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숨결을 온전히 느끼는 날이었다. 햇살이 머무는 자리는 따뜻하고 바람이 스치는 자리는 아직 겨울의 서늘함을 놓지 않았다. 계절은 그렇게 두 겹의 온도로 흔들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꽃소식이 날아들었다. 상춘객도 많겠지만 나는 물소리를 찾아 계곡으로 향했다. 내연산 품에 안겨 있는 계곡 주변 너럭바위에 걸터앉았다. 돌에 닿는 물소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듯 차가운 물인데도, 물소리에는 분명 초록 봄을 부르는 싱그러움이 담겨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봄이면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산 아래 개울로 내려갔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았던 외가를 조금 벗어나면 오솔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가만가만 내려가면 물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그때 산골짜기를 흘러내렸던 물은 지금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어렸기에 물소리가 엄청 크게 다가왔던 것이리라. 물줄기가 바위를 두드리며 내는 소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조금씩 다른 높이와 깊이로 울리며, 서로 다른 음을 겹쳐 하나의 긴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노래는 산 위에서 시작되어 마을로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소리에 집중했다.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었다. 겨울 동안 닫혀 있던 내 몸의 무딘 감각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귀로만 듣기보다 온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그랬더니 바위에 닿은 물방울이 튀어 올라 손등에 떨어질 때마다, 정말로 굳어 있던 감각들이 하나씩 풀려나는 것 같았다. 물은 차가운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서서히 따뜻해졌다. 내연산 바람이 갑자기 불어왔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바람 속에는 분명히 다른 숨결이 섞여 있었다. 겨울의 바람이 직선으로 지나간다면 봄의 바람은 어딘가 부드럽게 굽어 흐르는 느낌이었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자 또 다른 소리가 만들어졌다. 물소리 위에 얹히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 자연은 그렇게 여러 겹의 화음으로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길에는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나무가 서 있었다. 앙상한 가지는 마치 겨울의 기억을 붙들고 있는 손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더니 나뭇가지 끝에는 분명히 작은 변화가 있었다. 아주 여린 빛깔의 싹이 보였다. 나의 눈을 가까이 가져가야만 겨우 보일 만큼 미세하게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벌써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나는 손끝을 물에 살짝 담가 보았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곧바로 차가움이 익숙해졌기에 두 손을 물에 담갔다. 내가 흐름을 방해해도 물 은 계속 흐르고 흘렀다. 그 흐름 속에는 멈춤이 없었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은 봄에 의해 흘러가 버리듯이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에게만 유독 얼어붙어 있다고 믿었던 고통의 순간이나 멈춘 것처럼 느껴지던 시련의 순간도, 사실은 아주 느리게 흘러서 나를 비켜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봄을 깨우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비로소 알아차렸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는 것이라고. /정미영 수필가
2026-04-01
포스코 포항제철소에는 바다와 불, 쇠가 뒤섞인 냄새가 난다. 그곳이 일터인 남편이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면 바닷바람에 섞인 용광로의 뜨거운 숨결까지 옷자락에 달고 함께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남편의 근무복을 마주할 때면 나는 땅 위의 둥근 문을 떠올린다. 도시의 길목마다 묵묵히 박혀 있는 맨홀 뚜껑을 사람들은 무심히 밟고 지나치지만, 나에게는 남편의 하루를 굳혀 만든 철의 얼굴처럼 보인다. 직원들의 열정적인 손길과 굵은 땀방울이 식어 굳어져야 비로소 단단한 제품으로 완성되는 맨홀이다. 그래서인지 맨홀 뚜껑을 보면 가끔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여다본다. 크기가 다양하고 문양도 제법 차별화되어 있다. 아파트 맨홀 뚜껑에 소나무와 학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을 때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흔적이 겹겹이 담겨 있어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맨홀 뚜껑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된다. 가볍다면 장난스러운 손길에도 스치는 바람에도 열려 버릴 것이다. 도시의 안전을 지켜야 되는 책임이 암묵적으로 담겨 있는 약속이므로 함부로 열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남편의 하루도 무겁다. 그의 어깨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는 쇳덩이만큼 진중하다. 도시는 그의 손끝에서, 그리고 수많은 회사 동료들의 귀한 노동으로 돌아간다. 