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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자수첩] 수소환원제철소, 포항을 다시 살릴 마중물이 돼야 한다

포스코가 포항 앞바다에 건립하는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조성 사업에 대한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이 지난 주말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향후 10~15년 간 지역 경제의 흐름을 좌우할 ‘초대형 토목·산업 프로젝트’는 막이 올랐다. 약 135만㎡ 매립, 3000만㎥에 달하는 토사 투입, 20조 원 규모의 투자 등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지역 경제에 미칠 파급력이 압도적이다. 장기간 이어질 매립 공사와 기반시설 구축 등은 플랜트 건설업계와 장비·자재 시장에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단발성 경기 부양이 아니라 지역 전반에 걸쳐 ‘공사형 경기 순환 촉매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포항처럼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경매 증가로 자산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심리적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일감이 돌고 자금이 순환하면 자연스레 지역 내 소비와 투자도 일정 부분 살아날 것이다. 여파는 벌써부터 시민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제 포항이 좀 나아지는가, 포스코는 정상화될까…’ 지역 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에 몰려서인지 물음도 많다. 포항을 떠받치는 경제계에 다소나마 위안을 삼고 버틸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도 수소환원제철 매립 승인 소식은 큰 다행이다. 하지만, 기대만으로 접근하기에는 아직은 넘어야 할 문턱이 적지 않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행정 절차의 연속성이다.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 승인 이후에도 실시계획 인가, 환경영향평가 본안 협의, 항만·해양 관련 인허가, 전력 및 에너지 인프라 구축 승인 등 단계별 절차를 촘촘하게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느 하나라도 지연되면 전체 사업 일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 이런 사업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매립 인허가를 마친 지금부터가 오히려 진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사업은 1차 관문인 매립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서 차질이 빚어진다면, 후속 공정 차질은 불 보듯 뻔하다. 바다 매립은 해수 유동 변화 등 환경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해관계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일단 좀 더 큰 틀에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지역’이라는 거시적 담론이다. 최근 들어 포항제철소에서 적자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다품종 소량 생산과 생산설비의 노후화 등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포항철강산업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그 대안으로 빼내 든 것이 포항수소환원제철소다. 포항경제와 포항제철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히고 설켜 있다. 과거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위태롭다면 일단은 대수술을 하더라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일터다. 포스코 입장에선 수소환원제철이 대수술이나 다름없다. 그간 흐름을 보면 대형 프로젝트 진행 시 필히 이해충돌 사태가 빚어져 왔다. 또 역내 환경시민단체들의 저항도 적잖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권리이니 그걸 하지말라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다수 시민들의 생각은 이번에는 좀 달리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절박한 포항경제 상황을 감안, 대승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규제와 탄소국경세 흐름은 이미 대세가 됐다. 기존 고로 체계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다양한 대안이 연구되고 있지만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이라는 카드를 내놨다. 원만하게 진행돼 포항이 수소환원제철 기술 전환의 전진기지가 될 경우, 관련 산업 생태계 역시 재편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공법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으면 포항은 제철 중심 도시로 다시 우뚝 설 수 있다. 정부도 더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수소환원제철 사업은 막대한 전력 수요와 수소 공급망 구축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업 경제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인 전기요금과 에너지 공급, 수소 생산 등은 포스코와 지역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 시책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인 만큼 정부가 먼저 나서 대안을 제시하고 이끌 필요가 있다. 누가 뭐래도 제철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세계 속에 우리 경제가 자리한 그 언저리에는 누가 뭐래도 포항제철소가 결정적 역할을 해왔기에 가능했다. 포항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기반 산업이 지금 흔들리며 진통을 겪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이라는 돌파구를 통해 포항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경북도, 포항시, 지역사회, 포스코가 이제는 적극 나설 때가 됐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4-01

[기자수첩] 경매로 무너진 포항 부동산 시장 어쩌나

포항 전역에서 법원 경매 물건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때 개발 기대감으로 가격이 치솟았던 도심의 주상복합 부지와 상업시설, 외곽의 공동주택과 토지까지 줄줄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단순한 경기 순환으로 보기에는 하락의 깊이와 확산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미분양 적체와 과도한 차입, 지역 금융의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도시 자산 가치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경매 물건 증가는 단순한 소유권 이전 문제를 넘어선다. 장기간 방치되는 자산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상권을 위축시키며, 인근 부동산 가격을 끌어내리는 하향 압력으로 작용한다. 공사가 중단된 사업지는 안전 문제까지 야기하며 시민 불안을 키운다. 결국 이는 도시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 시장에서는 준공을 앞두고 멈춘 건물, 기초 공사만 진행된 채 방치된 개발사업지, 공실이 장기화된 상업시설 등이 반복 유찰되며 가격이 급락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낙찰가율 하락은 금융권 부실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자금 경색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만든다. 지역 경제의 혈류가 막히는 전형적인 전조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침체가 아닌 도시 구조의 불균형이 드러난 결과로 본다. 특정 시기 개발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수요보다 공급이 앞선 결과가 누적된 것이다. 방치된 사업지가 늘어날수록 도시 기능은 단절되고, 투자 기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화된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 역시 수요 없이 매물만 쌓이는 구조에 갇혀 있다. 유찰이 반복될수록 가격은 더 떨어지고, 이는 기존 자산 가치까지 끌어내리는 도미노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민간의 자생적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결국 해법의 핵심은 ‘공공의 매입과 재활용’이다. 시장에 맡겨두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크다. 포항시가 경매·공매 물건 가운데 입지와 활용성이 검증된 자산을 선별적으로 매입해 지역 수요에 맞게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방치된 건축물을 청년 주거, 창업 공간, 공공임대상가, 생활 기반시설 등으로 재구성하면 도시 기능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미루기에는 방치 비용이 더 크다. 슬럼화 복원 비용, 무너진 상권 회생을 위한 추가 재정, 금융 부실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충격까지 고려하면 선제적 개입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단순한 부동산 매입이 아니라 도시 재생을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제도 설계가 필수적이다. ‘경매·공매 자산 활용 기금(가칭)’과 같은 별도 재원 구조를 마련해 일회성 대응이 아닌 상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도시재생, 산업, 주거 정책을 연계해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 실효성이 확보된다. 특히 산업 구조 전환과 청년 유입을 고려한 활용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동시에 매입 기준의 객관성과 선별성이 확보돼야 한다. 무분별한 매입은 또 다른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입지, 수요, 파급 효과를 기준으로 한 정밀한 판단과 함께 민간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공이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이 실행력을 더하는 방식이다. 조심스럽지만, 지금과 같은 자산 방치가 지속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지역 전체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공공의 선제적 매입과 활용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3-25

AI 시대에 ‘석기시대 행정’

