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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시 마케팅시대…읍면 명칭변경 바람직하다

최근 지자체마다 읍면의 이름을 역사적 배경이나 지역 특성을 반영한 이름으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를 위한 방식으로 강제로 지어진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으로 잃어버린 고유 명칭을 되살리거나 지명을 바꿔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움직임이다.지난 4일 경주시는 일제 강점기 방위 구분형식을 빌려 지어진 양북면의 명칭을 문무대왕릉면으로 바꾸고 이를 알리는 선포식을 가졌다. 신라 30대 문무대왕릉과 호국 사찰 감은사 터가 있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딴 이름이다.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개명절차를 마쳤다. 이 같은 지명 개명 사례는 전국적으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 2007년 강원도 평창군이 대관령면으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영월군은 서면을 한반도면으로, 하동면은 김삿갓 김병연의 묘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김삿갓면으로 바꾸었다. 광역시 자치구 가운데는 인천시 남구가 고구려때 이름인 미추홀구로 바꾸었다.경북도내에서는 울진군이 2015년 금강송 군락지로 소문난 서면을 금강송면으로, 매화나무가 많은 원남면을 매화면으로 바꾸었다. 2016년 예천군은 일제때 지어진 상리면과 하리면을 효자면과 은풍면으로 바꾸었고 고령군은 대가야 도읍지의 역사성을 앞세워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명칭 변경했다. 이밖에도 상주시 사벌면이 사벌국면으로, 포항시 대보면이 호미곶면으로, 군위군 고로면은 삼국유사면으로 각각 이름을 바꾸었다.포항시 호미곶은 일출의 명소라는 점과 우리나라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이름에 걸맞은 브랜드 역할을 지금도 톡톡히 하고 있다. 전국에서 이름을 바꾼 읍면들은 대체적으로 바꾼 이름에 만족을 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브랜드 효과로 관광객도 전보다 늘었다고 한다. 또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판매에도 명칭 변경은 브랜드 효과를 보이고 있다.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창지개명식 이름을 바꾸는 작업은 명분도 있다. 특히 많은 지명 중 돋보이는 지명의 발굴은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지명은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를 상징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고 경제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면 일거양득의 효과라 하겠다.

2021-05-06

탄소중립 방향은 맞지만 기업부담 고려해야

대구시가 올해 11월 영국에서 열릴 예정인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P26)에 앞서 전 지구적 탄소중립 이행을 다짐하는 국제 캠페인인 ‘Race To Zero’에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가입했다. 이 캠페인은 세계 각국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2050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공표하고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현재 영국 런던, 미국 워싱턴DC, 독일 본 등 510개 도시가 가입돼 있으며, 우리나라는 최근 대구시가 처음으로 가입했다.캠페인 가입 도시는 친환경적 생활 확산, 친환경 연료로의 전환, 탄소 제로 건물의 보급, 청정에너지 생산 등을 약속하고 이행해야 한다. 또 매년 탄소중립 이행 성과를 국내외에 공개하고, 우수 사례를 공유하게 된다.탄소중립은 개인이나 회사, 단체 등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으로, ‘탄소제로(Carbon Zero)’라고도 한다. 기후변화를 야기시키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을 계산하고 탄소의 양만큼 나무를 심거나, 풍력·태양력 발전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오염을 상쇄해야 한다.앞으로 탄소중립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경제와 생존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길이 될 것이다. 특히 대구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기온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올라간 도시로 드러났다. 대구시가 속도감 있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다만 탄소중립 정책은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적 흐름에 수동적으로 편승할 경우 에너지 전환비용과 전기요금 상승, 과중한 세금 부담, 환경 공시의무 등으로 기업들이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선진국보다 철강이나 화학, 시멘트 등 탄소배출형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을 겪을 수 있다. 탄소중립을 내세우더라도 우리 산업계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실행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2021-05-06

