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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화 탈출속도

세계적인 발명가이자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1948~)이 2032년부터 노화 속도보다 노화의 치료와 복구 기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 주장하여 화제(話題)다. 이것은 노화로 인한 손상의 누적보다 노화를 치료하는 기술 발전이 빨라짐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기대 건강수명이 계속 연장되는 상태를 뜻한다. 이것을 간단히 표현한 것이 ‘노화 탈출속도(LEV)’다. 커즈와일은 지금부터 3년 후인 2029년 ‘범용 인공지능(AGI)’이 일반화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범용 인공지능은 ‘컴퓨터로 사람과 같거나 그 이상의 지능을 구현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 80억 명의 지능을 능가하는 ‘초지능(ASI)’이 2040년 초에 등장하리라는 사실도 지적한 바 있다. 경이롭고도 전율할 만한 사건이 발생할 날이 가까운 것이다. ‘노화 탈출속도’가 구체적으로 실행되면, 인간은 지금처럼 1년을 살면, 수명이 1년 줄어드는 게 아니라, 1년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죽음이 필연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지가 된다는 얘기다. ‘노화 탈출속도’의 최초 수혜자는 부자들이 되겠지만, 신약(新藥)의 특성상 몇 년 지나지 않으면, 약값이 대폭 저렴해질 것이기에, 보편적인 수혜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커즈와일의 미래 예측을 대중 강연에서 꺼내곤 하는데,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노화의 종말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생로병사가 생명체에 고유한 운명일진대, 그걸 피해갈 수 있겠는가, 또한 젊어진다는 게 긍정적인 결과인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다. 반면에 회춘(回春)과 무병장수를 쌍수 들어 환영하는 사람도 적잖다. 언젠가 디지스트(DGIST)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다가 만난 학생 하나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뇌과학을 공부한다는 20대 초반의 그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500년은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내가 그에게 던진 말은 이것이다. “500년 인생 행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봤니?” 일론 머스크도 최소 120년에서 150년은 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그것이 근미래 호모사피엔스의 평균 수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라는 현대에 적지 않은 고령자들이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면서 늘그막에 육신과 정신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닌 시대가 21세기의 본질이다. 낙상, 치매, 뇌졸중으로 요양원 침상에서 신음하는 고령 환자들을 생각해보면, 지금과 여기에서 우리가 준비할 사안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어떤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충분한 수면,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 술과 담배 절연, 하루 2시간 운동의 생활화 같은 철칙으로 요약한다. 그는 이렇게 단언한다. ‘오래 버티는 자가 미래 기술의 혜택을 입는다.’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말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한다면, 실천할 수 있는 항목을 골라 즉시 실행에 옮기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오래 버티는 근본적인 힘이 될 것이므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5-17

노동절 부활에 즈음하여

2026년 5월 1일 대한민국에서도 마침내 ‘노동절’이 부활했다. 세계 모든 나라 노동자들이 축제를 벌이며 쉬는 노동절에도 한국 노동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행정당국은 노동자들의 호칭마저 왜곡하여 ‘근로자’라 불렀다. 노동을 노동이라 하지 못하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에 ‘노동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희극적인 상황을 초월한 아이러니 자체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에서 8만이 넘는 노동자가 거리 시위를 벌인다. 그들은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투쟁한다. 시카고 외에도 미국 전역에서 30만에서 50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인다.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적 기념일로 결정했고, 이것이 현재의 노동절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 조선 노동자 2천여 명이 모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등을 주장하는 강연회가 한국의 노동절 행사 효시다. 이승만은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지정하여 1959년부터 기념행사에 들어간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3년에 노동절을 대신하는 ‘근로자의 날’을 선포하여 이듬해부터 실행한다. 사전적 의미를 살피면, 노동은 ‘육체와 정신을 써서 일하는 것’이며, 근로는 ‘힘들여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다. 근로는 노동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용주의 바람과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1980년대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노동계의 ‘5월 1일 노동절’ 개정 요구가 거세진다. 그 결과 김영삼이 날짜만 바꿔서 1994년부터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선포한다. 작년 11월 11일 국회를 통과한 ‘법률 제21134호’가 공포됨으로써 2026년 노동절은 136주년 세계노동절이자 동시에 한국의 법정 기념일로는 ‘제1회 노동절’이 된 것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맞는 노동절의 감회가 나로서는 다소 남다르다. ‘호부호형(呼父呼兄)’ 하지 못해 집을 나가야 했던 홍길동 생각이 느닷없이 떠오르는 심사는 또 뭐냔 말이다. ‘근로’라는 말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어휘는 ‘근로 정신대(勤勞 挺身隊)’다.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군수공장과 방직공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던 한국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근로 정신대다. ‘노동’이라는 좋은 어휘를 놔두고 굳이 제국주의 일본이 애호하던 ‘근로’라는 표현을 관철한 박정희 일당의 흉중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지금도 자못 궁금하다. 위나라 왕에게 등용되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느냐는 자로(子路)의 물음에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겠다(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고 일갈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육단(六段) 논법이 등장한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며,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면, 백성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논어, ‘자로편’ 참조) 103년 만에 비로소 제 이름을 얻은 ‘노동절’이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기념일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성숙한 대한민국을 기원한다.

2026-05-03

충무공을 생각하며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誕辰日)이다. 충무공은 음력 1545년 3월 8일 태어났는데, 그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해마다 4월 28일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음력 생일을 기준으로 행사를 진행하면 해마다 날짜가 바뀌기에 상당한 난관이 기다리는 까닭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 28일은 다가왔고, 충무공의 사후(死後) 기록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음력 1592년 4월 13일 시작된 임진왜란은 충무공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펼쳐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음력 1598년 11월 19일 종결된다. 15만이 넘는 왜군이 시작한 전란(戰亂)이 충무공의 죽음으로 끝났다는 사실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오늘도 우리를 선연하게 일깨우는 우레 비처럼 다가온다. 이충무공의 죽음과 관련해서 아직도 몇 가지 설이 떠돌고 있다. 자살설과 암살설, 은둔설 그리고 전사설이 그것이다. 숙종 시절 선비 서하(西河) 이민서(1632-1688)는 ‘김덕령 전기’를 남긴 바 있다. 거기서 이민서는 충무공이 갑옷과 투구도 없이 노량해전에 임했다고 쓴다. 죽기 살기로 도주하는 왜군을 평상복 차림으로 막아선 충무공의 흉중이 자못 궁금하다. 암군(暗君) 선조는 울부짖는 백성을 버리고 도주에 도주를 거듭하면서도 민심의 향방에 예민한 촉수를 가진 자였다. 저 하나 살자고 명나라 신종(神宗)에 요동 성주 자리를 구걸했던 비루한 군주 선조. 그자는 의병장 김덕령을 반역죄로 몰아 친히 국문하고, 장(杖) 130대로 구국의 선봉장을 때려죽인다. 그 뒤에 그자의 의심을 받은 충무공은 온갖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런 까닭에 충무공은 최후의 결전에서 차라리 왜적의 손에 죽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암군의 질시(嫉視)에 가문 전체가 당할 화근을 미연(未然)에 방지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는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장편소설이다. 암살설과 은둔설은 설득력이 미약하기에 이 글에서는 제외한다. 정조는 실학자 유득공을 집필 책임자로 삼아 ‘이충무공전서’ 8권을 1795년 출간한다.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기록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따르면, 충무공은 명나라 진린 제독의 거듭된 만류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노량해전에 임했다고 한다. 최후의 해전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하겠다는 일념으로 위험천만한 선봉을 자임했다는 것이다. 지극한 혼전(混戰) 중에 적선에서 날아온 유탄(流彈)에 충무공은 겨드랑이를 맞았다고 한다. 부하 장수 송희립이 총상을 입자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 이동하던 차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고 전한다. 다시는 이 나라에 왜놈들의 사악한 발길이 닿지 못하도록 그들을 절멸하려 했던 충무공의 우국충정이 끝내 그를 사지(死地)로 내몬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불과 53년 남짓한 세월을 살면서 이토록 길고도 깊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조선왕조 518년을 생각하면, 세종 임금 이도(李裪)와 충무공 이순신만이 떠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따사로운 봄날 아침 잠시나마 충무공의 탄생과 최후를 생각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27

