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녁 언저리에 멈추어 잊어버린 단어들, 대지의 옛 색깔들, 나무의 빛나는 흔적들을 찾는다. 너는 여기에 있고, 내 옆에서 미소 짓는다, 천천히 움직이는 조그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란 나뭇가지 아래서. 또 다른 나뭇가지, 황금 나뭇가지가 내 손에 있다. 난 언제나처럼 너와 말한다, 뜨겁고, 사랑스러운 말들이 하얀 돌의 침묵 위로 조용히, 천천히 흐르는 샘물을 타작한다. ….. 콜롬비아 시인 비에이라의 시. 시인은 사물의 세계에 내재하는 ‘너’가 여기에서 미소 짓고 있음을 감지한다. ‘너’는 “빛나는 흔적들”로부터 포착할 수 있다. 그 흔적들은 “대지의 옛 색깔들”을 재현하고 “잊어버린 단어들”을 되살린다. 그렇게 등장하는 ‘너’는 “하얀 돌의 침묵 위로” “사랑스러운/말들”을 건네고, ‘너’와 그러한 말을 나누는 시인은 “파란 나뭇가지” 안에 있는 “황금 나뭇가지”를 ‘타작’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6-02-26
사물이여 너도 언약의 미로에 거주하고 있었구나 약속은 너를 부르는 이름이었으나 약속의 땅에 멋대로 국경을 세운 자들이 너를 추방한 후로 이 미로에서 언약을 굳게 기억하며 어디로 흐를지 모를 시간을 위하여 너는 회전축으로 남았구나 언약은 미루어진 채로 늘 미로이고 그리하여 너는 이제 스스로 약속을 현시하는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언약은 네 안에서 말하는 사물이 되었구나 그리하여 사물 안에서 시간이 말하는구나 사물이여 시간의 사건이여 ……. 아담이 사물에 이름을 붙였을 때, 사물과 이름은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말이 갈라지고 언어가 사물 사이에 “멋대로 국경을 세”우자 사물과 언어는 분리되고 사물의 존재 자체는 어둠 속에 갇히게 되었다. 사물은 다시 자신의 이름을 가져 자신의 존재성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길 기다리다가, “이제 스스로” 자신 “안에서 말”함으로써 “약속을 현시”한다. 이와 함께 약속의 시간 역시 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 <문학평론가>
2026-02-25
우리를 밤의 유리창 앞에 서 있게 하는 게 있다 밥 먹다가 갑자기 숟가락을 떨어뜨리게 하는 게 있다 그것은 아가의 웃음 속에도 있고 연인의 상기된 뺨에도 있고 노숙의 헐벗은 발, 쓰러진 소주병 속에도 있다 차라리 안 보면 좋았을 것 기억하면서 잊어야 하는 것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해지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짓말 하듯, 더듬더듬 말해야 하는 게 있다 물 빠진 둠병 바닥 미꾸라지의 몸부림 같은 것 온종일 삐걱삐걱 빈방을 돌고 있는 의자의 표정 같은 것 수시로 우리를 떠나가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는 이상한 그림자들 … 시인은 다 말할 수 없는 ‘그것’을 붙잡아 어떻게 더듬더듬 말하고자 하는 이 아닐까. ‘그것’은 갑자기 현현하여 위장된 평온을 뒤흔들고 쇼크를 준다. 어디서나 나타나는 ‘그것’, 아가의 웃음뿐만 아니라 노숙자의 소주병에도 있는, “안 보면 좋았을” ‘그것’은 삶의 어떤 끝에서 일어나는 몸부림을 드러내거나 빈방의 삐걱거리는 의자처럼 허허롭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이상한 그림자들’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6-02-23
바람 속에는 수많은 말들이 떠다닌다 옹알이하는 말부터 어른 된 술주정 서린 말 뒤돌아보는 말보다 바람처럼 앞으로 나가자는 말들이 멈추지 않고 떠다닌다 그중 빛 한 줄기 사랑한다는 말 하나 떠나지 않고 허공 높이 떠 지상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람 속 어두운 밤 별처럼 …. 바람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든 이들의 삶을 어루만졌을 터, 위의 시에 따르면 바람은 아기의 옹알이에서부터 어른의 술주정까지 바람은 자신 속에 담아놓고 있다. 하지만 바람을 맞는 이에게 바람이 건네주는 말들 중 “앞으로 나가자는 말들이” 가장 몸에 와 닿지 않을까. 그때 바람은 밤하늘의 별이 내리는 빛과 어울린다. “사랑하는 말을” 내려주는 빛과. 그래서 밤바람을 맞으러 우리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6-02-22