포항시 행정의 공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시청에 전화를 걸어본 시민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이 있다. 수차례 신호음만 울리다 끊기거나, 어렵게 연결되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담당자 출장 중”이라는 무성의한 안내뿐이다. 시청의 문턱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 포항시청 출입은 담당 공무원과 전화로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민원을 해결하러 온 시민이 입구에서 발이 묶인 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기묘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직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입구에서부터 잠재적 문제 인물로 취급받는 듯한 불쾌감만 안겨준다.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폐쇄 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전화 연결의 벽이 시청 입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항시 홈페이지 조직도 역시 시민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조직도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행정전화 번호만 공개돼 있을 뿐, 실제로 시민들이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행정전화가 불통이 되면 민원인은 속수무책으로 답답함만 감내해야 한다. 담당자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정작 연결되기란 쉽지 않다. 공무원의 명함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명함에는 사무실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 정작 긴급한 상황에서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 번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업무는 그대로 멈추고, 민원인은 연결될 기약도 없는 사무실 번호만 붙잡고 전화를 반복해야 한다. ‘공직자 보호’라는 방패 뒤에 숨어 ‘소통’이라는 기본 책무를 내려놓은 모습이다. 여기에 점심시간 일제 휴무제까지 더해지면서 시민 불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창구 민원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일제히 업무를 중단하면서, 점심시간을 쪼개 시청을 찾던 직장인들은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시민의 생활에 맞춰 제공돼야 할 행정 서비스가 오히려 시민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형국이다. 문제의 본질은 ‘소통의 단절’이다.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로 행정 혁신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민원 서비스 역시 온라인 플랫폼과 다양한 소통 창구를 통해 시민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포항시 행정은 정작 시민과의 소통에서는 눈을 가린 채 벽을 쌓는 ‘블라인드 행정’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닫힌 출입문과 연결되지 않는 전화, 그리고 “출장 중”이라는 한마디 뒤에 숨은 행정이 계속되는 한 시민의 불만과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책임은 고스란히 행정을 향한 더 큰 심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3-16

상생공원의 ‘상생’은 어디에 있나

포항 남구 대잠동 일원에서 추진 중인 상생공원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둘러싼 잡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이름은 ‘상생’이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누구를 위한 상생이냐”는 냉소가 먼저 나온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장기 미집행 공원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민간이 부지를 매입해 70% 이상을 공원으로 조성해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30% 범위에서 비공원시설을 통해 수익을 보전하는 구조다. 취지 자체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운영이다. 상생공원 사업은 대규모 아파트 건립과 결합돼 있다. 사업 주체로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공원 조성이라는 공익적 외피와 달리, 실질적으로는 대규모 주택 공급을 통한 수익 사업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공원이 ‘주’인지, 아파트가 ‘주’인지 묻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논란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사업비 산정 근거, 예상 수익률, 초과 이익 환수 장치 등 핵심 정보가 시민들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혹은 증폭됐다. 공공 자산이 포함된 개발 사업에서 협약 내용이 ‘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가려지는 현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상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최소한 수익 구조와 이익 배분 원칙만큼은 시민 앞에 당당히 내놓아야 한다. 공사비 급증 문제와 일조권 논란, 시행사와 관련 인사 간의 유착 의혹까지 이어지면서 신뢰는 더욱 흔들렸다. 물론 의혹이 곧 불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해소되지 않는 상황 자체가 행정의 책임이다. 설명이 부족하면 소문이 자란다. 침묵은 방어가 아니라 불신의 토양이 된다. 포항시는 그동안 “절차상 문제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민이 묻는 것은 절차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공정성이다. 수익률 상한은 설정돼 있는지, 초과 이익은 어떻게 환수되는지, 공원 조성 비용과 아파트 분양 수익은 어떤 구조로 맞물려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 타 지자체들이 수익률을 제한하고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을 명문화한 사례와 비교하면, 포항의 소극적 태도는 더욱 도드라진다. 도시의 미래 공간 구조를 바꾸는 사업은 되돌리기 어렵다. 한 번 콘크리트가 올라가면, 그 자리에 다시 숲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엄격해야 하고, 더 투명해야 한다. 상생이라는 이름은 행정의 면피 수단이 아니라 시민과의 약속이어야 한다. 상생공원이 진정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기억될지, 특정 사업의 상징으로 남을지 포항시는 빠른 시일내에 협약서를 공개하고, 수익 구조를 명확히 밝히며, 초과 이익 환수 장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상생’이라는 두 글자를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3-08

‘가짜 보호구역’의 민낯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 시후 같은 아이가 다시는 나오지 않게만 해주세요” 아들의 빈방에 남겨진 새 중학교 교복을 붙잡고 아버지는 절규했다. 입학을 앞둔 열세 살 오시후 군은 자전거를 타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포항 북구 이인로의 사고 현장은 거대한 ‘안전의 착시’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바닥은 선명한 붉은색이었고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노란 글씨는 이곳이 튼튼한 울타리임을 약속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기만이었다. 지자체가 붉은 페인트만 칠해놓고 법적 지정 고시를 미루는 사이, 아이들은 이곳을 완벽한 보호막이라 믿었다. 반면 운전자들은 단속 카메라 없는 허점을 노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 아이들에겐 ‘안심’을, 운전자에겐 ‘방심’을 심어준 행정의 치명적 엇박자가 소년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행정이 판을 깐 함정”이라 일갈했다. 비극의 이면에는 어른들의 추악한 이기심이 도사렸다. 사고 지점에 안전 펜스가 없었던 이유는 인근 상가들의 ‘주차 편의’ 민원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생명줄보다 상권 이익이 우선순위였다. 도로를 성벽처럼 에워싼 불법 주정차 차량들은 소년을 차도 중앙 벼랑 끝으로 등 떠밀었다. 여기에 카메라 설치비 3000만 원을 추경 절차 뒤로 밀어낸 지자체의 인색함이 소년의 마지막 탈출구마저 봉쇄했다. 포항시의 해명은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알리바이였다. “준공 전이라 관리권이 없었다”, “인사 이동 후 업무 파악 중이었다”는 변명은 직무 유기를 감추려는 얄팍한 수사에 불과하다. 차들이 질주하는데 ‘서류상 준공’을 핑계로 현장을 방치하는 행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불이 났는데 소화전 사용을 준공 허가 뒤로 미루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 나태함의 대가는 가혹하다. 사고 후에도 행정 착오는 반복돼 보호구역 지정은 개교 이후인 4월로 밀렸다. 내달 문을 여는 초등생들은 최소 한 달간 ‘법적 보호막’ 없는 위태로운 등굣길을 걸어야 한다. 화려한 포장지만 씌우고 안전의 본질은 빼버린 비겁한 행정이 오늘도 아이들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무늬만 보호구역’은 방패가 아닌 아이들을 도로 위로 유인하는 흉기였다. 국가는 실재하는 위험 앞에 절차라는 장막을 치고 책임을 유예했다. 서류를 앞세운 관료주의가 소년의 마지막 안전판마저 걷어찬 셈이다. 비극은 되풀이되고 행정은 면피에 급급하다. 도대체 아이들의 죽음이 몇 번이나 더 반복돼야 이 ‘서류상의 안전’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질 것인가.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26