잔디를 깎으며

봄비가 자주 그리고 제법 많이 오는 봄날이 깊어간다. 이렇게 흐뭇하게 비가 내리면, 우리를 깊은 공포로 몰고 간 지독한 산불과 거리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적절한 수준의 강우량은 대지에 기반을 둔 초목의 활성도를 대거 끌어올린다. 마당에 나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우쑥 솟아오르는 온갖 풀들의 향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100여 평 남짓한 마당을 덮는 풀은 매해 양상을 달리한다. 우점종(優占種)이 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꽃다지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는 벼룩이자리가 만만찮은 기세로 세력을 넓힌다. 예전에 없던 가시상추가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산괴불주머니도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마당 곳곳에서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풀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씩 달라진다. 농가주택으로 이사한 다음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호미와 낫으로 무장하고 풀과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근절(根絶)하지 않으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필승의 각오로 날마다 전의(戰意)를 불태우곤 했다. 그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나의 열의와 직접행동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기로 나는 풀과 일정 기간 휴전해야 했다. 그런 배경에는 ‘야생초 편지’(2002)나 ‘풀들의 전략’(2006) 같은 서책의 도움이 자리했다. 어느 일방의 절멸(絶滅)이 아니라, 상호 공존의 자세가 절실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던 터다. 그리하여 나는 풀의 여러 가지 자태와 생태에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온갖 풀꽃이 어디선가 날아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수세미가 대문 옆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일도 있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지금도 붓꽃과 원추리, 자주달개비와 분홍달맞이꽃, 참나리와 부추, 개족두리풀과 돌나물, 달래와 냉이가 여기저기서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일까! 며칠 전 넉넉하게 내린 비로 제법 자란 풀과 잔디를 깎으면서 자연의 놀라운 속성을 새삼 떠올린다. 대지는 언제 저토록 많은 생명체를 보듬고 있었단 말인가! 경이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메꽃을 뿌리째 뽑다가 슬며시 돌아보면 두더지가 곳곳에 구멍을 뚫고, 광대나물과 민들레, 봄까치풀과 애기똥풀, 괭이밥 같은 풀이 소리도 없이 수북하게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국민 혹은 민중을 민초(民草)라 부른다. 조상들이 오래도록 터를 쌓고 살아온 한반도 곳곳을 뒤덮은 수많은 산야초를 닮은 국민. 그들 하나하나를 빼닮은 풀을 보노라면, 풀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갈 이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자연이 보내준 저 많은 생명과 함께해야 인간들의 삶도 평화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1968년에 이영도 시인은 절창 ‘진달래’에서 4·19로 스러져간 넋들을 추모한다. 1973년 작곡가 한태근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 ‘진달래’를 부르면서 한없이 서러웠던 우리의 처절한 4월을 돌이킨다. 21세기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여린 씨를 뿌린 민초들의 뜨거운 함성 들리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19

어울림에 관하여

언제부턴가 나라 곳곳에 휴양림이 하나둘씩 세워져 오가는 길손들의 훌륭한 쉼터 구실을 하고 있다. 국토 면적의 65% 정도가 산으로 이뤄져 있는 산악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알뜰한 행정이라 하겠다. 봄비가 제법 많이 그리고 자주 내리는 시기에 금원산 자연 휴양림에 다녀온다. 그곳에서 느낀 소회(所懷)가 적잖게 깊고 다채로워 짤막한 글로 옮긴다. 유안청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밤새 멈추지 않는 곳에서 유숙함은 특별한 경험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낮과 밤에 따라 기능 분화가 심화(深化)된다. 낮에는 시각이 밤에는 청각이 특화되는 것이다. 빛이 넘쳐나는 한낮에 눈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지만, 어둠이 지배하는 한밤중에는 귀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연암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이 점을 입증한다. 한밤중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바람 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무위자연의 실천가들에겐 심상(尋常)한 노릇이겠지만 말이다. 이튿날 아침에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드세게 불었고, 물소리도 어젯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되 구름장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에 의지해 짧은 등정(登程)을 시도한다. 일주일 사이에 두어 차례 오신 봄비와 거센 바람으로 산벚꽃잎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떨어져 있다. 숲속 오솔길의 야트막한 바위들 틈새에 온갖 여린 풀들이 각자의 하늘과 대지에 의지해 환한 얼굴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내가 알아본 것은 남산제비꽃, 현호색, 고사리, 광대나물 정도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나의 존재를 수용하는 첫 번째 관문은 이름 아닌가?! 우리는 커다란 나무와 이름난 꽃들은 잘 기억한다. 영춘화(迎春化), 매화, 산수유, 살구꽃, 벚꽃, 목련, 박태기, 수수꽃다리, 배꽃 등속은 환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꽃다지, 제비꽃, 민들레, 갈퀴나물, 엉겅퀴, 뽀리뱅이, 지칭개, 씀바귀, 애기똥풀, 양지꽃, 고들빼기 같은 작은 풀이나 꽃에 이르면 사정이 완연히 다르다. 크고 높고 이름난 것은 누구나 알아본다. 반대로 작고 낮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무시당한다. 노자는 ‘도덕경’ 52장에서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설파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노자는 크고 작음, 높고 낮음의 상대성에 주목하면서 양자의 조화와 공존에 자연의 이법(理法)이 있다고 본 것이다. 산벚꽃이 하얗게 뿌려진 길섶 틈틈이 여린 풀잎과 꽃들이 피어나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 오고 감의 ‘무상(無常)’을 새삼 생각한다. 벚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유한한 생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1년 내내 피어있는 벚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길 사람이 있겠는가! 유한성에 기초한 순환에서 우리는 무상과 함께 영탄(詠歎)의 순간을 만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양태를 보면서 화합에 기초한 상생과 조화를 깨우치지 못한 유대교도와 개신교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것을 알지 못한 채 고귀한 인명 살상에 몰두하는 학살자들의 얼굴이 낙화(落花)와 자꾸 겹쳐지는 봄날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12

