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일 대한민국에서도 마침내 ‘노동절’이 부활했다. 세계 모든 나라 노동자들이 축제를 벌이며 쉬는 노동절에도 한국 노동자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행정당국은 노동자들의 호칭마저 왜곡하여 ‘근로자’라 불렀다. 노동을 노동이라 하지 못하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에 ‘노동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희극적인 상황을 초월한 아이러니 자체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에서 8만이 넘는 노동자가 거리 시위를 벌인다. 그들은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투쟁한다. 시카고 외에도 미국 전역에서 30만에서 50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인다.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적 기념일로 결정했고, 이것이 현재의 노동절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 조선 노동자 2천여 명이 모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등을 주장하는 강연회가 한국의 노동절 행사 효시다. 이승만은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지정하여 1959년부터 기념행사에 들어간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3년에 노동절을 대신하는 ‘근로자의 날’을 선포하여 이듬해부터 실행한다.
사전적 의미를 살피면, 노동은 ‘육체와 정신을 써서 일하는 것’이며, 근로는 ‘힘들여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다. 근로는 노동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용주의 바람과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1980년대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노동계의 ‘5월 1일 노동절’ 개정 요구가 거세진다. 그 결과 김영삼이 날짜만 바꿔서 1994년부터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선포한다.
작년 11월 11일 국회를 통과한 ‘법률 제21134호’가 공포됨으로써 2026년 노동절은 136주년 세계노동절이자 동시에 한국의 법정 기념일로는 ‘제1회 노동절’이 된 것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맞는 노동절의 감회가 나로서는 다소 남다르다. ‘호부호형(呼父呼兄)’ 하지 못해 집을 나가야 했던 홍길동 생각이 느닷없이 떠오르는 심사는 또 뭐냔 말이다.
‘근로’라는 말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어휘는 ‘근로 정신대(勤勞 挺身隊)’다.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군수공장과 방직공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던 한국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근로 정신대다. ‘노동’이라는 좋은 어휘를 놔두고 굳이 제국주의 일본이 애호하던 ‘근로’라는 표현을 관철한 박정희 일당의 흉중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지금도 자못 궁금하다.
위나라 왕에게 등용되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느냐는 자로(子路)의 물음에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겠다(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고 일갈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육단(六段) 논법이 등장한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며,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면, 백성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논어, ‘자로편’ 참조)
103년 만에 비로소 제 이름을 얻은 ‘노동절’이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기념일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성숙한 대한민국을 기원한다.