불꽃이 튀는 산업현장에서 남편이 하는 일은 도시가 멈추지 않도록 철을 생산하는 일이다. 기술연구소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보내는 시간이 길고 뜨거울수록 그가 연구하고 실험하고 작업했던 결과물들은 마침내 여러 모양의 생산물로 세상에 태어난다. 철로 만드는 생산품들 중의 하나가 맨홀이다. 사람들이 눈 여겨 보지 않아도 도시의 흐름을 지키는 소중한 존재다. 아래로는 하수가 흐르고 전기가 달리며 열과 통신망이 숨 쉰다. 지하 깊숙이 뻗은 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길이 끊어지면 도시도 멈춘다. 도시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많이 의지하며 살아감으로 맨홀은 늘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가정도 그렇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력과 인내가 흐른다.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부의 분주한 손길도 필요하다. 밥을 짓고 난 후 퍼져 나오는 구수한 냄새, 식탁 위에 놓이는 따뜻한 국 한 그릇, 햇볕에 잘 말려진 뽀송뽀송한 가족의 옷 등은 내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마냥 평범하고 무탈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식구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언짢은 기억이나 불쾌하게 쌓인 피로를 집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용히 덮어 두는 일도 아내와 엄마인 나의 몫이다. 집이라는 작은 도시도 보이지 않는 주부의 노력이 있어야만 지탱되는 순간이 많다. 그런 연유로 남편이 회사에서 하루를 버틸 때 나 역시 집안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뚜껑이 된다. 오늘은 포은오천도서관 옆을 지나다가 멈춰 선다. 샛노란 색에 둘러싸인 맨홀 뚜껑을 보고 발을 얹는다. 용광로의 숨결이 차가운 철판으로 식어 발밑에 놓였듯 남편의 하루가 내 삶 속에 단단히 놓인다. 나는 지금 철 위에 새겨진 남편의 땀 위를 걷고 있다. /정미영 수필가
2026-03-18
갈림길 앞에서 잠시 멈춘 날이 있었다. 영덕도서관 글쓰기 첫 모임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분을 만났다. 시골집을 고쳐 카페로 만들었다고 했다. 수업을 마친 뒤 나는 그녀가 알려준 ‘시골카페’를 찾아갔다. 길을 따라가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이정표에 평해와 영해가 적혀 있었다. 내가 가야할 곳은 영해 방면이었지만 내비게이션은 평해 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영해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길은 점점 좁아졌고 산길로 이어졌다. ‘아, 길을 잘못 들었구나.’ 차를 돌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평해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영해휴게소로 들어가라는 안내가 나왔다. 생뚱맞게 느껴졌지만 조금 전에 길을 헤맸던 순간이 떠올라 그냥 들어갔다. 휴게소만 있는 줄 알았는데 건물 옆에 예주문화예술회관이 보였다. 그쪽으로 가다보니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가자 드디어 ‘시골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담한 카페 안은 밝은 온기로 가득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을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한쪽 벽에 붙어 있던 편지였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여학생 두 명이 남긴 글이었다. 힘들 때마다 찾아와 위로를 받았고 대학생이 되어 생활이 바쁘더라도 한 번씩 찾아오고 싶다는 감사의 마음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에게 ‘시골카페’는 길 위의 이정표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삶의 좌표를 잃어 마음이 지쳤을 때 여기로 돌아오고 싶다는 글을 보니, 어쩌면 이곳은 조용히 서 있는 이정표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비바람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그 존재만으로도 길을 오가는 사람에게 위안이 된다. 내 삶에도 이정표 같은 사람이 있었다. 친정아버지는 한때 교통경찰이었다. 아버지는 눈보라가 몰아쳐도 한여름 열기가 아스팔트를 달궈도 언제나 맡은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과 자동차의 흐름을 손짓 하나로 정리하며 모두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 위의 질서를 지켰다. 학창 시절,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날 조용히 말씀하셨다. “길은 많다. 중요한 건 네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 가다.” 아버지의 말씀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지금은 생전에 아버지가 계셨던 자리가 비어 있지만 삶의 갈림길에서 내 걸음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잠시 멈춰. 그리고 네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해.” 아버지의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철제 이정표처럼 내 마음 한켠에 서 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 잠시 헤맬 때도 결국은 다시 방향을 찾게 해준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이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골카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아버지처럼 잠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묵묵히 품을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오늘, 보이지 않는 이정표 하나를 마음속에 세워 둔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3-11