기억과 망각

지난 4월 3일은 제주 4·3 항쟁이 일어난 지 78년 되는 날이다. 제주 4·3 항쟁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도민들의 시위 운동과 대한민국 군경(軍警)의 무력 진압을 일컫는다. 추산에 따르면,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이르는 2만5000에서 3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 제주 4·3 항쟁인 셈이다. 어떤 이는 4·3 사건이라 하지만, 나는 4·3 항쟁이라 부른다. ‘사건’이라는 말에 담긴 가치 중립적이고, 어눌하며 밋밋한 표현은 희생자들의 넋을 온전히 기리지 못한다. 희생자의 80%가 군경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작전으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제주 구좌읍에 자리한 다랑쉬굴에 피신해 있던 주민 11명은 군경이 굴 입구에 피운 연기에 질식해 전원 사망했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1978년 단편소설 ‘순이 삼촌’으로 4·3 항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항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지난 시점에도 처절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임시 봉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난다. 현기영은 ‘순이 삼촌’ 출간 이후 보안사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악랄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진짜 빨갱이 형을 둔 ‘박통’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2003년 봄에 나는 처음 제주도에 간다. 그것도 공적인 업무를 위해서. 경북대 학생 70여 명을 인솔하여 4·3 항쟁 피해자와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주요 과제다. 어떤 마을에서는 제삿날이 같은 집이 수두룩했다. 군경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결과다. 어린애든 부녀자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은 반공(反共)을 내세워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처음 찾아간 제주도에서 내가 만난 ‘한라산 소주’는 무척 특이했다. 병의 생김새나 알코올 도수는 대구와 다르지 않은데, 병뚜껑에 태극기가 선명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와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태극기 내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제주(濟州)도 대한민국의 일부입니다. 더는 우리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눈물겨운 한라산 소주 뚜껑에 새겨진 선명한 태극기 무늬가 기억에 선연하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제주 4·3은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례이며,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간이 아무리 지났다 해도 국가폭력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매우 적절한 발언이고 현명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소설가 한강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세 여성의 시각으로 제주 4·3 항쟁을 돌아본다.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다움 그리고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여러 각도로 조명하는 따뜻한 작품이다. 제목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존재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이음쇠다. 이음의 원리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이다. 국가폭력의 잔인하고 음습한 결과를 묻어두려는 행위는 의도된 망각이다. 망각은 어둠과 파괴를 향한다. 처절하고 참혹한 과거일수록 낱낱이 드러내 재발을 방지하는 편이 나을 터다. 세련된 망각을 딛고, 투박한 기억에 의지할 때 밝고 투명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므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4-05

물을 생각하며

지난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나날이 중요도가 커지는 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돌이켜봄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물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이란 공격으로 석유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석유가 2차 산업혁명 이후 현대문명 발전과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물보다 더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노자는 ‘도덕경’ 8장에서 물의 속성과 가치를 강조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아니하며, 많은 사람이 꺼리는 곳에 자리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물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태양계 유일의 물의 항성 지구별의 70%는 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고작 2% 정도만 우리가 음용수(飮用水)로 쓸 수 있다고 한다. 그 2% 물은 대부분 지하수, 빙하, 만년설 등지에 분포하며, 강과 호수처럼 직접 사용 가능한 범주에 속하는 물은 많지 않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물 확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티베트에서 발원하는 동남아 최대의 메콩강 상류 남창강(南昌江)에 중국 정부는 12개의 댐을 건설하여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5개국의 생명줄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18%를 차지하지만, 가용(可用) 담수 자원은 세계의 6%에 불과하여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그리하여 중국의 669개 도시 가운데 440개 도시가 물 부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을 극복하려고 중국 정부는 곳곳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고 있으며, 그 일환이 메콩강 상류에 건설된 12개의 댐인 것이다. 문제는 메콩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6000만 이상의 인구가 나날이 말라가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댐이 건설됨으로써 어족자원과 어획량이 급감하고, 퇴적물 공급 중단에 따른 토양 생태계가 파괴되며, 생활용수 부족과 지반 침하 및 염해(鹽害)까지 발생하고 있다 한다. 이로써 피해 5개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해결책 모색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행한 일은 우리나라의 경우 한반도 최북단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비롯한 모든 하천이 우리 강역(疆域)의 역내(域內)에 자리하기에 국제적인 분쟁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여름철에 강우(降雨)가 집중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가 전혀 아니다. 석유는 나지 않지만, 물 하나만큼은 그야말로 복 받은 나라인 셈이다.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전직 대통령이 불과 2년 만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십수 개의 댐을 만드는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200만 년 이상 흐르면서 현재의 수계(水界)를 이룩한 대자연의 소중한 네 개의 강에 시멘트 철근 콘크리트를 무지막지하게 처넣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만성적인 물 부족 국가라는 거짓말을 진리인 양 호도(糊塗)하면서 말이다. 지난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4대강 재자연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가운 일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재자연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기구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와 긴밀히 협의해 구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우리 강이 다시 살아나는 경사(慶事)가 있으면 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3-29

전쟁과 파병

최악의 평화가 최선의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타당한 말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인명 살상과 사회-경제적 자산의 파괴를 불러온다.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양측의 인명피해가 180만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으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도 5만 5천을 넘어섰고, 우크라이나 국외 난민도 59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접어든 시점에 느닷없이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 아닐 수 없다.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다”라거나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어처구니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국외자인 우리도 그렇지만,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트럼프도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알고나 있을까?! 현지 시각 3월 17일 이란 전쟁에 관한 유의미한 정보가 나왔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 수장인 조지프 켄트 국장이 트럼프에게 보내는 사직서 형식의 서한을 공개한 것이다. 그는 소셜미디어 엑스에 “이란은 미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과 그 강력한 미국 내 로비 압력으로 시작됐다”고 전쟁 발발 원인을 명시적으로 적시(摘示)했다. 켄트 국장은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과 일부 미국 언론이 허위 정보 캠페인으로 전쟁 여론을 조성하여 이란이 임박한 위협이라고 트럼프를 속였다. 미국 국민에게 아무 이익도 없고, 미군 희생을 정당화할 수 없는 전쟁에 다음 세대 파견을 지지할 수 없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노선을 수정해 국가를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켄트는 트럼프의 대표적인 충성파로 작년 7월 상원 인준을 받아 테러와 마약 정책을 총괄해온 인물이다. 또한 그는 미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으로 11차례 전투 파병을 경험한 인물로 중앙정보부 준군사 조직에서 활동한 안보 전문가다. 이런 경력의 소유자가 트럼프의 이번 전쟁을 정면 반박함으로써 우리에게 이란 전쟁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명징하게 입증한 셈이다. 나는 무슨 이유든 간에 전쟁에 반대한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러시아 안보 위협이 아무리 중차대한 문제라 해도 푸틴의 전쟁 개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같은 이치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명분으로 시작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이고 야만적인 이란 공습은 용납할 수 없는 악랄한 범죄행위다. 무슨 권리가 있길래 대낮에 어린 학생들을 학살할 수 있는가?! 이란의 강력한 저항과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폭력행사에 놀란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의 참여를 날마다 촉구하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우리 국민의 견해도 양분돼 있다. 파병과 참전 절대 불가를 외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일부 태극기 세력은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을 주장한다. 우리 국익이 소중해서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면, 그대들 먼저 자식들 손잡고 솔선수범하는 용기 있는 자세를 보여 주기 바란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영웅적인 투쟁 대열 최전선에 호기롭게 참전하기를 바란다. 부디 남의 소중한 자식들 목숨일랑 그냥 놔두기를 간곡히 바란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3-22

