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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머니의 텃밭에서 시작된 봄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들어서던 세 여인이 동시에 환호한다. “어머! 싹이 올라오고 있어!”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지만 작업복만큼은 제대로 챙겨 입는다. 곡괭이와 삽, 호미를 동원해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렸더니 대지가 마술을 부리듯 싹을 밀어 올린다. 마치 처음 보는 듯 그 흔한 기적 앞에서 그녀들의 가슴이 가볍게 뛴다. 김은희 씨의 친정엄마는 경북 포항 월포 인근의 집 앞 작은 텃밭을 평생 일구셨다. 사계절 내내 밭일을 놓지 않았던 흙 묻은 손을 털 듯, 지난해 11월 그렇게 삶을 내려놓으셨다. 봄이 오니 주인 잃은 텃밭에도 다시 숨이 돈다. 겨우내 굳어 있던 땅이 풀리고, 사람 손길 닿지 않은 곳에 보약 같은 봄비가 내리니 풀들이 좋다고 아우성이다. 어머니의 밭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직접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그녀에게 오랜 지기 두 친구가 함께하자고 나선다. 서로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침묵조차 편안히 나눌 수 있는 묵은 친구들이다. 세 사람 모두 농사는 처음이다. 그래서 오히려 시작할 수 있었다. 모른다는 것이 때로는 용기가 된다. 일주일에 두 번 시간 맞추어 텃밭에 모인다. 풀을 뽑고, 흙을 뒤집고, 거름을 섞고, 고랑을 만든다. 작은 텃밭이라지만 곡괭이와 삽, 호미를 번갈아 들고 허리를 굽히다 보면 금세 숨이 찬다. 그래도 웃음이 난다. 힘든데도 재미있다. 흙이 고르게 정리되고 고랑이 생기니 ‘텃밭’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기 시작한다. 상추, 시금치, 당귀, 엄마가 쓰던 얼갈이배추 씨앗까지 뿌리고 씨감자도 심는다. 누군가는 텃밭에 들인 1년 씨앗 값만 수십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많이 거두는 것 보다 제대로 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마음을 모은다. 귀농한 젊은 부부가 텃밭 가장자리에 작은 평상 하나를 놓아준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쉬엄쉬엄 하세요” 격려도 던진다. 평상에 앉으니 가까이 월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친다. 땀에 젖은 몸을 바닷바람에 맡긴 채 나누는 소박한 새참 시간이 밭일보다 더 소중한 순간이다. 친정엄마는 힘든 밭일을 평생 하시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계절을 따라 씨를 뿌리고 거두셨다. 지금 와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챙겨주시면 무심히 받아가던 그 푸성귀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 끝에 얻어진 것인지. 그 노동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호미를 들고 흙을 다듬다 보면 “문득 엄마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좋다”는 그의 말처럼, 이곳은 단순한 밭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여전히 서툴다. 그 서툼이 서로를 웃게 하며 하루를 채운다. 텃밭은 채소만 기르는 곳이 아니다. 박경리 작가는 말년에 “미련 없다”고 말하며 텃밭에 정성을 쏟았다. 무엇을 더 가지기보다,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텃밭에서는 그 연습이 절로 된다. 그녀들의 봄은 그렇게 텃밭에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맞춰가며 함께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고 말하는 김은희 씨. 월포 인근 작은 텃밭에서 시작된 이들의 농사는 올봄 또 하나의 작은 풍경이다. 돋아난 새싹처럼, 또 다른 삶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라원 개장···신라 정원과 AI 전시 결합한 복합문화공간

지난 3일 개장한 라원은 ‘신라의 정원’을 뜻하는 이름이다. 야외 정원과 디지털 실내 정원을 포함해 총 6만8810㎡ 규모로 조성된 복합문화정원으로, 신라 8괴를 모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실내 정원은 제1 전시관과 제2 전시관으로 나뉘어 총 8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가까운 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 ‘라원, 플라뇌르의 정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플라뇌르는 ‘산책자’ 또는 ‘열정적인 구경꾼’을 의미하며, 현대 사회의 관찰자로서 목적지 없이 걷고 경험하며 풍경을 이해하는 존재로 설명되어 있다. 프롤로그 공간에서는 찌르레기의 초대 영상이 상영된다. 전시 스토리를 담은 일러스트 영상으로, 이를 감상한 뒤 ‘하이, 에브리버디!’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벽면 터치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벽면 속 새 이미지를 터치하면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형식이다. 대형 공작새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으며, 함께 동행한 아이는 모든 새를 찾아다니며 손을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였다. 공간 내 거울이 함께 비치되어 있어 공간이 확장되어 보이고, 사진 촬영 시 이색적인 재미도 더한다. 다음 공간 ‘소리 없는 노랫소리’에서는 바닥에 표시된 위치에 서면 꽃이 피어나고 해당 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토치진저, 무쎌라, 캐리안드라, 아칸서스 에브락테리아투스, 알칸타레아 임페리얼리스 등 익숙하지 않은 식물들이 흥미를 더한다. 이어지는 ‘숨, 쉬는 숲’은 풍선으로 만들어진 나무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빛을 머금은 대형 풍선 나무들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1 전시관의 마지막 공간 ‘불빛에 이끌려’에서는 오두막에 들어선 듯한 느낌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공간을 채운다. 자연 풍경과 춤추는 악기 등 변화하는 이미지들이 이어지며 색다른 공간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2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공간 또한 유리창에 색을 입혀 또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다. 무지개빛 길을 지나듯 이동하면 제2 전시관에 이르게 된다. 이 구간에는 유아용 실내 카페가 마련돼 있으며, 인원 제한이 있어 이용 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또한 제2 전시관 안내데스크에서는 돗자리와 바구니가 포함된 피크닉 세트를 무료로 대여하고 있어 날씨가 좋을 경우 야외 정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제2 전시관은 AI 아트 특별관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나만의 식물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으며, 별도의 그림 실력이 없어도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완성된 이미지는 QR코드를 통해 휴대폰에 저장하거나 전시장 내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미지의 화원’은 국내 최초 360도 생성형 AI로 제작된 실감형 콘텐츠 공간이다. 약 7분간 상영되는 영상은 높은 화질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며, 대형 고래와 바다거북 장면은 어린 아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표는 오후 6시에 마감된다. 입장료는 성인 1만6000원, 청소년 및 군인 1만3000원, 어린이(7~12세) 8000원이다. 다만 4월 한 달간은 개장 기념으로 지역민과 동일하게 7000원에 입장할 수 있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청송의 맛과 멋을 담다, 전통 고추장 만들기 체험기

지난 4월 8일, 청송군 부남면 남관문화센터에서 열린 전통 고추장 만들기 수업에 참여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여러 번 실패했던 찹쌀고추장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청송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2026 구석구석 문화가 있는 날’ 4월 행사로, ‘전통음식-청송의 맛과 멋을 잇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전통 발효음식의 가치와 지역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수업은 한국 맥꾸룸 성명례 명인과 따님인 권혜나 전수자가 함께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명인의 설명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했다. 명인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전해주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 진심이 전해져 수업 분위기는 더욱 진지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명인의 설명에 따라 전통 방식으로 고추장 2kg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된 찹쌀 발효액을 사용해 메줏가루를 넣고, 조청과 고춧가루를 더해가며 고추장을 완성했다. 고추장을 청송 옹기에 담고, 청송 한지를 이용해 포장하는 과정까지 이어졌는데,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지역 전통문화를 온전히 체험한 좋은 기회였다. 고추장을 활용한 요리 체험도 함께 진행되었다. 고추장닭불고기와 고추장찌개를 회차별로 나뉘어 운영했는데, 우리가 참여한 날에는 고추장찌개를 만들었다. 제한된 시간이라 육수를 내지 않고 맥꾸룸의 맥간장과 어간장을 사용했다. 간편하게 고추장과 간장, 어간장을 이용한 고추장찌개 맛도 신선했다. 참가자들의 구성도 다양했다. 젊은 새댁부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주부, 그리고 남성 참가자까지 여러 연령층이 함께했다. 평소 요리에 익숙한 주부들도 명인의 설명 앞에서는 초심자의 자세로 진지하게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고추장 담그기의 핵심이 ‘염도’라는 사실이었다. 찹쌀 발효액의 염도를 18%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실패의 원인이라 생각했던 검은 물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간장이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소중한 배움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수업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찹쌀 발효액은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는데, 발효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수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각자 만든 2kg의 고추장을 용기에 담아 가져가고, 함께 만든 고추장찌개도 준비해온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모두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이 전통 발효음식인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뿐만 아니라, 청송옹기와 청송한지의 활용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군민들이 청송의 가치를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체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청송문화관광재단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노당익장(老當益壯) 문인을 찾아서> 금태남 수필가

금태남 수필가는 팔순을 넘긴 노익장으로.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과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어가며 ‘노당익장’의 표본으로 꼽힌다. 금 수필가는 대구 수성구청 총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수성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행정과 의정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는 수성구 행정동우회를 수년간 이끌어오면서 지역 환경개선에도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그는 또 선친의 업적을 기리는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 관장을 맡아 지역 문화예술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자유대한민국 희망연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 공헌상을 받았고, 대구시 행복진흥원에서 주관한 ‘사랑의 편지 쓰기’ 공모전에서 ‘팔순에 쓴 어머님 전상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 금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 근대미술의 중요한 인물인 금경연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공간이다. 금 화백은 서양미술 도입기의 선구자로, 일본이나 서구 유학없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1회와 입선 5회를 기록한 보기 드문 작가다. 그는 하양·안동·경주 등지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이후 고향인 영양 수비초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금 화백의 작품 세계는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인상파의 빛의 표현을 거쳐 후기 인상파, 야수파, 표현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 있는 도록과 유작들은 그의 예술적 궤적과 잠재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는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경험도 겪었다. 그는 ‘팔순기념 출판기념회’ 인사말에서 부친을 회상하며 “서양화를 우리나라에 알리는 데 앞장섰던 천재 화가이자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깊이 존경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채 33세에 요절한 것이 통한스럽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예술적 DNA가 후손들에게 이어져 손자·손녀 가운데 다수가 정규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며 “저승에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경연 화백의 예술적 유산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차남인 금태남 수필가의 장녀 금영숙씨는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예술조형학 박사학위를 받고 화단에서 활동 중이며, 외손녀 박진주씨 역시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또한 금 화백의 장녀 금계영씨는 시인으로 등단해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의 두 딸 이원순·이원희씨도 미술을 전공해 가문의 예술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장남 고(故) 금도춘씨의 손자 금재성씨 또한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증조부의 뒤를 잇고 있다. 한 가문의 예술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고 있는 가운데, 금경연 화백의 정신은 오늘도 후손들의 창작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의 왕성한 활동 역시 이러한 문화적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앞으로 이들 가문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의 인물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4