TK통합 성공은 시민 권한 확대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포항 포은흥해도서관에서 열린 ‘K-국정설명회’에서 던진 화두는 단연 TK통합이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찬반을 떠나 지역 사회의 구조를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한 의제다. 그 자리에서 김 총리는 “통합 이후 그것이 발전의 길이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주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통합의 성패를 중앙정부가 아닌 주민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셈이다. TK통합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는 이미 여러 차례 행정통합을 공식 의제로 올렸고, 공동연구용역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특별자치단체 모델까지 검토해왔다.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인구 약 500만 명, GRDP 기준 전국 상위권 규모의 초광역 경제권이 형성된다. 권한과 재정 규모 역시 확대된다. 일부에서는 ‘수도권에 맞설 유일한 비수도권 블록’이라는 기대도 내놓는다. 하지만 숫자와 외형만으로 통합의 정당성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김 총리가 강조했듯 “통합의 의미는 단순히 권한이나 재정이 늘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이 또 하나의 거대 행정조직을 만드는 데 그친다면, 지역 소멸의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TK가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북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청년층 순유출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대구 역시 제조업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성장동력이 약화된 지 오래다. 결국 통합의 본질은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어야 한다. 김 총리가 배경으로 제시한 ‘지방주도 성장전환’은 이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서울에 인구·자본·청년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진단은 이미 여러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도 반복돼왔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를 넘어섰고, 청년 고용의 질 좋은 일자리 역시 서울·경기 지역에 몰려 있다. 지방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갖추지 못하면 통합 역시 껍데기에 불과하다. 포항을 예로 들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포항시는 한때 대한민국 제조업을 상징했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은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탄소중립 흐름, 중국발 공급과잉, 철강 시황 변동성 속에서 구조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김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수소 산업, 2차전지, 반도체, SMR 등 미래 산업과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구체화된다. TK통합이 포항의 산업전환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가. 통합 광역정부가 들어서면 산업정책의 조정 권한이 커지고, 국비 확보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 예컨대 초광역 교통망, 연구개발 특구,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등에서 통합 단위의 전략 수립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행정 중심이 대구로 쏠릴 경우 경북 동해안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행정통합은 필연적으로 권한 재배분의 문제를 동반한다. 청사 위치, 의회 구성, 예산 배분 방식, 공공기관 이전 등 민감한 사안이 줄줄이 대기한다. 과거 다른 지역의 광역 통합 논의가 번번이 좌초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합이 ‘균형발전’이 아닌 ‘중심 재편’으로 비쳐질 경우 지역 내부 갈등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그래서 김 총리의 발언 중 가장 주목할 대목은 “시민의 권한이 더 강해지고, 견제와 균형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나는 정치 개혁적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부분이다. 통합 논의가 행정 효율성이나 예산 규모의 확대에만 머문다면 주민 설득은 쉽지 않다. 주민투표, 공론화위원회, 권역별 자치권 보장 장치 등 구체적 제도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TK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다.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지방이 스스로 생존 방식을 재정의하는 시험대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또 하나의 거대 담론에 그칠 위험도 있다. 통합 이후 4년, 10년 뒤 청년이 돌아오고 기업이 투자하며 인구 감소세가 완화될 수 있는지, 그 실증적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못하면 통합은 구호로 끝난다. 정치권은 통합의 명분을 말하고, 정부는 구조 전환을 강조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부 설계도다. 권한은 어디로, 재정은 어떻게, 산업 전략은 무엇으로 재편할 것인가. 무엇보다 포항과 같은 산업도시가 통합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 축으로 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가. TK통합은 규모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정치여야 한다. 권한이 커질수록 책임도 무거워진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통합도 성공이라 부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통합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2-22

‘설국’ 울릉, 박제된 축제 대신 ‘멍석’ 깔아라

대한민국 최다설지(最多雪地), 눈이 오면 고립이 아닌 축복이 되어야 할 울릉도의 겨울이 올해도 아쉬운 성적표를 남겼다. 지난해부터 울릉군이 추진한 ‘2026 울릉 스노우 페스티벌’은 시작 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결국 예산과 기간이 대폭 축소된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이는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울릉군 행정의 고질적인 ‘불통’과 ‘관행’이 낳은 예고된 참사였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축제 때마다 반복되는 ‘사회단체 동원령’이다. 행정의 기획력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원봉사자와 관변단체의 머릿수 채우기다. 살을 에이는 추운 날씨에도 안내와 급식을 도맡는 이들의 헌신은 고귀하지만, 그 이면에는 행정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지역사회의 특수성이 깔려 있다. 자발성이 거세된 동원은 결국 축제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지역민의 피로감만 가중할 뿐이다. 잘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북도와 협력한 ‘겨울철 여객선 운임 지원’은 비수기 울릉 관광의 고질적인 문턱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운임 70% 지원으로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한 수치는 울릉도가 ‘겨울에도 가고 싶은 섬’이라는 잠재력이 충분함을 방증한다. 물론, 나리분지의 설경 투어나 울릉 고유의 음식을 활용한 프로그램 역시 울릉만의 색깔을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망감이 앞선다. 기대를 모았던 이번 축제는 행정의 ‘불통’에 발목을 잡혔다. 축제의 핵심 주체인 청년 소상공인들과의 협의 내용을 신임 부서장이 일방적으로 뒤집으며 갈등을 자초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서류와 행정 편의주의에 갇힌 결과, 축제는 동력을 잃었고 지역민의 냉소만 샀다. 이제는 ‘축제’라는 틀에 갇힌 울릉군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회성 행사나 보여주기식 포토존 설치만으로는 까다로운 요즘 여행객들을 잡을 수 없다. 관광객들은 화려한 개막식이나 행정 주도의 이벤트를 보러 울릉까지 오지 않는다. 울릉도의 겨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콘텐츠다. 굳이 무대를 세우고 가수를 부르지 않아도,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밭에서 캠핑을 즐기고 싶은 아웃도어족과 홀로 설국을 만끽하려는 알뜰 여행자들이 이미 울릉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행정이 주도하는 ‘관치(官治) 축제’가 아니라, 마음껏 눈 위를 뒹굴 수 있도록 안전을 확보해주고 편의를 제공하는 ‘멍석’이다. 자연 그대로의 눈밭을 캠핑지로 개방하거나, 눈길 트레킹 코스를 정비해 자율성을 보장하는 식의 ‘가장 울릉도다운’ 겨울나기가 정답이다. 행정은 주도권을 내려놓고 그저 판만 깔아주며, 실제 알맹이는 민간의 창의성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채워가도록 내버려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울릉공항 개항이 코앞이다. 100만 관광객 시대를 호언장담하기에 앞서, 울릉군은 이번 겨울 축제 파행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행정의 권위는 지시가 아니라 소통에서 나오고, 관광의 생명력은 인위적인 동원이 아닌 지역 본연의 매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년 겨울에는 ‘관광객을 동원하는 섬’이 아닌, ‘전 세계 아웃도어족이 스스로 찾아와 눈밭에 텐트를 치는 섬’ 울릉도를 기대해 본다. /황진영 기자 h0109518@kbmaeil.com