대중 외교, 베트남에서 배워라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2017년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은 최악의 외교 실패의 참사였다. 차관보급 인사의 공항 영접부터 세끼 연속 문 대통령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혼밥’에다 팔을 툭툭 치며 인사를 하는 중국 외교부장의 외교 결례, 그리고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기자 폭행까지 최악의 굴욕적인 외교 모습이었다.그리고 작년 초 중국발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한국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 정치외교가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그러나 곧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중국의 일부 지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14일 격리기간을 요구하고 한국인을 기피 하였다. 오히려 중국이 “정치 외교 논리보다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라고 했으니 한국으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적인 순간이었다.상황 초기 한국의 의료진들이 중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입국금지 내지는 입국제한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또 시진핑의 방한 계획에 차질이 올까 봐 전전긍긍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그리고 돌아온 건 중국의 한국 조롱이었다. 마스크를 보내준다고 조롱기 섞인 제의도 한다. 대중 굴욕외교의 문제는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대중, 대북 외교는 한마디로 ‘비굴’그 자체이다.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대꾸도 못한다. 온갖 욕을 듣고도 그저 묵묵히 참는 굴욕적인 모습이다. 북한과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겉도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공연한 한국 원망과 비난에 길들여지고 있다. 북한의 한국 비난과 욕설은 그 도를 넘고 있는데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한국의 대중, 대북 아부에 대하여 돌아오는 건 조롱과 멸시뿐이다.이런 가운데 베트남의 대중 외교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남중국해섬 영유권 등으로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도에 남중국해가 아니라 자기 나라 기준으로 이름을 정해 동해로 표기한다.베트남은 중국의 윽박지르기 영토 주장을 또박또박 거르지 않고 논리적으로 반박해왔다. 중국이 거대 군함을 출동시키면 베트남도 당당히 군함을 내보내어 맞섰다. 이런 당당한 베트남을 중국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한심한 착각과 중국 비위를 맞추면 평화가 올 거라는 대중국 굴종외교 등으로 한미 한일 동맹에 금이 가고, 중국에 냉대 받고, 북한에 모욕당하고 있다.이제 베트남식 ‘당당한 외교’를 배워야 한다.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중국에게도 할 말은 하고 북한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그러한 외교의 힘은 한·미·일의 돈독한 동맹에서 나올 수 있다. 한국 정부의 ‘당당한 외교’를 보고 싶다.

2021-05-06

가정의 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한다. 유엔에서는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와 민간의 인식을 재고할 목적으로 매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제정했다. 우리나라도 1994년부터 같은 날에 ‘가정의 날’ 기념행사를 열어오다 2004년부터는 5월을 ‘가정의 달’로 공식화했다.농경사회에서 가족과 가정은 삶의 근간이었다. 3, 4대가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대가족제도에서는 출산과 양육은 물론 교육, 경제, 문화 등의 활동이 대부분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우리나라는 수천 년 이어오던 농경사회가 반세기 전쯤에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돈독하던 가족제도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몇 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부부와 한두 자녀의 핵가족으로 분화된데 이어 자식이 없는 부부나 한부모와 자녀, 독거노인이나 혼자 사는 미혼 남녀의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전통적인 가족이나 가정의 개념도 따라서 변질될 수밖에 없다.2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자식이 아버지의 성(姓)을 따라야 한다는 경우는 22%에 불과하고 부모 중 어느 한 쪽의 성을 따라도 괜찮다가 47%, 굳이 부모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경우도 31%나 된다고 한다. 족보나 조상을 따지는 일 따위는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일본인 사유리가 결혼을 하지 않고 기증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아서 화제와 논란이 되고 있다. 입양이나 미혼모들에 이어 또 다른 가족의 형태가 생겨난 셈이다. 심지어는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남녀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가족의 형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가정과 가족의 붕괴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가정의 달이 생겨난 이유일 것이다.초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지만 사람은 출생해서 저 혼자 걷는데 일 년이 넘게 걸린다. 거기다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까지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만큼 가족에 의존하는 기간이 길다는 얘기다. 앞으로는 또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결혼한 부모로 인해 태어나고 양육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대다수이고 그렇게 형성된 유대관계가 인간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다.아무튼 전통적인 가정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구조적인 측면도 있지만 가치관의 변화도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인습에만 묶여 옛것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지만, 개인적 편익이나 경제적 이해 때문에 가족이 불화하고 가정이 와해되는 것은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 된다. 돈이나 권력, 학벌이나 명예의 고위층에 올랐던 사람들이 가족의 문제로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바꾸어 말하면 돈이나 권력, 학벌이나 명예 따위로는 살 수 없는 더 근본적이고 소중한 것이 가정에는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족 간의 사랑과 헌신, 건강한 가정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심성과 가치관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걸 되새기는 오월이다.