청령포와 트럼프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돌연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곳이 영월 청령포다. 청령포는 조선 6대 임금 단종과 얽힌 곳이다. 단종 이홍위(李弘暐)는 1452년 열두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권력의 화신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주고 1455년 상왕(上王)으로 물러난다. 그것도 잠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른다. 청령포는 남한강 지류인 서강이 동-북-서쪽을 휘감아 흐르고, 남쪽은 기암절벽으로 가로막힌 경이로운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단종의 유배지를 청령포로 결정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탁견(卓見)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육지 속의 작은 섬으로 고립무원의 청령포를 무슨 수로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빠삐용’(1974)의 주인공 스티브 맥퀸이라면 혹시 모르지만. 무슨 까닭인지 나는 이미 세 번이나 청령포를 다녀왔다. 한여름에도 봄철에도 청령포를 찾았지만, 가장 깊은 상념이 몰려든 시절은 삭풍의 한겨울이었다. 서강이 꽁꽁 얼어붙어 나룻배가 아니라, 걸어서 청령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칼바람이 얼굴과 귓전을 때리는데, 노산대(魯山臺)와 망향대에서 어린 단종을 떠올리려니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세조는 어린 조카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김시습 평전’(2003)에서 심경호 교수는 단종의 사사(賜死)를 끝까지 주장한 이는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라고 기록한다. 단종이 세종의 아들 문종의 대를 이었으니, 단종을 죽이도록 세조를 교사한 인물은 두 할아버지였던 셈이다. 늙은이들이 무슨 연유로 혈족의 손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조선 왕조의 태생적 한계에 주목해야 한다. 이성계가 개창(開創)한 조선의 권력은 왕권과 신권(臣權)의 연합체였다. 양반 사대부의 협력에 크게 의지해야 했던 군왕들의 일방통행이 불가능했던 왕조가 조선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집현전을 통한 각종 제도개혁과 한글 창제 같은 대업을 이룸으로써 신권 강화의 기틀을 시나브로 만들어준 군왕이다. 문제는 병약한 문종이 즉위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왕권 약화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치적인 변곡점에 일어난 정변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양녕대군은 이 정변에서 일찍이 수양대군의 편에 섰고, 훗날 효령대군이 단종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왕권 강화에 일익(一翼)을 담당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란 요물(妖物)에 취해 인명을 살상하고, 제 한 몸과 일가 및 특정 집단의 편익을 도모한 자들이 적지 않다. 그 와중에 희생당한 이들의 통절(痛切)한 사연도 다채롭거니와 노산군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슴 짠하다. 한 살 위인 정순왕후와 재회의 기약도 없이 헤어진 채 노산대에서 한없이 그녀를 기다렸다는 사연은 눈물겹게 다가온다. 요즘 세계는 전쟁광 트럼프로 인해 거대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린란드를 탐하고, 베네수엘라를 침탈한 것도 모자라 이란을 공습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다음 차례는 쿠바라고 적시한다. 이런 사태의 출발점은 권력에 도취한 자의 지독한 과대망상과 정신착란 아닐까?!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3-15

사물의 소리

밤은 사물의 시간이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온다. 화양(華陽)에 이사 온 처음 몇몇 해에는 한밤중에도 여러 번 일어나야 했다.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내려가 보면 사위가 돌연 고요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사물들의 고요한 합창이거나 독주 혹은 교향곡임을 알게 되었다. 침묵하던 사물이 느닷없이 살아나 소리를 내는 신비한 밤. 만화영화의 귀재(鬼才)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天空)의 성 라퓨타’(1986)에서 영웅적인 소년 주인공 파즈가 동굴에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파즈에게 밤은 사물의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고요하게 침묵하던 사물이 밤이면 제각각 소리를 내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인은 방해석(方解石)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파즈에게 들려준다. 밤에 담긴 소리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각인한 이는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한밤중에 요하(遼河)를 건너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밤과 소리의 상호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인간의 감각이 낮에는 눈으로 쏠리지만, 어둠이 장악하는 칠흑의 밤에는 귀가 감각의 중추가 된다. 그런 까닭에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밤에는 훤히 들리는 게다. 도회의 밤에는 어둠이 깃들만한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야성(不夜城)처럼 환한 공간에서 인간의 감각기관은 퇴행 일로를 걷는다. 밤과 낮의 분별이 불명확한 21세기 20년대 아파트와 아스팔트와 대중교통은 태곳적 감촉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고작해야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낯을 붉혀야 하는 이웃 아닌 이웃들의 갈등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밤에 들리는 게 어디 사물의 소리뿐이랴?! 우리 내부에서 요동치는 내면의 소리도 낮이 아니라, 밤 시각에 활성화된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지 못하는 현대인이 자기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은 짜장 밤이기 때문이다. 창에 기대거나, 벽을 향하거나, 가부좌를 틀거나 우리는 깊은 밤에 고요히 내면을 응시한다. 그때 들려오는 아련한 소리에 귀 기울이면, 오래전에 잊힌 얼굴과 사건과 인연이 살아 나온다. 때로는 환하게 때론 흐릿하게, 혹은 강렬한 음악과 함께, 더러는 애틋한 연가(戀歌)와 함께. 그때의 그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잠시 생각한다. 입가에 미소가 머물기도 하고, 낮은 한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제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날들. 하지만 우리는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마저 퇴색한 시점에 감상(感傷)에 젖어 정신을 흐느적거리게 방치하면 아니 된다. 모든 떠나간 것은 그리운 법이지만, 떠나간 것들이 있기에 지금과 여기의 우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립고 아쉬운 정념이 우리를 휘감고 돈다 해도 이젠 어쩔 도리없이 고개 흔들어야 한다. 오지 않은 날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찻잔이 달그락거리고, 기둥 모퉁이가 쩍, 소리 내며 갈라지고, 냉장고가 윙, 하며 갑자기 돌기 시작하고, 보일러가 힘차게 돌아가는 밤이다. 겨울밤이 사물의 소리와 함께 시나브로 작별하려 한다. 화사한 봄날 사물은 어떤 소리를 우리에게 보낼 것인지, 궁금한 아침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3-08