겹벚꽃이 활짝 핀 월곡역사공원에서 호국정신을 배운다

대구시 상인동에 있는 월곡역사공원은 역사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시민의 안식처이자 월곡역사박물관과 낙동서원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도시철도 월촌역에 내려서 고층아파트 숲을 따라 걸어 월곡역사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마침 만개한 겹벚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활짝 핀 겹벚꽃 나무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곳은 4월 중순이면 겹벚꽃이 만개하는 대구지역 겹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둑에 두 줄로 핀 겹벚꽃과 길옆, 낙동서원 앞에 흐드러지게 핀 겹벚꽃은 화사함을 더해 이곳을 찾은 많은 시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월곡역사박물관은 단양 우씨 월촌 종중에서 2002년 5월에 개관한 사립 박물관이다. 외관부터 전통의 멋을 물씬 풍긴다. 이곳의 핵심은 단연 보물 제1334호로 지정된 ‘화원 우배선 의병장 관련 자료’다. 우배선 의병장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1등 선무원종공신에 봉해진 인물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 보고서인 ‘성주화원의병군공책’은 당시 의병 활동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농기구, 생활 도구, 고문서 등 8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낙동서원은 1708년(숙종 34년) ‘덕동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1965년 후손들에 의해 지금의 낙동서원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에서는 우배선 장군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의 대학자 우현보, 우탁선생 등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년 향사를 통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주변에는 월곡 우배선장군상, 덕양재, 열락당, 우종식 공적비, 의마비, 하늘 높이 솟은 민족 정기탑이 있다. 박물관 맞은편 장지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공원 내 조성된 울창한 대나무 숲길은 도심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우리 고장을 지켰던 조상들의 호국 정신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말했다. 도심 속에서 임진왜란 의병의 호국 정신을 되새기고,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 하겠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14

봉사하며 공부하는 수성시니어클럽

대구수성시니어클럽(관장 전태수) 소속 일하는노인회자원봉사단(회장 겸 단장 신현구) 회원 68명은 지난 10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수성못 상화동산 일대에서 문화유산을 배우고 자연보호 활동을 병행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 자원봉사단은 총 136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소 월 1회 50~100명이 참여한다. 이날은 68명이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신현구 회장의 인사로 시작해 수성못에 대한 개요 설명과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감상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수성못(약 2㎞)을 한 바퀴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이어 단군국조성전과 수성못을 건립한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 상동 지석묘를 둘러본 뒤 수성그림책도서관에 다시 모여 일정을 마무리했다. 수성못 관광안내소 모퉁이에서 서쪽으로 약 10여 m 지점에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긴 시비와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 작품을 발표해 민족혼을 일깨운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대구시 수성구는 그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과 문학적 가치를 기리기 위해 2017년 9월 23일 이곳에 시비와 흉상을 건립했다. 단군국조성전 내 천진전에 대해서는 황승민(수성시니어클럽) 복지사가 설명을 맡았다. 현재의 천진전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달성공원 내 일본 신사 터에 있던 것을 1966년 대구시 수성구 용학로 116-34로 옮겨와 단군 영정을 모시며 ‘천진전’이라 이름 붙였다. 수성못 남쪽에 위치한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에 대해서는 서예가 신동호(78) 씨가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개척농민으로 대구에 온 미즈사키 린타로는 1924년 9월 수성못 공사에 착수해 1927년 4월 24일 완공했다. 이후 1939년 12월까지 수성못의 수량을 관리하다 임종을 앞두고 “장례는 조선의 전통 방식으로 치르고, 수성못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안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봉사까지 할 수 있어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정모(75) 씨는 “쓰레기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면 줍기 쉬운데, 구석에 숨겨 놓은 경우가 많아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4

KBS1 TV ‘브라보 내 인생 ’ 방영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지난 9일 대구 동구 효목동 평생교육원 강의실에서 진행된 목요대학 수업 장면을 KBS 대구방송총국이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번 촬영분은 15일 오후 7시 KBS 1 TV ‘브라보 내 인생’ 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구지역 어르신들의 다양한 일상을 소개하는 콘텐츠로, 이번 방송에서는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 학생들의 활기찬 하루 수업 모습을 담아낸다. 첫 번째 장면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7·8학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밝은 표정으로 교실로 향하는 모습을 담았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를 소개하며 학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카데미의 설립 배경과 운영 과정, 학생 규모 등 전반적인 내용이 소개됐고, 학감은 연간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과 지향점, 이날 수업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세 번째 장면은 1교시 수업으로, 웃음치료사이자 보건학 박사인 양기영 강사의 ‘오장육부 건강법’ 강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담았다. 제작진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이 대학에 오게 된 계기와 강의를 들으며 느낀 점 등을 물었다. 네 번째 장면은 2교시 수업으로, 대구예술대학교 전속 이서영 가수의 가요 강의가 진행됐다. 제작진은 수업에 앞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지난 시간에 배운 노래를 복습하는 모습과 최근 ‘미스트롯4’에 소개된 최신 곡을 배우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수업이 즐거운 이유와 학습을 이어가고 싶은 기간 등에 대해 물었다. 김태호 학장은 “이번 방송이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의 우수한 시설과 수준 높은 교육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15일 방송되는 ‘브라보 내 인생’에 많은 관심과 시청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14

금오산에서 찿은 조선 정신의 뿌리

지난 11일 문장작가회(회장 이병욱)는 문학적 소재 발굴을 위한 답사로 금오산을 찾았다. 화창한 봄날 아침 9시,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계절의 정취를 가슴에 안고 출발한 여정은 시작부터 따뜻한 배려로 물들었다. 사무국장 김숙현, 편집국장 고경아, 재무국장 임미숙이 정성껏 준비한 간식은 길 위의 소소한 기쁨을 배가시키며 일행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했다. 첫 답사지인 구미 성리학역사관에서는 전문 해설사의 안내 속에 조선 정치이념의 근간을 이룬 성리학의 흐름을 되짚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되었다. 성리학의 뿌리가 이 지역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시키며, 야은 길재를 필두로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여헌 장현광에 이르는 학맥이 조선 사림 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했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와 생육신의 인물 이맹진 또한 구미 출신이라는 사실은 영남 인재의 산실로서 구미가 지닌 역사적 위상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어 찾은 채미정은 자연과 절의가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정자는 고려 멸망 이후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길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 서린 그의 정신은 단순한 역사적 기억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도덕적 지표로 남아 있다. 채미정 입구에 새겨진 시조 한 수는 오백 년 왕조의 흥망을 초월한 인간사의 허무와 성찰을 절절히 전하며, 방문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답사단은 다시 야은 역사체험관으로 이동했다. 2020년 개관한 이 공간은 길재의 학문과 충절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교육의 장으로, 다양한 사료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성리학의 정신적 근간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하게 한다. 금오산이라는 이름 또한 흥미로운 유래를 지닌다. 본래 ‘대본산’이라 불리던 이 산은 신라 승려 아도화상이 황금빛 까마귀, 곧 태양의 상징인 금오가 노을 속으로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명명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곧 이 산이 지닌 영험함과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일행은 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약 10분 만에 해운사에 도착했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임진왜란의 화마로 소실된 뒤 오랜 세월 방치되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재건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해발 450m 절벽에 자리한 도선굴은 수행과 피난의 역사가 중첩된 장소로, 난세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낸 민초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대혜폭포는 수직 27m 높이에서 쏟아지는 장쾌한 물줄기로 답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명금폭포’라는 별칭처럼, 떨어지는 물소리는 산천을 울리며 자연의 위엄을 실감케 했다. 일행은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답사는 단순한 탐방을 넘어,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어우러진 총체적 체험의 장이었다. 문학은 결국 삶과 시대를 비추는 거울임을 상기할 때, 금오산에서의 하루는 문장작가회 회원들에게 깊은 사유의 원천이자 새로운 창작의 밑거름으로 자리할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14

봄소풍에는 ‘죽장휴게실’ 김밥이지

요즘 우리 집 밥도둑은 고추장아찌이다. 열흘 전 벚꽃투어 전 답사길에 들른 포항 죽장휴게소에서 사 왔다. 희정언니가 맛보고는 맛있다며 칭찬하던 것을 지날 때마다 들러 물어봐도 늘 솔드아웃이었다. 그렇게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맛보지 못한 장아찌를 김밥 사러 들렀더니 맛보라며 손에 쥐어 주셨다. 혀끝이 알싸한 게 내 입맛에 딱이었다. 산초가 들어가서 느끼한 음식 뒤에 사이다 한 잔 들이켜는 느낌이었다. 김밥과 함께 먹으니 찰떡궁합이다. 이번 답사길에 동행한 하원씨는 죽장휴게소에 잠시 쉬어가자고 하니, 겉모습이 허름해서 늘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주말이 아닌 화요일 오전이라 어르신 내외만 가게를 지키고 계셨다. 시골은 동네 점방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판다. 여기가 그곳이다. 블링블링한 운동화, 색색의 모자와 명품을 닮은 목걸이 시계까지 구경만 해도 한나절이 지난다. 우리 처음 목표가 김밥이라 도시락 두 개를 샀다. 할머니는 우리가 반가운지 자신의 여러 음식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새댁아, 유과 먹어봤나 내가 오래 끓인 조청으로 만들어서 맛있다. 엿도 맛볼래, 이래 많아 보여도 주말에 손님 들이닥치면 세 개 네 개씩 달라캐가 금방 다 나간다.” 냉장고에 넣어 둔 엿을 꺼내 입에 넣어주신다. 너무 달지 않고 맛있다. 하원씨는 유과를 좋아한다고 해서 두 봉지 선물로 사주었다. 둘이 무슨 사이인데 사주고 그라노 하셔서 함께 근무한 동료라고 하니 둘이 닮았다고 한다. 엿이 입에서 다 녹을 무렵 냉장고에서 고추장아찌를 꺼내 맛보라 했다. 입에 넣자마자 사야겠다 싶어 한 통 담아 달라고 했다. 할머니 인심까지 꾹꾹 눌러 담으셨다. 두 손 가득 들고 영천 벚꽃백리길 답사를 떠났다. 3월 30일, 아직 꽃이 하나도 피지 않아 서울에서 오는 친구들과 이 길에 서지 못했다. 일주일 후, 포항은 벚꽃이 거의 떨어져 남편과 다시 영천 벚꽃을 보려고 죽장휴게소로 향했다. 오후 2시 즈음이라 배가 고파 김밥을 사서 차에서 한 줄 후딱 해치웠다. 남편은 더 먹으라 하고 다시 어르신께 김밥 비법을 들으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자세히 보더니 그때 유과랑 장아찌 사 갔던 새댁이구나 하며 알아보셨다. 언제부터 조청김밥을 만들었냐고 여쭈니, 옆에 있던 따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소풍날에 엄마가 어묵을 늘 끓이던 조청에 졸여서 싸준 김밥이 친구들에게 제일 인기였다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30년 넘게 이 자리에서 김밥을 말았다. 어르신은 도라지 조청을 달여 고추장을, 유과와 엿을 만들어 자식들을 키웠다고 한다. 지금도 조청에 어묵을 여섯 시간 졸여서 김밥을 싼다. 그 정도 끓여야 어묵에 조청 맛이 깊이 스며들기 때문이란다. 말이 여섯 시간이지 불 앞에 그렇게 오래 있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검게 물든 어묵 옆에 곱게 채로 썬 당근, 길게 자른 단무지와 오이, 두툼한 달걀지단이 차려졌다. 고슬한 밥을 김에 얇게 펴고 재료를 올려 스르륵 말아 썰어 담는다. 어묵 말고는 별 특별한 재료는 없는데 맛있다. 한 줄 4천 원 두 줄 7천 원! 우동이나 국수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컵라면 하나 사서 테이블에 앉아 먹으면 된다. 간판은 휴게소가 아닌 휴게실이다. 동네 마실 가듯 찾아오라는 뜻인가 보다. 매장 앞과 옆에 주차할 공간이 넉넉해서 좋다. 벽에 영화감독 봉준호님이 다녀갔다고 써 있어 언제냐고 물으니, 청송에서 원빈과 김혜자 나오는 영화('마더') 찍으러 지나다가 들러서 김밥 먹어보고는 영화 찍는 동안 자주 들러 사 갔다고 한다. 조청 고추장 청국장 가루 등 여러 가지 판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3