2021-05-06

백신 불신과 불안… 정부가 신뢰로 풀어야

정부가 5일부터 백신을 두 번 다 맞은 사람에게는 자가격리 조처를 일부 면제키로 했다. 올 상반기까지 1천300만명에 대한 1차 접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정부 인센티브다.정부는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키고 계획된 대로 접종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로 백신 접종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5월에 접종키로 계획한 2차 접종 대상자의 화이자 백신 물량을 4월로 앞당겨 사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 바람에 전국적으로 화이자 백신 부족으로 인한 백신 접종 일시 중단사태가 발생했다.대구와 경북도 화이자 백신 접종 일정에 차질을 생기자 접종센터에는 접종을 기다려왔던 어르신들의 문의와 항의가 잇따랐다. 백신 접종을 목빠지게 기다려왔던 어른신들의 실망이야 말할 것도 없고 경로당에 있는 노인들끼리도 누구는 맞고 누구는 안 맞아 백신공급에 대한 불평의 목소리가 높다. 75세 이상 노인에게 맞힐 화이자 백신 접종률은 3일 현재 대구와 경북은 겨우 절반에 근접하는 수준이다.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백신도입과 접종은 당초 계획 이상으로 잘 된다”고 밝혀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특별방역회의에서 “K방역은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고 상반기 접종계획은 1천200만명에서 1천300만명으로 상향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마침 청와대 방역점검 회의가 열리던 날 전국에서는 백신 접종 중단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잘못됐다는 반응도 나왔다.국민의 생명권을 다투는 백신 접종을 두고 정부가 신중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이다. 백신 물량 도입에 따른 일정과 계획을 투명하고 원칙에 따라 집행하는 정부의 정직한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백신 접종이 오락가락한다면 국가방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할 수 없다. 5일 화이자 백신 21만8천명분이 국내에 들어왔으나 이제 전체 계획물량의 3.6%에 불과하다. 앞으로 안정적 물량 확보가 있어야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으로 백신 전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진정성 있는 백신정책으로 신뢰를 찾아야 한다. 말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얻거나 접종률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21-05-05

디지털 광고

디지털 광고는 인터넷, 모바일 등 기존 전통매체 외에 온라인으로 소비되는 모든 광고를 일컫는다. 포털사이트 검색부터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영상까지 모든 종류의 광고가 여기에 포함된다.집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스마트TV로 유튜브를 틀어 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에 따라 광고를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야 한다. 이같은 광고 소비 패턴의 변화는 광고업체들에게는 큰 숙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포털사이트 등에 몰리는 소비자들의 성격은 어떻게 다른지, 또 그들의 소비유형은 어떤지, 어떤 광고가 잘 먹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다.국내 광고업체들의 경영전략도 ‘디지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일기획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국내 매체별 총광고비’에 따르면 광고시장은 크게 방송, 인쇄, 디지털로 구분된다. 디지털 시장 규모는 2015년 3조원에서 2020년 5조7천억원으로 커졌다. 2배에 가깝게 늘었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9%에서 47.6%로 확대됐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전체 광고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인쇄와 방송 시장은 줄었다. TV·라디오 등 방송은 4조2천억원에서 3조5천억원으로 약 7천억원 줄었고, 신문·잡지 등 인쇄광고 시장은 1조9천억원에서 1조6천억원으로 약 3천억원 감소했다. 5년 동안 전체 시장규모가 크게 바뀌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신문과 방송의 몰락’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디지털광고 시장 확대로 요약되는 광고시장의 재편은 신문·라디오·방송 등 전통매체들에게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05

