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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울진서 국내 최대 상어이빨 화석 발견

울진 인근 해안에서 국내 최대 크기의 신생대 상어 이빨 화석이 발견됐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는 1일 이 이빨 화석을 공개하고 이 상어 이빨이 “경사(이빨 측면) 길이가 최대 107mm, 높이가 102mm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상어이빨 화석 가운데 최대 크기이며, 영화 `죠스`의 상어와 가장 가까운 종류”라고 밝혔다.이 화석은 지난 5월19일 어업에 종사하는 진영국씨가 우연히 발견해 기증했으며, 이후 센터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그 결과 이 이빨 화석의 상어는 현존하는 상어 중 가장 큰 몸집을 가진 백상아리(Great white shark)나 이미 멸종된 상어인 메갈로돈(megalodon)의 이빨에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톱니구조가 뚜렷이 드러났다. 특히 이빨의 톱날 구조는 신생대의 대표적인 대형 육식성 상어 종류인 메갈로돈과 형태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고 센터는 말했다.이 화석을 연구하고 있는 센터의 임종덕 연구관은 “메갈로돈은 최대 몸길이가 15~18m, 몸무게 50t까지 이르는 거대한 상어로, 2천8백만년에서 150만년전에 서식했다”면서“이번 연구를 통해 신생대 한반도 해역에 서식한 메갈로돈은 몸 길이가 10m가 넘을 정도로 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당시 환경도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02

제2석굴암 건립 찬반 논란

불국사 측 옛것 보전관리 어렵다며 추진관광용 대체시설 필요-환경훼손 맞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토함산 석굴암 근처에 석굴암과 똑같은 제2석굴암 건립이 10여년 만에 다시 추진돼 논란을 부르고 있다. 문화재 보존 및 관람 편의를 위해서는 건립이 필요하다는 당위론과 원형 보존론이 맞서는 것이다. 21일 문화재청과 경주시청·불국사 등에 따르면 최근 불국사 측은 경주시청에 제2석굴암 건립 계획서를 제출했다. 불국사측은 기존 석굴암이 보호막인 유리벽으로 차단돼 있어 습기가 차는 등 보존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어 관람용 모의 석굴암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 석굴암에서는 관람 공간이 12㎡ 정도 밖에 안 돼 관람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석굴암은 일제에 의해 변형된 것으로 알려져 원형 복원 필요성 또한 제기돼 있는 상태다.이번에 다시 추진되는 제2석굴암 건립에 대해서는 문화재청도 적극적이어서, 불국사 제안을 받아 내년도 예산에 사업비를 반영, 타당성 조사, 공청회, 학술대회 등의 절차를 거칠 계획까지 세웠다. 때문에 10여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어떻든 건립사업이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경주 지역 향토사학계, 시민단체, 관광업계 등은 대체로 환영의 뜻을 밝히며 사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역 향토사가 A씨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에 대해 원형은 보전하면서 대체시설을 만들어 공개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며 일본 나라시의 고송총과 중국 둔황석굴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런 유적들에서는 본체 인근에 복제시설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관람시킨다는 것.또 다른 향토사가 C씨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국보급 문화재를 접하는 시간이 1분도 채 안 돼서야 어떻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목적을 위해서도 1대1 구조의 대체시설이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일부 사학자들은 주변 경관에 영향을 주는 신축·파괴·벌채 행위를 금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존권고와 배치된다면서 제2석굴암 건립에 부정적이다.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화여대 명예교수)은 “석굴암 인근에 이 시설을 설치하면 유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채 그런 일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제2석굴암 건립은 지난 2001년 문화재청과 불국사 측이 유적 보존과 관객 접근성 확보 등을 내세워 추진하려다 학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경주/윤종현기자yjh0931@kbmaeil.com

2011-06-22

“암각화 디지털콘텐츠 박물관 건립 필요”

