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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름다운 불국토의 나라… 경주 신선사(神仙寺)

신선이 노닐 법한 환상적인 이름과는 달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단조롭고도 가파르게 이어진다. 여느 산과 다름없는 겨울 풍경에 지쳐갈 무렵 독경소리가 마중을 나오고, 산 위의 양지바른 곳에는 바람 한 점 없이 따사롭다. 월동 중인 초록의 으름덩굴과 겨울햇살이 불이문 되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펼쳐질 것만 같다.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한 노인으로부터 신검(神劍)을 얻어 이 산의 바위굴에서 검술을 닦았는데, 시험 삼아 칼로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갈라졌다. 이에 산 이름을 단석산이라 했고 갈라진 틈에 절을 세워 단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더러 신선사라는 절 이름을 화랑과 관련된 미륵신앙의 기도처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신선사(神仙寺)는 7세기에 활동하던 자장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한 법화종 사찰이다. 옛날 절 아래에 살던 한 젊은이가 이곳에 올라와 노인들이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고 집에 오니 아내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었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신선이 바둑을 둔 곳으로 불렀고, 절 이름도 신선사라 했다는 전설도 있다.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에 귀를 세운 겨울 가지들의 눈빛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빛난다. 골짜기는 봄 숲처럼 환하다. 좁은 비탈에 자리한 신선사도 계절의 을씨년스러움을 표정없이 비켜 앉아 있다. 콸콸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 요란한데 나이 많은 느티나무의 위엄이 눈길을 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시래기 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며 인사를 건넨다. 소박한 절이다. 산그늘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대웅전과 석등조차 독송에 잠겨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다.대웅전 법당은 작지만 안온하다. 앞마당을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 때문일까 마음이 동요를 일으킨다. 대웅전 마당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 끝머리에 위치한 높다란 암벽과 인공 천정, 미륵전이라 적혀 있다. 나는 암벽을 돌아 서쪽으로 난 보다 넓은 출입구로 들어선다.신라 최초의 석굴사원, 거대한 ㄷ자 암벽의 자연석실에 들어서며 이십여 년 전 찾아갔던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을 떠올린다. 긴 시간을 뛰어 넘어 파라오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람세스를 탐독하던 시절, 나는 풍요로웠던 이집트의 물질 문명보다 람세스와 네페르타리의 성숙한 영혼을 찾아 헤맸다. 거대한 석상들의 웅장함과 물밀 듯 찾아드는 관광객들, 카이로의 회색빛 소음 속에서 나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진정한 파라오의 힘과 자존심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듬성듬성 청이끼가 낀 미륵불이 지긋이 미소짓고 있다. 반쯤의 밝음과 반쯤의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기운이 생동감으로 이어진다. 국보 제 199호인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삼존불의 시선 속에 파라오와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 인다.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두 손을 모으고 불상들을 우러러본다. 내부에 새겨진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은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임을 밝히고 있다.신라를 가장 현실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신라인들, 그들은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종주국으로, 신라를 아류국으로 폄하하지 않았다. 서축에 견줄 만한 동축의 불교 주인국이라는, 강한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불교의 종주국으로 여기며 당당한 주체정신을 가졌던 신라인의 숨결, 마치 암벽으로 둘러싸인 영혼의 우물 속에 떠 있는 것 같다.가만히 눈을 감고 젊은 김유신을 생각한다. 성골이 아닌 비주류 가야 왕족 출신으로 신라의 중추적 인물이 되기까지의 갈등과 고뇌,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고 중악석굴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의연한 모습까지. 8.2m 높이의 거대한 미륵보살은 알고 있으리라. 온화한 시선 속에 담고 있는 말씀과도 같은 궤적들을. 삼면에 10여구의 부처와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지만 북쪽 암벽에 새겨진 주존불인 미륵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중악석굴이 이곳인지 팔공산 중암암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을 빛나게 했던 신라인의 정신문화다. 원광법사와 세속오계, 삼국을 통일한 호국정신,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칼로 잘린 듯한 거대한 암벽을 쓰다듬어 본다.조낭희 수필가주민들이 탱바위라고 부른다는 암벽 속을 염불소리 홀로 기도가 되어 드나들 뿐, 정상을 향해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만 바람처럼 들어왔다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한차례 왁자함을 쏟아내며 사진을 찍고 떠난 자리는 참으로 허전하다. 행여 우리는 설화적인 요소에 갇혀 고대 역사를 신화와 혼동하며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가?나와 역사에 대한 깊이가 빈약할수록 현실은 메마르고 비참해질 뿐이다. 신라인들이 가장 축복받고 이상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이 땅, 우리의 문화와 정서 속에 면면히 살아 있는 천년의 혼을 나는 외면한 채 무엇을 갈망하는가?심장에 가까운 붓다의 말씀이 들린다.“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디 자애의 마음으로 충만하라.”