2026-02-21

복지의 이름으로 ‘상생’을 잊은 행정

“법을 지키며 세금을 내온 우리가 오히려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포항시 북구에서 만난 한 목욕업자의 한숨 섞인 토로다. 주민 복지라는 명분을 앞세운 지자체가 사설 업소의 반값도 안 되는 요금으로 ‘공공 목욕탕’ 공세를 펴면서 수십 년간 지역 상권을 지켜온 영세 상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현장에서 마주한 포항시의 행정은 ‘복지’라는 선한 의도와는 달리 민간의 삶을 위협하는 ‘포식 행정’의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청림문화복지회관 내 목욕 시설은 지자체 행정이 탁상행정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2년 준공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13년 동안 운영된 이 시설은 영업 신고조차 하지 않은 ‘무허가’ 상태였다. 인허가권을 쥔 시청이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시설의 법적 근거를 무시한 처사다. 그 결과 시민들은 정기 수질 검사나 위생 점검 같은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 밖에서 10년 넘게 공공 목욕탕을 이용해야 했다. 운영의 불투명성도 도를 넘었다. 모든 수입을 시 금고에 넣어 예산안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는 예산총계주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익금을 별도 통장에 두고 직접 꺼내 쓰는 ‘깜깜이 회계’가 이뤄졌고 카드 단말기조차 없이 현금만을 고집했다. 투명해야 할 공공 행정이 오히려 회계의 사각지대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모두에게 공정해야 할 ‘행정’이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자 민간 시설을 타당성 검토 없이 인수해 반토막 요금제로 운영하거나, 거대 복합센터를 지어 저가 물량 공세를 펴는 방식은 인근 민간 업소들을 폐업으로 내모는 ‘상권 살생부’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포퓰리즘’에 경도된 적극적 행정의 폐해라고 꼬집는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는 “민간이 이미 잘하고 있는 영역을 시가 직접 침해할 게 아니라 기존 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해 주민 할인을 유도하는 상생 모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진정한 복지는 민간이 닿지 않는 오지의 시민 등을 어루만지는 ‘소극적 접근’에서 시작해야 한다. 포항시가 이미 형성된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가격을 파괴하는 방식은 결국 민간 상권 붕괴와 시 재정 부담 가중이라는 악순환만 낳을 뿐이다. 주민 복지라는 명분이 모든 행정적 과오와 자영업자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법치를 외면하고 시장의 상생을 잊은 행정은 주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없다. 포항시는 이제라도 ‘복지’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고 민간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정교한 행정’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19

예천군민들이 군수 후보자들에게 보낸 설 민심

오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예천군수 출마를 앞둔 예비후보들이 앞다투어 왕성환 행보를 보였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행정 책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예천의 방향과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점에서 주민들도 이들을 예의주시하며 맞았고,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이번 군수선거에는 국민의힘 공천을 노리고 김학동 예천군수, 도기욱 경북도의원, 안병윤 전 부산 부시장이 일찌감치 공천 경쟁에 뛰어 들었고, 그 영향으로 선거 분위기와 열기가 예사롭지가 않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윤동춘 전 경북경찰청장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역정서 상 국민의힘 공천은 군수 보증 수표, 당선증이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주민들도 온통 누가 공천을 받을 것이가에만 관심이 쏠린다. 설 연휴 동안 김학동 군수는 “가장 잘하는 행정이 가장 잘하는 정치”라는 철학을 주창하며 주민들을 만났다. 3선 도전을 선언한 그는 현직 유지와 관련해선, 3~4월 당내 경선 일정이 확정될 때까지는 그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기욱 도의원도 “과정과 결과가 정의로운 예천군을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명절 내내 바삐 움직였다. 그는 ‘우문현답’ 북콘서트를 열어 지지자들과 교감한데 이어 군민들과는 ‘군수에 나오게 된 결심’등을 설명하며 지지폭을 넓혔다. 안병윤 전 부산 부시장은 ‘안병윤이 사랑하는 예천을 담다’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지지세를 결집했다. 안 전 부시장은 “공직 경험을 살려 내가 사랑하는 고향 예천의 가치를 담아내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한다”고 말하며 동분서주했다. 이들 3명이 이번에 설 명절을 전후해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전통시장과 마을회관, 각종 행사장을 누비며 지역민들과의 접점을 넓힌 것은 선거운동의 일환일터다. 하지만 군민들을 만나보면 이제는 단순히 이름을 알리고 명함을 주는 그런 선거운동으로서는 표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런 구닥다리 보다는 누가 진정성을 갖고 예천과 군민을 위해 일하려할 것인가 하는 비전과 철학을 원한다. 이런 경향은 분명 현재 저간에서 흐르고 있고 다가올 군수 선거의 핵심 화두와도 일맥상통한다. 지금 군민들은 바라는 것은 ‘책임과 진정의 리더십’이다. 책임은 단순히 직책을 맡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는 자세를 의미하고, 진정성은 형식적인 방문과 인사말이 아니라 주민과 제대로 된 공감을 바탕으로 군정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일 것이다. 예천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해 왔다. 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따뜻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오는 6월이면 예천은 또 새로운 수장을 뽑는다. 그 선거를 두고 이번 설 연휴 동안에 유독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민심도 4년 전보다는 한층 더 성숙해 있었다. 국힘 3명의 후보자들이 그 속을 어떻게 녹여낼지가 자못 궁금헤진 설 연휴였다. 민심 변화는 어쩌면 과거의 선거 방식과 단절됨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예천의 리더는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서야 하며 신뢰 속에 함께 군정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늘 그래왔듯 선거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후보자들도 보다 더 진화된 자세와 가치관, 공약으로 군민들 속을 파고 들어야 할 것이다. 군민들도 이제 내일의 예천은 오늘의 선택에서 시작됨을 잘 알고 있다. ‘책임’과 ‘진정’을 가슴에 품고 주민과 함께 걷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실천하며 지켜낼 수 있는 인물에게 지역의 미래는 맡겨질 것이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6-02-19