날라리바람 데리고 남한산성 둘레길을 건들건들 걷는다 어깨를 툭, 치고 달아나는 트롯 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다며 채워 달라는 그녀의 시선 낯 뜨거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먼 풍광 앞에서 흐릿한 시야를 비비는 남편의 눈에 안약을 발라주는 한 노파의 손 석양이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 ‘사랑의 배터리’를 충전하려는 ‘날라리’가 된 심정으로 건들건들 산책하고 있는 시인. 그 배터리를 어떤 노파가 충전시킨다. “남편의 눈에/안약을 발라주는/한 노파의 손”은 사랑의 강력한 전기를 배출하고 있는 것. 흥미로운 점은 이 장면을 풍경이 사진 찍고 있다는 것. 아름다운 석양은 우리가 사진 찍는 대상이지만, 석양에겐 저 사랑을 방전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기억하고픈 대상인가보다. <문학평론가>
2026-02-19
인간만이 사랑을 가진 자이기에 자기가 품었던 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술로 자기가 걸었던 길이 다른 사람의 길로 자기의 사랑마저 다른 사람의 팔로 성취되고 자기가 뿌렸던 씨를 다른 사람들이 따게 하도록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 (중략)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나고 사랑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처음에는 생이 다음에는 죽음이 바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분배될 것이다 하얀 방도 피투성이의 입맞춤도 그리하여 부부들과 우리들 세상의 봄이 오렌지 꽃처럼 지상에 흩어져 깔릴 것이다 …. 루이 아라공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시인이다. 김남주 시인은 감옥에서 아라공의 시를 옮겼다. 위는 장시의 1연과 마지막 연을 옮긴 것. 현재 시의 발언이 점점 축소되고 개인화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시대가 위의 시가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나 인간에 대해, 사랑의 미래에 대해 커다란 육성으로 말하는 시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2026-02-18
정신이 잠들지 못한다, 기껏해야 누워 있기나 할 뿐 속은 뒤틀리고 깨어 있는 채로, 마지막 공격처럼 몰아닥치는 눈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은 희망한다 체호프가 이 자리에 있어서 뭐라도 처방해줬으면-발레리안 진정제 세 방울, 장미수 한 컵-아무거라도. 정신은 여길 나가서 눈 속으로 가고 싶어한다. 털 많은 짐승 무리와 함께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뛰어다니고 싶어한다. 달빛 아래서, 눈밭을 가로질러, 발자국도 다른 흔적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정신이 오늘밤 앓고 있다. … 20세기 후반 미국 단편소설을 대표하는 카버의 시. 필자의 현재를 이 시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어서 여기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현대인의 정신은 수많은 틀 속에 갇힌 채 어떤 의무의 중압에 의해 짓눌려 있다. 하여 불면으로 “누워 있기나 할 뿐”인 현대인의 우울한 정신은 “여길 나가” 야생의 눈밭으로 들어가 짐승과 함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활짝 웃으며 뛰어다니고 싶”은 욕망으로 뒤척인다. <문학평론가>
2026-02-12
나는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져서 걸어다닌다 의자에 앉아 기울어져 졸기도 한다 진짜 기울어졌나 거울을 갸우뚱 바라보다 진짜 기울어진다 비탈에 서 있는 것처럼 구부정하게 기울고 척추를 바로 세워도 조금씩 기울고 기울어져 기우는 중이다 무너지는 중인가 쓰러지는 중이다 비스듬히 중력을 버티는 중이다 기우는 운명을 한탄하며 우는 중이다 울면서 기우는 중이다 오래 기울면 우는 것이다 기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기울기에 갇혀 울다 지쳐 졸기도 한다 기울어지면 기울어진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 기울어지는 삶. 중력의 힘에 꼿꼿히 맞선다기보다는 중력이 끌어당기는 데 따라 쓰러져가는 삶.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기우는 운명을 한탄하며 우는 중”인 삶. 하나 이런 기울어지기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울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하여 울음은 진실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 울음은 시가 아닐까. 어딘지 모르는 “기울어진 쪽으로 향하”면서 흘리는 울음의 시. <문학평론가>
2026-02-11