국민의힘은 왜 스스로 ‘영남당’ 낙인을 찍나

국민의힘이 6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또 영남당 논란이 일고 있다. 얼마전 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기현 의원(울산 남을)이 당선된 뒤 “대선을 앞두고 지지세 확산을 위해 지도부 투톱 중 한 사람은 비영남권에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당내 지역갈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은 “정권을 잡으려면 영남정당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여론이다. 특히 당원들이 그렇다”며 영남지역 배제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당내 일부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영남에 매몰된 이미지로는 외연 확장을 통한 차기 정권 창출이 어렵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국민의힘은 4·7 재보궐선거 직후에도 대구·경북(TK) 정치권 ‘2선 후퇴론’이 나왔다. 당시 충남 출신 정진석 의원(공주·부여·청양)이 “우리 당이 영남 지역당의 모습, 기득권 정당의 모습, 꼰대당의 모습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해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이 계속 쳐다봐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내 초선 의원들도 그 당시 성명서를 내고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나가겠다”고 언급해 논란이 됐었다.국민의힘이 국회의원 공천만 받으면 거의 당선되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면서 영남당, 웰빙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당의 지역적 외연확대와 대구·경북 2선 후퇴를 연결시키는 주장에 대해 이 지역 국회의원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내부분열과 반목이다. 한창 외연확대를 위해 전력을 쏟아내야 할 시기에 당권 욕심 때문에 특정지역이나 특정인을 왕따시키는 발언은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내에서 나오는 영남배제론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 자체를 외연확대의 장애물로 여기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다. 당의 주된 지지기반을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특정 지역출신 당대표 불가론은 ‘권력욕에서 나오는 헤게모니 싸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2021-05-05

오월의 기억

장규열 한동대 교수4월이 잔인한 달이라면, 5월은 포근한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도 있다. 하필 같은 달에 모여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우선 어린이날.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절에 소파 선생이 우리의 앞날은 어린이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닌가. 어른들이 잘난 재주를 부린다 한들 미래는 어차피 다음 세대가 맡아야 한다. 어린이를 정성으로 기르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내일이 없다. 어린이가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새로운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어른의 세계가 아무리 복잡하여도 어린이를 바로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아이들 없이는 내일도 없다. 청년세대가 출산을 꺼리는 세태도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어버이날. 모든 존재는 어버이로부터 시작됐다. 기쁨과 쓸쓸함, 즐거움과 외로움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어버이로부터 시작했다. 삶이 가능한 시작에 어버이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닌가. 내가 걸어갈 내일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어버이가 아닌가. 사노라면 애증이 섞이고 희비가 엇갈리지만 온갖 일들의 시작에 어버이가 계셨음을 새겨보아야 한다. 어버이가 바라보는 어린이는 누구일까. 아이들은 들은대로 자라기보다 본대로 자란다. 어린이가 따라 배우는 어버이가 있고, 어버이가 조심해야 하는 어린이가 있다. 두 날을 잇달아 붙인 까닭이 아닐까. 조금 떨어져 둘이 하나가 되라는 21일은 부부의 날. 저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만난 일만 해도 기적이 아닌가. 당신과 내가 이룬 집에서 피어난 이야기는 꿈인가 생시인가.5월은 ‘함께 하는 비밀’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이 홀로는 절대로 살지 못한다. 식탁에 올라온 고마운 반찬 한 자락에도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스며있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인연과 우연이 겹치며 날들이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맨 처음 기적이 어버이와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만 해도 놀라울 판에, 살면서 만나는 도움의 손길과 의지했던 기억들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도 온전한 오늘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빼놓을 수 없는 도움은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배움이 아닌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물론이며 살면서 만났던 배움의 흔적은 잊을 수가 없다. 배우고 가르치며 부추기고 이끌어가며 삶의 수레는 오늘도 나아간다. 만난 것도 놀랍지만 배운 일은 기적이다.돌아보면 실수투성이에 흠결만 한가득이다. 어린이에게 따뜻하지 못했으며 어버이에게 무심했던 데다 배우자에게 퉁명스러웠으며 스승은 잊고 살지 않았는가. 5월은 미안한 마음을 일깨우고 감사한 생각을 일으킨다. 돌아가 돌이키려 하지 말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하라’는 어느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다. 나를 만들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살면서 만날 사람들과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꿈을 꾸어야 한다. 혼자는 못한다.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지어가야 한다.