해오름대교, 포항의 ‘마스터피스’로

포항의 30년 숙원, 해오름대교가 마침내 돛을 올렸다. 북구 항구동과 남구 송도동을 잇는 물길 위로 차륜의 소음이 활기를 더한다. 교통 분산과 물류 효율이라는 기능적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이다. 그러나 영일만이라는 천혜의 도화지 위에 그려진 결과물을 보면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연 우리는 단순히 ‘빠른 길’을 원했던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길’을 갈망했던 것인가? 세계적인 해상교량들은 이미 ‘기능’의 옷을 벗고 ‘예술’의 몸을 입었다. 거대한 신의 손이 다리를 받치고 있는 형상의 베트남 다낭 ‘골든 브릿지’는 그 자체로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마력이 되었다. 영국 게이츠헤드의 ‘밀레니엄 브릿지’는 어떤가. 보행자를 위한 이 다리는 눈꺼풀을 깜빡이듯 다리 전체가 회전하는 장관을 연출하며 쇠락하던 공업 도시를 예술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에게 다리는 목적지로 향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지였다. 해오름대교가 들어선 입지는 영일대와 송도라는 포항의 심장을 잇는 노른자위다. 도심과 바다가 맞닿은 이 희귀한 풍경을 더 장엄하고 예술적인 조형미로 녹여냈더라면 하는 미련이 앞선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붉은색 외관 하나로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듯, 해오름대교 역시 포항의 철강 정신과 동해의 역동성을 담은 독보적인 디자인 철학이 투영되었어야 했다. 이미 놓인 다리를 탓하기에는 이르다. 이제부터라도 ‘기능’ 위에 포항만의 ‘감성’을 덧칠했으면 한다. 교량 상부에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야간 경관 조명을 상설화하거나, 다리 위에서 영일만을 조망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의 스카이워크를 보강하는 등 ‘관광 상품화’를 위한 2차 공정이 절실하다. 해오름대교 개통 후 시민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의견도 폭발적이다. 구조적 문제는 이미 공사가 다 된 마당에 논할 필요가 없지만 교량 방호벽을 두고선 근시안적 공법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최근 개통한 영덕~포항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방호벽 높이가 낮아 동해 바다가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그 덕에 이 고속도로는 한번쯤 달려보고 싶은 길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해오름대교 방호벽은 차량보다도 높아 영일만바다와 내항 조망을 가로막아 버린 느낌이 든다. 교량 방호벽 양측에 설치한 철망도 눈에 거슬리게 해 놓았고, 방호벽도 마감이 안 돼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다리는 도시의 얼굴이다. 해오름대교가 단순한 출퇴근길의 연장이 아니라, 세계인이 찾아와 셔터를 누르고 경탄하는 포항의 ‘마스터피스’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길은 연결하는 것이지만 예술은 머물게 한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2-05

[기자수첩] 학산천의 전철 밟을까 우려되는 양학천 생태복원

학산천 생태하천복원사업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대로 ‘자연형 하천 복원’이라는 거창한 구호와 달리 그 실효성이 의문투성이로 남았다. 콘크리트를 걷어냈다며 홍보했지만 시민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다시 다른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공 시설물로 채워졌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과연 무엇이 복원이고 무엇이 자연인지 되묻게 되는 대목이다. 상류 오폐수 문제도 없고 수질 부담 요인이 크지 않은 하천임에도 생태성과 홍수 대응이라는 본질적 목적보다 ‘모양새’에 치우친 설계가 우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기대한 ‘자연스러운 하천’이 아니라 ‘조경설계가 덧입혀진 전시 공간’에 가까운 인상이 강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산천은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 자연 유량이 부족해 수 킬로미터 떨어진 형산강 인근에서 물을 끌어와 인공적으로 흐르게 하고 있다. 이른바 ‘유지수 공급’ 시스템이다. 자연하천 복원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외부에서 물을 공급해야 유지되는 인공 수로가 된 셈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전기와 펌프가 멈추면 하천도 멈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학산천 하류는 바다와 맞닿아 있어 조수간만의 차가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만조 시기에는 하천 산책로가 물에 잠기면서 보행이 어려워지고 일부 구간은 통행이 사실상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시민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설계였는지 궁금해진다. 더 큰 위험 요소는 홍수 리스크다. 과거 상류 아치골에서 흘러내리던 계곡수는 논과 밭을 거치며 일시적으로 머무른 뒤 하천으로 유입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대규모 포장 면적이 확대되면서 빗물이 일정 시간 머무르지 않고 순식간에 하천으로 몰려들 것이 뻔하다. 이는 단순히 강수량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달시간이 급격히 짧아졌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이런 우려가 상존함에도 통수단면 확대와 강제배수 시설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낙관이 유지되고 있다. 하천변 인공 산책 구조물과 조경석 설치 역시 급류나 월류 상황에서 과연 지탱될 수 있을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등의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생태복원을 표방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사람과 시설물 중심의 공간으로 변질된 학산천 사업의 문제점이 충분히 마련되기도 전에 포항시는 다시 양학천 생태하천복원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복원’이라면 이는 자연의 회복이 아니라 행정의 자기만족에 가까운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임에도 실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 ‘사업 추진’ 자체가 목표가 된 듯 해보여 좀더 냉정해졌으면 한다. 특히 이 사업이 선출직 정치인들의 치적으로 포장돼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행정에 정치가 깊숙이 개입하면 어느 새 선심성 사업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세금 낭비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생태복원은 보여주기 식 시설로 채울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안전, 자연의 회복, 시민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다. 이제는 전시행정의 유혹을 넘어 냉정한 설계와 검증, 그리고 책임 행정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학천 역시 학산천의 전철을 밟을 뿐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lch8601@kbmaeil.com

2026-01-08

[기자수첩] 상아탑의 성벽을 허물고 ‘공동체의 광장’으로

대학은 더 이상 고립된 상아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의 수단을 넘어 지역민의 삶이 교차하고 에너지가 모이는 ‘광장’이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긴밀히 호흡하며 교육적 가치를 실현할 때 비로소 그 존재 이유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경북전문대학교의 민간 보조금을 둘러싸고 지역 여론이 술렁이는 모습은 우리에게 뼈아픈 시사점을 던진다. 논란의 핵심은 대학이 지역사회 속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소외감과 불신에 있다. 대학이 지역과 유리된 채 그들만의 섬으로 존재할 때 시민의 신뢰는 무너지고 대학 본연의 이념 실현은 요원해진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오롯이 대학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예산을 집행하고 감시해야 할 행정과 의회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영주시 행정은 사업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정밀함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예산 집행은 단순히 서류상 요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기계적 절차가 되서는 안 된다. 시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그 사업이 지역사회에 어떤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치밀하게 따졌어야 했다.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 역시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요청이 있으니 승인한다’는 식의 수동적 태도는 안된다. 의회는 사업의 적정성과 예산 분배의 균형성, 무엇보다 지역 공동체와의 결속력을 최우선 잣대로 삼아 견제와 감시의 칼날을 세웠어야 했다. 결국 이번 사안은 대학과 시, 의회가 영주라는 공간에서 각기 다른 꿈을 꾼 결과물이다. 대학은 대학의 논리로, 시청은 행정의 편의로, 의회는 정치적 셈법으로만 사안을 바라본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10만 시민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영주라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에 살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만의 잣대를 고집하기보다 시민의 행복과 지역의 미래라는 단 하나의 표준을 세워야 한다. 이번 사안의 중심에 선 대학은 시민사회와 함께 할 대안을 세워 성벽을 허물고 광장으로 나올 때, 그리고 행정과 의회가 그 광장을 지키는 엄격한 파수꾼이 될 때 비로소 대학과 지역의 진정한 상생이 시작될 수 있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5-12-28