환호공원을 즐기는 사람들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산과 들, 길가의 나무들도 때맞춰 새 옷을 갈아입었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바야흐로 봄과 꽃을 찾는 상춘객의 발걸음이 바쁜 때이다. 새뜻한 봄을 맞이하러 환호공원 산책을 나섰다. 길가엔 이미 활짝 핀 벚꽃이 꽃등을 이루었고 한차례 비를 뿌리고 난 후, 연두색 잎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민다. 그 사이를 부지런히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렸다. 공원 계단으로 막 올라서는 순간, 노란 원복의 어린이집 원아들이 봄을 즐기려는 소리가 발 앞까지 걸어온다. 눈앞의 활짝 핀 개나리꽃을 지나치지 못하고 선생님들은 원아들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느라 손길이 바쁘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공원 안에서는 아이들과 성인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섞인 가운데 한 무리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벚꽃 아래서 졸업식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이었다. 까르르 소리가 하늘 위로 펴졌고 준비해 온 캐릭터 옷을 입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싶지만,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젊어지는 기분이다. 봄과 청춘은 동의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또 하나의 봄을 구경한 느낌이었다. 카톡 단체방에 소식을 전하니 ‘젊음이 좋다’는 답이 곧장 날아온다. 한참 그 모습을 구경하다 대학생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스페이스워크로 발길을 옮겼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또한 스페이스워크를 오르기 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건 필수다. 어느새 포항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스페이스워크는 포항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인기 관광지다. 누군가는 환호공원은 몰라도 스페이스워크는 안다고 말한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유로운 관람이다. 옆에는 대구에서 단체로 나들이 온 어르신들이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두런두런거린다. 스페이스워크를 오르지는 못하고 전쟁 이야기와 기름값 오른 이야기, 어제 마트에서 장 본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페이스워크에서 바라본 봄 바다는 고요했지만, 바다 위의 배들은 멀리서도 쉼 없이 움직였다. 다시 미술관으로 내려오는 길은 곳곳에 조각 작품이 배치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원 속의 미술관이라 접근하기도 좋다. 아이들과 놀다가 전시 작품을 관람할 수도 있고 산책하러 왔다가 자연스레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도 쉽다. 입구 앞에는 제2미술관 건립으로 인해 지난 3월 중순부터 시작한 공사 안내판이 붙어있다. 또 ‘미술관 무엇이 될 것인가’의 포럼도 진행했는데 내년 상반기 지나 완성된 모습으로 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미술관은 지난 1월 27일부터 김창영 작가의 샌드플레이, 존재와 기억의 방식, 그리고 2026 소장품전을 전시하고 있었다. 설렁설렁 감상하는 사이에도 작가가 모래에 진심인 듯 보였다. 모래를 회화로 풀어냈다는 게 새롭다. 특별히 이 전시를 위해 죽천 바닷가의 모래를 가져왔다고 하니 작가의 열정이 남달라 보였다. 2층으로 올라서자,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20대 여성 배낭 여행객이 소장전을 감상 모습도 보였다. 서울과 부산뿐 아니라 포항을 찾아온 것에 감사하며 포항 여행이 멋진 추억으로 남길 바랐다. 환호공원은 테마파크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시민들이 공원을 즐기는 다양한 모습과 가까이에서 계절이 오가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3

아직 벚꽃 나들이 못 하셨나요···봉화에서 “벚꽃엔딩”

남한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봉화.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봄이 가장 더디게 찾아온다. 전국 곳곳에서 벚꽃이 지고 난 뒤에야 봉화의 벚꽃은 절정을 맞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피는 벚꽃으로 알려진 이곳은 올해도 4월 14~15일께 만개가 예상되며, 늦게 찾아온 봄의 아름다움이 더욱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물야댐을 에워싸고 있는 벚꽃길은 다른 벚꽃 명소와는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찬란한 분홍빛 벚꽃 사이사이로 비치는 물빛은 ‘벚꽃엔딩’의 감성을 자아내며, 화려하게 피어난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눈송이처럼 수면 위로 떨어지는 풍경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함께 전한다. 물야댐은 선달산(1236m) 늦은목재 옹달샘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형성된 곳으로, 내성천 300리의 시작점이다. 영주와 문경을 지나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해발 400m에 자리한 이곳은 이른 아침이면 차가운 기온이 잔잔한 수면 위로 내려앉아 신비로운 안개를 만들어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댐을 채우고, 벚꽃길에는 잔도와 데크길, 야자매트 길이 설치돼 있어 누구나 여유롭고 낭만적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둘레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의 속삭임은 계곡 바람을 타고 은은한 봄의 향기로 번지고, 떨어진 꽃잎이 수면 위를 떠다니는 모습은 올봄 벚꽃엔딩의 감성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특히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간대에는 푸른 물과 벚꽃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한다. 벚꽃은 짧은 시간 피었다 지지만,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물야댐 벚꽃길은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과거 애전 마을이 자리했던 곳으로, 보부상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임방이 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저수지 건설로 마을은 수몰됐고, 지금은 역사로만 남아 있다. 당시 보부상들은 대부분 홀아비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며 많은 전답을 마을에 남겼고, 묘소 또한 댐 건설과 함께 사라졌다. 현재는 후세가 기억하는 11분의 이름이 위령비로 남아 있으며,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 위령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이 벚꽃길 일대 대청소를 마치고 관광객 맞이에 나서는 등 방문객을 위한 준비도 마무리했다. 이곳은 오전약수 관광지와 인접해 있어 봉화군민은 물론, 전국에서 마지막 벚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벚꽃길 위쪽에는 오전약수터가 자리해 있어 볼거리와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약수 백숙과 송어회, 화덕피자 등 다양한 먹거리가 유명해 외지 방문객들도 많이 찾는다. 또한 주변에는 천년고찰 축서사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이몽룡 생가인 계서당 등이 있어 하루는 물론 1박 2일 일정으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여행지다. 빼어난 산과 계곡, 그리고 맑은 물이 어우러진 물야댐 일대는 사계절 내내 많은 이들이 찾는 산책 명소다. 특히 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벚꽃길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봄의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봄날의 낭만이 흐르는 봉화 물야댐 벚꽃길. 늦게 찾아온 만큼 더욱 특별한 이곳에서, 곧 지나갈 짧은 봄의 아쉬움을 달래고 오래도록 간직될 추억을 만들어보길 권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3

대구콘서트하우스 ‘2026 봄의 합창’ 개최

대구콘서트하우스(관장 박창근)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21개 팀이 참석하는 특별연주회 ‘2026 봄의 합창을 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개최했다. 신록의 계절 4월을 맞아 개최되는 봄의 합창에는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아마추어 시니어 합창단, 직장인, 혼성,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총 21개의 합창단들이 참여했다.매일 7개 합창단들이 무대에 올라 각기 다른 색깔의 화음을 선보이는 릴레이 형식으로 공연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연주회에 참여한 21개 합창단은 상원한마음합창단, 칼리오페코러스, 권유진청춘코랄, 하프문합창단, 대구중구문화원 시니어여성합창단, 나유타합창단, 덴탈하모니, 월드미션콰이어, 대구CBS혼성합창단, 필그림쥬빌리싱어즈, 수성OB싱어즈, 달서은빛합창단, 영남일보합창단, CTS대구권사합창단, 보아스청합창단, 대구레이디스싱어즈, 아마빌레여성합창단, 수성행복싱어즈, 대구소리온합창단, 한울림여성합창단, 아남카라합창단 등이다. 박창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은 “합창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완성되는 가장 인간적인 종합예술”이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일상에 지친 여러분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13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지공선사(地空善士)'