2021-05-05

봄편지

양태순수필가공원에 운동을 갔다. 어느새 철쭉이 활짝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잎들의 부지런함이 어여쁘다. 봄물을 길어 올린 싱그러움에 취해 걸음에 봄바람이 실렸다.맞은편에서 오는 부녀와 스쳐 지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걷는 방향을 바꾸어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귀를 쫑긋 앞으로 모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내용은 딸이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 읊으면 아빠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별거 없구나 싶어 앞질러 가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커질수록 아픔으로 피어나는 얼굴, 내 아버지였다.철이 들기 전, 아버지는 다른 세계로 떠났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는 핏줄 말고는 너무 미미했다. 그래서 떠나보낸 슬픔이 깊은 줄도 몰랐다. 늘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허전함에 문득문득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에 눈이 갔다. 그것이 다였다.기억 속 아버지는 남 같은 아버지였다.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지만 직접 소통이 없었다.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말이 전달되고 답이 돌아왔다. 내 잘못을 나무라는 일조차 어머니의 입을 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밖에서 놀다 집에 왔을 때 방에 아버지만 있으면 들어가기 어색해 도로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어렵기만 한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말은 밥 잡수세요와 다녀오셨어요, 정도였다.딱 하루, 그날은 예외였다. 내가 중학생이었고 추석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식구들은 다른 방에 있었고 나만 아버지와 한방에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중개인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마음속을 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묻고 나는 대답을 했던 듯싶다. 소재가 바닥 날 때쯤 윗방에서 어머니가 장에서 사온 추석빔을 입어 보라고 불렀다. 얼마나 반갑던지 냉큼 일어섰다.중학생이었던 그날 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안 된다. 아버지와 나는 무릎걸음 세 번만큼 떨어져 앉았고, 나를 향해 맘껏 드러내지 않은 잔잔한 표정이며 내가 일어섰을 때 차마 잡지 못하는 아쉬운 눈빛은 생생하다. 그 장면을 수십 번 그려보았으나 제법 길었던 시간에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깜깜할 뿐이다. 잿더미를 헤집듯이 아버지의 갈피를 뒤적이고 뒤적여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살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는 날은 기일이나 어버이날이었다. 나와 아버지가 만났던 시간에는 추억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건지겠다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희미해진 여줄가리를 촘촘히 엮었다. 가장 큰 소득은 서로를 오롯이 보았던 그 밤이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조각이었다. 그러나 되살려놓은 장면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란 이름으로 뜨거워졌다.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때로는 한 모금 물이 간절한 식물처럼 애가 타기도 하지만 내일이라는 새날이 있어서 힘을 내 하루하루를 이어 일생을 이룬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길 위에서 나름대로 부딪히고 견뎌오면서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내세울 것도 없고 빛나지도 않지만 내 노력의 결과이니 소중하게 여긴다.지나온 굽이의 어느 날에는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은 오십을 넘기면서 종착역에 닿아 멈추었다. 나는 어렸고 사는 동안 살가운 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키웠던 애정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진 수십 년을 곱씹는 동안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와 형제로부터 전해 들었다. 너무나 작은 추억의 부스러기로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차지한 내 마음자리는 늘 축축하고 아리다.철쭉이 한창인 공원에서 낯선 부녀로 인해 아버지를 만난 날이다. 언젠가 마주하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본다.“많은 날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해요” 숨을 삼켰다.“그날 밤의 눈빛을 이제는 놓을래요. 그러나 내 아버지였음은 잊지 않을게요” 소리맴이 길다. 내 안에 갇혀있던 울새를 날려 보낸다.