설날을 맞아 가족과 친척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들이 어색하지 않게 신경을 쓰며 안부를 물었다. 근황을 묻는 분위기가 한소끔 지나고 나면 어른의 훈계에 아이들의 농담이 겹쳐지고 웃음이 덧씌워졌다. 그런 다음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었다. 모처럼 윷놀이를 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편을 나눠 떠들썩하게 윷놀이에 몰입하고 나면 배가 출출했다. 설날의 기쁨 중 하나는 떡국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식사 준비를 했다. 부엌에서는 기름이 달궈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이 번졌고 반찬을 꺼내 담는 손길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버무려 넣었다. 큰 상에 접시마다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이 놓였다. 나는 각각 고유한 빛깔로 담겨 있던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등을 대접에 담아 밥상으로 날랐다. 섞기 전의 비빔밥은 명절을 맞이하는 가족과 닮았다. 시어머님은 시어머님의 자리에서, 아주버님과 형님은 두 분의 자리에서, 조카와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생활하다가 밥상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모여 앉았다. 각자의 집에서 보냈던 일상 이야기도 덤으로 놓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나다움’을 지키려 애쓴다. 내 생각, 내 방식, 내 취향을 존중받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오면 내가 지녔던 단단한 모서리들이 조금씩 둥글어진다. 나 혼자일 때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표정이 가족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피어난다. 학교나 직장,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았던 마음도 여기서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함박웃음이 먼저 와서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비벼진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었다. 밥과 반찬을 따로 먹어도 맛있겠지만 나물과 고기가 잘 섞여 어우러진 맛은 무척 깊고 넉넉했다. 비빔밥으로 섞이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완성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각각의 맛이 또렷했지만 이내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맛이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서로의 경계가 무너질 때 생기는 선명함이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시간을 나눴다. 누군가는 새로 시작할 일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지나온 한 해를 조용히 털어놓았다. 나를 염려해 주는 이들의 마음이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올해 계획이 조금 수정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또 다른 식구들의 마음도 어느 틈에 우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고 앉았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밥이 거의 비워질 무렵이었다. 비빔밥 그릇에 담겨진 나물과 고기의 처음 또렷한 색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그릇의 따뜻함만 남아 있었다. 방 안 가득 퍼진 온기와 비슷한 빛깔이었다. 설날의 비빔밥처럼 섞여야 비로소 내가 된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한 가지 맛에 머물러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있을 때의 나는 조금 더 깊은 맛으로 숙성되는 것 같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뭉쳐진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로 인해 완성된다. 그래서 명절은 지나가도 따뜻한 감정은 오래 남는다. 나는 가족과 섞여야 비로소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2-25
올해는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이다. 그를 기리는 나만의 방식으로 예전에 읽었던 ‘토지’ 전권을 매일 한 권씩 다시 읽었다. ‘토지’는 약 26년간의 집필 기간을 거친 대하소설이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분량보다 등장인물들의 숨결이었다. 민중의 삶들이 흙처럼 겹겹이 쌓여 하나의 역사를 이룬 듯했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나는 환경에 흔들리면서도 유장하게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인들의 생활사가 자세히 묘사된 책을 읽고 났더니 문득 국립대구박물관에 가고 싶어졌다. 주말에 일정을 조율해 대구박물관에 다녀왔다. 박물관은 언제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우는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복식문화실은 유독 내 발걸음을 늦추게 했다. 복식의 변천사는 의복이 몸을 감싸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감당하는 자세의 변화처럼 보였다. 