혹시 지공선사’라는 법명을 들어보셨는지요? 불가(佛家)에는 대사나 선사가 있지요. 대사란 말 그대로 “큰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교학(경전 연구), 수행, 포교 등 전반적으로 업적이 큰 인물에 종파와 관계없이 사용하지요. 대표적인 예가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이죠. 선사는 “선(禪·명상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선종(禪宗) 계통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참선, 좌선 등 직접 체험을 통한 깨달음 강조주로 선종 계통에서 제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혜능선사, 지눌선사가 있지요. 위대한 스승 원효대사나 초의선사는 익히 아시겠지만, 지공선사는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은밀하고도 영광스러운 법명은 제가 명명하여 저만 알고 있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신비로운 ‘지공선사’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잠시 우리네 술자리 풍경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단합의 상징인 건배사에도 시대의 결이 묻어납니다. 5·16 직후엔 투박하게 “재건합시다!”를 외쳤고, 요즘은 암호같은 삼행시가 대세지요. “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는 ‘변사또’,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라는 ‘개나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등 이 모든 수다를 한데 버무려 결국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하여!”라는 우렁찬 외침으로 밤은 깊어가지요. 자, 이제 제가 만든 지공선사(地公善士)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눈치 빠른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지하철 표를 공(空)짜로 선물받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만 65세라는 고개를 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격이지요. 그런데 왜 하필 ‘선사’일까요? 스승 사(師) 자를 쓰기엔 제 삶이 그리 거창하지 않아, 그저 선비 사(士) 자를 빌려왔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노년의 품격을 기리고자 ‘착할 선(善)’ 자를 보탰지요. 청춘을 다 바쳐 일군 이 나라가 이제야 노병(老兵)의 노고를 알아보고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하며 건네는 따뜻한 예우표 같아 마음이 뭉클합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전 이 영광스러운 지공선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법명을 얻고 보니, 인생길이 어느덧 황혼이 지는 마루턱에 서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제는 서서히 산을 내려가야 하는 하산(下山)의 시간이지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지만, 짐짓 모른 척 허허 웃어넘길 뿐입니다. 다만 침침해지는 눈과 어두워지는 귀, 예전 같지 않은 근력 앞에 자꾸만 마음이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얼마 전, 저의 ‘할망구’가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다며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할망구’란 표현이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나, 본래 망구(望九)란 아흔(90세)까지 장수하기를 바란다는 귀한 뜻이 담겨 있지요. 저는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가시를 찾아보았지만, 희미한 형체만 보일 뿐 도무지 잡히질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둥지를 틀어 떠나고, 휑한 큰 집에 노부부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눈 밝은 구원 투수가 없더군요. 며칠을 씨름하다 결국 주말에 이웃 동네 딸아이를 찾아갔습니다. 딸애가 뾰족한 바늘로 몇 번 툭툭 건드리더니 단숨에 가시를 뽑아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젊음이 좋구나, 밝은 눈이 참으로 부럽구나’ 싶어 코끝이 찡했습니다. 지공선사가 되어 지하철을 마음껏 누비게 된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니 문득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귀야 좀 어두워지면 어떻겠습니까. 골치 아픈 세상사 안 들으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눈만은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망구’ 발바닥에 박힌 가시라도 직접 뽑아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공선사의 혜택은 달콤하지만,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은 참으로 야속합니다. 오늘도 저는 공짜 지하철 표 한 장을 손에 쥐고, 노을 비치는 차창 밖을 보며 이 아름다운 하산길을 음미해 봅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2

(이사람) “붓끝으로 영남의 기개를 깨운다'

대구 봉산동 문화거리. 영남의 서단 ‘도심명산장(道心名山藏)’에서 율산(栗山) 리홍재(李洪宰) 선생을 만났다. 변함없는 생활 한복에 긴 머플러 두른 정장 차림이다. 영남의 산세를 닮은 획, 율산 선생의 글씨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기운’이다. 그가 긋는 획은 때로는 영남의 가파른 산맥처럼 단단하고, 때로 굽이치는 낙동강 줄기처럼 유연하다. 세간에서 그의 글씨를 ‘율산체’라 칭송하는 이유는 그만큼 독보적인 조형미와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자신의 서체를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설명한다. 글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율산이 추구하는 예술의 정점이다. 그의 대작에서 볼 수 있는 파격적인 공간 구성과 대담한 필치는 전통 서예의 틀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을 보인다. 율산 선생의 예술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원칙이다. “전통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며 그 안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법을 지키되 법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서예가가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선생은 매일 새벽 수천 번의 획을 그으며 기본을 다진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탄생한 그의 행초서(行草書)는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며 영남 서예만의 묵직하고도 파격적인 힘을 대변한다. 팔공산 취락지구 중심가에 세운 ‘대동방 서예술문화관(大東房 書藝術文化館)'에 들어서면 분위기부터가 압도된다. 육십 년 내공이 쌓인 율산의 먹물 예술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벽면 계단에 80폭 병풍이 대동방 문화관의 수문장처럼 보였다. 이천여 평을 가득 채운 대작(大作)들은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는 영남 유림의 곧은 절개와 타협하지 않는 선비정신이야말로 자신의 서예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내공이 단단한, 진실함이 묻어난다. 그는 퍼포먼스 타묵(打墨)의 개척자다. “예술은 창작이어야 하며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만의 예술적 일화가 있다. 1999년 KBS 방송에서 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16mm 큰 붓을 사용했는데 첫 번째 글자에서 붓이 나가지 않았어요. 제자가 “선생님 술 한잔하세요!” 소주 한 컵을 물 마시듯 들이키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붓에 힘이 붙어 일필 휘하 성공리에 마쳤다는 것이다. 마음이 굽어 있으면 필획이 흔들리고, 정신이 흐트러지면 글이 탁해짐으로 그래서 서예는 마음을 닦는 기본이라고 한다. 선생은 최근 디지털 문명에 밀려 서예가 소외되는 현실에서도 역설적으로 서예의 가치가 더 빛날 것이라고 했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담아내는 서예야말로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장(藏)이라는 것이다. 율산의 계보는 영남 서예의 거목인 석재 서병오와 죽농 서동균의 제자 죽헌(竹軒) 현해봉으로 이어지는 영남 서예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서예가들이 영남 서예를 ‘투박하다’라고 평할 때마다, 선생은 오히려 “그 투박함이 바로 꾸밈없는 기개며 생명력”이라고 일러 준다. 자신의 호(號) 율산처럼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알차고 부드러운 영남 서예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서예가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4-12

가야의 시간이 스며 있는 산성을 찾아

가락국 시대에 축조된 여러 산성이 오늘날까지 그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산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연의 지세를 최대한 활용한 방어 유산이자,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삶의 흔적이다. 우리나라 산성의 기원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등장하는 강화도 삼랑성은 그 시원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2300여 년 전 단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성은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제천의 자취를 전한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내려앉은 날, 가락국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산성들을 찾아 나섰다. 성곽은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축조한 석성으로 나뉜다. 먼저 찾은 곳은 김해시 진례면의 진례토성이다. 수로왕이 쌓았다고 전해지며, ‘진례면지’에는 신월리·신안리·송정리를 감싸던 토성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산월마을 중심에 성벽 일부만 남아 있고,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어 보존이 절실해 보였다. 조상들은 ‘판축’ 기법으로 서로 다른 흙을 층층이 다져 성을 쌓았다. 무너져 드러난 흙층을 보며, 먼 곳에서 흙을 실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진례토성을 뒤로하고 양동산성으로 향했다.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해발 333m 정상부에 자리한 이곳은 테뫼식으로 축성된 석성이다. ‘가곡산성’ 또는 ‘내삼산성’이라 불리며, 둘레는 약 860m에 이른다. 동쪽과 남쪽 성벽 일부가 남아 있고,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삼한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삶터였음을 보여 준다. 양동산성에는 동·남·북 세 방향에 문터가 남아 있다. 줄이나 도르래로 여닫는 ‘현문식’ 구조는 신라의 특징이고, 문터 바깥 벽의 곡선은 백제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요소가 함께 드러나는 이 모습은 경남 지역에서도 드문 사례라 한다. 성 위에 오르자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이곳에서 사방을 살피며 외적의 동태를 헤아렸을 사람들의 긴장감이 아득히 전해지는 듯했다. 바람은 땀을 식혀 주고, 눈앞에 열린 풍경은 산성이 지닌 자리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마현산성이었다.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무척산 서쪽 해발 215m의 독립 산봉우리에 자리한 이 산성 역시 수로왕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둘레는 약 600m이며, 고려시대의 보수 흔적과 조선 후기까지의 사용 흔적이 남아 있다. ‘김해읍지’에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번 답사에서 서쪽 능선 일대에 비교적 잘 남은 성벽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현산성은 가파른 지형에 맞춰 보조 성벽을 세워 2단으로 쌓았고, 자연 암반을 활용해 방어력을 높였다. 동·서·북 세 곳에 성문을 두었으며, 특히 북문은 내부가 곧장 드러나지 않도록 곡선 형태로 처리되어 있었다. 지형을 읽고 그에 맞춰 성을 쌓은 세심한 고려가 엿보인다. 마현고개는 예로부터 밀양과 김해를 잇는 관문이었다.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피해 피난처로 쓰였다는 전설은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산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위태로운 시대를 견디고 삶을 지켜 내려 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배어 있다. 가야 시대의 산성은 대부분 산지에 자리하며, 전시에는 방어의 전초기지로, 평시에는 행정과 통치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성벽의 흔적은 오래된 돌과 흙의 자취에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는 가야의 시간이 스며 있고, 그 시간을 지켜 낸 사람들의 삶이 함께 남아 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6-04-12

불교 동자상 연원 알아보기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1년짜리 기획물로 오는 10월 5일까지 동자상을 주제로 한 ‘알록달록 동자상’전을 복식문화 브랜드와 연계해 전시 중이다. 동자석 4점(복제품)과 목조 동자석 4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는 작년 9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석조물을 중심으로 조성한 ‘모두의 정원’과 연계해 전시 중이다. 동자상은 유교의 능묘미술에서 비롯됐다. 주로 돌로 만들어 무덤 앞에 설치하고 돌아가신 주인 곁을 지킨다는 의미다. 불교 동자상은 나무로 만들어 사찰의 명부전이나 지장전 안에 배치하여 보살 또는 시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시종으로 여겨졌다. 유교 동자상의 모습을 보면 머리 양쪽에는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옷의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 같은 형태의 의복을 입고 붉은색 바탕에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장식된 것도 많다. 손에는 붓, 연꽃, 과일, 동물, 향 등의 물건을 들고 있다. 연꽃은 깨끗함을 상징하고 복숭아는 장수, 방망이는 무덤을 지킨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죽은 사람의 선과 악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붓을 쥐기도 하고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을 들기도 한다. 불교의 나이 어린 동자상은 청정한 세계를 표현한다. 사찰의 명부전이나 시왕상 좌우에 시자 형상으로 봉안된 동자상이 가장 많다. 동자는 사람의 생전 선업·악업을 기록해 두었다가 사후에 시왕에게 고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불교 동자상은 삼국시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쌍으로 출토된 2.5㎝ 정도의 작은 유리제동자상이다. 이는 왕비 생존시 수호신격으로 옷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통일신라시대 동자상은 많지 않으나,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는 본존상의 무릎 옆에 부조로 합장 하고 있는 동자상이 있다. 고려시대 대표적 동자상은 수월관음도불화의 선재동자다. 조선시대의 동자상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오대산 상원사의 목조문수동자상이다. 이 상은 크기가 98㎝인 대형 상으로 복스러운 얼굴과 당당한 자세다. 1473년 건립된 도갑사 해탈문의 문수동자상과 보현동자상은 크기가 1.8m에 이르는 대형 목조상이다. 조선 후기의 동자상도 다수 전해지는데, 화엄사, 해인사같은 대규모 사찰들이 중창되는 과정에서, 조성된 상들이다. 완주 송광사 명부전의 소조동자상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예이다. 지장보살상에서 발견된 복장문에 의하여, 1640년에 명부전의 다른 존상들과 더불어 일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8구가 전해지고 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2