다시 돌아오는 봄

계절의 순환은 경이롭다. 열흘 전인 2월 13일 마당을 살피다가 아, 하는 소리가 부지불식간에 나온다. 수선화 어린싹 몇 줄기가 뾰족하게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수선화 알뿌리를 몇 알 심어놓았는데, 녀석들이 해마다 잊지 않고 봄을 알리는 전령 구실을 하는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샛노란 영춘화(迎春化)가 어느새 담장 아래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이튿날 바위 틈새에서 튤립과 히아신스도 싹을 틔운다. 며칠 뒤에 학교에 갔더니 홍매(紅梅)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돌 틈에서 크로커스가 보라색 시든 꽃을 달고 처연하게 삐죽, 모습을 드러낸다. 시든 꽃을 보건대, 필시 며칠 전에 마른 잔디 아래서 힘겹게 피어난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뿌려준다. 생명에 절실한 물! 조금 늦든 이르든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새삼 마음이 뻐근해진다. 한번 먼 길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는 법이 없는데, 초목은 그러지 아니하는 곡절이 궁금하다. 마당에서 자라는 네 종류 구근(球根)인 히아신스, 크로커스, 튤립, 무스카리는 대학 후배가 택배로 보내준 것이다. 그이는 작년에 고인(故人)이 되어 영영 작별한 인연이 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무슨 상념(傷念)과 만났는지 알 길 없지만, 올해도 여린 싹이 여기저기 돋아나는 걸 보니 자연 그이 생각이 난다. 다소 그늘이 진 얼굴에 떠오는 맑고 순정한 표정과 어색한 웃음이 일품이었던 사람. 만약 그가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네 종류 알뿌리를 전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아끼는 마당의 풍경은 상당히 쓸쓸하고 허전했으리라. 불가(佛家)에서 전해지는 말 가운데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있다. 참으로 비어 있지만, 묘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다. 비어 있음(空)은 없음과 같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지만, 고유한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이다. 세상 만물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인연으로 서로 엮여서 어떤 형태를 가지며, 그 인연이 다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진공은 사물의 본질을 가리키고, 묘유(妙有)는 사물의 작동 원리를 일컫는다. 얼핏 보면 상호 모순적인 표현으로 보이지만, 진공과 묘유는 만물에 내재한 근본원리이자 이치다. 한 알의 사과에서 우리가 들여다보는 것은 무엇인가?! 영양과 비타민, 맛과 향, 색과 형태?! 아니면, 아이작 뉴턴처럼 만유인력의 실마리를 당신은 사과에서 보고 있는가?! 사과 열매를 보면서 씨앗 하나와 흙과 물과 햇빛과 바람을 떠올려 보시라. 적절한 생육조건, 즉 인연이 생겨나서 씨앗 하나가 발아(發芽)하여 싹으로 자라고, 그것이 나무로 생장하여, 벌과 나비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여 마침내 열매 맺었음을 상기하면 어떤가! 만약 이런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우리는 사과 열매와 만나지 못할 것이다. 홍매와 크로커스가 피고, 수선화와 히아신스가 여리지만, 단단한 싹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면서 기약 없이 훌훌 떠나간 후배를 떠올린다.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인지상정 아닌가! 삶에 허여된 ‘지금과 여기’를 치열하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명제를 곱씹을 시각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22

그림으로 보는 조선 풍속도

지난 연말 ‘청도 인문학’ 종강하는 자리에서 어느 수강생이 툴툴거린다. 방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12월 하순에 종강해서 2월 하순에 개강하는 것이니, 두 달 남짓한 기간이 방학이다. 이것은 여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한겨울과 한여름의 휴식은 필요하다지만, 그 기간이 유독 길게 여겨지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필시 열렬한 수강생 아닐까?! 잠시 생각을 고른 나는 방학 중에 두 번 정도 인문학 특강을 함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반색하며 ‘청도 인문학’ 수강생이 아닌 일반 군민들에게도 청강의 기회를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듣고 보니 아주 생산적인 발상이다. 그리하여 청도 도서관장과 과장, 그리고 실무자와 협의한 끝에 1월 20일과 2월 3일 오전에 도서관 강당에서 특강이 이뤄졌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동서양 그림에 얽힌 이야기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선지 그림과 관련한 서책을 조금 읽은 편에 속한다. 한겨울에 열리는 인문학 강연 주제로 지나치게 무겁지 않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림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혜원 신윤복과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의 글과 그림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로 한다. 1970년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 전신첩’에 실린 30점 풍속화 가운데 8점을 준비한다. 언젠가 큰아들 덕분에 읽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긴 제목의 서책에서 나는 신윤복의 그림에 담긴 조선 후기의 풍속과 만났다. 아주 평이하고 곡진한 글월로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독자들에게 날로 어지러워지는 조선 하대(下代)의 풍정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월하정인’이 눈길을 잡아맨다. 한여름 달밤에 두 남녀가 양반댁 담장 앞에서 은밀하게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그림이다. 문제는 야삼경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의 형상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닌 기묘한 모습의 달이 하계에서 희롱하는 남녀의 통정(通情)을 굽어보는 것이다. 저 달의 본령은 뭔가,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처음 ‘월하정인’을 보았던 당시 나는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원근법(遠近法)도 없고, 정체 모를 달은 떠 있고, 한문이 보란 듯 찍혀 있는 생소한 그림. 1793년 8월 21일 한양에서 일어난 부분월식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란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낯이 화끈거린 기억이 새롭다. 원근법이 금과옥조도 아니고, 그림과 화제(畫題)가 어울리는 전통 역시 나의 무지를 확인해준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고는 하나, 혜원이 활동했던 시기의 조선은 그야말로 무너져가는 나라였다. 일반 백성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지만, 풍족한 양반들의 법도는 나날이 어지러워진 세월이었다. 자유분방한 혜원은 그런 양반들과 기생들의 한바탕 풍류를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18세기 후반의 조선 생활상을 곡진하게 그려낸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담대한 구도, 적나라한 시선을 감추지 아니하는 정직한 화가의 시선을 유지한 혜원 신윤복. 그의 화첩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을 준다. 제한된 시공간과 인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넌지시 귀띔하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8