‘투기의 도구가 된 도시관리계획’···포항시는 행정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도시관리계획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공의 약속이다. 토지이용의 질서를 세우고 기반시설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행정 장치다. 그러나 최근 포항시의 도시관리계획을 둘러싼 흐름을 보면 이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특정 이해집단의 요구가 계획 변경의 출발점이 되고, 그 결과가 투기 수단으로 작동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계획의 ‘공공성’ 보다 ‘속도’와 ‘편의’가 앞서고 있는 점이다. 충분한 수요 검증과 장기적 도시 구조에 대한 검토 없이 용도지역 변경이나 개발 가능성만 부각되면 정보에 먼저 접근한 소수에게 막대한 이익이 주어진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교통 혼잡, 교육·환경 인프라 부족, 주거 불균형이라는 형태로 시민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 도시관리계획이 부동산·건설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커녕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신호로 작동하는 순간 행정은 신뢰를 잃는다. 물론 포항시는 항변한다. 이번 ‘2030 포항시 도시관리계획 재정비(안)’이 투기나 개별 개발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 변화하는 도시환경과 인구 구조에 대응하고 장기적인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종합적 공간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용도지역·지구의 지정 및 변경, 기반시설 설치와 정비, 지구단위계획 수립 등 도시 공간 전반에 대해 종합 검토한 법정계획이었고, 상위계획에서 제시된 도시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재정비는 과거 외연 확장 중심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인구 감소와 재정 여건을 고려한 내실 있는 도시공간 관리, 이른바 ‘압축도시(Compact City)’ 구현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힌다. 그동안 다소 미진한 것으로 판단된 도심 교통 순환축 구축과 교통망 체계 개선 등을 통해 침체된 도심 기능을 회복하고, 지역 간 연계를 강화하는 균형 발전의 기반도 담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래 신성장 산업 중심의 도시 구조 전환과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 확보를 이번 계획에 포함했으며 오랜 기간 유지돼 온 각종 용도규제와 개발 제한도 합리적으로 정비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토지 이용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실효성 있는 공간 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설계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계획의 취지와는 별개로 도시관리계획은 ‘요청을 처리하는 창구’가 아니라 ‘원칙을 집행하는 기준’이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개별 사업의 타당성은 전체 도시 전략 속에서 검증돼야 하며, 도시관리계획 변경의 필요성은 수치와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 인구 구조, 산업 변화, 교통 수요, 환경 수용력 등 기본 지표가 흔들리는데도 계획이 바뀐다면 이는 행정의 오류다. 더구나 반복되는 변경은 계획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려 정상적인 투자와 시민의 생활 계획마저 어렵게 만들어 버림을 알아야 한다. 도시관리계획 재정비안 공람 공고 후 논란이 일자 이강덕 포항시장은 “열람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향후 도시의 균형 발전과 경쟁력 강화, 시민 삶의 질 향상을 함께 키우는 공간계획을 목표로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제출된 의견들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향후 관련 기관 협의와 시의회 의견 청취,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법정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며 시민들의 여론을 듣고 또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시장이 전문분야까지를 다 숙지하고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최종 결재권자다. 시민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겠다는 발언은 그나마 크게 진전된 변화다. 포항시는 이번 재정비안과 관련해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특정 이해집단의 민원을 ‘신속 처리’로 포장할 것인지, 아니면 도시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집행’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시간이 부족해 신속 처리로 가더라도 행정의 집중도를 높여 사전 검토를 강화하고, 변경 기준과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도시계획위원회 역시 견제와 균형의 본령으로 돌아가 전문성과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며, 이후 제대로 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도시는 한 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렵다. 오늘의 편의가 내일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포항시 도시관리계획은 투기의 통로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키는 방파제가 돼야 한다. 도시관리계획의 주인은 소수가 아니라 시민 전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변경이 아니라 더 단단한 원칙이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2-18

포항 도심 가로수 관리 이대로 좋은가?

포항 시가지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육거리에서 오거리 방면의 가로수는 수십 년째 플라타너스(Platanus)가 주류를 이룬다. 거대한 수폭을 자랑하는 이 수종은 짙은 녹음으로 여름 한철은 시원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떨어지는 넓은 낙엽은 도심의 골칫거리가 됐다. 건물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수관도 도시 미관을 해치지만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시가지 차도와 인도를 뒤덮으며 흉물스러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잎이 넓고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낙엽이 지는 특성 상 가로환경미화원들의 감당할 수 없는 업무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매일 24시간 시시각각 떨어지는 낙엽을 청소 인력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더욱 문제는 거리에 마구 나뒹구는 낙엽이 단순한 도시미관 문제를 넘어 시민들의 일상적인 불편과 인근 상인들의 생업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상인들은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게 안으로 낙엽이 밀려 들어와 문을 열 수 조차 없다고 하소연 한다. 수십 년간 겪어온 고통이다. 시청과 구청에 아무리 불편민원을 넣어도 답이 없자 어느때부턴가 아예 체념하고 ‘그러려니’ 하고 있다. 이를 더 방치하는 건 행정의 무관심과 무책임이며 오만과 방종이다. 근본적으로는 수종 갱신이라는 전면적인 재식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지혜로운 개선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바로 가을철 낙엽이 지기 전 선제적인 가지치기를 시행하는 것이다. 낙엽이 지기 전에 적절한 가지치기를 통해 낙엽의 양을 줄이고, 도심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한 수관 관리를 한다면 시가지 가로 환경을 훨씬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다. 포항시가 수십 년 동안 반복된 관성적 가로 정비 방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해답은 현장에 있다. 잠깐만 시간을 내어 시가지를 걸어보면 알 일이다. 언제까지 과거 낙엽처리 방식을 답습만 할 것인가. 개선 1안·2안을 찾아 시민들의 울분에 답할 때도 됐다. 글·사진/임창희 선임기자