2019-12-16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리움의 음악

쇼팽은 처음 바르샤바를 떠난 후 비엔나에 정착했으나 러시아 제국주의와 동맹이었던 비엔나 사람들은 쇼팽이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저항한 국가의 작곡가’라며 그의 음악을 외면했다고 한다. 그 후 프랑스 파리로 음악 활동의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 후 쇼팽이 영국을 방문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비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쇼팽은 망명자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폴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이므로 쇼팽만 인정한다면 ‘러시아 국민작곡가’로 선정해 러시아 비자를 발급하겠노라는 제의했으나 쇼팽은 단호히 거절했으며 이에 러시아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령’이 선포돼 다시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쇼팽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만은 그의 작품으로도 알 수가 있다. 폴란드의 민속춤인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를 피아노곡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 폴란드의 음악을 알렸으며 그가 창시한 피아노 장르인 ‘발라드’는 일정한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서사적이며 스케일이 큰 곡인데 이것은 폴란드의 애국시인 ‘아담 미키에비치(1798∼1855)’의 애국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쇼팽의 작곡 능력이 절정에 달하던 당시 유럽은 벨리니(1801∼1835)와 로시니(1792∼1868))의 오페라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정치적 이유로 폴란드에서 망명한 주위의 많은 이들이 쇼팽에게 애국적인 오페라 작품을 쓰길 권했지만, “나의 눈과 머릿속에는 오직 피아노건반 만이 보인다”고 말한 그의 말처럼 흥행을 뒤로 한 채 피아노만을 위한 새로운 음악세계를 고집스럽게 만들어 낸 것이다.쇼팽은 그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자주 비교된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사람이다.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를 과시하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할 때 청중들에게 최초로 옆으로 앉아 연주를 시도한 슈퍼스타적 기질이 많은 인물이었다. 리스트의 작품들은 개인 감성의 표현보다는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 연주법으로 일관돼 있으며 여인들과도 숱한 스캔들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쇼팽은 리스트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의 일생을 통해 연주회는 50여회 밖에는 출연하지 않았고, 주로 소규모 모임의 살롱연주를 선호했다. 쇼팽의 음악은 구상된 작품이라기보다 현재의 감정을 표현해낸 즉흥적인 느낌의 곡이 많다. 그런 느낌을 가져야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다.그의 피아노곡은 오케스트라나 다른 악기 편성을 위해 편곡을 통해 바꿔 놓으면 그 근본적인 악상이 손상되며 그 음악이 지니는 특수한 정서가 없어진다. 쇼팽에게 악상은 음악의 흐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만이 가장 효과적으로 연주될 수 있게 작곡 되어진 것이다.요즘 유행하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과 비슷한 ‘레 실피드(Les sylphides)’라는 발레곡이 있다. 쇼팽의 피아노곡만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발레곡인데 편곡은 글라주노프(1865∼1936)가 담당했으며 줄거리는 없다. 이 곡을 감상하면 쇼팽의 작품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함에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근대적인 형태의 최초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는 ‘에튜드 op.25 no.11’일명 ‘겨울바람’을 두고 “오케스트라로서 표현할 수 없는 피아노로서의 가장 완벽한 곡”이라 평했다.쇼팽은 에튜드, 프렐류드, 발라드, 왈츠,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녹턴 등의 피아노 형식에 특화된 장르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천재적인 창의성과 감수성으로 피아노만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기법과 ‘템포 루바토’나 ‘헤미올라’ 등 특유의 릴렉스 기법을 통하여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고국을 떠나올 때 불안해했던 그의 예감대로 쇼팽은 죽을 때까지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그의 심장만은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에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그의 위대한 대작 ‘프렐류드의 op.28 no.4, e minor’ 가 오르간으로 쓸쓸히 연주됐으며, 그가 존경하던 J.S.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비어곡집을 오마주하며 만들어낸 그의 작품, 전주곡처럼 그의 생도 너무나 짧았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교사