배가 포구로 들어설 때 한참을 기다렸던 아낙이 사내의 어로(漁撈)를 올려 받는다 오늘의 양은 함지박을 반도 못 채웠지만 아낙의 몸피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웃음소리 통통하다, 사내도 일찍 온 저녁이 허기졌는지 어구를 둘러맨 발길이 재바르다 허전한 결실조차 서로의 위안이 되는 하루의 살림살이가 잔물결이니 나누어진 파도의 무게 곤핍한 수평을 거두며 주름져 가리 남자가 뒤돌아보며 아낙의 보폭에 저를 얹는다 바다는 줄곧 제 할 일에 골몰하다 …. 돈에 굶주린 도시인으로서, 바다에서 노동하며 “하루의 살림살이”를 함께 꾸리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파도의 무게”를 나누며 “허전한 결실조차 서로의 위안”으로 삼는 부부는 부부의 진정한 본질에 닿아 있다. 행복이란 저 부부의 ‘통통’한 웃음소리에 있지 않을까. “보폭에 저를 얹는” 부부의 삶은 자연에 가깝다. “줄곧 제 할 일에 골몰하”는 바다와 부부의 저 모습은 닮은 모습이다. <문학평론가>
2026-02-10
나는 내리는 비 아래 소나기를 피하겠다고 조금이라도 젖지 않아보겠다고 애초에 괴롭지 않겠다고 그러니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차라리 묻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러겠다고 전력으로 달릴 때마다 나는 알게 된다 저 날씨 끝에 누군가를 두고 왔다는 것 이제는 데리러 갈 수 없다는 것 …… 세상엔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를 맞으면 괴롭다. 하여 소나기를 피하고 “조금이라도 젖지 않”기 위해 “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시인은 생각했나보다. 그 홀로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마음을 다잡고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 칩거이기에. 그때 시인은 깨닫는다. 이 칩거의 삶에서, “저 날씨 끝에 누군가를 두고 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여서 그 누군가는 영영 “데리러 갈 수 없”다는 것을. <문학평론가>
2026-02-09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신발도 신지 않고 외투도 걸치지 않고 배고프면 먹이를 찾고 때가 되면 짝을 찾고 몸이 시키는 대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어느 겨울날 재수없이 바퀴에 깔려 피범벅이 되어도 새는 후회하지 않는다 제 살을 파먹으며 아파하지 않는다 …… 시인은 살면서 행한 어떤 일에 대해 후회와 함께 “제 살을 파먹으며 아파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에 그는 자신의 삶을 극복한 표백으로서 새를 생각한다. 새는 자기 몸밖에 갖지 않은 가난한 존재이지만 자유롭다. “몸이 시키는 대로” 날아다니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집을 짓고 알을 낳”으며 살아가는 존재. 자유로운 만큼 “바퀴에 깔”릴 위험도 많지만 “후회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강인한 존재가 새다. <문학평론가>
2026-02-08
종을 울리며/ 깊은 밤 기도를 합니다 종소리는 손을 벌리지도/ 뛰지도 않고서/ 방안을 채웁니다 몸도 없이/ 얼굴도 없이/ 먼 곳까지 갑니다 당신에게 갑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로 속삭입니다 입술도 없이/ 소리가 되어/ 몸도 없이 당신의 몸을 울립니다 깊은 밤/사람의 몸이 울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일어난 일로/ 하늘 가운데서/ 별 하나/ 소리조차 없이/ 온몸이 반짝반짝 빛이 됩니다. … 종소리에 대한 아름다운 시. 외로이 고통 속에 있는 당신에게 종소리가 들린다. 기도와 함께 울리는 그 종소리는 “몸도 없”고 “얼굴도 없이” “방안을 채”우며 “당신에게” 간다. “사랑하는 소리로 속삭”이면서. 하여 “입술도 없”는 종소리는 “몸도 없이 당신의 몸을 울”리고, 당신의 몸은 ‘깊은 밤’에 홀로 “울고 있”게 될 것이다. 하나 이 홀로 우는 울음이야말로 당신의 ‘온몸’을 “반짝반짝”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6-02-05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면 만사형통이다 이방으로 걸으니 차림새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방으로 먹으니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다 이방인으로 일하니 최저시급도 감지덕지다 이방인으로 기도하니 어느 신이건 상관없다 이방인으로 사랑하니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너도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살아갈 수 있다 실수를 하면 이방인이 되어 사과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이방인으로 감옥에 간다 (중략) 이방인이니까 이토록 좁고 불편하고 낮은데 비로소 자유롭다 이방인이니까 …. 