작은 나눔이 이어준 치료의 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170여 명이 함께하는 한봉우리봉사단 단체 채팅 방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온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나눔이 이어지는 공간이지만 이날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짧은 문장 뒤로 무연고 독거 어르신의 긴급한 사연과 함께 ‘앰뷸런스 이송비 지원 요청 공문’이 첨부된다. 메시지는 길지 않았지만 상황의 절박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채팅창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진다. 글을 올린 이는 더휴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하시현 센터장이다. 그는 포항시 해도동에서 홀로 사는 한 어르신의 위급한 상황을 조심스레 전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르신은 위암 판정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항암치료를 이어오고 있었다. 쉽지 않은 치료과정 속에서 4차 치료를 앞두고 저혈압 쇼크로 포항 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시 임상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동해야 하지만 장거리 대중교통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의료진 역시 안전한 이송을 위해 앰뷸런스 이용을 권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50만원의 이송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임상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동이지만 앰뷸런스 비용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센터장은 먼저 행정적인 지원 방법을 알아본다. 긴급복지 제도를 포함해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하나씩 검토해 보지만 기준과 절차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결국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봉사단체 채팅 방에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채팅창에 알림이 하나둘 울리며 3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각자의 형편에서 보탠 작은 정성이 모이기 시작했다. 금액은 다르지만 마음의 무게는 같다. 순식간에 목표 금액을 훌쩍 넘긴 170여만 원이 모이며 채팅창을 따뜻한 온기로 채운다. 누군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모금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된다. 모금된 후원금으로 어르신은 무사히 앰뷸런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혼자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지만 많은 사람의 온정으로 다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마침 사설 앰뷸런스의 구급대장도 봉사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어 이송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어르신은 도시락 봉사 대상 명단에도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나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하시현 센터장은 “정말 감사하다”면서도 “마음 한 편은 큰 빚을 진 것처럼 무겁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사각지대의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재가센터의 역할 중 하나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과 지원 가능한 자원을 연결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도움이 꼭 필요한 분들이 제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이 일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냈고, 또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손길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다. 채팅방에 올라온 짧은 문장 하나가 만들어 낸 작은 온정. 그 과정을 지켜보는 봉사단원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번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8

전쟁 같던 이틀 고마운 손길들

지난 수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보러 오기로 했다. 농사일로 바쁜 가족들과 시골에 상주할 수 없는 내 형편을 생각하면 더는 집에서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날은 미리 알아본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면담한 뒤 필요한 검사를 마치면 바로 입소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고비였다. 요양원 직원이 어머님의 손목을 보더니 수술 부위에 금속이 튀어나와 있고 곪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여다보았다. 붕대가 풀어진 사이로 쇠가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직원은 이 상태로는 입소가 어렵다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119에 신고해 응급차를 불렀다.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어머님의 상태를 꼼꼼히 묻고 안전하게 모신 뒤 먼저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구급대원이 이미 접수까지 마쳐두었다.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의사는 소독과 깁스만으로 충분하다고 안심시켰다. 다시 사설 응급차를 타고 청송군보건의료원으로 향했다. 검사 후 입소 전까지 하룻밤을 머물게 된 청송군보건의료원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님은 기력이 없었고, 설사까지 계속하셨다. 의료원의 간호사들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소독하고, 상태를 살폈다. 특히 인심 좋게 생긴 야간 근무 간호사는 두 시간마다 와서 필요한 처치를 해주었다. 어머님이 거친 말씀을 하셔도 “미안해요, 할머니”라며 웃어넘기는 그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한 마음에 혼자 애쓰는 내게 “꼭 자기를 불러달라”던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다음 날 검사 결과가 좋아 요양원 입소가 가능했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며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요양원 측이 어머님의 자궁하수를 문제 삼았다. 또다시 119구급차를 불러 안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두 번째 구급차였다.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며 친절하게 소견서를 써주었다. 요양원은 염증 수치 등을 이유로 입소가 어렵다고 했다. 늦은 밤, 다시 집으로 모셔야 했다. 사설 응급차를 기다리며 몇 군데 요양원에 급히 전화를 돌렸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존 요양원에도 다시 연락했다. 결국 소견서를 확인한 원장이 다음 날 아침 다시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요양원 직원들이 집으로 왔다. 어머님을 차에 모시고 가며 나는 밥 잘 드시고 직원들 말씀 잘 들으시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말씀드렸다. 마침내 입소 절차를 마쳤다. 오후에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님이 점심 죽 한 그릇과 반찬까지 잘 드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이틀 동안 두 번의 119구급차, 두 번의 응급실, 여러 번의 검사와 이동. 몸도 마음도 바닥이었지만, 그 시간마다 누군가의 친절한 손길이 있었다. 신속하고 차분했던 구급대원들, 환자와 보호자를 끝까지 배려해 준 청송의료원 간호사들, 마지막까지 방법을 찾아준 의료진과 요양원 관계자들. 그분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전쟁 같던 이틀을 건널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가족의 힘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제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손길이다. 그 다정한 손길들이 있었기에, 지치고 두려웠던 시간 끝에서 나는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8

수창청춘맨숀에서 지역 예술가와 시민이 만나는 전시

대구시 중구 수창청춘맨숀에서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30일까지 ‘2026 공공 레지던시 소개전’이 관객들을 맞이했다. 수창청춘맨숀은 3호선 달성공원역 인근, 수창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해 지역주민들에게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한다. 또한, 도보 거리 내에 다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대구예술발전소가 있어, 관람객들은 문화생활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올해 상반기 공모를 통해 선정된 공공 레지던시 입주단체의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고 입주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을 지역주민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진정한 지역 예술가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에는 길범, 극단 에르테르의 꿈, 호루라기, 든바다예 등 총 4팀이 참여했으며, 각 팀의 특색 있는 작품 세계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길범은 대구·경북 지역 향토 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시민과 함께 만드는 참여형 사운드·공연 예술 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의상과 악기들을 함께 전시하여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객이 자유롭게 민요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특히, 오는 18일 오후 2시 수창청춘맨숀 1층 맨숀쌀롱에서는 길범 팀의 ‘사랑방 국악 콘서트’ 버스킹 공연이 열리며, 관객들은 그 자리에서 직접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민요를 체험할 수 있어 관심이 가는 팀이다. 극단 에르테르의 꿈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 연극단체로, 시민 참여형 연극 창작을 중시한다. 전시에는 대표작인 ‘마음 속 사거리 좌회전’, ‘12만KM’ 등 관련 소품과 팸플릿이 전시되어, 관객에게 배우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전달했다. 또한, 전시장 한쪽에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관객들이 특정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촬영한 사진은 관객들이 자신의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전시 방문의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 오는 18일 오후 3시, 5시 그리고 25일 오후 3시와 5시에 수창청춘맨숀 1층 맨숀쌀롱에서 ‘은하의 순간’ 버스킨 공연이 열린다고 하니 참여해볼 것을 추천한다. 호르라기는 먹, 한지 등 한국화 전통 재료를 활용하여 질감과 입체감을 살린 작품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어선 신비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복도에 마련된 체험존에서 직접 한지와 붓을 사용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작품을 전시 벽에 붙이는 참여형 체험을 즐길 수 있고, 이는 ‘또 하나의 전시회’가 되어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든바다예는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 시각예술을 창작하는 팀으로, 팀명은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에서 따온 순우리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민이 직접 만든 작품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전시하여, 참여형 예술의 경험을 극대화했다. 작품 속 상상의 바다와 캐릭터들은 관객들에게 도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하며,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번 ‘2026 공공 레지던시 소개전’은 단순 전시를 넘어 작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 경험을 선보였다. 수창청춘맨숀이라는 역사적·공간적 특성을 살린 전시는, 도시 속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 예술가를 향한 시민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켜 지역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8

후지산을 향한 문학의 여정

4월의 문턱,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대구문인협회 소속 문인 32명은 일본 문학기행의 길에 올랐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사유를 확장하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안윤하 회장과 류시경 추진위원장의 인솔 아래 다섯 개 조로 편성된 일행은 시종일관 질서와 품격을 잃지 않은 채, 문인의 품위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문인들을 맞이한 것은 잔잔한 봄비였다. 이는 마치 낯선 타국에서 펼쳐질 문학적 사색을 위한 서정적 서곡과도 같았다. 첫 일정으로 찾은 신주쿠교엔은 에도시대의 역사와 황실의 흔적을 간직한 채, 현재는 시민에게 개방된 평화로운 정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천 그루가 넘는 벚나무가 만개한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미적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관이었으며, 문인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이를 포착하며 창작의 영감을 길어 올렸다. 이어 방문한 하이쿠 문학관에서는 일본 특유의 정제된 미학을 담은 5·7·5의 짧은 시 형식 속에 응축된 자연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마쓰오 바쇼를 비롯한 여러 거장의 작품은 언어의 절제 속에서도 얼마나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으며, 문인들은 그 감동을 바탕으로 밤늦도록 하이쿠 시를 쓰며 문학적 교감을 나누었다. 이는 오직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고유한 기쁨이자 특권이었다. 롯폰기 힐츠전망대에 올랐으나 우중으로 인해 도쿄를 상징하는 도쿄 타워 풍경은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둘째 날, 후지산을 향한 여정은 더욱 장엄한 자연의 세계로 문인들을 이끌었다. 후지산 로프웨이를 통해 오른 전망대에서는 해발 3776m의 일본 최고봉이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드러냈다. 눈 덮인 정상과 구름이 어우러진 풍경은 장엄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품고 있었으며, 일본 문화에서 후지산이 왜 영산으로 추앙받아 왔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이어 방문한 오시노 핫카이는 후지산의 눈 녹은 물이 화산암층을 통과하며 정화된 뒤 솟아오른 여덟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국가 천연기념물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투명하게 맑은 수면 아래로 수초와 물고기가 어우러진 모습은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근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날, 스바시리 5합목에서 마주한 후지산은 더욱 가까이에서 그 웅자를 드러냈다. 발아래 펼쳐진 화산의 숨결과 대지의 기운은 인간의 미미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자연과 공존해야 할 존재로서의 겸허함을 되새기게 했다. 이어 방문한 하코네 오와쿠다니 계곡은 약 3000년 전 화산 활동의 흔적을 간직한 채 여전히 유황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황량하면서도 역동적인 풍경은 생명과 시간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곳의 명물인 ‘검은 달걀’은 온천수에 삶아 껍질이 검게 변한 것으로, 하나를 먹으면 수명이 7년 늘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검게 변한 달걀 하나에 담긴 전설조차 인간의 소망과 삶에 대한 염원을 은유적으로 전해주었다. 아시노코 호수에서는 하코네를 대표하는 3척의 해적선이 운항 되며, 날씨가 맑으면 호수 너머로 후지산의 절경이 펼쳐진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경관은 일본 자연미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었다. 이어 방문한 아라쿠라야마 센겐공원은 약 4.3ha 규모로, 붉은 오층탑(충령탑)과 벚꽃, 그리고 후지산이 한 화면에 담기는 대표적인 명소다. 특히 398계단을 따라 오르는 아라쿠라 센겐 신사는 목화 개화의 여신인 코노하나사쿠야히메를 모신 신사로, 자연과 신앙, 그리고 인간의 염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번 문학기행은 단순한 견문 확대를 넘어, 문학이 자연과 어떻게 호흡하며 인간의 내면을 확장시키는지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각 방문지는 저마다의 역사와 의미를 품고 있었고, 그 공간 속에서 문인들은 언어 이전의 감각과 사유를 마주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07