2019-12-16

정어리집회

정어리 집회는 수만 마리가 무리를 지어 몸집이 큰 포식자에 대항하는 정어리처럼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 반(反)이민 등 극우주의에 저항하자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다.길이가 15㎝ 정도인 정어리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물고기다. 다른 어류는 물론 고래나 물개 같은 해양 포유류의 먹잇감이다. 하지만 무리를 이룬 정어리 떼는 조밀하게 뭉쳐 몸집을 키우고, 지느러미를 움직여 진동을 만들어내면서 포식자의 공격을 피한다.정어리 집회의 시초는 내년 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伊 살비니의 동맹당과 우호 정당들이 지지 집회를 갖기로 하자 마티아 산토리와 친구들이 인근 광장에서 대응 집회를 갖기로 하고 소셜미디어로 알린 것이 시초다. 산토리와 친구들은 흩어져 있을 땐 공격에 속수무책인 정어리가 무리를 지어 큰 적을 물리치는 것처럼 극우주의에 대항해 힘을 모으자며 소셜미디어에서 호소했고, 시민들이 이에 호응해 정어리가 집회의 상징이 됐다. 볼로냐에서 1만5000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시칠리아, 밀라노, 토리노 등을 거쳐 수도인 로마에 상륙하면서 세를 점점 불려 최근에는 스스로를 정어리(sardine)라 부르는 시민 약 10만 명이 로마 산조반니 광장에 모여 이탈리아에서 득세하는 극우주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특징적인 것은 집회 참석자들은 각양각색의 정어리를 그린 그림과 포스터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집회는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일반적인 집회와 달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정어리 집회 역시 민의의 준엄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한다. 정어리로 변신한 촛불이 세계를 가만히 흔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6

당신의 귀인(貴人)은 누구인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운칠기삼(運七氣三)’, ‘운구복일(運九福一)’이라고 한다. 똑같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누군가는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기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며 하는 말이다. 사회적 성공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로버트 H. 프랭크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행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생의 중대한 성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행운아”라며 ‘실력주의’라는 신화에 도전한다. 이제 인사평가가 끝나고 인사이동이 시작될 시기다. ‘누군가’의 평가가 앞으로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12월에 생각해 보는 질문, 당신의 삶에 도움을 준 귀인은 누구인가?성공과 실패는 한 개인의 노력과 능력 여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평소 맺어온 관계와 네트워크의 질이 성공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경쟁의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결정적인 누군가가 있다면 동일한 조건의 다른 이들보다 더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삶은 혼자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힘은 결국 네트워크 효과다. 등 뒤에서 기분 좋게 밀어주는 순풍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속도를 더해 줄 수 있으나, 강한 역풍은 앞으로 한 발짝 전진하는 것조차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점에서 자신이 이룬 그 어떤 성공에도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능력이 있어 그 자리까지 오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어준 덕분에 거기까지 갔고 그만큼 이룬 것이라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 이전투구의 현실에서도 ‘밑지고 사는 게 밑지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삶의 끝은 명확하다. 베풀어준 것이 없으니 받을 것도 없고 먼저 배려하지 않았으니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존재로 기억될 리 없다. 유불리만 따져 당장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은 묵묵히 헌신하고 겸손하게 행동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평판은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더 특별하게 자리하였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관계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지,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행복은 ‘아는 사람이 많다’는 숫자에 있지 않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고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과의 깊은 만남에 깃들어 있다. 좋은 관계망이 좋은 삶을 만들어주기에 자신의 주변과 지금까지의 네트워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 곁을 묵묵히 지켜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귀인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과, 당신 자신이 누군가의 삶을 이끌어주는 귀인이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필요한 때다.

