개의 벌통이 피해를 입었으며 일반적으로 벌통 1개당 겨울에는 1만5000마리 여름에는 3만마리가 사는데 지난 겨울에만 약 78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양봉업자에 의하면 1kg의 꿀을 만드는데, 400만 송이의 꽃을, 지구 네 바퀴인 140만 km를 꿀벌이 비행한다고 한다. 꿀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날아다니며 꿀을 모아 놓으면 양봉업자는 그걸 꿀벌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이다. 대구지방에 아카시아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양봉가 김봉수(72·군위군 산성면)씨는 아카시아 꽃이 한창 필 때는 아침에 채밀하고 저녁에 보면 벌써 꿀이 또 많이 들어 와 있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꿀벌을 보호하고 양봉 농가의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와 기술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2024년에는 농약이 꿀벌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국내 환경에 맞는 꿀벌 유충 독성시험법을 만들었고, 2020년에는 딸기와 수박에 맞는 맞춤형 화분 매개용 꿀벌도 준비하여 꿀벌 감소의 원인을 분석하며 수분의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꿀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때다. 일단 꿀벌에게 치명적인 살충제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살충제 대신 친환경적인 방제법을 도입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벌이 좋아하는 식물을 재배하는 방법도 있다. 농장 근처에 꿀벌의 먹이원이 되는 꽃이 계절별로 피도록 다양하게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5-10

달성군 마비정 삼거리에 핀 ‘붉은 아카시아’

초록의 싱그러움이 짙어가는 5월,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 마비정 삼거리에 이색적인 봄의 전령사가 찾아왔다. 지난 1일 수줍게 한두 송이 꽃망울을 터트리던 ‘붉은 아카시아(붉은꽃아까시나무)’가 어린이날인 5일, 마침내 흐드러지게 만개하며 상춘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연녹색 잎사귀 사이로 탐스럽게 피어난 진분홍빛 꽃송이들은 마치 삼거리를 화사한 수채화 물감으로 물들인 듯 장관을 연출한다. 하얀 향기 대신 진한 붉은빛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붉은 아카시아는 어떤 나무일까. 우리가 흔히 아는 아카시아(아까시나무)는 하얀 꽃을 피우지만, 마비정 삼거리의 주인공은 멀리서 보면 마치 영산홍이나 자목련을 연상케 하는 짙은 분홍빛을 자랑한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장미목 콩과의 낙엽 교목으로, 정식 명칭은 ‘붉은꽃아까시나무’(꽃아까시나무)다. 1920년대 무렵 한국에 조경용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 아카시아보다 꽃송이가 더 크고 탐스러우며,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피어난다. 흰 아카시아만큼 향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겨 코끝을 자극한다. 현재 마비정 삼거리에는 이 희귀한 붉은 아카시아나무 몇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매년 이맘때쯤 마을의 명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비정(馬飛亭) 마을은 이름에서부터 애틋한 전설을 품고 있다. 붉은 아카시아의 강렬한 빛깔은 어쩐지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과 닮아 꽃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련하게 만든다. 옛날 이 마을에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비마(飛馬)’가 살고 있었다. 당시 이곳을 다스리던 장수는 비마의 기량을 시험하기 위해 “내가 쏜 화살보다 늦게 달리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활을 쏘았다. 비마는 바람처럼 달려 화살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화살이 보이지 않자 장수는 비마가 진 줄 알고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 순간 뒤늦게 화살이 날아와 꽂혔고, 장수는 자신의 경솔함을 크게 후회하며 비마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훗날 사람들은 말의 넋을 기리며 이곳을 ‘마비정(馬飛亭)’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봄마다 피어나는 이 붉은 아카시아꽃이 아깝게 목숨을 잃은 천리마의 뜨거운 붉은 피이자,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일편단심의 사랑과 충정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를 구전으로 전하고 있다. 이곳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과 연인들에게 최고의 포토존이 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늘 하얀 아카시아만 보다가 녹음 속에서 피어난 분홍빛 아카시아를 보니 마술을 부린 것 같다”며 “마비정 삼거리의 전설을 듣고 보니 꽃이 더 붉고 애틋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중교통 이용 시 도시철도를 타고 대곡역에 내려 1번 출구 버스정류장에서 달성 2번 마비정가는 버스를 타고 마비정 삼거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5-10

대구 성당동의 숨은 명소 ‘금봉 참옻닭’

대구시 달서구 대성사 인근, 화려한 상권과는 거리가 먼 호젓한 변두리 길목에 유독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금봉산 자락의 명소 ‘금봉 참옻닭’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투박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는 ‘뚝배기’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한 국물이 담긴 뚝배기가 상 위에 오른다. 놀라운 것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국물이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 먹을 때까지 따끈한 온기를 유지하는 그 국물 한 모금에 손님들의 고단한 하루가 녹아내린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민지 대표는 올해로 12년째 옻닭을 만들고 있다. 해물탕집을 운영하다가 우연히 시작한 옻닭이 이제는 그녀의 인생 자체가 되었다. 김 대표는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단호하게 ‘밥맛’과 ‘정성’을 꼽았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드실 수 있게 닭고기를 일일이 손으로 찢어서 내어드렸어요. 지금은 물가가 올라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옻닭 진국으로 지은 찰밥만큼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곳 손님들은 찰밥을 ‘명품 밥’이라 부른다. 옻닭 국물의 영양이 고스란히 밴 윤기 흐르는 찰밥은 그 자체로 보약이다. 식당에서 밥이 남아 싸가는 풍경은 생소하지만,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집에 가서도 그 밥맛을 잊지 못해 남은 밥을 소중히 챙겨가는 손님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옻은 예로부터 ‘천하의 명약’이라 불렸지만, 독성 때문에 꺼리는 이도 많다. 하지만 김 대표의 참옻닭은 다르다. 비결은 철저한 건조와 정직한 조리법에 있다. 충북 제천 자연산 참옻나무를 군위 약재상에서 직송한다. 최소 6개월 이상 바짝 말려 독성을 제거한다. “비법은 간단해요. 다른 첨가물 없이 오로지 잘 마른 참옻나무와 물, 그리고 닭뿐입니다. 센불에서 팔팔 끓이다가 약불로 줄여 4시간을 우려내죠. 그래야 맑고 투명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황금빛 진국이 나옵니다.” 여기에 10년 넘게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다. 정제된 소금은 뒷맛을 깔끔하게 하고 건강까지 챙겨준다. 김 대표 스스로가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이 국물을 마실 만큼 품질에 자신감이 넘친다. “제가 12년간 이 일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게 바로 이 국물 덕분 아니겠냐”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만 원의 행복, 우리 이웃을 위한 보양식입니다” 금봉 참옻닭의 메뉴는 1만 원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참옻닭 진국과 고기, 명품 찰밥, 그리고 정갈한 밑반찬까지 내어주며 1만 원을 받는 것은 수익보다는 ‘봉사’에 가깝다. 김 대표의 따뜻한 마음은 식당 밖에서도 이어진다. 몸이 식당에 매여 있어 직접 봉사하러 가지는 못하지만, ‘사랑의 밥차’ 등에 11년째 꾸준히 기부하며 다른 매체에도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거창한 답변 대신 소박한 진심이 돌아왔다. “별다른 계획은 없어요. 그저 내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