2025-12-07

소나무 숲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포항시가 소나무재선충병의 급속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전방위 방제 방식을 벗어나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전환했다. 지난 10월 29일부터 ‘2025년 하반기 위험목 제거사업’에 착수한 포항시는 도로변과 생활권 인근의 위험목을 우선 제거하며 시민 안전과 직결된 구역을 중심으로 방제에 나섰다. 호미곶면·장기면·구룡포읍 일대가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이때문이다. 하지만 포항 뿐 아니라 영남권의 소나무 숲은 이미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포항·경주·밀양을 비롯해 대구·안동·성주 등 11개 시군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세는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르렀다. 방제라는 개념이 무력화된 현장은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도변 산림은 마치 단풍이 든 듯 붉게 변색된 소나무로 가득하고, 능선과 마을 인근에는 고사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소나무재선충병은 2000년대 두 차례의 확산기를 거치며 전국으로 퍼졌다. 초기에는 정부와 지자체, 전문가, 지역사회가 협력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영남권 상황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포항과 경주 등 동해안벨트만 해도 2만5000ha에 달하는 거대한 감염지대가 형성돼 있다. 포항 호미곶에서 장기면, 경주 감포읍까지 이어지는 방제선도 무너졌다. 일본은 재선충병과 100년을 싸웠지만 결국 실패했다. 국내 방제정책은 여전히 일본의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감염목 벌채와 수간주사, 약제 살포 같은 물리·화학적 방제는 넓게 퍼진 감염지대에는 역부족이다. 국립수목원이 하늘소의 천적을 이용한 생물학적 방제를 개발 중이지만 현장 적용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후변화는 매개충의 생존 범위를 넓히며 확산 속도를 더 높이고 있다. 문제는 이 심각한 상황을 지방정부와 정치권이 오랫동안 외면해왔다는 점이다. 2022년 경북동해안의 심각한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이 보고됐지만, 지자체는 예찰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예산과 인력 부족 탓으로 돌리며 관성적 방제만 반복한 결과 지금은 ‘방제 포기’가 거의 유일한 선택지로 회자될 정도다. 올해 포항시는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무려 323억 원이라는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자조섞인 말이 더 크게 들린다. 감염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고사목 제거에만 급급한 구조 속에서 방제 예산의 효율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예산 투입이 늘어날수록 현장은 더 황폐해지고, 붉게 변한 산림은 예산 집행의 근거로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된 면적보다 실제 감염지대는 두 배 이상 넓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제 논의는 ‘소나무 숲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소나무가 사라진 뒤의 산림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무분별한 벌목은 제2, 제3의 산림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연의 복원력을 토대로 토종수종으로의 전환, 지속가능한 산림관리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재선충병은 단순한 병해충이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의 산림 생태계 전환을 예고하는 경고음이다. 포항의 붉은 소나무 숲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행정과 의회, 정치와 지역사회가 하나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 산하의 소나무 숲은 역사 속 풍경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산림청과 정부, 국회가 나서 범정부적 재난 대응 체계로 전환하지 않는 한 소나무 숲의 종말은 불보듯 뻔하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1-26

너무 많은 2등급, 농민들 한숨도 깊어진다

‘추곡수매’라 불리던 벼 수매 명칭은 비록 ‘공공비축미 매입’으로 바뀌었지만, 농민들의 한 해 결실을 확인하는 현장의 의미는 여전하다. 예천군은 올해 2025년산 공공비축미 건조벼 매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군은 이달 14일부터 12월5일까지 용궁면과 개포면을 시작으로 12개 읍면에서 공공비축미 건조벼를 순차적으로 매입한다. 매입은 관내 30개 수매장에서 진행되며 건조벼 5065t, 가루쌀 241t, 산물벼 1021t 등 총 6327t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는 전년 대비 약 90% 수준(공공비축미곡 기준)이다. 매입 품종은 미소진품과 영호진미 두 가지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밝지 않다. 올 한 해 예천지역은 폭염·집중호우·깨씨무늬병 확산 등으로 영농 환경이 악화됐고, 수확기 잦은 비까지 겹쳐 농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벼 등급 판정까지 엄격해져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예년이라면 거의 없던 2등급 판정이 올해는 전체의 3분의1 수준까지 늘었다. 공무원들에 따르면 1등급과 2등급 간 가격 차이는 톤백(800kg) 기준 5만 원 이상으로, 농가 부담이 적지 않다. 예천읍 왕신리에 사는 농민 A씨(70)는 “힘들게 농사지었는 데 2등급 판정을 받으니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을 자신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매 현장에는 안도와 실망,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1등급 판정을 받은 농가들은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을 드러냈지만, 2등급 판정을 받은 농민들의 표정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추곡수매 현장은 단순한 곡물 거래의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우리 농업의 현실을 보여주고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상징적인 자리다. 농부들의 정직한 땀과 노력이 우리의 식탁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농업은 생명의 근본이자 국가의 기반이다. 묵묵히 땅을 지키며 귀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며, 이들의 열정이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ajjung@kbmaeil.com

2025-11-23

울릉도 겨울철 고립 반복, 손 놓은 해수청

울릉도 뱃길에 소형 대체여객선이 투입되자 언론은 항로 단절 우려가 해소됐다며 반기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포항~울릉도를 오가는 울릉크루즈 뉴씨다오펄호의 동절기 정기검사 기간(12월 9~22일) 동안 388t급 소형여객선 썬라이즈호를 투입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해소’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주민들의 반응이다. 강원도 항로는 겨울철 중단돼도 생활에 큰 영향이 없지만, 포항~울릉도 항로는 울릉 주민의 생명선이다. 하루라도 끊기면 울릉도는 즉시 고립된다. 지금까지 대형여객선 울릉크루즈가 꾸준히 운항해 왔으나 1년에 한 번 정기검사는 필수다. 문제는 이 기간 울릉도와 육지가 완전히 단절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울릉군과 주민들이 대체선 투입을 요청했고, 결국 썬라이즈호가 배정됐다. 하지만 이 선박은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 운항할 수 없다. 12월 울릉도 풍랑주의보 발효일수는 평균 15일이 넘는데, 이런 조건에서 14일간의 대체선박으로 소형여객선을 선정한 것은 사실상 수송과정의 위험과 운항가능 여부를 운(運)에 맡기는 조치나 다름없다. 주민들은 겨울이면 다시 ‘발 묶이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 할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침묵하고 있다. 반면 울릉군수는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여객선 운항허가와 안전관리, 시간 조정 권한을 모두 가진 것은 해수청이며 울릉군은 여객선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행정 공백의 부담은 고스란히 울릉군과 주민에게 넘겨진 셈이다. 정작 해수청은 겨울철 동해 기상을 고려해 정기검사 시기를 조정하거나, 대체선을 사전에 확보했어야 했지만 ‘탁상 행정’으로 일관했다. 현지 주민 불편이 발생했음에도 아무 공식 입장 조차 내지 않고 있다. 공직자 책임이 무엇인지 묻게 되는 대목이다. 운항사인 울릉크루즈·울릉페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기항로는 손님 유무에 따라 선택적으로 운항하는 노선이 아니라 국가가 허가한 공공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해수청은 허가 과정에서 정기검사 발생할 수 있는 손실 보전 등 구조적 대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주민들은 소형선 대체 투입을 반기지 않는다. 풍랑주의보시 운항 불가, 파고 3m 이상 통제 등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실제 출항 가능일이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로 단절 우려는 주민들에게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았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여객선 허가·검사·대체선 운영 과정에서 반복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울릉도가 겨울이면 고립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kimdh@kbmaeil.com

2025-11-20

주민도 안다, 10억 ‘웰니스’는 실패였다!