2019-12-16

그 많은 남북 합의문 어디로 갔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후 남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많은 합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직전 1971년 7월 4일 이후락과 김영주 명의의 7·4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1992년에는 남의 정원식 총리와 북의 연형묵 총리간의 남북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남북 간 불가침과 교류와 협력의 의지를 담은 지금도 손색없는 문건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 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뒤이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10·4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공 선언을 발표되었다.지난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4·27 선언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시민들을 향한 7분간의 연설과 9·19 평양 선언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케 하였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북한 당국은 남한 정부를 비난하고 남북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북미간의 하노이 협상은 결렬되고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제재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결과이다.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고 결국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그간의 합의와 조치들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같은 분단국 운명으로 태어난 독일은 1972년의 양독이 체결한 기본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하여 이미 1990년 통일의 꿈을 성취하였다. 1972년의 10개항의 양독 기본 협정문은 내용은 간단하지만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 그후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되었다. 양독은 인적·물적 교류 뿐 아니라 방송까지 허용하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시켰다. 통일 전 동독인들은 서독의 TV를 통해 분데스 리가 축구 경기를 같이 보았다. 양독 간 1972년 기본협약서 한 장이 결국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우리는 남북 정상 간 지난해의 합의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근원적으로 남북은 아직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적대적 공존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것을 지킬 의지가 사실상 없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을 겪었고 그것이 이념갈등과 불신을 부추긴 결과이다. 친북과 반북, 용공과 반공이라는 프레임이 정치에 이용되어 득표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 정상 간의 합의마저 국회의 비준은 엄두도 못 낸다.결국 남북 합의마저 무력화 되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간의 남북 합의서 상의 공통분모를 뽑아 통일 헌장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은 세습정권의 특성상 최고 지도자의 서명 문건은 폐기치 않고 보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간의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통일 헌장에 담아 국회의 인준을 받아 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외교 통일위원회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통일관련 시민 단체의 의견도 수렴해야 할 것이다. 이 통일 헌장은 가칭 우리의 ‘통일 국민 협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정권 교체에 관계없는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장치이다.

2019-12-15

사진, 그 추억의 갈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유사(有史) 이래 인류는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대상을 본뜨거나 의미를 전달하는 회화(繪畵)문자 체계를 고대 이집트 등지의 그림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이나 그림을 쓰거나 그리고 새긴 흔적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의 산실이라 했던가?시간은 기록이 되고 기록과 사진은 역사가 된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을 적어두거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진 등으로 남겨두면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일상을 속속들이 일기처럼 적거나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가꿔 나가는지도 모른다.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생활은 그 면면이 찍히고 사진기록으로 남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여행을 한다거나 행사에 참관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순간들을 폰카메라를 이용해 손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과 사연을 알리고 함께 나누며 관심과 소통, 안부와 공감으로 인맥과 관계망을 넓혀나가는 양상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각박하고 스피디한 정보화시대에 친구나 지인 등을 자주 만나 담소할 수 없으니 온라인 상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교감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싶다.19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가 본격 보급되기 십 수년 전부터 필자는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친구들의 결혼식이나 자녀들의 성장과정 등의 사진을 거의 도맡아 찍어왔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인연을 인감도장처럼 찍는 찍사다’ 라고 표현했을까? 살아오면서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숱하게 찍어 인화해둔 사진들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창고 한 켠에 두어 박스 정도 쟁여져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로 그 빛바랜 사진들을 몇 장씩 꺼내 본인들에게 전해주니,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사진을 매개로 옛적을 회상하며 세월의 여울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일상의 편린(片鱗)을/사진으로 켜켜이//기록영화 찍듯이/누리고 공유하는//저마다/기억의 곳간에/별로 뜨는 망울들’ -拙시조 ‘추억의 갈피’ 전문(2019)-현재 사진은 시각적인 언어로, 창조적인 예술로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거기에 담긴 풍경이나 인물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시간에 버물려지면서 스토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사진 속에서는 아련한 옛날이 망각의 저편에서 넌지시 손짓하기도 하고, 무언의 얘기꽃이 새록새록 피기도 하며, 아린 그리움 속에 엷은 감미로움이 안개처럼 깔리기도 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實在)이듯, 찰나의 순간을 담는 사진이 시각 정보로, 예술로, 기록으로서의 쓰임새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듯 사진은 우리 삶의 각인이고 여운이자 기억의 곳간에 별로 뜨는 추억의 갈피이리라.

2019-12-15

기적의 사과 (4)

