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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붉은 눈물과 하얀 희망의 노래

등록일 2026-04-07 16:39 게재일 2026-04-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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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 사막에 선 사람들. /필자 제공

볼리비아의 우유니, 그곳은 시간을 붙잡아 두는 마법 같은 땅이었다. 며칠을 더 머물게 한 광활한 소금 사막은, 밤의 신비로움을 품기 위해 오후의 햇살 속으로 이끌었다. 전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신비로운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열차 무덤’이라 불리는, 잊혀진 시간의 잔해였다.

사막 한가운데, 뼈대만 남은 열차들이 침묵 속에 멈춰 서 있다. 한때 사람과 자원을 싣고 생명처럼 달렸을 철로는 이제 붉게 녹슨 채 바람의 노래에 흩날린다. 사람들은 우유니를 떠올릴 때, 발밑으로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하늘을 비추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을 먼저 상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눈부신 백색의 천국, 맑고 투명한 하늘을 먼저 그렸다.

하지만 우유니가 처음 제게 보여준 얼굴은, 그 찬란한 백색의 천국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저를 맞이한 것은 ‘열차 무덤’이라는 이름의 황량한 풍경이었다. 삶의 기세를 잃은 거대한 쇳덩이들이 사막 위에 버려져, 바람은 철골 사이를 스치며 낮고 긴 휘파람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가자, 철판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부식된 객차 안에는 더 이상 좌석도, 사람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은 단순한 포토존이 아니라, 시간이 버려진 자리, 욕망이 스쳐 지나간 빈터였다.

이 열차들은 19세기 말, 볼리비아 땅속 깊은 곳의 은과 주석을 더 빨리, 더 많이 실어 나르기 위해 태어났다. 제국과 자본은 철길을 깔고 이 땅의 풍요를 착취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러나 광산의 빛이 사그라들고 경제적 가치가 희미해지자, 한때 그렇게 필요했던 열차들은 사막에 그대로 버려졌다. 필요할 때는 가져가고,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잔인한 역사의 반복이었다. 우유니의 붉은 녹은 단순한 부식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착취의 기억이었으며, 오래된 상처의 색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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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무덤’의 황량한 풍경. /필자 제공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사진보다 더 깊은 질문을 남긴다. 열차 무덤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저는 그곳을 걸으며 ‘다크 투어리즘’을 떠올렸다. 비극과 상처의 현장을 마주함으로써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고개를 숙이게 하는 여행 말이다. 우유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앞서, 겸손함을 배우게 하고 눈부심보다 슬픔을 먼저 통과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하얀 세계가 펼쳐진다. 끝없는 소금 평원 위에서 하늘과 땅은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 된다. 발밑은 눈처럼 희고, 머리 위는 유리처럼 맑다. 여행자들의 웃음소리는 소금 위를 굴러가고, 세상은 마치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처럼 보인다. 그 순백의 풍경 앞에서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진다.

하지만 우유니의 하얀 빛은 단지 아름다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열차 무덤에서 시작된 붉은 눈물은 이제 리튬의 바다로 이어진다. 그 깊은 소금층 아래에는 전기차 시대의 핵심 자원인 리튬이 잠들어 있다. 사람들은 이를 ‘하얀 석유’라고 부른다. 과거 은과 주석이 이 땅의 운명을 흔들었다면, 오늘의 리튬은 볼리비아의 미래를 바꿀 또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붉은 녹이 상처의 기억이라면, 하얀 리튬은 새로운 가능성의 이름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은 자원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원이 많다고 해서 미래가 저절로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자원을 다루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볼리비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런 불안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 것은 남이 가져가고, 우리에게는 상처만 남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역사가 남긴 깊은 상처에서 우러나오는 절규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차가운 계약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손님’처럼 와서 필요한 것만 챙겨 가는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자원을 사 가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교육을 돕고, 환경을 지키며, 안데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 관광객 또한 사진 몇 장만 남기고 떠나는 소비자가 아니라, 현지인의 삶을 경청하고, 작은 마을의 빵을 나누며,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정은 소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존중과 경청에서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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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세종대 명예교수

우유니의 열차 무덤은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내일을 세우려는 한 나라의 조용한 의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이다. 녹슨 철로 위에도 꽃은 피어야 한다. 바로 그런 아픈 자리이기에 더욱 피어나야 한다. 상처를 기억하되 원망에만 머물지 않고, 그 기억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힘.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우유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짜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나는 다시 붉은 열차 너머로 펼쳐진 하얀 평원을 바라본다. 우유니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곳에서 과거의 그림자만을 보는가. 아니면 그 그림자를 딛고 함께 만들어 갈 눈부신 빛을 보는가.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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