(이사람) “죽음을 가르쳐 삶을 산다”

대구 ‘대한간병사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보건복지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박임순 ‘대한장례지도사교육원’ 원장을 만났다. 27년 전, 불모지나 다름없던 간병사 교육을 시작으로 간호조무사·사회복지사·장례지도사 등 여섯 과목을 정부 허가를 받아 현재까지 대구와 경북에서 4만 명의 전문 인력을 배출한 인물이다. 박 원장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고용 창출의 숨은 주역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특히 최근 고령화 사회의 화두인 ‘웰다잉(Well-Dying)’의 가치 전파를 위해 생명존중의 교육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박 원장이 걸어온 길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부산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의료 현장을 누비던 간호사가 본래 직업이었다.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두 자녀를 책임져야 했던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간호사 업무 대신 교육사업가 길을 선택했다. 당시 생소했던 간병사’교육을 대구·경북 지역에 처음으로 도입했을 때만 해도 주변의 시선은 회의적이었으나 박 원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안목으로 최고의 간병사 배출 기관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교육 철학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에 있다. 교육원을 찾는 이들 중에는 사업 실패나 실직 등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원장은 수강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는 “취업 후 첫 월급을 받으면 갚으라”라며 길을 열어주었고, 고령에도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도 정성껏 보듬었다. 제자 중에는 장례 재가센터나 요양원,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분들도 꽤 있다고 한다. 특히 70대에 입문해 아파트 두 채를 마련할 정도로 자립한 제자도 있고, 사업 실패로 봉고차 생활을 하던 분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제자도 있다. 장례지도사에 대해 그는 단순한 장의 업무를 보는 직업이 아닌 ‘다음 생의 문을 열어주는 숭고한 사명’으로 설명한다. “태어나는 일보다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는 준비가 더 중요하다”며 그녀는 80세 노학자가 죽음을 배우러 입학한 경우가 있음을 실례로 소개했다. 그녀는 교육에 머물지 않고 ‘대한장례협동조합’을 통해 대규모 분묘 이장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지역 사회의 장례 문화 선진화에도 기여해 왔다. 그의 성공 배경에는 성실함과 깊은 신앙심이 뒷받침됐다. 앞으로도 후배 양성에 매진하고 지역사회 봉사에 헌신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4-07

1억6000만년전 공룡화석 흔적과 남해안 절경에 반해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어느 날, 사진예술가협회 백형영 대구회장을 포함한 13명의 작가들이 경남 고성 앞바다 시루섬 일출을 잡기 위해 새벽부터 출사에 나섰다. 기대와 달리 구름에 태양이 가려 일출은 보지 못했으나 시루섬을 중심으로 펼치진 주변의 풍광들을 즐기며 모처럼만의 마음 편한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시루섬을 배경으로 단체기념 촬영을 하고, 계획한 대로 상족암 군립공원 오토캠핑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준비한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주변 촬영을 시작했다. 상다리를 세워놓은 형상이 닮아 상족암이라 불리는 이곳은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8대 불가사의 지역으로 손꼽히며 1억6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 지구를 점령한 공룡과 조류발자국이 남아 있는 남해안 최고의 절경지다. 공룡화석 산지로 화석의 양은 물론 다양성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단다. 제전마을에서 실바위까지 해안선을 따라 약 6㎞에 걸쳐 그 흔적이 있다. 목 긴 초식공룡 용각류, 두발 또는 네발로 걷는 초식공룡 조각류와 육식동물 수각류의 발자국은 물론 두 종류의 새 발자국도 있다, 공룡 발자국이 포함된 지층 전체 두께는 약 150m이며 200여 퇴적층에서 약 200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다고 한다. 1982년 경북대 양승영 교수와 부산대 김항목 교수가 처음 발견하였다. 브라질과 캐나다와 함께 세계 3대 화석 산지다. 공룡유적지로 브론토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이 발견되어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대단히 높아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가면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전경도 감상할 수 있다. 공원 내 해안선에서 보는 촛대바위와 주상절리 병풍바위, 그리고 사량도는 자연이 만든 그야말로 예술품이었다. 특히 덕명 까막끝 해벽에 가려면 물때가 맞아야 바닥에 올라갈 수가 있는데 마침 물때가 맞아 일행들은 보트로 2회 왕복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곳에는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된 동굴이 하나 있다. 바위가 평면으로 닳아 바닥에는 갑각류 중 따개비, 거북손, 배말(삿갓조개)들이 엉켜있다. 일행은 눈으로 확인하면서 사진 담기에 바빴다. 다음 코스로 고성군 마암면에 있는 몽연 옥윤종(몽연선각갤러리) 대표가 운영하는 공방을 방문했다. 사단법인 각자회 김숙이 초대작가도 우리와 함께 자리를 했다. 전시장에는 희귀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음은 문수암을 찾았다. 문수암의 절경은 일출이다. 남해안 3대 절경의 하나다. 우리 일행은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문수암에서 내려다 본 수태산 보현암 황금 약사여래 대불상이 남해의 한려수도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대구로 돌아왔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4-07

(시민기자 단상)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켜지는가

전쟁 관련 보도를 보다 보면 익숙한 표현이 반복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마치 전쟁에도 일정한 규칙과 경계가 존재하며, 그것만은 지켜질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선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전쟁은 본질적으로는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극단적 수단이다. 그러나 민간인을 직접 공격하지 말 것, 불필요하게 잔혹한 무기를 사용하지 말 것, 전쟁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하지 말 것 같은 선이 있다. 이러한 규범은 단순한 도덕의 산물이 아니라, 전쟁이 인류 전체의 파멸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집단적 자기보존의 장치였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그 선은 언제나 위태로웠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을 사실상 무너뜨렸고, 도시 전체가 전장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분쟁 속에서 병원과 학교가 파괴되고, 피난민이 희생되는 장면은 반복되어왔다. 오늘날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긴장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이 서로 얽힌 이 복잡한 대립 속에서 각국은 “선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현대전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장 명확한 금기는 핵무기의 사용이다. 이것은 인류 문명 전체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이 사용되는 순간, 전쟁은 더 이상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핵은 법률적 금지 이전에, 공포와 상호 억제라는 구조 속에서 유지되는 금기로 남아 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전쟁의 확전이다. 특정 지역의 충돌이 주변 이해 관계국의 직접 개입으로 이어질 경우, 전쟁은 순식간에 국제적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 지금의 중동 상황에서 세계가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자위이고 어디부터가 침략인지, 어느 수준의 피해가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논쟁적이다. 전쟁에서 선을 넘었을 때 돌아오는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핵무기의 사용이 그렇고, 무차별적 학살이 국제적 개입을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규범은 인간의 양심이라기보다, 파국에 대한 계산 위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허구에 가깝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전쟁은 아무런 제약도 없는 폭력으로 전락할 것이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그 선이 얼마나 얇고 불안한 것인지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그 선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선이 무너질 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그 대답은 이미 역사 속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4-07

추억을 든든하게 담아오다

벚꽃 투어를 떠났다. 자작자작 봄비가 포근히 내려 천북으로 내려서자, 들도 산도 촉촉했다. 넓은 도로보다 구불거리는 시골길이 벚꽃을 음미하기에 더 안성맞춤이라 천북을 통해 경주로 갔다.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아서 아침 7시에 나섰다. 암곡으로 들어서니 개나리가 노란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른 시간이라 벚꽃 가로수는 오롯이 우리 차지였다. 차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들으며 가져온 커피를 나눠 마셨다. 차 안이 커피 향으로 가득해 창밖 꽃 풍경이 더 좋았다. 불국사로 오르는 길은 숲 내음까지 더해 즐거운 드라이브였다. 통일전까지 달리는 가로수도 벚꽃의 행렬이었다. 자양댐 벚꽃백리길로 가기 전 점심을 영천에서 먹기로 했다. 막걸리 빚는 희정 언니가 알려준 한정식 맛집으로 경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달렸다. 포도밭이 이어지는 시골길에 ‘영천 농가 맛집 든담’ 간판이 보였다. 주차는 가게 바로 앞에 할 수 있다. 차에서 내리니 건물 뒤에 자두꽃이 환하다. 이런 깊은 곳을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맛있는 집은 바람결에도 소문이 나는가 보다. 달려오며 미리 전화로 예약했더니,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보쌈과 두부 곁에 입맛 돋우는 깻잎무침을 곁들였다. 앞접시에 고기 한 점, 그 위에 깻잎무침 덮어서 청양고추 한 조각까지 올려서 먹었다. 다음 쌈은 김치에 두부를 싸서 먹으니 좋았다. 뒤이어 전이 나왔다. 먹기 좋게 칼집이 얌전하다. 나눠 먹기 좋게 긴 젓가락도 함께다. 작은 배려에 주인장의 센스가 느껴졌다. 비 오는 날 채소전은 국룰인데 말이지. 한정식은 원래 큰 상에 모든 음식이 다 차려지는데 그래서 어떤 찬은 식어서 매력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든담은 금방 무쳐서 방금 튀겨서 따끈하게 구워서 차례로 서빙해 주니 음식의 맛을 더 살려준다. 전을 다 먹었다 싶을 때 나물 반찬이 우르르 쏟아졌다. 시금치, 당근, 도라지가 어우러진 삼색나물, 콩나물과 무나물, 무생채무침은 설명이 없어도 비빔밥용이다. 그 외 유자향을 덧입은 연근, 참깨 한 꼬집 뿌린 방풍나물, 꽈리고추와 도토리묵까지 손이 많이 가는 것 투성이다. 반찬이 많아 뭐부터 먹을까 하는데 팽이버섯 튀김이 쓰윽 비집고 들어왔다. 바삭! 어떻게 이렇게 바삭거릴까, 튀김옷의 비밀이 있나? 집에서 해봐도 이렇게 안 되더라고 함께 간 언니들이 입을 모았다. 반찬이 다 맛있어도 밥이 맛없으면 한정식은 말짱 도루묵이다. 든담은 돌솥에 해서 밥알에 윤기가 흐른다. 밥만 먹어도 맛있다. 밥은 따로 퍼 담고 숭늉을 솥에 부어 후식으로 먹어야겠다. 밥 한술, 함께 나온 청국장 한술, 번갈아 먹으니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서 젊은 사람들 입에도 잘 맞을 거 같다. 숟가락으로 숭늉 긁어 먹으니 구수하다. 음식을 어느 정도 먹었다 싶을 때 사장님이 직접 매실주스를 들고 오셨다. 직접 담근 매실이라며 소화제니 양껏 마시라고 했다. 농가 맛집을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더 건강한 맛을 찾아서 사찰음식의 대가인 스님께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가서 오래 배웠다고 한다. 가게 안 곳곳에 그림이 걸렸다. 누가 그렸나 했더니 매일 장 보러 가는 길에 1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장에 간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을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든담’은 이 집에 오는 손님이 음식을 먹고 ‘건강한 음식은 든든하게 몸에 담아가고, 추억과 행복은 마음에 담아 가라’는 사장님의 정성 어린 표현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6