어스름한 새벽이라 뭔가를 잘못 봤나 싶어서 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 자세히 관찰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것은 사과가 아니고 도토리였습니다. 6년 동안 사과에 집착한 나머지 도토리를 사과로 착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도토리는 크기도 엄청나고 더할 나위없이 건강해 보입니다. 집념의 기무라 아키노리, 이 상황에서 생각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지금 자살하러 갔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왜, 깊은 산속의 도토리는 이토록 건강한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합니다.하늘에서 무슨 계시라도 받은 듯한 깨달음이 머리를 때립니다. 미친 듯이 도토리 나무의 밑둥치 아래 흙을 두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하지요. 손톱에 피가 나도록 산속 도토리 나무 아래 땅을 파 들어갑니다. 마침내 그의 두 손에는 도토리 나무 뿌리가 닿아 있는 흙이 담깁니다. 그는 흙 냄새를 맡아봅니다. 형언할 수 없는 향기로움이 가득하지요. 온갖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자연 그대로의 흙을 온 몸으로 느끼며 벼락에 맞은 듯한 전율을 느낍니다.“바로 이거다!” 그는 자살하려던 밧줄을 산 속에 버려둔 채, 정신없이 뛰어 내리막길을 달립니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웃다가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킬킬거리며 한 밤 중의 산을 달려 초토화된 사과 밭에 도착하지요. 산에서 했던 것처럼 사과 나무 밑둥 아래 흙을 파헤칩니다. “역시, 완전히 다르구나”예상은 적중합니다. 산속 도토리 나무가 심겨 있는 토양의 흙 냄새와 사과 밭 흙 냄새는 생명의 향기로움과 죽음의 악취처럼 달랐습니다. 지난 6년의 실패는 눈에 보이는 것,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의 벌레만 바라보고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집착했음을 깨닫습니다. 기무라에게 다시 희망이 싹트자 그는 놀라운 의욕으로 다시 작업에 착수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 밭 토양을 완전히 갈아 엎는 일에 착수합니다. (계속)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5

호구지책의 해

한해를 마무리할 때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표현을 잘 쓴다. “한해동안 일도 많았으며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으로 한해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사용하기에는 제격이다.연말이 다가오면서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가 발표되고 있다. 다사다난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유난히 한해가 어려웠다고 회고하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청년 실업자가 내뱉는 아픔의 표현이 우리를 우울케 한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구직자가 가장 많이 뽑은 사자성어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걱정거리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을 뒤척인다는 뜻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 그들은 “마른나무와 불기 없는 재와 같다”는 심정의 고목사회(枯木死灰)를 그해 사자성어로 선정한 바 있다. 한해가 지났어도 그들은 여전히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한 언론이 만들어 낸 3포세대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두고 한 말이다. 세월이 지나 3포는 5포와 7포로 바뀌더니 지금은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n포세대라 부른다고 한다.꿈을 먹고살아야 할 젊은이에게 들이닥친 호구지책(糊口之策)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또 해를 넘기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젊은이는 삶의 가장 중요 가치로 ‘경제적 안정’을 압도적으로 손꼽았다. 도전과 성공, 성취라는 이상적 희망보다 경제라는 현실을 택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 것도 호구지책에 매달린 젊은이의 사고가 낳은 결과가 아닐까. 내년에도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5

‘4+1’…협잡 정치의 끝판왕

안재휘 논설위원‘제1야당’이 사라졌다. 아니, 멀쩡히 살아남아서 삭발·단식·장외집회 등 한국 정치문화의 오만가지 극한투쟁 박람회를 열고 있지만, 여당과 그 위성 세력들에 의해 치욕스러운 ‘좀비’ 취급을 받고 있다. 참다운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목불인견(目不忍見) 협잡들이 판을 친다.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권력 유지와 확대에만 혈안이 된 정치꾼들의 악취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이 나라 정치에는 ‘교섭단체’라는 제도가 있다. 20석 이상의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한 정당을 ‘교섭단체’로 인정하여 각 정당 지휘부들이 모여서 국민 여론을 반영해 국정을 논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여당과 뜻이 맞는 정치 패거리들끼리 따로 모여서 주요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변질하고 있다.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모임이 대한민국 국회의 상원(上院) 노릇을 하는 꼴이다.잘잘못을 따지자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허물이 크다. 박근혜 정권의 비극적 종말 이후 한국당은 스스로 ‘좀비’ 정당으로 전락해간 측면이 있다. 국민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반성’도 ‘책임’도 실천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당의 가없는 추락은 딱 죽어야 할 때 ‘못 죽은 죄’, 아니 ‘안 죽은 죄’의 업보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흙 속에서 다시 살아나려면 썩어서 흙과 동화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도무지 낯두꺼운 권력의 화신처럼 굴었다.‘4+1 협의체’는 제1야당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내년도 예산안을 후다닥 처리하면서 실력을 넉넉히 과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패스트트랙의 선거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다. 딱한 허수아비 제1야당은 국회 본회의장 정문 앞이나 광화문에 나가 소리나 질러댈 따름이다.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부르대지만 민심은 구경꾼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는 판이다.연동형 비례대표제도와 석패율제도 등 복잡한 방정식을 놓고 ‘4+1 협의체’에 참여한 군소정치 패거리들은 각자 유불리를 따져 권력 나눠먹기 몽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의 언행 이면에 진정한 ‘애국’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의석 몇 자리 더 훔쳐내자고 선거제도와 공수처법을 바꿔먹는 짓은 역사에 대죄(大罪)를 짓는 일이다. 현재의 공수처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무력화되고 옥상옥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의 미친개가 되어 좌파독재 시대를 열어젖힐 공산이 크다.지난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떠오른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무리를 지어 사익을 취하는 소인배 짓거리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군자는 두루 친하되 결탁하지 않지만(君子周而不比), 소인은 결탁하되 두루 친하지 않는다(小人比而不周).’ ‘4+1’…. 저 협잡 정치의 끝판왕을 막아낼 묘책은 정녕 없는가.