시대가 바뀔수록 옷은 가벼워졌지만 그 옷을 입고 살아낸 시간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으리라. 그곳에서 오래 시선을 붙잡은 것은 흑립이었다. 흑립은 유리 진열장 안에서 완벽하게 고요했으며 근엄했다. 말총의 촘촘한 결, 둥근 테의 균형, 빛을 삼키는 듯한 짙은 검정은 하나의 완성된 형식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기능보유자 입자장 박창영’ 장인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설명문 옆에서 갓은 기능과 미학의 정점으로 존재했다. 갓은 일상의 쓰임에서 벗어나 보존의 대상으로 변모하더니 어느덧 현재의 테두리 바깥에 놓여 과거의 물건이 된지 오래된 듯 보였다. 그러나 흑립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자꾸만 다른 갓과 겹쳐졌다. 유리 너머에서 정적(靜的)으로 존재하는 갓이 아니라,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동적(動的)으로 살아있던 작은외할아버지의 갓이었다. 그분은 집성촌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훈장님으로 명절이면 한복을 차려입고 상투를 틀어 올려 갓을 쓴 채 마을길로 나섰다. 그 시절 나는 할아버지의 갓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명절이면 으레 보았던 풍경이었고 자연스러운 차림이었다. 그러나 박물관의 흑립 앞에 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갓은 머리 위에 얹는 단순한 의미의 사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긴 수염을 훑으며 에헴 헛기침을 하던 순간 속에서 갓은 겉치장이 아니라 태도였다.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고 예의범절을 다하는 몸가짐이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고개를 함부로 숙이지 않게 하고 세상사에 쉽게 타협하지 않게 만드는 신념과 자존감이 갓 속에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대구박물관을 나서며 다시 한 번 흑립을 떠올렸다. 복실문화실의 흑립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물건이 되었지만 작은외할아버지의 갓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거풍되고 있었다. 박물관의 유물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고 기억 속의 갓은 현재의 내 마음 안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 차이가 박물관에서 나를 한참 동안이나 서성이게 했다. 결국 삶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머리 위에 얹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임에랴. 생활의 속도, 시간의 효율, 타인과 주고받는 언어 또한 수시로 내 머리 위에 얹어지는 것들이다. 지금도 흑립의 이미지가 나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머물러 있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2-11
지난해 가을, 수필집을 발간했다. 신문과 여러 매체에 흩어져 있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새로운 숨을 얻었다. 어떤 글은 오래 묵은 슬픔에서 왔고 어떤 글은 지나가는 바람 같은 기쁨에서 태어난 글이었다. 책 속의 모든 글이 내 마음을 다독여 주었듯이 독자들에게도 은은한 치유의 서막이 되기를 바랐다. 12월 초입에 북콘서트를 했다. 한 독자가 내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까지 잘 키우세요”라는 말과 함께 포인세티아 화분을 안겨 주었다. 포인세티아는 초록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기에 크리스마스 꽃이라 불리며 꽃말은 축복과 행복이다. 갓 태어난 책을 축복하듯 눈부신 생명의 빛을 품고 있어 자태가 황홀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온종일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화분을 두었다. 전등을 켜자 붉은 잎이 실내의 공기를 따뜻하게 물들였다. 풍성한 초록 잎에 둘러싸인 포인세티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꽃이라 부르는 붉은 부분은 진짜 꽃이 아니다. 포엽(苞葉)이다. 꽃을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잎. 가운데 작고 노란 꽃은 조용히 숨어 있었고, 포엽은 자신이 꽃인 듯 화려하게 빛나며 세상의 시선을 대신 받아주고 있었다. 포엽은 스스로를 꽃처럼 드러낸다. 하지만 사실은 꽃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잎이다. 그 희생과 배려가 없다면 진짜 꽃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문득 세상 만물의 이치가 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 서고 누군가는 무대 뒤에서 조명을 켠다. 누군가는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는 이름 없이 지탱한다.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도와주는 돌봄의 손길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뒷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는 이웃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내 삶에도 포엽 같은 존재가 있다. 수필 동인과 독서회,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분들이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쓰는 행위는 개인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지만, 여럿이 참여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는 타인의 관점을 들여다보며 내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내 독서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책 읽기를 마칠 때도 있지만 토론을 통해 사고의 전환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만나는 분들은 서로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이끌어 주고 토닥여 주는 포엽이다. 