칠포리 암각화 국제학술대회 요지 칠포리 암각화 발견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영일만 선사시대와 칠포리 암각화` 종합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박문하(동대해문화연구소장)= 암각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이러한 관심을 관심을 이끌기 위해 암각화 디지털 콘텐츠 박물관을 건립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이럴 경우 박물관건립의 현실적 한계성은 있는지, 또는 건립할 경우 방법과 가능성은 무엇인가?▲김기덕(건국대학교 교수)= 디지털 콘텐츠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자료의 공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DB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디지털 컨텐츠 박물관은 IT개념을 도입한 박물관이다. 빨리가 아니라 먼저가 우선인 사회가 되고 있다. 빨리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덕이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먼저”가 미덕인 사회이다. 칠포리 암각화는 추상 암각화의 메카이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DB구축을 한다면 가능하며, 스토리텔링의 소재로도 좋다.- 이하우(선사미술연구소장)= 온라인을 통한 암각화의 소개로 오프라인으로 칠포리 암각화를 보러 오도록 만들자.-강호진(포항지역사회연구소)= 칠포리 암각화를 소개하는 알기 쉬운 아동용과 성인용 책자를 저술해 이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사회자 및 학회 관계자= 자료를 충분히 정리해 발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김용우(동대해문화연구소)= 칠포리 암각화는 바닷가에 위치하지만 오랜 세월 해풍에도 잘 보존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석재 문화재를 보존할 기법이 개발이 됐는가?▲임권웅(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보존처리는 풍화 및 훼손을 늦추는 것이지 이를 멈추게 하는 기법은 아니다. 잘못된 보존처리는 오히려 풍화를 더 빨리 초래할 수 있다. 현재로서 적절한 대안은 보호각 등을 세워 보호하는 것이다.▲에르텐 바타르(내이몽골대학교 교수)= 칠포리 암각화의 자생설에 동의한다.- 채미하(경희대학교)= 동해문화권을 벗어나 다른 문화권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할 것이다.▲윤명철(동국대학교 교수)= 다른 문화권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것이며, 국내적으로 영일만, 울산만, 삼척만에 대한 상대비교 연구를 했으며, 영일만은 대외교류적 위치에 적합하다. 그러나 칠포리 암각화가 자생적이라는 설에 동의할 때 대외 교류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최기주(청암문화재연구원)= 암석에 따른 풍화작용을 기록하였는가? 암각화학자들이 현지조사를 할 때 암각에 새겨진 성혈 및 문양의 크기 변화 등을 기록하여한다. 이것이 향후 보존에 중요한 기록이 될 것이다.▲이상목(울산암각화전시관)= 울산암각화전시관의 경우 교육과 학습부문에 대해 많은 치중을 한다. 암각화전시관의 주된 고객은 어린 학생들이다. 이들의 부모와 같이 오게 되고 이런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암각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성인들도 자연스럽게 암각화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다. 즉 암각화에 대한 관심층을 그 만큼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층을 확산시켜야 한다.▲장장식(사회자, 국립민속박물관)= 암각화에 대한 보존과 활용도 중요하고 향후 암각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학회차원에서 해외번역 사업도 벌여야 하며, 암각화를 쉽고 재미있게 널리 알릴 수 있는 책자 등도 발간하여 일반의 관심을 널리 알려야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3

“포항·영일만 토착주민의 자생적 문화”