2019-12-15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하며

고윤환 문경시장문경의 3선 시장으로 7년 동안 시정을 이끌어오면서 우리 시의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인구 8만명도 되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의 하나인 2015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를 저비용·고효율의 롤 모델을 제시하며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만 보아도 그렇다.지금 문경은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해 전국 어느 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관광의 도시로 거듭났다. 그리고 문경은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이 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2021년 중부내륙고속철도(이천∼충주∼문경) 개통을 대비해 문경역세권 사업 등 현안 사업을 순조롭게 실시하여 문경은 대한민국 신 수도권 시대 진입에 따른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새로운 희망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2019년 문경의 노력은 △민선 7기 10개 분야 63개 공약 92% 이행 △올해 연말 예산 8천억 원 돌파 △도시재생 뉴딜, 농촌 신 활력 플러스사업 등 46건에 국·도비 736억 원을 확보한 것 등으로 이어졌다.또한 지속적인 인구 감소가 증가 추세로 돌아섰으며, 이는 다자녀 생활 장학금 지급, 파격적인 출산장려금 지원 등 대폭 확대된 인구증가 시책 및 귀농·귀촌·귀향 맞춤형 정착지원 사업 추진에 따른 정책 효과로 판단된다.지난해 10월 개장한 문경에코랄라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민간에 위탁한 결과 타시군의 롤 모델이 되었다. 휴식과 체험을 통해 바쁜 현대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문경 힐링휴양촌과 우리 지역 특산물인 문경 오미자를 테마로 하는 문경오미자테마공원도 개관하여 운영 중에 있다.문경찻사발축제에는 2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문경사과장터에는 3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 사과를 포함한 농·특산물을 18억 원어치나 판매하는 등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기업유치 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하여 올 한해 (주)마루종합식품 등 11개 업체를 유치해 1천967억 원의 투자와 일자리 430개를 창출하였다.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하고 침체된 점촌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영강천변 청정자생식물원, 송진산 힐링공원, 귀농귀촌귀향 시설원예 시범단지 조성 등 점촌지역 랜드마크 조성사업도 활발히 추진 중에 있다.2020년 시정의 운영방향으로 크게 8대 방향을 설정했다.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 △인구증가 시책 지원 확대 △아이들의 보육과 건강 인프라구축 △명품교육도시 위상 공고 △문화관광수도 문경을 위한 인프라 구축 △시민이 행복한 복지도시 구현 △시민 중심 생명존중의 안전도시 문경 건설 △소통행정과 혁신으로 시민 체감도 향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먼저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을 위해 청년 농업인 발굴과 조기 정착 등 농촌 일자리 창출과 귀농·귀촌·귀향자들의 안정적인 소득기반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출산장려금 지원으로 출산 친화적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놀이체험시설 및 맘 편한 돌봄 공부방을 운영하는 등 아이 돌봄 서비스를 확대한다. 화상영어교육 등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명품 교육 도시를 반드시 만들어 나갈 것이다.아울러 문화재 103점 보유 도시로 향토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고, 하늘재 옛길문화 관광자원화 사업, 세계명상마을 조성 사업, 문경돌리네습지 생태자원화 사업, 단산권역 개발사업 등으로 문화와 관광이 꽃피는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다. 맞춤형 복지행정을 구현해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조성하고, 하천재해 예방사업,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을 통해 시민중심 생명존중의 안전도시를 이룰 것이다. 또한 시민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더 잘합시다 문경운동 등으로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변화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어 지금까지 흘린 땀보다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하며 8만 시민과 함께 시민 행복시대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201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