꼰대의 입, 어른의 귀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나이 먹은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다채로워졌다. 예전엔 노인 정도로 통용됐는데, 요즘엔 어르신, 시니어, 노인, 꼰대처럼 다양하다. 나이 드는 일은 자연적인 현상인데, 세태풍속이 일변(一變)하는 시기여서 마음이 편치 않다. 생명 가진 모든 것에는 생로병사가 필연인데, 그것을 거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오늘도 꺾일 줄 모른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는 ‘노화의 종말’(2020)에서 노화는 질병이고,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심장병, 치매, 암 같은 것은 질병이 아니라, 노화의 증상이라고 규정하면서, 노화 자체가 질병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나아가 노화는 질병일 뿐만 아니라, 만병의 어머니라고 단언하면서 노화는 늦추거나 멈추거나 심지어 되돌릴 수 있다고 확언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일면 동의하지만, 노화를 역전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이 문제는 짧은 지면에서 다루기에는 방대한 영역과 맞닿아 있기에 여기서 논의하는 일은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요즘 불거지는 ‘특이점(特異點)’ 논란처럼 그냥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유해야 할 주제다. 각설하고, ‘꼰대의 입, 어른의 귀’라는 표현에 담긴 불편한 소회(所懷)를 잠시 풀어놓고자 한다. 나이 든 축이 조금 길게 입을 떼면 그는 꼰대로 격하되고, 인내심을 갖고 경청하면 어른이라는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생각한다. ‘노파심(老婆心)’으로 젊은이들에게 충고하려는 말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바람에 말이 길어지는 것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어떤 노인의 영혼과 정신은 청춘보다 시퍼렇게 살아서 대쪽보다 단단하고, 강철보다 견고하다. 어떤 청년의 심성에는 100세 영감의 편벽고루와 이기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이런 놀라운 대비를 수없이 보았다. 그들을 낳고 기른 부모와 사회-정치-문화적 환경에 순치된 애늙은이들이 설레발치는 이른바 ‘TK 정서’가 그런 본보기다. 공자는 제자들과 나눈 문답에서 ‘회인불권(誨人不倦)’을 강조한다. 사람을 가르침에 지쳐서는 아니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회(誨)’를 파자(破子)하면, 매번 말한다는 뜻이다.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잘못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거슬리는 대로, 마음에 어긋날 때마다 말로써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몹시 번거롭고, 배우는 자는 또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반면에 노자는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를 설파한다. 말로써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는 의미다. 말로써 인간을 교화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함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나이 먹은 자들의 솔선수범과 언행일치가 말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다. 그래선지 ‘논어’는 1만6000자 정도인데, ‘도덕경’은 5273자로 소략(疏略)한 편이다. 듣기에 장황해도 필요한 말은 경청함이 옳은데도, 말 때문에 꼰대로 몰고 감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허황한 말을 인내심 있게 듣는 노인을 어른으로 떠받드는 일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지경에 이른 나이 든 자들의 증가를 희망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1

안과 밖

긴 한파(寒波)가 이어지고 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더 매섭게 만드는 것은 칼바람이다. 바람에 칼날이 달렸다는 뜻을 가진 복합어 ‘칼바람’은 요즘 같은 추위를 잘 드러내는 어휘다. 지난 1월 20일이 대한(大寒)이었고, 지금 계속되는 한파는 대한의 끝자락이라 할 것이다. 하되, 2월 4일이면 봄을 알리는 입춘이다. 어쩌랴, 시작과 끝은 만나기 마련인 것을! 복층 베란다에서 창밖을 보면 여러 감회가 오간다. 서북풍이 휘휘, 소리 내며 지나가면 감나무 앙상한 줄기가 세찬 바람에 흔들린다. ‘세한도’의 소나무는 푸르름을 유지하지만, 전신을 떨며 고적(孤寂)하게 서 있다. 지나치게 자라나 이웃집 지붕을 관통한 장미는 전지(剪枝)된 채 갈색 이파리만 우줄 우줄 흔들린다. 가로등 전선도 어쩔 줄 모르고 바람에 자못 위태롭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면 청도와 창녕을 잇는 20번 국도에 트럭과 승용차 무리가 가도(街道)를 질주한다. 스치듯 오가는 차량 행렬 기사들은 언제 다시 재회할지 알 도리 없다. 주말 아침부터 그들을 차가운 거리로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필시 그것은 생존 욕망을 채워줄 필수적인 경제활동일 터다. 삶의 기반은 오래 살아남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보존된 안쪽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면 상황이 일변(一變)한다. 찬바람이 어느새 목덜미를 휘감고 살갗을 매섭게 찔러온다. 부신 햇빛 아래 웅크린 채 사위(四圍) 돌아본다. 꽉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온 물이 밤새 얼어붙어 굵은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붉은 남천 이파리들은 허수아비처럼 몸을 비틀며 바람의 기세에 잔뜩 주눅 들어 있다. 잠시 숨 고르며 생각한다. 온실 효과로 포근한 베란다 안쪽의 공간과 차가운 대기에 노출된 외부의 차이를 숙고한다.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안과 밖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폭력적인 자연에 저항하여 인간은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그들만의 영역을 건설한다. 이름하여 공동체를 세운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공격에 무방비로 방치되지 않는 문명 공동체! 하지만 계급과 종교와 국가가 생겨나면서 문명 공동체의 허울은 쉽게 벗겨져 나간다. 문자 지식과 창칼의 무력과 우월한 경제 권력을 앞세운 소수의 인간 무리가 다수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문화가 뿌리 깊게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30만 년 사피엔스 역사에서 불과 1만 년 전에 형성된 계급과 지배-피지배 관계는 21세기 20년대에도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의 맹추위 속에 누군가는 포근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혹자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한파와 맞서야 하는 엄혹한 시절. 여기서 떠오르는 장편소설의 놀라운 문장. “부자는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1932)의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의 짧지만,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 나는 자유보다 평등을, 평등보다 형제애를 주장해왔다. 부자들이 내세우는 자유, 가난뱅이들이 외치는 평등이 아니라, 양자 모두 인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는 ‘형제애’야말로 우리의 미래 아닐까. 안과 밖의 거리가 최대한 좁혀지기를 고대하는 차가운 아침이 지나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25

참새를 위한 변명

경산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청도로 이사한 지 어언 1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도회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들어온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 가운데 하나가 층간 소음이다. 10층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소년이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불러서 거실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언젠가 아이 엄마한테 그런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애들이 다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경험한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뇌리에 삼삼하게 각인돼 있다.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지만, 이런 절정 고수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때 나는 굳게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한 촌에 층간 소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다른 형태의 층간 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에스파냐 기와를 얹은 나의 소담한 지붕에서 일어났다. 기왓장 사이마다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키우면서 잠꼬대하며 몸을 뒤틀거나, 기왓장 아래 나무판을 발톱으로 긁거나, 새벽마다 자기네 기상을 알리는 것이다. 햐, 이런 층간 소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그런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일부 식견 놓은 건축주는 기왓장 틈새를 완벽하게 막는 시공법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참새는 천적을 피해 인가 부근에 둥지를 트는 인간 친화적인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는 참새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말에 ‘참’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좋은’, ‘진정한’, ‘우수한’의 의미다. 참나리, 참깨, 참나물 같은 어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참새에 이르면 나는 생각이 썩 달라진다. 아무 곳에나 똥오줌 내갈기고,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새벽잠을 깨우고, 여기저기 솜털이며 깃털을 날리는 불결하고 요란한 작은 조류에 지나지 않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무엇보다 우두머리 참새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그러지곤 한다. 사람을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언짢은 심사가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참새의 ‘참’자는 풍자(諷刺)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놀라운 발상의 소유자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의 참새가 무상-무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는 아직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요즘 농촌에는 완벽히 사라진 허수아비의 추억도 참새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문화혁명 시기 모택동의 지시로 3억 마리 이상의 참새를 잡아 죽인 까닭에 해충이 들끓어 식량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그만큼 참새는 인간과 가까운 조류다. 세상에 ‘나’에게만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만 좋은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과율에 따라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와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을 되풀이한다. 일방적인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는 없다. 참새를 위한 어느 인간의 소박한 변명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8