포항 칠포리 암각화(경북 유형문화재 제249호)는 우리나라 암각화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중요한 유적이다.포항 흥해읍 칠포리 201번지와 334번지 해안도로변, 749번지 등 곤륜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는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다른 지역 암각화가 사실적 표현의 그림인 반면 추상적 표현의 유일한 암각화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독자적 형상으로, `한국식 암각화`유적의 발상지로 평가되고 있다.또 청하면 신흥리 오줌바위 별자리형 구멍바위 유적은 천문관측유적으로 희귀한 암각화이며 기계면 인비리 암각화는 1985년 발견 당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동해면 석리 인면암각화는 2000년 초에 발견될 만큼 포항지역은 암각화 군집지라 할 수 있다. 인비리 암각화는 국내 최초의 고인돌 암각화로 이름 높은 것이다.그 외에도 신흥리 천문유적이나 눌태리의 윷판형암가화를 비롯해 별자리형 바위구멍 등 다양한 선사유적들이 포항지역 도처에 발견되고 있다.이처럼 포항지역은 암각화유적의 분포와 그 내용의 다양성으로 인해 명실상부한 `암각화의 고장` `선사미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선사·고대 정신세계는 물론 영일만 지역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지난 11, 12일 이틀간 포항 칠포파인비치호텔 세미나실에서 열린 `영일만 선사시대와 칠포리 암각화`주제의 국제학술대회는 포항시가 영일만 지역의 선사문화의 연구동향과 칠포리 암각화의 학술 연구 방향 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지난 1990년 발견 이후 20년 동안 칠포리 암각화 자료 발굴과 정리, 연구에 노력해온 한국암각화학회는 이날 행사를 주관해 암각화 발견 발견 이후 그 내용과 유래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던 칠포리 일대 암각화의 의의와 상징세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암각화 보존을 위한 과학적 방법의 이해와 암각화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짜임새 있는 행사를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강봉원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가 주제 발표한 내용은 칠포리 암각화 문화의 생성은 포항·영일만 지역의 토착 주민들의 내재적·독자적인 문화발전의 맥락에서 이뤄진 자생적 암각화라는 것을 규명했으며 건국대 김기덕 교수가 발표한 칠포리 암각화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은 세계 암각화 연구에 있어 한반도 암각화의 세계화로의 문을 폭넓게 열어주었다.이로써 한국암각화회는 한반도 암각화유적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추상 암각화의 메카`로 불려지는 칠포리 암각화가 한국암각화에 있어 본격적인 연구시점을 찾아내는 중요한 자리가 됐다.학술대회에는 세계 암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중국 내몽골 인산암각화 연구자인 쉬잉 내이몽골대 교수와 동국대 윤명철 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8명의 전문가들이 발견과 연구, 출현과 배경, 변천, 보존과 활용,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 등 부문에서 주제발표했다.또한 채미하(경희대)·김인희(전북대)·하문식(세종대) 교수와 박문하(동대해문화연구소 이사장)·황인(향토사학자)씨 등 15명이 토론과 종합토론에 참여했다.2일차인 12일에는 흥해 칠포리 일대 암각화, 청하 신흥리 오줌바위 암각화, 기계 인비리 암각화, 동해 석리·상정리 암각화 현장답사로 이어졌다.한편 국보 제288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해 있는 울산에는 2008년 5월30일에 울산 암각화박물관이 문을 열어 지난 4월까지 32만1946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매년 특별전과 문화강좌, 한국암각화 유적조사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3

문경서 통일신라 금동불상 7점 출토

국군체육부대 이전예정지 광림사 절터 추정 경북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 445번지 일원 국군체육부대 이전예정지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고려시대 중·후기까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가 발견됐다.이곳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7점도 무더기로 수습됐다.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이희준)은 조선시대 지도나 문헌에 오정사(烏井寺)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기록된 이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광림사`(廣林寺)로 추정되는 옛 절터의 적심(積心) 건물터 9동, 축대시설 6기, 부속시설 8기 등이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이곳에서는 금동불상 7점과 `광림사`라는 글자를 적은 명문기와 등이 출토됐다.연구원은 적심건물지 1~4호에는 `광림사부`(廣林寺付)라는 기와가 다수 확인됐으며 건물터가 확인된 층위 양상과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등의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조선시대에 오정사라는 사찰이 들어서기 전 통일신라시대 후기 이래 고려시대 중(후)기까지는 이곳에 광림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금동불상 7점은 모두 광림사의 대웅전 터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적심건물지 2호 내부에서 수습됐다.이들 불상 중 금동여래입상 4점과 금동보살입상 1점은 부식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나머지 2점은 훼손이 심해 형태를 추정하기 힘든 상태다. 현상태 기준으로 가장 큰 것이 길이 19㎝이며, 그 외 불상은 12~17㎝ 정도다.불상 중 2점은 몸체를 대좌와 함께 주조한 것으로 드러났다.연구원 측은 “이들 불상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으로 정교하게 제작돼 한국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윤희정·신승식기자