젊은 시인 김은선의 시.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고 시집을 낸 시인이다. 위의 시는 MZ세대의 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방인으로서 자신을 느끼고 또한 이방인이 되고자 하는 의식.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으며 돈에 대한 욕망도 가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하나 이방인이 가질 수 있는 건 자유로움. 차림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말을 하나 안 하나 신경 안 써도 되는. <문학평론가>
2026-02-04
내려갈 버스를 기다리면서 두고 온 핏줄 생각하니 눈이 뜨거워진다 함박 함박 눈은 내려 시끄러운 세상을 덮어버린 어둑한 밤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눈은 마냥 퍼붓고 썰렁한 대합실에 소리 없는 뉴스만 보고 있다 무인 기계 앞에서 냉냉한 찬 기운 옷 속으로 파고들어 내일이면 새해 첫날 가지 말라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순한 손 안 떨어지는 발을 달래면서 곧 오겠다고 돌아보면서 창가에 앉아 핏줄을 떠올려 보는 십이월 마지막 날 내일은 새해 희망은 보이지 않는데 다시 희망은 온다 적어 보는 겨울밤 …. “순한 손”을 가진, “두고 온 핏줄”은 누구일까. 시인의 손주 아닐까. “가지 말라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면 아이일 테니. 시인은 이 ‘핏줄’을 생각하며 버스 대합실에서 “마냥 퍼붓는 눈”을 바라본다. 만나고 이별해야 하는 삶,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기 힘든, 삶의 쓸쓸함과 희망 없음에 대한 상념에 빠지며 말이다. 하나 “다시 희망은 온다”고 시인은 쓰는데, 마침 “내일은 새해”이기 때문이겠다. <문학평론가>
2026-02-02
내가 쪼개는 이 빵은 본래 귀리였고, 이 포도주는 한 이국 나무에 열린 열매 속에 잠겨 있었는데, 낮에는 사람이 밤에는 포도주가 곡물을 쓰러뜨리고, 포도의 기쁨을 깨뜨려버렸다. 이 포도주에 담긴 여름 피는 본래 포도나무 장식했던 과육 속에 박여 있었고, 이 빵에 배인 귀리도 한때는 바람 속에서 즐거웠는데, 사람이 햇살을 끊고, 바람을 멈춰버렸다. 너희가 쪼갠 이 살, 너희가 황폐하게 만드는 혈관 속의 이 피는 본래 귀리와 포도 육감적인 뿌리와 수액의 산물로 너희는 내 방 물어뜯고, 내 포도주를 마신다. …. 위의 시는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인간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빵과 포도주는 우리의 기본적인 먹거리로 매일 먹고 마시는 사물들이지만, 자연 입장에선 그것들은 폭력의 산물이다. 빵은 즐거이 바람을 맞이하곤 했던 귀리를 쓰러뜨리고 땅에서 뽑아 만든 것, 포도주 역시 포도 속에 박혀 있던 피를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문학평론가>
2026-02-01
바람을 보았다 바람을 타고 회전초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간을 보았다 씨앗의 모양을 띤 시간 사하라, 시간을 보았다 빨갛게 질릴 때까지 혼자 꿈꾸는 바람을 보았다 바람이 없는 사람들이 가서 바람의 휘청대는 몸을 맞히는 사하라, 몸속 열을 최대한 바깥으로 내보내는 얇고 커다란 귀와 헤엄치듯 울부짖는 발로 바람은 춤을 추고 있었다 당신이 일찍이 보지 못한 춤이었다 서로의 안쪽을 꺼내 오는 시간이었다 당신의 춤은 바람이라는 시간 나의 바깥을 흐른다 이 시의 ‘사하라’가 시인이 방문하여 시적 인상을 받은 실제의 사하라 사막일 수도 있겠지만 시적 상상이 만든 장소일지 모른다. 여하튼 사하라는 시에 따르면 바람이 보이는 곳이다. 그 가시화되는 바람은 또한 “씨앗의 모양을 띤 시간”을 구상화한다. 사하라에서 “혼자 꿈꾸는/바람”은 춤을 추며 “서로의 안쪽”, “몸속 열을” 꺼내오는 시간을 드러내고, 시간을 바람으로 바꾸어 “나의 바깥”에 흐름을 형성한다. <문학평론가>
2026-01-29