‘연자가’에서 읽는 부모와 자식 관계

얼마 전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의 5언 30행 150자의 ‘연자가(鷰子歌)’를 읽고 생각이 제법 복잡해진다. ‘새끼 제비의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어느 집 서까래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네 마리 새끼를 애면글면 키워나가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부리와 발톱이 닳아 뭉개질 만큼 맹렬하게 ‘육추(育雛)’하는 어미 제비 부부. 한 달 내내 먹이 사냥과 언어 교육, 털 고르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모 제비. 그러던 어느 날 새끼 제비들에게 깃털이 돋아 그것들은 이소(離巢)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겨난다. 한 번 비상(飛翔)한 새끼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어미들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새끼들은 대답이 없다. 빈 둥지 깊은 곳에서 어미들은 밤새도록 슬피 운다. 이 장면에서 시인이 어미 제비들을 통렬하고도 신랄(辛辣)하게 꾸짖는다. ‘제비야, 제비야 슬퍼하지 말아라. 너희는 마땅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라. 너희가 새끼였을 때, 어미를 등지고 높이 날아간 그때를 생각해보라. 당시 부모 마음을 너희는 오늘 응당(應當) 알지니.’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대개 부모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그런데 ‘연자가’에서 시인은 부모 제비를 엄중하게 꾸짖는다. 언젠가 너희도 어렸을 적 부모 마음을 전연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 천방지축 날아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이제야 너희도 그때 부모 마음이 어땠을지 알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세대 갈등에 시달렸을 터.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구하고도 연면(連綿) 부절(不絶)하게 이어진다. 자식은 부모가 답답하다고 비난하고,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과학기술이 느릿하게 발달하던 시절에도 서로 괴로웠던 부모 자식들은 빛의 속도로 전개되는 4차 산업 혁명 시기에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의대 갈 필요 없다, 3년 내에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란 일론 머스크의 일갈(一喝)에 얼마나 많은 한국 학부모들의 간담이 서늘했겠는가! 자식들의 취향이나 적성 혹은 미래기획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지금과 여기의 평판과 자신들의 기대치만 앞세우는 부모들의 탐욕! 그로 인해 국가는 과학기술 인재를 잃어버리고, 청춘은 막다른 골목을 서성대고!···. 요즘 같은 시절에 30년 한 세대 차이는 그야말로 석기시대와 대항해시대 차이만큼 거리가 멀다. 그다지 깊지도 다채롭지도 못한 세상 경험과 거론하기조차 쑥스러운 독서량, 빈곤한 상상력과 태부족한 역사 지식으로 무장한 부모 세대의 닦달에 청춘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러하되 내 자식 의대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그날그날 살아가는 철부지 부모들이라니! 21세기 20년대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배우고 다시 배우는 시간대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사물(事物) 인터넷이 일상화하는 시기에 부모들은 자식들 못잖게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1200년 전 밤새 슬피 울던 어미 제비처럼 되지 않으려면!···.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1

소한(小寒)과 ‘세한도’

지난 며칠 동안 신년 강추위가 찾아왔다. 그저께인 1월 3일 청도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1.6도, 봉화는 16.7도였다. 그래도 예전에 맹위를 떨치던 ‘소한 추위’가 없어서 한시름 놓고 있는 형편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아왔다. 아파트와 승용차로 무장한 현대 한국인들은 이런 옛말이 무척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차가운 날이면 추사(秋史)와 ‘세한도(歲寒圖)’ 생각이 절로 난다. 이조판서로 이름을 날리던 김정희(1786~1856)는 안동 김씨의 득세와 더불어 1840년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 대정(大靜)으로 귀양살이 떠난다. 고위직에 있을 때 문전성시(門前成市)의 경험을 기억하는 추사에게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초였을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유배지에 귀한 서책을 바리바리 들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중인 출신 역관으로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었던 우선(藕船) 이상적에게 추사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구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의 첫머리를 따서 화제(畫題)로 삼았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글귀는 변함없이 스승을 대하는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와 닮았다. 그래서 화제인 ‘세한도’를 가로로 쓰고, 바로 그 옆에 세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 네 글자를 쓴 것이다.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는 여전히 많은 이의 사유와 인식에 자양분을 선사하는 귀한 문화자산이다. ‘세한도’와 더불어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추사의 고된 유배 생활의 결과를 입증한다. 추사는 대정 유배길에 초의선사에게 원교(圓嶠) 이광사(1705~1777)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내리게 하고 자신의 글씨로 대신한다. 그런데 해배(解配)되어 귀로에 들른 대흥사에서 추사는 자신의 편액을 떼게 하고,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도록 부탁한 것이다. 천 리나 떨어진 외로운 섬 제주에서 8년의 귀양살이를 경험한 김정희의 내면세계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훨씬 깊어지고 유장해진 것이 아닐까! 한겨울 북풍한설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낙락장송처럼 의연하고도 굳세진 추사의 인품이 ‘무량수각(無量壽閣)’ 네 글자에 담긴 것 같다. 삐뚤빼뚤하되 둥글둥글한 자체(字體)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4절기 가운데 스물세 번째인 소한을 지나면서 우리 세대가 살아온 날들을 새삼 돌이킨다. 음습한 날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야 했고, 콩나물 버스 안내양들이 추락사를 겪어야 했던 저 암울했던 1970~80년대! 도저히 밝은 미래를 꿈꾸거나 기대할 수조차 없던 군부독재의 잔혹한 고문과 투옥, 학살과 은폐, 용공(容共) 조작(造作)까지. 모진 겨울날이면 0.7평의 독방에서 겨울을 나야 했던 양심수들과 그들의 가족 생각이 우심(尤甚)해지곤 했다. 그런 칠흑(漆黑) 같은 죽음의 질곡(桎梏)을 넘어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 어린 것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럽고 따사로운 문화·예술의 나라 대한민국이 멀지 않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04