2011-04-22

천마도의 `천마`는 정수리 뿔 달린 `기린`?

1996년 적외선 촬영 `신라 천마도` 진짜 모습 공개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에서 수습한 신라 천마도(天馬圖)가 진짜 모습, `맨얼굴`을 드러냈다. 연합뉴스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29일 개막하는 특별전에 이 천마도가 출품되는 것을 계기로 지난 9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천마도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촬영한 관련 적외선 사진 10여 장을 입수해 24일 공개했다. 이 적외선 사진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96년 `문화재와 보존과학 97`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그 전해에 이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촬영한 것이다. 당시 사진들은 1장을 제외하고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 1장도 전체 사진이 아니라 특정 부분만 공개됐을 뿐이다. 이 적외선 사진들에는 천마도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국사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책자에 실린 천마도나 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천마도가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기 때문으로, 기존 천마도 사진은 적외선 사진을 통해 드러난 천마도의 생생하면서도 세부적인 모습들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천마도는 더욱 생동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번에 연합뉴스가 공개한 적외선 사진을 보면 `천마`의 정수리에 외뿔사진 위 원점선 모습이 완연히 보인다. 이는 천마도의 `천마`가 말이 아니라, 실은 정수리에 뿔이 하나 난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아프리카 기린과는 관계없음)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주목되고 있다. 다만, 이 `정수리 뿔`이 목덜미를 따라가면서 그려져 있는 갈기들의 일부분인지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 `정수리 뿔`은 그 위치가 정확히 정수리 위이며, 나아가 목덜미를 따라가며 그린 다른 갈기 그림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굵을뿐더러, 표현 양식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천마도는 천마를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형상화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은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연합뉴스

2009-09-25

영주 `괴헌고택` 국가지정문화재 된다

문화재청, 중요민속자료 지정 예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5호인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에 있는 `괴헌고택(槐軒古宅)`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8일 “사당ㆍ사랑채ㆍ안채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 고유영역을 이루며 배치됐고, 구조양식 또한 위계에 따라 각기 다른 격조를 지닌 괴헌고택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예고 했다”고 밝혔다. 지정 대상은 건축물 4개 동(정침ㆍ사당ㆍ방앗간채ㆍ대문채)과 토지 1필지(2천030㎡)다. 이 괴헌고택은 입향조(入鄕祖. 처음 정착한 조상) 김세형(世衡)의 8대손인 김경집(慶集,1715~1794)이 정조 3년(1779)에 `소쿠리형` 또는 `삼태기형`이라 일컫는 풍수지리설의 명형국지(名形局地) 한가운데 지은 집으로 아들 김영(塋, 1789~1868)이 분가할 때 물려주었다고 한다. 김영은 회나무가 가득한 집이라는 뜻에서 이 가옥의 당호(堂號)를 `괴헌`(槐軒)이라 했다. 괴헌고택은`一`자형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튼 `口`자형 몸채가 자리를 잡고, 몸채 우측 뒤편 높은 공간에는 사당 구역이 존재한다. 사당은 별도의 담을 둘렀으며 협문을 통해서만 출입하게 했다. 사당을 더욱 신성한 장소로 느끼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이 고택은 제작 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성주단지를 비롯해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유물과 전통문화를 온전하게 보존, 전승해 왔다. 선대에서 물려받은 유물 대부분은 경북 영주 소재 순흥 소수박물관에 지난 6월 기증됐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를 비롯한 몸채의 곳곳에 생활의 편의를 위해 쪽마루와 많은 수납공간을 두고 있으며,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위한 작은 환기창과 고창을 각 방의 여러 곳에 내는 등 쪽마루·수납공간·환기창·고창 등이 발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윤희정기자