“웰니스”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는, 남은 것은 예산 낭비 지적과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 판단뿐이었다. 경상북도와 영덕군이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벌인 ‘국제 웰니스 페스타’는 보건소 신고조차 하지 않은 외국 의료진의 시술, 강풍 속 강행된 행사, 부상자 발생 후 책임 공방으로 얼룩졌다. 수년째 반복된 불법 의료행위와 재단 본부장 횡령 기소에도, 군은 이제야 원점 재검토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이미 늦은, 뒷북 행정이다. 영덕군 재정 상황은 심각하다. 인구 3만 3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고, 재정자립도는 7.72%에 불과하다. 통합재정수지는 수백억 원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억 원이 넘는 혈세를 국제 행사에 쏟는 것은 주민과 지역 경제를 외면한 무책임한 도박이다. 특히 외국 의료진과 산업전 관계자 초청 비용에만 1억 7천여만 원이 집행됐다. 주민 참여는 배제된 채,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지출이었다. 견제 없는 권한과 감시 없는 행정이 낳은 구조적 실패. 지난해 웰니스 사업을 전담해온 영덕문화관광재단 본부장이 횡령으로 기소된 전례에도 군은 교훈을 얻지 못했고, 주민 안전과 혈세는 또다시 위험에 노출됐다. 같은 경북 지역의 성공 사례는 영덕 행정의 무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미라면 축제는 예산 3억 9,500만 원으로 35만 명을 모으며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김천 김밥축제도 소규모 예산에서 출발했지만, 주민 참여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정체성을 살렸다. 영덕군은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기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감시의 자리를 비워둔 책임은 군의회에도 크다. 군민이 맡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의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지금 영덕군의회가 받아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4년 차를 맞은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었고, 주민은 철저히 배제됐다. 행정은 책임을 회피했고, 군의회는 침묵했다. 군민은 이미 혈세가 잘못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이다. 행정과 군의회 모두 반복된 무책임 속에서 손을 놓았다. 주민 삶 위에 내려앉은 책임의 무게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 10억 원이 개인 돈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경상북도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상급 행정기관으로서 예산 지원과 행사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적 실패를 방치했다. 영덕군이 지금 당장 필요한 진정한 치유는, 무너진 행정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 어떤 선언보다, 바로, 이 행동이 치유의 시작이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11-16

강릉~울릉도 항로 중단 이유, 강릉시-국민 이해 하도록 해야

지난 2011년 3월 첫 운항을 시작한 울릉도~강릉항 간 여객선 노선이 10월 말 15년 만에 행정조치로 강제 중단 사태를 맞았다. 이 노선은 강원·충청은 물론 서울 등 경인지역에서 울릉도를 찾는 가장 가까운 필수 노선이다. 하지만 15년간 큰 문제 없이 운영되던 강릉항 여객선 접안시설이 ‘사용 불허’ 처분을 받았다. 행정조치 그 자체만 보면 절차상 문제는 없다지만, 공교롭게 겹친 시기적 정황이 지역사회에 불필요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서로 무관한 사건이 맞물려 억측을 낳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부 지자체는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수년째 경쟁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강릉시는 이미 보유한 노선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혹을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릉~울릉 항로는 15년 동안 수도권·강원·충청 이용객의 울릉도 접근성을 책임져 온 노선이다. 연간 10만 명 이상이 이용했고, 강릉항 인근 상권·숙박·운수업계까지 직간접적 혜택을 누렸다. 안전 문제를 사유로 들었다면, 동절기 휴항 기간을 활용한 보수·보강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는 ‘사용 연장 불허’라는 가장 강한 조치를 선택했다. 묻고 싶은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이어야 했는가” 물론 해당 선사가 터미널 이전·신축 조건을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은 크다. 그러나 행정은 공공성 위에 서 있다. 단일 기업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지역 접근권을 사실상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대안 제시 없이 ‘불허’만 남긴 행정은 결국 주민 이동권·관광 산업·지역경제라는 훨씬 큰 피해로 돌아온다. 더구나 올해 개서한 강릉해양경찰서가 해당 부지를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됐다. 해양경찰은 해상교통과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신뢰는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여객선 운항과 해경 시설 활용 가능성이 겹쳐 버리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의혹까지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 양양군은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매년 100억 원 투자를 공언하고 울릉군과 MOU까지 체결했다. 반면 강릉시는 이미 존재하는 항로를 강제적으로 끊어내며 지역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밀어냈다. 이것이 과연 지역 전략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강릉시와 해양경찰은 이 조치가 어떠한 공익적 판단 위에서 내려졌는지,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의혹은 설명 부재에서 싹튼다. 울릉도는 국민의 휴식, 관광, 삶의 균형을 책임지는 중요한 공간이다. 강릉~울릉 항로는 단순한 뱃길이 아니라 동해권 관광·경제의 동맥과도 같다. 지역은 상생의 기회를 필요로 한다. 행정 결정은 그 기회를 절단하는 칼이 아니라,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강릉시의 보다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kimdh@kbmaeil.com

2025-11-16

울릉도 저동항, 스파보다 중요한 건 ‘어민의 땀’

“오징어배 불빛이 다시 저동항 바다를 비추려면, ‘스파보다 중요한 건 어민의 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울릉도 저동항이 해양수산부가 주관한 ‘2026년도 어촌신활력증진사업’ 공모에서 최종 선정됐다. 전국 4개소만 뽑힌 어촌경제도약형 사업으로, 낙후된 어촌의 생활·경제·관광 기반을 동시에 강화하는 핵심 어촌 재생 프로젝트다. 특히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는 ‘해양심층수 스파·찜질복합센터’는 사계절 운영 가능한 체류형 해양 힐링 시설로 주목받고 있다. 울릉군수협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으며, 향후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 하지만 화려한 개발 계획 뒤에 놓인 현실은 냉혹하다. 밤마다 오징어 불빛이 가득하던 저동항은 이제 고요하다. 급격한 어획량 감소와 유가 상승, 인건비 부담으로 어민들의 생계는 벼랑 끝이다. 한때 활기로 넘쳤던 항구 상권은 텅 비었고, 어판장은 썰렁하다. 이런 현실에서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선정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낙후된 어항 정비를 넘어 체류형 관광으로 울릉 경제의 새 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광객이 늘어나면 어민도 함께 웃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불투명하다. 스파와 산책로, 바다마당 같은 시설은 분명 지역 이미지를 바꾸겠지만 ‘시설 중심 개발’이 어민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활력은 또다시 외부에 머무를 뿐이다. 과거 정부사업 중 상당수가 ‘관광 인프라’만 남기고 지역 일자리나 소득 창출과는 괴리된 채 끝난 전례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울릉도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관광지 조성이 아니라 어업과 관광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순환경제 모델이다. 예컨대 해양심층수 스파가 지역 어획물 판매나 식음업,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된다면 관광객의 소비가 어민의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신활력’이다. 또하나의 과제는 청년 어업인 육성과 귀어 정착 지원이다. 고령화로 어업 인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어촌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단기 시설사업이 아닌 장기적인 인력 양성과 정착 정책이 병행돼야 진정한 지역 도약이 가능하다. 울릉도 저동항의 재도약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행정의 구상과 민간의 투자가 지역민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kimdh@kbmaeil.com

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