2021-05-05

은자동아 금자동아

남녀가 짝을 지으면 하늘에 기원한다, 하늘의 자식 잘 키울테니 참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삼신할매는 이 간절한 약속을 믿고 아이를 점지해준다. 어미는 뱃속 아이를 위해 온갖 지성을 들였다. 음식을 가려 먹었으며 부정한 것은 피했다. 언행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나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새 생명을 맞기 위해 어미의 마음가짐이었다.아이가 태어나면 하나 같이 ‘응애’라고 울음을 터트린다. 이 울음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첫 언어이다. 이 함성을 고고성(呱呱聲)이라고 한다. 가위로 탯줄을 끊어내는 순간부터 아이는 모태에서 독립해 하나의 개체가 된다. 이 독립기념일을 우리는 ‘귀빠진 날’이라고도 한다. 태아의 귀가 산도를 빠져나오면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갓난쟁이의 몸짓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이를 ‘배냇짓’이라고 한다. ‘배내’는 배 안이며 ‘배냇짓’은 배 안에서부터 한 몸짓이다. 갓난아이는 잠을 자면서 방실거리며 웃거나 눈코입을 찡긋거리는데, 이렇게 귀여운 몸짓이 바로 배냇짓이다. 배냇짓을 학자들은 마주보는 이의 공격성을 누그러트리게 하는 유화적 몸짓이라고 해석한다.배내옷- 갓난아이에게 입히는, 깃을 달지 않은 저고리.배냇니- 젖먹이 때 나서 아직 갈지 않은 이, 젖니.배내똥- 갓난아기가 먹은 것 없이 처음 싸는 똥.배냇머리- 태어난 뒤 한 번도 깎지 않은 갓난아이의 머리털.갓난아기가 풀무처럼 입으로 바람을 불어 대면 ‘풀무질’이다. 입술을 투르르 털며 내는 소리는 ‘투레질’이다.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 ‘죄암’ 또는 ‘쥐엄질’이다. 잠들기 전이나 깬 후에 부리는 투정은 ‘잠투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대는 행위는 ‘쉬야질’이다.어린아이를 부모는 여러 가지 몸짓으로 얼러 댄다. 어린아이의 겨드랑이를 치켜들고 올렸다 내렸다 할 때, 아이가 다리를 오그렸다 폈다 하는 짓은 ‘가동질’이다. 어린아이를 세워 두 손을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는 짓은 ‘시장질’ 이다. 어린아이를 곧추세워 좌우로 흔들며 두 다리를 번갈아 오르내리게 하는 짓은 ‘부라질’이다.밉둥이- 미운 짓을 하는 어린아이.옹알이- 생후 백일쯤 되는 아기가 옹알대는 짓.나비잠- 만세라도 부르듯 두 팔을 벌리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배밀이- 배를 바닥에 문지르면서 기어가는 모습.얼뚱아기- 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러운 아기.이쁘둥이- 이쁜 어린아이.당싯거리다- 어린아이가 누워서 춤을 추듯 팔다리를 춤을 잇따라 귀엽게 움직이다.아망거리다- 어린아이가 괜스레 트집을 잡아 오기를 부리다.조작거리다-걸음발 타는 어린아이가 제 마음대로 귀엽게 자꾸 걷다.자칫거리다- 걸음발 타는 어린아이가 서툰 걸음으로 몇 걸음씩 걷다.아칫거리다- 어린아이가 이리저리 위태위태하게 걸음을 떼어놓다.어린아이가 도담도담 자라 살이 포동포동해지면 ‘옴포동이’라고 하는데, 이맘때면 아이의 몸짓이 다채로워진다. 짝짝쿵 손뼉을 치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도리질’한다. 왼손 손바닥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댔다 떼며 ‘곤지곤지’하고, 두 손을 쥐었다 펴며 ‘죔죔’한다. 그러면 엄마는 어린아이를 따로 세우면서 ‘섬마섬마’ 또는 ‘따로따로따따로’라고 추임새를 넣는다.똥싸개라도 부모에게는 은자동아 금자동아이다. 귀여운 나머지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아이는 ‘응석받이’가 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행위에 적절한 경고를 울리는데, 만져서는 곤란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려 하면 ‘지지’라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에비’라며 말린다.칭얼거리며 엄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아이를 ‘쫄래동이’라고 한다. 이럴 때 엄마는 아이에게 겁을 주며 달래는데, 이 말을 ‘곽쥐’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대 쥐어 박는 일은 ‘먼지떨음’인데, 그저 엄포나 놓을 양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듯 살살 때린다는 뜻이다. 아우가 생긴 아이가 샘내느라 밥을 많이 먹으면 이를 ‘밥빼기’라고 한다.생의 원점에 이리도 아름답고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 행복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없을까 싶어서 신은 요람기의 기억은 지워지도록 두뇌를 설계했는지도 모른다.아이는 배밀이에서 걸음마를 거쳐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요람기에서 멀어질수록 험한 세상을 맞닥트리고 그 시련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간다. 늙어갈수록 점점 어린아이가 되다가 마침내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에 누는 똥도 배내똥이라고 하는데, 그 성분이 배내똥과 같다고 한다. 삶과 죽음, 극과 극은 맞닿은 모양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