2009-09-09

문무왕릉비 조각 200년만에 재발견

그동안 실물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던 문무대왕릉비(文武王陵碑片·문무왕 재위 661~681)의 상단 부분이 발견돼 학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3일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시 동부동 A씨 수돗가에서 빨랫돌로 사용한던 돌이 문무대왕릉 비편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크기 40X66cm인 이 비편은 상단 부분이 주택 내 수돗가 마당에 시멘트로 박혀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진정환 학예연구사는 “장기간 노출에 의해 표면이 훼손되고 가장자리 부분 등의 일부는 마모가 심한 상태이나, 비문의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비편으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서 밝히지 못한 일부 글자에 대해서도 실제 비편과 비교하면 추가적인 판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석의 뒷면에 새겨진 비문의 잔존 상태도 주목된다. 682년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졌던 문무왕릉비는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洪良浩·1724~1802)의 이계집(耳溪集)에 1796년(정조 20년) 비편들이 발견됐던 사실이 처음 전하고 있다. 또 이 비편들의 탁본이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1793~1853)에게 전해져 그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비문이 실렸다. 그러나 비편의 실물들은 그 뒤 행방을 알 수 없게 됐으나, 1961년 비석의 하단 부분이 경주시 동부동에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09-09-04

“현존 最古 신라비는 재판 판결문”

지난 5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돼 현존 최고(最古) 신라비로 분석된 `포항 중성리신라비(浦項 中城里新羅碑)`는 재산 분쟁과 관련한 판결 내용을 담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발견 직후 이 비석을 경주로 옮겨 분석 중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이에 적힌 비문을 판독한 결과 기존에 발견된 영일 냉수리 신라비와 마찬가지로 “재물(또는 토지 등 재산)과 관련된 소송의 평결문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는 비석에는 “과거에 모단벌(牟旦伐·인명으로 추정)의 것(재물)을 다른 사람이 빼앗았는데 그 진상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며, 향후 이에 대한 재론을 못하도록 한다”는 평결 내용을 적었으며, 이런 평결에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관련 인물 등을 밝혀 현지인 등과 후세에 경계를 삼는 내용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이 `중성리비`는 발견 당시에는 `학성리비`로 보고됐지만, 정확한 발견 지점이 학성리가 아니라 중성리로 확인돼 명칭이 교체됐다. 이 중성리비는 최대 높이 104㎝, 최대 폭 49㎝, 두께 12~13㎝, 무게 115kg인 부정형 자연석 화강암 판돌 중 한 면에만 음각으로 한자를 새겨 넣었다. 글자는 전체 12행이지만, 각 행(行)별로 새긴 글자 수는 차이가 있어 최대 20자까지, 모두 203자 정도가 확인됐고, 비석 하단부 약 20㎝ 정도의 공간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 비면 맨 위쪽 일부와 우측면 일부가 결실됐을 뿐, 글자 대부분은 판독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라고 연구소는 밝혔다. 이 비문이 제작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비문 첫 대목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보이며, 비문 내용이나 표기법 등으로 볼 때, 신라 지증왕 2년(501)보다 늦을 수는 없고, 이보다 60년이 빠른 또 다른 신사년인 441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중성리비는 “지금까지 최고(最古) 신라비로 알려진 영일 냉수리비가 503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현존하는 최고 신라비가 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연구소는 이 비문에 대한 조사 결과를 `포항 중성리신라비`라는 보고서로 발간하는 한편, 1일자로 연구소 홈페이지(www.gcp.go.kr)에 이 책자 원문을 모두 공개해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연합뉴스

200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