“협회 내 문서 체계 정비, 우선 추진 과제"

서울·대구·경주·울산·예천·김해·안동 등에서 개인전 26회를 개최하고, 각종 공모전에서 대상과 다수의 수상 경력을 쌓아온 최한규 작가. 그는 지난 2월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제21대 지부장에 당선되며 또 하나의 이력을 더했다. 그동안 쉼 없이 이어온 작품 활동과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사무국장으로서 쌓아온 실무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왔다. 오랜 시간 축적된 노력은 이제 뿌리 깊은 연꽃처럼 한층 깊이 있는 결실로 피어나고 있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는 최 지부장은 “지역에서 화가로 살아가며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감을 생각하며 선거에 임했다”고 말했다. 공약을 실행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무엇보다 흩어진 회원들의 마음을 다시 모으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부담이 컸다고 덧붙였다. 취임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책임감이 반반”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우선적으로 추진할 과제로 협회 내 문서 체계 정비를 꼽았다. 임기 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를 표준화하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오랜 시간 지역 미술계에서 제기돼 온 경주시립미술관 건립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경주예술학교의 역사와 정체성이 시립미술관의 핵심 축이자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술관 건립과 함께 시급한 과제로 연로한 선배 작가들의 작품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보존하기 위한 데이터 수집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어 “2026년은 새로운 집행부가 업무를 파악하고 협회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하는 시기”라며 “내년부터는 회원들을 위한 다양한 신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회의 횟수를 늘려 임원진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사업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최 지부장은 올해 기존에 계획된 전시와 공모사업을 중심으로 전시 기회를 보다 내실 있게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주시가 주최하는 ‘신라미술대전’의 전시 공간 확보 문제도 주요 현안으로 언급했다. 올해로 47회째를 맞는 신라미술대전은 경주시가 주최하고 신라미술대전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전국 단위 공모전이다. 그러나 공립미술관 대관 기준이 지역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시 주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전시 기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과거 서라벌문화회관 전시장에서 진행되던 전시가 현재는 공간 용도 변경으로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대체 전시 공간 확보 역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시장 사용 기간이 기존 6주에서 3주로 줄어들면서 인력 부담은 물론 작품 훼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통상 신라미술대전 이후 같은 장소에서 열리던 경주미술협회 전시는 자진 신청 철회했다. 타 협회와 전시 일정이 겹치는 상황도 고려했지만, 무엇보다 회원 간 단합을 우선시해 전시를 다른 공간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대신 절감된 전시 비용을 활용해 ‘미협인의 날’을 마련하고, 회원들이 교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최 지부장은 “회원 간 단합이 우선돼야 협회의 미래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며 “임기가 끝나는 4년 후에는 회원들이 미술협회에 대한 소속감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공약 중 하나인 서류 대행 지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협회 업무가 정상화되면 회원 공지를 통해 대관 신청이나 예술인 패스 등록 등 전산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회원들을 도울 계획이다. 경주미술협회 회원이자 지역 미술인으로서, 그의 행보가 올 뜨거운 열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6

저자와 함께 떠난 경주국립박물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성공리에 치른 경주는 뒤이어 ‘신라금관특별전’으로 들썩들썩했다. 따로 떨어져 있던 금관이 경주국립박물관에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특별함 때문이었다. 신라 금관 6개를 모두 본 감동을 되살리려 다시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날은 특별히 ‘나는 박물관 간다’의 저자 김용호 작가와 인문학 회원들과 함께였다. 경주로 향하는 길, 오후의 봄 햇살은 내 등 뒤에서 포근히 따라왔고 이제 막 피어나려는 벚꽃처럼 신라의 역사가 우리 앞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했다. 거대한 서사 앞에서 우리는 작아졌고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잘 모르는 신라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박물관 입구는 언제나 그렇듯 3대가 함께한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 체험을 하러 온 학생들, 이제 막 버스에서 내린 외국인 무리가 뒤섞여 있다. 막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니 때맞춰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종소리에 행복해진 우리는 약속 장소인 신라역사관 앞에 모였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작가는 신라 금관 이야기로 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신라역사관의 시작은 신라의 연표부터 보는 거였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쳐 버렸는데 작가님 덕분에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물왕 때부터 임금의 칭호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에서 마립간이라 쓰며 신라가 독자적으로 정립해 나갔다. 그리고 온전히 왕권을 갖고 싶었던 염원이 청동을 지나 금관을 탄생하게 했다. 금관을 볼 때면 먼저 화려한 공예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황금 왕관을 마주할 때면 감탄과 동시에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금관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금관과 금제 장식들이 신라의 왕들에겐 권력을 표현하는 확실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거다. 금관 최대의 미스테리인 곡옥과 달개, 그 시절 신라 사람들의 세공 기술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세움 장식의 나뭇가지 모양이 신단수와 오벨리스크로 이어진다고 작가는 책에서도 말했다. 이 부분이 내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기다란 장대 끝에 기러기가 앉은 모양의 솟대도 신단수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지난 금관전 관람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금관에 나뭇가지 장식을 함으로써 하늘과 신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강력한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죽어서도 나라를 다스리며 하늘과 신에 기원하고자 금관의 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죽어서도 왕이 되고 싶었던 대릉원의 무덤처럼. 이제까지 단편적으로 알던 금관에서 한 발짝 나아간 느낌이다. 황금과 유리잔과 구슬이 신라에 있었던 건 북방의 기마민족과 남방 항로를 통한 교류의 흔적이었다 것도 확인했다. 평소에 문화는 교류하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오늘 이야기도 일맥상통한다. 투어를 마치고 질문 시간에 신단수와 오벨리스크에 대해서 다시 물었더니 작가는 신단수를 압축한 게 서양에서는 오벨리스크라고 말했다. 그게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순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기념비가 떠 오른다. 중요한 공공장소에 세워진 그 상징성을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두만강과 압록강이 그리 큰 강이 아닌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 갇혀 있다고 말했다. 또 역사를 아는 건 나를 아는 것이니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작가님의 나긋나긋한 설명이 오후 내내 내 귀를 행복하게 했다. 그 목소리가 중학교 때 잘생긴 총각이었던 국사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6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 산책) “문화가 밥 먹여줍니다”

보릿고개 시절엔 시(詩) 한 줄보다 쌀 한 됫박이 절실했으니까요. 그때 음악은 귀만 즐겁게 할 뿐, 배를 달래주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늘 배부른 뒤에나 찾는 ‘입가심용 디저트’ 취급을 받았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거꾸로 묻습니다. “문화 없이 대체 어떻게 먹고 살 거냐?” 이제 밥은 기본이고, 관건은 ‘맛’입니다. 그리고 그 맛을 결정하는 ‘조미료’가 바로 문화입니다. 똑같은 커피라도 편의점 구석에서 마시는 것과 낙동강 노을을 배경으로 마시는 것은 값이 다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커피는 뒷전이고 사진부터 찍느라 바쁩니다. 주인은 속으로 ‘얼른 마시고 한 잔 더 시키지’ 하며 울지만, 겉으로는 ‘인생샷’ 나오라며 조명을 밝힙니다. 이것이 바로 ‘갬성(감성)’이라는 이름의 문화 권력입니다. 이쯤 되면 문화는 장식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 전략입니다. 굴뚝 달린 공장도 귀하지만, 사람 마음을 낚아채는 ‘이야기 공장’은 더 무섭습니다. 그 전설 같은 이야기가 펄떡이며 살아있는 곳, 바로 사문진(沙門津)입니다. 사문진이 어떤 곳입니까. 옛날식으로 치면 영남권 최고의 ‘택배 허브’였습니다. 다만 ‘로켓 배송’ 대신 ‘언젠간 가겠지 배송’이 미덕이던 시절이었죠. 그러던 1900년 어느 날, 이 나루터에 괴상한 나무 상자 하나가 상륙합니다. 뚜껑을 열자 딩동댕 소리가 났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저 통 안에 귀신이 들었나 보다!” 지금 같으면 유튜브 실시간 조회수 100만 회를 찍고도 남을 ‘귀신 들린 상자’ 소동. 그 정체는 바로 이 땅에 처음 들어온 피아노였습니다. “귀신이 아니라 천상의 소리네.” 그 낯선 경이로움이 감동으로 바뀌고, 그 감동이 쌓여 오늘의 ‘사문진 100대 피아노 콘서트’라는 거대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낙동강 황금빛 노을 아래 피아노 100대가 열을 맞춰 앉아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압권입니다. 100명이 동시에 건반을 두드리면 강물도 숨을 죽이고 공기마저 파르르 떱니다. 공연을 본 한 관람객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고백하더군요. 사람을 죽일 듯 감동시키고는 끝내 다시 살려내는 것, 그것이 문화가 부리는 마법입니다. 문화의 진짜 힘은 ‘강력 접착제’ 역할에 있습니다. 생판 남이던 사람들이 같은 선율에 박수를 치는 순간, 우리는 잠시 ‘너’와 ‘나’를 잊고 ‘우리’가 됩니다. 물론 현실은 늘 녹록지 않습니다. 나라 곳간이 비면 늘 문화 예산부터 칼질을 당하곤 합니다. 마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운동도 내일부터”라며 미루는 심산과 비슷하죠. 하지만 문화는 소모되는 ‘비용’이 아니라 수익을 낳는 ‘투자’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은 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없는데 경제가 무슨 소용입니까. 문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성급한 주인처럼 거위 목을 비틉니다. “야, 너는 왜 오늘 알을 안 낳아? 내일은 곱빼기로 두 개 낳아라!” 거위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입니다. 문화는 재촉한다고 쑥쑥 자라지 않습니다. 묵힐수록 깊어지는 된장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 사문진을 중심으로 공연과 먹거리, 관광이 실타래처럼 엮이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보고, 먹고, 자고, 그러다 보니 정들어서 또 오게 만드는 구조 말입니다. 지갑을 열 ‘기분 좋은 핑계’도 만들어줘야 합니다. 기념품 하나에도 사문진의 사연을 입히고, 음식 하나에도 달성의 색깔을 입혀야 합니다. 그래야 배가 부른데도 “이건 꼭 먹어봐야 해”라며 하나 더 주문하는 ‘매출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결국 여행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연’의 문제입니다. 이야기가 도시를 살리고 감동이 자산이 되는 시대입니다. 누군가 다시 묻는다면 이제는 시원하게 웃으며 답해줍시다. “문화가 밥 먹여주냐고요? 당연하죠! 밥은 고봉밥으로 주고, 반찬에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챙겨줍니다. 잘하면 자다가도 생각나는 인생 단골집까지 예약해 드릴게요!”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05