끝과 시작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딱 사흘 남았다. 아, 하는 사이에 핑하니 1년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시간은 나이 먹은 빠르기로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100살 먹은 사람에겐 시속 100km로, 20살 청춘에게는 시속 20km로 시간이 흐른다는 얘기다. 양자역학자들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그런 주장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불과 360일 전에 시작한 을사년 초입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탁상용 달력을 보면, 거기 기록한 일정에 의지해 무언가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즉각 떠오르는 사건이나 관계는 없다. 그것은 그만큼 무탈하고 평온한 한 해를 보냈다는 증거이리라. 2025년 을사년이 스러지면,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막을 올린다. 과연 무슨 인연과 사안이 나를 기다릴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진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것이든, 무생물이든 시작은 반드시 끝과 결합한다. 생로병사가 전자(前者)를 가장 명백하게 입증한다면, 12월 31일과 1월 1일의 대면은 후자(後者)를 증명한다. 그런 까닭에 시작과 끝은 항상 서로 맞물려 있다. 청년 시인 윤동주가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라고 쓴 것은 까닭이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전후상수(前後相隨)’를 말한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말이다. 학생으로 비유하면, 초등학교 6년 졸업하면, 중학교 신입생이 되고, 중학교 졸업반은 고교 신입생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이것은 생의 시작부터 종점까지 수미일관 적용이 가능하다. 최고령자라 할지라도 사자(死者)들의 북망산에 가면 신입 회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나 동주의 가르침에서 새겨둘 만한 게 하나 있다. 끝과 시작이 서로 분리될 수 없기에 우리는 관계와 인연을 신중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매개로 맺는 관계와 그것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성립하는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모든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업(業)의 실타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 이르다 보니 모골송연(毛骨悚然)하다. 1년 12달 365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진정으로 말하고 행동했는지, 도통 자신이 없다. 나이 든다는 일이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했거나, 허투루 대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사과하고 바로 잡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경직된 노년의 사유와 인식은 큰 허물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어린 시절부터 과감하게 사과하고, 그 행실을 고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공자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라고 가르쳤다.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허물”이란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오류를 고치고 사과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근거 없는 자존심만 높아가고, 유연성과 관대함은 날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을사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세상사와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잠시 돌아본다. 나로 인해 혹여 괴로웠을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철이 없는 것이다. 그러하되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 병오년이 여러분과 만나면 참 좋겠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8

이분법과 양비론

오늘은 24절기의 22번째인 동짓날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에서 동짓날은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여름의 정점인 하지(夏至)와 비교하면 대략 5시간 정도 낮의 길이가 짧은 날이 동지(冬至)다. 어둠을 꺼리는 만큼 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생의 약동을 꿈꾸기 시작한다. 밤이 가장 깊은 시각은 동시에 동트는 새벽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새삼 이분법을 돌이키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생의 여러 모습이다. 한여름 소나기 지나간 자리에 찬연하게 빛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삶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천변만화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인생의 고빗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과 사연이 자리한다. 그러하되 우리는 명쾌하고도 특정한 시각으로 인간과 세상을 재단한다. 이분법은 우리가 의지하는 매우 친근한 관점이자 행동 방침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처럼 단순하고도 강력한 분별과 차이가 이분법의 고갱이다. 예를 든 대상 가운데 전자는 우리의 영원한 벗이자 우방이며, 후자는 원수이자 악마로 화한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충돌, 대립과 갈등, 불화와 반목(反目)이 발원한다. 양자택일의 관점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분법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중간지대를 포기하기에 포용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야’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찔러 맹인(盲人)으로 만들어버리고 시칠리아를 탈출한다. 폴리페모스처럼 하나의 눈으로만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분법과 달리 양비론(兩非論)은 제3의 시선을 전제한다. 양비론은 너희 둘 다 틀렸다는 관점에 기초한다. 양비론자들은 자기네의 관점만이 옳다는 전제 아래 이분법에 기초한 자들을 비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의 관점이 변증법적인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 한, 양비론도 사태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다. 회색의 중립지대에서 그들은 지적인 유희에 탐닉한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내란 정국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이 상호 충돌하면서 여론 매체가 들끓는다. 여론을 추동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대고 있으며, 일부 현학적인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포장만 그럴듯한 양비론을 제시한다. 양자를 넘어서는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안의 출발점은 역사 인식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의 근저에 지나간 날들의 오류와 실패가 자리해야 한다. 성공과 승리가 아니라, 실패와 패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위인전의 쓸모는 위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이 겪은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출구 모색과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강렬한 의지의 발현에 있다. 동지는 음기(陰氣)가 절정에 이르는 날이지만, 양기(陽氣)가 소생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선인들은 동짓날을 ‘일양(一陽)이 생겨나는 날’이라 보았다. 장쾌한 시각에 기초하여 이분법과 양비론을 넘어서는 위대한 통합과 전진을 염원하는 동짓날 아침이 환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2

가르친다는 것

이번 학기에 ‘문학과 영화, 그리고 나’ 교양 수업을 진행하고 나서 느끼는 소회(所懷)가 이 글을 쓰도록 인도한다. 학생들에게 고전 문학 작품들을 읽히고, 고전에 기초한 영화를 감상하게 함으로써 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게 강의 요지다. 그러하되 강의의 방점은 영화가 아니라, 문학에 찍혀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나는 이른바 ‘최대강령주의자’에 속한다. 무엇을 하든 열렬하고 집요하게 대상을 파고드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강의 준비도 치밀하고 폭넓게 하고, 강의 시간도 최대한 준수하려 애쓴다. 당연히 휴강은 없다. 시인 동주는 “한 시간의 휴강은 실로 살로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인 시점에 그런 자세는 너무 한가하다는 생각이다. 학생들과 15주 강의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느낀 뼈아픈 사실은 그들 내면에 지나치게 깊이 새겨진 사회적 수동성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이번 학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동성의 깊이와 폭이 심화-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타자를 위한 배려가 실종되고, 각자의 좁은 공간에 자발적으로 유폐된 청춘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언젠가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공원묘지나 무덤 속 같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졸거나 자거나 휴대전화 건드리면서 75분을 간신히 버티는 학생들의 무표정하고 생기 없는 얼굴과 눈빛을 보노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세대차(世代差)와 ‘엄근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지만, 학과장 말에 따르면, 많은 강의실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공자는 지식인의 기본자세를 ‘묵이지지(黙而識知)’ ‘학이불염(學而不厭)’ ‘회인불권(誨人不倦)’ 셋으로 정리한다. 이 가운데 나는 회인불권, 그러니까 사람을 가르침에 지겨워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을 가장 요긴한 것으로 생각한다. 회(誨)를 파자(破子)하면, 매번 말한다는 뜻이다. 무엇인가 부정적인 상황이나 언행을 보면 그것을 말로써 계도(啓導)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렇게 끈질기고도 정성스럽게 가르치는 행위가 아무 보답도 없이 시간과 더불어 스러질 경우, 완전히 속수무책이라는 데 있다. 그때 적용할 수 있는 영어 속담이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그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을 먹을지 말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최종적인 주재자는 교수나 부모가 아니라, 학생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말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꾹 눌러 참고 노자의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를 떠올린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야말로 참교육을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도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언행일치 교육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학부모는 가능하지만, 교사나 교수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거의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회적 수동성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교육이 재편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행-재정적인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하는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인재 양성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일 밖에 없을 것이다. 창밖 겨울비 촉촉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