포엽은 화려하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빛을 잃고 이내 시든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꽃은 열매를 맺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포엽의 겉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열매라는 본질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한때 찬란히 빛났던 순간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참고 견뎠던 순간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포엽은 말이 없다. 하지만 자기 역할을 알고 있다. 앞에 나서지 않아도 없으면 안 되는 존재. 꽃을 위해 자기 색을 태우는 잎이다. 그 겸허한 구조를 바라보며 나는 오래 잊고 지내던 마음 하나를 다시 기억해냈다. 빛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드러나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진실이다. 나는 지금 포인세티아를 바라본다. 포엽 사이에서 작은 꽃이 살포시 숨을 쉬고 있다. 포인세티아는 나에게 은유 하나를 조용히 건넨다. 내 삶이 빛나고 싶다면누군가를 감싸 안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정미영 수필가
2026-01-28
새해 첫날, 겨울바다를 찾는다. 해는 수평선 앞에서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바다가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중인지 사위가 검푸른 탓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아득하다. 차가운 바람이 모질게 불어와도 돋을볕에 둘러싸인 해를 보겠다는 설렘으로 잠연히 기다린다. 해는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해가 입체적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서 있다. 돌이켜보면 새해 첫 해돋이는 항상 기다림으로 시작되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끝내 도착할 빛을 믿으며 서 있어야 하는 순간이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다. 회사라는 일정한 틀도, 조직도 없이, 오롯이 내 능력과 운에 기대어 하루를 엮는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강의가 없어지면 생활의 뿌리가 하릴없이 흔들린다. 직장이라는 굳건한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았다면지금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얼마 전, 오랫동안 맡아온 강의를 그만두었다. 내 마음이 무게중심을 잃고 요동쳤다. 그 수업은 단지 수입원일 뿐만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던 일상의 한 줄기였다. 쉽사리 꺾이지 않을 줄 알았던줄기가 뚝 끊기자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무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다. 햇살은 고요했으나 내 안의 그늘은 작은 먼지에도 일렁였고, 바람 하나 없는 날의 갈대처럼 사소한 일에도 속절없이 흔들렸다. 내가 현재 나아가는 삶의 방향이 올바른지, 무시로 나를 향해질문을 던졌다. 마음속에서 감정의 파고가 높고 거셌다. 그러는 사이에나는 내 안의 생기를 조금씩 지워갔다. 그렇게 한동안을 앓고 나서야 문득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자책의 울타리를 키우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강의를 맡게 될 날을 기다리자고 마음먹었다. 내 삶의 많은 순간이 해가 뜨기 전의 새벽과 닮았다. 애써 나아가고는 있지만 정말로 빛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간단없이 갈망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젠가는 해가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장마 뒤에는 하늘이 갠다는 자연의 섭리를 들먹이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중한 믿음이었다. 해가 뜨기 전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해돋이를 보기 위한 기다림의 층위를 체감한다. 밤새워 기다린 사람과 이제 막 도착한 사람 사이의 기다림이 뒤섞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만 각자 안고 온 사연은 다르다. 어떤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어떤 이는 아직 오직 않는 용기를 스스로 다독이며, 또 다른 이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를 품고 저마다의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드디어 해가 장엄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누군가는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한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기다렸더니 감동의 여운이 짙다. 나는 해돋이를 기다리는 동안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해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떠오른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