(이사람) 아내 이름 걸고 세계시장 꿈꾸는 누룽지 외길

한 사람의 사업을 보면 그 사람의 철학이 보인다고 한다. 대구에서 누룽지 제조업체 K-味 푸드를 이끄는 이종규 대표를 만나면, 그의 말과 표정, 그리고 공장 안에 쌓인 누룽지 상자들 속에서 한 가지 마음이 읽힌다. “좋은 먹거리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최근 그는 기존의 S-푸드에서 K-味 푸드로 상호를 바꾸고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K’는 한국을 뜻하고, ‘味’는 맛이다. 여기에 아내 이름 ‘이미자’의 ‘미’까지 담았다고 한다. 단순한 상호 변경이 아니라, 아내를 향한 마음과 한국 전통 식품의 세계화를 동시에 품은 이름인 셈이다. 이 대표는 “제가 살아가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내를 편안히 해주는 것이고, 둘째는 저와 인연이 닿은 사람과 함께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라 했다. 그가 승부를 건 품목은 다름 아닌 누룽지다. 평범해 보이는 먹거리지만 그는 이 누룽지에 큰 가능성을 걸고 있다. “누룽지는 한국 사람 누구에겐 익숙한 음식이지만, 제대로 만들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전통 식품”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K-味 푸드의 주력 제품은 5분도 황미쌀 누룽지다. 일반 백미보다 쌀눈과 영양 성분이 더 많이 살아 있는 5분도 쌀을 사용해 맛과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원료는 경남 창녕 우포 인근에서 들여온 ‘이삭’을 도정해 별도의 첨가물을 넣지 않은 채 구워낸다. 이 대표는 “쌀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소중한 먹거리 가운데 하나”라며 “좋은 쌀로 제대로 만든 누룽지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건강한 식문화”라고 했다. K-味 푸드의 또 다른 강점은 산패 지연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누룽지는 시간이 지나면 맛과 향이 떨어지고, 보관에도 한계가 따른다. 이 대표는 오랜 연구 끝에 풍미를 오래 유지하면서도 변질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고, 관련 특허도 갖추었다. K-味 푸드는 기본 누룽지 외에도 숭늉용 제품, 선물용 포장 제품, 식혜용 제품 등으로 품목을 넓혀가고 있다. 경남 의령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에는 교통사고로 시력 장애를 안은 아픔도 겪었으나 굴하지 않았다. 그는 커피 재료 사업으로 한때는 6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경영인이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한 번 마음먹으면 끝을 보는 사람”이라 말한다. 실제로 그는 커피 사업에서 쌓은 유통 경험과 인맥, 현장 감각을 바탕으로 이제는 누룽지 산업에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그의 시선은 이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를 향하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도 이어지고 있고, 실제로 제품 문의도 들어온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금 세계는 K-푸드에 주목하고 있다”며 “김이나 라면만이 아니라 누룽지처럼 한국의 생활과 정서가 담긴 전통 식품도 충분히 해외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제품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희망이 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4-05

상덕사 문우관을 찾아서

지하철 1호선 반월당역에 내려서 옛날 적십자병원 쪽 출구로 나가서 동부교육청 조금 못 미친 네거리에서 서쪽으로 100m 쯤 가면 도로명 주소로 대구시 중구 문우관길 13에 상덕사(尙德祠)가 있다. 1682년 세워진 상덕사는 조선 현종 때 경상도 관찰사 이숙과 영조 때의 경상도 관찰사 유척기의 선정을 기리는 사당이다. 원래는 현 대구시청 주차장 부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덕사 이름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편액은 죽천 김진규가 썼다고 전한다. 1826년에 경상감사 조인영이 상덕사 뜰에 이숙과 유척기의 사적을 새긴 상덕사 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9월 9일 비 앞에서 제를 지냈다. 상덕사 입구 맞배지붕 협문에는 진덕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석재 서병오의 스승이었던 서석지의 아들 중산 서경순의 글씨로 문우관이 건립될 때 쓴 것이라 한다. 담장이 높지 않아서 마당과 건물을 넘어다보고 있는데 문을 여는 선비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진덕문을 들어서 왼쪽의 건물이 문우관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상덕사 비각(碑閣)이다. 현재 문우관에서는 30여명이 모여 일주일에 한번씩 한문 공부를 한다고 한다. 문우관은 1918년 채헌식, 구달서 등이 건립한 강회소다. 을사늑약 이후에 일제가 공교육을 실시하자 민족의 전통을 회복하고 강학과 후진 양성을 위해 선비들이 모여 지은 공부방이다. 문우관 방 벽에는 ‘이문회우 이우보인’ 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는데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로 ‘문으로써 친구를 사귀고, 친구와 더불어 인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따서 문우관으로 이름 지었다 한다. 이 글씨는 서병오의 제자이며 영남서화 회장을 지낸 주병환이 1976년 설날에 문우관에 걸기 위해 쓴 글이다. 문우관은 지금도 향사와 강학이 이어지고 있다. 문우관의 뿌리는 낙육재와 이어져 있는데, 낙육재는 1721년 경상도 관찰사 조태억이 설립한 대구의 첫 관립 도서관이자 지방 국립대의 효시다. 당시 향교와 서원이 있었으나, 도 단위의 인재를 선발한 것은 낙육재가 처음이었다. 선발된 경상도 지역의 유능한 선비들이 함께 기숙하며 엄격한 학칙 아래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장서각과 예산을 조달하는 학전도 있었다. 문우관 끝 오른쪽에 상덕사 비각이 있다. 상덕사는 1910년 일본인들이 대구시청의 전신인 지금의 청사를 지으면서 사라지고, 비와 비각만이 190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상덕사 비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은 사각의 화강석 기단 위에 세 칸 규모의 원주를 세우고, 맞배지붕을 올려 비교적 고풍을 간직한 모습의 건물이다. 옻색의 문과 붉은색의 촘촘한 살대 속에 상덕사비와 이숙의 선정비, 유척기의 영세불망비 2기 고종 때의 도순찰사 이호준의 불망비 등 5기의 비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9월 9일 중양절에 이숙과 유척기의 유덕을 기리는 향사를 문우관에서 봉행한다. 시민기자가 상덕사를 찾은 이날, 대구문화유산지킴회 회원 10여 명도 동행해 현장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문화유산지킴회 강춘화 씨는 “이처럼 소중한 유산이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며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05

대구예술발전소 특별전 ‘꼬레아의 힙’

(재)대구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본부에서 운영하는 대구예술발전소는 2026년 첫 특별기획전시 ‘꼬레아 힙!(KOREA HIP!)’을 지난달 4일 시작해 이달 19일까지 개최한다. ‘꼬레아 힙’은 우리나라의 K-팝·패션·디지털 콘텐츠·스트리트 문화 등으로 대표되는 ‘K-유행’이 단순한 소비 트렌드가 아닌 과거의 예술과 우리의 생활문화가 오늘의 감각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문화 예술적 흐름으로 바라보고자 기획됐다. 문화예술본부 이성민 팀장은 “이번 전시는 전통적 미감과 근현대 시각문화, 동시대 디지털·스트리트 감성의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힙함’이 형성되고 예술로 다시 생산되는 과정을 제시하여 익숙한 문화적 이미지가 새로운 감각으로 재창작되어 미래의 문화로 확장되는 순환 구조를 전시 경험 속에서 드러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는 곽기쁨, 김선재, 김은진, 김현정, 배문경, 장우석, 조세민, 한효진 8인이다. 회화·설치·오브제·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의 일상과 이미지, 도시적 감각을 동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이들은 ‘꼬레아 힙’이라는 키워드를 각자의 작업 방식과 감각으로 확장했다. 참여 작가들은 자기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곽기쁨 작가는 향 반죽·밀랍·감온안료 등 소멸하는 재료로 문장을 빚어 텍스트가 연소·용해·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읽는 언어’가 ‘보고 만지는 감각’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실험한다. 김선재 작가는 게임·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가상현실 ‘Over World’라는 세계관을 구축해 현실 공간에서 회화, 조각 작품으로 풀었다. 김은진 작가는 자개의 빛을 회화의 물성으로 끌어들여 인간군상과 상상 속 존재들이 뒤섞인 입체적 풍경을 그려냈고, 김현정 작가는 ‘내숭’을 주제로, 고상함과 비밀스러움에서 착안한 한복 차림의 인물을 통해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일상의 모습을 ‘내숭 이야기’ 시리즈로 표현하기 위해 특유의 한지 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21세기 풍속도를 그리려고 했다. 배문경 작가는 민화·십장생 이미지를 입체 설치로 구현하고 프로젝션 맵핑을 결합해 ‘이상한 나라의 민화 이야기’를 시간과 계절이 흐르는 몰입형 공간을 만들었으며, 장우석 작가는 지역을 직접 걷고 관찰한 기록을 회화·사진·영상으로 남겨 미니어처 부조 설치로 구성해 동시대 군상과 관계의 구조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조세민 작가는 팝적 캐릭터와 동북아 전통 이미지를 변용한 토테미즘적, 애니미즘적 오브젝트로 유희적 가상공간을 구축해 선악·미추 등 판단의 경계를 흐리고 삶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감각을 제시하고 있다. 한효진 작가는 한국의 ‘콜라텍’ 춤 문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통제와 편견을 넘어 몸으로 현재를 증명하는 노년의 리듬과 연결의 풍경을 사진, 영상 작품으로 소개하려 했다. 전시기간 동안 1층과 3층에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퓨전 공연과 전시 참여 작가가 함께하는 체험행사 등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