거리는 매독 환자의 코처럼 사라졌다 강은 군침 흘리는 정욕. 마지막 잎사귀의 속옷까지 벗어던진 유월의 정원이 음탕하게 누워 있다. 나는 광장으로 걸어 나와, 불타버린 구역을 붉은 가발처럼 머리에 뒤집어썼다. 공포에 떠는 사람들-무심코 내뱉은 내 외침에 다리를 벌벌 떤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지도, 욕하지도 않는다. 마치 예언자에게 하듯, 내 발밑에 꽃을 뿌린다. 코가 사라져버린 이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가 자신들의 시인임을. (중략) 신 역시 내 책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리라! 이건 말이 아니라, 뭉쳐진 경련 덩어리로군, 신은 내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하늘을 돌아다니리, 그리고 한숨지으며 그것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리라. …. 러시아 혁명의 시인 마야콥스키. 위의 시는 혁명 이전, 그가 21살 때 쓴 시다.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이 “매독 환자의 코처럼” 퇴폐와 죄에 둘러싸인 도시의 예언자적인 시인임을 선언한다. 이 시에서 자연은 순수한 대상이 아니라 정욕과 음탕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신이 그의 시집을 “말이 아니라, 뭉쳐진 경련 덩어리”라고 표현하듯 거침없고 대담한 이미지들로 전개되는, 종래 서정시의 틀을 뒤집은 폭탄 같은 시. <문학평론가>
2026-01-28
이도윤 나를 볼 수 없는 내 눈은 나에게 너무 멀고 너를 보기에는 너무 가깝다 그리움 오래 담아두려 하였으니 종내 눈물뿐이었다 맺힌 물방울 단숨에 신비하지만 눈은 무섭기도 하여 내 눈이 혹시 너에게 오래 남을까 걱정되었다 삶은 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나의 눈이 무서워졌다 너의 눈이 무서워졌다 …. 나의 눈은 나를 보지 못하나 너를 볼 수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도. 지금은 여기 없다 해도, 나의 눈에 보였던 너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래서 그리워한다. 눈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너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바라보는 너의 눈에 내 눈은 오래 남을 수 있겠다. 나를 모르지만 너를 그리워하는 나의 눈, 그리고 나의 눈을 판단하는 너의 눈의 교차와 교착 속에서, 삶은 이루어진다. 시인이 눈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다. <문학평론가>
2026-01-26
태엽이 풀려 지금 정지한 벽시계 12에 멈춘 초침과 2에 멈춘 분침 사이로 벚꽃이 피어나더니 꽃잎이 휘날리고 벚꽃이 피면 뭘해요 어차피 내가 걸을 길이 없는데 울 수도 없어요 꽃잎이 너무 환해서 시계 속이 너무 어두워서 길이 없는 곳에서도 꽃잎은 날리죠 꼼짝없이 하얗게 갇혀 있네요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 사이에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에 여기저기 있던 당신 내 시계에서 다 죽어버렸네요 ….. “태엽이 풀려” 벽시계가 정지하고, 시인의 시간도 정지한다. 정지된 시간의 사이에는, 벚꽃 지며 휘날리고 있다. 정지된 시간은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 사이”이기도 한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의, 환하게 피었다가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여기저기 있던 당신”은 “다 죽어버”리고, 시인은 그 “너무 어두운” 사이 시간 속에 “하얗게 갇혀 있”다. “걸을 길도 없는” 꽃잎 흩날리는 곳에서. <문학평론가>
2026-01-25
김설희 금계국 기다란 목이 홀쭉하다 바람이 노랗게 흔들린다 잎들이 낱낱이 흔들린다 중심이 흔들린다 벌들이 꽃술에 앉는다 꽃술은 꽃의 중심에 있다 봄여름 가을, 중심은 꽃잎을 피워 언저리를 꾸민다 벌은 중심에 앉았다가 잠시 언저리를 스치고 또 다른 중심을 찾아간다 언저리를 보면 중심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금계국 그림자가 땅을 흔든다 그림자에는 중심에서 꿀을 훔치는 벌이 보이지 않는다 꽃보다 그림자가 크게 흔들린다 ….. 위의 시는 중심과 ‘언저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는다. 우리는 보통 중심이 언저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나 위의 시는 시 제목이 말해주듯이 “언저리가 중심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벌들처럼 꽃의 중심을 찾아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고 언저리는 스쳐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언저리를 통해서 진정한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알 수 있다. 언저리는 흔들림을 통해 드러난다. 흔들림은 그림자를 통해 드러난다. <문학평론가>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