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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원의 회귀(回歸)

등록일 2026-03-17 17:42 게재일 2026-03-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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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 작가

6개월 전, 어느 퇴색한 보도블록 위에서 마주쳤던 무구한 물질의 부름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낙엽처럼 떨어져 나와 길 위를 부유하던 7만 원. 그것은 누군가의 소소한 성찬(盛饌)이었을 수도, 혹은 팽팽하게 당겨진 가계부 한 귀퉁이의 절박한 단추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무연(無緣)의 재화를 집어 들며, 그것이 내 소유가 아님을 인지하는 찰나의 도덕적 긴장을 느꼈다.

욕망의 사행성(斜行性)은 언제나 달콤한 속삭임을 동반하지만, 나는 그 서늘한 유혹을 뒤로하고 인근 지구대의 문을 밀었다. 낡은 지폐들이 경찰관의 손을 거쳐 장부의 건조한 기록으로 바뀌던 순간, 나는 비로소 그 돈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것은 도덕적 결벽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상실감을 나의 횡재로 치환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윤리적 예의였다.

시간은 계절의 결을 따라 묵묵히 흘렀다.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만추(晩秋)의 낙엽으로, 다시 엄혹한 동토(凍土)의 침묵으로 이어지는 동안 길 위의 기억은 망각의 심연 속으로 서서히 침잠했다. 대가 없는 선의는 잊혔을 때 비로소 순수해지는 법이다. 나는 그 7만 원이 누군가의 품으로 돌아갔으리라 막연히 짐작하며, 그 선량한 결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휴대폰 화면 위로 날아든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고요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관할 경찰서에서 온 연락이었다. 6개월의 유실물 공고 기간이 만료되어, 법적 절차에 따라 그 재화의 소유권이 습득자인 내게 귀속되었다는 전언이었다. 잊고 있었던 소식이 전령처럼 찾아온 순간, 내 마음속에는 예기치 못한 봄기운이 차올랐다.

이 7만 원의 회귀는 물질적 증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6개월이라는 시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내게 돌아온 일종의 ‘철학적 이자’와도 같았다. 내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 속에 던져 넣었던 작은 신뢰의 씨앗이 반년의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내 집 앞마당에 피어난 한 송이 봄꽃 같았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각박하다고 말하며 타인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나 이번 일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선의의 그물망’이 여전히 견고함을 증명해 주었다. 법이 정한 6개월이라는 기간은, 진정한 주인을 찾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자 동시에 습득자의 정직함을 시험하는 정화(淨化)의 시간이었다.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 이 돈은 ‘길에서 주운 횡재’가 아니라 ‘정당한 기다림 끝에 얻은 보상’이라는 새로운 명분을 입게 되었다.

창밖은 어느덧 연두색 생명이 움트고 있다. 목련의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산수유의 노란 웃음이 번져가는 이 계절, 7만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화폐 단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내게 건네는 뒤늦은 세뱃돈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선량한 시민에게 하늘이 내리는 소박한 격려사처럼 느껴졌다.


삶은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어떤 빛깔로 채색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6개월 전 내가 그 돈을 사유화했다면, 그것은 찰나의 유희로 사라졌을 것이며 내 마음 한구석에는 씻기지 않는 앙금 같은 부채감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신뢰의 영역에 그 돈을 기탁함으로써, 나는 반년 동안 ‘정직’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마음의 금고에 예치해 두었던 셈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식은 나로 하여금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의 작은 친절들, 혹은 내가 세상에 던졌으나 잊고 있었던 사소한 배려들이 어쩌면 지금도 시간의 터널을 지나 내게로 돌아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믿음. 그 믿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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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찰서에서 온 문자. 

이제 나는 경찰서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려 한다. 그곳에서 만날 7만 원은 반년 전의 그 낡은 지폐들이겠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봄의 전령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돈을 단순히 소비의 도구로 쓰지 않으려 한다. 이 기분 좋은 소식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일부라도 다시 세상의 그늘진 곳에 나누는 ‘선의의 연쇄 작용’을 고민해 본다. 꽃향기가 만개한 봄날, 길 위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이 이토록 아름다운 회귀로 마침표를 찍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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